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오래 끌어온 고통스러운’ 병, 스튜어트가 ‘민성적 장폐색’이라고 기술하고 스미스가 스통 철학적 의연함으로 마주했던 그 병에 의한 종말이 7월 17일 토요일 자정 무렵에 찾아왔다. 둘 다 의사이면서 가까운 친구이자 스미스의 유저 관리자였던 조지프 블랙과 제임스 허턴은 스미스가 숨을 거둘 때 그의 곁에 있었다.” (이언 심프슨 로스, <애덤 스미스 평전>)
윤석열의 계엄령을 통한 친위 쿠테타로 87년 체계는 사실상 종료했다는 생각이 든다. 87년 6월 항쟁의 결과로 전두환의 7년 단임제를 줄인 5년 단임제로 6공화국이 시작되었고, 지금도 정치 체계는 마찬가지다. 그 사이에 시간이 흘렀고, 시스템이 점점 더 무너지게 되었다. 87년 체계는 대통령이 유능하고, 선하다는 전제 하에 세워져 있다. 국회해산권을 제외한 많은 권한인 대통령에게 주어져 있다. 심지어 국민투표 부의권도 대통령에게 독점적으로 주어져 있다. 지금은 많은 사안이 주민투표를 거치는데, 지역보다 더 중요한 국가 차원에서는 정작 정책 투표를 할 수가 없게 되어있다. 87년에는 국민들이 직접 정책에 대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대통령에게 과도할 정도로 우월한 권한을 부여하였다. 전형적인 엘리트주의다.
바보가 대통령이 되는 순간, 87년 체계는 폭주 자동차가 된다. 그리고 그런 일이 진짜로 벌어졌다.
어떤 형식이든, 대통령이 바뀌는 것은 6개월 내에 벌어질 것 같다. 대통령실 간부들이 일괄 사퇴한 지금, 바보가 버틸 방법은 없다. 그렇다고 당장 하야할 스타일 절대 아니기 때문에, 금방 무슨 일이 벌어지기는 쉽지 않다.
87년 체계를 실제로 바꾸기 위해서는 헌법이 바뀌어야 한다.
두 가지 고려 사항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내각제. 87년에는 ‘민도’ 얘기를 하면서, 대통령이 많은 것을 영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정상적으로 정당 정치가 작동할 수 있게 내각책임제가 이제는 더 맞는 옷이라고 생각한다.
둘째는, 연방제. 어차피 지금 많은 지역이 특별자치도 형태로 전환되고 있다. 특히 저출생 등 각 지역이 만난 생존의 위기 속에서 중앙정부가 너무 많은 돈과 권한을 가지고 있다. 예산편성권을 각 지방정부에 부여하고, 스스로 자신을 위한 정책들을 수행할 수 있는 내각책임제가 고려되어야 한다. 스위스는 훨씬 더 작은 규모의 나라지만, 연방제 국가다. 우리도 이런 사안에 대해서 좀 더 미래적으로 고민할 때가 되었다. 대통령의 예산과 권한을 분산화시키는 데에 연방제만한 제도도 없다. 미국 대통령이 힘이 엄청 강할 것 같지만, 연방제 덕분에 각 지역이 자신의 특징을 갖고, 대통령과 상관 없이 돌아간다.
국회의장 주도로, 6공화국을 종료시키기 위한 헌법 초안 작업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술주정뱅이 대통령과 함께, 어제 한국의 87년 체계는 종료하였다. 이제 남은 것은 전두환과 노태우가 참여한 87년 헌법을 해체하는 일이다.
11월에 윤석열 정권이 6개월 정도 갈 거라고 생각을 했었다. 지방 선거 일정에 맞춘 예상이었다. 한 가지 계산을 못했다. 그것도 조용하고 침착하게 상황을 관리할 수는 있다는 전제였다. 오늘 계엄령, 일종의 친위 쿠데타 불발이라고 본다. 누가 봐도 택도 없는데.. 6개월은 커녕, 이제는 한 달 버티기도 힘들어 보인다. 무너지는 정권은 원래 누가 흔들어서 무너지는 게 아니다. 스스로 무너지는 거다. 윤석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전례 없이 황당한 상황이라는 것은, 정말로 예측불가. 이런 이상한 일을 할 줄은 몰랐다..
진짜 간만에 언론과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하따, 질문지 길기도 하다. 뒤에 윤석열 정부에 대해서 평가하는 질문이 있었다. 이거, 뭐라고 해야 하나.
잠시 생각을 했는데, 머리 속에서 문득 ‘대환장의 시대’라는 단어가 생각이 났다. 환장하겠슈! 사실 이 시대의 정서는 기쁨, 환희, 대만족, 그런 것과는 좀 거리가 멀어보인다. 그렇다고 분노도 아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분노도 잘 생기지 않는다. 누구에게 분노할지도, 역시 어처구니가 없다.
'천만국가' 한국일보 서평. 아무 생각 없이 주말이 왔다. 서평이 생각보다 많이, 아니 아주 많이 나왔다. 보통 한두 개 받기도 어렵다. 전혀 서평 없던 적도 꽤 있었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지만, 이번에는 진짜 많이 나왔다. '88만원 세대' 때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감사할 뿐이다. 사회과학은 그 사이, 장르 자체가 무너졌다. 그래도 좀 더 버텨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