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에서 마련해주는 텃밭에 오늘 처음 모종을 심었다. 큰 애는 이제 몇 번 해봐서 능숙하게 잘 한다. 둘째는 작년에는 흙만지 싫다고 안 했다. 올해 처음 심는 걸 해봤다.

농사가 교육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처음 생각해본 것은 2001년쯤의 일이다. 어떻게 하다보니까 장애인 교육하는 특수교사들과 알게 되었다. 장애인 분리 교육이 아니라 통합 교육에 대해서 생각이 처음 정리된 것도 그즈음의 일이다. 하여간 일반 학교에 다니는 장애인들을 위해서 뭘 하면 좋을까, 총리실에서는 그즈음 7차 교육과정에 대한 논의가 한참이었다. 그러다 얘기가 나온 게 농업교육이었다. 그 때만 해도 어린이들이 다룰 수 있는 작은 농기구 같은 게 거의 없었다. 독일에 갈 때마다 모종삽 셋트 같은 것들, 정말 예뻐서 누구라도 만져보고 싶은 그런 것들을 사다 주었다.

그게 학위논문 같은 게 아니라 - 그래봐야 정책 현장이지만 - 현실에서 농업을 내가 처음 접한 순간이다.

주로 아내가 하기는 하지만, 우리가 텃밭을 하기 시작한 것은 이제 10년 정도 된다. 애들 아파서 그야말로 던져놓고, 자라거나 말거나 한 때도 있지만, 하여간 그것도 10년 가까이 된다.

큰 애는 어린이집 알림장에 농사를 잘 짓는다고 적혀 온다. 별 거는 아닌데, 흙만지는 것을 무서워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늘 하는 것도 아니니까, 가끔 뭘 심거나 손을 보는 걸 큰 놀이라고 생각한다.

올해는 농업경제학을 무조건 연내 출간할 생각이다. 미뤄도 너무 미뤘다. 게임중독에 빠진 아들이 중3 올라갈 때 아빠가 편지를 쓰기 시작해서, 1년간 쓰게 되는 것이 설정이다. 어려서부터 텃밭을 해봤다는 사실만 빼면, 대체적으로 내가 만나게 되는 일상의 얘기를 그대로 하려고 한다.

이렇게 방향을 바꾸게 된 중요한 계기 중의 하나는 제이미 올리버에게서 왔다. 불량 청소년 얘기에서 시작된 제이미 올리버의 신화는 결국 영국의 중학교 급식체계 자체를 바꾸게 된다. 그리고 여왕으로부터 작위도 받았다.

그즈음 영국의 패션 위크가 헤매다가 엄청나게 영향력이 커졌다. 내가 처음 패션 시장 공부하던 20년 전에는 밀라노가 중요했지, 영국 패션위크는 쳐주지도 않았다. 지금은 파리 패션위크와 함께 양대 패션으로 다룰 정도로 커졌고, 밀라노는 예전에 제쳤다.

최근의 요리와 식품 그리고 농업에 관해서는 영국이 스위스만큼이나 중요한 텍스트다. 만약 처음에 계획한 대로 10년 전에 농업경제학 책을 썼으면, 스위스가 기본 텍스트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제이미 올리버를 축으로 하는, 영국이다.

농업을 교육으로 본다.. 이게 내가 마지막으로 농업 다루던 시절에 마지막으로 제시하던 건데.

안타까운 얘기지만, 이 얘기가 흐르고 흘러서 충청도까지 갔고, 이걸 전격적으로 받은 사람은 안희정이다. 약간의 인물 배경 같은 것들이 좀 있기는 한데, 하여간 가장 적극적으로 농업을 교육 프로그램으로 생각한 사람이 안희정 지사였던 것은 맞다. 이래저래 길이 엇갈려서.. 결국 농업 얘기로 안희정과 차 한 잔 마시게 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정책으로 보면, 안희정이 잘 한 것도 있고, 못한 것도 있다. 잘 모르면서 아는 척만 한 것도 없지 않다. 그렇지만 농업교육에 관해서는, 하여간 그가 가장 적극적이었다는 사실은 맞다.

그런 얘기가 제이미 올리버 얘기와 만나서, 작년부터 올해 사이, 내 안에서 자라고 자라서 10년 전과는 전혀 다른 시선으로 정리해나가는 농업 경제학이 되어간다.

남자들에게 내가 농업과 관련해서 해주고 싶은 얘기는 딱 하나다. 자기 먹고 싶은 것은 자기가 해먹자..

먹는 걸로 아내와 다툴 일이 거의 없는 게, 뭔가 맛있다고 같이 얘기한 게 있으면..

검색해서 맛집에 가는 게 아니라, 그냥 내가 시장 봐서 그걸 해서 먹는다. 그게 더 빠르다.

그렇게 살면 편하다. 집에서 내가 해먹는 게 제일 맛있고, 그게 힘드니까 식당에 가서 먹는다.

불편한 점도 생겼다. 우리 집 애들은 절대로 식당에 안 갈려고 한다. 가끔 식당에 한 번 가려면..

"그럼 내가 오늘 좀 양보하지, 아빠 사정이 그렇다니."

큰 애가 잘난 척하면서 하는 말이다. 이게 남자들의 일생에 중요한 시대가 오는 중이다. 결혼하거나 말거나, 그것과 상관 없이.

community-supported agriculture,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내가 쓰는 농업경제학의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이게 가능할 수 있는 사회.. 작은 농업 교육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시대의 남자들, 특히 약간 운동권 그리고 상당히 엘리트, 그런 사람들이 이걸 못 배웠다. 그래서 그들이 지성을 모아서 만들어낸 말이 "핸드폰 팔아서 쌀 사먹으면 된다." 정말로 내 친구들이 그런 말 할 때.. 판사도 그런 말 하고, 검사도 그런 말 했다, 진짜로. 에라이, 못 배운 것들아..

우리 아버지는 나를 육사 보내고 싶어하셨다. 그래서 타협점으로 공사가 결론이 되었다. 나도 비행기를 좋아했고, 비행기 조정을 하고 싶었다. 아마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는 불행한 역사가 없었다면, 나는 공군 근처에서 뭘 하는 그런 삶을 살았을 것 같다. 5.18을 보고, 광주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에라이, 군바리들아!

전환점이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똑똑한 남자애가 집안에 있으면 어떻게든 육사를 보내야 한다는 시기에서, 막 서울대 법대로 바뀌던 시절이었다. 농업에 대한 최소한의 소양, 음식에 대한 기초 지식, 이런 게 필요하다는 것은 아무도 생각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우리 시대에는 남자가 똑똑하면 무조건 법대.. 밥은 엄마가 해주고, 너는 공무만 열심히.

그렇게 귀공자들이 되어갔다. 그리고 엄마가 아내로 대체되고, 그렇게 고상하게 어른이 되어서, 결국 자연의 이치와 생태의 순환성 같은 것은 시민단체의 거지같이 일상사는 것들이나 떼법으로 외치는..

그들이 그렇게 승진 열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시기에, 나는 어슬렁거리고 다니면서 텃밭이나 살피고, 전국의 유기농이나 급식운동한다는 농민들 만나고 다녔다.

학교급식이 사회적 의제로 뜬 건 그 다음이다. 초기 급식 운동 아이디어를 형성시킨 몇 사람이 있다. 나도 그 중의 한 명이었다.

그 모든 것을 모아서,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몇 통을 써보려고 한다. 그게 내가 쓰는 농업경제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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