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투..

아이들 메모 2023. 6. 3. 04:40

며칠 전에 큰 애가 화투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좀 난감한 부탁이다. 카드는 거의 한 적이 없고, 화투도 어렸을 때 할머니랑 민화투 치고, 고등학교 때 고스톱 쳐본 게 거의 다 일 정도. 화투장 이름 정도도 이제 까먹은 게 더 많고, 숫자도 잘 모른다. 

나도 잘 모르는데 가르쳐줄 수가 있나.. 기본적인 것만 알려주었다. 다음에 좀 더 알려주기로 하고. 

생각해보면, 나도 인생을 참 단조롭게 산 것 같다. 골프는 그야말로 골프 채도 집어본 적이 없고, 스키도 타 본 적 없다. 너무 일찍부터 환경에 대한 이론들을 공부해서 그런지, 그런 것들은 정말로 안 했다. 

‘잡기’라고 부르면서 좀 배워둬야 한다는 것을 안 한 데에는 아버지 영향이 컸다. 아버지는 바둑만 두셨다. 노년에는 인터넷 바둑과 tv 조선, 거의 두 가지만 하시는 것 같았다. 바둑을 좀 배우다가, 아버지가 매일 기원에만 계셔서, 바둑을 그만두었다. 그리고는 안 했다. 비슷한 이유로 당구도 안 쳤다. 술 마시기 전에 친구들 당구장 가면 나는 당구장 아래층에 있는 만화가계에 갔다. 그 시절에는 만화책 보면서 짜장면 먹는 게 그렇게 부러웠었다. 만화책 몇 권 볼 정도의 돈은 있었는데, 짜장면 시켜 먹을 돈은 없었다. 돈 생기면 전부 책을 샀으니, 만화책 볼 돈이라도 주머니에 있는 게 다행이었다. 맥주 마실 형편은 아니었고, 감자탕에 물 계속 부어서 끓여가면서 소주는 많이 마셨다. 생각해보면, 나는 평생 술만 마신 것 같다. 

한 달 전에 둘째가 여러가지로 너무 힘들어해서 결국 닌텐도를 사줬다. 큰 애랑 둘째랑 갖고 싶다는 게임 하나씩 사주고.. 몇 주 후에 닌텐도 스포츠는 그냥 사줬다. 둘째가 이래저래 힘든 시절을 겪는 게 아니었다면 게임기는 안 사줬을 것 같은데.. 그렇게라도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게 좀 더 나을 거라고 생각을 했다. 

희로애락에서 ‘락’에 해당하는 일은 사실 술 말고는 거의 한 게 없다. 음악을 듣기는 하는데, 원래 음악 전공하려다가 여러가지 사건이 겹쳐서 결국 경제학을 전공하게 된 거라서.. 그냥 순수하게 취미로만 듣는 것은 아닌 것 같고. 

돌아보면 나는 술만 마시고 살아온 것 같다. 좋아도 마시고, 슬퍼도 마시고. 힘들어도 마시고, 안 힘들어도 마시고. 요즘은 술 마시는 빈도는 확 줄었는데, 양이 줄지는 않았다. 한 번 마시면 날 잡고 확 달리는. 그렇게 마시지 않을 날은 아예 입에도 안 댄다. 마시다 말면 짜증나! 

아버지 살아계실 때 약속을 한 게 있다. 아버지 기일은 챙겨드리는데, 제사상은 차리가 어렵고, 드시고 싶은 걸 놓아드리겠다고. 아버지는 과자랑 주스 애기를 하셨다. 어머니는 초코렛과 연유를 얘기하셨고. 노년에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셨던 음식은 찹쌀 도너츠와 카스텔라였던 걸로 기억한다. 

화투 가르쳐 달라는 큰 애 보면서 잠시 아버지 생각이 났다. 저녁 때 동네 기원에 아버지 모시러 가던 게 처음에는 그렇게까지 싫지 않았는데, 몇 달째 되니까 그게 그렇게 실어졌었다. “한 판만”, 그렇게 하면서 몇 판을 두셨다. 나는 기다리다 결국 혼자 집에 왔었다. 그리고 바둑 끊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잠시. 

그렇게 바둑을 안 좋아했는데, 내 주변에는 바둑 죽어라고 두는 사람들이 참 많기도 했었다. 그것도 인연인가 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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