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시인들을 좀 만났다. 시인들끼리 서로 시 얘기 하는 걸 본지는 10년도 넘는 것 같다. 시집이 너무 안 팔린다는 얘기들을 했다. 그리고 시와 관련된 저작권의 현실적인 관리 같은 얘기들을 했다. 시인들하고 시의 감성과 깊이, 그런 얘기했을까? 돈 얘기만 했다.
꼭 그 이유만은 아니지만, 최근에 시집을 좀 사고 싶어졌다. 현실적으로는 시인들을 만났을 때, 그 사람 시를 안 읽은 것은 괜찮지만, 시집도 한 권도 안 샀다고 하면 좀 민망하다. 시는 사실 시집으로 읽는 게 제맛이다. 그래야 마음에 든 시의 외곽과 연장선 같은 게 좀 보인다.
한두 달 전부터 시집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는데, 이유는 잘 몰랐다. 최근 시는 민망하게도 읽은 게 없다. 시를 덜 읽은 게, 책에 시를 인용하면서 너무 어려움을 겪은 이유다. 사회과학 책이 별 상업적 이유도 아니지만, 어쨌든 상업출간이라고 칼 같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비용을 지불하는 거야 감수하는데, 이게 연락이 너무 어렵다. 큰 출판사인데도 그렇다. 인쇄 직전까지 결국 연락이 안 되어서, 인쇄 마지막 순간에 인용된 시구절 들어내고, 다른 문장들을 새로 넣었다.
좀 얄팍한 이유지만, 책에 인용할 대목들을 늘 생각하기 때문에, 한동안 시를 읽어도 그런 생각으로 많이 읽었다. 좋은 자세는 아니다.
최근에 우연하게 <눈부신 꽝>이라는 시집을 샀다. 순전히 제목 때문에 집어들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다가 저런 제목을 집었을까? 쉽지는 않은 시들이었다. 그래도 내 식으로 해석을 해보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서평에 시집을 써도 되느냐고 물어봤더니, 시면이 별도로 있어서 어렵겠다고 한다. 할 수 없지.
내가 그동안 열심히 안 읽은 시는 최근에 나온 시, 우리 시대의 시다. 다 보기는 어렵지만, 이런 걸 좀 챙겨서 읽고, 나름대로 이해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시를 너무 내용 중심으로 보려고 했다. 그래서 별 내용 없는 시는, 별 거 없네, 그러고 던져버리고는 했다. 윤석열 탄핵 즈음에 거의 안 보던 유튜브를 좀 봤다. 말들이 좀 격했다. 그래도 재밌게 봤다. 그리고 나서 여러가지 의미로 더욱 시가 보고 싶어졌다. 정치 유튜브와 정반대의 공간에 시집이 존재한다. 그렇게 직접적이지도 않고, 그렇게 시시각각 변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몇 마디 얘기를 길게 풀어내는 유튜브 양식과 달리, 시는 누르고 또 누른 결과다. 양은 적지만, 그 안에 시인은 자신의 삶을 그야말로 갈아 넣는다. 재래식 믹서로 갈수도 있고, 최신형 믹서기로 갈 수도 있지만, 자신의 고통은 물론 육신까지 갉아넣는다. 그렇게 해서 마지막으로 한 줌 남은 것이 시다. 유튜브와는 너무 다르다.
다들 풀어내고, 펼쳐내는 데 몰두하는 요즘, 좀 더 압축적인 뭔가를 시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시집을 꽤 많이 읽을 것 같다.
기왕에 읽을 거면, 좀 시간을 갖고, 우리 시대의 시집을 소개하는 그런 책을 한 번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집도 안 팔리는데, 시집에 대한 감상집에 팔리겠냐? 별로 가망이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도 의미가 없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시집 붐은 아니더라도, 시집을 좀 사는 흐름이라도 만들면 의미는 있을 것 같다. 물론 나에게 가장 도움이 될 것 같다. 우리 시대의 시집을 한 번쯤은 시간을 갖고 차분하게 읽었어야 하는데, 늦게라도 그런 시간을 좀 갖는 것은, 무조건 좋다. 시인들도 다 목숨을 걸고 시를 쓰고, 시인이라는 직업을 유지한다. 심심해서 그런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자기 천직이라고 생각해서 우격다짐으로 그런 삶을 사는 것도 아니다. 나름대로의 사명감을 가지고 시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에너지와 농축적인 삶을 배우는 건 나쁜 게 아니다.
하여간 나도 어지간히 사람들하고 반대방향으로만 간다. 지금이라도 유튜브도 좀 하고 그러라고 하는데, 시집이라니.. 윤석열의 멍청한 소리 몇 년 동안 듣고 있었더니, 지금처럼 시집이 땡기는 순간이 없었다. 윤석열과 가장 상극에 있는 게 시집 아니겠나 싶다. 이래저래 윤석열이 나에게도 영향을 많이 미치기는 한 것 같다. 행동은 물론이고, 취향도 바뀌게 했다.
어쨌든 먼 미래에도 우리에게 시가 남아있었으면 좋겠다. ai가 마지막까지 대체할 수 없는 게 시가 아닐까 한다. 모양은 흉내낼 수 있어도, 시인이 갈아넣은 영혼은 흉내낼 수가 없다. 시는 글자를 보는 게 아니다. 시인이 글자를 만드면서 갈아넣은 영혼의 무게와 냄새를 느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