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길이 엄청 막혔다. 학교 가는 큰 애는 50분에 간당간당하게 교문에 들어갔다. 대학교 때 미국 영화 보면 엄청 중요한 일 하는 아빠들이 아침에 자녀들 등교시키고 가는 거 보면서, 좀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어떻게 1년 내내 저렇게 할 수가 있지? 프랑스에서 고등학교 교사 부부랑 친하게 지낸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막 들어간 아이가 있었는데, 그 정도가 아니라 월수금, 화목토로 부부가 등하교는 물론이고 시장 보고 밥 하는 것도 나누어서 하는 것 보고.. 이런 게 우리의 미래가 될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게 우리의 미래가 될지는 잘 모르겠다. '솔로 계급의 경제학' 작업하면서, 그 때 본 20살 중 1/3 정도만 결혼을 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럴 것 같다. 스웨덴을 비롯한 많은 유럽 국가의 혼외 출산 국민이 절반을 넘어선다. 통계로만 보면 결혼하지 않는 건 별 상관이 없는데, 연애도 하지 않는 건 좀 그렇다. 요즘 같으면 연애 대신에 혐오로 소일하는 것 같다.

성경에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그랬던 것 같다. 한국에서 성경공부하는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혐오를 재생산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종교가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자기 보고 싶은 대로, 자기 살고 싶은 대로 살고, 종교는 그냥 그걸 강화시키는 보조재 같은 거 아닌가 싶다.

우병우, 황교안, 한국 공직 시스템이 만들어낸 대표적인 개똘아이들. 대통령 권한대행 시절, 황교안이 포럼 같은 데 돌아다니면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자기가 만들고 싶은 경제라고 그러고 다닐 때, 아마도 저 아저씨는 반드시 대선에 나오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황교안이 꽃길을 걸었는데, 아마도 이회창이 모델인 것 같다. 그래도 그는 대쪽 검사라는 이미지라도 있었는데. 황교안의 꽃길과 반대편의 진흙탕 길은 이재명이 걷는 것 같다. 정치라, 잘 모르겠다.

죽기 전에 노회찬 대통령 되는 거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뭐, 가능성 1도 없지만, 가끔 '좋은 나라'라는 생각을 하면 노회찬이 대통령을 해야지, 이런 마음도. 이제 그런 택없는 소망 같은 건 안 갖기로 했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너무 많이 죽었다.

애들 학교 데려다 주면서 카뮈의 페스트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주 더운 날, 대학교 2학년 때 중앙도서관 지하에서 팥빙수 먹으면서 읽었던 그 기분이 떠올랐다. 세브란스에서 이한열 시체 지키던 그 6월이 지나고 어느 여름 날이었는데, 마치 코 끝에서 세브란스에서 맡았던 소독약 냄새가 나는 기분이었다.

혐오로 달려가는 한국은, 페스트에 갇힌 카뮈의 그 어느 도시와 사실 다를 바 없다. 도시 바깥으로 도망갈 것인가, 아니면 이 사람들과 같이 하겠다, 어느 기자에게 인간적으로 던져진 생존의 질문이다. 기자는 잔류를 결정한다. 사실 페스트라는 소설 자체가 이 하나의 질문을 형성시키고, 독자들에게 너라면 어떻게 하겠느냐, 그 질문을 하기 위해서 쓰여진 것과도 같다. 그 시절에 나는 페스트를 끝까지 읽지는 않았다. 여기까지 읽고.. 도서관이 너무 덥다, 그냥 잔디밭에 나가서 친구들하고 술 처먹고, 헬렐레.

40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페스트를 다시 읽었다. 쥐가 옮기는 질병 페스트에서, 피를 토하며 죽는 쥐가 처음 등장한 날이 4월 16일이다. 세월호 사건이 난 바로 그 날이다. 순간 소름 돋았었다. 어느 화창한 봄날..

우리는 이 봄날, 서로 사랑하기 보다는, 미워하고 혐오할 대상을 찾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는지도 모른다. 사실 한국에서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이 누군가를 혐오하지 않는 거의 유일한 순간이 프로야구 하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 시간만큼은, 혐오를 잠시 내려놓고, 응원한다. 잘 좀 해라, 병살 좀 그만 치고. 지겹지도 않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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