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요즘 틈나는 대로 전쟁사를 살펴보는 중이다. 고등학교 때 순전히 재미로 전쟁사를 열심히 보던 시절이 있기는 했는데.. 역사 책에 나오는 정도 말고 따로 더 전쟁사에 대해서 자세하게 본 적이 없었다. 평화 경제학을 준비하는 중이라, 이번에는 전쟁사도 좀 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여유 되는 대로 보는 중이다.
잘 모르다가 요번에 인상적으로 보게 된 게 ‘겨울 전쟁’이다. 레닌그라드가 국경에서 너무 가깝다는 생각에, 좀 더 앞 쪽의 영토를 가지고 싶었던 소련이 일방적으로 핀란드에 처들어가면서 벌어진 게 겨울 전쟁이다. 핀란드가 죽기 살기로 싸웠고, 한 줌도 안 되는 핀란드가 나름 잘 버텼다. 녹았던 얼음들이 풀리면서 결국은 소련이 물량공세를 하게 되었다. 핀란드가 결국 국경 부분의 국토를 내주는 강화로 전쟁이 끝이 났다. 예전에 핀란드 친구들도 있었고, 같이 일하던 동료도 있었다. 그래도 전쟁에 대해서 같이 얘기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핀란드에 워크숍 때문에 갈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워낙 해외 출장이 많아서, 핀란드에 가지는 않았다.
전쟁사를 보면, 사람들은 강한 나라를 중심으로 보게 마련이다. 작거나 약한 나라들이 이런 큰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했던 전쟁들 중에는 눈물 나는 애기들이 많은 것 같다. 핀란드의 겨울 전쟁은, 사실 잘 몰랐었다.
길게 나란히 붙어 있는 세 나라,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거치면서 이 세 나라가 지내온 시간도 참 눈물 나는 시간이다. 언제 여건이 되면, 이 세 나라가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고, 스스로 나라가 되는 역사를 살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사의 큰 흐름을 따라 공부하다 보면, 이 세 나라를 모아서 살펴볼 기회는 거의 없다.
2.
이란 파병이 당분간은 제일 큰 핫 이슈가 될 것 같다. 어려운 문제다, 병분도 없고, 실익도 불확실하다. 정치인 이재명에게는 아마 그가 대통령이 된 이후, 최고의 위기가 아닐까 싶다.
노무현 정부 초기에 이라크 파병을 결정한 적이 있었다. 당시 정부 사람들에게 들은 얘기로는, 외환 위기 징조가 있었고, 미국이 한국의 채무를 결정하는 결정적 위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별로 믿지는 않았지만, 하여간 경제 위기를 파병의 이유로 나에게 설명하였다. 뭐, 이면에는 더 깊은 게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때 주로 한겨레 기자들 중심으로 ‘부국강병 정권’이라는 말이 돌았다. 북구이나 실용이나, 같은 의미인데, ‘강병’이 하나 더 붙은 건 이라크 파병을 상징하는 것이다.
호르무즈 해협을 열기 위해서.. 이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국 혼자의 힘으로 열고, 그딴 건 없다.
호르무즈를 통해서 오는 원유를 줄여서 한국 경제를 재설계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지금껏 중동산 저질유를 재가공하는 방식으로 항공유 등 많은 석유 산업이 맞추어져 있었는데, 장기적으로 여기에 대한 구조 조정을 지금은 해야할 때가 아닐까 싶다. 값싼 중동산 원유, 이제 그런 건 없거나 혹은 절반 정도로 줄어들 것이라고 생산 포트폴리오를 조정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중동이 평화로와서 지금까지 호르무즈가 안전했던 것은 아니다. 미국과 유럽의 힘의 밸런스가 이곳을 평화롭게 만들었던 것인데, 이걸 가까운 미래의 일로 보기 어렵다. 트럼프 효과인지, 혹은 미국 경제의 위축 효과인지, 아직은 판단하기 어렵다. 어쨌든 벌어질 일이었고, 그게 지금 벌어진 것일 뿐이라는 게 좀 더 맞지 않나싶다.
한국이 굳이 중동산 원유에 기대어 세계에 항공유를 공급해야 할 일이 있나? 어차피 미국 서부의 항공유는 한국산이 기본인데, 미국은 별로 거기에 대해서 고마워하지도 않고, 의미있게 인정하지도 않는다.
중동산 석유의 가격 경쟁력을 기반으로 재처리해서 만드는 일련의 시설 공정에 대해서 한 번쯤 재검토할 시기가 된 것 같다. 원유 사용을 줄이는 구조 변화를 만들고, 중동 이외의 지역으로 석유 수입원을 다양화하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호르무즈가 열릴지 안 열릴지도 모르는 데다가, 3년 후, 5년 후 혹은 10년 후, 이런 일들은 반복된다.
참고할 일은, 이란전 이후로 도저히 안 넘어갈 것 같은 일본에서 전기차 판매가 급증했다는 사실이다. 220볼트를 쓰는 한국과 달리, 110볼트를 쓰는 일본은 전기차 집밥에서 시설 투자가 더 어렵다는 특이점이 있다. 한국보다는 전기차를 덜 탈 수밖에 없는 특이점이 있다. 석유 가격이 높아지면서, 정책적으로 전기차 보급 정책을 일본이 드디어 쓰기 시작했다.
규모와 구조가 다르니까 기계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한국도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거나 통과 비용이 생겨날 때에 대한 대안을 지금부터 검토해야 할 것 같다. 안전한 호르무즈, 그건 내가 환갑이 될 때까지는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내 생애 내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란이 편안해지고, 좀 더 세계 무역에 긍정적으로 통합되는 순간이 되어야 가능할 일이다.
호르무즈에 대한 기술적이고 경제적인 대안이 만들어진다면, ‘안전한 호르무즈’가 국민 경제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석유 특히 중동산 원유에 대해서 좀 더 근본적으로 고민해 볼 시간이다.
3.
트럼프 당선된 후에 주변 사람들이 물어보면 늘 대답하던 말이 하나 있다. 우리가 미국에서 사지 않으면 안 되는 결정적인 제품은 없다. 상품이든 제품이든, 안 사면 안 되는 결정적인 제품이 미국 경제에 있느냐? 페이스북 등 it에 기반한 미국 경제의 강점들은, 사실 안 쓰면 그만이다. 유럽이 구글 의존도가 90%가 넘지만, 우리는 그렇지도 않다. 이게 트럼프 정책의 결정적 약점이다.
캐나다와의 통상 분규는, 진짜 재밌다. 술과 목재가 앞에 나와 있고, 자가용 비행기가 전면으로 나서게 되었다. 결국 캐나다는 원래도 해야했던 수출 다변화를 이 기회에 추진하게 될 것이다. 미국이 쥐고 있는 결정적 약점이 있느냐? 사실 없다. 술이든 나무든, 다른 나라에 팔면 그만이다. 귀찮을 뿐이다.
미국이 통상에서 쥔 가장 큰 힘은 미국 시장 그 자체다. 이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관세 문제로, 예전보다 다들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게 오래 가면, 결국 미국 시장은 없는 걸로 치는 새로운 변화가 만들어지게 된다. 이 변화를 겪으면서, 다들 피하고자 하는 것은 혼자만 타켓이 되어 시장 지분에 급격한 변화가 만들어지게 되는 독박이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특혜는 바라지도 않고, 독박만 쓰지 않았으면.. 이게 일본 등 대부분의 나라의 통상 전략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가 이란 파병을 안 하면, 미국 시장에서 전면 철수하고, 다른 나라에 비해서 독박을 쓰게 되느냐? 이미 우리가 주기로 하고, 얻어낸 것들이 있다. 무역은 상호주의라서, 한 요소만 가지고 일방적으로 독박을 쓰게 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특히 트럼프의 분노를 사면? 한국 시장 규모가 워낙 크고, 우리도 사주는 것들이 있어서, 그렇게 단순하게만 진행되지는 않는다. 반도체를 비롯해서 절대 경쟁력과 비슷한 지위를 갖게 된 산업들도 몇 가지 있다.
우리나라도 장기적으로는 미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어야 하는 무역 과제를 가지고 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트럼프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이란전이 앞으로 10년은 간다고 생각해보자. 10년이면 호르무즈 원유에 대한 의존도를 국민경제적 규모에서나 산업적 관점에서나 바꿀만한 충분한 시간이다.
이란 파병은 좀 더 면밀하게 산업 구조의 변화와 미래 경제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검토되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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