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음악 2 – Smoke gets in your eyes, 모제 불어 시절

대학교 4학년 때 확정한 것은 아니지만 프랑스로 유학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다. 좀 사연이 많았지만, 결국에는 프랑스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당연하겠지만 제일 먼저 한 일이 불어를 배우는 일이었다. 

프랑스 유학 가는 사람들이 주로 가는 데가 프랑스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운용하는 알리앙스 프랑세즈였는데, 학교 다니면서 그렇게 갈 수 있을 정도로 평소에 준비를 하지는 않았었다. 종로 외국어 학원에 갔었는데, 길 건너 편에 있는 파고다 학원에도 잠시 갔었다. 학교 수업을 듣기에는 파고다 편이 약간 더 시간 여유가 있었는데, 그래도 결국 종로학원을 다닌 건, 버스에서 내려서 거기가 좀 덜 걸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때 불어에 대해서 아는 게 거의 없어서, 크게 알아보기도 어렵고, 복잡하게 할 상황이 아니었다. 

사실 그 직전까지도 그때까지도 국악과 대학원으로 진학할지 그냥 국내 대학원 갈지, 유학갈지 잘 결정되지 않은 상태로 4학년이 되었었다. 실기는 해금으로 연습곡 받아서 연주하면 되는 거고, 대위법이나 화성학 등 이론 시험은 외우면 된다고들 얘기해주었다. 그 정도로 막연하게 생각하고 음대 대학원 시험요강을 받아보니까 피아노 실기가 있었다. 이런 젠장. 음대 선배들이 그 정도 피아노는 그냥 이론 외우듯이 외우면 된다고 했다. 정간보가 아닌 서양식 악보를 봐야하는 이유가 생겨서, 악보 읽기용으로 들어간 실기 시험이라고 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피아노 학원을 잠시 다니기는 했는데, 선생님이 자로 손등을 너무 많이 때려서, 이렇게는 못하겠다고 그만둔 적이 있었다. 

수많은 우연이 겹쳐서 결국 불어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이게 쉽지가 않았다. 7시에 시작하는 걸 듣으면 8시에 끝난다. 그리고 버스 타면 딱 9시 1교시 수업에 맞춰 갈 수가 있다. 그렇게 맞춰서 가려면 집에서 6시에는 버스를 타야 한다. 개근은 못했고, 술 많이 마신 날들 몇 번은 빼먹었다. 

그때는 모제 불어라는 책을 배웠다. 알리앙스에는 좀 더 최근의 교제들이 있다고 하는데, 그런 건 잘 몰랐고, 그냥 학원에서 하는 대로 했다. 지하철 일반칸과 특등칸의 표를 사는 법, 그런 얘기들이 앞부분에 나와 있는데, 그런 건 없어진지 이미 오래라는 설명을 들으면서도 그 책으로 배웠다. 불어는 초장에 외우는 게 많다. 무조건 외워두면 나중에 쉬워진다고 그랬는데, 그렇기는 하다. 외우는 건 격변화하는 독일어가 더 많은 것 같기는 한데, 독일어는 분리 전철이라는 기상천외한 동사 변화의 벽을 잘 못 넘어갔다. 분리 전철, 비분리 전철 외우는 거에 비하면 불어는 훨씬 외울 게 적다. 독일어는 남성, 여성에 중성까지 있는데, 불어는 중성은 없다. 좀 낫다. 그리고 예외나 변칙이 거의 없다.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외울 수 있는 범위다. 영어는 현재 분사 가지고 별의별 활용을 다 하는데, 불어에는 그런 건 없다. 다 상황에 맞춰서 일일이 구절을 만들어준다. 그런 몇 가지만 생각을 하고 일단 죽어라고 외우면 말은 못해도 읽고 쓰는 건 어떻게든 버틸 수 있다. 그렇게 종로학원 다니기 시작한지 1년 뒤에 파리 10대학 입학시험을 봤는데, 하여간 내가 꼴지는 아니었다. 나중에 외국인들끼리 대학원에서 어학수업을 들었는데, 싱가포르 여학생이 자기가 꼴찌라고 말해서, 아 나는 아니었군, 그랬다. 턱걸이로 붙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1년 뒤에는 석사 논문을 써서 제출했는데, 이게 점수를 아주 잘 받았다. 평균 점수를 왕창 올려줬다. 다른 언어 같았으면 택도 없었을 것 같다. 불어에는 변칙이 거의 없어서 죽어라고 외우면 일단은 버틸 수 있다. 

그렇게 새벽부터 일어나서 불어학원 다니던 시절, 내 워크맨에 가지고 다니던 카세트 테이프가 일종의 재즈 컴파일레이션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꾸벅꾸벅 졸면서 들었는데, 앞뒤로 들으면 딱 60분이라서 집에서 종로까지 테이프 하나로 버틸 수 있었다. 성산대교가 대충 중간 정도에 있었는데, 그때쯤 잠도 살짝 깼다. 아침에 성산대교를 넘어가면서 들었던 노래가 “Smoke Gets in Tour Eyes”였다. 테이프에는 곡명과 가수만 나오고, 설명은 껍데기에 있는데, 껍데기까지 가지고 다니지는 않는다. 워낙 느낌이 좋아서 나중에 확인을 했다. 연주자는 David Sanborn. 색스폰으로 매우 성공한 연주자고, 그래미상을 여덟 번이나 받았다고 하는데, 그야말로 내가 알 게 뭐냐! 그냥 느낌만으로 듣던 시절이었는데, 전형적인 퓨전 재즈 연주였다. 

그 카세트에는 가토 바비에리가 연주한 산타나의 Europa도 들어 있었는데, 산타나를 워낙 좋아해서 사실 오이로파 연주곡으로 들어보려고 산 테이프였다. 몇 개의 곡이 귀에 착착 감겨서 몇 달 동안 새벽에 종로어학원 가면서 들었던 건데, 제일 기억에 남는 게 “Smoke Gets in Your Eyes”였다. 아마 CD였으면 유학갈 때 가지고 갔을지도 모르는데, 테이프 수명이 있어서 그걸 가지고 가지는 않았다. 

나중에 찾아서 들어보려고 했는데, 데이빗 산본 버전의 노래는 앨범으로는 구할 수가 없었다. 그의 다른 노래들을 들어봤는데, 딱히 내 취향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Smoke gets in Your Eyes”는 기분이 찜찜하거나 힘들 때 수 없이 다른 버전으로 듣는, 내 나름의 취미 생활이 되었다. 

이 노래는 원래 제롬 컨(Jerome Kern)이라는 미국 작곡가가 만든 노래다. 많은 사람들이 제롬 컨의 주요 곡들을 앨범으로 냈는데, 내가 들어본 것 중에서는 미국의 실비아 맥네어(Sylvia McNair)가 만든 제롬 컨 송북이 제일 편하고 좋다. 실비아 맥네어는 송북을 일종의 시리즈처럼 두 장을 냈는데, 제롬 컨과 해롤드 아를렌(Harold Arlen)의 두 장이 있다. 해롤드 아를렌은 오즈의 마법사에 나온 “Over the Rainbow”와 “Come Rain or Come Shine”의 작곡가다. 이 두 장의 송북은 피아노와 더블 베이스 두 가지만으로 반주가 진행되는데, 피아노가 무려 앙드레 프레빈이다. 

원래 연주곡으로 들었던 거라서, 가사는 사실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다. 연주곡으로 들을 때는 Oscar Peterson Trio, 역시 제롬 컨 송북 버전으로 많이 듣는다. 얼 클루(Earl Klugh)의 솔로 재즈 기타 연주도 매우 특색 있는 스타일로 들을 수 있다. 보컬 버전으로는 어지간한 사람들은 다 한 번씩 부른 노래라서, 잘 모르는 가수를 찾아볼 때 좀 도움이 된다. 레슬리 가렛이 좀 더 스탠다드한 느낌이라면, 조수미는 약간은 분위기를 띄워서 불렀다. 웅산 버전도 국내 오디오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스피커 테스트용으로 많이 사용되는 걸로 알고 있다. 

조수미 노래는 40대까지는 거의 안 들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조수미가 부른 “Smoke Gets in Your Eyes”를 들으면서 다른 노래들도 즐겨듣게 되었다. 조수미의 노래 중에서 가장 즐겁게 듣는 노래는 “Missing You” 앨범에 나온 “피래우스의 아이들”이다. 원래는 영화 “일요일은 참으세요”에 나온 노래로 알고 있다. 이 노래만큼은 역대 조수미가 가장 잘 불렀다고 생각한다. 왠지 흥이 필요할 때 주로 듣는다. 

팝송이나 락에서는 누가 부른 노래를 다시 부르면 카피 버전으로 하나 좀 낮춰보는 경향이 있는데, 재즈에서는 그런 건 없는 것 같다. 누구나 다 부르는 노래들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부른다. 아마 가장 많은 버전으로 들어본 노래가 나에게는 “Some Gets in Your Eyes”가 아닐 것 같다. 이제 환갑이 보이는 나이가 되었는데, 이걸 들을 때면 대학교 4학년 성산대교 위에 돌아가는 느낌이 잠시 들기도 한다. 

아내는 이런 나를 보면 질색을 한다. 맨날 그렇게 옛날 노래만 들어서 어쩔겨, 그렇게 혀를 차고 간다. 그렇기는 한데, 나도 맨날 긴장하면서 살 수만은 없어서, 음악 들을 때만이라도 좀 편하고 익숙한 것을 찾게 된다.

https://youtu.be/thguZyRuBH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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