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달개비의 날들
소설 <자산어보>가 새로 발간이 되었다. 오세영의 소설이었는데, 몇 년 전에 정말 재밌게 읽었었다. 분에 넘치게 재출간을 하면서 추천사에 대한 부탁이 들어왔다. 소설에 추천서를 쓰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내가 추천사를 쓸 때의 중간 제목은 ‘바다 이야기’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결국 출간이 되었을 때는 다시 <자산어보>가 되었다.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에 관한 이야기이고, ‘흑산’이라는 이름을 붙인 게 아마 정약전으로 알고 있는데… 그 유배 시절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동시에 한국 최초의 생태학자라고 해도 좋을, 정약전이 흑산도라는 동네에서 정신적 지주로 동네 사람들과 바다 생태계에 익숙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요 몇 년 사이에 정말 재밌게 읽은 소설이기도 했다. 작가인 오세영에게도 관심이 좀 있었다. 송파 도서관 근처에서 내가 작업하던 시절이었는데, 오세영도 송파 도서관에서 책을 많이 본다고 들었다. 아무래도 같은 도서관에 있다고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친근함이 생기게 된다.
<자산어보>를 처음 읽고, 다시 재출간이 되는 동안에, 두 책을 사이에 두면 제일 큰 변화는 내 삶의 공간이 바뀌었다는 걸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정동에 살던 시절, 아파트에 앉아서 소설을 읽었는데, 재출간이 되었을 때에는 아파트를 떠났고, 지금은 주택에서 산다.
가끔씩 삶을 관통하면서, 그래, 이런 거야, 이런 마음을 들게 하는 책이 있다. <88만원 세대>를 쓸 때만 해도, 나도 30대였다. 그 시절에는, 여기저기서 오라는 데도 좀 있었고, 결국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취직을 다시 해야 하나, 그냥 버텨야 하나, 그런 고민을 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는 노무현 시절이었는데, 아직 뭔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어디 한적한 곳에서 조그만 연구관 같은 건 해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냥 나는, 유배자 살아가는 심경 비슷하게 그냥 버티면서 좀 더 작업을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마음을 먹을 때 손에 잡았던 책이 <자산어보>였다. 정약전의 삶에 대해서 우리는 별로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는 않는 듯 싶다. 아우인 정약용이 워낙 화려해서, 거기에 가리워진 측면이 적지는 않은데, 나름대로 참 멋진 삶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자주 달개비라는 꽃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했고,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 뭐, 이런 잡초가 있나 싶었는데, 워낙 열심히 줄기를 올려대서 그냥 내버려두었다. 새벽에 꽃을 피우고, 점심 먹기 전에 꽃이 진다. 그렇지만 매일 같이 꽃일 피워내면서, 두 달 넘게 매일 꽃을 볼 수 있었다. 총선이 끝나고 울적하던 시기에, 마당에 있던 꽃들을 매일 보면서 나도 지친 마음을 추스렸다.
꽃은 매일 같이 피었다. 막상 보면 아주 작고 볼품 없어 보이지만, 이런 꽃이 수 십 송이, 몇 시간을 위해서 피어나는 걸 보면, 작은 장관이 펼쳐진다. 슈베르트가 기타를 보고 작은 오케스트라라고 표현할 때, 그런 느낌이었을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사회에서 좀 움직이려고 할 때는 YS의 시절이었다. 문민정부라고 이름을 달아서, 운동권들이 사회에서 조금은 더 개방적으로 움직일 수가 있었다. 그 시절에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정부에서 일을 하던 건 DJ 시절이었다. 정부기관이나 정부 단체에서, 좋든 싫든, 운동권들을 조금은 더 중요 자리에 배치하려고 했고, 뭔가 대외교섭을 해야 하는 자리에 앉히려고 했었다. 좋든 싫든, 그런 시기였다.
명박의 5년간, 그야말로 토건의 시대였고, 영혼을 팔아야 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 시기에 정부와 관련된 일을 뭔가 해야 하는 사람들 중에서, 전향하지 않았거나 전향할 생각이 없던 사람들에게는, 평균적으로 아주 어려운 시기가 펼쳐졌을 것이다. 그 시기가 5년 더 연장된다는 것은, 이제 시작해보려는 사람들이나 이제 사회에 나서는 사람들에게, 입사 면접 때 무슨 얘기를 해야 하는지를 환기해보게 하는 것과 같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는가? 너무 뻔하지 않은가?
순조의 아들이었던 효명세자가 조선이 망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거의 마지막 기회로 보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효명세자의 시기는, 보면 볼수록 애틋함이 많다. 마지막 개혁 군주가 될 수 있었던 효명세자는, 그러나 너무 일찍 죽었다.
명박에서 박근혜로 넘어가는 게, 90% 이상 확정되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요즘, 문득 효명세자가 대리첨정하던 순조 시절 생각이 잠시 났다. 대한민국 버전이 세도정치의 부활과 박근혜를 앞으로 미는 사람들의 구도는 상당히 유사한 점이 많다.
조선은, 세도정치로 나라 망해먹은 경험이 있는 나라라서, 해방 이후 50년 넘게 세도정치 형식으로 나라가 가지 않도록, 많이 버틴 셈이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이게 딱 세도정치랑 너무 유사해보이지 않는가?
아침에 피어나는 자주 달개비를 매일 보지는 못한다. 어쨌든 이런 시기에 소설 <자산어보>에 대한 추천사를 쓰면서, 나도 지난 몇 년간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근혜 버전 세도정치가 서울 한 가운데에서, 강남을 중심으로 뭉게뭉게 피어나는 이즈음, 20대가 이 나라에서 도대체 무슨 방식으로 희망을 볼 수가 있겠는가? 예전 식으로 얘기하면, 필화 사건과 유사한, 말로 인해서 감옥에 가있는 정봉주 생각하면, 이 시기가 얼마나 더 세도정치에 가깝게 가있는지, 그런 생각을 더더욱 해보게 된다.
자본주의라서 뭐가 많이 바뀐 듯 싶지만, 조선이 망해가는 과정과 지금의 강남발 세도정치의 구도가 그렇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가진 것들이 뻔뻔해질 때, 한국은 늘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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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학자로서 모든 걸 걸었다
(별 의미는 없는 사진인데, 장마비 내리는 동안 아내 기다리면서 잠시. 왠지 몽환적 느낌의 사진이 나올 것 같았다.)
교정 보고 마지막으로 원고 정리하면서 며칠간 밤을 샜다. 어차피 낮에 틈틈이 자니까 밤 새는 것 자체가 힘들지는 않은데, 너무 오랫동안 집중을 했더니, 몸이 내 몸이 아니다. 긴장이 쉽게 가라앉지가 않는다.
fta에 대한 책은 원래 계획에 없었는데, 작년 10월부터 그야말로 모든 일정을 잠시 세우고, 몇 달 동안 온통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게 되었다.
그 동안 수업도 하지 않게 되었고, 강연들도 대부분 정리했고, 신문에 쓰던 칼럼들도 정리했다. 원래도 정리할 생각이 있기는 했었는데, fta 문제 때문에 좀 서둘러 정리를 했다. 그만큼 나는 작업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그것도 아주 많이.
어쨌든 진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몇 달 동안을 악으로, 깡으로 버텼던 것 같다.
국회에서 날치기가 되던 순간, 발효가 되는 순간, 총선에서 지는 순간, 작업의 방향을 다시 잡고, 새로 시작하다시피 해야 하는 순간이 세 번쯤 있었다.
총선 끝나고서는, 접으려고 했었다.
도저히 낼 수 있는 결론이 없었고, 정말로 바늘 하나 꽂을 땅도 없어 보였다.
그 동안에 일정은 완전히 개판이 되었고, 책 몇 권이 마냥 뒤로 밀렸고, 셋팅되어 있던 다큐 작업 하나를 날렸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책 한 권도 날렸다.
하여간 일정에 없던 책 때문에, 나름 비싼 대가를 치룬 셈이다. 물론 진짜 대가는 그런 것 보다는 더 하다.
거의 모든 경제학자와 거의 모든 공무원들과 맞서게 되는 상황이 되었고, 역시 거의 대부분의 야당 쪽 대선후보들과도 불편한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알고는 시작한 거지만, 또 막상 그 상황에 들어가는 게, 그렇게 유쾌한 일은 아니다.
우리 시대의 마지막 싸움이 한미 fta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나의 학자로서의 마지막 싸움은 한미 fta가 되었다.
너무 이렇게 극단으로 갈 필요가 있느냐고, 주변에서는 그런 얘기들을 많이 했는데… 뭐, 누군가는 그렇게 시대의 한 극단에 서 있어야 할 것 같기는 했고, 나는 그냥 이걸 나의 마지막 전선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예정된 책들을 제외하면, 마지막으로 내가 기획했던 책이 fta 책이 되었고, 실제로도 그렇게 될 것 같다. 순서상으로는, 이 뒤로도 예전에 했던 작업들을 정리하면서 나올 책들이 좀 더 있기는 하지만…
더 이상 새롭게 경제학 책을 기획하거나 준비하는 건 없다. 지금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한미 fta가 통과한 다음에, 거기에 적응하는 다음 시나리오를 생각해내고, 또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지가 않고, 그걸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았다.
뒤에 남아있는 책들은, 한미 fta 발효 한참 전에 준비된 거고, 그 때 골격이 잡힌 것들이라, fta와는 별 상관없이 마무리할 수 있는 것들이다. 충돌하는 책들은, 이번에 출간 일정 조정하면서 날려버렸다.
그냥 여기에 학자로서의 삶을, 묻기로 했다.
물론 그 뒤에도 써보고 싶거나 만들어보고 싶은 얘기들이 생겨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그건 학에 관한 얘기는 아니고, 경제학에 관한 얘기는 더더군다나 아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이전의 아동들을 위한 그림책을 써보고 싶어졌다. 물론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다행히 내 주변에 내가 아주 좋아하고 예쁘다고 생각하는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이 몇 명 있다.
영화에 대한 책이, 아직 구상 중까지 간 건 아니지만, 좀 분석해보고 싶은 게 생겨났다. 조지 루카스에 관한 얘기인데, 이렇게 저렇게, 한 번 꼭 분석해보고 싶고, 다루어보고 싶은 게 좀 있다.
오랫동안 놓고 있던 국악에 관한 얘기도 좀 해보고 싶은 게 있기는 한데,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옛날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는 게 어색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고…
하여간 경제학자로서 생각할 수 있는 테마나 책 혹은 연구과제에 관한 구상은 더 이상 하지 않고, 기획도 하지 않는다. 못하게 되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희망이라고 하는 걸, 처음 책을 쓰기 시작한 다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버린 적이 없었다. 상황은 나빠지더라도, 그래도 조그마한 전환의 계기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늘 했었다.
공간의 문제나 부동산의 문제를 다룰 때에도 그랬고, 20대의 문제를 다룰 때에도 그랬다.
심지어 농업 문제를 다룰 때에도, 지금은 어렵지만 좋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다. 그냥 마음만 그렇게 먹은 게 아니라, 요래요래, 조래조래, 요렇게 하면 좋아질 수 있다… 그런 생각이 있었다.
Fta에 대한 책 작업을 마치고 난 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앞으로 뭔가 좋아질 수 있을 거라는 말을… 도저히 나는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럴 가능성이, 현실이 아니라 이론적이거나 가상적인 상황에서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이 좋아질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에는, 그럴 가능성은 없다, fta 문제를 최소한 지금보다는 의미 있게 진전시키기 전에는 말이다.
원튼, 원치 않튼, 결국 한미 fta 문제에, 나는 학자로서의 생명을 걸게 된 셈이다.
그건 정권이 바뀌느냐, 바뀌지 않느냐, 그것과는 또 층위가 다른 문제이다.
어쨌든 남은 대선 때까지, 나도 나의 최선을 다할 생각이기는 하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더 이상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는 않고, 있지도 않은 희망을 정책에 대한 기술적 문제로 디자인할 그럴 능력이 나한테는 없다.
그래서 여기가 최후의 마지노선이 된 셈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이 문제를 그대로 두고 다음 분석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을, 지금에야 알게 된 셈이다.
한미 fta 문제를 대선을 경계점으로, 극적으로 풀게 된다면?
한국은 적어도 지금보다 많이 좋아질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새로운 여건에서, 새롭게 분석할 또 다른 사람들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시대가 좋아지면, 새로운 흐름도 나오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전혀 풀지 못하고, 지금과 같은 추이대로 계속 악화된다면?
그걸 염두에 두고, 더 나은 대안을 찾아낼 능력이 나에게는 없기 때문에, 어차피 내가 상상할 수도 없고, 내가 생각해볼 수도 없는 것에 대해서 얘기를 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 경우에도 나는 할 수 있는 얘기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보는 이 암울한 미래의 모습을 모든 사람들을 쫓아다니면서 공감해달라고 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마음 속으로 뭔가 느껴지지 않으면, 어차피 서로 하나마나한 얘기이고, 서로 시간 낭비이다.
‘한미 fta 한 스푼’은, 그런 면에서 내가 현역 경제학자로서 가졌던 최대의 낙관 아니면 마지막 낙관일 것 같다. 어쨌든 나는 이번 대선을 거치면서, 이 문제가 지금보다는 현저하게 나아질 수 있다는 생각을, 마지막 페이지에 마지막 글자를 떨어뜨릴 때까지, 놓아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래도 명랑함을 잃고 싶지는 않았고, 우울하고 암울하게 미래에 대한 묵시록 같은 얘기를 던지고 싶지는 않았다. ‘fta 한 스푼’은 처음에는 공포 버전으로 생각했다가, 가능하면 ‘스푼’ 버전 같은 형태로 끌고 가려고 노력했다.
내 삶에서도 그러고 싶고, 내가 세상을 보는 눈도 그렇게 하고 싶다.
늘 즐겁게 살고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그림책이나 영화에서, 짧게라도 웃음과 명랑을 빈 구석구석 채워넣으며, 그렇게 살아갈 것 같다.
그러나 경제학에 대한 얘기를 그렇게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한미 fta를 그대로 두고, 현 상태에서 경제가 즐거워지거나 발전하는 그림이, 나한테는 안 보인다.
아주 우울한 지지리 궁상 같은 얘기만 하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어차피 생각하고 있던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경제학자로서의 삶을 이제 정리하는 것이 더 편한 선택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어려워질 것이다, 그리고 그 끝은 없다, 그렇게 지금까지 생각한 적도 없고, 그런 얘기를 한 적도 없다. 그러나 지금 같아서는, 결국 그렇게 될 것 같다.
한국의 경제학자들의 99%는 한미 fta를 희망적으로 보았고, 대단한 발전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보았다.
결국 나도 그들이 인도하는 세상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기는 한데, 그 시기를 경제학자로서 살아가고 싶지는 않다. 그럴 자신도 없고.
대선이 끝나면, 태어날 자식이 보게 될 그림책과 동화책 같은 걸 소일거리로 쓰면서 즐겁게 살아갈 자신은 있다. 그리고 정말 즐겁거나 유쾌한 결론을 가지고 있는 영화를 같이 기획하고 준비하면서, 영화에 대한 소소한 것들을 분석하면서 심각하지 않은 삶을 살아갈 자신도 있다.
사람이 살면서 배워야 할 것은, 경제학이 다가 아니고, 돈의 세계가 다가 아니다.
경제학자로서, 새롭게 기획을 하는 마지막 작업이라고 생각하면서, 어쨌든 fta 작업을 마쳤다. 여기가 학자로서의 나의 마지노 선이다.
한미 fta 앞에서, 삭발을 했고, 내 책 중에 가장 잘 팔렸던 책을 절판했고, 여기에 마지막으로 학자로서 나의 삶을 걸었다.
45년간 살아온 인생을 다 걸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 시대에 절대로 져서는 안 되는 싸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경제학자로서 걸 수 있는 나의 모든 건 다 걸었다.
그리고 지금 나와 같이 이 벌판에 서 있는 사람들이, 내가 숨을 거둘 때까지, 친구이고 동료라고 생각할 사람들이 될 것이다.
책은 내 손을 이제 떠났다.
한국에서 내가 한미 fta 폐기를 공개적으로 주장했던 마지막 경제학자가 될지, 아니면 내 뒤에 또 누가 있을지, 그건 나도 잘 모른다.
“우리는 지는 법이 없습니다!”
진짜로 지고 싶지 않은,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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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연출되지 않는 것
올해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어떤 여자 어린이가 있다. 이제 학교에 좀 익숙해질까 싶었는데, 이런 말을 했다.
“학교는 쉬운 걸 무섭게 가르치는 곳이예요.”
‘무섭게’, 이 단어가 가슴을 쿵하고 찔렀다. 이 어린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넓게 보면 강남의 한 언저리에 있는 학교이다. 학교는, 초등학교 1학년의 여자 어린이에게도 무서운 곳으로 느껴졌나보다.
아기 고양이들은, 이제 슬슬 젖을 뗄 때가 가까워졌다. 한 달 내내 광과 뒤뚤에 숨어 지내다가 요즘은 마당 앞으로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고, 캔에 든 고기를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새끼용 사료를 조금씩 물에 불려서 줘보는데, 어른들이 먹은 건지 얘들이 먹은 건지, 그건 아직은 알 수 없다. 어쨌든 아기 고양이가 엄마 고양이에게 앉겨 젖 먹는 것을 볼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시기 정도이다.
엄마 고양이가 아기 고양이들을 품에 앉고 젖을 먹일 때, 나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렸고, 문득 “학교는 쉬운 걸 무섭게 가르치는 곳”이라는 어느 어린이의 말이 떠올랐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학교에서 행복을 배우지 못한 것 같다. 행복이라는 것이 가르친다고 해서 배울 수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지금처럼 아예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 그건 좀 아닌 듯 싶다. 선생님한테 칭찬 듣고, 공부 잘 했다고 칭찬 듣고… 그런 건 행복이 아니다.
성취와 쟁취, 그런 걸 행복과 동의어로 알고 세상을 살게 되면, 결국 어느 순간 행복에 대해서 너무너무 무감각해지거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누군가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치명적 인간이 되지 않을까?
돌아보면, 나도 행복을 제대로 배웠던 기억이 잘 없는 것 같다.
행복하지 않은 것은 불행하지 않을지 몰라도, 행복을 배우지 못한 것은 정말로 불행한 것인지도 모른다. 손에 쥐고 과시하는 것, 그건 행복 아니다. 누군가의 눈을 통해 투영되는 찰라의 화려함, 그것도 행복 아니다.
아기 고양이 두 마리를 품에 앉고 젖먹이는 엄마 고양이를 보면서, 행복을 느끼는 것. 그게 행복을 배우는 첫 출발점일지도 모른다.
가끔 마당에 있는 고양이들을 돌보면서, 누가 누구를 돌보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행복은 연출되지 않는 것, 그런 걸 가끔 녀석들을 보면서 배운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고양이들의 사진은 연출할 수가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 찍는 거다.
사진은 빛을 가지고 노는 거라, 해 아주 좋은 밝은 날 주로 찍고, 걔들이 나와있는 곳에서 찍고, 보여주는 모습대로 찍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상상하지도 못했던 엄청난 행복을 만나게 된다.
행복은 연출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최소한 초등학생 때에는 행복해지는 것에 대해서 배워야 하고, 행복을 느끼는 것에 대해서 배울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하루에 한 번도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삶, 그건 사람 사는 게 아니다.
그건 행복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행복을 느끼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그런 것 아닐까?
더 나이를 먹어서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서, 나는 지금부터라도 행복을 배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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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장마를 보내기
아기를 낳고 나서, 엄마 고양이가 아프다.
바이러스성 감염이라고 하는데, 눈도 진물렀고, 마른 기침 같은 걸 한다.
병원에서 튜브에 담긴 페이스트 형태의 약을 사다가 먹이는데, 이게 먹이기가 쉽지 않다.
캔에 섞어서 주는데, 엄마 고양이가 잘 먹지를 않으니까 바보 삼촌이 다 먹어버린다.
약을 많이 주기도 어렵고, 식욕도 별로 없고, 그래서 병수발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며칠 전부터, 밤에 엄마 혼자 있을 때면, 그 앞에다 캔을 몰래 밀어넣어주기도 하고.
하여간 계속 먹였더니, 어제부터는 아이 낳고서 처음으로 자기가 캔을 먹기 시작했다.
바보 삼촌을 밀어내고, 먹기 시작했다.
오늘 본 건, 상황은 나도 잘 모르지만, 어쨌든 밥 먹다가 바보 삼촌이 엄마 고양이한테 한 대 맞았다.
힘이야 이제 바보 삼촌이 더 쎄겠지만, 그래도 고양이 사이들의 한 방은, 순전히 기싸움이다.
바보 삼촌 정도야, 아직도 한 방에...
얼마 전에 본 비디오에서, 고양이의 이 한 방에 악어도 꼼짝 못하는 걸 봤다.
열 받은 악어가, 친구 악어를 한 마리 더 데리고 왔는데, 걔도 한 방.
"너 바보야? 친구가 가잔다고, 그냥 졸졸 따라 다니게?"
작년까지는 비가 오면 가끔 비가 들이치지 않는 현관문 앞에 놔주기도 했는데, 지난 겨울에 개집을 새로 들인 후, 그 안에 넣어둔다. 그러면 자기들이 알아서 먹는다.
오후에 나갔는데, 아픈 다음에 처음으로, 엄마 고양이가 현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저씨, 오늘은 밥 안 주나?"
마침 바보 삼촌이 없길래, 얼른 캔을 뜯어줬는데...
먹을 거만 생기면 기가 막히게 쫓아오는 바보 삼촌.
비오는 날, 고양이들이 그냥 피만 피하면서 쭈그리고 있지는 않는다.
아기 고양이들에게는 얼마 전부터 아기용 사료를 물에 불려서 조금씩 주기 시작했다.
지네들이 먹는지, 어른 고양이들이 먹는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 통은 늘 비어있다.
풀밭에서 비오는 날, 새끼 고양이들이 뛰어다니는 모습, 그건 우리가 늘 상상하던 실낙원과 같았다.
아직 엄마 고양이는 재채기를 조금씩 한다. 병원에 물어봤는데, 천식은 아닌 것 같고.
출산 이후에 뭔가 더 먹기 시작해서 기운을 차리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그냥 그렇게 밝게 생각한다.
엄마 고양이를 보면서,
내면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요즘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중이다.
아주 솔직하게, 내면이 아름다운, 그런 걸 진짜로 느껴본 건, 이 엄마 고양이에게 처음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과연 아름답다는 게 뭘까,
그런 것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중이다.
우리는 살면서,
삶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너무 둔감해진 것이 아닌가 싶다.
나도 그렇게 아름다움에 관한 감각이 둔탁해졌거나 혼탁해졌거나...
요즘 그걸 다시 이 녀석에게서 배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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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모두 엄마가 있었다!
1.
눈으로 보는 것과 글로 전달하는 것 사이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엄마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를 핥아주기 시작한다.
새끼 고양이가 기분이 좋아져서 장난을 치기 시작한다.
또 다른 새끼 고양이가 왔다.
두 마리의 새끼 고양이가 엄마 고양이의 젖을 먹기 시작했다.
만약에 지문으로 처리한다면, 이렇게 네 줄에서 다섯 줄 안팎의 짧은 문장이 될 것이다. 이렇게 드라이하고 삭막하지 않게, 묘사를 한다면 호들갑스러운 몇 페이지 분량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글과 그림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것처럼, 사진과 영상 사이에도 차이가 있다.
막 태어난지 한 달이 조금 넘은 새끼 고양이들이 비가 그친 후, 마당에서 엄마 고양이가 목욕을 시켜주고, 젖을 물리는 과정을, 사진으로 찍을지, 일단 동영상으로 찍어서 편집을 할지, 잠시 고민을 했었다. 나는 사진 쪽을 선택했다.
그리고 나서 나중에 네 컷 정도의 사진으로 처리하는 편이, 더 감동적으로 이 장면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판단이 맞았던 것인지, 그건 잘 모르겠다. 감동이라는 것은, 복합적인 것이니 말이다.
2.
어느 방송국에서 어머니에 대한 방송을 만들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작년부터 어머니가 편찮으시다. 난 별로 보여줄 일상이 없을 뿐더러, 내 주변의 식구들도 마찬가지이다. 어쨌든 연락이 온 거니까, 일단 얘기는 전해드렸다.
요즘은 많이 아파서, 나중에 그럴 기회가 있으면 하시겠단다.
어쨌든 나에 관한 건 아니니까, 일단은 그렇게 방송국에는 전달을 하려고 한다.
어머니… 종종 생각하게 되는 주제이기는 하다. 내게는, 그렇게 편한 주제는 아니다.
난 이 집안에서 처음 태어난 좌파이고, 다른 어느 친척과도 다른 삶을 살고 있다.
3.
엄마 고양이가 아기 고양이를 돌보는 모습은, 가끔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꼭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게 되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진실이라고 할까, 가감 없이 삶이라는 것이, 마치 우주가 잠시 정지된 것처럼, 그렇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뭔가 굳이 말을 덧붙이거나, 부연하는 설명들을 달 필요가 없을 듯한.
아, 저런 게 삶이구나…
하나의 존재가 있기 위해서, 저렇게 많은 수고와 노력이.
그걸 보는 그 자체가 내게는 감동적이다.
가끔 생각해보면, 내가 아무리 아기 고양이들을 돌봐준다고 해도, 자기 엄마가 돌봐주는 것만 하겠나, 그런 생각이 든다.
4.
우리는 모두, 어떤 식으로든, 극진한 돌봄을 받으면서 지금 이 자리에 이게 된 존재가 아니던가.
아직 젖을 떼지 못한 아기 고양이들이 엄마 옆에서 얼마나 평온하고 행복해보이는지, 문득 잃어버린 실락원처럼, 저런 순간이 우리에게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모든 고양이가 다 이렇지는 않다.
지금의 엄마 고양이는, 내가 봤던 많은 암컷 고양이들 중에서도 특히 새끼들을 열심히 돌보는 편이다. 녀석의 손을 떠나 고양이별로 간 아기 고양이만, 내가 본 게 4마리이다. 자기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순간을 녀석도 겪는다.
얼마 전에 딱딱하게 굳은 아기 고양이 시체를 내 손으로 치웠던 적이 있다. 그 순간에도 녀석은 남은 녀석들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다. 무감각한 표정이지만, 그 속이 무감각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감동을 누군가에게 전달하기는 쉽지 않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나도 내가 느꼈던 감동이나 생각들을 전달하려고 해보는데, 여전히 익숙하지 않고, 여전히 어렵다.
어쨌든 우리 모두, 삶에 한 번쯤은, 이런 아기 고양이들처럼, 지극하게 돌봄을 받던 시절이 있던 존재들이다.
지금 얼마나 받든, 지금 어떤 위치에 있든, 지금 어떤 허드렛일을 하더라도, 엄마들이 극진으로 돌보던, 그런 고귀한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랑 위에서, 지금의 이 비루한 삶이라도 생겨난 것이 아니던가.
지금이 비루하고, 힘들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엄마가 돌보아주고 있는 이 아기 고양이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졌다.
우린 모두 한 때, 극진한 존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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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새로 배우는 것들 3
2) 스타워즈와 조지 루카스
<스타워즈>를 내가 몇 번쯤 봤을까? 겁나게 많이 봤는데, 아직 100번은 안된 것 같다.
어렸을 때 본 것은 깊이 생각을 안 해 본 거라, 그냥 본 거고. 마음 먹고 열심히 봤던 건, 노무현 후반 부, 한참 한미 fta 추진하던 그런 시절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때도 메이킹 필름이나 코멘터리 같은 것까지, 나름 챙겨서 본 적이 있다. 모든 영화를 다 그렇게 보는 건 아니지만, 일단 보는 영화는 가능하면 100번은 채워서 보려고 하고, 또 관련 자료들도 같이 보려고 하는 편이다. 100번 보면 아냐? 물론 그렇게 봐도 모르는 건 여전히 잘 모른다.
<스타워즈>를 다시 보기 시작한 것은, <인디애나 존스>를 다시 보고, 코멘터리와 메이킹까지 다시 보기 시작한 후의 일이니까, 아마 2달 전부터의 일인 것 같다. 지금은 엎어진 영화이지만 이준익 감독이 ‘자청비’ 시나리오 작업을 한참 할 때, 그걸 좀 더 입체적으로 이해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오래된 블록버스터들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캐스트 어웨이> 같은 걸 그 즈음에 다시 보기도 했다.
하여간 그 다음부터 거의 두 달째, 계속해서 <스타워즈>만 보는 중이다. Dvd 버전으로 보고, 블루레이 버전을 사서 보고, 그 안에 있는 크고 작은 자료들까지 탈탈 털어서 계속 보는 중이다. 아직은 노트를 하면서 보고 있지는 않은데, 곧 지나면 메모 작업도 해보려고 한다. 7월 초에, 블루레이 사가 버전이 재발매된다. 물론 이것도 나오면 사서 보려고 한다.
한국 영화 중에서 100번 채워서 본 영화들이 몇 개 있다. <짝패>가 그랬고, <달마야 놀자>와 <화산벌> 그리고 <오 브라더스> 같은 걸 그렇게 보았다.
원래 내가 무슨 재능이 있거나, 기가 막히게 머리가 좋거나, 아니면 느낌이 있거나, 그런 스타일이 전혀 아니라서, 공부할 때부터 그냥 좀 무식하게 보고 또 보고, 그렇게 많이 했다. 불편하기는 하지만, 나같이 별 재능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게 제일 낫다.
몇 년 전에 조지 로메로와 조지 루카스를 비교하는 작업을 했던 적이 있었다. <생태 요괴전>을 한참 구상하던 시절이었는데, 두 사람을 한참 비교한 다음, 나는 조지 로메로 쪽을 선택했었다. 물론 일본 여행 이후, 나중에 요괴로 모티브가 바뀌기는 했지만, 이 책의 첫 모티브는 조지 로메로에게서 나왔다. 솔직히 말하면, 조지 루카스는 그 당시 나에게 아무 느낌도 주지 않았다.
하여간 그건 옛날 일이고, 요즘은 <스타워즈>만 보고 또 본다. 정확히 말하면, 그 시절의 자료들을 이렇게 보고, 저렇게 보고, 그러는 있는 중이다.
내가 뭔가를 진짜로 배우고 있다는 생각은, 두 번 받아보았다. 대학원 시절과 박사 과정 초기, 앙드레 니꼴라이에게 배울 때 그런 느낌을 받았던 적이 있다. 현대에 다니던 시절이나 에너지관리공단에 있을 때, 뭔가 배운다기 보다는 살아남기 위해서 적응하는 거라는 생각을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지금은 한국무역협회의 부회장이 된 오영호 차관하고 일하던 시절에는, 진짜로 뭔가 배운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존경하지 않으면, 뭔가 배우기가 쉽지 않다.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공무원 중에서 내가 진짜로 존경했던 것은 오영호 차관이었다. 물론 그와 나는 살아갈 길이 다르고, 하고 싶은 일도 달랐지만, 오랫동안 주변 사람들은 내가 오영호 작품이라는 얘기를 많이 했었다.
공직을 그만둘 때, 진짜로 나를 만류했던 건 한 사람이었는데, 뭐… 당연히 오영호 차관이었다. 뭔가 몇 가지를 해준다고 했던 것 같은데, 어차피 내 삶은 그게 아니라서, 그냥 그만두었다. 그러나 그에게, 진짜로 많이 배운 건 사실이다.
뭔가 배우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일이, 그렇게 자주 있는 일은 아닌데,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을 해보면, 뭔가 정말로 배운다는 생각을 아주 오랜만에 받게 되었다.
<스타워즈>는 DVD든 블루레이든, 누구나 볼 수 있는 영화이고, 또 누구나 본 영화이다. 게다가 무수히 많은 매니아들이 있는 영화이다. 나도 한참 시스가 어떻고, 포스가 어떻고, 그러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지만 나이를 먹고 다시 보면서, 그 때와는 전혀 달랐고, 예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방식으로, 새롭게 이 현실을 보게 되었다.
한동안 이 일을 하려고 한다. 한 달 정도는, 일단 dvd부터 자세히 보고… 대부분 원서라서 돈이 좀 깨지기는 하겠지만, 논문 쓸 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참고문헌과 논문들을 챙겨서 보고. 그리고 나서 조지 루카스 인터뷰를 짧게라도 해보려고 한다.
원래의 인터뷰는,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하려고 몇 년째 조금씩 준비하던 게 있었는데, 그걸 이걸로 바꾸었다.
연락은? 내가 요즘 한국에서 외국 영화를 가장 많이 수입하던 사나이들, 그리고 어쨌든 천만 관객을 불러모았던 사람들과 같이 작업하는 중 아닌가?
조연출 한 사람이 웃기는 얘기를 하기는 했다. 핸펀을 막 뒤지더니, “조철현 바로 위에 조지형이 있었는데, 전호 번호가 없어졌네요…” 하하하.
아직 뭘 어떻게 하고, 뭘 얼마나 더 배워야 할지는, 나도 잘 모른다. 그러나 뭔가 엄청나게 배우고, 내가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조지 루카스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찾아가면서, 간만에 배우는 즐거움을 느끼는 중이다.
뭔가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주는 가슴설래임, 이게 도대체 얼마 만인가, 그런 생각에 <스타워즈>를 보고 또 보고, 그러고 있다. 누구나 보았고, 누구나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소재를 다시 뒤집어서 2012년이라는 공간에 맞게 해석해보는 것, 이게 참 재밌다.
오랫동안, 경제학이든, 생태학이든, 일반인은 접하기 어렵거나 평생 한 번 들어보지도 못할 얘기들을 가지고 공부를 했었다. 장 밥티스트 세이나 튀르고의 책 혹은 존 스튜어트 밀의 경제학 책 같은 건, 정말로 경제학자들도 잘 안 보는, 그런 몇 사람만 보는 책이었다. 난 이런 종류의 공부에 너무 오랫동안 익숙해있었다. <스타워즈>와 조지 루카스에 대해서 공부하는 건, 그것과는 정반대이다. 누구나 보았고, 대부분의 사람이 한 두시간 정도는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는 소재이다.
간만에 뭔가 배운다는 즐거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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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이 시작하는 날
사람이란 원래 사랑하지 않고 살아가기가 어려운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별로 거창한 이유는 가지지 않고, 그냥 내 주변에 나타난 고양이들을 돌보기 시작한지 몇 년 된다.
아기 고양이들이 태어난 건, 한 달 조금 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내가 보기 시작한 건 아직 한 달이 안 된다.
6월은 내내 가뭄이었고, 4대강과 관련된 아주 이상한 논쟁을 하면서 한 달이 가버렸다. 6월의 마지막 날에는 서울에도 비가 왔다.
비가 그치고 날이 좀 개기 시작하자, 고양이들이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아기 고양이들은 아직은 날 엄청 무서워한다.
앞에 있는 녀석이 강북, 뒤쪽에 있는 녀석이 생협, 이렇게 두 마리가 살아남았다.
간만에 네 마리가 모두 모인 가족 사진과 같이 되었다.
그 사이 아들 고양이는, 바보 삼촌이라는 새로운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
엄밀하게 따지면 큰 형에 해당하지만, 나이를 먹어도 그냥 집에 남아있는, 예전에는 어느 집에나 있었을 법한 그런 바보 삼촌 분위기라서.
출산을 하고 나서, 엄마 고양이는 요즘 좀 아프다.
처음에는 눈에서 심상치 않은 눈물이 나서 병원에 가서 물어봤더니, 몸이 허약해져서 생기는 바이러스형 질환이라고 한다.
튜브처럼 생긴 약을 먹이는데, 이걸 먹이는 것도 큰 고역이다. 캔 같은 데 타서 주는데, 바보 삼촌이 눈치도 없이 다 먹어버린다.
사실, 가족 사진처럼 생긴 사진을 몇 번 찍기는 했는데, 그 때마다 한 마리씩 아기 고양이가 고양이 별로 떠났다.
짧게 보았던 녀석들이지만, 가슴 속에 깊은 그리움을 남겨놓았다.
얼마나 신경을 썼던지, 고양이들이 꿈에 나왔었다.
헤어짐은, 아무리 반복되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삶에 대해서 배워가는 것, 아무리 배운다고 해도 그걸 알 수가 있겠나 싶다.
우리는 욕심이 너무 많고, 그걸 내려놓기가 싶지 않다.
그 욕심들이 모두 모여서, 우리는 명박 시대라는 아주 이상한 시대를 만나게 된 것이 아닌가,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자기가 하지 않은 것으로부터 보상받으려는 것, 그런 게 분양이라는, 한국에만 있는 제도와 ‘전세 끼고 집 사기’, 이런 것과 만나면서 그야말로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그런 괴물이 되어버린 것 아닌가 싶다.
손에 쥐고자 하는 게 너무 많았고, 남들도 다 이렇게 한다는, 맞어, 그렇게 하는 게 진짜야, 이런 악마의 목소리 같은 유혹이 너무 많았다.
영화나 출판 혹은 드라마 같이, 큰 돈도 움직이고, 장기 계획을 세워야 하는 곳에서는 벌써 ‘박근혜 시대’를 상정하고 작업을 시작했다. 그걸 뭐라고 하기도 어렵다.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상반기가 지나가면서, 내 주변에서는 내년 계획을 세우는 일이 부산하다.
나는, 내년 계획을 세우지 않기로 했다.
그냥 주어진 시간을 충실히 살고, 반골학자가 한 명 있었던 걸로, 내가 이 시대에 할 수 있었던 것을 그냥 마음 속에 추억으로 간직하고자…
명박 시대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러웠고, 이 시대를 고양이들과 아웅다웅하면서 겨우겨우 버텨낸다.
만약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올해 다 할 생각이다.
근혜 시대, 그걸 상상하고 싶지도 않고, 그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 머리를 굴리는 것도 싫다.
바보 삼촌이, 참 아무 생각 없이, 정말로 명랑하게 살아간다.
녀석들에게 배우는 게, 생각보다 많다, 명박 시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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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새로 배우는 것들 2
호기심 같은 말이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증오나 사랑 혹은 희망과 같은 단어들과는 전혀 계열이 다른 용어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디오니소스 계열이라고나 할까. 그렇다고 광기나 광란과 같은, 그렇게 격정적 에너지와는 조금은 더 다른 분야의 말이 있다.
한동안 트렌드로 사용되던 ‘희망’이라는 단어와 호기심은 또 다른 종류의 개념인 듯싶다.
예를 들어, 일본어를 새로 배운다고 해보자. 일본어를 배워두면 뭐에 쓸 것 같아서 배우는 경우와, 그냥 일본어가 재밌을 것 같아서 배우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재밌다는 것과는 조금은 다른 것일텐데, 호기심 때문에 뭔가 배운다…
아마 영어로 얘기하면, 느낌 팍팍 올지도 모르겠다. 필요나 쓸모도 아니고, 재미도 아니고, 그냥 호기심 때문에 영어 공부를 하는 경우가 있을까? 아마 있다면, 호기심 대마왕 정도 될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뭔가 배우려고 할 때, 그 동기가 지나치게 불순하거나 직접적인 경우가 많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쁘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내가 책을 읽을 때 재미있어서 읽었는가? 나한테 곰곰 생각해보면, 호기심은 아니고, 재미는 더더군다나 아니고, 그야말로 죽지 않기 위해서 봤다, 이게 아주 솔직한 얘기일 것이다.
어쨌든 박사를 마칠 때까지, 나도 무수히 많은 시험과 구술시험 혹은 갖은 방법의 테스트를 통과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암기력이 정말 나쁜 편이라서, 아주 많은 독서를 하고, 그 독서량으로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뭐, 그렇게 고결한 입장이나 순수한 호기심 같은 걸로 독서를 한 건 아니다. 가끔 나의 진정한 독서는 만화 밖에 없었다고 생각하는 게, 필요나 생존과 같은 목적과 관련되지 않고, 정말로 내가 순수하게 즐긴 적은 만화 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말로 호기심 때문에 무언가 새로 배우게 된 게 도대체 언제인가, 기억도 잘 나지 않을 정도이다.
어쨌든, 이제 경제학은 내려놓고 학자로서의 삶을 접겠다고 생각을 한지는 꽤 되는데, 그렇게 마감으로 정해놓은 시간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생각지도 않았던 존재에게 무엇인가를 배우기 시작했다.
1) 고양이와 아이들
고양이를 돌보기 시작한 게, 아마 고3때부터였나? 너무 오래 되어서 잘 기억도 안 나는데, 그때부터 대학 시절, 집을 나오기 직전까지. 그렇다고 그 때 뭘 배웠던 것 같지는 않다.
3년 전부터 고양이와의 삶이 다시 시작되었는데, 요즘은 내가 생각하는 게 아무 것도 없어서 그런지, 고양이들로부터 이것저것 은근히 많이 배운다.
그렇다고 무슨 실용적인 이유는 아니다. 그냥 주어진 삶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내 앞에 나타난 녀석들과 운명적인 삶을 같이 살아가는데, 그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배우는 것들이 좀 있는 듯 싶다.
고양이들은 꾀병이 없다고 들었는데, 정말로 그렇다.
야옹구가 아픈 것처럼 보였을 때는 일요일 오후였고, 월요일 오후에 심상치 않다 싶어서 바로 다음날 오후에 들쳐엎고 병원에 갔는데… 백혈구 수치가 너무 낮아서 정말로 고양이별로 바로 보낼 뻔 했었다. 시껍했었다. 6개월 이상 상당히 아팠을텐데, 정말 그렇게 아픈지 까마득하게 몰랐다.
최근에 새끼 고양이들 두 마리가 또 떠나갔다. 아픈 줄 알았거나 급하다고 생각을 했으면, 무슨 수를 내더라도 냈을텐데, 나도 그렇게 섬세하지는 못했다. 요즘은 출산을 마치고 난 엄마 고양이가 바이러스 감염으로, 재채기를 하기 시작했다. 완치는 어렵고, 면역력을 길러줘서 버티게 하는 수밖에 없다는데, 정말 티 안내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간다.
야생의 생명체들이 보통 그렇다고 들었다.
꾀병 없이 버틸만큼 버티고, 쓰러질 때에는 가볍게.
그걸 보면서 정말 오래 전에 읽었던 ‘Seize the day’라는 소설이 생각났다. 카르페 디엠! 삶을 만끼하라!
어쩌면 우리는 걱정이 너무 많다. 살아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삶을 만끽하라!
오랫동안 잊고 있던 얘기였는데, 고양이들의 삶을 보면서 그런 걸 배웠다.
잘 먹고, 튼튼하고 오래 살고… 그게 그렇게 중요한 가치일까, 그런 생각을.
‘영혼 없는 표정’, 이런 건 좀 아니다 싶다는 것을, 고양이들의 짧지만 강렬한 삶 속에서 조금 배운 듯 싶다.
이 얘기들을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요즘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왜 아이들이냐고? 고양이를 제일 좋아하는 게 아이들이기도 하고, 또한 고양이가 제일 좋아하는 게 아이들이기도 하니까.
하여간 이런 생각을 하면서, 간만에 뭔가 배우는 중이다. 고양이들이 나의 스승이다.
2) 조지 루카스와 스타워즈
요즘 새로 배우는 것들 3 (2) | 2012.07.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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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마음이 무겁다. 가볍게 마음을 먹으려고 해도, 세상이 이 모양이니, 이게 마음이 가볍게 되나?
이것저것 고민하고 있는 나를, 야옹구가 딱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다.
그냥 자...
여기, 편해.
그렇다.
Seize the day...
(대학교 들어가서 두 번째로 집은 영어 소설이었는데, 결국 끝까지 다 못 읽었다...)
7월이 시작하는 날 (3) | 2012.07.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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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새로 배우는 것들 1 (2) | 2012.06.28 |
명랑이 함께 하기를! (4) | 2012.06.26 |
아름다운 것에 대한 생각 (4) | 2012.06.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