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안 써져서 고민을 하다가, 진짜 간만에 프랑스 사회당과 공산당 홈페이지 들어가 봤다. 홈페이지 불친절하게 되어 있는 건, 프랑스의 전통인가 보다. 고등학생 조직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좀 찾아보려고 했는데, 결국 포기. 프랑스 공산당 홈페이지에서 "앞으로 백년"이라고 하는 캠페인 제목 본 것만 기억에 남는다.
프랑스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고등학생이 되면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을 결정하고, 정당 활동을 시작한다. 시민이 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인구 비례로 우리나라 고등학생 중에도 자연스럽게 프랑스 같았으면 사회당을 지지하거나 공산당을 지지할 청년들이 발생할 것이다. 그들은 한국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좌파 에세이는 이전의 내 인생과 이후의 내 인생을 가를 것 같다. 개인적으로 좋은 쪽은 아니다. 무난하고 크게 별 탈 없는 게 내 이미지였던 것 같은데, “좌판데요”, 하는 순간 머뭇거리는 상대 반응을 금방 확인하게 된다. 상대도 불편하고, 나도 불편하다. 적당히 진보라고 하면 아무 일도 없는 상황에서, 텐션 확 올라간다. 그냥 그렇게, 서로 긴장하지 않게 조심하면서 한 평생을 살았던 것 같다. 나야 이렇게 살다가 한 인생 가도 그만이지만, 그게 꼭 좋은 것인가 싶었다.
그래서 좌파는 한국에서 소수자다.
어느 매체에서 글을 써달라고 해서, 좌파라는 키워드로 하겠다고 했더니, 회의를 해봐야 한다고 한다. 최근에 그런 반응이 많았다. 어색함과 불편함, 두 가지 모두 일 것 같다.
나이를 먹으니까 이제 “좋은 게 좋은 거다”, 그런 게 싫다. 그냥 밥이나 먹고 한 세상 살았다, 그렇게 나중에 말하는 게 싫다.
원고를 읽은 사람들 반응은 어렵다, 대충 그렇다. 출판사랑 상의를 많이 했는데, 어려운 건 아니고, 익숙하지 않고 이질적인 것.. 아닐까 싶다. 진보로 얘기를 푸는 경우는 많지만, 좌파로 얘기를 푸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질적이고 불편한 것에 더 가까울 것 같다.
어쨌든 내 얘기는 많이 덜어내고, 분량을 좀 더 확보해서, 이 정도는 알겠지 싶은 것에도 설명을 좀 더 길게 달았다.
뒷부분은 고칠 게 많지 않다. 처음부터 사람들이 재밌다고 했던 것들인데, 꼭 좌파랑 연결하지 않더라도 재밌는 얘기들이다. 이 뒷부분을 아예 앞으로 빼고, 좌파 얘기는 날리면 좀 더 많이 보지 않겠느냐는 얘기들도 있었는데.. 그러면 책을 쓸 필요가 없는 거고.
하여간 그럭저럭 이제 거이 마무리 단계다. 누가 볼지, 그것까지는 이제 잘 모르겠다. 작은 출판사에서 소박하게 준비하는 거라서, 마케팅 같은 건 잘 모르겠고.
전체적으로 책을 고치면서 들었던 생각이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라는 단어다. 이걸 키워드로 에플로그를 새로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지금 것은 후반부 흐름 그대로 간 건데, 무난하기는 하지만 확 꺾는 맛이 없다. 지금까지 이랬다는 내용보다는 앞으로는 이렇다, 그렇게 좀 더 미래지향적인 얘기로 책을 마무리하고 싶어졌다.
원래 제목은 좀 달랐지만, 지금은 제목이 <좌파 상실의 시대>로 확정이 되었다. 이래저래 에필로그가 이 제목 분위기에는 좀 어울리지 않는다. 기왕 고생하는 김에 새로 쓰는 게 나을 것 같다.
편한 인생을 살았던 것 같지는 않다. 이래저래 긴장할 일이 많았고, 매번 승부 같은 결정 앞에 한 평생을 서 있었던 것 같다. 말년도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그냥 하던 거나 슬슬 마무리하면서 적당히 내려놓고, 그렇게 잔소리나 하는 뒷편에 서는 삶이 기다리고 있었을 것 같았는데.
밋밋한 건 또 내가 참기가 어렵다. 하나마나한 소리는 이제 내가 지겨워서 계속 하기가 싫다.
지난 주부터 모닝을 타기 시작했다. 아내 전기차 사느라고 내 차는 끼워서 같이 팔았고, 아내가 타던 10년 된 모닝으로 바꾸었다. 오늘 차에 기름 넣느라고 주유소 갔는데, 정말 기름값 헐다. 아반떼 반값 밖에 안 되는 느낌이다.
앰프 여기저기 손 보고, 컴 바꾸느라 돈 솔찮게 들었다. 당분간 그냥 모닝 타고 지내려고 한다. 돈 없을 때에는 아끼는 게 최고다.
올해는 카메라를 바꿀려고 했는데, 여력이 안 된다. 그냥 일단은 고쳐서 쓰는 걸로. 내부 접점이 이상해졌는지, 조그 다이얼 같은 게 제대로 안 돌아가거나, 막 돌아간다.
어제는 집 근처에 아는 사람이 와서 차 한 잔 마시려고 했는데, 자주 가던 카페 두 군데가 모두 문을 닫았다. 한 군데는 윤종신 아내가 하던 집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아닌가? 하여간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한계 상황에 몰린 곳들이 점점 더 늘어나는 것 같다.
둘째가 후년이면 3학년이 된다. 큰 애는 5학년이 되고. 그때부터는 그냥 알아서 학교 갔다 오라고 할 생각이다. 이제 1년 반 정도만 더 지나면 나도 길고 긴 육아 기간이 끝나고, 드디어 움직일 수 있게 된다. 뭐 할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2016년부터 고정적인 뭔가를 하지 않고, 방송 등 대부분의 일들을 정말 최소한으로만 했다. 강연도 꼭 필요한 것 외에는 거의 안 했고.
좀 움직일 수 있으면, 해금 연주자들 인터뷰집을 좀 해보고 싶다. 이게 해야 해서 하는 일이 있고, 좋아서 하는 일이 있다. 다른 악기는 잘 모르고, 해금은 좀 안다. 한 때는 유명한 연주자들도 좀 알았었고, 사부들도 있었는데.. 그건 정말 20대 일이고, 음악 안 들은지도 좀 된다. ‘해금 살롱’ 들으면서 요즘 좀 다시 찾아듣는 중인데, 정말 간단히 앨범 내면서 안간힘을 쓰면서 버티는 것 같다. 여유를 갖고 천천히 하나하나 찾아 들으면서 얘기들 엮어보는 일은 해보고 싶다.
여유가 될지는 모르지만, 돈을 좀 쓸 수 있을 상황이면, 다큐도 같이 만들면 좋을 것 같고. 물론 이건 아주 나중에 생각해도 될 일이고.
2016년에 애들 보기 시작하면서 이게 언제 끝나나 했다. 오늘 문득 생각해보니까, 그것도 이제 거의 끝나간다. 그 후에 뭐 할지, 이제 조금씩 생각해보려고 한다. 해야 하는 것만 하면서 나의 남은 인생을 다 소모하고 싶지는 않다. 나도 이제는 하고 싶은 일들을 해보고 싶다.
dac는 digital-analogoe-converter이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이건 번역어가 없다.
cd에서 디지털 신호를 읽으면, 자체 dac로 디지털을 아날로그 소리로 전환시켜 주는 작은 장치가 내장되어 있다. 이 dac를 외부에서 하면 소리가 좋아, 아니 달라진다. 나는 예전부터 이렇게 들었다.
그런데 오래된 기기들을 새로 꺼내서 설치했는데, 내가 쓰던 dac가 완전 맛탱이가 간 사실을.. 다른 건 오래 되어도 고쳐가면서 쓰면 되는데, 이건 국산을 샀더니 고칠 데가 이제는 없게 되었다.
결국 부랴부랴 musical fidelity의 초미니 dac를 급히.. 내가 가진 인티가 뮤피 a3다. 뮤피 소리를 워낙 내가 좋아하기도 했고. 그래서 cd 문제는 해결.
다음에 해결한 문제가 블루투스. 윈도 10에서 aptx만 되고, aptx hd는 설정할 방법이 없는 듯 싶다. 블루투스 리시버와 송신기 다 사기로.. 결국 aptx hd 코덱 내장된 최신형으로 다 샀다. 이때부터 내가 뭔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여간 이래서 일단 cdp 문제와 블루투스 모두 해결.
근데 뮤피 dac에 광케이블이 두 개 들어간다. 블루투스 리시버에도 나름 자기들이 열심히 설계한 dac가 있다고 엄청 광고한다. 영국 회사다. 그런데 그 회사에서도 자기네 dac를 판다.
블루투스도 디지털 신호인 것은 마찬가지라서 외장 dac에서 처리할 수가 있다. 그래서 연결했는데, 이게 안 된다. 연결이 되면 신호 램프에서 파란 불이 들어오는데, 먹통이다.
며칠 동안 우울했다. 내가 물건을 잘 못 샀나, 아니면 설정이 틀렸나.. 이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머리를 쥐어 뜯는 며칠을 보냈다. 물론 소리는 잘 나오는데, 그래도 기왕에 산 dac를 블루투스에 연결해보는 일을 못 한다고 하니, 은근히 존심 상하고.
일요일 오전, 잠시 쉬는 김에 노는 광케이블 꺼내서 다시 시도..
별의별 짓을 다 했다. 블루투스 리시버 매뉴얼도 샅샅이 뒤져서, 이게 원래 자체 dac단을 거치도록만 되어 있고, 바이패스 하는 기능은 없는 물건인지.. 매뉴얼은 그렇게까지 자세하지 않다. 제조사 홈페이지도 뒤졌다.
안 되는가벼, 내가 아는 상식이랑 요즘 새로운 양식의 상식은 다른가벼.. 막 포기하고 커피 끓여서 글 고치려고 하는 순간.
블루투스 리시버를 껐다켰다. 그랬더니 테스트용으로 물려놓은 take five가 흘러나왔다. 오 예..
이유는 모르는데, 블루투스 리시버의 외부 송출 신호 아날로그와 디지털 변경 스위치가 껐다 켜야 활성화되는. 이런.. 이 정도 되는 최신식 디지털 기기에서도 껐다 켜야 하는 일이 ㅠㅠ.
하여간 컴 -> 블루투스 송신기 (사운드 블래스터 제품) -> 블루스터 수신기 (zen 제품) -> 외장 dac (뮤지컬 피델러티 제품), 요렇게 넘어가는 영 지랄맞은 조합이 발생하게 되었다.
스트리밍 음원을 이번에 전면적으로 flac으로 바꿨다. 이론적으로는 인간 가청 범위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그렇게 큰 변화가 느껴질 것은 아니기는 아닌데, 소리가 훨씬 더 단정해진다.
하여간 뮤피의 외장 dac가 불루투스 신호를 받는데 겨우겨우 성공하면서.. 2000년에 처음 뮤피 앰프 샀던 시절의 그 느낌이 아스라히 났다. 그때는 스피커가 jbl이었다. zen이라는 블루투스 리시버에 달려 있는 dac도 형편 없는 물건은 아니다. 그 소리도 괜찮았다. 사실 그게 별로였으면, 벌써 난리를 쳐서라도 해법을 찾아냈을 것인데, 그것도 들을만해서 그럭저럭 잘 듣고 있었다.
2001년이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어렵던 시기였다. 그때까지는 그냥 사운드 블래스터, 흔히 사블이라고 부르는 컴용 오디오 기기의 미니 기기들 가지고 듣고 있었다. 그때도 잘 들었다.
그 시절에는 국무조정 실장이 김호식이었다. 총리 이한동, 국무조정 실장 김호식 그리고 나중에 산업부 차관이 된 오영호가 국장이던 시절, 내 인생에서 상사 라인이 가장 잘 맞았던 시기였던 것 같다. 기후변화협약 2차 종합계획이라는 것을 그때 만들었다.
이한동이 대선 출마한다고 총리 그만두고, 장상 총리 서리가 오던 시기에 위의 라인들이 다 바뀌었다. 그 와중에 국무조정 실장으로 김진표가 오게 되었다.
그 시절에 돌아버릴 것 같은 마음으로 방황하다가 처음 산 것이 뮤지컬 피델러티 a3 앰프였다. (오래 되어서 내부가 꽤 부식된 놈을 이번에 다시 살렸다.)
그렇다고 주말에 음악을 들으면서 편하게 쉬었냐, 그런 건 아니다. 어머니가 일요일이면 빨리 결혼하라고 집으로 와서 달달 볶았다.
토요일 저녁에 일찍 자서 밤 12시에 출발해서 강진이나 목포 같은 데 갔다가 아침 먹고 돌아오는 주말 여행을 하면서 그 시간을 보냈다.
그 시절에 김진표와는 도저히 일을 못 하겠다고 판단을 하고, 사직서를 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때 썼던 앰프가 뮤피다.
그렇게 해서 총리실 근무를 마쳤고, 사람들이 조언해준 대로, 바로 그만두지는 않고, 좀 있다가 그만두는..
에너지관리공단은 다음 해에 사직서를 냈다. 그 사이에 김진표는 노무현 정부의 인수위원회를 쥐락펴락했다. 인수위원회에 산업계 자문을 해달라고 연락이 왔는데.. 니미럴, 나중에 명박 때 차관을 하게 되는 양반 통해서 연락이 왔다. 싫어요, 그리고 3월에 사직서 내고, 월급쟁이 시절을 정리했다.
그리고는 2001년에 뮤피로 음악을 들으면서 결정한 대로, 거의 그 시절의 설계대로 20년을 살았다. 책 쓸 준비는 3년 동안 하고, 2005년에 첫 책이 나왔다. 유일하게 설계대로 안 된 건, 아내와의 결혼이다. 아내는 정부 기관 부장하고 결혼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만두면서 소득이 없는 시기를 몇 년을 보냈더니.. 아내는 고생 엄청 했다.
뮤피 dac를 통과하고 나니까, 2001년에 총리실 그만두기로 마음을 먹던 시절에 들었던 그 소리결이 흘러나왔다. 일요일 아침, 오래된 재즈 틀어놓으니까, 20년을 거슬려, 나에게 너무 익숙한 그 뮤피의 소리가..
dac는 보통의 경우 칩 하나로 처리되는 일이다. 컴으로 cd 들으면 당연히 이렇게 처리하는데, 나도 사무실에 있을 때에는 이렇게 컴 cd로 이어폰 끼고 음악 잘 들었다. 그걸 별도의 외장 dac로 바뀌면, 소리가 엄청 좋아지느냐.,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아날로그의 세계로 들어오면, 소리결이 바뀌기는 한다. 그때부터는 그냥 취향의 세계다.
셋팅 클리어.. 이렇게 해놓고 제일 처음 들은 노래가 엘라 피츠제럴드의 lullaby of birdland. 이 오래된 녹음을 꼭 이렇게까지 해놓고 들을 필요가 있느냐.. 그것 참 답하기 어렵다.
드는 김에 빌리 할러데이, 이런 거 몇 곡 듣고 나니까, 생각이 좀 차분해졌다.
좌파 에세이에서 일단 뺐던 박현채, 정운영 얘기 등 오래된 좌파들의 노스탈지아에 관한 얘기를 다시 넣기로 했다.
지금 좁은 고양이랑 같이 쓰는 방에는 턴테이블 놓을 자리도 없어서, lp는 당분간 쓰기 어렵다. 그 대신 그래도 무손실 음원에 가까운 flac으로 바꾸면서, 윈도 10이 제공하지 않는 aptx hd 코덱을 쓰기 위해서 몇 주간 생난리를 쳤다.
내 안에서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들, 나를 움직이게 만든 것들, 그런 얘기가 빠지면 결국 내 안의 완결성이 무너진다. 나도 감동하지 못하는 얘기가 누구 마음에 다가가겠느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한 얘기들, 내가 멋지다고 생각한 얘기들을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좌파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내가 얼마나 더 살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남은 시간 동안에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서 조금은 더 생각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dac 하나를 놓고 생나리를 치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좌파 에세이 수정 중이다. 앞부분을 불편하게 생각하거나, 재미 없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이 좀 있어서, 앞부분을 가능한 한 슬림하게 만드는 중이다.
눈물을 머금고 1장 끝에 나오는 ‘빨간색 아반떼’ 절 하나를 통으로 들어냈다. 프랑스 공산당 얘기와 로베르 위가 거기 들어가 있고, 박현채와 정운영 얘기도 거기 있었다. 로베르 위 얘기는 재밌기는 한데, 한국에서는 익숙한 얘기도 아니고, 좀 슬픈 얘기이기도 하다. 내 책 인생에서 한 번쯤은 박현채 선생과 정운영 선생에 대한 얘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었는데, 여기가 딱 그 자리라고 생각했다.
자리는 거기가 맞기는 한데, 좌파 얘기도 버거운데, 박현채는 또 누구고, 정운영은 또 누구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
눈물을 머금고 빼기로 했다.
벽에 대고 얘기하는 기분이다. 그래도 벽에 대한 예의를 갖춘다는 마음으로, 벽에 대해 얘기할 때에는 정말 최소한의 얘기만을..
그렇게 책으로 치면 15페이지 정도를 한 방에 들어냈다. 채식주의 얘기도 거기 들어가 있었는데, 이건 나중에 뒤에서 진짜로 채식주의를 좀 키워서 넣는 걸로. 아 참, 카톨릭과 기독교 얘기도 거기 들어가 있었는데.. 모르겠다. 내가 지금 카톨릭 얘기까지 다룰 처지는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