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통치

잠시 생각을 2019. 4. 20. 13:53

정치와 통치에 대해서 좀 더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좀 받았다.

최근에 쓰는 책의 보조 주제 하나가 정치다. 물론 좋은 의미가 아닌 정치다. 통치는 govern 정도의 의미다. 정부가 governing을 하지 않고, 정치만 한다면? 이런 게 내 오래 된 질문 중의 하나다.

이런 생각을 시작한 것은, 1987년의 대선을 복기하던 과정이다.

친구들이나 선배들에게 왜 그 때 노태우가 되었느냐, 물어봐야 같은 대답만 나온다. 그리고 결국 술만 마시게 된다.

보수 쪽 사람들은, 너네가 진 건 '수권 능력'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고 얘기를 했다. 도대체 저 야당이 수권 능력이 있을까, 그런 노태우의 캠페인이 유효했다는 거다. 우리는 양김의 분열 때문이다, 이런 표의 크기만 세고 분석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니면 지역 감정..

그런데 실제로 노태우에 투표한 사람들 중에, 그래도 괜찮아 보이는 사람들 찾아가 물어보니까, 수권능력이라는 참 택도 아닌 것 같아 보이는 대답을 했다. 물론 그건 보수의 오만이고, 이긴 자의 거만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여간 그 시절에 집권능력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정책과 정책 능력, 단순히 표를 더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짜로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통치는 힘으로 우악스럽게 할 수도 있고, 그래도 사람들이 느끼기에 좀 더 편한 나라를 만들면서 부드럽게 할 수도 있다. 나중에 평가는 갈릴 수도 있지만, 클린턴 시절에 경제 지표는 정말 좋았다. 경제학 교과서를 바꿔야 할 정도의 장기 호황이라고 호들갑 떨기도 했다.

여론조사가 일반화되면서, 부작용은, 통치는 사라지고 정치만 남게 된 것.

정부나 정권의 모든 행위가 대통령 지지율에 합산되어 이해되고, 또 실제로 청와대도 의사결정을 그렇게 많이 한다.

간단히 생각하면, 여론조사에 잡히지 않는 것을 잘 하는 것이 통치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정치만 너무 생각하면, 여론조사가 신경 쓰지 않는 것, 아니면 신문이 신경쓰지 않는 것은, 되거나 말거나, 그렇게 된다.

그래서 밑에서는 그냥 공무원들이 하던 대로, 실무에서는 오래된 전통대로, 적당히 해치우기도 하고, 해먹기도 하고, 그렇게 된다. 정치는 극도로 발달해도, 통치가 실패하는 경우가..

mb도 그렇고, 근혜도 그렇고, 통치는 실패한 것 같다. 보수의 수권능력은, 그들의 해쳐먹는 능력으로 전도되었다.

이 통치는 좌우의 문제도 아니고, 진보/보수의 문제도 아니다. 정치가 통치에 기여해야 하는데, 지금은 정치가 통치를 붕괴시키는 지경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여기에서부터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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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대장정 코멘터리 북

1.
아침에 둘째 어린이집 데려다 주면서, 문득 이 시기도 언젠가는 끝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팠던 아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정말 내가 많이 놀아주어서 그런지, 하여간 애교가 엄청난다. 아침마다 배 위에 올라와서 깨운다. 이렇게 사는 시기는 얘가 초등학교 2학년 끝날 때까지, 앞으로 4년 정도 남은 것 같다. 그 뒤에는? 별로 생각해놓은 게 없다. 그리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4년 후에 내가 뭘 할지, 그런 걸 뭐하러 지금 미리 생각하나 싶다. 지금은, 그냥 아무 것도 안 하고 싶다는 생각 정도다.

직장 민주주의 책 준비하던 어느 일요일, 심심해서 처음으로 내가 낸 책들을 세봤다. 서른여섯 권 정도 되는 것 같다. 50 권까지는 열네 권 남았다. 대충 둘째 등하교 시키는 거 끝나는 시기랑 얼추 맞을 것 같다.

‘88만원 세대’부터 시작해서 연작으로 12권을 쓰고, 거기에 ‘경제 대장정 시리즈’라는 이름을 붙일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게 끝나면 코멘터리 북을 한 권 해보고 싶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그 시리즈를 마무리 짓지는 못했다. 문화 경제학까지 쓰고, 시리즈는 일단 세웠다. 문화 경제학 다음 책이 농업경제학이었는데, 그건 올해 나간다. 오랫동안 표류했던 셈이다. 그 뒤로 ‘과학과 기술의 경제학’이 있었고, 맨 마지막이 ‘방송과 언론의 경제학’이었다. 이 마지막 책은 안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3년 전에 애들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방송과 언론에 대해서 불가근 불가원이라는 입장을 정했다. 뭐 원래도 그렇지만.. 방송은 안 하고, 기자들도 일상적으로 만나게 되는 것 외에 따로 만나지는 않기로 했다.

방송이 한국을 구원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한국 방송.. 사실 개판이다. 방송이 중요하기는 한데, 지금 구조에서 방송을 통해서 뭔가를 한다는 것은 신기루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론은? 방송 보다는 언론이 더 중요하다. 그렇지만 내가 움직여서 뭘 주도적으로 한다는 생각도 버렸다. 그냥, 도와달라고 하면 잠시 도와주고, 말기로..

그리고 그 힘을 전부 책에 쏟기로 했다. 나는 여전히 내가 사는 이 사회가 최소한 지금보다는 나아지기를 바란다.

청와대 구조나, 현 정부의 힘 쓰는 사람들, 이걸 사실 몰랐어야 했다. 유능한 사람들이 갔으니까, 잘 하겠지, 그래도 이게 어떻게 생긴 정부인데, 적당히 염치 있게 하겠지.. 이렇게 생각하고 살았어야 했다. 하필이면 또 유독 잘 아는 사람들이 요직에 가서..

현 정권 첫 인선 보고, 방송은 안 한다고 마음을 먹었다. 망했다. 저 구조면, 신선이 온다고 해도 살리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그 대신 책을 열심히 쓰기로 했다. 애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좋은 책을 쓰는 정도일 거라고 생각을 했다.

마지막으로 현 정부에서 중요한 자리가 제안이 온 적이 있었다. 그 때, 나는 안 한다고 했다. 지금도 안 하고, 앞으로도 안 할 거라고 그랬다. 그냥 있는 게 좋아서가 아니라,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자포자기로 살았던 시절을 다 합치면 6개월이 안 될 것 같다. 나는 한국에 대한 희망을 버린 적이 한 번도 없다. 지금 보다 나은 상태를 만들고 싶었다. 그게 내가 책을 쓰기 시작한 이유고, 지금도 책을 쓰는 이유다.

2.
정말 잘 알았던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가서 양아치 짓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기는 힘들다. 그래도 뭐라고 한 번도 안 했다. 신문에도 그런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것에 대한 얘기는 거의 쓰지 않았다. 그건.. 가쉽이다. 나는 가쉽으로 내게 확보된 지면 같은 것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대충 4년 후 어느 시점쯤 49번째 책을 쓸 것 같다. 50번째 책은 ‘경제 대장정 코멘터리 북’이라고 이름을 붙이려고 한다. 어느 출판사에서, 누구랑 할지는 정해진 게 없다. 제목만 정했다. 2004년부터 책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으니까 대충 20년 정도, 진짜 죽어라고 책을 쓰게 된 셈이다.

한 권도 돈을 벌기 위해서 쓴 책은 없다. 나는 그걸 ‘경제 대장정’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제 와서 뒤돌아보면, 그걸 나 혼자 한 게 아니다. 내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이 진짜 많이 도와주기도 했고, 그 길을 같이 걸어온 독자들이 있다. 첫 책은 1쇄 겨우 털었다. 그 때부터 내 책을 읽어준 수많은 독자들과 20년에 걸쳐 그 길을 같이 걸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먹고 살 수 있을지 없을지, 그런 건 독자들 덕분에 걱정하지 않고 살아도 좋았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비굴하게 살지는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서, 단 한 권도 그런 이유로 책을 쓰지는 않아도 되었다.

지금도, 이 책은 엄청 팔린다, 저 책의 판매는 우리가 보장한다, 이런 제안들 엄청 온다. 외부에서 부탁 받아서 쓴 책은 한겨레가 부탁한 직장 민주주의 책 한 권이다. 뭐, 돈 된다고 쓴 책은 아니고.

그래서 50권째 책을 내면, 잔치 한 번은 하기로 했다. 출판사나 그런 데 도움 안 받고, 그냥 내 돈으로 호텔 같은 데서 밥은 한 번 사려고 한다. 그리고 그 날은 독자들하고 술도 마시려고. 지금까지 독자들하고 술을 마신 적이 없다. 책 나오면 차 한 잔 마시는, ‘독자 티타임’을 늘 했다. 술은 많이 마시지만, 사람들하고 술로 엉키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 지금도 모르는 사람하고 술을 마시는 일은 거의 없다. 성격이 더러워서 그렇다. 엄청 까칠하다.

그래도 20년간, 50권의 책을 마무리하는 날이면, 술 한 잔 해도 좋을 것 같다. 아내한테 벌써 허락도 받았다.

3.
대충 이렇게 일정을 잡고 보면, 이젠 진짜 남은 책이 얼마 없다. 지금 쓰기로 확정된 책이 일곱 권 정도 된다. 50권째 빼고 나면, 여섯 권 남는다. 그러니까 아직 주제가 확정되지 않고, 빈 칸으로 남은 게 딱 여섯 권. 누구랑, 뭘 할지 모른다. 확정된 건, 방송이나 언론에 대해서는 쓰지 않는다는 것 정도. 잘 모르는 세계의 일이다.

장관은 모르는데, 차관급 자리로는 몇 번 갈 일이 있었다. 싫다고 했다. 공기업 사장 자리는 딱 한 번 정말로 고민한 적이 있었다. 일주일 고민하고, 미안하다고 했다.

장관이나 차관 한 번 하는 것하고, 50권의 책을 쓰는 것, 나는 후자가 훨씬 명예로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 권 한 권, 최선을 다해서 한국 사회에 쏘아 올린다. 그걸 20년을 하는 건, 명예로운 일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 대장정은 둘째가 세 살 때 폐렴으로 병원에 연거푸 입원할 때부터, 초등학교 2학년 마칠 때까지, 애 보면서 하고 있다. 남들 도와달라는 거 다 도와주고, 챙길 거 다 챙기면서 한다. 내가 무슨 엄청난 일을 한다고, 남들을 희생시키는 삶을 살겠나? 그런 방식으로는 살고 싶지 않다.

50권을 채우고 나면 뭐하고 사나? 그것보다는 나머지 여섯 권에 무슨 얘기를 하나, 그게 더 내 마음이 가는 질문이고, 더 어려운 질문이다. 처음의 12권은 시작하기 전에 스토리 보드를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내가 뭘 할지, 어디로 갈지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스토리 보드가 없다. 그래서 사실은 막막하다. 지금부터 어떻게 이 대장정을 마무리해야할지, 세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한 가지는 정했다. 이제 새로 에디터를 만나고, 새로 익숙해지고, 그런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출판계가 어려워지면서 에디터들의 이동이 너무 많아졌다. 요즘 힘든 건, 매번 새로운 사람하고 익숙해지는 일이다. 이제는, 그렇게 못하겠다. 지금까지 좋은 작업을 했던 동료 에디터들이 많이 있다. ‘88만원 세대’ 작업했던 레디앙의 이광호 선배나 가장 많은 책을 같이 했던 김문식 그리고 여전히 한 권 더 해보고 싶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했던 임윤희, 좋은 기억을 가진 동료들이 많이 있다. 돌아가면서 한 권씩만 해도, 나머지 여섯 권 다 끝난다.

처음에 책 냈을 때, 장정일 선배한테 연락이 왔었다. 그 때 나에게 해준 얘기가, 10년 동안 열심히 책을 쓰면, 밥은 먹고 살게 된다..

해보니까, 진짜 그렇다. 10년쯤 지났을 때, 하루 세 끼 걱정 정도는 안 해도 되는 상황이 되었다.

내가 이런 얘기들을 공개적으로 하는 것은, 마지막 아쉬움 때문에 그렇다.

지금도 교수 되고 싶으면, 적당한 데 부탁하면 된다. 그 정도 성과는 냈다. 그렇지만 그렇게 살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건 아쉽지 않은데, 제자가 없다. 괜찮다. 그런 거 생각하고 살지는 않았다.

누군가가 내가 걸었던 길을, 전혀 새로운 방식이든 혹은 완전히 새로운 시선으로 계속 이어서 걸어갔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그래서 나의 대장정은 끝나지만, 누군가의 대장정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희망이 있다. 그래야 한국이 망하지 않는다. 여의도에 푹 박혀 있으면 눈이 좁아지고, 불안감이 생기게 된다. 청와대에 푹 박혀 있으면, 자신감이 너무 높아지거나 미움이 너무 많아진다. 내가 본 청와대에 있던 사람들, 특히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은 그 후에 나머지 인생을 지나친 자신감으로 살거나, 실망에 의한 미움을 안고 살아갔다. <반지의 제왕>에 오탕크의 돌을 본 사람들의 불행한 미래처럼. 그게 원래 그렇다. 2000년에 청와대에 갈 일이 있었다. 그 때도 안 갔다. 그 대신 총리실로 갔다. 청와대 갈 생각 있었으면, 그 때 벌써 갔다.

혹시 코멘터리 북에 문재인과 지냈던 몇 년 간의 얘기를 소개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도 성공적으로 대통령직을 마치고, 다음 정권도 어느 정도 안정되면 그 얘기도 가치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주변 사람들이 묻는다. 요즘 뭐 해? 애 봐요.

물론 아이들을 보는 건 맞지만, 애만 보는 건 아니다. 나는 오늘도 내게 주어진 일을 한다. 하라고 시킨 사람은 없다. 그ㄱ렇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것 같아서 한다.

얼마 전에 동료들에게 내 마지막 꿈에 대해서 얘기한 적이 있다.

너무너무 힘들 때, 노르망디 해안에서 바다를 보면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던 적이 있었다. 그 때, 죽을 때는 여기와서 죽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말렸다. 류마티즘이 풍토병인데, 습기가 너무 많아서 노년을 보내기에 좋은 조건은 아니라고. 그래요? 그리고 넘어갔다.

나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아무도 모르는 곳, 에트르타 어느 해변가 작은 집 같은 곳에서 정말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아무도 모르게 그렇게 말년을 보내고 싶다. 책 50 권의 제목 목록을 남기면, 정말이지 다른 아무 것도 더 남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난 화려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고, 떠들썩하고 요란한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다. 그리고 혼자 있을 때가, 여전히 가장 좋다. 가장 좋아하는 바다, 가장 좋아하는 혼자 있는 시간, 그렇게 마지막 순간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게 내 작은 개인적 소망이다. 그건 내 취향이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노년 때, 뉴욕타임즈인가, 하여간 뭐 그런 언론의 젊은 여기자가 인터뷰를 하러 갔다 보다. 이 영감쟁이가, 진짜 뭔 마음을 먹었는지, 오래 된 넥타이를 다 매고 나갔다. 그랬더니 기자가 그 넥타이를 보고 한 마디 했나보다. 그냥 그러려나, 웃고 넘어가면 될 일을 이 영감쟁이가 뭐라고 또 어마무시한 얘기를 했다.

“내가 만약 멋진 넥타이를 매고 살았다면, 지금 사람들이 아는 아이작 아시모프는 없었을 거요.”

멋지다는 생각과 지랄맞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책을 쓰기로 마음을 먹으면서 책과 영화를 봤다. 물론 린간들이 일반적으로 그럴 때 볼 것 같은 전공서적과는 전혀 다른 책들이다. 그 때 <파운데이션>을 읽었다.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아마도 몇 년간, 나는 <파운데이션>의 세상에 살고 있다. 여전히 수학을 붙잡고 있고, 계산을 하고, 기술책을 읽는다. 그리고 아직도 기술 분석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파운데이션>을 읽었겠지만, 그걸 보고 진짜로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내 박사 논문의 핵심 주제가 ‘foundation of foundation’이었다. 지금도 그걸 위해 책을 쓴다.

지난 주에 웹튠 제안이 왔다. 아직 초고가 다 안 끝난 책과 그 다음 책은 웹튠으로 제작하고 싶다고 한다. 아직 결정은 안 했다. 다음 주에 얘기 좀 들어보고.

50권의 책을 관통하는 정신은, 단 하나다. 명랑.. 난 심각하고 심오한 것은 싫다. 발걸음도 가볍게, 소풍 가는 것처럼, 그렇게 살고 싶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다. 심각한 것, 꺼져! 인상 쓰는 것, 지겨워! 내 안의 80년대, 진작에 안녕!

우리는 모두 행복해지기 위해서 산다. 그리고 서로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한다. 돈 벌려고 사는 게 아니다. 더 많은 국부를 위해서 노력하는 국가? 천박하기도 하지만, 그런 나라가 잘 사는 꼴이 되지가 않는다. 우리 자녀들의 시대는, 돈 벌려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 잘난 척하지 않는 시대가 되면 좋겠다. 나의 소망이다. 그래서 이게 경제학자의 길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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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s 조작 사건은 놀라운 일이다.

예전에 내가 마지막으로 현장 환경활동을 했던 게, 광양 지역의 시안 가스 누출 사고 때의 일이다. 광주 경찰서 관할인가 그랬는데.. 달리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서 마음 속에만 묻어두었던 사건. 경찰서에서는 별로 이걸 문제 삼지 않고 덮어두려고만 한다.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기자회견을 했던 걸로 기억난다. 정말로 아무 신문에도 한 줄도 안 났다. 몇몇 기자에게는 내가 따로 스트레이트 기사라도 내보내달라고 부탁도 했었다. 나중에 들으니까 신문 데스크끼리 무슨 회의 비슷한 걸 했다나.

광고주 문제랑 지역에서의 결탁 등 복잡하게 고착된 문제를 건드릴 자신이 없었던 걸로 나는 이해했다. 결국에는 지역에서 역학 조사를 정식으로 하는 정도로 사태가 봉합되었다. 뭐 그리고.. 결국에는 흐지부지 하면서 아주 작은 지역 사안으로 축소되는 걸 지켜본 적이 있다. 아주 오래 전 일이라서, 진짜 기억도 잘 안 나는.

환경 문제로 사주가 형사처벌 받은 것은 내 기억으로는 아마도 낙동강 페놀 사태가 마지막이 아니었나 싶다. 그 이후로 tms 같은 거 강화하고, 기업별로 환경 관리 시스템 같은 것을 장착하면서 좀 더 개선적 자세를 가지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20년 넘게 지났는데..

tms 조작을 지역에서 모르고, 지역 언론이 모르고, 아무도 몰랐다.. 이런 건 말이 안 된다. 지역별 환경청에서도 전혀 몰랐다? 맨날 그 일만 하는 사람들이 그걸 모를 수가 있나?

합리적 의심으로는, 이래저래 돈도 좀 오고 가고, 골프도 좀 치고, 그야말로 최민식 말대로 "느그 서장 나오라 그래, 다 했어", 그런 관계일 것 같다.

경찰부터 언론까지, 지역에서는 "우리가 남이가"인 경우가 많다. 때로는 운영이 어려운 지역 시민단체까지 같이 어울리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 같고.

여수산단만 해도 그렇다. 시프린스 사건 이후로 무슨 생태 산단을 만들고, 자체적으로 노력을 한다고 그렇게 난리를 쳐놓고, tms 조작이나 하고 있었다니.

법적 책임이 좀 애매하기는 한 걸로 알고 있다. 환경관리 시스템이라는 게, 사실 환경 관리 책임자를 두어서 사주나 사장 대신 아랫 놈들이 확실하게 '단도리'하게 만들자는 의도도 아주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이 건은 사장의 형사처벌 여부가 관건이다. 회사나 공장에서 가장 확실한 시스템은 "사장님, 그러시다 감옥 가요", 이런 거다. 지역의 환경 단체, 시민들의 감시 시스템과 참여, 이건 오히려 부차적이다. 사장 심지어는 사주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게, 장기적으로는 제일 빠른 개선책이다. 꼬리 자르기로 그 밑의 실무자와 실무책임자들 아무리 달달 볶아도, 개선되지 않는다.

크게 보면,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만든 부수적 폐해 같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너무 근본적으로 부패했다.

tms 수치가 틀리면, 기본적인 대기 모델링은 물론 정책의 효과 분석이나 민감도 분석 등, 모든 정책적 대응이 다 개판이 된다.

그리고 이런 일이 이렇게 장기적으로 가능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지방정부의 체질 개선이라는 근본적인 처방이 이제는 더 미룰 수 없는 상황이라는 말과도 같고.

에라이..

국민소득 3만 달러고, oecd 국가면 뭐 하냐? 이런 최빈국 수준의 행정과 관리가 국가의 기본이 되어버린 나라에서..

이 건은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 황교안하고 토닥토닥하고 있는 것보다 100배는 중요한 사건이다.

황교안하고 토닥토닥 거리는 건 정치지만, tms 문제를 근본부터 해결하는 것은 통치다. 현 정부는 정치만 하고, 통치는 잘 안 하는 것 같다. 그러면 나중에 망한다. 통치가 필요할 때에는 통치적 차원의 결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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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히사이시 조의 책을 읽다 보니까 영화 <소나티네>를 다시 보고 싶어졌다. 일본 영화나 일본 애니메이션을 아예 못 보게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금지가 풀리면서 제일 재밌게 봤던 것이 tv판 ‘신세기 에반게리온’이었다. 기껏해야 일본 만화는 외교관 아들이던 친구 집에서 봤던 당가도-a 정도가 전부였었다. 완전히 신세계였다.

부천에 살던 시절이 있었다. 내 인생의 암흑기가 있다면, 아마 그 시기가 암흑기 혹은 흑역사 정도 될 것 같다. 그게 꼭 부천이라서가 아니라, 이래저래 “나는 뭐 하는 사람이냐”라는 곤혹스러운 질문 그리고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을 것 같은 부진의 연속되던 시절이다. IMF 경제위기 한 가운데를 부천에서 살았다.

그 시절에 일본 영화도 많이 봤다. 영화만 많이 본 것도 아니다. IMF 이후 할 일이 없게 된 동료들과 사무실에서 워크래프트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리고 스타 열풍과 함께 한동안 스타도 열심히 했다.

그리고 술도 어마무시하게 처먹었다. 외형적으로는 그 때가 아주 잘 나가던 시절이기는 했다. 성공의 성공을 거듭하고 있었지만, 진짜로 사는 게 뭔지.. 그러고 있었다. 결국 그 시기를 정리하고, 송파구로 이사를 갔다. 차도 샀다. 그리고 아주 체계적으로 – 나중에 보면 별로 체계적이지도 않았지만 – 회사를 그만둘 준비를 했다. 그리고 아내와 결혼하기로 했다.

아내와 결혼하기로 한 후, 제일 먼저 한 일이 회사에 사직서를 낸 일이다.

부천 시절은 나에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았다. 그 이후로는, 누군가 나에게 뭔가 권유하거나 뭔가 좋아보인다는 이유로 내가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게 되었다. 겉으로 좋은 거, 그딴 거 다 아무 것도 아니다.

2.
영화 <소나티네>는 그 부천 시절을 대표하는 영화다. 그렇지만 그 이후에도 종종 보았다. 나는 본 영화를 또 보고, 또 보는 걸 좋아한다. 내가 이해력이 떨어져서 그런 것 같다. 사실 아무리 봐도 스토리 자체를 잘 모르겠다. 대부 2편을 보면, 여전히 프랭키가 대부 2편에 나왔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미세하게는,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 장면들이 있다. 대부 1편에서 나왔던 엔딩 신의 그 유명한 서재, 꽝 하고 문이 닫혔던 서재.. 그 집의 주인이 클레멘죠였다가 다시 프랭키로 넘어가는 건데.. 그래서 프랭키가 결국 비토 코를레오네의 바로 그 본가를 물려받은 건데, 1편에 나오나, 안 나오나? 아무리 봐도 잘 모르겠는 것들이 남는다.

기타노 다케시는 스스로 ‘비토 다케시’라고 부를 정도로 코폴라 영화 특히 <대부>에서 많은 것을 가져왔다고 한다. 오죽하면 자기 별칭을 비토라고 부르겠나. 인간 자체가 진짜 좀 다크한 느낌이 든다.

히샤이시 조 책에는 그가 기타노 다케시를 만났을 때의 얘기들이 좀 나온다. 진짜 말이 없다고 한다. 저 사람이 tv에 나오는 그렇게 말 많은 사람이 맞는지. 거의 듣는 둥 마는 둥, “네, 그렇죠, 뭐”, 그렇게 짧게 한 마디 한다. 그리고 그게 전부다.

히샤이시 조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미야자키 하야오와의 스타일 차이도 비교한다. 지브리 영화에는 음악이 아주 많이 들어간다. 30곡 정도다. 반면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에는 음악이 10곡 정도 들어간다. 그래서 <소나티네>를 다시 봤더니, 확실히 소리의 여백이 많다. 헐리우드 같으면 주인공의 기분을 환기시키기 위해서 주인공별 테마곡을 쪽 깔 것 같은 장면에 현장 소음과 약간의 대사만 있다. 물론 그렇지만 미야자키 하야오나 기타노 다케시나 영화 내에 음악이 들어가는 시간이 크게 차이가 없단다. 기타노 다케시는 한 번 음악이 시작되면 길게 가는 스타일이다. 그야말로 대사에 ‘장타’를 쓰지 않는 대신, 음악을 ‘장타’로 쓰는 편이다. <소나티네>만큼 많이 봤던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가 <맹인 검객 자토이치>다. 여기도 음악이 장타로 나온다. 엔딩 장면에 모두 모여서 같이 춤을 추는, 그야말로 군무 장면에서의 음악은 정말 장타다.

<소나티네>가 전형적인 마초 영화라면, <자토이치>는 전형적이지 않지만, 게이 영화다. 어여쁜 소년이 누이와 살아남기 위해서 유곽에서 게이샤로 살아남고 성장하는 b라인이 무척 섬세하게 그려진다. 그렇지만 톤은 훨씬 밝고 희망적이다. 나쁜 넘들은 자토이치가 여지 없이 아작을 낸다. 흔한 서부영화 모티브지만, 여기에 여성으로 길러졌고, 여성으로서의 자신이 더 행복해진 보조 주인공이 등장한다. 남자의 화장, 이런 게이 라인이 영화를 문화적으로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많은 게이 영화들에는 어쩔 수 없는 숙명적 결말 그리고 그 결말이 자아내는 음산함이 깔라져 있다. <자토이치.에는 그딴 건 없다. 상황은 개판이지만, 아름다움이라는 테마로, 스스로의 삶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게이가 나온다. 그리고 그의 명랑함이 깡패 집단에게 몰살당하기 직전인 주인공 그룹에게도 즐거움을 전염시킨다. 그게 <7인의 사무라이>에서 흔히 봤던 바로 그 벼농사 신들을 경쾌한 음악으로 더욱 밝게 만든다. 음침한 농민이 아니라 가난하지만 밝고 경쾌한 농민, 그게 <자토이치>에 나온 농민이다.

확실히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에서 음악의 개수는 적지만, 훨씬 더 강하고 장타로 나온다.

영화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많은 경우 영화 ost를 전편을 듣는다. 그건 내 취미다. 영화는 좋았는데, 그렇게 전편으로 음악을 듣기가 좀 그랬던 영화가 두 편이 있다. <베테랑>이 그랬고, <명랑>이 그랬다. 테마곡 한 두 개를 제외하면 진짜 기능적으로만 음악이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고 나쁜 건 아니다. 그런 기능만 가진 음악을 장면과 상관없이 나중에 떼어내서 따로 듣기는 쉽지 않다. <베테랑> 이전의 <짝패>는 음악도 아주 들을 만하고, 좋았다. 음악만으로 제일 재밌게 듣는 것은 <범죄 와의 전쟁>.. 얼마 전에 우리 집에 놀러온 초등학생들도 이 노래는 예능에 많이 나오는 노래라고, 좋아했다.

드라마 ost 중에서 가장 좋아한 건 여전히 <커피 프린스>다. 다른 사람은 취향이 맞지 않아서 듣기 힘들겠지만, 자주 듣는 ost는 <손 – the guest>.. <스카이 캐슬>의 음악도 좋았다.

3.
<소나티네>를 그렇게 자주 봤는데도, 무슨 미학이 어쩌고, 그런 거 신경 쓰면서 보다가 정작 스토리 자체를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다 얘기 아니냐?

<소나티네>의 비극을 만든 건, 결국 지하철역이다. 다케시가 맡고 있는 지역에 지하철 개통이 되면서 별 볼 일 없는 중간 두목의 지역이 아주 괜찮은 지역이 된다. 아주 바쁜 야쿠자가 된다. 그리고 짭짤하다. 자기 지역에 있는 마작판에서 돈을 제대로 내지 않으니까, 이걸 찾아가서 조지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으니까 결국 물에 담거 죽여버린다. 이게 초반 설정이 중요 부문이다. 그게 지하철하고 연결을 시켜야 의미가 생기는데, 난 예전에 저건 그냥 내면적 폭력성 같은 그런 간단한 방식으로만 봤던 것 같다.

괜찮게 성업 중인 자신의 지역을 노린 두목과 친구의 배신.. 그리고 출발은, 우리 말로 역세권이 되어버린 지역.

오사카도 나오고, 홋카이도도 나오고, 오키나와도 나와서, 무슨 전국에 엄청난 조직이라고 생각하고 봤던 게, 예전에 얘기를 잘 못 짚은 실수였던 것 같다.

전국조직이 아니라, 그냥 동경에 있기는 하지만, 찌질한 별 거 없는 조직이라고 하는 설정을 놓고 봐야 나머지 얘기들이 자연스럽게 풀린다. 이 엄청난 조폭이 작은 바닷가에 갇혀.. 가 아니라, 걔네 원래 그래.

그러니까 겨우 역세권이 된 작은 나와바리 하나를 위해서 두목과 친구가 배신극을 벌이지..

요렇게 보니까 <소나티네> 얘기가 훨씬 더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클라이막스로 가는 모티브라는 게, 그렇게 보면 뻔하다.

품만 엄청 잡았지, 별로 그렇게 유능하지도 않은 킬러를 보낸 친구, 결국 그 친구 허벅지에 총을 여러 방 쏘고, 사건의 전모를 듣고, 죽여버린다.

그리고 두목도 죽인다.

친구와 두목이 배신하는 일은 살다 보면 늘상 벌어지는 일이다. 회사라는 게, 그렇다. 어떻게 보면 정치도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 얘기 속에 사실 폼만 잡았지 – 아니, 폼도 잘 나지 않는 – 찌질한 군상들이 유치찬란하게 노는 얘기들이, 총 드는 얘기만 빼면 우리 사는 거랑 그렇게 크게 다르지도 않다.

야쿠자라는 특징이, 사직서 내고 그만두기가 좀 어렵다는..

그건 68의 학생 운동으로 수배 받고 도망치던 시절을 뒤로 하고 쇼 비즈니스에 들어온 기타노 다케시의 인생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일본 방송계에 얼마나 많은 배신이 있었겠는가. 아마도 절반은 대부분 그가 겪은 경험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젠장. 이 영화가 친구와 두목의 배신을 논리적으로는 물론 감성적으로도 해결하지 못한 한 사나이가 결국 파멸을 선택한 얘기 아닌가? 어쩔겨? 죽인다고도 해결될 문제가 아닌데.

오키나와로 처음 갔을 때 동네 보스가 “이런 일로 올 필요까지는 않는데”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니, 부탁해서 오라고 한 거 아닌감요? 아니야, 부탁은 너네 보스가 했어.

그 때 벙찌는 기타노 다케시의 표정이, 영화 전체의 논리와 톤을 설명하는 것 아닌가 싶다. 어쩔겨? 안 그래도 구질구질 맞아서 야쿠자 생활 정리할까 생각 중인데.. 이것들이!

물론 이러한 감성 자체가 올드한 것이다. 나의 윗 세대들은 배신이라는 말 나오면 치를 떨었던 것 같다. 나만 해도, 배신?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뭐. 하거나 말거나, 그런 맘으로 살았던 것 같다.

지금의 20대라면? 윗 세대들, 상사가 배신하지 않으면 이상할 것 같다는 마음을 한 자락 깔고 있는 것 같다. 배신? 그게 영화로 형성이 돼?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야?

배신을 모티브로, 50대나 그 이상, 40대 그리고 20대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일 것 같다. 그래서 <소나티네>가 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이다. 중요하고 재밌고, 미학적 완성도도 높지만, 이제는 올드한 영화다. 쟤들 왜 저래? 웃기기는 하지만, 답답하네.. 아마 이런 게 시대 감성이 아닐까 싶다. 배신, 하거나 말거나..

프랑스에 알랭 드롱 나왔던 <암흑가의 두 사람>이 날리던 시절이 있다. 더 이상 프랑스는 그딴 영화는 안 만든다. 시대 감성이 변해서 그런 것 같다. 우리 시대의 감성도 변한다. 영화 <노스탈지아>의 아름다움만이 나에게 시대착오적 아름다움으로 동동 떠나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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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출간 일정을 전면적으로 조정을 했다.

'당인리'는 6월 출간을 생각했었는데, 지금으로서는 택도 없다. 애들 키우면서 하다보니까 방법이 없는 것도 좀 있지만, 생각보다 일이 잘 된 이유도 좀 있다. '모피아' 이후 6년만인가, 소설 작업하는 게.. 오랜만이기도 하고, 또 그 사이 내가 뭔가 모르게 시선이 변한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그래서 8~9월 출간으로 좀 늦췄다.

기왕에 하는 김에, 이어서 하나 더 하기로 했다. 여러 가지가 물망에 올랐는데, 결국에는 이승만 얘기 하기로. 순서대로라면 이완용 쓸 차례이기는 한데, 이건 자료 조사가 더 만만치가 않다. 그래서 이건 원래 하려던 순서대로 할 생각이고, 이번에는 이승만 얘기.

그 두 개 사이에 어느 정도 얘기 골격이 형성되어 있는 농업 경제학이 들어간다. 이건 올해를 넘기면 좀 그럴 것 같아서. 그리고 지금 잡고 있는 틀도 시간이 지나면 까먹을 것 같은.

원래 중간중간에 에세이 같은 작은 글을 쓴다. 이건 시간 나거나 심심하면 틈틈이 써두는.

일단은 10대들을 위한 서평집을 먼저 하기로. 책에 관한 책은, 10대용 서평집 이후로. 이건 조금씩 써서 모아두는 형태의 책이라서, 언제 나갈지 나도 모른다.

농업경제학이 중3 올라가는 중2 학생에게 쓰는 편지 형식이 될 거다. 10대 연구하는 김에, 10대용 서평집까지 모아서 한 번에 하면 더 감정적으로 편할 것 같다. 물론 이게 언제 끝날지는 나도 모른다.

그래서 올해 나가는 건, '당인리'하고 농업경제학 두 권이다. 실제로 내는 건 2~3권이라도 매년 계획은 4권씩 잡았었다. 올해는 계획도 두 권이다.

주변 여건이 개판이다. 방법 없다. 큰 애가 어린이집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하루에 두 탕 뛰면서 왔다갔다, 생각보다 어렵고 힘들다. 나머지 여건들은? 개판에 개판이다.

에디터들이 너무 자주 바뀐다. 나도 사람인데, 책마다 새로운 에디터들하고 새로 만나고, 새로 익숙해지고.. 도저히 이 짓을 더는 못하겠다. 지금까지는 출판사를 중간에 바꾼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주로 에디터들하고 작업을 하는데, 에디터 바뀌면 나도 너무 힘들다. 이제부터는 출판사 바꾸는 것도 염두에 두려고 한다. 이래저래 개판에 개판인 상황에서, 묵묵히 글 쓰는 것도 너무 지치는 일이다.

나머지 여건은? 나머지 여건도 개판이다.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솔직히, 이 상황에서도 묵묵히 글을 쓰고 있는 날 생각하면, 이게 진짜 감정도 없는, 상또라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 상황에서도 글이 써져? 그래도 묵묵히 하기로 한 건..

변한 상황에 맞춰, 새로 출간 계획도 정리하고, 원칙도 바꾸었다. 이제부터 에디터 바뀌면, 나도 출판사 바꾼다. 그리고 작업 여건이 너무 힘들다고 생각해도, 출판사 바꾼다.

하여간.. 내년 봄까지는 출간 일정이 결정이 되면서, 내가 해야 할 일의 순서도 정리가 되었다.

둘째가 초등학교 2학년 될 때까지는 아직 4년 남았다. 지금까지 낸 책이 36권인데, 14권 마처 채우면 50권 된다. 50 권 될 때까지는, 벌려놓은 몇 가지 일들 무리하지 않게 마무리하는 정도로만..

50권 되면? 글쎄.. 잘은 모르겠는데, 그냥 아무 것도 안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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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꽃 접사, 렌즈 최대 개방.

접사를 좋아해서, 접사용 렌즈도 따로 가지고 있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렌즈를 조여서 극단적으로 심도를 낮추지는 않는다. 가끔 기분 전환을 위해서 최대 개방으로 배경을 확 날려버린다. 극단적으로 낮은 심도.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 원리다. 어느 정도의 심도를 가지고 상황을 이해할 것인가, 낮출 것인가, 깊이를 줄 것인가.

통계 다룰 때의 켈리브레이션 같은 것도 사실은 비슷하다. 기준선이 제각각인 통계치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역사를 보는 원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천변일률적으로 형성된 역사 시각에 대한 기준들, 가끔은 토 나올 정도로 획일적이고, 밋밋하고, 무엇보다도 60~70년대의 처절했던 시각이 너무 많이 반영된.

과거를 볼 때, 진보와 보수라는 기준으로 정리해서 보면, 토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수많은 맥락이 사라져버리고, 결국 이념, 그것도 과도하게 해석된 이념만 남기도.

그런 게 내가 평전 같은 것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처음의 기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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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꽃이 환하게 피어올랐다. 삶의 작은 위안이다.

나이를 먹으면, 상처가 남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상처가 남는다. 그래도 살아가는 것은, 상처 때문에 죽는 일은 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꽃을 본다. 나무에 상처가 없겠는가. 꽃이라고 아픔이 없겠는가. 그래도 매년 때가 되면 피어오른다. 그리고 다시 저문다.

나이를 먹는 것은, 크고 작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면서, 작은 꽃이라도 조금 더 피어보고 싶은 몸부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 꽃은 멋지고, 저 꽃은 덜 멋지고, 그런 건 아니다.

앵두꽃이 환하게 피어올랐다. 저라고 상처가 없겠느냐. 그러나 그런 걸 신경 쓰기에는, 꽃은 너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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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개편철인가 보다. 요 며칠 방송 부탁이 갑자기 많이 온다. 사실 방송국 근처에도 안 가는 게 요즘 내 개인적 방침이기는 하다. 나도 사람이라, 자꾸 보면 또 해보고 싶어질 것 같다.

2016년 봄, 인생에 큰 결정을 몇 개 했다. 둘째 한참 아플 때인데, 그 때 공직 같은 것은 하지 않기로 결정을 했다. 그리고 방송도 같이 내려놓았다. 그리고 촛불집회가 생겨났고, 정권이 바뀌었다.

대체적으로 2016년 봄, 둘째 폐렴으로 두 번째 입원하면서 마음 먹은 것에 비해서 크게 다르지 않게 살고 있다.

어려움이 내게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면 살면서 어려움이 어디 한두 가지겠는가. 모든 것을 다 쥐고 살 수는 없다.

나는 영광을 구하지 않고, 돈을 구하지 않고, 힘을 구하지 않고 살 생각이다.

영광은, 이제 더 이상의 영광을 구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충분히 보았다.

돈은, 우리 식구들 세 끼 걱정하지 않고 살 정도면 충분하다.

힘.. 그딴 거 필요없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이게 삶에, 생각보다 많은 유혹이 있다. 영광을 보면, 더 보고 싶다. 돈을 벌면, 더 크게 만지고 싶어진다. 힘을 쓰면, 자기보다 힘 있는 존재가 눈에 거슬린다.

그게 내가 2016년 이후로 추구한 삶이다. 이렇게 쭈굴쭈굴 살다가, 적당할 때, 이만하면 되었다, 그렇게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게 내 꿈이다.

사람이 왜 이렇게 꿈이 없냐고 가끔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원래 초등학교 때부터 나는 별 다른 꿈이 없었다. 지금이라고 갑자기 그런 게 생길 턱이 없다.

그 대신, 내 주변 사람들, 적당히 웃기고, 적당히 즐겁게 할 수 있으면 최고다. 더 바랄 바가 없다.

일단 나의 결정은 이렇다..

둘째가 초등학교 2학년이 끝나서 더는 등하교 시킬 아이가 없을 때까지, 나는 계획된 방식이 아닌 다른 삶을 살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계획된 것을 일정대로 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벅차다..

다른 사회활동도 마찬가지고, 방송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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