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들하고 짧은 1박 2일 여행을 하고 왔다. 식구들 여행이라지만, 애들 자고 나면 술 한 잔 하는 시간이 무슨 세미나 하는 시간 같기도 한.. 집 안에 박사들이 너무 많다. 석학급 학자들도 너무 많고. 그렇지만 나도 많은 도움을 받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다.
강화도에 진짜로 집을 사려고 한 적도 있었다. 서울에서 사는 게 너무 피곤해서. 그 때 사려고 했던 집은, 어마무시하게 올랐다. 진짜로 그 때 샀으면? 인생 꼬였을 것 같다. 지금 나는 내 모습 그대로가 제일 좋다. 구질구질하기는 하지만 딱 맞는 츄리닝 있고 있는 것 같은.
잠시 쉬었으니, 이번 달 말까지는 또 달려야 한다. 길게 보면 몇 년, 짧게 봐도 몇 달, 너무 달렸다.
아내는 이제 나이도 먹었고 힘드니까, 1년에 딱 두 권씩만 쓰라고 한다. 그런데 계획은 그것보다는 좀 많다. 올해만 계획에 두 권인데, 아마 그것보다는 더 낼 것 같다.
갈메기는 참 사진 찍기 더럽게 어려운 존재다. 너무 빨라서 도저히 촛점 제대로 맞추기가.. 좀 좋은 넘을 쓰면 나을 수도 있지만, 자주 찍는 것도 아닌데.
돌아보면 속상할 일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특별하게 편법 안 쓰고, 반칙 안 하고, 그냥 되는 대로 버티고 참는데 좀 더 익숙해졌다. 삶이 그렇다. 물 흐르는 대로 가다가, 나중에 진짜 물이 되듯이 사라지는 것, 그런 게 자연스럽다.
노랑 튤립이 만개했다. 노란색, 큰 꽃, 극한의 화려함이다. 꽃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너무 화려해서 바로 앞에 실물을 보면서도 몽환적이다. 꿈에서 보는 것 같다.
이제 내 삶을 슬슬 마무리해가는 단계로 들어간다.
친구처럼 살았던 나이 많은 친구들이 환갑이 가까워지면서 뭔가 내려놓고 정리하기 보다는, 이제야말로 정말 한 번 해보고 싶다는 모습을 보여준다. 슬퍼진다.
꽃은 치매가 없다. 그리고 구질구질함도 없다. 화려하게 피고, 어느 날 지고 만다. 튤립이 우리 집에 온 건 5년 전이다. 있으나 마나, 잡초 사이에서 티도 없이 그냥 버티고 있다. 그리고 일년에 딱 한 번, 화려하게 꽃을 피운다. 그 때, 아 튤립이 있었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의 삶은 그와는 다르다. 나이를 먹을수록,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더욱 욕심이 많아지나보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아름다운 꽃을 보면서 감탄하는 것, 그런 마음이라도 잃고 싶지 않다.
흰 머리가 나면, 이제 추스리고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온다는 신호가 아닌가 싶다. 이제부터 나의 시간이야, 그렇게 주접 떠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너무 크고 화려하게 핀 튤립을 보면서, 잠시 배운다.
너는 이 아름다운 꽃잎을 며칠 후면 내려놓을 것이다. 그렇다고 너의 아름다움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삶도 그럴 것이다.
1. 히샤이시 조의 자서전에 보면 배용준으로 유명해진 ‘겨울 연가’의 dvd 를 보는 장면이 나온다. 자기 같으면 그런 남사스러운 얘기는 끝까지 못했을텐데, 저걸 하다니, 그런 얘기다. 사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기도 하다. 이미 어느 정도 감성의 틀이 잡혀서, 그 감성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습관이 생긴다. 그것이 사회 때문에 생기기도 하고, 개인적인 취향 때문에 생기기도 하고.
나는 영국식 화장실 유머도 좋아한다. 그런 얘기들은, 대개 한국에서 개박살 난다. 전혀 우리 취향에 맞지 않는다. 똥 얘기, 코딱지 얘기, 그런 거 팍팍 터지는 얘기. ‘오스틴 파워’ 시리즈를 환장하고 좋아하는 것도, 그건 내 취향이기 때문이다. 유교에 갇히고, 유교화되거나 샤머니즘화된 기독교의 엄숙주의에 갇히고.
그래서 그걸 뒤집어보고, 전복적으로 보는 게, 또 다른 감성이기도 하다.
2. 다음 달에 식구들 전부 데리고 부산에 간다. 아마 앞으로 한동안 부산에 자주 갈 것 같다. 과거로 향하는 여행 같은 것?
늘상 익숙하던 것을 뒤집어보고, 바꾸어서 보고, 그런 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이다. 그리고 감서도 그렇게 형성되었다. 하여간 tv 광고가 시키는 대로 하면, 마치 위통이 생겨서 금방 죽기라도 할 것처럼, 내가 불편하다. 성격 한 번 지랄 맞다. 그래서 공부랑은 잘 맞았다. 대학원 들어가자 마자 선생들이 엄청 잘 해줬다. 익숙한 게 싫으니까, 뭔가 지랄 맞은 얘기를 하는데, 워낙 얌전한 학생들이 대학원까지 가니까, 정말 박사 과정 마지막 순간까지, 너무너무 편하게 공부를 했다.
한국 대학에서는 망했지만, 민간기업이든 정부기관이든, 하여간 지휘관의 자리에서는 생각보다 하고 싶은 대로, 편하게 지냈다. 워낙 다들 눈치 보고 대가리 박고 있는 회의 분위기에서, 이거 아닙니다, 이러고 손 들고 생지랄을 했으니.. 한국의 직장 분위기가 “말 꺼낸 사람이 책임지기”, 왕깡 이것저것 시켰는데, 운이 좋아서, 그야말로 일찍 공을 세우게 된. 아마 회사에서 잘 적응을 못했으면, 회사를 그만둘 생각도 못 했을지도 모른다. 더 세울 공도 없고, 이미 할만큼 했는데, 가만히 승진 나이 기다리면서.. 이거 재미없는데, 그래? 지나보니까, 잠시만 머리 박고 얌전하게 지냈으면 본부장급으로의 승진이 가능할 나이에 그만둔 이유가.. 지금보니까, 별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50이 넘으면 이런 감성들이 어지간히 죽고, 길들 나이가 되기도 한 것 같은데,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아픈 애 하나 끼워서 애 둘 보느라고 팍삭 삭기는 했지만, 감성까지 죽은 것 같지는 않다.
지랄맞은 우리의 과거로 떠나는 여행? 뭐, 그런 작업을 해보게 될 것 같다. 주변에서는, 다 그거 하라고 난리다. 주변의 전폭적인 moral support 속에서, 예전부터 해보고 싶던 것들을 이제 슬슬 하려고 한다.
3. 우리가 어떤 사람이냐? 이런 질문이 있다. 그걸 일본 여행 가는 한국의, 그야말로 ‘조또’ 유명하신 분들 보면서 좀 생각이 났다. 힘들게 일본 갔는데, 얘들은 뭐 먹고 사나, 이런 것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고난을 이기고, 요렇게 살게 되었나, 문제는 뭔가, 어떤 어려움이 있는가, 이런 걸 살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에라이.. 조또 유명하신 분들이 일본에 가서 제일 열심히 찾는 게, 백제의 흔적, 신라의 흔적, 그것도 어려운 지역에 가면 조선시대 끌려간 도공들의 흔적. 뭐, 궁금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만 궁금해하는 걸 보면서 이거 참.. 그랬다.
그래서 결국 일본은 우리에게 뭐다 뭐다 다 배워간 거다, 결국은 우리가 더 우수했다, 이런 것만 재밌어 하는 걸 보면서.. 이건 민족주의도 아니고, 그냥 인종주의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우리 인생은 축구 한일전?
난 내 윗 선배들의 이런 인종주의에 가까운 감성이 싫었다. 그렇다고 일본 민중주의? 맨날 입으로는 엄청 민중 민중 하다가, 일본 얘기로 돌아서면 그 때 원자탄이 더 떨어졌어야 해.. 뭐, 이런 좌파가 다 있나 싶었다.
일본이 좋다는 게 아니다. 축구 한일전의 감성에서 한 발자국도 못 나오면서, 한국을 이끌고 나간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게, 이게 좀 이상해 보였다. 말은 글로벌 글로벌 하는데, 비싼 술 처먹고 고급 안주 먹을 때만 글로벌. 일본은 이겨마셔야 하고, 미국은 좀 잘 되는 게 좋고, 거기에 우리도 좀 끼어서.. (그리고 슬쩍 우리 아들도 미국통으로 좀.)
에라이.
이완용이 죽으면서 자기 아들에게 한 유명한 유언이 있단다.
“아들아, 너는 친일파 하지 말고, 친미파 하는 게 좋겠다. 아무래도 이 세상은, 미국 중심으로 갈 것 같다.”
이완용이 1926년에 죽었다. 한국 엘리트 아니 남성 엘리트의 거의 대부분은 이완용의 유언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그 때가 아직, 일본이 위기도 아니였고, 미국이 엄청난 세계적 패권을 가지지도 않았을 때였다. 이완용의 판단대로 한국 엘리트들은 살았고, 그렇게 힘을 가지게 되었다.
“아니, 그렇게 일제가 금방 망할 줄 알았나?”
매국노로 몰린 친일파, 춘원 이광수는 인생이 참 비참하다. 전쟁 중에 객사했다. 그는 불행히도 이완용의 유언대로 하지 않은 것 아닌가? 두고두고 역사에 개쪼다로 남았다.
이런 얘기들을 21세기 버전으로 복원하는 작업 같은 것을 좀 해보고 싶다.
4. 작업을 하면, 자신도 모르게 생겨나는 감성 같은 게 있다.
그런 얘기들을 포토 에세이 같은 형태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움의 감성에도 위선이 있다. 그 위선도 싫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결국 또 같은 위선 안에 들어간다. 그게 편하니까. 그래서 조또.. 이완용 유언을 공들여 모시면서 한국의 엘리트들이 형성되고, “우리가 잘 못한 게 뭐가 있냐”, 이런 거지 같은 소리를 하고, 그리고도 쪽팔린 줄을 모르고..
좀 더 신랄하게, 씨발소리 팍팍하면서, 이승만의 동상에 퍽큐하는 그런 포토 에세이 같은 것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감성이다.
그래, 무당 집에서 노국공주 모시는 것도 이해하겠어. 아니, 관운장 모시는 것도 이해하겠어.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영빨이 좋다는 거 아냐?
그런데 맥아더는 왜 모시는데?
그래, 하나님 찾고, 성경 찾고, 예수님 찾는 것까지는 이해하겠어. 그런데 점집에는 왜 가는데? 그것도 혼자 살짝 가지, 권사님 휘하, 집사님 모시고, 떼로 교회에서 점집 가는 건 뭔데? 야소교야, 샤머니즘이야, 뭐야? 그러면서 제사지내는 건 또 왜 금하는데? 아예 점집을 가질 말던지.
앵두꽃이 피었다. 이제는 진짜 봄 온 것 같다. 예전에 비하면 정말 아무 일도 안 하고 살았더니, 배에 붙은 살이 안 빠진다.
90년대 후반, 경제 위기와 함께 '고객 만족'이라는 단어가 유행했던 기억이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정말로 살벌한 사회가 되었다. 아무도 만족하지 못하고, 모두가 고통 받는 사회가 되었다. 분 단위, 초 단위로 이윤을 생각한다. 그것만 그러나? 거의 일일 단위로 대통령 지지율을 집계하고, 매일매일 뭐가 변했는지 분석을 한다. 그래서 좋아졌을까? 아무도 만족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일점에 일희일비하고, 매일매일 누군가 뻘타치면, 그걸 즐긴다. 정치의 실패라는 생각이 든다. 야구 게임도 이렇게는 안 한다. 한 시즌을 놓고 가는 거라서, 이기는 날과 지는 날, 그걸 평균적으로이해하면서 야구를 본다. 매일매일 지지율 조사하고, 매일매일 tv에서 분석하는 사회, 그래서 정치가 더 좋아졌는지 잘 모르겠다.
앵두꽃이 피었다. 몇 년 전에도 이 카메라로 이 앵두꽃을 찍는 마지막 해가 되기를 바랬고, 작년에도 내년에는 새 카메라로 앵두꽃을 찍고 싶었다. 올해도 그렇다. 불행히도, 올해도 카메라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봄에 이미 알고 있다. 뭐, 그렇다고 더 불행한 것은 아니다. 작년에는 차를 샀다. 어디가서 카메라 살 돈 없다고 얘기하면, 맞아 죽을 것 같다.
앵두꽃이 피는 계절, 나는 히사이시 조의 자서전을 읽고 있다. 너무 재밌어서 조금씩 아껴 읽는.. 게 아니라, 급한 것 처리하고, 잠시 읽다가 다시 급한 거 처리하고.
'고객 만족'이라는 단어가 휩쓸고 간 후, 뭔가 만들고자 하던 사람들의 시대가 끝이 나고, 뭔가 팔려고 하는 사람들의 시대가 열렸다. 만들어야 팔 거 아냐? 아니다. 파는 놈이 뭘 만들지를 결정하는 시대가 되었다. 만드는 것과 파는 것, 나는 앵두 꽃을 보면서, 여전히 만드는 것이 더 재밌지, 이런 노스탈지아 가득한 감성을 느낀다.
미래는 만드는 놈에게 밝아야 한다, 이런 당위적인 느낌은.. 파는 놈들 전성 시대에서는 무의마한 얘기일지도 모른다.
파는 놈이 앵두 꽃 제대로 본 적이나 있을까 싶다.. 제값 받고 앵두 팔기도 어려운데, 앵두 꽃이 뭐당가? 이런 넘들의 시대다. 그리고 거기 붙어서 권력을 쓰는 넘들이 화려하게 만개한 시대다.
그래도 나는 앵두꽃 사진을 올해도 찍는다. 전성기 따위, 안 와도 좋고, 없어도 좋다. 내가 사는 삶, 아직도 즐기는 삶, 하루하루가 내게는 전성기다. 봄, 일요일 오후, 앵두꽃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사람이 한국에 몇 명이나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