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어린이날 선물은 그냥 인터넷에서 샀다. 올해는 정신이 없던 것도 있고, 또 큰 애는 마지막 어린이날이라서 이래저래 직접 가서 사기로 했다. 그나마도 어제 저녁에 가기로 했는데, 오존이 심한 날이라서 그런지 저녁 먹고 큰 애가 움직일 형편이 아니었다. 이리하여 결국 비 오는 어린이날, 가장 사람이 밀릴 오후 시간에 쇼핑몰에 가게 되었다.
무지무지 막혔다. 계속 밀렸는데, 그 모든 길의 근원지가 쇼핑몰이었다. 신호등 몇 개를 지나서 건물 근처까지 가는데 꽤 오래 걸렸다. 그래도 기왕 나선 거라서 그냥 버텨볼 생각이었다. 이렇게 주차장에 길이 밀리면 포기하고 그냥 나가는 차도 좀 있는데, 어린이 데리고 나온 집들이라서 그런지 포기하는 차도 없었다. 좀 더 버텨보려고 했는데, 둘째가 화장실 가고 싶다고 한다. 방법이 없다.
결국 어린이들 그냥 내려서 가라고 했고, 카드도 쥐어주었다. 처음에는 어린이들끼리 자기 선물 사는 동안에 주차해서 만날 생각이었다. 뭐 그건 내 생각이고. 30분 정도 지났는데, 100미터 갔나? 그래서 처음 탔던 데로 오라고 했다. 여기까지는 다 잘 되는 것 같았다. 좀 기다려도 어린이들이 오지 않는다.
다시 전화를 했는데, 도저히 모르겠다고 한다. 일단 나도 줄에서 나와서. 그 사이에 둘째는 어딘지 몰라서 무섭다고 본다. 나중에 보니까, 자주 가는 곳이 아니라서, 어린이들은 쇼핑몰 건물 앞쪽이 아니라 뒤쪽으로 나왔다. 큰 애가 그래도 지하철 출구 번호를 불러줘서, 겨우겨우 찾았다.
세 시간 정도 그냥 아무 것도 안 하고 밀리는 길에서 운전만 한 것 같다. 그래도 어린이들은 자기 손으로 선물 사고, 카드도 긁고, 매우매우 행복해한다. 큰 애의 마지막 어린이날은 이렇게 뻐적지근하게 지나갔다.
어린이날이다. 어린이도 어린이 노릇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우리 집 어린이들도 크고 작은 어려움들이 많다. 어린이들 태어나고 처음으로 오늘 어린이들에게 편지를 썼다. 생각보다 어린이용 편지 쓰기가 어렵다. 단어도 잘 골라야 하고, 잔소리가 안 되게 하는 것도 어렵다. 어린이날 편지인데. 캑캑. 어제는 큰 애가 몸이 안 좋아서 쇼핑몰 못 갔다. 둘째가 빨리 가자고 한다. 잠시만 쉬었다 가자고 했다.
한동안 미루어 두고 있다가 결국 스타트렉 <디스커버리>를 보기 시작했다. 사실 1부 앞은 작년에 보다가, 지금 때가 언젠데 클링온 얘기야.. 보다 말았다. 나중에 다시 봤는데, 앞부분만 클링온 얘기고, 2부는 신과 유령에 대한 얘기였다. 그리고는 미래로 가서, 스타트렉 시리즈에서는 가장 나중의 얘기를 다루게 된. 딥 스페이스 나인은 워낙에도 별도 편성이라, 그렇게 얘기가 이어지지는 않는 것 같다. 이건 없던 걸로. 체인질링이 나중에 나오는 걸 보니까, 아직 시리즈가 끝나지 않아서 그 뒤로는 어떻게 얘기가 이어질지는 아직 모르겠다. 5부는 4편까지 나와 있다. 어지간하면 시리즈 다 끝나면 보기 시작하는데, 끝난 걸 줄 알았더니, 아직 한참 하는 중. 아뿔싸.
스타트렉 시리즈 중에서는 <보이저>를 제일 재밌게 봤다. 전체 에피소드를 세 번을 봤다. 딥 스페이스 나인은 두 번째 보다가, 다른 재밌는 게 많아져서 잠시 쉬고 있는 중.
상대적으로 나중에 나온 시리즈 보다가 원래 커크 선장 나오는 거 보려고 하니까, 너무 마초틱해서 좀 그랬다. 하긴 그 냉전의 시대에는 그런 게 문화의 거의 전부인 줄 알기도 했다. 디스커버리에는 게이 얘기가 좀 더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리고 스토리에서도 핵심이다. 딥 스페이스에서도 일부 나오기는 하는데, 그게 사회적으로 필요하다고 하니까, 좀 억지로 등 떠밀려서 넣은 분위기가 강하다. 수십년에 걸친 스타트렉 시리즈를 보면, 사회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런 변화를 한 번에 볼 수 있기는 하다. 어쨌든 미소가 강렬하게 대치하던 시절에 시작되어서, 클링온에서 소비에트의 전체주의적 분위기를 많이 투영했던 출발점에 비하면.. 이제 그런 냉전의 분위기는 많이 사라졌다. 위협이 변화하면서 큰 틀이 많이 바뀐 007 시리즈도 있기는 한데, 그건 너무 상업적이라서, 스타트렉만큼 너드 분위기가 별로 없다.
어쨌든 디스커버리에서 주인공인 인류학자 출신이라는 게 흥미롭기는 했다. 수많은 너드들 사이에서 인류학자라. 그래도 마초 선장들이 힘 쓰던 전통을 잇는다는 의미여서인지, 주인공 이름이 마이클이다. 마이클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는 첨 봐, 대사로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어쨌든 스타트렉 시리즈는 피카드 3편까지 다 봤고, 영화는 진작에 다 봤다. dvd로도 전부 샀었고. 아직 전부 보지 않은 게, 커크 선장 나오는 원 시리즈인데.. 워낙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기도 하고, 사실 커크 선장을 그렇게 매력적으로 생각하지 않아서.. 그래도 한 번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디스커버리의 주인공이 사실은 스팍의 누나였다.. 그렇게 역사적 관계가 설정되어 있다. 그리고 그 누나가 스팍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는.
4.19다. 내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의 일이라서, 기억에 남는 건 없다. 유신 시절에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학교에서 국민교육헌장 외우라고 난리를 쳐서 괴로워하던 기억만 있다. 4.19는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은 전두환 시절이었다. 역시 4.19를 배운 적은 없다. 그냥 책에서 읽었을 뿐이다.
4.19에 대한 유일한 기억은 어머니에게 들은 얘기가 거의 전부다. 시내에 있던 학교를 나온 어머니는 다친 남학생들이 반으로 뛰어들어왔고, 숨겨주었던 적이 있다고 얘기하셨다. 나는 그렇게 했던 것을 어머님이 자랑스럽게 생각하신다는 정도로만 이해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평생 보수로 살아가셨다. 박정희가 죽던 날, 아침에 라디오를 들으시면서 우셨던 것도 기억한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
나도 이제 나이를 먹었다. 이승만에 대한 복원 시도는 21세기에 본격화되었고, 노무현 시절 뉴라이트가 야당 역할하면서 이승만과 건국을 대대적으로 찬양하기 시작하는 것도 보았다.
서사로 보면 나라를 만든 위대한 영웅이 사람들 그것도 고등학생들에 의해서 밀려 내려가게 된 얘기다. 중간의 수많은 얘기들은 이미 신화처럼 되었고, 해석의 영역이다. 농지개혁을 이승만이 했느냐, 아니면 그의 정적이었던 조봉암이 했느냐, 해석의 여지가 있는 얘기다. 당연히 조봉암이 한 거지만, 그 조봉암을 과감하게 농림부 장관으로 앉힌 건 누구냐? 복합적이다.
그런 중첩적인 얘기를 빼고 큰 서사만 보면, 이승만에게는 첫 번째 대통령이었다는 것과 4.19로 하야했다는 두 가지 사실만 남는다. 이승만의 실패와 성공, 이것도 결국 어느 지점을 보느냐의 얘기다. 모든 스토리는 시작과 끝을 어디로 잡을 것인가, 이걸로 해피 앤딩이 될 수도 있고, 새드 엔딩이 될 수도 있다. 스토리 구조를 어떻게 잡느냐의 문제다.
모든 한국의 보수가 이승만을 다 좋아하느냐, 그렇지는 않은 것 같고. 헌법에도 들어간 4.19가 중요한 사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봤다. 4.19를 중요하고 핵심적인 사건으로 생각하는 보수는 존재할 수 없느냐,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4.19를 중요한 사건으로 생각하는 한국 보수,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이승만이 문제가 많았다고 생각하는 보수는 아마도 지금보다 더 강력하고 강렬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