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두꽃이 피었다. 이제는 진짜 봄 온 것 같다. 예전에 비하면 정말 아무 일도 안 하고 살았더니, 배에 붙은 살이 안 빠진다.

90년대 후반, 경제 위기와 함께 '고객 만족'이라는 단어가 유행했던 기억이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정말로 살벌한 사회가 되었다. 아무도 만족하지 못하고, 모두가 고통 받는 사회가 되었다. 분 단위, 초 단위로 이윤을 생각한다. 그것만 그러나? 거의 일일 단위로 대통령 지지율을 집계하고, 매일매일 뭐가 변했는지 분석을 한다. 그래서 좋아졌을까? 아무도 만족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일점에 일희일비하고, 매일매일 누군가 뻘타치면, 그걸 즐긴다. 정치의 실패라는 생각이 든다. 야구 게임도 이렇게는 안 한다. 한 시즌을 놓고 가는 거라서, 이기는 날과 지는 날, 그걸 평균적으로 이해하면서 야구를 본다. 매일매일 지지율 조사하고, 매일매일 tv에서 분석하는 사회, 그래서 정치가 더 좋아졌는지 잘 모르겠다.

앵두꽃이 피었다. 몇 년 전에도 이 카메라로 이 앵두꽃을 찍는 마지막 해가 되기를 바랬고, 작년에도 내년에는 새 카메라로 앵두꽃을 찍고 싶었다. 올해도 그렇다. 불행히도, 올해도 카메라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봄에 이미 알고 있다. 뭐, 그렇다고 더 불행한 것은 아니다. 작년에는 차를 샀다. 어디가서 카메라 살 돈 없다고 얘기하면, 맞아 죽을 것 같다.

앵두꽃이 피는 계절, 나는 히사이시 조의 자서전을 읽고 있다. 너무 재밌어서 조금씩 아껴 읽는.. 게 아니라, 급한 것 처리하고, 잠시 읽다가 다시 급한 거 처리하고.

'고객 만족'이라는 단어가 휩쓸고 간 후, 뭔가 만들고자 하던 사람들의 시대가 끝이 나고, 뭔가 팔려고 하는 사람들의 시대가 열렸다. 만들어야 팔 거 아냐? 아니다. 파는 놈이 뭘 만들지를 결정하는 시대가 되었다. 만드는 것과 파는 것, 나는 앵두 꽃을 보면서, 여전히 만드는 것이 더 재밌지, 이런 노스탈지아 가득한 감성을 느낀다.

미래는 만드는 놈에게 밝아야 한다, 이런 당위적인 느낌은.. 파는 놈들 전성 시대에서는 무의마한 얘기일지도 모른다.

파는 놈이 앵두 꽃 제대로 본 적이나 있을까 싶다.. 제값 받고 앵두 팔기도 어려운데, 앵두 꽃이 뭐당가? 이런 넘들의 시대다. 그리고 거기 붙어서 권력을 쓰는 넘들이 화려하게 만개한 시대다.

그래도 나는 앵두꽃 사진을 올해도 찍는다. 전성기 따위, 안 와도 좋고, 없어도 좋다. 내가 사는 삶, 아직도 즐기는 삶, 하루하루가 내게는 전성기다. 봄, 일요일 오후, 앵두꽃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사람이 한국에 몇 명이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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