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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인 선배가 결국 떠났다. 하이고, 그간 일도 참 많았다. 

술도 많이 마셨고, 담배도.. 그 시기에 나는 술을 좀 줄이려고 하던 시기였고, 태인이 형은 술 말고는 달리 재미를 못 찾던 시기기는 했다. 태인이형이 술을 좀 줄인다고 하던 시기에는 와인을 주로 마시려고 했었는데, 그 시절만 해도 와인바에는 절대 안 가던. 나 대신에 이재영하고 둘이 와인바에 갔었다는데, 둘 다 이제 떠나간 사람이 되었다. 

한동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유종일 선배는 암을 한 번 호되게 겪고, 그 뒤로는 아주 살살. 이재영은 벌써 떠났고, 너무 많은 일을 같이 했고, 너무 많은 것이 엉킨 삶을 살았는데, 정태인 선배의 시대가 끝나고, 이제는 정말 한 시대가 넘어간다는 생각을 지우기가.. 

태인이형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그 날도 여의도에서 둘이서 같이 낯술 마시고 있었다. 아버지 얘기도 참 많이 들었는데. 

한 때 많은 사람들이 방배동 근처로 이사가는 게 유행이었다. 조국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그 근처 일대에 살았다. 나한테도 같이 가자고 하는 사람들이 좀 있었는데.. 안 그래도 강남 좌파라는 소리 듣는데, 별로 그렇게는 안 가고 싶다고 했었드랬다. 그리고 나는 강북으로 이사를 했다. 그 뒤로는 술 좀 덜 마실까 했는데, 뭐 크게 차이는 없이 한동안 계속. 

칼 폴라니 연구소 만들 때 같이 하자고 했었는데, 나도 살아야겠다, 한 방에 어렵다고 했다. 그리고 스트레스 너무 많이 받을 거라서, 형도 그거 하지 마시라.. 그랬다. 너무 스트레스 많이 받고 잘 안 될 것 같은데, 그런 데 힘을 쓰는 것도 그렇고. 박원순 너무 믿지 말라는 얘기도 했던 기억이다. 전폭적인 연구 지원, 그런 건 아마 없을 거다.. 하이고, 이 사람도 벌써 떠났네. 그 뒤로도 기회 닿을 때마다 연구소에서 적당히 물러나고 본인 삶도 좀 챙기시라고, 그런 얘기를 했던 기억이다. 연구소 앞에 카페가 있을만한데 없다고, 카페를 꼭 내고 싶다는 얼척 없는 소리만. 

태인이형 쓰러지기 직전에 저녁 때 술 약속이 있었다. 까먹고 있었다고 나중에 연락이 왔다. 그리고는 며칠 후에 쓰러지신 것 같다. 좀 지나지 않아 우리 아버지가 쓰러지셔서, 나도 아버지 상 치루고 이것저것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게 된. 

보수 쪽 인간들 중에는 이렇게 일찍 죽는 사람을 별로 잘 못 봤다. 죽어라고 돈만 벌어야겠다고 더러운 일 치사한 일 피하지 않던 교수들 중에서 좀 일찍 암으로 죽은 사례들을 보기는 했지만, 그렇게까지 유명한 사람들이 아니라서. 참 많이들 죽었다. 

정치경제학으로 모인 사람들이 한 때 꽤 많았는데, 김수행 선생 떠나신 이후로는 태인이 형이 가장 유명하지 않았나 싶다. 그 시대도 이제 마지막인 것 같다. 

지난 몇 년간, 태인이 형이 하자고 한 것들을 나는 다 싫다고 했고, 형도 내가 하지 말라는 것만 했던 것 같다. 그 시대가 그렇게 끝나가는 중이었던 것 같다. 

문재인 당대표 시절에 정태인과 자리를 주선하려고 했었는데, 얼굴이 급 어두워져서 결국 추진하지 못했던 기억이.. 그 사람들 사이에 무슨 일이 오고 갔는지는 잘 모르겠고. 

마지막 통화하던 기억들은, 이젠 술 끊었다고 하면서 결국 전화 말미에는 나와서 낯술 마시자고. 애들 어린이집 다닐 때 하원하기 위해서는 낮에 시간이 있어도 술을 마실 수가 없다. 내가 술 마셔서 운전 못한다고 나자빠지면 우리 집은 비상 사태다. 좋게 좋게 생각하려고 한다. 그래도 그렇게 내가 낮술이라도 몇 번 못 마시게 해서,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사신 거 아니냐는. 

정태인과의 시대, 참 술 많이 마셨고, 낮술도 진짜 많이 마셨다. 애들 좀 크면, 그렇게 적당히 낮술 같이 마시면서 노년을 보내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태인이형은 노년이 되자마자 떠나가버렸다. 

민주노동당 시절에는 학위 마처 챙겨서 하라고 내가 달달 볶았었다. 생의 마지막에 결국 학위를 하기는 했는데, 그때는 내가 말렸었다. 건강도 메롱이고, 학위 꼭 안 받아도 되는데, 뭐하러 힘들 게 그런 걸 하냐고 말렸었다. 선배는 선배인데, 하여간 말은 더럽게 안 들어 처먹은.. 북한 연구 같이 하자고 해서 그때도 한칼에 싫어요, 했드랬다. 태인이형이 말을 안 들은 건지, 내가 안 들은 건지, 지금 와서는 그것도 좀 모호하다. 

아마 내가 전격적으로 아이를 보게 되지 않았다면 그후로도 오랫동안 나는 태인이형과 별 특별한 의미도 없는 얘기 하면서 낮술 마시면서 살았을 것 같은데, 인생이 그렇게 풀려나가지는 않았다. 

상가에는 내일 저녁 때 가보기로 했다. 토요일, 간만에 우리 집 어린이들 데리고 같이 갈 생각이다. 상가집에 어린이들 데리고는 잘 안 가는데, 그래도 내가 선배라고 부를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시대의 사람이 아닌가 싶은.

아디오스 정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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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기 빵..

아린이들 메모 2022. 10. 21. 04:36

 

당분간 파리 바게뜨 가기가 좀 그래서.. 제빵기 돌려서 빵 구웠다. 보통은 우리 집 어린이들 보여주고 나서 먹는데, 배가 고파서 일단 한 덩어리 먼저 먹었다.. 아직 뜨거워서 맛이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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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c 불매..

잠시 생각을 2022. 10. 20. 17:29

나도 spc 불매 운동을 지지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한국 자본주의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못했다. 얼마나 돈만 보면서 살았으면, 최소한의 장치와 제도 같은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이 지경까지 갔겠나 싶다. 너무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죽음을 보면서, 나도 할 수 있는 게 뭐가 없나 고민하기로 했다. 

우리 집 어린이들에게도 포켓몬 빵 반죽하다가 젊은 누나가 죽었다는 얘기를 오늘은 해주려고 한다. 아직 이 이야기를 어떻게 설명할지 엄두가 안 나서 설명을 못해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병원 근처에 파리 바게뜨 밖에 없었다. 거기서 사온 카스테라를 아주 맛있게 드셨던 게 내가 아버지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거의 마지막 기억 같은 것이다. 

그래도 장사 그렇게 하면 안 된다. 21세기의 막장 자본주의, 이제는 그만해야 한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63508.html?_fr=mt2 

 

“‘피 묻은 빵’ SPC가 학교 안에 있다니”…대학가 번지는 불매

끼임 사망 사고 계기 대학가도 ‘SPC 불매운동’서울대선 SPC 매장·건물에 ‘대자보’“주변 학생들에게 연대 호소”

ww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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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 Freedom

아린이들 메모 2022. 9. 30. 18:33

아침에 1교시도 마치지 않고 둘째가 조퇴하는 바람에 오전 내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회의도 하나 있었는데, 병원 응급실이라도 바로 가야할지, 호흡기 치료 정도로 괜찮을지 판단하느라 아주 생난리가. 다음 주 수요일에 예약이 되어 있기는 한데, 담당의가 1주일에 한 번만 계시니까, 사실 병원에 뛰어가도 입원하는 거 말고는 별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오전 지나고 나서 좀 괜찮아져서, 외부에 일이 있어서 둘째 데리고 나갔다왔다. 
차에서 예전에 녹음해둔 조안 바에즈의 we shall overcome, 1969년 우드스탁 버전이 흘러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간만에 아내 차도 세차를 하고. 올 가을에는 창틀 청소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에는 모기 때문에 못하고, 추워져도 못 하고.. 매직 블록 주문했다. 아자, 아자. 올해는 날 잡고 창틀 청소를 하고 말리라. 
그리고 나서 둘째 애 데리러 다시 나가고. 오늘은 방과후 로봇 교실하는 날이라, 장비 가방이 어마무시하다. 그러고 나가는데, 둘째가 케익 사달란다. 참, 생일이지, 얘가. 그 와중에 포켓몬 빵 예약해달라고, 둘 다. 돌아비리. 
나갔다, 들어왔다, 정신이 하나도 없는 하루를 보내고.. 방에 돌아와서 낮에 들었던 조안 바에즈 앨범을 틀었다. 2017년에 나온 "Oh freedom"이라는 제목의 앨범이다. 오 자유여. 같은 '자유'인데, 윤석열 입에서 나온 자유와 조안 바에즈 입에서 나온 '자유'의 어감이 왜 이렇게 다른지. 
아내는 오늘 지방에 갔다가 늦게 온다. 둘째 생일인데, 미역국만 아내가 해놓고 간 게 있고.. 결국은 시켜먹기로 했다. 아내한테 뭐 먹고 싶냐고 했더니, 깐풍기. 비싸서 잘 안시켰는데, 오늘 저녁은 깐풍기 먹는 걸로. 
우리 집 어린이들은 깐풍기 먹는다고 난리 났다. 나는 잠깐 통장 잔고 생각해보고, 뭐, 별 상관은 없겠군. 내 통장에 너무 돈이 없다고 아내가 안 꺼내간지 두 달은 되는 것 같다. 아 참, 돈이 좀 있겠군. 
오늘 저녁에는 수영장 가기로 한 날인데, 도저히 갈 형편이 못 된다. 이것저것 계획을 빼곡하게 세우는데, 하나마나한 계획을 계속 새우고, 연장해서 갱신하고.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고. 
며칠 전부터 사실 고민이 생기기는 했다. 아주 예전에는 우리 집에도 LPG 난로가 있기는 했었는데, 지금은 다 치웠고, 도시가스 난방만 한다. 올 겨울에 도시가스가 끊기지 않고 계속 나올까? 어른들만 있으면 전기장판 켜고 그냥 하루이틀은 버텨도 될 것 같지만, 어린이들이 있어서 그렇게는 어렵다. 아직 한가하고, 사재기 시작되지 않았을 때 전기 난로를 몇 개 사놔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거의 쓸 일이 없겠지만, 윤석열 하는 거 보면, 가스 꺼먹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사실 없다. 전기는 석탄 보일러까지 탈탈 털어서 어떻게든 버티고 갈 것 같은데, 도시가스는 확실하지 않다. 그렇다고 가스 쪽 전문가한테 전화해서, 올 겨울 도시 가스 걱정하지 않아도 되느냐고 물어보는 것도 모냥 빠지는 일이고. 수급 비상이라는 것까지는 아는데, 그때도 비싸다고 별로 급하게 움직이는 것 같아보이지는 않았던. 그리하여 아직 여유 있을 때 전기 난로를 살 것인지 말 것인지, 이런 고민이 오늘도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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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퇴원한 다음에 학교를 잘 못 간다. 몇 번 갔었는데, 1교시 채 마치지 못하고 조퇴하고는 했다. 원래 다니던 병원은 입원 병실이 못 갔고, 병실이 있던 고대 병원으로 갔는데.. 여기는 소아 호흡기 전문의가 없어서, 1주일에 한 번 외래 진료가 가능하다. 그런데 이런저런 일정이 있어서 매주 진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정 견디기 힘들어하면 바로 응급실로 와서 입원하라는 정도가 병원에서 준 지침이라면 지침이다. 

작년에도 한 달 가량은 학교 갔다 조퇴하고, 또 못 가기도 하고, 그렇게 버텼다. 둘째가 학교에 정상적으로 다닐 수 있을 즈음, 아버지가 쓰러지셔서 다시 이번에는 아버지 병실로. 

별로 하는 것도 없는데, 그냥 어쩔 수 없이 시간을 써야하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 

아내는 요즘 나에게 거의 성인이 된 것 같다고 한다. 아버지 재산 정리하는 마지막 절차를 진행하는 중인데, 어머니가 치매가 시작되어서 판단은 사라지고 고집만 남았다. 그냥 맞춰드린다. 좀 이상한 게 있어도 그냥 넘어간다. 

아버지가 남겨놓으신 돈이 얼마 안 된다. 어머니가 사실 수 있는 집을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아파트로 옮기려고 많이 알아봤는데, 결국 돈이 많이 부족하다. 내년 아버지 1주기 되면 다시 생각해보는 걸로, 일단은 포기. 무리다. 

몇 년째 애들이 오락만 하고 있어서 혼낼 때 말고는 정말 크게 화내는 일도 거의 없고, 남한테 싫은 소리도 거의 안 하고 산다. 그 대신 뭘 하자고 하는 일도 이제는 거의 없다. 이런 걸 해보면 어떻겠느냐, 가끔은 그런 얘기도 하지만, 두 번 얘기하는 일도 없다. 애 아프고, 아버지 돌아가시고, 뭘 하자고 해도 도저히 내가 추스를 형편이 아니다. 

어머니는 며칠에 한 번은 전화를 하셔서 한 시간 넘게 통화를 하고, 몇 번은 우신다. 하이고. 

일주일만이라도 좀 집중할 수 있으면 시간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는데, 일주일은 커녕 반나절도 좀 혼자서 차분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 그래도 또 맞춰가면서 사는 수밖에 없지 않겠나 싶다. 

일정을 이렇게 저렇게 잡아보지만, 내가 잡은 일정은 잡으나 마나다. 가을이 아주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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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김학도와 한참 방송하던 시절, 같이 어울리던 친구 한 명이 이인표였다. 재주가 너무 아까운 친구였다. 책을 출간할 수 있게 주선을 했던 적도 있었다. 김학도랑 셋이 같이 술 마시러 다니던 시절, 그때만 해도 나는 아직 젊었었다.


암 치료 시작한다는 얘기를 몇 년 전에 들었고, 조만간 한 번 보자고 했는데..


오늘 부고장이 왔다. 


마음 속에 또 한 명의 친구를 묻는다. 이제 51세인데, 고생만 하다가 한 번도 제대로 피워보지 못하고.. 그 환한 미소가 아직도 눈에 선하기만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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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오늘 학교 갔다가 숨쉬는 게 어려워서 바로 집으로 왔다. 퇴원은 해도, 정상적으로 회복되는 데에는 한참 걸린다. 지난 가을에도 둘째는 학교 가다 말다 했다. 갔다가 조퇴하는 날도 많았다. 약간은 꾀병도 있고, 진짜 아픈 때도 있고, 그런 걸로 알고 있다. 

나도 이것저것 일정을 짜기는 하는데, 아이가 아프면 짜나마나다. 지난 가을에는 둘째가 아팠고, 둘째가 좀 괜찮아질 즈음에서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겨울에 얄짤 없이 병실에서.. 그후로는 어머니 치매가 심해지셔서, 건보 홈페이지에 매달리면서 등급 받고, 긴급 돌봄 시작하고. 그리고는 애들 방학. 지옥의 두 달 간을 보내고, 가을 되니까 둘째 입원. 

도대체 왜 내가 이렇게 일이 밀려있나 보니까, 1년 가까이 이렇게 지냈다. 도저히 시간 관리가 어려워서 학교도 그만두었다. 학교에까지 시간을 쓰면, 돌아버릴 것 같았다. 

도저히 견디기 어렵다고 생각할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 박사 코스웍 끝나고 논문 코스 들어갈 때 지도 교수가 명예교수 전환이 안 되었다. 학교 앞 바에서 지도교수가 맥주 한 잔을 사주면서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보수 총리가 들어오면서 좌파 교수들 밀어내기 같은 것을 하게 되었는데, 신체 검사가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 대학원 수업을 조금 더 듣고, 박사 학위 세 개를 동시에 받는 걸 추진하고 있었는데, 그게 좀 어렵게 되었다. 그때 처음 들은 얘기였는데, 국가 장학금이 원래 나에게 오게 되었는데, 심사 시준이 국적자 기준으로 바뀌면서 그것도 어렵게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박사 과정 등록이 바로 다음 달이었는데, 생각하지 않던 혼동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개인적 삶도 아주 어렵던 시기였다. 학위 등록이 안 되면 당장 체류증부터 곤란해진다. 지도 교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으니까 당장 대학 등록도 하기가 어렵다. 맨날 이거 안 해준다, 저거 안 해준다, 싸우기만 하던 학과 사무실을 찾아갔다. 나는 지도교수 찾을 때까지는 불법 체류하다가, 그게 되면 한국에 돌아가서 다시 입학 가는 걸로 해서 그렇게 체류증을 해결할 생각이었다. 근데 학과 사무실에서 그냥 박사 코스웍 1년 더 다니는 걸로 처리해주었다. 도장 꽝 찍은 학생증을 받으면서, 어떻게든 버틸 수 있게 되었다. 통합 박사 학위는 포기했고, 그냥 경제학 학위 하나만 받는 걸로 처리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천재가 등장했다고 하던 나의 박사 학위는 아주 평범한 것이 되었다. 국가 장학금이 사라졌고, 나는 가끔 식당에서 서빙하는 알바를 하게 되었다. 

2안으로 화폐 경제학으로 논문 쓰는 걸 생각했었는데, 결국 너무 무서워서 포기했다. 현실을 생각해서 생태 경제학으로 논문 주제를 바꾸었고, 우여곡절 끝에 파리 7대학 조교수와 하게 되었다. 

그 기간이 힘들었다고 하면, 나에게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 변화도 컸고, 건강도 별로였고, 돈도 달랑달랑했다. 슈퍼에서 떨이로 파는 감자를 박스째 사와서, 한 달 정도 버틸 각오를 했었다. 한 달 먹을 정도의 감자를 사다 놓기는 했는데, 식당에서 서빙하는 알바가 금방 구해져서 사실 한 달씩 감자만 먹어야 할 정도가 되지는 않았다. 결국 통합 학위를 포기하는 대신, 학위는 더 일찍 끝나게 되었다. 다른 수업들은 안 하고, 경제학만 하게 되었으니.. 논문 초기에는 읽어야 할 게 너무 많아서 고생을 좀 하기는 했는데, 논문 과정 들어가기 전 1년 간 붕 떠 있던 기간에는 참 힘들었다. 

그 뒤로도 속상한 순간이나 힘든 순간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닌데, 그때만큼 어렵지는 않았다. 하는 일도 불투명하고, 빨리 방향을 잡아야 했고, 사는 것도 어려웠다. 모든 것이 불투명하고 힘들었다. 그때 알레르기성 천식이 왔었다. 도서관에 긴 시간을 있다보니 오래 된 책 먼지를 많이 접해야했고. 몸도 힘들었고. 

아주 어렸을 때 딱 한 번 죽을 뻔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호흡기 문제였다고 들었다. 아주 어린 시절의 일이다. 동생 한 명은 실제로 그렇게 죽었다. 그 후로는 큰 문제 없이 평생을 살았다. 둘째의 호흡기 질환은 나한테 간 것일 수도 있다. 

지금도 그렇게 편한 시기는 아니고, 나한테 뭐 좀 해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잔뜩 밀려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주 예전처럼,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 그냥 시간 관리하기가 좀 어려울 뿐이다. 

내년까지만 하면 둘째도 이제 혼자서 학교 갔다왔다 할 정도는 된다. 이제 1년 약간 더 남은 건데, 시간이 좀 되다. 

이 며칠 동안에도 겨울에 있어야 할 일 몇 가지에 대한 결정을 내렸다. 뭘 더 잘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덜 못 하는 게 중요한 순간이 있다. 지금은 최선을 다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최악을 피하기 위한 결정들을 내린다. 그리고 문득.. 난 내 삶의 대부분의 시간, 늘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는 결정들을 해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은 최악을 피하기 위한 결정들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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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둘째가 퇴원한다. 짧은 기간이지만, 그래도 별 일 없이 무사히 폐기능이 퇴원 가능할 정도로 좋아진 이후에 마음은 좀 편해졌다.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성동일 대사, “미안해,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서..” 사실 그렇다. 맨날 미안하다. 그리고 둘째 입원할 때마다 집에서 혼자 있게 되는 큰 애한테도 미안하고. 

오늘은 점심 때 큰 애 데리고 병원 갔다가, 오후에 다시 데리고 와서 구청에서 하는 축구 교실에 데리고 갔다. 지금이라도 더 일상에 가깝게 지낼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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