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많은 노래가 삶의 중요한 부분에 끼어들게 된다. 나도 참 많은 노래를 들었는데, 지금 와서 돌아보면 가장 중요한 노래가 문득 미니 리퍼튼의 “Lovin’You”였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듣던 많은 노래들은 LP를 샀거나 혹은 CD를 샀거나, 아니면 음원이라도 산 노래들이다. 많은 노래들은 LP를 사던 순간의 기억 같은 것과 같이 있다. 이 노래는 어떻게 듣게 된 건지, 어디서 난 건지, 그것도 모른다. 그렇지만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노래를 꼽으라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이 노래였던 것 같다.
2000년대에 차에서 쓰는 CD 플레이어처럼 생긴 MP3 플레이어가 잠시 출시된 적이 있었다. 그러면 차에서 180곡 내외를 들을 수 있다. 게다가 좋은 건, 시동을 꺼도 끝난 부분에서 시작할 수 있다. 여기서 음원을 뽑아서 카세트 테이프처럼 생긴 카트리지로 소리를 릴레이하는 방식이다. 그 시절만 해도 CD 플레이어가 달린 차는 거의 없었고, 대부분의 차가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를 달 수 있었다. 거기서 MP3를 들을 수 있다니, 거의 혁명 같은 일이었다. 이 MP3 플레이어는 온도에 약해서 잘 망가졌고, 아마 세 대를 샀던 기억이다. 플레이어 자체는 그렇게 비싸지 않았는데, 이것 때문에 차에 좋은 스피커를 달고, 앰프도 다 새 거로 바꾸게 되었다. 나중에는 차값보다 오디오 값이 더 비싸게 되었던.
그렇게 차에 묻어온 MP3 중에 “러빙유”가 있었다. 요즘은 차에 가수와 곡명은 물론이고 앨범 레이블까지 다 뜬다. 그 시절에는 그딴 건 없었다. 물론 파일을 열어서 보면 알 수야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열심히 살지는 않았다. 영동 고속도로를 가면 대관령 구간을 넘어가야 한다. 그 구간에서 이 MP3 플레이어는 평균적으로 두 번 정도는 튀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정지했다. 별 수 없던, 그런 시절이었다. 요즘은 핸펀에서 블루투스로 연결하니까 아무리 거친 구간이라도 튀고 말고, 그딴 건 없다.
누군지도 모르고, 뭔 얘기인지도 모르고 그냥 들었는데, 나는 무슨 유명한 소프라노가 부른 건가, 그랬다. 나중에 보니까 미니 리페튼이라는 싱어송 라이터가 초창기에 자기 딸을 키우면서 만든 노래였다. 그딴 것도 다 몰랐다.
2001년, 2002년, 그 시절 나는 겉으로는 화려하게 살고 있었는데, 정서 상태는 완전 개판이었다. 대통령은 김대중이었는데, 초장에 청와대 근무에 대해서 “싫어요”, 그러고 말았드랬다. 이유는 별 게 아니다. 7시에는 출근해야 한다는. 총 맞았어요, 그런 짓을 하게, 그러고 말았다. 대통령 만찬에 갈 기회가 지금까지 몇 번 있었는데, 그것도 다 안 갔다. 그것도 별 이유는 아니다. 그런 만찬 한 번 가서, 술도 한 잔 얻어마시고 오려면, 최소 다섯 시간을 금연을 해야 한다. 한 시간 전에는 오라고 그러고, 어딘지도 모르는 데서 대충 대기하라고 그러고, 그러다가 결국 담배를 피울 수 있게 되는 시간이 대충 따져보니까 다섯 시간 정도 된다. 미쳤어? 물론 엄청 중요한 일이라면 다섯 시간 아니라 열 시간도 참을 수 있는데, 그게 고작 밥 한 그릇 먹기 위해서라면.. 일 없슈, 그러고 말았다. 청와대 만찬이라는 게, 한 번 싫다고 하면 어지간하면 다시 권유하는 일은 없다. 그런 이유로 대통령 만찬에 안 갔다고 하면 사람들이 웃을텐데, 어쨌든 나는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
문재인 대통령 되기 전에 둘이서 소주 한 잔 마신 적이 있다. 그 전에 가끔 그가 나에게 뭘 해주면 되겠느냐고 할 때마다 나중에 여유 되면 소주나 한 잔 사주세요, 그랬드랬다. 그리고 정말로 소주 한 잔 샀다. 나는 그걸로 그에게 받을 건 다 받았다고 생각한다.
2000년부터의 몇 년간, 나는 정체성의 불편함이 극도에 달하던 시절이고, 뭘 하고 살지 심하게 방황하던 시절이었다. 흔히 말하던 보수들의 세계에 너무 깊이 들어가 있었고, 이제는 어떤 식으로든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을 나도 느끼던 시절이다. 하다못해, 내가 상공회의소의 주포였었다. 상의의 중요한 발표들을 토론회에서 내가 하던 시절이었다. 전경련에서 술 마실 때면 뭐 해주면 여기서 일할 수 있겠냐, 그런 거 물어보기도 했다. 웃기만 했었다.
개인적인 삶도 개판이었다. 일요일 오후마다 어머니가 집에 오셔서 결혼하라고 아주 난리를 치셨다. 몇 달 그러고 버티다가, 도저히 못 살겠다 싶어서, 토요일 밤 12시면 여행을 떠났다. 그 시간에 떠나면 밤새 전국 어디든지 갈 수 있다. 강진 같은 데도 갈 수 있다. 진도 평택항도 그때 처음 갔었고, 사람 없을 만한 여행지들은 그 시절 대부분 가봤다. 그렇게 밤새 운전하고 가서 아침에 아직 아무도 오지 않을 때 아침을 사 먹었다. 적당히 여기저기 보고, 저녁까지 대충 먹고 해 떨어지면 집에 들어왔다.
그 직전까지는 토요일이 근무일이었다. 가가 싫어도 토요일날 죽어라고 출근해서 좀 버티다가 돌아오던 시절이었다. 집에 오면 술 때려 마시고 놀고 싶은데, 다음 날 어머니가 오시니까 좀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밤 12시에 운전하고 나가는 삶, 그렇게 살았다. 술은 일요일 밤에 마셨다.
시간은 얼마 없고, 도저히 힘들어서 술은 마셔야겠고… 그때 주로 마시던 술이 보드카와 포카리스웨트를 혼합한 소위 “뿅가리스웻”, 정말 TV 틀어놓고 이거 마시면 달달하던 입맛이 어느 덧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약 느낌이 어떤 건지 직감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그 불안하던 정서에서 “러빙유”가 흘러나오면,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마음이 정말 편해졌고, 좀 더 달달한 인생을 살고 싶다는 느낌이 강렬혀졌었다.
물론 그때는 스피커가 좀 도움을 줬다. 프라이드 웨건을 타고 있었는데, 자료집 실던 뒷부분의 한쪽에다 인클로져가 어마무시하게 큰 우퍼를 달았었다. 원래 자료집이나 책 같은 거 실으려고 웨건을 샀던 거였는데, 결국은 그 자리의 일부를 스피커가 차지했다. 일반 승용차에도 이런 스피커를 다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는데, 뒷자리를 전부 가려서 운전할 때 위험하다. 나 말고 그런 스피커를 달고 있는 차는 아주 오래 전 문정동에서 지프 랭글러에서 한 번 본 적 있다. 나 말고도 미친 넘이 또 한 명 있군, 그렇게 웃고 넘어갔다.
새벽에 대관령 넘어갈 때 미니 리페턴의 “러빙유”가 나오면, 정말 삶을 재밌게 살고 싶고, 뭔가 잘 해 보고 싶고, 그런 생각이 가득해진다. 그런 기억이 워낙 강해서 그런지, 나중에 신혼여행도 강릉으로 갔다. 사람들은 뭐라고들 했는데, 그때 아내에게는 나중에 길게 간다고 했었다. 결국 취리히에 한 달, 파리에 한 달, 그렇게 따로 여행을 갔다. 나는 약속한 건 지키는 편이다.
몇 달 아니, 몇 년간 고민이 많았는데, 결국 사직서를 내는 걸로 그 시절을 마무리했다. 정부에서는 좀 참고 넘어가면 해외 파견 자리를 챙겨준다고 했었는데, 고맙지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시민운동으로 돌아와서 활동을 시작했고, 그때부터 책 쓰는 준비를 시작해서, 2005년에 첫 책이 나오게 되었다.
그 시절을 생각해보면, 결국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노래는 즐겨 듣던 락도 아니고, 재즈나 칼라스 같은 성악곡도 아니었던 것 같다. 누군지도 잘 모르고, 뭐 하자는 노래인지도 모르고 그냥 어떻게 생긴 건지도 모르면서 들었던 미니 리퍼튼의 “러빙 유”가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노래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그에 마야라는 이름의 딸에 대한 노래였다는 것은 아주 나중에 알았다. 어쩐지, 그 노래를 들으면서 생기는 감정이 더 좋은 연애를 하고 싶다거나, 누군가를 강렬히 사랑한다, 그런 느낌이라기 보다는 좀 더 편안하고 그런 삶에 대한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그게 어린 딸에 대한 노래였던 거, 난 정말 꿈에도 몰랐다. 그렇지만 그런 정서가 생겨난 것은 진짜다.
살다 보면, 삶의 카르푸르, 사거리 같은 곳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순간 같은 게 있다. 나에게는 2001년의 복잡한 상황이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문득, 그 안에서 괜히 희망 혹은 위로 같은 것을 느끼게 되는 계기가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림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시가 될 수도 있다. 나에게는 도대체 왜 나에게 온 것인지, 유래도 정확히 모르는 노래 한 곡이 그 역할을 했다.
미니 레퍼튼 “러빙유” 싱글이 나온게 1974년인데, 그녀는 암으로 5년 후에 사망하게 된다. 짧은 삶을 살다가 갔다. 아무도 모르겠지만, 그녀의 삶은 30대 초반의 내 삶을 좀 더 밝고 건전한 방향으로 구원하는 역할을 했다.
내 인생의 노래를 고르라면 아무래도 Lynyrd Skynyrd의 “Free Bird”가 될 거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었는데, 막상 50대 중반에 다시 돌아보니, 그야말로 이유도 모르고 들었던 “러빙유”였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평소 같으면 이런 노래 간지러워서 어떻게 듣드냐고 했었을지도 모르지만, 삶이 이래저래 엉망진창이던 순간, 헤비메탈과 국악 사이에 끼어 있던 노래 한 곡이 내 삶의 경로를 바꾸게 된 것 같다.
사실 “러빙유”는 차에서만 들었고, 집에서는 거의 들은 적이 없다. 언젠가는 CD 한 장 살 생각이다.
결국 회사는 그만두었고, 결혼은 했는데, 아이가 태어난 것은 결혼하고 9년만의 일이었다. 연달아 둘째가 태어나서 아이 둘을 키우는 아빠가 되었다. 아들을 키워서 그런지, “러빙유”, 그런 감정이 드는 일은 거의 없다. 이 아이들이 날 좀 그만 괴롭히면 좋겠다는 생각만 많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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