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승호도 이제 나이를 먹는다. 우리, 다 나이를 먹는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어렴풋하게나마 홍대 앞에서 만났던 청년 느낌이 조금은 났었다. 이제 우리에게 그런 어렴풋한 느낌 같은 건 사라져버렸다.

우리 시대가 풍요로왔던 것은, 그래도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만나고, 기록하던 지승호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들 지 잘난 맛에 살던 시절.

언젠가 내가 지승호에게 다시 인터뷰집 하자고 부탁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아직은 그런 때는 아니다. 나는 지금 애들 손 붙잡고 격랑의 시절을 보내는 중이다. 언젠가 다시 인터뷰집을 낼 때에는, 인세를 나누는 일 같은 건 하지 않고.. 전부 그에게 주는 계약을 할 생각이다.

나는 그 시절을 행복하게 건너왔다. 인세를 조금 더 받거나 덜 받거나, 강연비를 받거나 무료로 하거나, 살아가는 데 아무 차이도 없다.

그가 환갑을 바라볼 때쯤, 좀 더 편안하게 삶을 즐길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인터뷰 작가의 괴로움과 즐거움: 지승호 인터뷰

[나와 너]의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1914년 5월 어느 날, 하나님의 존재를 믿느냐는 한 목사의 질문을 받는다. 그리고 어떤 깨달음에 도달한다.

“만약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이 제3인칭으로서 그(하나님)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이라면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신을 믿는다는 것이 그 분과 대화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면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곳에선가 ‘(나는 너를) 사랑해’라는 떨리는 목소리가 기어코 입 밖으로 터져나올 테고, 그 고백은 누군가에게 벅찬 기쁨이나 깊은 슬픔을 만들어내고 있을 테지만, 부버는 “사랑은 ‘나’에 집착하여 ‘너’를 단지 ‘내용’이라든가 대상으로서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사랑은 ‘나’와 ‘너’ 사이’에 있다.”고 선언한다.

사랑은 주어와 목적어 사이에 이루어지는 감정의 소유 관계가 아니다. 그것은 나라는 주어가 너라는 목적어에게 내 진심이라는 ‘사랑’을 던지는 그런 행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지난주, 지승호 작가를 만났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인터뷰 단행본을 펴낸 작가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인간과의 관계, 특히 대화에 관해 누구보다 오랫동안 고민하고, 직업으로서 작업해온 사람이라는 의미다. 인터뷰는 늘 사람과의 관계에 관해 고민해야 하는 작업이면서, 특정한 인격을 ‘정보’로 대상화하는 작업이다. 왜냐하면 독자들이 궁금한 건 그 인터뷰이에 관한 어떤 정보이거나 그 인터뷰이가 말해주는 어떤 정보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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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진의 <플라이백>에 대한 서평을 썼다.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었다. 결국에는 약간 톤다운을 해서..

 

어쨌든 사연 넘치는 인생을 살 수 밖에 없게 된 한 사나이의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조선일보

플라이백


우석훈 경제학자
경제학자로 살다 보니 습관적으로 자본과 노동이라는 이분법적 범주를 먼저 생각한다. 자본에 이득이 되는 것, 노동에 이득이 되는 것. 이런 도식적 구분은 많은 문제에 간편한 설명을 제공한다. 10여년 전 낸 책 '88만원 세대'는 자본이 단기적 이윤만 너무 추구하다가 청년들의 기본적 삶은 물론 '인간의 재생산'에도 문제를 발생시킨 것이라는 간단한 문장 위에 세워져 있다. 비정규직 문제도 이렇게 보면 설명이 쉽다.

그러나 이런 단순한 시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도 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소위 '땅콩 회항'이나 조현민 전 전무의 '물컵 사건'이 그런 사례다. 둘의 행동은 노동자에게 도움이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자본의 입장에서 볼 때도 전혀 도움이 안 되는 행동이었다. 주가 하락 등 기업 가치가 떨어졌고, 신뢰도 같은 상징적 자본도 결정적 타격을 입었다.

회사 경영주 또는 상급자의 이른바 '갑질'은 다른 OECD 국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현상이다. 선진국 회사들은 대체로 직장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경영주의 전횡을 견제하는 장치를 어느 정도 갖추고 있다. 원칙 있는 회사라면 고위층의 일방적 명령으로 활주 중인 비행기를 돌려 세우고 여객 사무장을 공항에 내려놓고서 다시 출발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사회적 견제가 부족하고 긴장감 없는 특수한 기업 구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땅콩 회항' 당시 뉴욕 공항에 홀로 남겨진 박창진 전 사무장이 평직원으로 강등된 후 회사에서 버텨나간 얘기를 책으로 썼다. '플라이백'(메디치미디어). 회항을 뜻하는 항공 용어다. 당신이라면 어느 날 갑자기 뜻밖의 일로 회사 고위층에게 찍혀 평사원으로 강등됐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사표를 내면 속 시원한 일이겠지만, 대한민국 직장인 대부분은 십수 년 다닌 직장을 떠나면 기댈 곳이 없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아가더라도, 그 누구도 내 존엄성만은 빼앗을 수 없어요." 그가 인용한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 구절이다. 개인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조직 문화는 직장의 비용 감소나 효율 증가 혹은 창조 능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자본에 도움이 되는 일도 물론 아니다.

자본과 노동 모두에 이익이 되는 직장 민주주의를 고민해야 할 때가 왔다. 새로운 규범과 약속 그리고 제도가 필요하다. 직장이 유토피아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괴로운 지옥 같은 곳이어서는 노동과 자본,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21세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우석훈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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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이라는 개념에 집중해서 세상을 보던 시절이 있었다. 책은 별로 힘을 못 썼는데, 동아일보 같은 데에서 성숙은 아니라고 꽤 난리를 쳤었다. 대중적으로 뿌리는 못 내리고, 아주 상층부의 소모적 논쟁만 생겨났던..

그리고 다시 몇 년이 지났다. 나는 성숙해졌는가? 개뿔이다. 힘들 때 성숙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쉽다. 그냥 고개 처박고 있으면 된다. 잘 될 때 혹은 좋은 흐름을 탔을 때, 그 때가 어렵다. 좋으면 고개 빳빳이 들고, "다 내가 잘 해서 이렇게 된 거야", 이렇게 행동하게 된다.

성숙이 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한국에서는 남자랑 여자랑 비교하면 좀 더 쉬운 것 같다. 나이 많은 사람들에 관한 얘기다.

남자 특히 성공한 남자 중에서 그 사이 성숙해진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보다는 더욱 더 꼰대처럼 되어간다.

진중권은 성숙했을까? 나는 그를 선배로서 존경하고 존중한다. 그렇지만 요 몇 년, 진보누리 시절의 진중권에 비해서 더 성숙해진 것 같지는 않다.

장하준은 성숙해졌을까? 자주 보는 사이는 아니라서, 그의 인격과 삶은 잘 모른다. 그러나 그가 하는 얘기들이 부쩍 성숙해졌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는다. 그도 어쩌면 삶의 어려운 순간을 지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해 본 적은 있다.

문재인 정부의 초대 정책실장이었던 장하성은 성숙해졌을까? 글쎄.. 참여연대를 움직이던 그 시절에 비해서 진짜로 국민경제 전체의 콘트롤 타워 역할을 했으니까. 상식적으로는 그 이상 더 성장과 성숙의 기회를 갖기는 어려울텐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몇 년 전에 비하면 분노가 는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그렇다면 유시민은? 그는 호불호가 갈리지만, 그가 정의당 한 가운데에서 많은 고생을 했고, 그 고난을 짊어지고 살았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몇 년 전과 비교하면, 그래도 그는 표정이 많이 밝아졌다. 그리고 더 가볍고 경쾌하게 움직인다. 모르겠다.. 혹시 그 과정을 겪으면서 내면적으로는 더 성숙해졌을지도.

가끔이라도 보는 남자들 중에서 더 유명해지거나, 더 높아진 사람들은 꽤 많다. 성숙이라는 기준으로 보면, 더 성숙해졌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은 잘 없다. 성숙하기 전에 노화가 먼저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할머니들 중에는 예전에 알던 것과 비교하면 확실히 더 깊어지거나 우아해지거나, 덜 날카로와지고 편안해졌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조한혜정 선생이 대표적이다. 은퇴하기 몇 년 전에 꽤 많은 연구를 같이 했었다. 그리고 은퇴 과정을 지켜보았다. 이제는 은퇴하지 몇 년, 손자를 돌보는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있다. 그래도 관심이 줄어들거나 뒤로 간 것 같지는 않은데, 확실히 더 편안해졌다.

시인 노혜경의 개인사에 대해서는 잘은 모른다. 그렇게 자주 보는 사이도 아니다. 그렇지만 방송과 글로 보던 예전의 그의 모습과 요즘의 그의 모습을 단편적으로 비교해보면, 확실히 뭐라고 표현하기는 어려워도 변화가 있기는 한 것 같다. 만약 그걸 성숙이라고 부른다면, 그렇게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여성들은 40대와 50대를 거치면서 많이 변하는 것 같다. 이유는 모른다. 그리고 환갑을 바라보면서 심성에도 변화가 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물론.. 더 처먹지 못해서 환장을 하는 할머니들도 종종 봤다.

사회는 바뀌고, 시간은 흐른다. 개인들도 그 속에서 개인사의 변화와 사회적 변화를 만나게 된다. 우울증을 이겨내지 못해서 공황장애로 가는 사람도 종종 보았고, 이미 끝냈어야 할 부부 관계를 해소하지 못해 수심을 가득 안고 사는 사람도 보았다. 친구들은 잘 나가는데, 자기만 그렇지 못한 것 같아 해만 지면 소주잔을 기울이는 사람도 보았다. 그리고 많아진 돈과 명예를 감당하지 못해 점점 더 자기 안의 성으로 깊숙이 들어간 사람도 보았다.

성숙이란 뭘까? 몇 년만에 성숙 자본주의 책 내던 시절에 관한 기억을 다시 한 번 복기해본다.

80년대, 많은 사람들이 운동권이었다. 그 시절에는 우리가 어른이 되면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 같은 것들을 공유했던 것 같다.

이제 그 운동권들에게 힘과 권력이 가는 시대가 왔다. 과연 이 시기에 우리가 성숙한 한국을 볼 수 있을까? 아니, 국가는 그렇다 치고, "저 사람은 그래도 좀 성숙했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을 좀 배출할 수 있을까?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가 언젠가는 넘어서야 하는 허들을 향한 협동진화 같은 문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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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애가 어린이집 졸업하고, 학교 들어갈 때까지 시간이 비었다. 통합보육으로, 그냥 어린이집 보내면 맡아 주기는 하는데, 절대로 가기 싫다고 울고불고 난리다. 졸업했는데, 왜 또 가느냐고. 도저히 상황이 안 되어서 한 번은 보냈는데, 일찍 데리고 왔다. 그냥 되는대로 내가 집에 데리고 있었다. 며칠 아버님 댁에도 보내고..

 

하여간 2주 동안 뭐가 뭔지 정신 하나도 없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렇다고 누가 사정 봐주는 경우는 없다. 그냥 꾸역꾸역,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내 인생만 놓고 보면, 대략적으로 2010년 혹은 2011년부터 이번 겨울까지가 크게 보면 하나의 기간으로 묶을 수 있을 것 같다. 그 기간은 전체적으로 모색기였던 것 같다. 이것저것, 뭔지도 모르면서 되는대로 많은 시도를 했다. 방송도 해보고, 다큐도 해보고, 이것저것.. 그 기간의 공통점은 책을 제외하면 내가 먼저 뭐를 하자고 한 적은 거의 없던. 누가 하자고 하는 게, 여건 되면 하고, 여건 안 된다 싶으면 못하고.

 

대충 살았다. 내 일정을 나도 모른다. 애가 언제 태어날지도 모르고, 애가 언제 아플지도 모르고. 그 와중에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일정은 잠정적인 출간 일정 밖에 없었다. 꾸역꾸역.

 

Mb 후반기부터 문재인 전반기에 이르는 이 시간, 이 기간 중에 가장 큰 사건이라고 생각하면, 결국 둘째 아이의 폐렴 입원이 아닐까 싶다. 삶에 계획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것저것 일을 하면서 욕심이 전혀 없냐고 하면 그렇지도 않다. 조금은, 나도 욕심을 부려본 적도 없다. 둘째가 아파고, 계속해서 입원하면서 그냥 버티는 것도 어려웠다.

 

내가 생각하던 나의 모습 혹은 잠정적으로라도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이걸 하고 싶다, 저걸 하고 싶다. 거의 다 내려놓았다.

 

인생, 모른다. 뭔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도 오만일지도 모른다. 자기도 모르는 걸 이래라 저래라, 그것도 좀 이상하다. 난 잘 모르겠다, 그렇게 결론을 냈다.

 

큰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과 거의 10년 가까이 진행된 한 시가를 마감하는 게 묘하게 겹쳤다. 많은 것들에 대한 결정이 묘하게도 이 시기에 겹쳤다.

 

신혼 초에 아내와 술 마시는 마감 시간을 9시로 약속을 했다. 칼 같이 지키지는 못해도 정말 특별한 일 아니면 대체로 지켰다. 12시 가까이에 들어온 날이 한 번 있었다. 그리고 혼자서 보드카를 새벽까지 마신 일이 두 번 있었다. 아침에 애들 어린이집 가야 하니까, 밤에 술 마시다가도 적당히 마시고 말았다. 된장.. 애들하고 집에 있게 되는 날은 그냥 마셔 버리는.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은 결정을 내렸고, 결정을 내릴 수 없는 것은 결정을 내리지 않기로 하는 결정을 했다. 진짜 많은 결정을 했다. 사실 10년 전에는 했어야 하는 결정들을 비롯해서 지금까지 미루고 미루고, 그냥 시간만 때우면서 살았던 것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다음 주에는 큰 애가 초등학교에 들어간다. 몇 달 전에 내린 결정이지만, 아내는 한 달 동안 육아휴직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동안에 애들 등하교는 번갈아 가면서 하기로 했다. 사정이 생기면 조금씩 조정을 하면서.

 

많은 것을 결정하고 나니까 홀가분하다.

 

사실 기술적으로 내려야 하는 많은 결정들은 보령에서 마음을 먹었다. 애들 자는 동안에 잠시 나와서 서해 밤바다를 보면서 내렸다. 큰 것들은 그 때 결정을 했고.. 나머지 남은 기술적인 몇 가지 일들은 요 며칠, 어린이집 가는 큰 애랑 지내는 시간 동안에 내렸다.

 

어려서, 자신의 삶의 주인은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배웠다. 글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갈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생각을 버렸다. 그거, 되지도 않는 생각이다. 인생이 혼자 사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주인이 된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사는 것, 그거 너무 도식적이다. 헤겔을 읽은 이후로, 그런 식으로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계몽주의 시대의 산물일 뿐이다. 삶에는 그딴 거 없다.

 

명분, 기여, 재미 그리고 약간의 여유, 그런 것들이 혼재하면서 인생이라는 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내 육체도, 내 삶도, 시간 속에서 잠시 빌렸다가 다시 내려놓고 가는 것일 뿐이다.

 

누군가 빌려준 것이다. 그리고 그걸 한동안 쓰다가, 다시 누군가에게 돌려주는. 인생이란 그런 것에 더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얼핏 세어보면 둘째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 더는 내가 애들 등하교시키지 않아도 되는 시간까지, 대략 4년이 남았다. 이 정도가 내가 지금까지 살았던 삶을 조금은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살게 되는 시간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나서 4년이 지나면.. 내 삶은 과하게 행복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분에 넘치는 도움을 받은 삶이었다. 그렇게 넉넉하게 태어난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내가 태어나던 순간보다는 지금이 훨씬 더 넉넉하다. 우리 애들은 내가 어렸을 때보다 더 나은 형편에서 살아간다. 그 사이에 사회가 변하기도 했고.

 

둘째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면, 그 때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을 사회에 돌려주는 삶을 살려고 한다. 경제 다큐 같은 게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무엇인가가 될 수도 있다. 다 쥐고, 내가 제일 잘 나가, 그런 과거적 방식의 삶은 재미 없다. 꼭 돈이 아니더라도 사회에 기여하고, 돌려줄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죽을 때까지 자신의 삶을 미화하고, 조금이라도 더 큰 성을 쌓아서, 남들이 쳐다보게 하는 삶, 재미 없다. 큰 대의 명분, 그런 것도 필요 없다.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것들을 지키면서, 의미 있게 살면 그걸로 그만이다.

 

내가 제일 싫었던 말 중의 하나가 인생 2모작이라는 말이다. 농업에는 정말로 아무 관심도 없는 늙은 남자들이 한 쪽에서는 핸드폰 팔아 쌀 사먹으면 된다고 하면서, 정작 자신의 삶에는 2모작 같은, 쓰지도 않는 은유를 하면서.

 

적당히 좀 해 처 먹어라..

 

필요하던 시기에 적절한 국가 복지를 만들지 못해서, 은퇴와 연금이라는 기본 프로그램이 미비한 것을, 한 번 더 영광을 볼 수 있다.. 그야말로 지랄이다.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해야 할 지도층 인사들이, “이제는 인생 2모작”, 그런 건 진짜 아니라고 생각했다.

 

인생은 돌아보면 결국은 변명 덩어리이다. 회환도 기억 속에서 미화된다.

 

곱게 늙고, 추하지 않게 죽을 준비를 하는 것, 그게 더 중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적게 먹고, 적게 쓰고, 점점 더 내려놓고..

 

넉넉하지 않아도 서로의 존엄성을 존중하면서 사는 삶, 그게 우리가 만들어야 할 삶이고, 세상이다. 그리고 그런 나라들이 1인당 국민소득 9만불 가까이 간 나라들이다.

 

잘 사는 나라들, 우리처럼 안 산다. 경제의 역설이다. 죽어라고 야차처럼 굴어봐야, 사실 별 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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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리 까칠한 사람이 있다. 뭐, 어디 먼데 갈 것도 없이, 내가 그렇다. 내가 입으로 뱉은 말은, 정말 특별한 사유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내가 죽일 때까지 지켜지는 약속과 같다. 약속을 어기는 일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리고 약속을 어기는 일이 벌어지지 않기 위해서, 죽을 힘을 다 해 최선을 다 한다. 뭐, 가끔 번복하기도 한다. 방법 없을 때 그렇다. 그 대신에 나와 일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 돈으로는 안 된다. 돈 때문에 살지는 않기 때문이다. 죽으면 죽었지, 돈 때문에 뭘 하지는 않는다. 권력으로도 안 된다. 차라리 목을 쳐, 목을 들이밀면 들이밀지, 힘으로 나에게 협박할 생각은 아예 안 하는 게 낫다. 재미는? 재미는 중요한 기준이기는 하지만, 내가 하는 일 재밌는 일 많다. 심지어 애 보는 것도 재밌다고 생각하는, 가끔은. 그러면? 명분이 없으면 아무 일도 안 한다. 그것도 축적된 명분이 있어야 한다. 명분은 만들면 되지 않느냐? 그건 쌩양아치들이나 하는 일이고.

정치인들을 많이 안다.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여러 사람에게 묻는다. 그리고 자기가 원하는 답이 딱 나왔을 때, 에 또, 아무 거시가 저한테 이럽디다, 이거 하라고. 부드러운 명분이기는 한데, 그 답을 해주는 사람을 만날 때까지 묻고 또 묻는다. 결국에는 누구한테서는 나온다. 누가 저한테 출마하라고 합디다.. 이런 식이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가끔 하던 말을 명분으로 삼는 사람도 봤다. 그건 명분은 아니다. 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그냥 핑게일 뿐이다.

50이 넘었다. 한동안 실익과 명분을 놓고 고민하던 시절이 내 인생에도 없었다. 전혀 그런 적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몇 년 사이예 벌어진 일만 가지고 생각해보자.

차관급 자리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명분이 없었다. 내가 왜 해야 하는지,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딱히 재밌어 보이지도 않고. 후배들이 집에 찾아오고, 난리 났었다. 형, 딱 한 번만 눈감고 해라, 좀.. 우리도 좀 살자. 안했다.

지방의 한 공기업 사장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여러가지로 명분이 있었다. 하는 일도 정말 내가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일이고. 명분과 재미,이런 걸 다 만족시키는 자리였다. 그래도 안 했다. 작은 명분이 있는데, 큰 명분이 없다. 쟤는 튕기기는 하는데, 적당한 거 잡으면 바로 한다.. 그런 소리가 듣기 싫었다. 안 했다.

21세기에 명분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느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하버마스가 정당성(legitimacy) 얘기하던 독일 70년대가 딱 지금 우리랑 비슷하다. 적당히 살다가, 이제 좀 선진국 비슷하게 될만할 때.. 그 때 제일 중요한 게 명분과 소통이라는 게 버마스 얘기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랑 비슷하다.

그리하여..

나는 앞으로 명분을 지금보다 더 중요시 여기는 삶을 살기로 오늘 오전에 마음을 먹었다.

더 까칠한 사람이 되겠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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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정치교육원)

 

직장 민주주의라는 주제로 1년 넘게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살게 되었다. 사실 조직론은 전공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많이 공부하기는 했는데, 민주주의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서 이렇게 많이 고민해본 것은 처음이다. 주변에 정치학이나 경제학 전공자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조희연 선생. 하여간 입만 열면 민주주의인데, 그게 일종의 밥벌이처럼 되어버려서.. 민주주의 연구, 그것만 평생할 수 있나, 그런 생각을 좀 했었다. 지겹다, 지겨워.. 여기에 때만 되면 등장하는 정당 민주주의 얘기까지.. 나로서도 민주주의 얘기가 내 삶의 얘기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우야 동동, 직장 민주주의라는 주제를 다루다 보니까,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보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한국에서 민주주의는 정치에서만 얘기하는 경향이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에서 생태 민주주의, 젠더 민주주의, 신좌파 계열에서 2000년대 초반 이후로 많이 얘기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비주류이고, 일부 시끄러운 소수의 악악거림 정도로 치부되는 것도 사실이다. 영국 정치에서 많이 얘기한 이 시끄러운 소수, 여기저기 입닥쳐할 때 많이 사용되는 개념이 되었다. 사실 한국에서는, 별로 시끄럽지도 않다. 주목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 생태 민주주의, 생태적 정의 보다 더 먼 나라에 있는 개념 아닌가?

 

최근에 군대에서 제대한 친구들이 그런 얘기를 했다. 직장과 군대에 대한 비유를 하는데, “선생님, 군대도 요즘은 안 그래요.” 선임병과 후임병이 같이 지내다가, 딱 자기 고참될 때 바뀌어서, 완전 망했다는 얘기다. 그렇기는 하다. 군대에서도 민주주의라는 용어로 변화가 오는 건 아니지만, 인권, 관심사병 등 하여간 사회 문제가 되기는 했다. 그리고 사고 치지마, 제발”.. 관심사병의 총기 오발을 주요 모티브로 삼은 <신과 함께>가 천만 넘어갔다. 사회에서 군대식 규율을 얘기하지만, 그런 군대는 이미 한국에 없다. 과거에 존재하던 군대의 경험을 가지고 전혀 군대와도 상관없는 직장에서 군대처럼 해야 돼”, 요따구 얘기들을 하고 계시는 거다. 상사들이 얘기하는 질서 정연한 군대, 그건 그 사람의 머리 속에만 있다. 현실에서는 이제 사라지는 중이다.

 

전체적으로 한 번 봤더니,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얘기가 가장 적었던 곳이 직장과 가정인 것 같다. 직장 민주주의 얘기는 아직 시작도 안 했지만, 가정 민주주의, 이런 건 정말 요원한 얘기다. 그런 걸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도 별로 없는 것 같다. 민주주의 이전에, 부모가 자살하면서 꼭 아이들을 같이 데리고 자살하는.. 백제의 계백이야, 뭐야. 죽을려면 혼자 죽는 것도 아직 상상도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얘기 하면 교회나 절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해는 간다. 그렇지만 교회는 안 가면 그만 아니냐. 김용민처럼 종교가 인생의 출발이다시피 한 사람들은 교회를 바꾸는데 그가 가진 에너지의 절반 이상은 쓰는 것 같다. 그건 선택이다. 이도저도 싫으면 그냥 아무 데도 안 가면 된다. 그러나 가정이나 직장은 사실 선택이 쉽지 않다. 가정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의 고통은 직장에서 시작하거나 가정에서 시작한다. 연애가 고통? 그려그려, 그것도 고통이야. 그것도 죽을 것 같이 힘들기는 한데.. 메이팅의 문제를 민주주의가 해결해주지는 않을 것 같다. 데이트 폭력 등 관련된 주제들이 일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어쩔겨? 로미오와 줄리엣을 서로 배척하는 두 가문의 직장간 민주주의문제로 해석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촛불집회가 끝나고 민주주의에 대한 얘기가 좁게는 청와대, 좀 넓게는 여의도까지 포함한 정치 문제 정도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정권은 바뀔 것 같은데, 내 삶은 좀 나아지려나..” 이런 질문들로 이어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사랑 위에 세우는 우리 모두의 미래다. 한 명 한 명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결과가 촛불의 결론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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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상하게 나는 장래 희망이나 그런 게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없었다. 되고 싶은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요 몇 년 전부터 진로교육이라는 틀을 가지고 자꾸 꿈 얘기를 한다. 청소년에 대해서 욕할 때에도 "지가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전형적으로 나는 그런 걸 가져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내가 뭘 하고 싶을까? 글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요즘 내가 많은 것을 내려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한데, 사실 나는 뭐가 하고 싶고, 뭐가 되고 싶고, 그런 것 자체가 없었다.

 

꿈 좀 없으면 안 돼? 뭘 하고 싶은지, 좀 모르면 안돼?

 

그 상태로 꾸역꾸역 살았다.

 

지금도 그렇다.

 

뭘 하고, 그 다음에 뭘 하고, 이런 생각 자체가 없다.

인생은 계단이 아니다.

 

어쩌면 난 특출나게 운이 좋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되면 되고, 말면 말고, 이런 안이한 자세로 평생을 살았다. 안이함 만큼은 진짜로 일관된다.

 

나 정도 책을 읽었으면, “나는 책 읽는 게 제일 좋았다”, 이렇게 얘기할 법도 한데. 나는 지금도 책 읽는 게 싫다. 피할 수만 있으면 피하고 싶다. 그렇지만 읽지 않으면 밥 먹고 살 길이 없어서, 지금도 괴로운 걸 참고 읽는다. 이게 원래 내 성격이다.

 

내가 지킨 철칙 같은 거라면, “거짓말은 안 한다정도.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하고, 이런 걸 죽기 보다 싫어한다. 물론 거짓말을 아주 안 하지는 않는다. 꼭 해야 할 말이 아니면 입 다무는 것, 일종의 미필적 고의 같은 것이다. 싫어도 싫다는 얘기 잘 안 한다. 힘들어도 힘들다는 얘기 잘 안 한다. 그냥 참는다.

 

이런 게 내 성격이다.

 

2.

가끔 나도 나이 먹으면 뭐할까, 그런 생각을 하기는 한다. 젊었을 때에는 막연하게 노르망디 해변이나 마르세이유 같은 거친 항구 도시 같은 데에서 노년을 보냈으면 했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이런 게 다 부질없는 생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사는 곳을 좋게 만들어 야지, 어디 좋은 데 혹은 맘에 드는 데 가서 살면, 내 인생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다.

 

유명한 사람들이 돈만 벌면 미국 가서 사는 게 그렇게 꼴 보기 싫었다. 경험상 좀 지내는 거야 누가 뭐라고 하겠나만, 진짜로 미쿡에 가까워지는 게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떠벌이는 꼴이. 그야말로 아갈머리를 확 찢어버릴라.”

 

그렇게 하다가 결국 마음에 간 게, 경제다큐 같은 걸 만들거나 돕거나, 그런 일이다. , 전혀 돈 되는 일은 아니다. 그래서 열악하지만, 경쟁 같은 건 없다. 누군가의 밥벌이를 뺏는다고, 야박한 인간이라는 소리 들을 것도 없다. 그러다보니까 다큐 근처에서 지낸 게 그럭저럭 10년 가까이 된다. 기획까지 포함하면, 생각보다 좀 오래 되었다. 내가 tv에 처음 데뷔한 게, 지금은 없어진 환경 스페셜이었다. 그런 걸 누가 봐? 가을연가 찍었던 촬영감독이 왔다. 다큐가 늘 어려운 데라서, 틈 나는 대로 돕는다고 오는 아주 유명한 촬영감독들이 있다. 나중에 보니까, 진짜 영상 하나는 기깔나게 뽑은.

 

작년에 실제로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로 다큐를 만들려고 했었다. 감독도 있고,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은 대충 갖추었는데.. 문제는 도니다. 여기저기 돈 달라고 머리 숙이면서 돌아다니다가..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대충 살았을 지는 몰라도, 한 번만 도와 달라고 머리 숙이면서 살지는 않았다. 이게 된장.. 다 늙어서 이게 뭔 꼴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공무원들이 엄청 뺑뺑이 돌렸다. 얘 만나라, 재한테 부탁해라, 사실은 쟤가 담당이다.. 꾹 참고 머리 숙여야 하는데, 아이고, 이게 못하겠는.

 

물론 그 과정에서 배운 것이 아주 없지는 않다. 뭐가 문제이고, 뭐가 고쳐져야 하는 것이고, 조금은 더 생생하게 감을 잡을 수 있었다.

 

3.

둘째가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지나면, 이제 등하교 정도는 자기네끼리 할 수 있다. 이제 4년 남았다. 아마 그 때 혹은 약간 넘으면 내가 쓴 책도 얼추 50권 정도 될 것 같다. 살짝 모자랄 수도 있고. , 숫자야 중요한 건 아니고.

 

그 때쯤 되면 나도 본격적으로 경제 다큐 같은 걸 해볼 생각이다. 그게 꿈이라서도 아니고, 소원이라서도 아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것 같은데, 딱히 이런 걸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내가 한다고 해서 뭐라고 할 사람도 없고. 도와줄 사람이 없는 대신, 욕할 사람도 없다. 그런 게 난 딱 좋다. 하거나 말거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 같다.

 

외국에서는 기업이 다큐에 돈을 대는 것을 기부라고 생각하는 문화가 있다. 우리는.. 택도 없다.

 

사회과학도 어렵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이건 저예산으로 버텨볼 여지가 있다. 안 쓰고, 안 먹고.. 경제다큐는 최소한으로 한다고 해도, 돈이 조금은 든다. 그리고 다행히.. 그 정도 돈은 나에게도 있다.

 

10년 전 처음에 다큐 하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 내 주변에는 정말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까, 뜻을 같이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조금은 주변에 생겨났다. 내가 엄청 선배 대접하라는 스타일이 아니고, 엄청 대접 받아야 한다는 것도 별로 없는.. 꾸역꾸역 꾸려갈 정도는 될 것 같다.

 

가난하고, 빡빡기고.. 이거, 딱 내 스타일이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

 

약간은 동어반복인데, 선진국이 된다는 것과 다큐 특히 경제다큐 같은 것이 활성화된다는 것은 같은 말이다. 그렇다고 그게 그냥 되는 것은 아니고. 누군가는 시간과 땀을 바쳐야 한다.

 

사실 mb 시절만 아니었으면, 벌써 경제 다큐 여러 개 만들었을 것 같다. Mb 정권 초기, 영진위원장이 혹시 다큐 같은 거 할 생각 있으면 지원해준다고 했었다. 그렇게 특별한 생각이 있거나 꼬리표를 단 건 아니기는 하지만.. 그래도 mb 돈 받았다가 나중에 무슨 경을 칠 일이 생길지도 몰라서, 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그렇게 흘러서 인생이 여기까지 왔다. 나도 내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이제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렇게 살다 보니까 나에게도 약간의 로망 같은 게 생겨났다.

 

경제학자로 살았고, 평생을 계산표와 텍스트만 보고 살았다. 그리고 그 끝은 다큐로 하고 싶다.

 

물론 원하는 것을 다 하고 싶겠다는 인생은, 생각보다 재미 없다. 뭘 잘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이상하게 대충대충 계획 같은 것을 잡고, 거기에 묶여서 사는 인간들 꽤 봤다. 열심히는 사는데, 그 인생이 재미가 없다.

 

작년 초에 어느 대학교에서 왔으면 좋겠다는 얘기가 있었다. 적극적으로 응하지는 않아서, 결국 없던 일이 되었다. 그게.. 이제 와서 무슨 재미가 있겠나 싶었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이고, 애 보면서 지금하는 것 건사하기도 힘들다.

 

정권이 바뀌면 좀 더 깊은 애기들이 사회 곳곳에서 오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진 적이 있었다. 된장. 몇 넘만 인생이 바뀌고, 철학에서 다큐까지, 잡지에서 그림책까지, 다 죽겠다고 곡소리다.

 

이번 정권이 약점은, 깊이와 다양성이 아닐까 싶다. 논의는 더 깊어져야 하고, 다양성은 더 넓어져야 한다. 그게 바로 지식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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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했던 백승우 감독과 다음 주부터 직장 민주주의 다큐 작업 시작하기로 했다. 일단은 유튜브 버전으로, 작게 잘라서.. 애 키우면서도 무료하거나 따분한 일은 없다. 내 주변에서는 여전히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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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요청 엄청나게 온다. 다 하지는 못한다. 노조 통해서 오는 강연은 어지간하면 하려고 한다. 공무원 노조 통해서 신규 채용된 공무원들 교육 갔다 왔는데, 그야말로 감회가..

예전에는 전화로는 강연 요청 안 받고 메일로만 받았었다. 그새 오는 메일이 너무 많아져서, 메일 관리도 어렵다. 시간이 흘렀다.

메일 주소 두 개, 문자로 오고, 카톡으로도 오고, 메신저로도 오고.. 관리가 어렵다. 한다고 할 때는 문제가 없는데, 나중에 강연 직전에 장소 같은 거 정확히 찾아보려면.. 어디에 있더라? 기술이 좋아졌다는데, 뭐가 좋아진 건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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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민주주의, 내일은 강동구청에서 신임 공무원들 교육한다. 다음 달에는 국민연금공단에서 신규 팀장들 대상으로 강연 하기로. 사실 신임 팀장들 교육은 책 준비하면서,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다.

돌아보면 이게 바담 풍 같은 얘기다. 나는 뭐 그리 좋은 팀장이었다고.. 우리 팀은 야근 정도가 아니라, 밤 새는 팀이었다. 밤샘조. 우리 동네 팀들은 밤 새는 일들만 받아온다고, '악의 축'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청와대 보고 지시가 내려오면.. 국장 보여준다고 밤 새, 차관 보여준다고 밤 새, 장관 보여준다고 밤 새, 청와대 정책실장 보여준다고 밤 새.. 지금 생각나는 건, 그 시절의 장관 중의 한 명이 장하준 선생의 부친이셨다는 거.

그야말로 바담 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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