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하면 별 일정을 만들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나의 일정 관리법이다. 어차피 애들 보다가 지키지도 못할 약속, 만들지도 않는다. 방송 진행이나 고정, 원래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제 내 삶과는 아주 먼 곳으로 가버렸다. 차라리 낫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하루에 두 가지 일정을 만들지는 않는데.. 가끔 어쩔 수 없이 두 탕을 뛰어야 하는 날이 생긴다.

내일이 그렇다. 낮에는 kbs 라디오 특집 녹음이다. 용민이 방송이라서.. 아, 네. 김기식 선배랑 간만에 왕창 떠들게 생겼다. 김기식, 인생 참 어렵게 꼬인 인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그리고 잽싸게 집에 오면서 애들 하원시키고, 아내 퇴근 때 다시 바턴 터치. 시간이 애매하기는 한데, 내일은 아내가 조금 조정해볼 수 있다고 한다. 아슬아슬한 허들 게임의 연속이다.

저녁을 먹을 수 있으면 다행이고, 못 먹으면 할 수 없는데.. tbs에서 하는 <북소리> 녹화. 직장 민주주의 편이다. 대본 읽었는데, 뭔 사례를 얘기해달라고 한다.

'제광제부서' 얘기를 할까 싶은. 권수정 정의당 서울시 의원에게 들은 얘기다. 제주, 광주, 제주, 부산, 서울, 그렇게 찍는 국내선 하루 일정. 승무원 죽어난다..

이렇게 하루에 일정의 두 개 겹치는 날이면, 앞으로는 절대로 이렇게는 안 한다고 결심에 또 결심을 한다.

살면서 신세지고 산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지, 아 네, 예, 해드려야죠, 이러다 보면.

돈으로 치면, 진짜 미친 짓이다. 이렇게 두 군 데 가서 받는 돈이 10만 원이나 넘을까 말까? 물론 진행을 하면 그것보다 많이 받기는 하는데, 그것도 큰 차이는 없다. 게다가 주간 방송이면, 아예 그 돈 주고, 나 좀 귀찮게 하지 말라고 하는 게 훨씬 낫다.

나도 책을 엄청나게 파는 건 아니라서 어디다 광고하기는 좀 민망하지만.. 그래도 방송출연료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냥 1년에 2~3권 낸다고 생각하고, 꾸준히 엉덩이 붙이고 있는 게 생활이 훨씬 더 편한.

물론 일간 방송을 진행을 하면 그것보다는 낫기는 할텐데.. 그럴 거면 차라리 취직을 하지. 애는 누가 보고..

그래서 이래저래 계산을 해보면, 차분하게 앉아서 책 읽고, 조심스럽게 인터뷰 진행하고, 생각을 잘 정리하는 게 훨씬 나은.

계산서는 그렇게 진작에 나왔는데도, 가끔 이렇게 말도 안 되게 하루에 두 탕을 뛰어야 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 내가 빙신이라서 그렇다.

남들 하는 것처럼 "바쁘다", 한 마디 하면 그만이다.

50대 에세이 정리하면서, "바쁘다"는 말을 안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앞으로는 절대로 바쁠 생각이 없다.

(그 얘기를 안 하니까 대체적으로는 안 바쁜데, 가끔은 이렇게 심히 바쁜, 그것도 아주 실속 없이 심히 바쁜..)

영광이라는 게 그렇다. 내가 지금보다 더 영광스러워서 인생에서 좋아질 게 뭐가 있겠나. 지금도 충분히 영광스럽다. 유명도 그렇다. 더 유명해져서 뭐 할려고? 밤에 가끔 술 사러 내려가는 구멍가게에서 할아버지가 "어제 tv에서 봤어요", "아, 네.." 이게 행복하냐? 하나도 행복할 것 아니다. 권력? 그런 거 가져서 뭐하게. 돈? 지금도 사는 데 불편하지 않다. 아반떼로 만족하면, 크게 목돈 들어갈 일도 없다.

얼마 전에 후배가, 도대체 왜 국회의원 안 하느냐고 물어봤다.

해 뭐하게?

이렇게 물어보니까, 갑자기 할 말이 없어졌는지, 그냥 웃었다.

요 몇 달 사이에도 국회의원 직빵 가기 좋은 자리에 대한 제안이 당에서 왔었다. 도와줄 마음은 있지만, 애 보다 말고 뛰어갈 생각은 별로 없고, 이름 걸고, 이름 날릴 생각도 없다.

나는 지금이 딱 좋다. 이래저래 많이 줄였는데, 여전히 방송이 많다. 사실 이것저것 연락 오는 대로 다 하면, 요즘 같으면 전업 방송인 만큼 분량이 나올 것 같다..

부질 없는 짓이다.

애들 둘 키우고, 고양이랑 부대끼며 지내는 지금의 삶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그리고 가끔, 이런 건 왜 우리 못한단 말이지? 그렇게 일 년에 몇 번 그야말로 미래적 가치나 숨은 약점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벤츠는 안 탄다, 그렇게 50대 에세이 쓰면서 마음을 먹는 순간, 내 삶의 경제적 고통은 끝이 났다. 쓰는 돈이 없는데, 모자랄 돈도 없다.. 그냥 세 끼 밥 먹는 걱정 없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저 인생에 마지막 남은 소망 같은 게 있다면, 막 자리를 잡기 시작한 뱃살이나 좀 해결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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