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폐렴을 앓지 않은 것은 올 봄이 처음이다. 그 동안에 내 삶은 많이 바뀌었다.
요즘 누가 어떻게 지내냐고 하면, 태어나서 가장 행복한 시간들을 보낸다고 한다. 속상한 일이나 기분 상하는 일이 없냐, 그렇지는 않다. 내가 하는 일은 뭐든지 다 잘 되고, 여기저기 뻥뻥 터지고, 뭐 전혀 그렇지 않다. 그냥 밥 먹고 사는 데 불편하지 않을 정도다. 그렇지만 아이가 이제 급하게 아플 일은 없을 것 같으니, 속이 진짜로 편하다. 세상에 이것저것 심통나고 힘든 일들, 애 아픈 거에 비하면 그건 걱정도 아니다. 안 되면 돌아가고, 힘들면 그만하고, 재미 없으면 때려치고, 간단한 솔류션들이 존재한다. 그게 싫어서 머리 디밀고 죽어라고 버티는 것 아닌가? 그런 종류의 고민은, 아이가 아픈 걱정에 비하면 걱정 축에도 못 들어간다.
가끔 애들하고 운동장에 가는데, 오늘 처음으로 둘째가 골키퍼가 아니라 진짜로 공을 찼다. 댕굴댕굴 구르다가, 진짜로 얼굴 쪽으로 날아오는 공도 찼다. 어, 괜찮은데. 자기도 차고 나서 엄청 기분 좋아한다. 원래 공놀이가, 잘 되면 재밌다. 잘 안 되도, 그래도 재밌다. 공 굴러가는 것 자체가 사람을 즐겁게 한다.
둘째 슛하는 거 보고 있으면, 아름답다. 살면서 진짜로 행복하고, 아름답다, 그런 느낌이 들 때가 몇 번이나 있겠나 싶다. 나도 비싼 거, 맛있는 거, 많이 먹어봤지만 그렇다고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낯선 여행지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기 어렵다.
가을이 깊어간다. 이 시간이 얼마나 갈지 나도 모른다. 지금 나는 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지나고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을 굳이 잡으려고 하지 않는다. 잡는다고 잡아질 것도 아니다. 행복을 잡으려 하지 않는다, 알지만 그렇게 행동하기가 쉽지 않다.
엎어지면 쉬어간다고 한다. 나는 엎어진 김에 아예 자리 깔고 살림을 차렸다. 행복은 그곳으로 자기가 찾아왔다. 높은 거, 멋진 거, 훌륭한 거, 대단한 거, 그런 것들과 행복이 같이 가지는 않는 것 같다. 그리고 화려한 거, 값진 거, 갖고 싶은 거, 그런 것들이 아름답지는 않은 것 같다. 가끔, 너무 값나가는 화려함은 재수 없다. 가장 큰 아름다움과 행복은, 일상에 있는 것 같다.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찰나가 너무 짧을 뿐이다.
(캐스퍼 렌즈는 형편없는 조리개값으로 인해 다루기가 어렵다. 실내에서도 거의 못 쓰고. 그래도 가볍고, 상대적으로 휴대가 쉽다. 그야말로 딱 한두 장을 위해서 가지고 다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