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경제학에서 존 스튜어트 밀이 얘기한 방직공장에서 소녀들의 노동 얘기를 다루다. 예전에 삽화를 본 기억이 얼핏 나서, 찾아봤는데, 삽화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고. 1910년 루이스 하인이라는 사진작가의 12세 방적공 소녀에 대한 사진을 찾았다. 이 시기에 유사한 유형의 사진이 몇 장 더 남아있다. 

사실 충격적이다. 초등학생 나이의 소녀들이 유럽에서 열악한 공장 작업에 투입되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막상 사진으로 보니까 느낌이 전혀 다르다. 존 스튜어트 밀은 이런 현상에 대해서 엄청나게 분노했었다. 비슷한 시기의 경제학자들 책을 엄청 읽었는데, 소녀 노동과 건강에 대해서 분석한 것은 존 스튜어트 밀밖에 없었다. 

이런 얘기들을 한동안 더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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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에 야옹구는 식구들하고 인사를 했다. 몸을 움직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발짓을 하면서 반가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둘째는 많이 울었다. 

새벽에 마지막 숨을 쉬었고, 조금 전에 장례식장으로 보냈다. 화장을 하기로 했는데, 구체적인 방식은 좀 더 의논을 하기로 했다. 아내는 운동하러, 둘째는 카페에서 책 본다고, 둘째는 내일 있을 배트민턴 시합 준비하러 친구들과 코트에 갔다. 다들 내 보내고, 나 혼자 처리했다. 

18년을 살았던 고양이를 보내는 길이 그렇게 답답하지는 않았다. 이전에 살던 집 마당이에서 야옹구 이후로 열 마리가 넘는 고양이를 돌보게 되었고, 한 때 집이 고양이로 넘쳐났다, 그 시절의 얘기를 담은 책이 <아날로그 사랑법>이었다. 책은 그닥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나는 두 아들의 아빠가 되었다. 결혼하고 9년만에 아이가 태어났다. 야옹구와 살면서, 부모가 되는 것에 대해서 많이 배웠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마지막 날, 모든 힘을 쥐어짜, 식탁 밑에, 다용도실에, 안방 앞에, 그렇게 자주 놀던 곳에 일일이 갔다. 잠시 후에 숨을 거두게 될 것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부산하게 평소 놀았던 곳을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그야말로 명랑 그 자체였다. 나도 저렇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궁상은 떨어 무엇하리.

최근에 참 많은 사람을 보냈다. 슬프지 않은 죽음이 있겠느냐만, 정말로 평생을 같이 할 것 같은 친구 같은 사람이 몇 주 전에 떠나고 나서, 아직도 그가 없는 삶이 익숙치 않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이 난다. 

고양이가 떠난 뒤, 모래통 같은 것들을 치우고 정리를 해야하는데, 그건 오늘은 못할 것 같다. 고야이 모래통에 가려서 12인치 스피커를 나중에 사려고 미루어두고 있었다.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스피커 주문을 할까 싶었는데. 그건 성숙한 사람이 할 일은 아닐 것 같아서, 그것도 몇 달 뒤로 미루었다. 이런 날은 친구 만나서 그냥 술이나 처먹으면 딱 좋을 분위기지만, 일요일 오후에 전화 걸어서 술 처먹자고 해도 괜찮은 친구가 이제는 내 주변에 없다. 딱 흐름상, 태인 선배, 정태인이 이럴 때 늘 만났던 사람인데. 그도 3년 전에 떠났다. 더 이상 일요일 날 술 마실 사람이 주변에 없다. 오랜만에 만나도 특별히 복잡한 얘기 하지 않고 그냥 술만 처먹는 친구가 한 명 있기는 한데, 지금은 홍성에 산다. 부르기도, 가기도, 만만치 않다. 

저녁에는 일주일 먹을 것 사려고 부인과 쇼핑몰에 가기로 했다. 이것저것 생각하면서 궁상 떨 시간도 한 시간 밖에 안 남았다. 

가끔 죽고 나서, 니가 한 좋은 일을 대보라고 하는 상상을 해본다. 내가 한 많은 일들은 먹고 살려고 하는 일이 대부분이고, 누군가를 조금씩 돕기는 했지만, 그게 정말로 도움이 되었을지는 모른다. 그래도 이제는 나중에 최후의 심판이 오면 할 수 있는 말이 하나는 생겼다. 살면서 고양이 한 마리는 행복하게 해주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고양이를 떠나보내고 행복했냐고 하면, 물론 그렇지는 않다. 누구라도 행복하게 해주는 것, 생각보다 어렵다. 그래도 아주 조금은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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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인권책 3장은 기업과 인권에 관한 문제다. 고민을 정말 긴 시간을 했는데, ‘직장 민주주의’에 대한 절을 넣기로 했다. 

민주주의라는 말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에 몇 개의 회사에서 개인적인 부탁을 받아서 직장 민주주의에 대한 강연을 몇 번 했는데.. 내 기준으로는 이 강연들이 대부분 실패였다. 별다른 반응이 없었고, 이런 적이 거의 없었다. 고민을 많이 했다. 변한 시대와 변한 주제에 내가 적응을 못 하는 것일까? 아니면 최근에 내가 특별히 강연을 더 못하는 것일까? 가장 최근에 한 중학교에서 한 강연은 내 역사에 남을 정도로 성공한 강연이었다. 별 반응이 없던 학생들을 데리고 얘기를 하다가, 두 시간이 될 때쯤에는 매우 적극적인 학생들로 모습이 바뀌었다. 이 날은 왜 성공했을까? 

아주 깊게 이 문제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지금 청년들이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싫어한다는 게 내가 내린 임시 가설이다. 민주주의가 민주당이 하는 일은 아닌데, 상당히는 저게 그냥 민주당 얘기를 하는 거라고 받아들이는 것 같다. 민주주의를 회사의 범주로 전환하는 것이 몇 년 동안 내가 하던 얘기들인데, 민주주의에 대한 언급을 대중들이 민주당따리들이 하는 얘기로 받아들이는 것은.. 굳이 이 얘기를 하면서 ‘직장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계속해서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 질문을 하게 만들었다. 

일단 결정한 것은.. 직장 민주주의 강연은 이제 그만해야겠다는 것이다. 물론 진짜 이유가 그것인지, 아니면 나에게 있는 또 다른 문제인지, 아직 나는 모른다. 강연을 최소한도로 하는 지금 상황에서, 굳이 직장 민주주의 강연을, 계속 실패하면서 이어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가 해소되거나, 해소할 방법을 찾기 전까지는, 일단은 세우는 게 맞다. 

그 다음에 해결할 문제는, 지금 쓰는 청소년 인권책에서 직장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소개할 것이냐, 말 것이냐.. 이것도 며칠 고민을 했는데, 책에서는 쓰기로 했다. 외국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대처하는지, 정확하게 얘기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국가와 정치의 영역에서만 작동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경제적 측면에서도 얘기할 필요가 있고. 

그렇게 고민하면서, 다시 한 번 럼볼의 직장 민주주의 논문이 발표되던 그 시기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 간호사들의 태움에 대해서 설명을 하다가, 이 절의 제목을 바꾸게 되었다. “인권은 공장 문 앞에서 멈추지 않는다.” democracy does not stop at the factory gate, 이게 그 유명한 럼볼 논문의 제목이다. “민주주의는 학교 문 앞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표현이 가장 잘 알려진 얘기다. 나도 에디터의 생각으로, 이 제목으로 책 제목을 정한 적이 있었다. 최근에 낸 책 중에서는 가장 많이 팔린 책이었다. 

이 제목을 3장의 제목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인권은 직장 문 앞에서 멈추지 않는다.” 한 번 쓴 표현을 다시 한 번 장의 제목으로 활용해서 쓰는 것이기는 한데.. 그 흐름에서는 이게 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생들에게 회사와 인권 애기가 조금이라도 정서적 반응을 얻기를 희망하면서, 오늘도 그야말로 대가리를 쥐어짜고 쥐어짜는 중이다. 시방 나는 우리나라 역사의 아주 자그만 한 줄을 쓰는 중이라고, 나를 달랜다. 

그래도 이 표현 하나를 생각하고, 몇 초 동안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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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북중학교에서 <빵과 복권> 가지고 강연을 했다. 책 나오고 중학교에서 강연한 건 처음이다. 중학생 강연은 아주 어렵다. 쓸 수 있는 사례와 표현, 이런 게 아주 제약되어 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도 얘기하면 곤란하다. 민원 들어온다. 

그래도 기회 닿는 대로 중학생 강연을 하려고 하는 것은, 10대가 몇 년 전부터 내가 연구하는 메인 주제이기 때문이다. 힘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많은 10대들 앞에서 통하는 얘기, 안 통하는 얘기, 관심을 끌 수 있는 얘기, 불편하게 하는 얘기, 그런 것들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어려워도 억지로라도 하려고 하는 편이다. 

오늘 강연을 잘 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나는 강연을 잘 하는 편은 아니다. 진심으로 그리고 열심히 하려고는 하지만,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걸 워낙 싫어해서.. 늘 다른 얘기와 다른 접근을 하기 때문에, 반복에서 나오는 익숙한 노련함은 나와는 거리가 멀다. 늘 새로운 마음으로, 그리고 새로운 승부를 하는 마음으로, 매번 떨리는 마음으로 사람들 앞에 선다. 

집에 오는 길은, 퇴근길이기도 했고, 서해안 고속도로에서 밀려드는 차들과 섞여서, 그냥 집에 오는 것만으로도 녹초가 되었다. 다행히 둘째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잠시 숨 돌리고 쉴 여유는 있었다. 둘째는 집에 오자마자, 오늘 저녁은 뭐랴고 묻는다. 자비는 없다. 냉장고를 뒤져서, 지지고 볶고. 

나중에 담당 선생님한테, 학생들이 부뜻해했고, 많이 배웠다고 게시판에 후기들을 썼다고 연락을 받았다. 10년 전과 다르게, 지금은 중학생들 중에서도 이전과는 다른 학생들이 적지 않다. 재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기도 하고, 박근혜에 대해서 묻기도 하는 질문들이 나왔다. 솔직하게 답변을 했고, 20년 후에 누군가 다시 물어봐도 한국에서 무상보육을 하고, 어린이집에 누구나 갈 수 있는 시대를 만든 것은 박근혜라고 답할 거라고, 그렇게 말했다. 예전 중학교에서는 그렇게 물어보는 학생은 없었지만, 지금 우리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경제가 좋은 것은, 누가와도 같이 할 애기가 있다는 것. 

오늘 강연을 주선한 중학교 선생님에게는 내가 정신 없는 것만 좀 지나면 시내에서 소주 한 잔 사기로 했다. 중학생 아들을 키우는 아빠로서, 이렇게 많은 중학생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돈 벌려고 중학교 강연을 가는 것은 아니다. 돈 내고도 갈 용의가 있다. 그런 게, 연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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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가까이 방에서 나가지 않고, 대부분의 시간을 베란다 모퉁이에서 잠만 자고 지내던 야옹구가 오늘은 식탁 밑에서 놀고 있었다. 기적 같은 일이다. 며칠 동안 미친듯이 츄르를 하루에 다섯 개씩 먹더니, 약간이지만 기력을 좀 찾았다. 

내가 살면서 한 게 별 거는 없지만, 고양이 한 마리는 행복하게 해준 것 같다. 18년, 그 시간을 같이 했다. 한 때, 내가 돌보던 고양이가 열 마리 가까이 되었던 시절도 있었다. 다들 떠나고, 맨 처음에 내게 왔던 고양이 한 마리가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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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츄르를 다섯 개씩 처먹던 고양이는 오늘은 부엌에 누워 있었다. 폐에 종양이 퍼져서, 살 날이 그렇게 오래 남지 않았다. 그래도 입맛이 없어서 굶어죽는 상황은 좀 지난 것 같다. 

어제 작은 행복이 큰 행복보다 작지 않다는 걸 배웠다. 그 여운이 오래갔다. 어쩌면 나에게도 마지막 순간이 올 때, 이 작은 기억이 생각날 것 같다. 혹시 우리 집 고양이가 느꼈던 작은 변화가 나에게도 생겨나기를 갈망할 수도.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우리의 많은 기억은 괴로움의 기억이고, 즐거운 기억은 그렇게 오래 가지 않는다. 그리고 무척 행복했지만, 끝이 좋지 않은 기억은 결국 머리 속에서 지워진다. 

지금까지 나는 사느라고 바빴다. 아니, 내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일 것 같다. 기쁜 순간이 없었느냐고 하면,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그 순간을 스냅샷처럼 잡아두거나 은미하거나 혹은 의미를 생각해볼 여유는 없었다. 그래서 결국은 머리 속에서 뭉개졌다. 

행복은 연습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평범한 날들에도 행복한 순간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 같다. 그 행복을 찾아내고 기억하는 연습이 된다면, 정말 불행한 날에도 1초의 행복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매일 짧은 행복이라도 기록하는 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시간으로 긴 행복이 아니라, 더 짧은 순간의 행복을 잡아내는 연습이다. 

내가 본 많은 사람들은 우울증이었다. 우울증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속도가 만들어내는 병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속도 속에서 우리는 불안하고, 행복한 순간에도 불안하다. 이것이 언제 깨질지 모르기 때문에, 그 순간을 음미하거나 즐기기가 어렵다. 

지금부터 내가 다루는 주제들이나 책 중에는 행복을 주제로 하는 게 많다. 내가 행복하지 않은데, 행복에 대해서 다룰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생의 마지막 순간을 보내는 고양이를 보면서 뭔가 느껴진 게 있었다. ‘1초의 행복’, 그런 주제로 하루하루의 내 삶을 다시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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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책에 대한 단상 2026. 10. 20. 18:13

호기심이라는 단어가 있다. 내 삶을 돌아보면, 내 특징 중에 가장 강한 게 호기심이 아니었나 싶다. 여전히 뭔가를 알고 싶고, 좀 더 알고 싶고, 그런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정의심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그러는 사람들도 본 적이 있는데, 나는 그런 스타일은 아닌 것 같다. 기계적인 일을 싫어하고, 반복적인 일을 못 참아 했다. 반복적인 일이 제일 좋고, 아무 생각 안 하고 할 수 있는 청소를 제일 종아한다고 하는 사람도 봤다. 뭐, 실제로 그가 그렇게 살지는 않았다. 

몇 년 전에 호기심에 관한 책을 한 번 써볼까 싶었는데, 그야말로 개똥 철학 같은 소리만 처하고 자빠질 것 같아서.. 잠깐 생각하고 때려쳤다. 

Ai 시대가 되면서, 호기심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구분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렇지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그딴 건 모르겠고.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호기심이 너무 많아서, 자신을 죽일 정도로 호기심을 누르기 어려운 사람이 실제로 자살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실망이나 분노 혹은 좌절이 호기심보다 커지면, 안에 있는 파괴의 본능이 작동하지 않을까 싶은. 프로이드식으로 설명하면, 반복은 타나토스, 파괴의 본능이다. 그는 에로스에 의해서 인류가 태어났는데, 인류의 마지막에는 타나토스가 돌아오게 된다고 얘기했다. 개인에 대해서도 그런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써야 할 글이 태산으로 쌓여있는데, 엉뚱한 것만 찾아보는 나를 자책하다가, 이 호기심이 지금까지 나를 살려준 것이라는 생각이 잠시. 노는 것에 대한 변명치고는 참신한 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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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구가 동물 병원에 갔다온지 일주일이 지났을 때, 처음으로 방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틀은 병원에서 받은 진통제를 줬는데, 습식 사료에 섞어줘야 해서 츄르를 다시 주기 시작했다. 츄르를 따로 안 준 게 아니라, 달라고 할 때 줬는데.. 지난 한 달 동안 누워있느라고 달라고 하지 않았다. 

삼일째부터 츄르를 달라고 난리를 치기 시작해서, 하루에 다섯 개씩 먹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달라고는 하는데, 사료통까지 가서 먹는 건 못했다. 들어서 사료통에 입을 대줘야 먹었다. 그래도 배고프면 책상 밑의 내 다리 옆에 앉아 눕기도 했다. 도저히 안 줄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병원 일주일째, 방문 밖으로 걸어 나갔다. 오늘부터는 들어서 사료통까지 보내주지 않아도, 자기가 알아서 사료통에 가서 먹었다. 지금은 진통제를 따로 먹이지는 않는다. 

지난 주만 해도 한 달 버티면 잘 버티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늘보니까, 이 상태면 올 겨울 지나고, 내년 봄까지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야옹구는 건강한 고양이가 아니었다. 장은 크게 한 번 수술을 했고.. 위도 별로라서, 이틀에 한 번씩은 엄청나게 토하면서, 그렇게 살았다. 늘 아프고, 하늘하늘한 스타일이기는 한데, 그렇게 18살까지 살았다. 

캔도 한 박스가 남아있는데, 한 번에 그렇게 많이 먹지 못해서, 감히 뜯어주지를 못했다. 

큰 츄르가 한 박스 있었는데. 며칠 동안 겁나게 먹어서 1/3은 먹은 것 같다. 이거면 마지막까지 충분할 것 같았는데, 지금 속도면 몇 박스는 더 먹을 것 같다. 

야옹구가 정신을 좀 차려서, 방 밖으로 가갔다고 하니까 둘째가 아주 좋아했다. 태어나기 전부터 같이 살았던. 

요즘 내가 하는 일은 대부분 잘 안 되는데, 간만에 잠시 웃을 일이 생겼다. 크게 보면, 아무 일도 아니지만, 세상을 크게만 볼 일은 아니다. 생명 앞에서는, 크고 작은 게 없다. 크든 작든,행복은 행복이다. 작은 행복이 큰 행복보다 작은 게 아니라는 걸, 오늘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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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에서 청년에게 기여한 곳을 청년들이 직접 선정해서 상을 주는 행사를 한다. 나도 손 하나 보태게 되었다. 20년 가까이 청년 문제를 다루는 중이다. 그 동안에 경제적 많이 변했고, 사회도 많이 변했다. 일관되게, 청년들이 편했던 적은 없었다. 

청년 문제는 ‘당사자’ 문제라는 얘기를 88만원에서 처음 했다. 그때는 청년 운동이 당사자 운동인지 아닌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리고 제한적이지만, 당사자 운동이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때 그렇게 마음을 먹게 만든 작은 한 장면이 있었다. ‘푸르세’라는 이름으로, 청년 회원들 조직을 만들었었다. 나이 먹은 선배 중의 한 명이 “나도 마음은 푸른데”, 그렇게 말하면서 자기도 같이 활동하고 싶다는 얘기를 했었다. 그때 청년 운동은 당사자 운동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그리고는 “마음은 젊다”, 이런 얘기는 살면서 안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위촉장을 받으면서, 그때 생각이 잠시 났다. 물론 입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88만원 낼 때, 그때는 아직 내가 30대였다. 이제 환갑이 낼모래다. 옛날 얘기 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는, 요 정도가 내가 가진 작은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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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구는 이제 내가 책상에서 바로 볼 수 있는 중문 바깥 베란대에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자면서 보낸다. 병원에서 진통제를 받아와 주고 있는데,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츄르 먹는 양이 조금 늘어나기는 했다. 건사료는 이제 거의 먹지 않는다. 2주 전까지만 해도 내가 전화하면 츄르 달라고 난리를 쳤었다. 지금은 츄르 하나를 다 먹지 못한다. 그나마도 조금만 먹던 게, 약효과인지 거의 하나를 다 먹게 된 정도. 

삶의 마지막 시간을 이렇게 같이 보내는 게, 그렇게 편한 일은 아니다. 자식 둘을 똥 기저귀 때부터 키우다 보니까, 나에게도 우선 순위가 많이 바뀌었다. 내가 도우면 조금은 더 나아질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일단은 녀석들이 먼저다. 걔들도 나름 바쁘지만, 저녁 먹는 게 하루에서 제일 즐거운 일로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뭐라도 신기한 거나, 뭐라도 맛있는 걸 하나라도 해줘야 그 설래임을 망치지 않을 수 있다. 정 없으면 냉동 만두를 구워주기도 하는데, 그걸로도 족하다. 분식집 느낌 나서 좋단다. 

6개월 가량 헤매던 청소년 인권 책은 다시 풀 집중 모드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살아온 삶을 모조리 뒤집어보면서, 감정 깊은 곳까지 들어가는 중이다. ‘푸르동’이라는 세 글자를 쓰면서, 싱가포르 대학에 가는 걸 포기했던 시절부터, 학설사를 포기하던 시절의 기억을 때려넣었다. 역시 아주 오래 전의 일이지만, 하버드의 케네디 스쿨에 교수로 갈 일이 있었다. 완전히 다르게 살아야 하는데, 나는 또 다른 삶 대신 아내와 결혼하는 것을 선택했다. 묘하게도 시기가 그렇게 겹쳤었다.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 일 중의 하나다. 푸르동이라는 이름이, 오랫동안 묻어놓고, 덮어놓았던 기억들을 다시 꺼내게 하였다. 그래도 푸르동이라는 이름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내가 이 몇 문장에 쏟아넣는 에너지 같은 것이다. 맑스는 푸르동을 개새끼, 십새끼, 엉청 바보 새끼, 몇 장에 걸쳐서, 그리고 여러 권에 걸쳐서 겁나게 욕을 했었다. 그걸 가장 점잖게 표현한 ‘공상적 사회주의저’, 뭐 이런 개념이다. 현실은 하나도 모르는 개병신이라는 얘기다. 그렇지만 그가 얘기한 몇 개의 요소들은 시대에 걸쳐서 끈질기게 살아남았고, 나중에 생태주의자와 지역주의자들을 만나 지역 화폐가 되었다. 대안 화폐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주장한 사람이 푸르동이다. 

이런 게 과연 책에 무슨 도움이 될까 싶지만, 그냥 내 마음이다. 더 많은 에너지를, 구절구절 불어넣으면, 나중에 책을 보는 사람이 조금 더 쉽게 읽거나. 아니면 조금이라도 더 마음에 남지 않을까 싶은.  

남은 부분, 꾹꾹 내 삶을 눌어넣을 생각이다. 내가 그렇다고 느끼지 않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느끼라고 할 수는 없다. 내가 진심으로 생각하지 않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생각해보라고 할 수는 없다. 

처음에 인권 책은 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생각했다. 부피도 너무 크지 않게. 

그 생각이 바뀌었다. 책은 조금 더 커져도 되고, 다루는 소제가 조금 더 늘어나도 될 것 같다. 인권 얘기가, 내 인생 책이라는 마음으로.. 지금 여기,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갈아넣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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