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핸즈 오브 스톤>, 돌주먹을 봤다. 로베르토 듀란과 슈거 레이 레너드의 두 번에 걸친 권투 시합이 중심에 있다. 초등학교 시절, 어깨동무, 새소년 같은 어린이 만화잡지에 툭하면 마빈 헤글러와 함께 나오던 사람들 얘기다. 실제로 tv에서 게임을 본 것은 슈가 레이 레너드와 헌츠의 경기, 이건 레너드가 이겼다.
권투가 아직 세상의 중심에 있던 시절, 파나마의 그야말로 인민 영웅인 듀란의 삶에 관한 이야기인데..
나는 재밌게 봤다. 그런 권투 얘기가 얼마나 재밌었냐면.. 중학교 2학년 때 진짜로 권투 선수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실제로 뭘 하려고 했었는데.. 된장. 안경 끼고는 권투 할 수가 없다는. 내 평생에 뭔가 되고 싶었던 유일한 순간이고, 직업으로서의 꿈을 가졌던 짦은 순간이다.
권투는 못하게 되었지만, 그 때 처음으로 아령을 샀고, 운동이라는 것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의 로망에 관한 이야기라서, 나는 재밌게 봤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제 나의 감각도 옛 시대에 속한 것, 낡은 시대의 것 그리고 아날로그라고 아무리 미화하려고 해도, 구닥다리에 속한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핸즈 오브 스톤>을 극장에서 본 사람은 2002명이다. 상업영화 그것도 로버트 드 니로 정도 되는 배우가 나오는 영화에서 본 관객수로는 충격적인 수치다. 다큐나 인디영화의 기준이 만 명이다. <카모메 식당>도 그것보다 많았고, 심지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다룬 경제 다큐 <인사이드 잡>도 그것보다는 많이 봤다.
특별히 노력하거나, 뭔가 장치를 부착하지 않은, 어린시절의 추억과 자연스러운 생각의 흐름에 기반한 나의 감성은..
2002명에 속한 것이다.
요즘 내 고민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들여다본 것 같다. 로베르토 듀란을 아는 사람이 요즘 얼마나 된다고..
자본론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보다도 더 작은 규모의 숫자가 영화 <핸즈 오브 스톤>을 봤다. 설령 로자 룩셈부르크나 힐퍼딩에 대해서 얘기를 한다고 해도, 이 정도 규모는 아닐 것 같다.
(학위 끝나고 힐퍼딩에 관한 논문 발표를 하는데, 앞 줄에 계시던 김수행 선생 등, 맑스 경제학의 원로 할아버지들 전원 재운 기록을 가지고 있는 ㅠㅠ.)
어쨌든 나의 감성은, 그 자체로는 <핸즈 오브 스톤>을 재밌게 본 2002명에 속한다는 것을 일깨워 준, 고맙지만 더러븐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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