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송현여고에 갔다오면서, 10대 연구 지역에 대구를 새로 넣었다. 작년인가, 대구 kbs에 저출생 특집 방송 때문에 간 적이 있다.
오래 전 기억이지만, 내 소속이 경북대였던 적이 있었다. 진짜 김수행 선생 살아계시던 시절의 일었다. 새정치경제학, 그런 이름으로 전국의 젊은 맑시스트들이 전부 경북대 근처에 모였던 시절. 진짜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다. 그때는 경북대 학생회 초청으로 강연도 종종 했었다.
안철수가 시작하고 법륜스님이 이어간 청년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 일환으로 김재동하고 토크쇼를 한 적도 있고. 그 시절에는 대구에서도 청춘에 관한 행사도 많았고, 움직임도 많았다. 한 달에 몇 번씩 대구에 가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나고, 둘째가 태어났다. 둘째는 날 때부터 아팠고, 세 살 때 결국 하던 일을 내려놓게 되었다. 그리고 대구에는, 진짜 가끔 방송국에서 뭔가 특집 방송을 할 때나 가고, 그냥 갈 일은 거의 없게 되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사람들은 거의 경북대 사람들이다.
송현여고에 가면서, 오래된 대구에 관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기형도의 글에 보면 “시인만 있는 것 같은 도시”라는 표현이 나오고, 소년 장정일과 맥주집에서 만났던 얘기 같은 게 있다.
대구의 10대, 잘 던지지 않는 질문이다. 민주당은 물론이고, 국민의힘에서도 그런 질문은 안 던지는 것 같다. 햐, 먼지 속에 있는 이미지들.
추경호 장관 시절에 비판하는 글을 몇 번 쓴 적이 있었다. 당시 기재부 차관과 장관이 행사에서 나를 만나면 진짜 강렬한 눈빛으로 야렸다. 급기야 추경호와 같이 앉아서 회의를 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그때는 추경호랑 그렇게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지는 않았다. 일면식이 있는 것보다는 좀 더 찐한 사이이기는 하다. 지금은 추경호가 대구 시장이다. 그렇다고 대구의 10대를 연구하는데, 추경호 도움을 받을 수는 없고.
한참 움직이던 시절, YMCA나 한살림 같이 전국적인 조직들과도 일을 많이 했었다. 그것도 옛날 얘기다. 그 시절에 같이 일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은퇴했고, 지금 움직이는 사람들은 전혀 모른다.
하여간 가을이 되면, 대구에 며칠 머물면서, 대구만의 10대 얘기들을 좀 찾아볼 생각이다. 원래 내가 바닥에서 빌빌 기어다니는 스타일이다. 대학원 때 나가 소속된 연구소가 파리 10대학 경제인류학 연구소였다.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경제인류학과 생태인류학을 강의하던 시절도 있었다. 내 주변에 인류학하는 사람들이 많은 게, 그런 이유다.
대구의 10대 연구, 딱 인류학 주제이고, 그야말로 인류학적 문화기술지가 필요한 곳이기도 하다.
대구, 광주, 강릉, 울산, 이런 데가 우선적으로 살펴볼 곳들이다. 더 있으면 좋겠지만, 아직은 둘째가 완전히 나은 것이 아니라서, 무리한 일정을 짤 수는 없다.
지금 보는 것들은 10대 분석책에만 쓸 건 아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계획된 한중일 평화경제학에서, 이 애기를 한일 버전으로 좀 더 키워나갈 계획이다.
아주 오래 전, 주로 런던에서 많이 나왔던 서브컬쳐 연구들을 정말 재밌게 봤던 적이 있었다. 그때의 서브컬처는 매우 반항적이었지만, 극우 버전의 서브컬처는 결국 마가 같은 흐름이 되었다.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
지금 민주당을 혐오하는 10대들의 또래 문화, 이게 지금은 일종의 서브컬처지만, 이게 주류가 되는 시기가 다시 올 것이다. 대체적으로 그랬다. 프랑스에서는 이런 흐름이 결국 대선 결선투표까지 갔고, 이제는 언제 집권할 것인가, 그런 시기만 보는 상황이 되었다.
그 속에서 대안을 찾고, 희망을 얘기할 여지를 만들어보는 게, 내가 하는 일이다.
7월 17일, 제헌절이다. 차분히 앉아서, 내가 뭘 해야하는지,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지금도 기관장 같이, 뭔가 한 자리 하고 싶지 않느냐는 연락이 종종 온다. 아, 저는 현업에서 손 놓은지 너무 오래 됩니다, 대부분 그렇게 대답을 한다. 사실이기도 하고, 아직 내가 하던 일이 마무리되지 않아서..
대학교 그만둘 때, 지금 이걸 하지 않으면 70 때쯤 매우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움직일 수 있고, 생각도 할 수 있는 지금, 대구의 10대, 이런 연구를 하는 게 맞다.
다른 사람은 못한다. 단순하다. 이게 돈이 되지가 않기 때문이다. 나는 평생 돈 안되는 연구만 했다. 제일 좋은 점은, 경쟁이 없다는 점이다. 다른 연구자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 오우, 노 탱큐.. 누군가 하겠다고 하면, 나는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렇게 살았다. 그래도 먹고 사는 데 큰 지장 없었던 거, 그냥 매일매일 감사하면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