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번째 책이 되기를 희망하는..

1.
책을 쓰고 나서 만난 사람들이 있고, 그 전에 알았던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책을 쓰게 된 데에는, 아내가 제일 영향이 컸고.. 그리고 이재영과 노회찬이다. 2003년 정도에 그 둘을 만났고, 2004년에 민주노동당 총선을 같이 치루었고, 2005년에 첫 책이 나왔다. 그러니 내가 얼마나 많이 영향을 받았겠는가. 서로 영향을 많이 받았다.

'88만원 세대'를 썼을 때, 정말로 뛸듯이 좋아했던 사람이 노회찬이었다. 여러가지 중의적 의미다. 그 인세로 이재영이 월급을 받게 되었다.

50대 에세이가 잊혀지기 어려운 책이 된 건, 그 시절의 얘기, 정확히는 그 둘과 가장 행복했던 어느 날의 얘기를 썼는데..

그리고 이제는 노회찬 마저도 죽었다.

'붉은 돼지'의, 좋은 놈들은 이미 죽었어, 정말로 그렇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나에게는 꿈이 하나 있었다. '이상한 나라의 인민노련'이라는 책을 쓰고, 그 표지에 노회찬 얼굴을 어마어마하게 달고, 그리고 시내버스에 광고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서울 시내에 노회찬 얼굴이 버스와 함께 달리게 하고 싶었다.

2.
이게 책이 될 것이라고 처음 생각한 것은, 이재영이 울산과 포항 지역에 기지를 만들기 위해서 처음 경주에 가던 시절의 얘기를 해주었을 때의 일이다. 정말로 웃겼다. 처음에 인천에 가던 시절의 얘기는, 오히려 경주에 가던 시절에 비하면 덜 재밌을 정도였다.

그래도 바로 못한 것은, 이게 거의 인류학 책 정도가 될 정도로 인터뷰도 많이 필요하고, 자료조사도 필요한, 품이 많이 드는 책이라서 그렇다. 그리고 점점 더.. 기억하는 사람들도 줄어가고, 자료도 없어져간다.

내가 인민노련 책을 준비하려고 한다고 하니까, 전국의 인민노련 활동가였던 분들이 연락을 많이 해오셨다. 참.. 눈물 나는 얘기들이 많다. 우울증이 많았고, 사회부적응 상태로,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지만, 그래도 인민노련 얘기를 누군가 해보려고 한다니까 갑자기 눈이 번쩍 떠졌다고..

그래도 너무 힘들어서, 일단은 접어놓았다.

3.
그 때 바로 하지 않은 이유는, 역설적으로 나도 조금 더 경제적 안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힘은 많이 드는데, 팔릴 가능성은 별로 없는 책을 바로 추진하기에, 진짜 도니가 달랑달랑.

그리고 언제든지 이재영에게 얘기를 들으면 되니까, 좀 더 편안해지면 하자.. 고 했다.

그 때는 이재영이 그렇게 금방 죽을 줄 몰랐다. 아니, 알았어도 그 책은 못했을 것 같다. 너는 이제 죽을 거니까, 그 얘기 좀 해주라.. 그렇게는 못했을 것 같다.

긴 시간의 눈으로 보면, 어차피 그 책은 그 때 나올 수가 없던 책이었다. 발사대인 나도 너무 힘이 약했고, 주인공인 이재영은 곧 다가올 죽음을 자신도 모르면서 기다리던 중이었고.. 그리고 메인 주인공이었던 노회찬도 결국은 죽을 것.. 비극도 이런 비극이 없다.

그 후에 노회찬은 국회의원도 되고, 몇 가지 호칭이 생겼다. 그렇지만 내가 가장 멋지다고 생각했던 노회찬의 호칭은 인민노련 조직부장. 이 사람이 어떤 20대를 보냈는지, 가장 잘 얘기해주는 것 같았다.

그 후로 많은 사람들이 나를 인민노련 출신으로 알기도 하는데, 그렇게까지 열심히 산 건 아니고, 그냥 인민노련 사람들을 많이 안.

4.
50권으로 나의 '경제 대장정'은 마무리를 지으려고 한다. 그 후로도 책을 쓸지, 아닐지, 나도 잘 모른다.

쓰던 책을 마무리하는 와중에, 인민노련 책은 해야할 것 같고, 만약에 정말로 쓴다면, 59번이 되는 게 맞을 것 같다. 60권째는 전체를 마무리하는 코멘터리 북이 되는 게 맞을 것 같고.

딜레마도 있다.

일단은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일이다. 감정적인 것은 차지하고라도, 육체적으로 해야 할 작업이 너무 많다. 그렇다고 어디론가부터 후원이나 지원을 기대할 상황도 아니고.

또 다른 딜레마는, 지금 아니 4년 후라도, 그 시기에 과연..

집을 떠나 인천으로 가서 노동자가 된 대학생들의 얘기가 청년들에게 조금이라도 의미가 있는 얘기가 될 것인가? 이걸 잘 모르겠다.

그냥 꼰데들의 노스탈지아.. 이러면 재미 없다. NL과 PD가 싸우던 시절의 얘기, 그런 것을 지도부가 아닌 현실의 얘기로 일부 다루려고 한다. 느무느무 재미 없다. 그렇지만 엄연한 현실이기도 하다.

그 얘기가 빠지면 왜 민주노동당이 집권하자마자 정책국장이던 이재영이 당에서 짤릴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이제 막 국회의원이 된 노회찬이 역시 개고생을 하고, '풍찬노숙'의 길로 들어갔는지, 설명이 좀 쉽지 않다.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너무 괴로운 얘기라서 이 얘기를 꺼내기가 힘들다. 그렇지만 나만 해도 한 다리 건너라서, 그 때 그랬어요.. 담담하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해도 나에게도 감정 소모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왜 내가 갑작스럽게 유학을 가게 되었는지, 그 출발점에 해당하는 얘기들이 인민노련 안에 복잡하게 엉켜있다.

5.
그걸 명랑하게 그리고 재밌게, 그렇게 쓸 마음의 준비가 되면 나도 '이상한 나라의 인민노련'을 쓸 거다. 그러나 그냥 가슴만 후벼파고, 죽은 사람들에게 "내 책을 바친다", 이런 개 같은 소리나 할 거라면, 필요없는 책이다. 레토릭.. 그딴 거 필요없다. 명랑할 수 없다면 결국은 그냥 개소리일 뿐이다. 너무 생생한 과거의 얘기이고, 승자가 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그렇기도 하다.

하여 나도 생각 중이다.

마음은 그렇지만, 현실이라는 것도 존재한다. 그리고 그걸 읽어줄 독자들이 과연 있을지, 어떻게 집 나온 대학생 얘기들이 그들에게 받아들여질지,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며칠 전에 인천에 갔었다. 아니, 올해 인천에 자주 갔다. 그리고 앞으로도 자주 갈 일정이다. 그 때마다 인민노련 생각이 나고, 이재영에게 들었던 얘기들이 생각난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아마도 한국에서 인민노련 얘기를 쓰고 싶어하고, 또 진짜로 쓸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내가 쓰면 그래도 이 얘기가 남는 거고, 내가 안 쓰면 아마도 그냥 사라질 것 같다.

인민노련 출신들하고 이렇게 생활도 하고, 삶의 중요한 순간을 같이 나눈 사람들이 또 얼마나 있겠나? 지금도 많이 잊혀졌다. 시간이 지나면 더 잊혀질 것이다.

그래서 계속 생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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