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많은 노래가 삶의 중요한 부분에 끼어들게 된다. 나도 참 많은 노래를 들었는데, 지금 와서 돌아보면 가장 중요한 노래가 문득 미니 리퍼튼의 “Lovin’You”였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듣던 많은 노래들은 LP를 샀거나 혹은 CD를 샀거나, 아니면 음원이라도 산 노래들이다. 많은 노래들은 LP를 사던 순간의 기억 같은 것과 같이 있다. 이 노래는 어떻게 듣게 된 건지, 어디서 난 건지, 그것도 모른다. 그렇지만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노래를 꼽으라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이 노래였던 것 같다. 

2000년대에 차에서 쓰는 CD 플레이어처럼 생긴 MP3 플레이어가 잠시 출시된 적이 있었다. 그러면 차에서 180곡 내외를 들을 수 있다. 게다가 좋은 건, 시동을 꺼도 끝난 부분에서 시작할 수 있다. 여기서 음원을 뽑아서 카세트 테이프처럼 생긴 카트리지로 소리를 릴레이하는 방식이다. 그 시절만 해도 CD 플레이어가 달린 차는 거의 없었고, 대부분의 차가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를 달 수 있었다. 거기서 MP3를 들을 수 있다니, 거의 혁명 같은 일이었다. 이 MP3 플레이어는 온도에 약해서 잘 망가졌고, 아마 세 대를 샀던 기억이다. 플레이어 자체는 그렇게 비싸지 않았는데, 이것 때문에 차에 좋은 스피커를 달고, 앰프도 다 새 거로 바꾸게 되었다. 나중에는 차값보다 오디오 값이 더 비싸게 되었던. 

그렇게 차에 묻어온 MP3 중에 “러빙유”가 있었다. 요즘은 차에 가수와 곡명은 물론이고 앨범 레이블까지 다 뜬다. 그 시절에는 그딴 건 없었다. 물론 파일을 열어서 보면 알 수야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열심히 살지는 않았다. 영동 고속도로를 가면 대관령 구간을 넘어가야 한다. 그 구간에서 이 MP3 플레이어는 평균적으로 두 번 정도는 튀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정지했다. 별 수 없던, 그런 시절이었다. 요즘은 핸펀에서 블루투스로 연결하니까 아무리 거친 구간이라도 튀고 말고, 그딴 건 없다. 

누군지도 모르고, 뭔 얘기인지도 모르고 그냥 들었는데, 나는 무슨 유명한 소프라노가 부른 건가, 그랬다. 나중에 보니까 미니 리페튼이라는 싱어송 라이터가 초창기에 자기 딸을 키우면서 만든 노래였다. 그딴 것도 다 몰랐다. 

2001년, 2002년, 그 시절 나는 겉으로는 화려하게 살고 있었는데, 정서 상태는 완전 개판이었다. 대통령은 김대중이었는데, 초장에 청와대 근무에 대해서 “싫어요”, 그러고 말았드랬다. 이유는 별 게 아니다. 7시에는 출근해야 한다는. 총 맞았어요, 그런 짓을 하게, 그러고 말았다. 대통령 만찬에 갈 기회가 지금까지 몇 번 있었는데, 그것도 다 안 갔다. 그것도 별 이유는 아니다. 그런 만찬 한 번 가서, 술도 한 잔 얻어마시고 오려면, 최소 다섯 시간을 금연을 해야 한다. 한 시간 전에는 오라고 그러고, 어딘지도 모르는 데서 대충 대기하라고 그러고, 그러다가 결국 담배를 피울 수 있게 되는 시간이 대충 따져보니까 다섯 시간 정도 된다. 미쳤어? 물론 엄청 중요한 일이라면 다섯 시간 아니라 열 시간도 참을 수 있는데, 그게 고작 밥 한 그릇 먹기 위해서라면.. 일 없슈, 그러고 말았다. 청와대 만찬이라는 게, 한 번 싫다고 하면 어지간하면 다시 권유하는 일은 없다. 그런 이유로 대통령 만찬에 안 갔다고 하면 사람들이 웃을텐데, 어쨌든 나는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 

문재인 대통령 되기 전에 둘이서 소주 한 잔 마신 적이 있다. 그 전에 가끔 그가 나에게 뭘 해주면 되겠느냐고 할 때마다 나중에 여유 되면 소주나 한 잔 사주세요, 그랬드랬다. 그리고 정말로 소주 한 잔 샀다. 나는 그걸로 그에게 받을 건 다 받았다고 생각한다. 

2000년부터의 몇 년간, 나는 정체성의 불편함이 극도에 달하던 시절이고, 뭘 하고 살지 심하게 방황하던 시절이었다. 흔히 말하던 보수들의 세계에 너무 깊이 들어가 있었고, 이제는 어떤 식으로든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을 나도 느끼던 시절이다. 하다못해, 내가 상공회의소의 주포였었다. 상의의 중요한 발표들을 토론회에서 내가 하던 시절이었다. 전경련에서 술 마실 때면 뭐 해주면 여기서 일할 수 있겠냐, 그런 거 물어보기도 했다. 웃기만 했었다. 

개인적인 삶도 개판이었다. 일요일 오후마다 어머니가 집에 오셔서 결혼하라고 아주 난리를 치셨다. 몇 달 그러고 버티다가, 도저히 못 살겠다 싶어서, 토요일 밤 12시면 여행을 떠났다. 그 시간에 떠나면 밤새 전국 어디든지 갈 수 있다. 강진 같은 데도 갈 수 있다. 진도 평택항도 그때 처음 갔었고, 사람 없을 만한 여행지들은 그 시절 대부분 가봤다. 그렇게 밤새 운전하고 가서 아침에 아직 아무도 오지 않을 때 아침을 사 먹었다. 적당히 여기저기 보고, 저녁까지 대충 먹고 해 떨어지면 집에 들어왔다. 

그 직전까지는 토요일이 근무일이었다. 가가 싫어도 토요일날 죽어라고 출근해서 좀 버티다가 돌아오던 시절이었다. 집에 오면 술 때려 마시고 놀고 싶은데, 다음 날 어머니가 오시니까 좀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밤 12시에 운전하고 나가는 삶, 그렇게 살았다. 술은 일요일 밤에 마셨다. 

시간은 얼마 없고, 도저히 힘들어서 술은 마셔야겠고… 그때 주로 마시던 술이 보드카와 포카리스웨트를 혼합한 소위 “뿅가리스웻”, 정말 TV 틀어놓고 이거 마시면 달달하던 입맛이 어느 덧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약 느낌이 어떤 건지 직감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그 불안하던 정서에서 “러빙유”가 흘러나오면,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마음이 정말 편해졌고, 좀 더 달달한 인생을 살고 싶다는 느낌이 강렬혀졌었다. 

물론 그때는 스피커가 좀 도움을 줬다. 프라이드 웨건을 타고 있었는데, 자료집 실던 뒷부분의 한쪽에다 인클로져가 어마무시하게 큰 우퍼를 달았었다. 원래 자료집이나 책 같은 거 실으려고 웨건을 샀던 거였는데, 결국은 그 자리의 일부를 스피커가 차지했다. 일반 승용차에도 이런 스피커를 다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는데, 뒷자리를 전부 가려서 운전할 때 위험하다. 나 말고 그런 스피커를 달고 있는 차는 아주 오래 전 문정동에서 지프 랭글러에서 한 번 본 적 있다. 나 말고도 미친 넘이 또 한 명 있군, 그렇게 웃고 넘어갔다. 

새벽에 대관령 넘어갈 때 미니 리페턴의 “러빙유”가 나오면, 정말 삶을 재밌게 살고 싶고, 뭔가 잘 해 보고 싶고, 그런 생각이 가득해진다. 그런 기억이 워낙 강해서 그런지, 나중에 신혼여행도 강릉으로 갔다. 사람들은 뭐라고들 했는데, 그때 아내에게는 나중에 길게 간다고 했었다. 결국 취리히에 한 달, 파리에 한 달, 그렇게 따로 여행을 갔다. 나는 약속한 건 지키는 편이다. 

몇 달 아니, 몇 년간 고민이 많았는데, 결국 사직서를 내는 걸로 그 시절을 마무리했다. 정부에서는 좀 참고 넘어가면 해외 파견 자리를 챙겨준다고 했었는데, 고맙지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시민운동으로 돌아와서 활동을 시작했고, 그때부터 책 쓰는 준비를 시작해서, 2005년에 첫 책이 나오게 되었다. 

그 시절을 생각해보면, 결국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노래는 즐겨 듣던 락도 아니고, 재즈나 칼라스 같은 성악곡도 아니었던 것 같다. 누군지도 잘 모르고, 뭐 하자는 노래인지도 모르고 그냥 어떻게 생긴 건지도 모르면서 들었던 미니 리퍼튼의 “러빙 유”가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노래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그에 마야라는 이름의 딸에 대한 노래였다는 것은 아주 나중에 알았다. 어쩐지, 그 노래를 들으면서 생기는 감정이 더 좋은 연애를 하고 싶다거나, 누군가를 강렬히 사랑한다, 그런 느낌이라기 보다는 좀 더 편안하고 그런 삶에 대한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그게 어린 딸에 대한 노래였던 거, 난 정말 꿈에도 몰랐다. 그렇지만 그런 정서가 생겨난 것은 진짜다. 

살다 보면, 삶의 카르푸르, 사거리 같은 곳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순간 같은 게 있다. 나에게는 2001년의 복잡한 상황이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문득, 그 안에서 괜히 희망 혹은 위로 같은 것을 느끼게 되는 계기가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림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시가 될 수도 있다. 나에게는 도대체 왜 나에게 온 것인지, 유래도 정확히 모르는 노래 한 곡이 그 역할을 했다. 

미니 레퍼튼 “러빙유” 싱글이 나온게 1974년인데, 그녀는 암으로 5년 후에 사망하게 된다. 짧은 삶을 살다가 갔다. 아무도 모르겠지만, 그녀의 삶은 30대 초반의 내 삶을 좀 더 밝고 건전한 방향으로 구원하는 역할을 했다. 

내 인생의 노래를 고르라면 아무래도 Lynyrd Skynyrd의 “Free Bird”가 될 거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었는데, 막상 50대 중반에 다시 돌아보니, 그야말로 이유도 모르고 들었던 “러빙유”였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평소 같으면 이런 노래 간지러워서 어떻게 듣드냐고 했었을지도 모르지만, 삶이 이래저래 엉망진창이던 순간, 헤비메탈과 국악 사이에 끼어 있던 노래 한 곡이 내 삶의 경로를 바꾸게 된 것 같다. 

사실 “러빙유”는 차에서만 들었고, 집에서는 거의 들은 적이 없다. 언젠가는 CD 한 장 살 생각이다. 

결국 회사는 그만두었고, 결혼은 했는데, 아이가 태어난 것은 결혼하고 9년만의 일이었다. 연달아 둘째가 태어나서 아이 둘을 키우는 아빠가 되었다. 아들을 키워서 그런지, “러빙유”, 그런 감정이 드는 일은 거의 없다. 이 아이들이 날 좀 그만 괴롭히면 좋겠다는 생각만 많이 들었다. 




 

https://youtu.be/kE0pwJ5PMD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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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혁신파크에 대한 기억이 참 많다. 

정태인 선배 살아있던 시절, 여기에 폴라니 연구소를 만들 게 되었으니까 같이 하자고 했었드랬다. 나도 참 인간 야박하기는.. 난 할 생각 없고, 형도 하지 말라, 그랬드랬다. 박원순이.. 그래서 박원순이 뭘 얼마나 돕겠냐? 그거 믿고는 못 한다, 그랬드랬다. 그랬더니 이 주변에 카페를 낼 생각이 있다고 해서, 카페는 더더군다나 아니올시다, 특히 불광역 주변, 생각보다 카페 수요 없다.. 막 뜯어말렸드랬다. 아마 내가 애들 보느라고 정신이 없지 않았으면 더 말렸을텐데, 결국 연구소는 만들었고, 그는 소장이 되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때 더 말렸어야 했다. 

이 공간에서 몇 사람이 한다고 한 건 잘 해보라고 했고, 도와주기도 했다. 그리고 몇 개는 뜯어말렸고, 몇 개는 그래서 결국 중단. 정태인 선배는 이유는 잘 모르는데, 엄청나게 그걸 하고 싶어했다. 

그것도 다 옛날 일이다. 강북 살리기 일환으로 이 자리에 서울연구원이 오기로 결정이 되었었다. 그게 꼭 의미가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런가보다 했다. 

오세훈이 시장이 되었다.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있고, 사람들이 모여서 이것저것 해볼 수 있는 공원 같은 거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은 잠깐 했었는데..

그냥 다 밀어버리고 고밀도 개발, 이것저것 다 때려 넣어서... 하여간 높은 빌딩 짓겠다는 거다. 

그리고 그 명분이 서울에 남은 시유지 중에서는 가장 크다는 거. 

아니 크기가 크고 중요하면 뭘 어떻게 할지 좀 생각을 해보는 게 맞는 거지, 그냥 내 맘대로, 옛날에 하고 싶은 거 할 거예요, 이러는 게 맞나 싶다. 

예전 오세훈 시장할 때에는 '혁신 시정'이라는 이름 걸고 뭔가 좀 의견을 모아볼려고 했던 것 같기도 한데.. 다시 시장이 되고 나서는, 그냥 내 맘대로 할 거예요, 그런다. 

밀도 같은 거, 공유지의 역할, 이런 얘기도 이 나라에서는 너무너무 예전의 얘기가 되어버린 것 같다..

https://www.hani.co.kr/arti/area/capital/1072274.html?_fr=mt2 

 

박원순표 서울혁신파크 역사 속으로…대형 복합 시설 개발

서울시 “코엑스급 50만㎡ 산업·문화·주거 시설 조성”사회적기업·공익적 민간단체 설 자리 없어질 우려도

ww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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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세 논쟁..

잠시 생각을 2022. 12. 16. 18:42

언제부터 법인세가 외국인 투자 유치의 기본 변수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조세피난 지역도 있고, 수많은 경제 특구들이 존재하는 지금, 법인세 1%든 2%든, 그 정도 비율을 자기네 생산 기지 이전에 핵심 변수로 생각하는 기업이 있을까? 

법인세 인하는, 이제 한국에서는 이념이 되었다. 상황에 따라 올릴 수도 있고, 내릴 수도 있는데, 별로 그런 효과 분석을 따로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이념에 의해서 내리자고 하는 게 이번 논란의 출발이라고 본다. 

해외 기업 유치는 애초에 핵심 변수가 아니었는데, 국회 통과하는 시점에 이게 그렇게 논란의 중심이 된 것은.. 사람들 바보 취급하는 것 아닌가 싶다. 아무 거나 이유를 막 갖다 붙이다 보니까, 해외 기업을 유치하려면, 요렇게 된 거라고 본다. 

1%를 내리든, 2%를 내리든, 해외 투자 그리고 핵심적으로는 그린 필드 인베스트먼트, 순수하게 생산을 위한 투자는 그런 것에 거의 영향을 안 받는다. FDI 중에 양질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투자는 기계적인 법인세율이 아니라 정치적 흐름, 제도적 추이 그리고 투자 관계 같은 것에 영향을 받는다. 

리쇼어링을 내가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법인세와 해외 기업유치는 영 택도 없는 연결고리라고 생각한다. 신규 자동차 공장들이 대거 미국으로 가야하는 지금, 누가 법인세 1% 혹은 2%를 내려준다고 한국에 오겠느냐.. 

논쟁을 하더라도 어느 정도 비슷한 걸 가지고 해야지, 택도 없는 걸 가지고, 무슨 '마중물'이라는 둥 이상한 얘기를 너무 많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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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때 슬프기는 했지만,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애꿎은 우리 큰 애만 이태원 참사 때문에 축제를 제대로 못 즐겼다고 투덜대다가 나한테 크게 혼났었다. 

유가족 인터뷰 기사 읽다가 예기치 못하게 눈물이 나왔다. 나도 애들 둘 키우는 아빠다. 우리 집 어린이들이 언제 어디서 불의의 사고를 당할지 모르고, 언제 어떻게 억울한 일 당할지도 모른다. 

이태원의 영혼들을 위하여 잠시 묵념.. 그리고 그 유가족들에게 위로를.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87842&PAGE_CD=ET001&BLCK_NO=1&CMPT_CD=T0016&fbclid=IwAR05e_NsoZhEOeBcQtfYfHMH5T61towfCoTdgZTypjcqpRa0EPngrY183ss 

 

"유족들이 정치꾼? 너무 억울해서 모였어요"

[유족 인터뷰] 고 송채림씨 부친,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송진영 부대표

www.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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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쯤 전에 캣타워가 너무 낡아서, 골판지로 된 스크래처로 바꿔줬다. 아내 의견이었다. 그랬더니 야옹구가 누워 있을 데가 없어서 급하게 좀 큰 쿠션을 사줬다. 개, 고양이 겸용이라고 되어 있는데, 전혀 사용을 안 했다. 잘 보니까 뜨게질 한 털이 발톱에 걸린다. 몇만 원 바로 다이. 그리고 극세사로 된 다른 깔개를 바로 주문했다. 쓸지 안 쓸지 몰라서, 좀 작은 걸로. 

역시 본 척도 안 한다. 가슴에 작은 상처를.. 나도 그냥 포기했다. 바로 버릴려고 했는데, 이것저것 정신이 없어서 바로 치우지 않고 그냥 한 달 넘게 방치. 

날이 추워져서 그런지, 오늘 보니까 야옹구가 여기서 자고 있다. 하여간 길고양이 출신인데, 까다롭기는 더럽게 까다롭다. 좀 더 큰 거 사줄 마음도 있기는 한데, 쓸지 안 쓸지를 몰라서. 작아도 이리저리 몸을 꾸겨서 잘 올라가 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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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보니 후진국', 이 표현이 요즘처럼 실감나는 시기도 없다. 

선진국 경제에 최적은 없다. 많은 것을 타협하면서 균형을 찾아가기 때문에 더 좋은 상태가 있어도 갈 수 없고, 알아도 가지 않는 것이 선진국이기도 하다. 프랑스와 독일 시스템의 차이가 그래서 생기는 것이고, 스웨덴과 미국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도 그렇다. 

엘리트들이 마음대로 경제를 하지 못하는 것이 선진국 경제가 아닌가 한다. 

지금 한국은 일부의 법조 엘리트들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최적을 만들려고 한다. 그렇게 최적이 만들어질 수 있다면, 그게 바로 후진국이다. 더 좋은 게 있다는 것을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다. 제도가 만들어내는 경로의존성이 만든 현실적 균형, 그 위에서 불안하게 계속 대화하고 타협하는 것이 선진국이다. 일부 엘리트가 언제든지 그 균형을 깰 수 있는 나라, 그게 후진국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라면, 한국은 지금 '눈 떠보니 후진국'이다. '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70450.html?_fr=mt2&fbclid=IwAR31iztK6bT0tdofqL605BVH7_iXU6beJkTu1aO4HbzzaPN1N8F2IQ5p3G4 

 

눈 떠보니 후진국 2…‘총 대신 법’으로 윽박지르는 권력

[아침햇발]

ww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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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은 안 쓰다가 몇 년 전에 택시 잡기가 너무 어려워져서 카카오택시 쓰면서 결국 가입하게 되었다. 뭐가 엄청나게 온다. (그렇지만 결국은 카카오택시도 잡기가 어려워져서, 카톡만 남은.)

카톡에서 생일을 알려준다. 제일 처음 생일이라고 뜬 사람이 이제는 떠나버린 정태인 선배였다. 늘 마음이 짠해서, 생일 선물로 커피 쿠폰 보냈다. 그 전에는 종종 술도 받아드리고 했었는데, 살아서 내가 사드린 마지막 선물이 바로 그 카톡 커피 쿠폰이 되었다. 그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좋은 거 사드릴 걸, 오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모든 사람에게 생일 선물을 하는 건 아니고, 나도 매일 카톡을 들여다보는 건 아니고.. 그래도 눈에 띄면 그냥 넘어가지는 않고, 1~2만 원 선에서 뭐라도 보내려고는 한다. 가끔 들여다 보는데, 딱 생일이라고 나오면 이것도 인연이겠지, 그렇게 선물을 보내기 시작한 게 몇 년 된다. 그래봐야 한달에 한두 번, 자주는 아니다. 

몇 년째 나는 긴축경제를 꾸려가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알고 지내는 사람 몇 명한테 생일선물 보내는 것도 힘들 정도는 아니다. 일부러 찾아서 하지는 못해도 카톡에서 누군가 생일이라고 알려주면 그냥 선물을 하는 것은.. 내가 나이를 처먹어서 그렇다. 친한 친구들이 이미 여럿 떠났고, 같이 일하던 사람들도 많이 떠났다. 거의 비슷하게 살았던 나도, 언제 죽어도 안 이상하다. 생각해보면 사람들에게 베푼 게 별로 없다. 그냥 늘 도움만 받고, 늘 고맙기만 하면서 살았다. 조금이라도 갚고 떠나는 게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몇 년 전부터 조금씩 하기 시작한 것 같다. 

간만에 아는 사람이 생일이라고 떠서 정말 약소한 선물 하나 하면서, 이걸 처음 시작한 게 정태인 선배 생일이었다는 생각이 갑자기 났다. 아직도 정태인 선배 없는 세상에 산다는 게 잘 실감이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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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애가 요즘 위기다. 지난 달에 태권도 품세하다가 손가락 욕을 해서 검은 띠 뺏기고, 아직 흰 띄 차고 다니는 상황이다. 그때도 혼 많이 났는데, 지난 주말에는 구청에서 하는 축구 클럽에서 발로 욕하다가 코치님한테 혼났다. 

사실 난 그래본 적이 없어서 상황을 이해하는 게 좀 어려웠다. 언제부터 이랬는지, 정확한 이유가 뭔지, 아직 알 듯하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고. 

반성문을 쓰게 했다. 그리고 한 달간 tv 시청과 컴퓨터 금지를 하기로 했다. 대충 크리스마스 이브까지다. 그리고 올해 크리스마스 선물은 없는 걸로. tv 보는 걸 못 보게 한 건 처음이다. 

그리고 같이 문방구에 가서 편지지와 편지 봉투를 사왔다. 축구 사범님한테 보내는 사과 편지, 태권도 관장님한테 보내는 사과 편지 그리고 담임 선생님한테 보내는 감사 편지. 

살다 보면 몇 번의 위기가 온다. 그때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서 삶이 전혀 달라진다고 얘기해줬다. 큰 애 인생에서 이제 첫 번째 위기가 온 것일 뿐이라고 말해줬다. Tv 한 달간 못 본다고 하니까 닭똥 같은 눈물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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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랑의 앨범 다섯 장을 걸어놓고 듣는 중이다.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경제학자 리스트의 명언은 장하준의 입을 통해서 21세기 초반에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졌었다. 촛불집회를 둘러봤던 명박은 '밥그릇 걷어차기'라는, 한국 보수의 가장 쪼잔한 일을 했었다. 

'의자 뺏기 게임의 제로섬 방식이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찬란하게 조명을 받은 2022년, 역사 속에서 홀연히 '밥그릇 걷어차기'가 다시 전면에 나오게 되었다. 

이제 앨범도 사고, 공연도 가고, 그렇게 걷어찬 밥그릇에 뭐라도 도움이 될 일을 찾아야 하는 시기로 가나보다. 밥그릇 걷어차기, 하여간 쪼잔하기는 엄청 쪼잔했던 명박 정부로 다시 돌아가나보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31/0000712029?sid=100&fbclid=IwAR3OW5_9VZBiRv5kxaTX4DQnM0d_wjmVEE_Aijynj_9abvsbAhmsduuznXs 

 

"행안부가 검열했다는 '늑대가 나타났다'" 뭐길래?

행정안전부가 지난달 16일 열린 부마항쟁기념재단 기념식에 출연 예정이던 가수 이랑의 '늑대가 나타났다'에 제지를 걸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JTBC 뉴스룸은 지난 21일 "가수 이랑이 '늑대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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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코로나 관련된 발표는 국가감염병위기대응자문위원장이라는 정말 긴 직함을 가진 민간인이 자문위원장 자격으로 나와서 한다. 이게 윤석열 정부의 현 위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자문위원은 어디까지나 자문위원이고, 공무원은 공무원이다. 자문위원장 자격으로 별의별 소리를 다 하는데, 이걸 왜 이렇게 하는지 알기가 어렵다. 엄연한 정부 대책기구가 있고, 장관도 있고, 총리도 있다. 그런 거 잘 하겠다고 질병관리청으로 본부를 코로나 한참 때 격상시키기도 했다. 그럴 거면 뭐하러 청으로 독립시켰나 싶다. 

‘과학 방역’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희한한 소리를 막 해대더니, 자문위원장이 국민들 앞에 서서 백신 맞아라, 말아라, 별의별 소리를 두서 없이 막 하는 게 과학방역인가 싶다. 

코로나 대응처럼 누군가에게 피해가 가고, 모두에게 이익이 되지만 않는 일은 공무원들이 직접 나와서 발표하고 설명하는 게 맞다. 꼭 설명이 필요하면 자문위원은 보조하면 된다. 이런 간단한 시스템이 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지, 정말로 모르겠다. 과학방역은 과학자들이 앞에 나서고 다 책임지는 그런 건가? 그딴 건 국가 행정에는 없다. 

총리는 경제 정책 한다고 뒤에 숨어 있는데, 그렇다고 경제를 제대로 하는 것도 아니다. 강원도 레고 사태를 비롯해서, 문제가 곪고 곪아서 터지기 전까지는 뒷짐 지고 구경만 한다. 구경이라도 하는지 모르겠다, 뭐가 그렇게들 바쁘신 건지. 

방역은 지금 한국 행정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 아닐까 싶다. 경제도 이상하고, 외교도 이상하다. 행정으로만 보면, 언론도 아주 이상하고. 

행정의 정치화, 이렇게 간단하게 설명하려고 해도, 그렇게 설명이 잘 되지가 않는다. 뭔가 행정행위를 했으면 책임도 져야하는 분들은 다 뒤에 숨고, 신의와 성실로 앞에 나와서 설명하게 된 자문위원장을 방패막이로 내세우는 코로나 행정, 이게 지금 한국 행정의 현주소 아닌가 싶은 생각이. 

행정은 똑똑한 사람이 앞에 나서고, 안 그런 사람이 뒤에 서고, 그런 게 아니다. 구조와 시스템에 의해서 하게 된 사람이 그 일을 하면 되고, 계통대로 작동하면 된다. 코로나 방역을 보면, 지금 그게 안 돌아간다. 그리고 그게 이상하다고 하는 사람도 없다. 이게 내 눈에만 이상해보여? 방역도 자문위원장이 할 거면, 경제도 그렇게 하고, 다른 행정도 그렇게 하면 더 편할 거 아냐? 사실상 그렇게 움직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좀 슬픈 과거이기는 하지만, 전두환 때 아웅산 사건으로 많은 경제관료들이 불귀의 객이 된 사건이 있었다. 그래서 큰 일 났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사실 그 뒤에 별 일 안 벌어졌다. 80년대 한국 경제는 최소한 지표만으로 보면 다 좋았다. 게다가 고질적으로, 도저히 고칠 수 없을 거라고 하던 인플레도 그때 잡았다. 신화적인 공무원이 있어서 뭔가 잘 되었다, 그건 박정희나 전두환 시절에 만들어낸 신화다. 행정에는 그딴 거 없다. 시스템대로 움직여나가고, 잘 되든 안 되든, 일정 수준의 품질관리를 하는 것, 그게 관료주의다. 코로나 행정을 보면, 한국에서 그래도 몇 번의 정권을 거치면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그 최소한의 관료주의마저 근본부터 흔들리는 것 같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문제인지, 그야말로 진단이라도 해주고 싶은 상황이기는 하다. 

문제는 드러난 것부터 푸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일단 코로나 행정에서.. 총리든 장관이든 아니면 그걸 하도록 하는 게 자신의 직인 사람들이 나와서 국민들에게 지금 어떤 상황이고, 어떤 게 더 필요하고, 어떤 협조가 필요한지, 직접 나와서 얘기하는 건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괜히 자문위원 뒤에 숨어서 협작질 할 궁리만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과학방역’이라는 이름으로 민간인에게, 지금 사람들이 검사를 잘 안 받아서 실제로 환자가 얼마인지 잘 모른다, 그런 얘기를 듣는 것은 너무 어색하다. 그건 신문 사설이나 뉴스 논평으로 봐도 충분하다. 그래서 뭘 하라는 건지, 하지 말라는 건지, 공무원이 직접 나와서 협조를 요총하는 게 맞다. 제3자의 시각으로 논평하듯이 하는 자문위원장 얘기를 정부의 공식 행정으로 지켜볼 이유가 있는가? 나는 도통 모르겠다. 대구에서 한참 코로나 심각할 때, 대구 시장은 싹 빠지고 민간위원이 지금처럼 한 적이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그건 특수 상황이라서 그런가보다 했다. 지금은 뭐가 문제인 건지 정말 잘 모르겠다. 

지금 한국에서 제대로 돌아가는 행정이 어디인가, 그런 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한국 정부 자체가 용산구청처럼 되어 있는 건 아닌지, 그런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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