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에세이 쓰는 동안에 생활 패턴이 바뀌었다. 보통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 새벽 시간에 워낙 능률이 좋아서, 그렇게 한 것도 있지만, 그게 자연스러웠다.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그렇게 새벽 시간을 쓰기 때문에 술 한 번 마시면 사실 타격이 컸다. 술 먹고는 글을 쓸 수가 없기 때문에, 그냥 하루치 일을 못하게 된다. 그래서 뭔가 기념할 날, 뭔가를 마무리한 날, 그런 날 주로 술을 마신다. 일하지 않아도 되는 날.

죽음 에세이를 쓰면서, 진짜로 죽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은 아닌데, 저녁 먹고 나서는 잠이 쏟아져 바로 잤다. 그리고 새벽에 일어났다. 몇 달을 그렇게 지냈다. 

예전 박사 논문 쓰던 시절에 그런 사이클로 몇 년을 살았던 적이 있다. 그때는 집에 오자마자 자기 시작해서, 새벽에 일어났다. 시간은 얼마 없고, 읽어야 할 것은 많고, 미방 등 수학 문제도 풀어야 했다. 절대 시간이 부족하니까, 극단적으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을 했다. 

그 후로는 그렇게 한 적이 없었는데, 죽음 에세이 쓰는 기간에 다시 그 시절의 생활 패턴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적지 않은 책을 썼는데, 그 동안에 생활 패턴이 바뀐 적은 없었다. 

죽음 에세이 초반 좀 지났을 때, 이 책의 셋업이 잘못 구성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톤도 너무 무겁고, 내가 겪은 얘기를 중심으로 셋업을 만들었는데.. 명사 에세이라는 책 분야가 있기는 한데, 나는 그런 명사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처음 에세이집을 냈을 때에는, 이런 방식으로 했었다. 그때는 내가 명사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그 언저리 어디엔가는 걸쳤던 것 같다. 그래서 그렇게 쓰는 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지금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고, 그냥 어린이 둘 키우는 아빠일 뿐이다. 한동안 이렇게 살았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 것 같다. 이제는 더 이상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사람들이 나의 일상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시절의 습관이 남아서, 죽음 에세이의 셋업이 되었다. 

그걸 다 들어냈다. 죽을 때까지, 절대로 잊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명사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삶에 끼어 있던 거품이 아직도 덜 빠진 것 같다. 사실 죽음이라는 주제가 그런 걸 깨닫게 해준 것 같다. 다루기 어려운 주제에 너무 설렁설렁 습관처럼 들어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을 다시 읽고, 데이터도 다시 보기 시작했다. 나도 위기를 많이 겪었다. 책 쓰고 망한 적도 많지만, 그래도 위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었다. 근데 처음으로 위기라는 생각을 했다. 셋업을 잘못 설정했다는 생각은 처음 했다. 그리고 더 큰 건, 그게 문제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때 책을 그만 쓸까 하는 생각을, 데뷔하고 처음 했다. 

그래서 정말로 그만 두려고 했다. 남은 계약들이 몇 권 있지만, 그만하기로 하면, 계약금 다시 주면 되는 일이기는 하다. 행정적으로는 말이다. 아마 지금 내 통장이 넉넉한 상황이면, 그렇게 했을 것 같다. 셋업도 제대로 형성시킬 수 없는 상황이면, 책은 그만 쓰는 게 맞다. 

그냥 일정대로 책을 쓰기로 다시 생각한 것은, 며칠 후의 일이다. 그때 하고 있던 분석이 우울증과 치매였다. 이 분석들은 내 능력 이상으로 잘 되었다. 그리고 마침 그때 보고 있던 드라마가 <대명풍화>였다. 명에 대해서 내가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충격적으로 절감했다. 모르는 게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많다. 좀 모르는 것과 생판 모르는 것은 좀 다르다. 명나라에 대해서 정말로 내가 너무 몰랐다. 명 초기에 순장이 있는 줄은 정말 몰랐다. 100일 정도 이 민족이 북경을 포위했다는 정도만 어렴풋이 알았는데, 처들어온 게 어떤 나라인지도 몰랐다. 북경 갔을 때, 자금성도 안 보고 왔다. 북경성 담벼락이 그렇게 높다는데, 그것도 안 보고 오다니! 

모르는 건 문제가 없다. 모르는 걸 알고도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다. 아직은 늦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중국어를 배우기로 마음을 먹었고, 북경도 가보기로 했다. 타이완도 가볼 생각이다. 익숙하지 않은 건 익숙해지면 되고, 모르는 건 공부하면 된다. 

그렇게 죽음 에세이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그때쯤 저녁 무렵이면 잠이 쏟아져서 곯아떨어졌다. 일찍 잤으니까 일찍 깼다. 책을 쓰면서, 이렇게 긴장이 올라간 적이 없었다. 워낙 어려운 주제라서 그렇다. 그리고 내 꼴도 꼴이 아닌 상황이다. 그냥 이 모든 것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직은 어려운 거 분석할 때, 보람이 느껴진다. 그리고 뭔가 의미 있는 결과를 찾아내면 행복하기도 하다. 아직은 좀 더 배울 수 있는 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죽음 에세이 본문을 마쳤다. 날려버린 셋업에 들어간 내용 일부는 서문이라는 형식에 넣었다. 그렇게 새로 쓴 서문도 톤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날리고 새로 썼다. 새로 쓴 게 훨씬 낫다. 톤을 어느 정도는 정했다. 

어제까지는 쉬었고, 오늘부터 새로 죽음 에세이 고치기 시작한다. 어제는 일부러 술 때려 마시고 늦잠도 잤다. 다시 늦잠 자는 스타일로 가려고 한다. 저녁 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스타일은 긴장감을 높이는 데에 좋기는 하다.

제일 큰 문제는 밤 10시에 하는 저녁 수영을 못 가는 일이다. 하이고. 무엇보다도 긴장도를 그렇게 높이면 일상 생활을 할 수가 없다. 집중해야 하는 순간이 있기는 하지만, 계속 그렇게 지내면 제 명에 못 산다. 텐션을 좀 떨어뜨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장도를 너무 높이면, 웃음이 나오기 어렵다. 명랑도 힘들다. 인상 쓰고 최선을 다 하는 것, 그건 내 스타일이 아니고, 그렇게까지 해서 성과를 만드는 건 별로다. 나는 그런 삶과 이별하기로 했다. 저녁에 자고 새벽에 일어나는 것, 그것도 내 스타일 아니다. 그렇게 계속 지내면, 없던 암도 새로 생길 것 같다.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이번에 느낀 게 많다. 지금도 살살 살지만, 앞으로는 좀 더 살살 살 생각이다. 그 대신 습관처럼 생각하고, 습관처럼 느끼고, 그렇게는 안 하려고 한다. 너무 열심히 살면, 모든 것이 패턴화 되고, 그 패턴 안에 들어가서 새로운 것을 못 찾고, 익숙한 방식으로만 열심히 하려고 한다. 그래봐야 힘만 들지, 좋을 게 아무 것도 없다. 

조금 더 설렁설렁 살도록 노력해야겠다. 지금부터 죽음 에세이, 고치기 시작한다. 조금 더 웃을 수 있는 공간을 많이 만드는 게 목적이다. 날려버린 셋업도 다시 구성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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