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에서 경제 살리기 일환으로 사람들에게 긴급 소비용 돈을 주게 된다. 코로나 때도 본 거라서 새삼일 것은 없다. 일본은 90년대 경기 후퇴로 거의 수시라고 할 정도로 소비 쿠폰 같이 많은 소 지원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종류의 정책은, 자신이 받을 수 있는가, 없는가, 그런 데 관심이 가게 된다. 건강보험 상위 10% 기준이라는 걸 보는 순간, 일단 나는 아니라고 바로. 집도 있고, 차도 두 대나 있고. 나도 소득이 꽤 많은 적도 있지만, 작년에는 번 게 아주 험블해서, 하위부터 따지는 게 더 빠를 수도 있기는 하지만. 건보 기준으로는 택도 없다. 얄짤 없이 상위 10%에 들어간다. 덩달아 우리 집 소년들도 해당사항 없다. 중요한 건 아니다. 

이번 추경에서 진짜로 내 눈을 끈 건, 빚 탕감이다. 7년 이상 연체한 4천만 원 이하의 소액채권에 대한 빚탕감이 있다. 7년 이상 그리고 개인파산 수준이라고 판단되면 전액 탕감이다. 상환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최대 80%까지 감면하고, 남은 돈은 향후 10년간 갚도록 한단다. 방법은 소액 채권을 정부가 채권사로부터 매입해서 소각한다. 배드뱅크 방식이다. 소액채권의 현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가 사실 기술적 문제이기는 한다. 어차피 못 받을 불량채권을 배드뱅크가 액면가 그대로 사지는 않을 것이고. 90년대 남미 국가들이 파산했을 때 국가 채무를 이렇게 처리하면서 소위 정크 본드라는 단어가 유행했었다. 배드뱅크가 정크본드를 처리하는 방식과 같으니까, 생각처럼 액면가 그대로 정부가 그대로 지출하지는 않게 된다. 아울러 개인파산 수준이라는 것을 평가하기도 생각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정부의 정부의 재정지원에 대해서 전부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박근혜 때에도 악성 채무에 대해서 정책이 있기는 했는데, 지금처럼 전면적인 빚 탕감은 처음 본 것 같다. 새삼스럽게 이 문제가 크게 보이는 것은, 일반적인 악성 부채보다 더 격렬한 논쟁이 농가 부채 탕감 때 있었기 때문이다. 그전에도 농어촌 부채 경감 조치는 간헐적으로 있었는데, 김대중 때 전면적인 농가 부채 탕감이 공약으로 나왔었다. IMF 이후로 아주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 그때는 배드뱅크 방식이 아직 전세계적으로 많이 활성화되기 이전이다. 이 논쟁이면 어김없이 나오는 보수 쪽 주장이 모랄 해저드다. 그렇게 빚을 탕감해주면, 누가 성실하게 빚을 갚으려고 하겠는가. 다 그냥 기다리다 정치적 결정에 의해서 그냥 안 갚을 수 있으니, 평소에 누가 그런 행위를 하겠는가, 이런 얘기다. 그 연장선에서, 성실하게 빚을 갚은 사람은 억을해서 어떡해! 그냥 버텼으면 정부가 처리해줄텐데, 왜 미련하게 돈을 갚았나, 이렇게 생각하지 않겠나. 물론 이런 우려도 논리적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상황에 의해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사회 전체적으로 혹은 국민경제의 시각에서, 어느 쪽이 편익이 높은가에 의해서 판단하게 된다. 그냥 일상적이고 주기적인 부채 탕감은 곤란하다. 그렇지만 구조적 문제 등의 시스템적 결함에 의하여, 정상적인 경제가 위기를 맞았다고 판단될 때, 제한적으로 부채 탕감이 가능할 수 있다. 매번, 이때가 바로 그때냐, 아니면 과잉 정책이냐, 그런 논쟁을 하게 된다. 

어쨌든 추경과 함께 전면적인 부채 탕감이 진행되는 것을 보며.. 이재명 정부가 정치의 효능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었다. 김대중이 농어촌 부채 탕감을 대선 공약으로 걸면서도 결국 못했던 일이다. 글쎄. 악성 부채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얼마나 이재명에게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악성 채무자와 사회경제적 분포도는 알 수가 없지만, 대체적으로 저소득이거나 경제적 약자일수록 한국에서는 보수적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실제로는 49%보다 더 적게 이재명에게 투표했을 가능성이 높다. 

투표를 했든 하지 않았든, 적지 않은 사람들의 경제적 삶이 부채 탕감으로 바뀌게 된다. 지금 한국은 거시 경제가 저성장을 넘어, 마이너스 국면으로 넘어가는 순간이다. 일본식 표현으로, 한 명 한 명의 경제적 ‘활력’을 높이는 게 매우 중요한 순간이다. 이런 상황이 아니라면 이런 전면적 부채 탕감이 이루어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실 이런 건 윤석열 때도 그냥 하면 되는 것인기는 한데, 그런 상상도 해보지는 못했을 것 같다. 

부채 탕감에 대한 논쟁이 어떻게 갈지 좀 더 기켜볼 생각이다. 생각보다 별로 반대는 없을 것 같다. affordable, 감수할 수 있느냐 아니냐가 논쟁이지, 하느냐 마느냐가 논쟁일 시대 상황은 아니다. 

예전 2012년 문재인 후보 시절 “의료비 100만원” 공약에 대해서 100점 만점에 100점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는 그렇게 생각할 정책은 아직 없었다. 실제로 문재인이 대통령이 된 후에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문재인 케어로 다소 후퇴했었다. 

이재명의 전면적 부채 탕감 역시 100점 만점에 100점인 정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건 누군가를 기분 나쁘게 할 수는 있어도, 누군가에게 경제적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 최소한 경제적으로는 아무도 손해보지 않는 정책이다. 누군가에게 경제적 손해를 미치지 않고서는 다른 누군가의 효용을 높일 수 없는 상태를 파레토 최적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경제적 손해 없이 또 다른 사람의 경제적 효융을 높일 수 있는 것은 파레토 개선이다. 아주 드물게 파레토 개선이 생겨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그걸 못한 건, 정치가 실패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지금과 같은 전면적 부채 탕감이 농어민 부채 문제에도 적용될 수 있을지는 좀 더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 농민들이 갖고 있는 부채의 성격과 규모가 일반적인 생활 부채와는 좀 다르다. 부작용이 좀 다르게 작용할 수 있다. 

하여간.. 이재명의 이번 추경을 보면서, 특히 부채 탕감에 대한 정책을 보면서, 한국은 일본의 90년대와는 다른 경제적 전개가 가능할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해보았다. 정치의 효능이라고 한다면, 일본 정치가 가지고 있는 그 무기력감과는 우리는 좀 다르게 움직일 수 있으므로. 

농가부채 문제는 나도 농업경제학을 앞두고, 머리가 평소에 지끈지끈해지게 하는 문제다. 피해가기 어려운 질문이다. 전면적 부채 탕감을 놓고, 나에게도 생각할 여지가 좀 더 많아졌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수협 등 어민 문제에 대해서도 잠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최근에 고민하는 양식업의 문제와 태평양에 대한 장기적 관점까지 (얼마 전 태평양 관리에 대해서 일종의 잡오퍼가 있었는데, 싫다고 했다. 월급 받고 사는 삶으로 돌아가기에는 둘째가 아직 많이 아프다.) 좀 더 시간을 갖고, 바다와 태평양에 대한 책을 써보면 좋겠다. 배에 대한 책은 세월호 때 <내릴 수 없는 배>를 쓴 적이 있다. 그때 연안여객을 분석하면서, 섬의 교통 상황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했었는데.. 요즘도 가끔 섬의 날 비슷한 섬에 대한 행사가 있으면, 기조 발제를 해달라는 부탁이 오기도 한다. 내 실력으로는 택도 없지만, 섬이나 바다 같은 문제는 보는 사람이 워낙 없으니. 그래서 바다에 대한 책을 한 번 준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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