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같이 일하던 에디터들이 20대였고, 아주 젊었다. 나도 30대였다. 국회의원을 만나면 다 할아버지들이었고, 보좌관들도 대부분 형님들이었다. 방송국에 가도 피디와 작가들이 대부분 나보다 한참 위였고, 기자들도 그랬다. 

이제 나랑 같이 일하는 에디터들 중에는 20대는 물론, 젊은 사람이 거의 없다. 몇 년째 계속 같이 일하는 에디터들이 있기는 한데, 그들도 이제는 젊다고 할 수는 없다. 

작년까지는 학교에서 수업을 해서 학생들은 종종 만나기는 했는데, 앞으로는 학교에서 수업할 계획은 없다. 어지간히 노력하지 않으면, 이제 내 또래의 같이 늙어가는 처지의 친구들 정도나 보고 살아가게 될 것 같다. 그렇다고 일부러 뭐를 막 벌이고 그럴 생각은 없다. 지금 애들 보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당장 할 건 아니지만, 20대에 대한 얘기 하나를 작년부터 조금씩 준비하던 게 있다. 앞의 것들이 너무 밀려서 예정 없이 그냥 뒤로 밀려가고만 하고 있다. 나이를 처먹으면서, 조바심 같은 게 없어졌다. 사실 열정이 사라졌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당장 보고 싶어! 그런 건 이제 별로 없다. 되는 대로 하고, 안 되면 또 말고. 

사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 건, 며칠에 걸쳐서 본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여운이 길게 남아서 그런 것 같다. 몇 번 시도를 했었는데, 한번도 앞뒤 전체를 보지는 못했다. tv에서 해줄 때 좀 보다 말고, 그랬다. 예전에 오드리 햅번 관련된 책들은 좀 읽기는 했었는데, 오래된 영화들까지 챙겨서 보지는 못했다. 진짜로 차분히 앉아서 다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볼 때는 몰랐는데, 보고 나니까 내 인생 최고의 영화로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영화는 생각을 많이 하게 해주는 영화가 아니겠나 싶다. 요즘 너무 잘 정돈되어 있고, 왜 이렇게 하는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너무 잘 구성된 얘기들만 너무 많이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 대책 없는 인간들이 인생 마지막 순간 같은 곳에서 만나는 얘기가 너무 멋졌다. 티파니에서 10달러만 쓸 수 있다는 사람들이 결국 내민 싸구려 반지에 이름을 새겨주겠다는 얘기는 정말로 로맨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방시가 만든 옷들도 너무 멋있었다. 아주 유명한 첫 장면, 크라상을 입에 물고 테이크 아웃 커피 잔을 들고 티파니 앞에 서 있을 때 헵번이 입었던 검은 드레스, 이건 헵번이 고집을 해서 옷이 이 모양이 되었다고.. 그렇게 알고 있다. 지방시는 장식을 많이 쓰지는 않지만, 뭔가 악센트가 되는 걸 꼭 하나씩은 넣고는 했었단다. 헵번이 이 검은색 드레스에는 아무 장식도 없어야 한다고, 두 사람 사이에 언쟁이 될 정도로 고집을 했다고 한다. 장식이 있는 편이 나을지, 아니면 아무 장식도 없는 편이 나았을지, 그걸 판단할 정도로 내 눈이 고급은 아니다. 그렇지만 분위기 하나는 정말 끝내줬다. 새벽에 택시를 타고 내려서 크라상을 되는 대로 한 입 물고, 손에 든 테이크 아웃 커피 잔의 뚜껑을 여는 장면에서 인트로가 끝난다. 그게 그대로 영화 제목이다. 티파니에서 먹은 브렉퍼스트.. 

한 장면 한 장면이 그림 엽서였다. 한 장면 한 장면이 cf 같은 영화들은 가끔 있다. (유명한 cf 감독이 만든 영화 하나를 보다가, 멀미 나는 것 같아서 고생한 적이 있기도.) 

‘티파니에서 아침을’ 보고 나니까, 요즘 내 주변에 20대들은 어떻게 살아가나,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좋은 영화를 보면 나 자신과 내 주변을 돌아보게 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오후에 수영장 갔다 와서, 아이들 데리러 나가기 전에 잠시 이루마의 피아노 소품들 틀어놓고 내 나름의 낭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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