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정훈과 여의도에 있던 포장마차에서 밤늦게 소주 잔을 기울이던 시절이 있었다. 나주 시장이던 신정훈이 막 초선의원이던 시절이었다. 지난 총선의 농업 공약의 마지막 조율을 그와 하게 되었다. 그의 동료였던 이재수와 민주당 정책위 농업담당, 그렇게 마지막 테이블 위에서 소위 ‘넣고 빼기’를 하였다. 아무도 농업에 관심이 없었는데, 내가 직권으로 테이블을 열었다. 그 때 나는 민주당 정책공약단 부단장이었다. 단장은 광주 시장 된 김용섭이었고.
그게 내가 신정훈과 이재수를 본 마지막 날이었다. 신정훈은 신정부 들어가서 농업비서관이 되었다. 이재수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춘천 시장이 되었다. 지난 총선이 농업에 관한 문제에서 내가 공식적으로 관여한 마지막 순간이다. 이제 아마도 더는 내가 농업 문제에 관여하게 될 것 같지는 않다. 2003년부터니까, 농업연구모임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농업 관련된 문제에 관여허게 된지 15년 정도 지난 것 같다. 그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정책 파트너로 잠시 논의를 같이 했던 박창길 박사는 농촌경제연구원장이 되었다. 새정치민주연합 시절이었다. 많은 것을 같이 한 윤석원 교수는 결국 은퇴하고, 귀농하여 진짜 농사군이 되었다. 한 때 등 대고 지옥의 불길을 같이 걸어가던 사이인 송기호 변호사는 아직도 어두운 밤길을 걷고 있다. 그리고 나는, 아이 둘 돌보는 아빠가 되었다.
애초의 경제 대장정 시리즈의 10 번째 책이 농업경제학이었다. 나는 대장정을 끝까지 마무리하지는 못했고, 문화 경제학 이후로 시리즈를 세워놓았다. 그렇게 뒤로 밀린 농업경제학을 이제는 마무리하려고 한다.
2.
아마 순서대로 하면 38번째 책이 될 것 같다. 37번은 당인리다. 39번은 아직 유동적이다. 39번, 40번의 순서가 바뀔지도 모른다.
형식은 아빠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하려고 한다. 농업을 공부한 아빠가 별 생각없이 고 1이 된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원래 이 형식으로 책을 한 권 준비해둔 게 있는데, 그건 딸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딸은 태어나지 않았고, 망했으요..
편지 사이의 에피소드를 통한 바깥 얘기도 어느 정도는 만들어볼 생각인데, 꼭 그런 형식에 얽매일 생각은 없다. 우리 큰 애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보여줄 편지를 쓴다는 마음으로.. 당연히 1년, 2년 사이에 변하게 될 정책은 그냥 실루엣만. 기본에 해당하는 얘기를 고1이 알아먹을 수 있을 수준으로 쉽고 간략하게.
시간 나는 대로 편지 한 통씩. 편지를 잘 쓰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편지를 많이 쓴 것은 사실이다. 정말 많이 썼다. 말로 하기 어려운 것을 편지로 쓰는, 나의 오래된 습관이다. 나만큼 편지 많이 쓰는 사람으로는 조한혜정 교수 정도 생각난다. 이 양반도 정말 편지 많이 쓴다. 10년 넘게 중요한 일들은 거의 다 서로 편지로 오고 갔던.
3.
이 작업은 좀 더 개방적으로 해보려고 한다. 대략 50장의 편지를 쓰면 책 작업은 끝난다. 아직은 좀 생소한 푸드플랜에 편지 한 통, 농업혁명이라고 했던 화학농의 도입에 편지 한 통, 새마을운동의 21세기적 해석에 편지 한 통, ‘핸드폰 팔아 쌀 사 먹으면 된다’고 했던 경제관료들 얘기로 편지 한 통, 이런 식으로 할 생각이다.
결국 작업은 50개의 주제를 추리는 일과, 편지를 잘 쓰는 일, 이렇게 두 단계로 구성될 것이다. 작업이 성공하면, 50개의 편지를 읽은 후에 농업경제학 교과서 한 권을 숙독한 효과가 나올 수 있도록. 편지의 형식상 표, 공식, 그래프, 이런 건 안 들어간다. 아들에게 편지 쓰면서 그래프 그리는 똘아이가 있을까 싶다.
하여 1차 작업은 50개의 주제를 고르고, 그 안에서 스토리가 발생할 수 있도록 스토리 보드를 만드는 일.
제일 큰 관건은, 내가 알거나 하고 싶은 얘기가 아니라, 이 시기에 필요한 얘기로 주제를 업데이트하는 일이다.
하여..
주제 50개를 고르는 일은 좀 더 공개적으로 블로그를 통해서.
꼭 선정되지 않더라도 뭔가 생각에 도움이 되신 분들은, 출간되면 책에 짧은 편지라도 적은 편지본으로 후사 (비밀댓글로 주소, 전번, 연락처 남겨주셔야 나중에 발송 가능합니다..)
출판사는 반비, 에디터는 '문화로 먹고 살기' 같이 했던 김희진씨..
(호박꽃, 어느 빛 좋은 9월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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