민변하고 한송이라는 독서모임과 같이 직장 민주주의 책에 대한 강연을 하고 왔다.

 

솔직히, 독서모임에서 책 얘기를 한 건 처음이다. 저자로 10년이 넘는 세월을 지내면서, 독서모임에는 한 번도 안 갔다.

 

내가 좀 저자로서는 비싸게 구는 편이다. 보실려면 보시고, 마실려면 마시고.

 

강연도 거의 안 한다. 방송도 특별하게 인연이 있던 거 아니면 안 한다. 그러다 보니까 독서모임까지 갈 형편이 안 되었다.

 

책 안 팔린다 싶으면, 바로 좌판 걷고 다음 책에 좀 더 집중하는 게 내가 살아온 방식이다. 좀 뛰면 조금 더 팔 수는 있겠지만, 그것 보다는 다음 책을 더 정성들여 준비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직장 민주주의 책은, 딱 보니까 판매로는 날 샜다.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고 그냥 덮기도 좀 그렇고. 그냥 죽여도 될 주제는 아닌 것 같고.

 

이윤희 기자에게 연락을 했다. 독자 다섯 분만 있으면 갈 테니까, 주선 좀 해달라고.

 

그렇게 해서 하게 된 게 민변 독서모임이다.

 

민변 독서모임이라고 해서, 변호사만 있는 건 아니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한송이 독서모임에는 주로 선생님들이 오신 것 같고.

 

형식으로는 독자 티타임 하는 것처럼 좀 더 편하게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그러기에는 좀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장소도 그렇게 하기에는 다른 형식이고. 그냥 강연 형식으로 했다. 짧은 시간에 많은 내용을 전달하기에는 그게 더 나을 수도 있다.

 

책 내고 저자로는 처음으로 독서모임에 참가하고 나니까, 이런저런 생각이 참 많이 들었다.

 

요즘 책을 누가 읽냐? 그래도 독서모임 같은 게 특히 지역별로 활성화되고 돌아가는 게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중요하기는 하다.

 

좀 더 여유가 있으면 진짜로 전국의 독서모임 한 번씩 돌아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그러나 아직은 그럴 형편은 아니다. 애 업고 돌아다니기도 힘들고.. 그나마 큰 애는 이제 곧 학교에 들어간다. 방법 없다. 나도 같이 묶여 있는 수밖에.

 

직장 민주주의라는 주제는, 벽에다 대고 얘기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내가 마주한 벽은, 날카로운 송곳이 마구 튀어나와 있는 그런 벽과 같다. 직장이라는 곳에서의 민주주의를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너무 많기에.. 그냥 침묵의 벽이 아니라, 그런 얘기 하는 쉐키들은 다 빨갱이여..

 

, 나는 빨갱이 맞기는 한데, 언제까지 우리만 이런 식으로 황당한 직장 구조를 끌고 갈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삐쭉삐쭉 칼날이 튀어나온 것 같은 절벽을 걸어갈 때에는.. 마음을 비우는 게 최고다.

 

선생님은 그냥 가던 길 가셔요, 저는 제 얘기 그냥 할께요.

 

최대한 낮은 자세로, 그리고 최대한 늦은 속도로, 살살 기어가는 게 내가 직장 민주주의라는 주제를 대하는 자세다. 화려함도 없고, 풍성함도 없다. 그래도 현실은 변하고야 말 거다. 그게 책이 가진 힘이고, 이 주제가 가진 힘이다.

 

조금은 고단한 삶을 당분간은 감수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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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때에는 강연을 그렇게 많이 하지는 않았다. 가능하면 대학교 정도 가려고 했었는데, 그 시절에는 이미 학교 운동권이나 학생 자치 같은 게 무너지던 시기라서 그렇게 많이 가지는 못했다. 그리고 금방 mb 집권이 시작되었다. 나만 그랬던 건 아닌데, 하여간 대학교 강연이 학교 측이 반대로 무산되는 일이 몇 번 있었다.

나꼽살 하던 시절에는, 어느 정도는 김어준의 인기에 좀 묻어가는 면도 있었을텐데, 그 때는 진짜로 어마무시했었다. 부산대에서 대형 강의실 꽉 찾았다. 아마, 그게 가장 많이 왔던 걸로 기억난다.

2012년 대선의 문재인 서울 유세에서 처음 유세차를 탔다. 그 때 공약 중에서 의료비 100만원에 대해서, 아주 좋은 공약이라는 얘기를 했었다. 성격상, 길게 얘기하는 걸 싫어한다. 몇 분 얘기하지 않고 내려갔는데, 그게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나보다.

그 시절을 정점으로, 내 인생은 그 후로 줄곧 하강 국면이다. mb 때도 힘들었는데, 박근혜 아주 초반만 지나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을 정도로, 진짜 꽁꽁 틀어막혀 있었다.

그냥 정권 교체나 좀 돕자, 가벼운 마음으로 아직 당대표가 아니던 시절의 문재인을 돕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도운 건 마지막 선거가 끝나던 순간까지였다. 그렇지만 공식적으로는, 둘째가 폐렴으로 입원하면서..

그 때 아내랑 아이들 다 데리고 보령으로 갔다. 대천 해수욕장 근처에서 며칠을 지냈다. 거기서 내가 하던 모든 걸 내려놓기로 마음을 먹었다.

다행히, 그 후로는 먹고 사는 걸 걱정하면서 살지는 않아도 별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늘 모든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특별히 다른 사람하고 싸우면서 살지는 않으려고 한다.

내가 노력하면서 살았을까? 그렇다고 억지로 말하면 '겁나 노력
, 이렇게 말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면, 대부분 내 맘대로 살았고, 요즘은 그냥 내려놓고 산다.

그게 나의 50대다. 한 번 더 남은 인생을 위해서 도약, 그렇게 생각하기 좋은 나이일 것 같지만, 그건 똑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고.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두 명을 돕는 일이 내가 주로 한 일인 것 같다. 한 사람은 대통령이 되었고, 한 사람은 결국 환갑을 코 앞에 두고 감독 데뷔에 성공했다.

그리고 또 다른 동료 한 명의 인생의 난관을 풀어가는 데 나의 많은 시간을 쓴다.

그렇게 사는 게 더 나답다는 생각은 든다. 나는 앞에 서는 게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다. 죽을 때까지도,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다.

그리하여 정말 덤으로, 딱 우리 집 생활비만 나오면 된다는 마음으로 책도 쓴다. 잘 팔리면 고맙지만, 아니라도 큰 문제는 없다. 그저, 내가 나중에 돌아봐서, 이런 책을 미쳤다고 썼냐, 그런 자책만 들지 않으면 된다.

그래도 영 익숙해지지 않는 것은, 무시당하는 것이다. 인간적으로, 잘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런 정도는 충분히 못 들은 척하고, 무시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데도, 막상 그게 잘 되지는 않는다.

그거만 되면, 나도 해탈의 경지에 들 것 같다. 그러나 아직은 잘 안 된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나도 잠시 생각해봤다. 아직은 내려놓을 게 더 많은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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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영하인데, 집에만 있기가 그래서 둘째랑 학교 운동장에 왔다. 큰 애는 집에서 낮잠 자고. 콧물이 많이 나서, 항생제 먹기 시작했다. 오는 길에 착한 가게 들러서 안 보는 애들 책이랑 작아져서 못 입는 옷도 주고. 지난 가을에 축구공이랑 농구공 그리고 가방을 사서, 그야말로 출동용 장비를 갖추었다.

사는 게 뭔가 싶다. 애들 보고, 틈틈이 운동이나 하고. 겨울도 이제 거의 막바지다. 춥기는 한데, 바람이 별로 없어서, 둘째는 신나게 뛰어놀았다. 많이 아팠던 애라서 그런지, 운동 많이 해야 한다는 말을 잘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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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 글을 쓰기로 했다, 3주 간격으로. 며칠 생각을 해봤는데, 이번 칸은 "뭘 하자"는 얘기를 축으로 끌고 가보기로. 뭘 하지 말자는 얘기는, 진짜 많이 했었다.

예전 한겨레 타블로이드판에 쓰던 칼럼란 제목이 '명랑 국토부'였다. 타블로이드 없어지면서 그 지면도 사라졌는데, 아마 마지막 글이 건설교통부 이름을 국토부로 바꾸자는 거였던 것 같다.

실제로 명박이 그 글을 받았다. '명랑'은 떼고, 건설부가 국토부가 되었다. 외교부에서 통상기능을 떼서 산업 쪽에다 붙이자고 했었는데, 그건 박근혜가 받았다. 산자부라고 부르던 걸, 그냥 산업부라고 부르고, 좀 더 산업정책 쪽을 강화시키자.. 그것도 박근혜가 받았다.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뭘 하자는 얘기를 하다보면, 가끔은 현실이 그렇게 되기는 한다. 물론 오이에 줄 굿는다고 수박이 되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된 건.. 이제 문재인 정부가 반환점을 돌게 된다. 이미 반환점을 향해 가는 분위기이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정부가, 보통 반환점을 돌면 대통령 지지율이 확 빠진다. 그리고 대선 분위기가 슬슬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 때쯤 되면 친인척 비리 같은 게 나오고, 청와대 힘도 빠진다. 슬슬 레임덕 분위기로 들어가기 시작하는..

신규 의제 같은 것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그냥 수렁으로 처박히는 일만 남게 되는.

이게 문재인 정부가 앞으로 1년 동안 맞게 될 일의 역사다. 늘 그랬다. 어디로 갈지, 아직은 모른다.

그냥 3주에 한 번, 작은 공약 하나씩 만든다는 생각으로, 뭘 해보자, 이런 얘기들을 좀 써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내가 생각하는 경제의 큰 기조는 <생태요괴전> 할 때 크게 한 번 정리한 적이 있었다..

넓게 생각하고, 좁게 살기.

내가 본 수많은 한국의 돈만 많은 양아치들은, 넓게 살면서 생각은 정말들 좁게 한다. 지뿐이 몰라..

시멘트와 물질 그리고 에너지에 들어가는 돈을 줄이고,

지식과 문화에 더 많은 돈을 집어넣는.

문화경제학 정리하면서 가졌던 입장이다.

여기에 최근 하나 추가된 것은, 10대에 돈을 넣어라..

부산에서 수소차에 3,500만원인가 준다는 거 보자마자 든 생각이.. 애 태어날 때 그렇게 줘봐라.

시멘트와 자동차에 돈 퍼주는 건 하나도 안 아깝다고 하면서, 사람한테 돈 쓸려면 손이 바들바들..

아직은 변한 게 별로 없다.

변화도, 많이 얘기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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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학습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진지하게 해본다.

예전에 수학경시대회라는 게 있었다. 학교에서 문과, 이과 한 명씩 대회에 나갔다. 절차상, 대회에 나갈 사람은 그냥 학교에서 시험 봐서 뽑았다. 3년 내내 이 대회에 나갔었다. 수학을 늘 1등했던 건 아닌데, 이상하게 그 선발대회에서만은 문제를 잘 풀었다.

고3 때, 수학 선생님이 나를 아주 얄밉게 생각했다. 맨날 팽팽 놀다가, 경시대회 때만 되면 시험을 잘 보는.. "니가 안 되기를 바랬다." 대놓고 뭐라고 그랬다.

그 대회에 같이 나가던 이과 쪽 친구가 있었다. 최근에는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인생의 절친 정도 된다. 공부를 기깔나게 잘 했다. 서울대 물리학과 가서, 그렇게 박사도 되었다. 그런데 사는 게 좀 버거웠나 보다. 다시 학교 가서 한의사 되어서 한약방 냈다. 공부가 다가 아니다..

하여간 그렇게 3년간 수학 경시대회를 나갔는데.. 이게 기억에 남는 건, 그 때 나왔던 문제가 너무너무 어려워서 그렇다. 그런 경시 대회와는 좀 다른 게 백일장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백일장 나간 이후로, 이것도 고3까지 매회 대회에 나갔다. 6학년 때 전국 대회에서 장원을 한 적이 있었다. 중학교 때는 반항의 시대라서, 학교에서 대회를 내보내 주지를 않았다. 고등학교 때는 다시 나가게 되었다. 상은 탈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었다. 고3 때인가, 논술대회 같은 데에서 상 탄 게 아마 마지막 상이었던 것 같다.

백일장은 놀러가는 날이다. 대충 후다닥 쓰고 놀았다. 정성 들여 쓴다고 상 타는 것도 아니다. 내 기억으로는, 순전히 그 날의 운이다. 제일 큰 상 탈 때, 김포 어딘가에 있는 학교에서 시합을 했던 기억이다. 방학 때였는데, 책상 서랍 안에 누군가 두고 간 삼양라면이 있었다. 이게 왠 떡이냐, 요즘 식으로 하면 뿌셔뿌셔, 생라면 먹는 게 그렇게 재밌었다. 서랍 속에서 라면 뽀셔 먹으면서 쓰는 둥 마는 둥.. 쓰는 거에는 별로 관심도 없었다. 납북된, 한 번도 보지 못한 큰외삼촌과 이제는 돌아가신 할머니 그리고 어머니 고2 때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얘기를 썼다. 사실 라면 먹느라 쓰는 데 별로 관심도 없었다. 그게 아마 내가 탄 백일장 상 중에서는 제일 큰 상이었던 것 같다.

수학 경시대회는 좀 달랐다. 우와.. 한 문제도 제대로 못 풀겠다. 이게, 무슨 미분이나 적분 아니면 확률이나 통계 같은 게 나와서 어려운 게 아니다. 기하학 문제들이 특히 어려웠는데, 더럽게 꼬아놓고, 합쳐놓아서 일반적인 방식으로 하면 절대로 해가 나오지가 않았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게 말로만 듣던 동경대 본고사 문제, 그런 데서 가지고 온 거 아니겠냐.. 진짜로 듣도보도 못한 어려운 문제였다. 몇 문제 못 풀었다.

그 시절에 전국이 같이 보던 평가시험 같은 게 있었다. 수학은 다 맞거나, 하나 틀리거나 그랬다. 수학 점수만으로는 전국 20등 밑으로 내려간 적이 거의 없던..

그래도 거의 풀기가 어려운.. 어렵다기 보다는 더러운 문제였다. 수학 실력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도대체 어떤 놈이 이런 문제를 풀고, 입상도 하는 거야?

나중에 들어보니까, 우리만 그냥 대회에 나갔지, 상 타는 학교들은 미리 훈련도 좀 하고 그런다고..

우와.. 사실 약간 충격 받았다. 그래서 기하학 공부를 따로 좀 했다. 물론 그래도 경시대회에서 성적이 올라가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 때 기하학을 좀 체계적으로 공부를 해서, 나중에 대학 가서 엄청난 도움을 받기는 했다. 경제학과 수학 정도야.. 문과쟁이 수학이 더 거기서 거기지, 뭐..

요즘 대학이 이런 대회에 나가서 수상한 걸로 평가가 된다고 하는데..

나는 반대다. 그런 대회용 문제 푸는 게, 사실 진정한 의미의 '실력'과는 별 상관도 없다. 그리고 그걸 무슨 사교육에서 처리하는 것도 더 이상하다.

아마 요즘처럼 대회 나가고 그런 게 대학에 반영된다고 했으면, 나 같은 경우는 대회 근처에도 못 가봤을 것 같다. 수학을 공부하는 것과 시합용 문제 푸는 게 좀 다르다. 기하학 증명 아무리 잘 이해해도, 더럽게 꼬아놓은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그건, 풀어보는 수밖에 없다. 주어진 시간 안에 풀려면, 표준 해를 먼저 보는 수밖에 없다.

그런 희한한 기하학 문제 몇 개 푼다고 해도, 선형대수 앞에 서면 말짱 다 꽝이다. 집합론, 토폴로지 등 그 뒤에 나오는 과정들은 기본이 그야말로 전부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고등학교까지 죽어라고 푼 문제들, 대학 가면 아무 쓸 데도 없다.

된장. 대학교 가서 들었던 첫 번째 경제학 수업이 나중에 국토부 장관한 서승환 선생 수업이었다. 그 때 편미분을 처음 보았다. 환장하겠네, 저건 또 뭐여? 웅성웅성.

학생들이 헤매니까 딱 편미분 정의 3줄 써주고, 이제 알았죠? 그냥 진도 나갔다. 그 양반 수업 참 까칠하게 하는. 경제학이 뭐고, 뭐하는 데 쓰고.. 이번 학기 수업은.. 이딴 거 없다. 시작하자마자 변수 몇 개 정의하고, 바로 문제 풀기 시작하던. (그 땐 몰랐는데, 운동권 될 얘들이, 경제는 뭐고, 국가는 뭐고, 정의는 뭐고, 이딴 말 하지 못하도록 많은 수업이 그냥 문제부터 풀고 시작하던..)

선행학습이 의미가 있게 대학입시가 설계되는 것, 그건 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배워두면 그래도 나중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시합용 문제풀이, 일생에 아무 도움 안 된다. 수학도 마찬가지다.

내 주변에 인생의 깊은 나락에서 어떻게든 나오려고 헤매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아줌마들이 세상 살기, 진짜 너무 힘들구나.. 그것도 순수학문을 할수록 더욱 더. 이거 더럽네, 진짜.. 그 중 두 명이 수학박사다. 둘 다 수학 겁나게 잘 한다. 물경, 미국의 엄청 좋은 학교에서 수학 박사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그런 게 아무 도움 안 된다. 아줌마면..

고등학교 때에는 인생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런 걸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삶이 설계될 수 있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든다.

필요하다면, 경시대회를 싹 다 없애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런 게 인생에 도움을 주나? 아무 도움 안 준다.

삶이란 스스로 살아가는 것이다. 책도 좀 보고, 영화도 좀 보고, 여행도 좀 다니고, 단체활동도 좀 하고. 그런 게 가능하도록 고등학생의 삶이 디자인되어야 한다.

그 사람의 삶을 놓고 교육과정이나 평가과정이 디자인되어야지, 하던 게 습관이라고 그냥 하는 거, 21세기적이지 않다.

(다음 주에 조희연 선생이랑 식사하기로 약속이 잡혔다. 뭔 얘기를 해줘야 하나, 잠시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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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실방에 형광등이 한 개 나갔다. 별 할 일도 없고, 이번 기회에 그냥 led로 교체할까 싶어서.. 큰 애 데리고 좀 큰 슈퍼 갔다왔다. 갔다오니까, 둘째가 울고 있다. "아빠, 할 말이 있어요." "뭔데?" "저도 가고 싶은데, 왜 저는 안 데리고 가셨어요?" "응, 아빠 따라 슈퍼 갈 사람 했는데, 둘째는 손 안 들었쟎아."

둘째가 대성 통곡을 하면서 방을 나갔다. 여섯 살 되니까, 말 엄청 잘 한다. 저녁 먹고 놀이터 산책 가기로 했다. 겨우 울음을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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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먹고 애들 데리고 한 시간 정도 산책하고 왔다. 작은 놀이터에 가서 잠깐 뛰어놀기도 하고. 큰 애는 벌써 커서, 단순 '나잡아 봐라'는 재미 없어 하고, 미끄럼틀에서 공성전을 해야 한다. 미끄럼틀, 안 올라가고 싶은데, 올라가서 잡고, 도망가고, 이 정도는 해야 놀이 축에라도 끼는. 좀 더 크면 미끄럼틀 공성전에서 투석전 하게 생겼다..

이번 연휴의 목적은 아내의 휴식과 일. 컨셉 명확하다. 아내는 지쳤다. 시장 보기나 애들과 산책은 내가 하고, 아내는 푹푹 잔다. 그리고 하루에 몇 시간씩 애들 데리고 나가서 아내가 밀린 일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좀. 그러다 내가 지쳐서 어제는 아홉 시도 되기 전에 뻗어서 잤다. 작전과 달리, 나만 푹 쉰.

나는 예전에 비하면 하는 일이 별로 없다. 물론 일 자체가 없지는 않은데, 속도와 강도도 몇 년 전에 비하면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낮추었다.

옆에서 누가 보면, 노는 건지, 하는 건지. 그럴 것 같다.

직장 민주주의 책을 벌써 손 털어버렸어야 하는데, 강연 등 일부 일정을 아직 잡고 있어서, 거기서 차질이 좀 생겼다. 할 수 없다. 그런 건 그냥 양심 가는대로.

얼마 전에 시사인 편집국장 했던 김은남 기자가 하루에 몇 시간 글을 쓰느냐고 물었다. 2시간요..

김은남 기자가 취재한 많은 작가들은 여덟 시간 한다고 한다. 뭐, 그럴 수는 있을 것이다.

책의 원고를 쓰는데 내가 쓰는 시간은 매일 2시간을 목표로 한다. 3시간 쓰는 날도 있고, 심지어 4시간을 쓰는 날도 있다. 그렇지만 꽝인 날도 있다. 잠시 책상에 앉지도 못하는 날도 있다. 그래서 평균 내면 2시간.

그 이상 하면 좋을까? 생각 하나마나다. 애 보면서 2시간 낼 수 있으면 최고치다.

그나마 요즘은 다시 바빠져서 블로그도 거의 포기, 책 서문 읽기도, 그렇게 시간을 빼기가 어려워서 당분간 개점 휴업. 한 책 끝내고 다른 책 시작하기 전에 잠시 여유를 낸 건데, 당분간은 신경을 분산시키기가 어렵다.

지나보니까.. 정열적 활동, 남들이 나를 그렇게 부르던 시기가, 그렇게 좋았던 것은 아니다. 뭘 잘 몰라서, 쓸 데 없는 짓을 많이 했었다.

우쭈쭈쭈, 남들이 꼭 필요하다고 하면, 진짜 몸이 부숴지도록 도와지기도 하고.

요즘은 좀 약아졌다. 누가 뭐라고 말을 해도, 단가표부터 물어본다. 단가 안 맞으면 안 한다.

물론 시민단체 활동을 조금씩 돕거나 그런 건 지금도 한다. 그런 데는 단가고 뭐고 없다. 시민운동에 단가 같은 게 어딨냐. 하면 하고, 말면 마는 거지.

나머지는 그냥 단가 맞춰보고, 영 아닌 건, 서로 마음 불편하지 않게 아예 시작하지 않는다.

봉사하는 마음으로..

그 마음은 좋지만, 애들 보는 처지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움직이기는 쉽지 않다.

당분간, 봉사는 애들한테 하고, 아내한테 하려고 한다.

그렇게 해서 겨우 하루에 2시간을 확보하는 거다.

차 한 잔 마실 시간도 없냐고 뭐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하기는 하지만, 차 한 잔 마시기 위해서 앞뒤로 준비하는 시간까지 치면 4시간이 사라진다. 그렇게 해서는 2시간도 안 나온다.

내년은 모르겠지만, 올해는 꼭 매일 2시간을 마련하려고 한다. 누군가에게는 '에게 2시간'이겠지만, 그것도 내게는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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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은 빕스에서 먹기로. 내가 학위 받은 이후로, 집안의 제사나 차례나, 하여간 그런 거 다 없앴다. 다른 집에 가서 제사 지내고 오는 것도 없앴고, 원래도 안 하던 명절 관련된 것도 다 없앴다. 집안 사정도 좀 있었고. 그 대신 그냥 식당 가서 밥 먹는 걸로. 전에는 중국집 중에는 한국 명절하고 상관없는 식당들이 좀 있었다. 그래서 우리 집은 명절이, 그냥 아버지가 일년에 몇 번 밥 사는 날이 되었다.

며느리들은 이런 명절도 별로 안 좋아하지만, 그래도 식당 고르는 재미로. 한동안 북경 직영점인 중국집에서 북경오리 먹었었는데, 그것도 몇 번 연거푸 했더니 질리나보다. 예전에 가던 이탈리아 부페가 인기였었는데, 문을 닫았다. 오늘은 빕스 가기로..

10년쯤 되었나? 빕스 가서 스테이크 시켰는데, 냉동 고기가 덜 익어서 속에는 그냥 얼어 있었다. 얼었다고 좀 더 구워달라고 했더니, 전자레인지로 직행. 시껍한 이후로 안 갔었는데..

내가 집안의 장손이다. 온갖 복잡한 사연들이 전부 나한테 걸려 있다. 나는 모른다.. 그냥 내 밑으로만 지킨다, 그렇게 많은 것들을 정지키셨다. 어머니는 그래도 당신 돌아가시고 나면 누군가 제사를 지냈으면 하는 생각이 있으시다. 어머니랑 아버지는 그래도 화장하지 않고, 어딘가 묘지가 있기를 바라신다. 그렇게 해드린다고 했고, 조촐하게 제사는 내가 따로 모신다고 약속했다. 그 대신 나머지는 다 없앴다. 우리 집에 밥 할 사람도 없고, 밥 할 이유도 없고. 그렇다고 다른 친척 집에서 하는 차례에 어머니, 아버지, 다 따로 가는 것도 이상하고.

그래서 오늘은 다 모여서 빕스에서 점심 먹는 날이 되었다.

지난 신년에는 그냥 우리 집에서 밥 해준다고 집에서 먹자고 했는데, 어머니가 질색을 하셨다. 그 밥을 다 누가 하냐.. 하긴. 손님 오는 날에는 시장 보고 요리하는 건 보통은 내가 한다. 아내 손님이 와도 내가 한다. 아내 손님일수록, 더 좋은 재료를 사고, 더 맛있게 한다. 재료 준비해놓고 나가는 게, 나도 좀 쉬자.. 손님 많이 오고, 술상 준비하는 건, 아직은 아내보다 내가 더 익숙하다.

나중에 딱, 아버지, 어머니, 두 양반 제사는 내가 준비하기로 예전에 약속을 했다. 그게 중요하다는 데야, 뭐. 살아 계시는 동안은, 그냥 식당에서 밥 먹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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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 하는 게 거의 없는데, 그 중에 제일 못 하는 건 사람 이름이랑 전화번호 외우는 거다. 겁나게 험블하다. 유일하게 잘 하는 게 있다면, 순간 집중력.. 준비동작이나 예열 거의 필요없이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다. 20분~30분 남아도 그 시간에 뭘 할 수 있는. 그리고 그 집중력을 겁나게 오랜 시간 유지할 수 있다. 몇 시간이고 집중할 수 있는데.. 다만 혼자 있을 때에만. 회의하면서는 집중력 유지가 안 된다. 뻘소리 겁나게 하는 사람 있으면 팍 열받기 시작해서, 도망갈 생각만 하기 시작한다.

기계로 치면 기동시간이 무지하게 짧다. 요즘은 LNG 발전기들도 복합화력으로 많이 바뀌면서 기동시간들이 길어지기는 했지만.. LNG 발전기를 그래서 내가 더 좋아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의사결정이 내려지면 30분 내에 기동할 수 있는 발전기, 그래서 그게 그렇게 좋았던 건지도 모른다.

요즘이랑 비교하면 90년대나 2000년대 초반은 진짜 낭만의 시대였던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총체적 부패의 시대. 2000년대 초반, 분당에 있는 분당화력, 가스발전소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방문 기념으로 은수저 셋트를 줬다. 요즘 같으면 택도 없는 얘기다. 가장 최근에 간 건 목동에 있는 지역난방공사의 복합화력 시설. 태양광으로 전기를 모으는 비사용 미니 조명기. 굽신굽신하며서 애들이 둘이라고 하나만 더 달라고. 사장이 절친인데, 어딨는지 모른다고 뚝 잡아뗀다. 집에서 전쟁 나는 거 보고 싶지 않으면 하나만 더 내놓으라고, 결국 2개 받아왔다.

애들 보면서 일을 할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하기 어렵다. 그냥 최소만 한다. 기동하고 아이들링 타임 가지고 있는 거랑 비슷하다. 그래도 그 아이들링 타임에 뭔가 쓰고, 뭔가 정리하고, 계산도 하고, 그렇게 지난 몇 년을 살았다.

몇 년 전에는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한전 사장은 한 번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이젠 그것도 귀찮다. mb 이래로, 멀쩡한 한전 사장이 오는 걸 본 적이 없다. 쌍수가 대표적이었지만, 나머지 놈들도 크게 다르다고 할 게 없는.

정권이 바뀌고 세상이 좋아지는 거, 그걸 내가 뭘로 비교하겠나? 한전 사장이 멀쩡한 놈이 되느냐, 그런 걸로 보지 않겠나? 황당한 넘이 그 자리에 가서, 되도 않는 짓 하다가 시간 까먹는 거, 그 역사는 변하지 않는다.

산업부 장관도 마찬가지다. 한동안 모피아들이 막 밀고 들어오던 시기가 있었다. 윤진식 같은 애들..

역설적이지만, 윤진식이 그나마 자기 자리 좀 오래 붙잡고 있었으면 나도 그 시절에 그냥 교수했다. 된장.. 삽질하고, 짤리고, 내가 기다리던 학교 총장으로 쫓겨왔다. 그래도 인간이 가오가 있지, 어떻게 윤진식 같은 쪼다 밑에서 일을 하냐? 나도 같이 관뒀다.

그래도 그렇게 모피아들 내려오던 시절이 상대적으로 좀 나았던 것 같다. 모피아는 나쁜 놈이기는 한데, 바보는 아니다. 그 뒤로는 순실이 영향력으로 움직였다. 나쁜 놈도 아니고, 그냥 순수 바보들이 왔다. 그리고는? 우와.. 이게 뭐냐? 촛불이 기대한 산업이란..

나쁜 넘 축에도 끼지 못하는 멍청한 넘들이, 언넘은 줄 잘 서서, 언넘은 어부지리로..

그 꼴을 보면서도 내가 잘 참은 건, 애들 보고 있느라고. 아마 현장에 그냥 있었으면, 벌써 사직서 내고 그만뒀을 것 같다는 생각을.

민요에 이런 노래가 있다.

짜증은 내어서 무엇하랴, 성화는 부려서 무엇하랴, 니나노. 릴리리야 릴리리아 니나노.

진짜 지난 2년, 니나노의 시절이다, 현장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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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 카봇 극장판 표 세 장 예매했다. 카봇, 하나도 재미 없는데. 이제 여섯 살 된 둘째는 극장에 처음이다. 점박이 2 때는 무섭다고 집에 있었는데, 이번에는 가본댄다. 그래도 이제 시간이 흘러서 애 둘 다 데리고 극장에를 다 간다.

극장에 가는 게, 그래도 최소한의 문화적 습관이기도 한. 파리 살 때, 듣도 보도 못한 영화들 극장에서 보는 게 거의 유일한 문화생활이었다. 구로자와 페스티발, 베르그만 페스티발 때 진짜 싼 돈으로 영화사 책에서나 보던 영화들을 몇 편씩 보던 것도 기억에 오래 남고.

그렇게 없던 살림인데도, 작은 tv와 비디오 플레이어는 가지고 있었다. 한 때 돈이 너무 없어서 비디오 테이프 팔 때, 다른 건 별로 아쉽지 않았는데, 카를로스 산타나 뮤직 비디오는 진짜로 눈물이 찔끔.

그 뒤로는 조금씩 알바를 하면서, 그렇게까지 돈이 없는 상황에 몰리지는 않았다.

내 식의 영화 보는 방식이 그 때 형성이 되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도저히 볼 방법이 없는 프랑스식 b급 코미디에 대한 정서도 그 때 좀 형성이 된 것 같다. 아마 우리나라에서는 유치하기 짝이 없다고 할 것 같은데, 로컬의 스탠딩 코미디 전통과 정서 같은 것들이 들어가 있기도 하다. 편견 덩어리, 대놓고 편견을 얘기하면서 그 안에서 펴견을 뒤틀어 때리는..

<택시 5>를 얼마 전에 봤는데, 나는 재밌게 봤다. 쟤들, 아직도 저렇게 노는구나. 마르세이유, 가본 적도 없고, 가볼 생각도 없는 도시였는데, <택시 5>를 보고 가보고 싶어졌다. 마르세이유는, 그 시절 내가 응원하는 축구팀이 올림픽 마르세이유라서.. 그 외에는 별 상관도 없는데, <택시 5>가 가보고 싶다는 마음을 들게 만들었다.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프랑스 영화는 엄청 심각하거나, 엄청 예술적이거나, 고운 영화들이 들어온다. 그러나 프랑스 영화의 본류는 필립 누아레 - 시네마 파라디소의 그 할아버지 - 또래의 할배들이 나오는 치고 받고 웃기고, 그런 코미디 영화들. 어처구니 없는 플롯이지만, 그런 게 보고 있으면 은근히 웃기다. 나는 그 정서가 좋았다.

한국에는 좌파를 대표하는 지성파 예술가로 이브 몽땅이 소개된다. 뭐, 말년에 그렇기는 하다. 나도 좋아한다. 그 젊은 시절의 이브 몽땅이 카바레에서 춤추고 노래하던 필름들을 보면, 일단 웃기고, 명랑 충만, 밝게 춤추고, 그리고 틈만 나면 웃기기를 시도하고.

한국에 단편적으로 소개된 프랑스 얘기들은 사실상 개뻥이라고 할 정도로.. 실제 모습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가끔.

뉴스 시간에 대통령은 당연히 나오고, 그날의 대박 사건을 친 사람들이 줄줄이 인형극으로 나와서, 웃기지 않으면 죽는다, 그런 사명감으로.. 인형극 코미디를 매일 틀어주는 나라다. 기뇰.

심각은 잠깐, 웃기고 또 웃기려는 게 어쩌면 프랑스 영화의 전통인지도 모른다. <레옹>의 킬러 정도로만 사람들이 기억하는 장 르노도 코미디에서 진짜 위력을 보여준다. <비지터> 시리즈가 그랬다. 고아원의 아이들을 위해서 레슬러로 돈벌러 나선 신부님 이야기, 그게 내가 진짜 장 르노를 좋아하게 된 영화였던.. 겁나 웃긴다.

한국은 너무 근엄하고, 인물에 대한 찬양도 너무 통속적으로 한다. 그러니 나경원처럼 '유머리스'한 인간이 야당 대표하는 거 아닌가 싶은. 유머러스는 너무 드물고, 유머리스들로 가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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