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민주주의 조례, 광주의 경우

 

1.

MB 시절, 많은 사람이 그랬을 것 같지만, 내 인생은 진짜로 삶의 어두운 순간을 지나고 있었다. 괴로웠다. 나꼽살이라는 팟 캐스트를 시작한 건, 대충 그 시절이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가장 인기 있던 시절이기도 했는데, 그 와중에 뭔가 느껴지는 게 있었다.

 

세상은 증오로 차 있었다. 증오가 정의이고, 그게 옳은 것처럼 되어 있었다. 그 시절은 오래 갔다. 그 힘은 박근혜 아니 순실이를 만나서 결국 폭발했다. 어쨌든 우리 모두, 아니 거의 대부분의 한국인을 움직인 것은 분노였다. 너무 싫었다.

 

2.

그 즈음에 내가 나에게 던진 진짜 질문은, 과연 분노 위에 무엇을 세울 수 있겠는가, 그런 거였다. 프랑스 혁명은 아주 길고 긴 과정이다. 당통과 로베르츠피에르 같은 우정이 결국 배신과 죽음으로 엇갈린..

 

그 시절에 분노 위에 세워진 것은 오래 가기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아마 내 분노가 절정으로 달하던 시점이 <괴물의 탄생>에서 <생태 요괴전>, 그 사이 어느 쯤인 것 같다. 그 시절의 책들은, 괜찮게 팔리고, 파장도 있었다.

 

Mb 시절이 끝나가고, 대선에서 졌다. 망했다. 나는 그 때쯤 분노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게 어렵다.

 

분노를 내려놓고 시도한 첫 책이 <살아있는 것의 경제학>이었다. 책은 망했다. , 여러 이유가 있기는 하다. 그게 내가 생각한 청년에 대한 얘기를 정리한 책이다. 책은 망했지만, 그 책에서 던져진 이슈는 살아남아서 여전히 움직인다.

 

그리고 한동안 사는 게 좀 편치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내 삶도 안정되었고..

 

사는 게 편해지다 보니까, 이름이나 명예 혹은 권력, 그런 게 다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 때쯤 내 주변에서 영향력이라는 단어들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것도 별로 의미 있게 생각되지도 않았다. 영향력이 좀 생기면 뭐 하나. 그걸 유지하기 위해서 별로 원치 않은 일을 하는, 허깨비 지랄 같은 걸 해야 하는데. 내가 지금처럼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그렇게 길게 남아있을 것 같지도 않고.

 

나한테 대박이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이 있다. 뭐라고 하지는 않지만, 나는 대박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내 입장에서, 대박 나야 뭐하겠냐? 더 유명해져서? 사는데 불편하기만 하다. 내가 가는 동네 슈퍼 아저씨가 나를 못 알아보는 정도 상황이 딱 좋다. 이미 망했다.. 자꾸 인사한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세상이 조금이라도 좋아지는 것이다. 그 외에는, 별 의미 없다.

 

물론 모든 책이 다 그렇게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두기는 어렵다. 계속 책을 쓰는 것은, 변화의 확률을 높이기 위한 몸부림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좀 더 팔리고, 좀 덜 팔리고, 나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다.

 

사회적 경제 책이나 직장 민주주의 책이 그런 흐름 위에 있다.

 

그 사이에 이 책은 꼭 돈 벌 것”, 그런 제안들이 몇 번 있었다. 돈에 내가 애정을 가질 수 있을까? 큰 의미 없다. 내가 나한테 떳떳하지 않은 책은 싫다. 편하게 먹고 살기 위해서 공부한 것은 아니다.

 

3.

직장 민주주의 책으로 광주에서 부탁이 왔다. 광주 갔다온지 얼마 되지도 않는다. 근데 이번엔 뭔가 좀 다르다. 독자들과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는 일은 없다. 그건 지방강연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늦어도 그 날 돌아온다. 아직까지 책 때문에 내려가서 그냥 자고 오는 일은 한 적이 없다. 성격 더럽게 까칠하다. 모르는 사람과 밥 먹기, 모르는 사람과 술 먹기, 제일 싫어하는 일이다. 다른 건 다 양보해도, 그것만큼은 이제 양보하지 않으려고 한다. 술이라도 좀 편하게 먹게..

 

근데 이번에는 꼭 술을 마셔야 한다는 거다. 오매매. 아는 사람 부탁도 있고, 등등, 그러기로 했다. 저자로 데뷔한지 10년 넘게, 처음이다, 그런 일은.

 

얘기를 들어보니까, 그럴 만한 일이기는 하다.

 

광주시에서 직장 민주주의를 조례로 만들겠다는 거.. 옴마. 사실 안 될 건 없다. 한국당이 어깃장을 놓아서 법률은 늘상 폭망이다. 통과도 어렵지만, 막상 통과해도 이것저것 다 빠진다. 사회적 경제 기본법이 지금 그렇게 국회에서 폭망한 상태다.

 

광주는 그런 한국당이 없는.

 

가정친화인증제가 이미 있기 때문에, 조금 변형하면 실무적으로도 크게 무리갈 건 없다. 조달사업에서 가산점제로 할 거냐, 아니면 의무인증제로 할 거냐, 그 수위만 결정하면 된다. 학교도 그냥 조례로 지정해서 학교 민주주의 추진하면 된다.

 

메이데이 때, 그걸 발표했으면 쓰겄다.. , 그런 얘기다.

 

광주에서 들은 얘기는, 좀 가슴에 남았다. 광주가 얘기하는 민주주의는 왜 늘 과거의 일인가? 좀 더 미래적 민주주의 그리고 생활 속 민주주의에 대한 얘기를 할 수는 없는가? 그렇긴 하다.

 

직장 민주주의는, 그냥 결정해서 하면 되는 일이다. 크게 정리하면, 알아도 못하는 게 있고, 몰라서 못하는 게 있다. 직장 민주주의는, 몰라서 못 하는 것에 가깝다. 국가적으로 한 번에 하려면 한국당 때문에 좀 어렵다. 그러나 자체적으로 선언 형식으로 해도 된다.

 

어쨌든 뭔가 성과가 날 때까지 좀 도와주기로 했다.

 

서울에 오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분노 위에 뭘 세우기가 어렵다. 오래 가고 강한 것, 그래서 조금이라도 세상을 바꾸는 것은 결국 사랑과 애정인 것 같다.

내가 움직여야 몇 년이나 더 움직이겠나. 두세 개만 세상을 바꾸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 아니겠나 싶다. 그러면 ‘C급 경제학자정도의 이름은 남길 것 같다. 그 이상은 바라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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