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히사이시 조의 책을 읽다 보니까 영화 <소나티네>를 다시 보고 싶어졌다. 일본 영화나 일본 애니메이션을 아예 못 보게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금지가 풀리면서 제일 재밌게 봤던 것이 tv판 ‘신세기 에반게리온’이었다. 기껏해야 일본 만화는 외교관 아들이던 친구 집에서 봤던 당가도-a 정도가 전부였었다. 완전히 신세계였다.

부천에 살던 시절이 있었다. 내 인생의 암흑기가 있다면, 아마 그 시기가 암흑기 혹은 흑역사 정도 될 것 같다. 그게 꼭 부천이라서가 아니라, 이래저래 “나는 뭐 하는 사람이냐”라는 곤혹스러운 질문 그리고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을 것 같은 부진의 연속되던 시절이다. IMF 경제위기 한 가운데를 부천에서 살았다.

그 시절에 일본 영화도 많이 봤다. 영화만 많이 본 것도 아니다. IMF 이후 할 일이 없게 된 동료들과 사무실에서 워크래프트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리고 스타 열풍과 함께 한동안 스타도 열심히 했다.

그리고 술도 어마무시하게 처먹었다. 외형적으로는 그 때가 아주 잘 나가던 시절이기는 했다. 성공의 성공을 거듭하고 있었지만, 진짜로 사는 게 뭔지.. 그러고 있었다. 결국 그 시기를 정리하고, 송파구로 이사를 갔다. 차도 샀다. 그리고 아주 체계적으로 – 나중에 보면 별로 체계적이지도 않았지만 – 회사를 그만둘 준비를 했다. 그리고 아내와 결혼하기로 했다.

아내와 결혼하기로 한 후, 제일 먼저 한 일이 회사에 사직서를 낸 일이다.

부천 시절은 나에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았다. 그 이후로는, 누군가 나에게 뭔가 권유하거나 뭔가 좋아보인다는 이유로 내가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게 되었다. 겉으로 좋은 거, 그딴 거 다 아무 것도 아니다.

2.
영화 <소나티네>는 그 부천 시절을 대표하는 영화다. 그렇지만 그 이후에도 종종 보았다. 나는 본 영화를 또 보고, 또 보는 걸 좋아한다. 내가 이해력이 떨어져서 그런 것 같다. 사실 아무리 봐도 스토리 자체를 잘 모르겠다. 대부 2편을 보면, 여전히 프랭키가 대부 2편에 나왔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미세하게는,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 장면들이 있다. 대부 1편에서 나왔던 엔딩 신의 그 유명한 서재, 꽝 하고 문이 닫혔던 서재.. 그 집의 주인이 클레멘죠였다가 다시 프랭키로 넘어가는 건데.. 그래서 프랭키가 결국 비토 코를레오네의 바로 그 본가를 물려받은 건데, 1편에 나오나, 안 나오나? 아무리 봐도 잘 모르겠는 것들이 남는다.

기타노 다케시는 스스로 ‘비토 다케시’라고 부를 정도로 코폴라 영화 특히 <대부>에서 많은 것을 가져왔다고 한다. 오죽하면 자기 별칭을 비토라고 부르겠나. 인간 자체가 진짜 좀 다크한 느낌이 든다.

히샤이시 조 책에는 그가 기타노 다케시를 만났을 때의 얘기들이 좀 나온다. 진짜 말이 없다고 한다. 저 사람이 tv에 나오는 그렇게 말 많은 사람이 맞는지. 거의 듣는 둥 마는 둥, “네, 그렇죠, 뭐”, 그렇게 짧게 한 마디 한다. 그리고 그게 전부다.

히샤이시 조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미야자키 하야오와의 스타일 차이도 비교한다. 지브리 영화에는 음악이 아주 많이 들어간다. 30곡 정도다. 반면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에는 음악이 10곡 정도 들어간다. 그래서 <소나티네>를 다시 봤더니, 확실히 소리의 여백이 많다. 헐리우드 같으면 주인공의 기분을 환기시키기 위해서 주인공별 테마곡을 쪽 깔 것 같은 장면에 현장 소음과 약간의 대사만 있다. 물론 그렇지만 미야자키 하야오나 기타노 다케시나 영화 내에 음악이 들어가는 시간이 크게 차이가 없단다. 기타노 다케시는 한 번 음악이 시작되면 길게 가는 스타일이다. 그야말로 대사에 ‘장타’를 쓰지 않는 대신, 음악을 ‘장타’로 쓰는 편이다. <소나티네>만큼 많이 봤던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가 <맹인 검객 자토이치>다. 여기도 음악이 장타로 나온다. 엔딩 장면에 모두 모여서 같이 춤을 추는, 그야말로 군무 장면에서의 음악은 정말 장타다.

<소나티네>가 전형적인 마초 영화라면, <자토이치>는 전형적이지 않지만, 게이 영화다. 어여쁜 소년이 누이와 살아남기 위해서 유곽에서 게이샤로 살아남고 성장하는 b라인이 무척 섬세하게 그려진다. 그렇지만 톤은 훨씬 밝고 희망적이다. 나쁜 넘들은 자토이치가 여지 없이 아작을 낸다. 흔한 서부영화 모티브지만, 여기에 여성으로 길러졌고, 여성으로서의 자신이 더 행복해진 보조 주인공이 등장한다. 남자의 화장, 이런 게이 라인이 영화를 문화적으로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많은 게이 영화들에는 어쩔 수 없는 숙명적 결말 그리고 그 결말이 자아내는 음산함이 깔라져 있다. <자토이치.에는 그딴 건 없다. 상황은 개판이지만, 아름다움이라는 테마로, 스스로의 삶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게이가 나온다. 그리고 그의 명랑함이 깡패 집단에게 몰살당하기 직전인 주인공 그룹에게도 즐거움을 전염시킨다. 그게 <7인의 사무라이>에서 흔히 봤던 바로 그 벼농사 신들을 경쾌한 음악으로 더욱 밝게 만든다. 음침한 농민이 아니라 가난하지만 밝고 경쾌한 농민, 그게 <자토이치>에 나온 농민이다.

확실히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에서 음악의 개수는 적지만, 훨씬 더 강하고 장타로 나온다.

영화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많은 경우 영화 ost를 전편을 듣는다. 그건 내 취미다. 영화는 좋았는데, 그렇게 전편으로 음악을 듣기가 좀 그랬던 영화가 두 편이 있다. <베테랑>이 그랬고, <명랑>이 그랬다. 테마곡 한 두 개를 제외하면 진짜 기능적으로만 음악이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고 나쁜 건 아니다. 그런 기능만 가진 음악을 장면과 상관없이 나중에 떼어내서 따로 듣기는 쉽지 않다. <베테랑> 이전의 <짝패>는 음악도 아주 들을 만하고, 좋았다. 음악만으로 제일 재밌게 듣는 것은 <범죄 와의 전쟁>.. 얼마 전에 우리 집에 놀러온 초등학생들도 이 노래는 예능에 많이 나오는 노래라고, 좋아했다.

드라마 ost 중에서 가장 좋아한 건 여전히 <커피 프린스>다. 다른 사람은 취향이 맞지 않아서 듣기 힘들겠지만, 자주 듣는 ost는 <손 – the guest>.. <스카이 캐슬>의 음악도 좋았다.

3.
<소나티네>를 그렇게 자주 봤는데도, 무슨 미학이 어쩌고, 그런 거 신경 쓰면서 보다가 정작 스토리 자체를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다 얘기 아니냐?

<소나티네>의 비극을 만든 건, 결국 지하철역이다. 다케시가 맡고 있는 지역에 지하철 개통이 되면서 별 볼 일 없는 중간 두목의 지역이 아주 괜찮은 지역이 된다. 아주 바쁜 야쿠자가 된다. 그리고 짭짤하다. 자기 지역에 있는 마작판에서 돈을 제대로 내지 않으니까, 이걸 찾아가서 조지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으니까 결국 물에 담거 죽여버린다. 이게 초반 설정이 중요 부문이다. 그게 지하철하고 연결을 시켜야 의미가 생기는데, 난 예전에 저건 그냥 내면적 폭력성 같은 그런 간단한 방식으로만 봤던 것 같다.

괜찮게 성업 중인 자신의 지역을 노린 두목과 친구의 배신.. 그리고 출발은, 우리 말로 역세권이 되어버린 지역.

오사카도 나오고, 홋카이도도 나오고, 오키나와도 나와서, 무슨 전국에 엄청난 조직이라고 생각하고 봤던 게, 예전에 얘기를 잘 못 짚은 실수였던 것 같다.

전국조직이 아니라, 그냥 동경에 있기는 하지만, 찌질한 별 거 없는 조직이라고 하는 설정을 놓고 봐야 나머지 얘기들이 자연스럽게 풀린다. 이 엄청난 조폭이 작은 바닷가에 갇혀.. 가 아니라, 걔네 원래 그래.

그러니까 겨우 역세권이 된 작은 나와바리 하나를 위해서 두목과 친구가 배신극을 벌이지..

요렇게 보니까 <소나티네> 얘기가 훨씬 더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클라이막스로 가는 모티브라는 게, 그렇게 보면 뻔하다.

품만 엄청 잡았지, 별로 그렇게 유능하지도 않은 킬러를 보낸 친구, 결국 그 친구 허벅지에 총을 여러 방 쏘고, 사건의 전모를 듣고, 죽여버린다.

그리고 두목도 죽인다.

친구와 두목이 배신하는 일은 살다 보면 늘상 벌어지는 일이다. 회사라는 게, 그렇다. 어떻게 보면 정치도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 얘기 속에 사실 폼만 잡았지 – 아니, 폼도 잘 나지 않는 – 찌질한 군상들이 유치찬란하게 노는 얘기들이, 총 드는 얘기만 빼면 우리 사는 거랑 그렇게 크게 다르지도 않다.

야쿠자라는 특징이, 사직서 내고 그만두기가 좀 어렵다는..

그건 68의 학생 운동으로 수배 받고 도망치던 시절을 뒤로 하고 쇼 비즈니스에 들어온 기타노 다케시의 인생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일본 방송계에 얼마나 많은 배신이 있었겠는가. 아마도 절반은 대부분 그가 겪은 경험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젠장. 이 영화가 친구와 두목의 배신을 논리적으로는 물론 감성적으로도 해결하지 못한 한 사나이가 결국 파멸을 선택한 얘기 아닌가? 어쩔겨? 죽인다고도 해결될 문제가 아닌데.

오키나와로 처음 갔을 때 동네 보스가 “이런 일로 올 필요까지는 않는데”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니, 부탁해서 오라고 한 거 아닌감요? 아니야, 부탁은 너네 보스가 했어.

그 때 벙찌는 기타노 다케시의 표정이, 영화 전체의 논리와 톤을 설명하는 것 아닌가 싶다. 어쩔겨? 안 그래도 구질구질 맞아서 야쿠자 생활 정리할까 생각 중인데.. 이것들이!

물론 이러한 감성 자체가 올드한 것이다. 나의 윗 세대들은 배신이라는 말 나오면 치를 떨었던 것 같다. 나만 해도, 배신?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뭐. 하거나 말거나, 그런 맘으로 살았던 것 같다.

지금의 20대라면? 윗 세대들, 상사가 배신하지 않으면 이상할 것 같다는 마음을 한 자락 깔고 있는 것 같다. 배신? 그게 영화로 형성이 돼?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야?

배신을 모티브로, 50대나 그 이상, 40대 그리고 20대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일 것 같다. 그래서 <소나티네>가 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이다. 중요하고 재밌고, 미학적 완성도도 높지만, 이제는 올드한 영화다. 쟤들 왜 저래? 웃기기는 하지만, 답답하네.. 아마 이런 게 시대 감성이 아닐까 싶다. 배신, 하거나 말거나..

프랑스에 알랭 드롱 나왔던 <암흑가의 두 사람>이 날리던 시절이 있다. 더 이상 프랑스는 그딴 영화는 안 만든다. 시대 감성이 변해서 그런 것 같다. 우리 시대의 감성도 변한다. 영화 <노스탈지아>의 아름다움만이 나에게 시대착오적 아름다움으로 동동 떠나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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