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에 대한 연구가 사회과학으로서 한국에 돌아온 내가 처음 해보고 싶었던 연구였다. 뭐, 기회가 잘 오지는 않았는데, 나름 혼자서 이것저것 관찰만 했다. 그 때 봤던 10대들이 20대가 되어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88만원 세대’가 되었다.
그와는 별도로, 농업경제학이라는 책이 진짜 데뷔 초창기부터 해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저렇게 밀려서 지금까지. 순서로는 ‘아픈 아이들의 세대’가 데뷔작이 되었지만, 사실 먼저 쓴 것은 ‘음식국부론’이었다. 농업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편집 과정에서 집회하는 얘기와 농업 관련된 얘기들이 대거 짤린. 그 때는 내가 힘이 없었다. 내주는 것만 해도 고마운..
나중에 csa 관련된 활동을 하면서, 이건 책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김희진하고 농업경제학 책 계약을 했다. 시간이 없어서 그렇지, 이건 적당한 시기에 마무리할 수 있다는 생각이.
올해 여름 고베에 갔다왔다. 그 유명한 고베 생협과 csa를 연결시켜주는 총본진 그리고 마침 바로 그 대표를 만날 수 있었다. 아, 여기였구나, 전세계적인 그 흐름의 출발지가. 시간이 많지 않아서 오래 보지는 못하고, 그야말로 느낌만 보고 왔다.
이 두 개의 엇갈린 길이 2019년 나의 작업에서 딱 만나게 되었다. 농업경제학은 원래는 여성들과 아줌마들의 얘기처럼 하는 게 처음 생각이었는데, 그것보다 더 시급한 게 중3을 축으로 하는 남학생들. 그래서 본격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누구에게 이 얘기를 해줄 것인가, 크게 한 번 급선회를 했다..
영국 중산층의 식습관과 도시 연구, 이런 것들이 선행연구였다. 그리고 결국 제이미 올리버가 등장했다. 그래서 바꾼 게, 중학생들의 교과목.. 불량 청소년들에 대한 구호사업처럼 시작한 제이미 올리버의 일이 결국 공교육 전체로 퍼져나간, 그런 사회적 개혁 과정 같은 게 되었다. 그걸로 훈장도 타고, 세계적 스타가 되고..
그렇게 제일 시급한 것 그러나 역시 변화를 위해서 장기적인 것, 그걸 농업경제학에 담기로 마음을 먹었다. 제이미 올리버가 했던 일을 왜 우리는 못해?
10대에 대한 연구는 보통 인류학에서 많이 하고, 사회학에서도 한다. 그런 연구가 기반이 되어서 많은 청소년 관련 정책이 생겨나고 돈이 들어간다. 우리나라에서는 그게 좀 어렵다.
현장에서 보면 주로 정부의 돈이 많이 들어오는 것이 다문화 관련 연구 그리고 젠더 연구, 이런 쪽인 것 같다. 10대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별 거 없다. 그 빈 공간을 그냥 대치동으로 상징되는 사교육이 채운다.
내년에는 농업과 젠더, 두 축으로 책을 쓸 거다. 이게 딱 만나는 지점도 사실 중3 남학생들이다. 여기가 분기점이다. 중3 남학생들이 여성혐오가 가장 강하다. 막상 만나보면 말도 안 통할 정도다. 너는 남자인데, 왜 여자 응원해? 이런, 얘들 왜 이래.. 이런 변화를 최소한 6~7년 전부터는 목격한 것 같다. 대안학교라고 해서 좀 다를까? 내가 본 바로는 별로 다르지 않다. 뭐가 변화가 생겼다는 것은 알았는데, 그게 뭔지,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88만원 세대’를 쓸 때 한국인의 최대 분기점이 대학입학과 대학졸업, 그 시절이라고 생각했다. 2006년, 사실 그 때는 그게 맞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좀 아닌 것 같다.
국제중 등 분기점을 초등학교로 내리려는 명박네들의 가열찬 시도가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내려가지는 않았다. 대체적으로 중3에서 지금은 그 분기점이 갈리는 것 같다.
중3이면 대충 안다. 자기가 특목고를 가게 될 것인지, 아니면 그냥그냥 살아가게 될지. 그리고 그 미래에 대해서도 어렴풋이 감을 잡는 것 같다. 가끔 동료나 친구들의 고등학교 딸하고 식사를 하는 일이 생기게 된다. 대부분 특목고 그것도 기숙학교에 다닌다. 엄청 부자집도 아니지만, 그렇다. 그렇다면 일반고는? 일부러 찾아봐야 만나게 된다.
자기가 특목고를 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중3 남학생들이 자신이 잘 대접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될까? 애정을 충분히 받게 될까? 그 속에서 다양한 경로로 혐오가 생겨나는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물론 파편적으로 많이 지적된 얘기지만, 이걸 농업 얘기를 통해서 재구성을 해보려고 하는 게 이번 작업의 목표다. 임시로 ‘정크푸드 세대’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건, 군대 얘기다. 한동안 군대의 급식 개선과 관련해서 글도 많이 썼지만 조언도 많이 주었다. 군대 급식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생각도 해보지 못한 장애를 만났다. 급식의 질은 더 좋아지는데, 점점 더 군인들이 급식을 먹지 않으려고 한다는 거다. 그냥 매점에서 사먹는 게 훨씬 더 맛있다는.. 어쩌지, 어쩌지, 발만 동동.
이게 시작된 게 군대 이전의 일이다.
여러가지 의미로 한국 사회의 변곡점이 중3 남학생에게서 걸린다. 게임만 하는 10대와 로얄젤리 먹고 여왕벌로 사육되는 것 같은 로얄코스 사이의 길이 거기서 갈린다. 그게 굳건할수록, 망조든 사회인데, 뭐 차곡차곡 한국은 그 망조든 사회로 가고 있다. 이제 몇 년 후면 우리 애들들도 거기로 들어가게 된다.
‘뒤에서 5등’ 등 딱 이 또래에 들에 관한 개념들을 몇 번 만들고 글도 쓴 적이 있기는 하다. 반응은 영 시원챦았다. 그래서 그냥 ‘정크푸드 세대’로 가려고 한다. 내 데뷔작이 ‘아픈 아이들의 세대’였다. 미세먼지 문제를 그 때 처음 다루었다. 그 때 내가 보았던 그 아이들이 이제 자라서 딱 ‘정크푸드 세대’ 나이가 된 것이다. 그런 큰 흐름으로 보면 오히려 ‘88만원 세대’가 방계 작업이었고.
하여간 이렇게 기본 가닥을 잡았다.
정크푸드 먹어도 된다. 그러나 정크푸드만 먹는 걸 슬픈 일이고, 정크푸드만 맛있다고 하는 것은 진짜 불행한 일이다. 그런데 이게 한국 청소년들이 걸어가는 길이다. 쯧쯧쯧, 그렇게 할 일은 아니다.
이게 21세기 버전의 격차 사회에 대한 얘기고, 계급사회에 대한 얘기이기도 하다.
난 원래 바닥부터 박박 기는 스타일의 작업을 더 좋아하고 그게 더 익숙하다. 박사과정 때 내가 속했던 연구소가 파리 10대학의 경제인류학 연구소였다. 맑스계열 연구를 하기는 하는데, 위에서 밑으로 내리는 스타일보다는 좀 박박기로, 현실적인 연구를 하려는 학풍이 좀 있었다. 그게 DNA처럼 내 몸에 남았다.
인터뷰도 하고, 현장도 돌아다니고, 핑계 대고 외국도 좀.
중3이나 고1 자녀 있으신 분들, 사례 댓글로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빼곡빼곡, 사례들로 채우는 책을 만들어보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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