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등살에 지난 주에 간 경주 바닷가.. 이제 많이 컸다. 하는 짓은 아직 애지만, 덩치는 초등학교 2학년, 충분한.. 

'아이들 메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육아증후군..  (0) 2020.08.09
큰 애 여름방학..  (0) 2020.08.05
경주 바닷가..  (2) 2020.07.23
귀뚜라미..  (0) 2020.07.21
문방구 가는 길..  (2) 2020.07.15
삶의 딜레마, 어린이로부터..  (4) 2020.07.11
Posted by 우석훈 retired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아홉살 2020.07.23 10: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완이네요. 포크볼인것 같습니다 :D

  2. 2020.07.23 23: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귀뚜라미..

아이들 메모 2020. 7. 21. 18:52

부엌에 귀뚜라미가 들어왔다. 그래서 휴지 들고 잡았다. 마침 옆에 이런저런 벌레가 있어서 몇 마리 더 잡았다. 엄청나게 큰 귀뚜라미 한 번에 잡았다고 아이들이 감탄한다.

몇 달만에 처음으로 아이들이 아빠를 존경하는 눈빛으로 보는 것 같다.

"엄마, 아빠가 엄청 큰 귀뚜라미 한 번에 잡으셨어."

둘째가 뛰어가면서 막 소리 친다. 일상에서 존경받을 일이 하나도 없는데, 귀뚜라미 한 마리가 잔잔하던 일상에 악센트가 되었다. 이런 걸로 기분 좋아지면 안 되는데, 어렸을 때 귀뚜라미 잡던 얘기를 또 한참 설래발.. 사람 참 가볍다.

'아이들 메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큰 애 여름방학..  (0) 2020.08.05
경주 바닷가..  (2) 2020.07.23
귀뚜라미..  (0) 2020.07.21
문방구 가는 길..  (2) 2020.07.15
삶의 딜레마, 어린이로부터..  (4) 2020.07.11
모기 퇴치기..  (1) 2020.07.10
Posted by 우석훈 retired

댓글을 달아 주세요

당인리, 그 후..

당인리 2020. 7. 20. 23:00

당인리는 전북 교육청에서 고등학생 강연을 하고 싶다고.. 한참 고민을 하다가, 간다고 했다. 이래저래 강연할 처지가 아니기는 한데, 그 즈음부터는 10대들을 위한 독서책 쓸 시점이라, 이래저래 겸사겸사.

당인리 책은 그냥그냥 그런데, 웹툰은 몇 주 전에 출판사 통해서 계약이 마무리되었다. 영화 판권하고 드라마 판권 묶어서 영상 판권으로의 계약도 마무리되었다고 며칠 전에 들었다. 시원섭섭하다. 몇 년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던 생각이 문득.. 제주도에 특히 많이 갔었다. 이젠 진짜, 제주도 안 가고 싶다. 남들 평생 가는 것보다 훨씬 많이, 이미 너무 많이 갔다.

나는 남들 앞에 나서는 게, 싫기도 하지만, 고통스러운 성격이다. 그냥 조용히 츄리닝 입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관찰하고 목격하는 것을 좋아한다. 왔다갔는지 말았는지, 전혀 티 안 나는 그런 스타일의 삶이 훨씬 좋다.

새로 시작하는 방송에서 같이 하자는 아주 진지한 얘기를 들었는데, "재밌겠어요"라고 선뜻 답을 하지 못 하는 상황이 갑갑하기는 한데.. 힘든 건 힘든 거다.

근혜 때는 이것저것 되는 대로 방송도 많이 했다. 워낙 꽉 막혀있는 때라서, 뭐라도 좀 열고, 얘기를 해야 한다는 요청이 많았다. 지금은 그런 것도 아니고. 야당 시절이야 의무감으로 했지만, 지금은 그런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것저것 내용 정리하고, 얘기 만들고, 그런 거 몇 번 더 하다 보면 나의 50대도 끝나갈 거다. 그러면 한 세상 가는 거 아닌가 싶다.

더 유명해질 것도 없고, 더 많은 영광도 더 필요 없다. 지금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 보다 충분히 영광스럽다.

노회찬 죽고, 더 해서 박원순도 죽었다. 띨띨이들..

죽고 나면 그만일 것을, 뭘 그렇게들 힘들게 살았나 싶다.

매운 인생 책 준비하면서, 나의 50대에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대로 살아간다. 목에 힘주지 않고, 남들 도울 것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고..

어느 날 갑자기 나는 벤츠를 타야겠어, 이런 미친 짓만 하지 않으면 특별히 힘들 거나 고통스러울 것이 없을 인생이다.

등대 같은 삶을 살다가 어느 날 더 이상 불을 켤 수 없을 때, 그냥 조용히 사라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했다.

정두언과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소주 한 잔 하자고 해놓고, 끝내 소주 한 잔 마시지 못했다. 그도 죽었다.

아 그러고보니.. 원희룡 제주도지사 되기 전, 한참 헤매던 시절에 같이 감자탕에 소주 한 잔 하자고 해놓고, 시간이 또 그냥 지나가버렸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전형적으로 남들 왕따 놓는 스타일의 삶을 살았다. 다 귀찮아, 그냥 혼자 있을래.

사랑방, 뭐 그런 단어와 정반대의 삶을 살게 된 것 같다. 조용히 혼자 있을 때가 제일 좋다. 그래서 유학 시절에 참 좋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가난하기는 했지만, 혼자 있을 수밖에 없던 시간.

주변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고 나니..

그래도 자꾸 내 삶을 돌아보게 되고, 내가 못 돌아본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당인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인리, 그 후..  (0) 2020.07.20
당인리, 마포 주민 모임..  (1) 2020.07.02
컴 새 출발..  (1) 2020.06.27
당인리와 시민 독서 모임..  (0) 2020.06.25
당인리 웹튠과 기타 등등..  (2) 2020.06.19
당인리 3쇄 찍고..  (2) 2020.06.03
Posted by 우석훈 retired

댓글을 달아 주세요

용적률 논쟁이 서게 되었던 이유..

용적률 높이고 고밀도로 가자는 게 2000년대 초반 새누리당의 단골 메뉴였다. 천만 도시 정도가 아니라 이천만 도시도 만들어서 중국 도시들과 경쟁하자고도 하였다.

도시 밀도가 높아지면 교통 등 수많은 문제가 생겨나기는 하는데..

이 논쟁을 세운 것은 결국은 지하수 특히 지하대수층과 고층 빌딩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한 논쟁이었다. 뭐, 지하수에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사람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겠지만, 싱크홀이 생긴다고 하면 얘기가 다르다.

아직도 인과관계가 제대로 입증되지 않은 걸로 알고 있지만, 송파구에 고밀도 건설이 진행되면서 한동안 싱크홀 공포에 휩싸였던..

이런 과정을 거쳐 지금 서울의 고도 제한이 하나의 제도로 정착되었다.

도시와 지하수, 이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될 것 같다. 지하대수층의 오염에 관한 얘기들도 같이..

Posted by 우석훈 retired

댓글을 달아 주세요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58513&PAGE_CD=ET001&BLCK_NO=1&CMPT_CD=T0016

 

민주당이여, 지금 당장 '젠더 민주주의' 선언하라

[진단] 추모 끝낸 여당이 붙잡아야 할 화두

www.ohmynews.com

 

Posted by 우석훈 retired

댓글을 달아 주세요

오늘 저녁 때 둘째한테 문방구 가서 장난감 사준다고 약속했다. 가자고 했더니, 백화점에서 본 거라고..

타협에 타협을 거듭해서, 동네 문방구에 있는 걸 걸어가서 사기로 했다. 큰 애는 같이 가는 김에 아주 작은 장난감 하나. 캑캑. 토론하고 결론에 이르는데 결국 30분.

문방구 두 개를 다 뒤져서 둘 다 마음에 드는 걸 샀다.

닌자고 레고 8천 원, 아이언맨 레고 3천 원.

오는 길에 저녁에 구워먹을 삼겹살과 빵 쇼핑.

하나하나 선호와 포기를 하면서, 허버트 사이먼의 satisficing principle의 오묘함을 잠시 생각했다.

그래도 기저귀 갈던 시절에 비하면 대화하고 토론하고 타협하는 지금이 훨씬 편하다..

'아이들 메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주 바닷가..  (2) 2020.07.23
귀뚜라미..  (0) 2020.07.21
문방구 가는 길..  (2) 2020.07.15
삶의 딜레마, 어린이로부터..  (4) 2020.07.11
모기 퇴치기..  (1) 2020.07.10
포돌이 셋트 두 개..  (1) 2020.07.02
Posted by 우석훈 retired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20.07.16 01: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2020.07.16 18: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박원순 사건이 지난지 며칠 되지도 않았다. 머리 복잡하고, 심경도 복잡하다. 

트라우마로 얘기하면, 매우 많은 사람들에게 트라우마가 생겼을 것 같다. 영화 명랑에 최민식이 영화 끝에서 말한다. "이 많은 원혼을 다 어쩔 것이냐." 조선 수군이든 일본 수군이든, 명랑에서 원혼이 된 것은 마찬가지다. 

일장공성만골고라는 말이 있다. 장군 한 명이 이름을 드높이는데 만 개의 해골이 뒹굴게 된다는.. 참 슬픈 얘기기는 하지만, 이건 지금도 그런 것 같다. 

젠더 경제학 책을 좀 빨리 쓸 수 없느냐는 얘기를 몇 군데에서 들었다. 

직장 민주주의 책에서 젠더 민주주의라는 장을 하나 열었던 적이 있다. 생활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좀 더 복합적이고 입체적으로 그려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직장 민주주의라는 개념은 생활 민주주의의 하위 개념이다. 좀 더 상위의 개념으로서 생활 민주주의를 얘기하기에는, 아직은 좀 빠르다는 생각을 했었다. 

젠더 경제학에서는 생활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직장을 너머 가족 같은 데로 좀 더 전개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이런 것들이 궁극적으로 가고 싶은 것은, '남성 엘리트주의' 그 이후의 사회에 대한 표상을 그려보는 것이다. 일종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내 방식대로 펼쳐보는 것 아니겠나 싶다. 지역에 대한 얘기는 많이 했고, 젠더에 대한 얘기도 좀 했는데, 그걸 좀 더 종합적으로 생활 민주주의 방식으로 언젠가 그려보고 싶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이런 생활 민주주의에서는 여전히 좀 약하다. 

그렇기는 한데.. 젠더 민주주의 같이 작업하던 에디터가 결국 출판사를 그만 두었다. 책 출간 일정 당기기는 커녕, 제 날자에 맞추기도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는 출간을 당기기는 커녕, 제 날자에 내기도 어렵다. 나는 에디터랑 몇 년간 호흡을 맞추면서 새로운 책들을 같이 생각하고 준비하는 방식으로 일하기 때문에, 아무나 그냥 같이 하는 거, 그런 식으로는 책을 못 쓴다. 몇 번, 에디터가 바뀌게 되어서 그냥 해봤는데.. 공교롭게도 그런 책들이 다 망했다. 최근에 그런대로 괜찮은 성과를 낸 책들이, 다 오래 된 에디터들과 오랫동안 준비해서 정석대로 낸 책들이다. 뭐, 그렇다. 예전에는 책 사정이 좀 괜찮아서, 크게 이것저것 신경 쓰지 않은 책들도 선방을 하기는 했는데, 요즘은 그렇게 되기가 좀. 출판사는 바꾸어도 에디터는 안 바꾼다. 

나도 50이 넘으면서, 이제 모르는 에디터랑 쉽지 않은 내용을 얘기하면서, 하나하나 다시 맞춰가는 게 너무 힘들어서 못 하겠다. 내가 움직여야 얼마나 움직이겠나.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시간도 몇 년 안 된다. 

정부연구소나 공기업 기관장을 안 한다고 한 것은.. 그게 임기가 2~3년이다. 한 턴, 어쩌면 두 턴하고 나면 나의 50대는 다 간다. 그러면 끝이다. 그 나이에 다 늙고 병든 몸으로 뭘 또 하겠나. 근혜 시절이었다. 광주도시공사 사장직 제안이 왔을 때에는 정말로 고민을 좀 해었다. 내가 생각하던 지역에서의 공간 정책, 그런 걸 진짜로 해보고 싶기도 했었다. 일주일 고민했는데, 결국 그 길이 아닌 걸로 마음을 먹었다. 그때가 내가 공직을 안 한다고 마음을 먹은, 그야말로 definitly.. 그 순간이다. 

지금 와도 그 순간을 별로 후회하지는 않는다. 차관이니 장관이니, 혹은 기관장이니 그런 건 인생의 목표가 될 수가 없는 것이다. 한 번도 그런 걸 목표로 살아본 적도 없고, 그렇게 생각한 적도 없다. 지금 와서 친구들이 이제 높은 자리에 갔다고 나도 한 번, 그렇게 살아온 걸 바꾸면 어렵게 지냈던 나의 청춘과 30대의 모습이 너무 불쌍해진다. 그 순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 어려운 순간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20대나 30대나, 늘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늘 우리는 핍박받고 있었고, 도망다니거나 숨어서 뭔가 했다. 그러다가 다들 먹고 살게 되거나, 아니면 힘 있는 자리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는 조금씩 변했다. 

난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젠더 경제학에 대한 부탁을 받은 건, 10년도 좀 넘은 어느 날, 여성 경제학자들, 정확히는 누님들이 니가 그런 걸 좀 해라.. 그렇게 시작된 거다. 아직도 마무리를 못 했다. 이제는 그 질문을 마무리할 순간이 온 것 같다. 

나 혼자 생각한 건데, 그냥 나는 움직이는 동안, 등대 같은 삶을 살면 좋겠다는.. 폭풍우 치고 깜깜한 밤에 조그맣게 불을 밝히는 등대 같은 삶이 되면 좋겠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격랑이 이는 깜깜한 밤에 뱃길을 나서지는 않는다. 그 순간에 뭔가 항해를 해야하는 사람들은 다들 먹고 살아야 하거나, 매우 특별한 사연이 있거나. 그렇지 않겠는가. 

먼저 움직이고 늘 최전선에 있으려고 한 건, 그런 이유는 아닌데..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내가 책 쓰는 것을 좋아하는 건, 이게 수단이 아니라서 그렇다. 나에게 책은 다른 일을 얻어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처음에는 그렇게까지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지금에 와서는 이게 목적이고, 다른 게 수단이 되었다. 사람을 만나고 인터뷰를 하고, 자료를 분석하기 위해서 또 자료를 줄 사람을 만나고.. 그런 게 수단이 된 셈이다. 그리고 점점 더 어렵고, 점점 더 까다롭고, 그리고 또 점점 더 안 팔릴 책을 쓴다. 그런 걸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제는 점점 더 줄어들었다. 

다행히 책을 쓰면서도 먹고 사는 걸 걱정하지는 않아도 되는 삶을 살았다. 넉넉하지는 않아도 애들 먹고 싶은 거 사주고, 갖고 싶다는 장난감 사주는데 궁색하지는 않게 산다. 고생하는 후배들 가끔 밥 사줄 때 싼 것 좀 먹으라고 하지 않아도 되는 정도는 산다. 

젠더 경제학을 거쳐 생활 민주주의로 가는 과정은, 쉬운 길은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도 언젠가 넘어가야 하는 산이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멋지거나 고귀한 그런 학술적 목표도 아니다. 다만 우리에게 지체된 것이고, 그 지체가 좀 더 길어질 수도 있다는 것. 

큰 애에게 만 원짜리 비상금을 두 번 주었다. 그랬더니 이게.. 학교 문방구 앞에서 조그만 레고 장난감을, 정말 쓸 데 없는 걸 몇 개 샀다. 엄마한테 혼났다. 그런데 둘째가 형아가 가진 장난감을 보면서 심통이 났다. 지난 주에는 자기도 문방구 앞에서 본 게 있는데, 사주면 안 되냐고 나한테 물었다. 이번 주에 같이 가서 사준다고 주말에 대답을 했다. 어제 저녁에 둘째가 문방구에 언제 갈 거냐고.. 애들한테 뭔가 약속을 하면 빚쟁이가 된다. 갚을 때까지 계속 추심이 진행된다. 오늘 저녁에 간다고 했다. 오늘 아침에 둘째 어린이집 가는 길에 저녁 때 몇 시에 문방구 갈 거나고 물어본다. 집에 오면 바로 간다고 했다. 

가끔 일정이 꼬여서 '환장할 일정'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내 삶이 환장할 삶은 아니다. 

출간 일정을 보면 좀 빡빡하다. 거기에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해주고, 부탁이 좀 많이 온다. 그 중에는 가끔 내가 손을 잡아주지 않으면 삶의 나락에서 도저히 나올 수 없을 정도로 잔뜩 뭐가 꼬여버린 사람들의 부탁도 끼어 있다. 모른 척 하기가 어렵다. 제가 해드릴께요, 그러고 나서는 집에 와서 후회한다. 그렇게 '환장할 일정'이 더 환장스럽게 된다. 그렇다고 모른 척 해? 

애 보는 아빠한테 해달라는 것들이 좀 너무 많은 듯 싶다. 그래도 그냥 웃으면서 하는 게, 평생 이렇게 살았다. 

해야 할 일이나 내려야 하는 결정이 너무 많아서 잠시 먹먹해진 아침, 깃발이 아니라 등대로 살기로 생각한 30대 중반이 잠시 생각났다. 

"자기야, 나 좀 도와줘." 그 시절에 이재영이 부탁을 했었다. 그래서 내가 깃발이 되는 삶을 내려놓고 이재영을 돕는 선택을 했다. 이재영은 노회찬을 도왔고, 나는 이재영을 도왔다. 그 이재영은 벌써 죽었고, 노회찬도 죽었다. 내가 뭘 위해서 살아야 할지, 그런 것은 이제 없다. 이제는 더 이상 사람을 모으거나, 뜻을 모으거나, 그런 것은 안 한다. 그런 건 너무 많이 했다. 

모아야 할 때가 아니라 이제야말로 해체하고 재구성을 준비해야 할 때 아닌가 싶다. 데리다가 아주 예전에 했던 얘기가 잠시 다시 생각이 났다. 

'책에 대한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겉얘기와 속얘기..  (0) 2020.08.08
해체와 재구성..  (0) 2020.07.15
감정에 관하여..  (0) 2020.07.10
부지런하지 않은 삶..  (4) 2020.06.15
코로나 강연들을 맞아..  (2) 2020.06.08
책을 쓰는 동기..  (5) 2020.06.05
Posted by 우석훈 retired

댓글을 달아 주세요

턴테이블이 집에 두 개 있고, 안 쓰는 앰프가 진공관 앰프까지, 또 몇 개가 더 있다. 물론 다 애들 태어나기 전의 일이다. 

지금은 디지털 앰프 하나 TV 밑에 낑겨 놓고 겨우겨우 쓰고 있다. 턴테이블 놓을 데도 없다. LP들도 그냥 놀고 있다. 몇 달 전에는 블루투스 되는 턴테이블을 살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렇지만 역시 놓을 데가 없다. 지금까지는 애들 때문에 감히 엄두도 못 내었는데, 애들이 좀 크니까 이제 놓을 자리가 없다. 자리가 왜 없냐고? 애들 책장들이 여기저기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그렇다. 턴테이블 놓는다고 애들 책장 치운다고 했다가는 맞아죽을 것 같다. 

음악은 LP 우선, 없으면 CD 그러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는데, 요즘은 다 택도 없는 얘기다. 그냥 핸펀 블루투스로 듣는다. 마지막 존심이라면, 그래도 유튜브로 음악을 듣지는 않는다는 것 정도. 

언젠가 나도 와트퍼피 제대로 해놓고 듣겠다고 생각하면서 살지만, 그런 날이 올지는 모르겠다. 나도 이제 방마다 하나씩 시스템을 갖춰 놓고 있던 시절의 열정 같은 건 없다. 그저 여유 되면 스피커나 좀 더 바꿔보고 싶은 정도. 

최규성의 <빽판의 전성시대>는 나보다 더 얼척 없는 사람들이 한국에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다. LP도 제대로 관리하기 힘든데, 빽판이라니.. 

나도 빽판이 몇 장 있기는 하다. 중고등학교 시절, 원판이라고 하는 수입 앨범은 너무 비싸서 엄두를 못 냈고, 라이센스판을 주로 샀다. 그래도 청계천을 헤매면서 빽판을 사게 된 건.. 

순전히 금지곡 때문이다. 핑크 플로이드는 당연히 금지곡이었고, 딥 퍼플은 음악은 금지곡이 아닌데 녹음된 장소 때문에 앨범이 금지 앨범이었다. 라이브 인 재팬, 일본 공연에서 하이웨이 스타 등 기가 막힌 연주가 있었는데, 요 앨범도 구할 수 없는. 그리고 간 김에 구하기 어려운 앨릭 클랩튼 더블 앨범 같은 것들도 사고. 

몇 번 사봤는데, 음질 개판이다. 도저히 못 들어주겠는.. 그래서 초반에 몇 장 사고 말았다. 

책을 보면서 나는 ‘빽판’이라는 말의 유래를 알게 되었다. 이것도 좀 슬픈 일이다.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가 왜색으로 밀려서 금지곡이 되었다. 당연히 일본에서는 판매가 되었고. 이걸 불법으로 판을 만들어서 한국에서 유통을 시키다 보니까 정말 앨범에 아무 라벨도 붙이지 않은, 흰색 종이만 덜렁 붙어있는 빽판이 된.. 다들 뒤로 유통시키는 back에서 나온 말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은. 

그리고는 군사 정권 시절 양희은 등 금지곡 시대가 온다. 아침 이슬 같은 노래들이 들어간 양희은 앨범 제목이 ‘고운 노래 모음’이라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진짜 고운 노래 같은 얘기다. 3집까지 나왔었나 보다. 백구 같이 지금도 내가 종종 부르는 양희은의 노래들이 다 이 시절의 얘기다. 

그리고 대마초와 함께 신중현이 압박 받으면서 김추자의 노래들도 빽판으로. 신중현의 ‘아름다운 우리강산’의 금지곡 사유가 ‘창법 미숙’이라는 걸 보면서 한참 웃었던 적이 있다. 그런 식으면 꽤 많은 가수들의 노래는 다 창법 미숙이다. 노래 못 한다고 금지곡 씩이나.. 

유라이어 힙의 ‘줄라이 모닝’이나 Lynyrd Skynyrd 같은 건 빽판으로 듣지는 않았고, 나름 라이센스판으로 들었는데, 아직도 우울한 때면 종종 듣는다. 그렇지만 하도 뚜드려 대는 노래라서, 애들 있을 때 듣기는 어렵다. 지방에 갈 때나 차 안에서 소리 왕창 올려놓고 (결혼하기 전, 내 차가 차 값 보다 스피커와 앰프 등 오디오가 더 비쌌던..)

슈베르트의 연가곡집에 관한 책에 대해서 서평을 쓴 적이 있다. 한국에서 누가 슈베르트의 연가곡집을 그렇게 줄 맞춰서 듣는다고 죽어라고 책을 썼던 것도 얼척 없었지만, 뺀판의 역사는 더더욱 얼척 없었다. 

50이 넘으면서 내 삶도 많이 바뀌었고, 취향도 많이 바뀌었다. 아니, 바뀐 게 아니라 바꾸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LP 틀어주는 술집에는 이제 안 간다. 그런 데서 사람들 바람 피는 것 너무 많이 봐서 질렸다. 그리고 그런 데서 감정이 높아져서 평소 같으면 하지 않을 말도 하면서 싸우는 경우도 많이 봤다. 과거로 가게 되면 억지로 봉합해 놓았던 옛 기억들이 폭발하게 된다. 

아주 작고 맛있는 그런 식당에도 안 간다. 너무 분위기 찾다 보면 고립되고, 같이 다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자꾸 나누게 되고. 적당히 먹고, 맛있게 먹고, 그렇게 식당 고르는 취향도 바뀌었다. 

아마 내가 진공관 앰프 처박아 놓고 있는 것과 턴테이블 놀리고 있는 것들이 다 그런 변화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너무 감정이 고양되는 상황은 이제 피하게 된다. 

그렇지만 가끔 옛날 노래 듣고 싶어지는 적은 있다. 그럴 때면 멜론에서 찾아서 듣는다. 이제 음악은 마음으로 듣는 거라는 생각이 더 강하다. 적당한 정도의 음질이면, 그냥 행복하게 듣는다. 

그렇기는 한데.. 비 오는 일요일 오후, 빽판 앨범과 오래된 가수들 이름 넘기면서 잠시 살아가는 시름 같은 것을 내려놓을 수가 있었다. 마침 아내가 저녁 약속이 있어서 나갔는데, 애들이 옆에서 같이 책을 읽고 있었다. 박원순 떠나고 이래저래 심난한 일요일, 빽판의 레트로 B급 감성과 함께 나의 지난 날들을 잠시 돌아볼 수 있어서 좋았다. 

 

 

 

Posted by 우석훈 retired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저녁 먹고 큰 애랑 좀 멀리까지 산책을 갔다왔다. 큰 애가 서울시장의 자살에 대해서 물어본다.

"응, 아까 오후에 아빠가 양복 입고 나갔다왔잖아, 거기 갔다왔어."

"아빠랑 아는 사는 사람이예요?"

이것저것 20년 넘게 알고 지낸 사람이고, 많은 일을 같이 했다고 했다.

"좋은 일을 했어요?"

많은 일을 하기는 했는데, 그게 좋은 일인지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렇겠지."

왜 자살을 했는지 물어보면 아주 난감할 것 같은데, 거기까지 물어보지는 않았다.

아마 어린이가 있고, 이제 뉴스도 슬슬 보기 시작할 나이라면 집집마다 벌어질 일일 것 같다. 중고등학생이라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훌륭하신 분이라는 말과, 왜 자살을 했어라는 질문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크다. 아마 며칠 사이에 우리 집 어린이도 결국 그 질문을 할 것이다.

삶에 풀기 어려운 딜레마가 또 하나 늘었다.

'아이들 메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귀뚜라미..  (0) 2020.07.21
문방구 가는 길..  (2) 2020.07.15
삶의 딜레마, 어린이로부터..  (4) 2020.07.11
모기 퇴치기..  (1) 2020.07.10
포돌이 셋트 두 개..  (1) 2020.07.02
초등학교 2학년, 큰 애가 쓴 편지..  (1) 2020.06.22
Posted by 우석훈 retired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풀씨 2020.07.12 22: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게 아이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어른은 어른이 되어가는 거겠죠? 저도 아이들이 물어오면 어떻게 답해야 하나 자꾸 고민하게 되는 하루였습니다.

  2. BlogIcon 독자 2020.07.13 18: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추행 피고소인이 혼자 나가 뒤진거가지고 별 의미부여를 다하네요. 이제까지 사서 읽은 책값이 아까워 댓글 남기고 떠납니다. 딸이 같은 일 당했어도 똑같은 코멘트 남기셨을까요?.

    • 조적조 2020.07.13 20:17  댓글주소  수정/삭제

      꼰대들의 온정주의...이렇게 부르고 싶네요. 나라 망치는줄도 모르고ㅉㅉ 우석훈도 별수없는 꼰대

  3. 글쓰는1인 2020.07.15 00: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난 이 정도에 논평이면 충분하다 생각한다.

박원순 시장 문상 다녀왔다. 마침 강기갑 의원이 앞자리에 있었다.

문상에서 울거나 그러지는 않으려고 했는데.. 나오는 길에 기자들 인터뷰가 있어서, 이것저것 대답하다 보니까 진짜 울 뻔했다. 산다는 게 뭔지.

박원순과 제일 즐거웠던 순간이 문득 머리에 떠올랐다. 아주 예전에 목포에서 환경 활동가들 단합대회 할 때였던 것 같다. 왕창 모여서 놀던 날. 서주원 총장이 "씨발 낚지 먹으러 가자", 그러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남는다. 세발 낚지를 그렇게들 불렀다. 밤새 술 먹고 정말 즐겁게 놀았었다. 그때 박원순에게서 '어드보카시'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다. 어드보카시 운동의 미래는 무엇인가, 그런 고민을 많이 하던 것 같았다. 뭐, 난 그런 어려운 건 모르겠고, 그냥 머리 박고 술이나 마셨다.

아름다운 재단 시절에 김치찌게 데이인지, 그런 행사 때 회원들 모아놓고 김치찌게 끓였던 기억도 문득 났다.

이래저래 놀기도 많이 놀았는데..

다 허망한 일이다. 한 세상 사는데, 뭔 무거운 짐을 그렇게 지고, 자기 고민도 얘기할 그런 주변머리 하나 없이 살았는지.

평생 영웅처럼 살다가, 죄인처럼 떠나는 삶이 참 허무하게 느껴졌다.

 

5분 

 

박원순 시장 문상 다녀왔다. 마침 강기갑 의원이 앞자리에 있었다.

문상에서 울거나 그러지는 않으려고 했는데.. 나오는 길에 기자들 인터뷰가 있어서, 이것저것 대답하다 보니까 진짜 울 뻔했다. 산다는 게 뭔지.

박원순과 제일 즐거웠던 순간이 문득 머리에 떠올랐다. 아주 예전에 목포에서 환경 활동가들 단합대회 할 때였던 것 같다. 왕창 모여서 놀던 날. 서주원 총장이 "씨발 낚지 먹으러 가자", 그러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남는다. 세발 낚지를 그렇게들 불렀다. 밤새 술 먹고 정말 즐겁게 놀았었다. 그때 박원순에게서 '어드보카시'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다. 어드보카시 운동의 미래는 무엇인가, 그런 고민을 많이 하던 것 같았다. 뭐, 난 그런 어려운 건 모르겠고, 그냥 머리 박고 술이나 마셨다.

아름다운 재단 시절에 낌치찌게 데이인지, 그런 행사 때 회원들 모아놓고 김치찌게 끓였던 기억도 문득 났다.

이래저래 놀기도 많이 놀았는데..

다 허망한 일이다. 한 세상 사는데, 뭔 무거운 짐을 그렇게 지고, 자기 고민도 얘기할 그런 주변머리 하나 없이 살았는지.

평생 영웅처럼 살다가, 죄인처럼 떠나는 삶이 참 허무하게 느껴졌다.

 

 

 

Posted by 우석훈 retired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조적조 2020.07.13 17: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해자 회견보니 가관이네요. 정내미가 싹다 떨어져나감

    • BlogIcon 피적피 2020.07.23 08: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다. 굳이 피해자라고 억지 부릴려면 뭔 증거 쪼가리라도 들고 나와야 하는데. 원래 정내미도 없었지만 없는 정도 뚝뚝 떨어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