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어찌 하다보니, 장하준의 새 책을 아직 못 읽었다.

여러가지로 쉽지 않은 상황인데, 그래도 우리에게는 장하준이 있었다, 그렇게 밖에 할 말이 없다.

장하준에 대해서는, 그가 학위 준비할 때 그리고 캠브리지에 임용될 때, 기타 등등 여러가지로 애틋함이 많다.

생각보다 자주 볼 관계였던 것 같은데, 그렇게 자주 보지는 못했다.

누구나 그렇게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장하준하고 딱 일치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건 어느 학자라도 당연히 그럴 것이다만...

요즘은 장하준이라는 학자가 한국에 있다는 것 자체가 자랑스럽다.

올해는 마이클 샌들과 함께 한 해를 시작해서 장하준과 함께 마감을 하는 한 해로 기록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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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적인 강좌에서는 하지 못하는 얘기들이 많다만.

내가 직접 끌어갔던 스터디팀에서는 한 번도 빼지 않고 꼭 읽으라고 한 책이 이 책이다. 지난 여름에 했던 사회과학 방법론 기초에서도 이 책을 중요하게 거론했었다.

그러나 번역본이 없어서, 어지간히 찾아서 읽지 않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 읽지 않는 책.

내용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네오 스토이시즘과 스코트랜드의 독특한 철학 전통을 모르고는 경제사상사는 하기가 어렵다.

경제사상사를 출발하기 위해서 반드시 읽는 책...

드디어 번역이 되었다.

조금 더 올라가면 에라스무스, 조금 내려가면 마키아벨리와 함께, 경제사상사에서 반드시 읽어야 하는 만베딜의 <꿀벌의 우화>...

내용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이 책만큼 한 시대를 풍미했던 책이 인류 역사에 몇 번이나 있었을까 싶은. 우리는 만데빌이 만들어낸 세상에서 여전히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해본다.  

보통은 <국부론>을 쓴 아담 스미스의 스승격이라고 분석한다.

만약 이 책을 보고 진짜 공부를 더 하고 싶다면, 그 다음에는 다시 한 대를 건너 띄어서 장-밥티스트 세이의 원전들을 읽으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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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혼자 있다가 심심하면 방문 앞에서 울다가, 얼마 전부터 방문을 북북 긁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이 나가서 놀아줘야 한다.

진짜 아무 생각없이 책이나 읽을까 하고 책꽂이를 살피다가 어떻게 거기 꽂혀 있는지 영문을 모르는 만화책 한 권을 발견했다.

<한 남자의 그림자>. 스퀸텐 & 페테르스의 '어둠의 도시들'이라는 연작 만화의 한 권인데, 너무 재밌어서 잡은 김에 한숨에 읽어내려갔다.

악몽 그리고 이어지는 그림자의 변화, 그리고 다시 그림자가 되돌아왔을 때의 당혹스러움.

이어지는 일상으로의 복귀.

보험회사 직원을 모티브로 하는 얘기들은, 그 스스로가 보험회사 직원이었던 카프카의 얘기들에게 <마스터 키튼>의 얘기들까지.

만화책 형식인데, 책을 덮고나서 왜 사람들은 보험회사 직원을 모티브로 할까, 잠시 생각해봤다.

일단 큰 돈이 걸려있고, 약간의 글자나 사인 한 장으로 많은 것들이 변하게 되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계산, 믿음, 선입관, 편견, 이런 것들이 종합적으로 개입하는 아주 인간적인 상황들이 종종 연출되고.

보험가입자와 보험직원과의 관계, 그리고 돌아서면 보험직원과 회사와의 관계, 역시 그도 한 사람의 인간이므로 그가 가지고 있는 일상적인 모습들, 최소한 이 세 가지의 레이어가 중층적으로 작동하는 상황을 모티브로 할 수 있다. 

만화는 짧지만, 직장 생활을 하는 누구에게나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아울러 시대 아니 최소한 건물이라는 익숙한 공간을 뒤틀면서 그야말로 '존재적 상황' 속에서 답변을 하도록 요구한다. 

어느 가을의 특징 없는 가을, 간만에 "내가 살아간다는 것은?', 이런 질문 앞에 서 보았다.

만화책을 읽어내리는 내내, 고양은 마루의 전기장판 위에서 흡족한 듯이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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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감독의 새 영화가 온다. 딱 작년 요맘 때 류승완 감독 부부를 보았던 기억이다.

여러가지로 사무실 운영하기가 어려웠던 모양이고, 사람들을 내보내야 할 정도로 힘들다고 했던 얘기들이 기억난다. 그 때는 모토로라에서 <타임리스>라는 약간 특수한 홍보성 영화를 막 찍어서 공개할 때였는데, 그 때 받은 영화 홍보용 티셔츠는 1년 동안 잘 입었다.

황정민-류승범이 나온 영화로는 <사생결단>을 아주 재밌게 보았고, 아마 지난 주에도 한 번 보았던 것 같은데.

류승완의 전작인 <짝패>는 오랫동안 책에서 텍스트로 썼었고, 볼 때마다 새로운 맛이 나는 영화였던 것 같다.

이제 곧 개봉인가 보다. 한참 제작 중이라던 황산벌 2에 해당하는 <평양성>도 아마 슬슬 개봉할 때가 된 것 같은데.

자. 다시 한국 영화의 계절의 돌아오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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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지랄 맞은 사랑"...

이 대사는 주진모가 나왔던 <사랑>이라는 영화에서 들었던 대사이다. 영화는 허방한 영화였지만, 주진모가 그래도 연기를 좀 했던 게 기억에 남고, 왜 이렇게 만나고 또 만나지,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다. 주진모는 <무사> 때 너무 황망해서, 잘 안 보게 된다만. <사랑>은 간만에 봐서 그런지, 볼만 했다.

영화 <화피>는 요괴 얘기이다. 음... 요괴에 관한 책도 한 권 냈을 정도로, 요괴 얘기는 또 내가 빼놓지 않고 보는 영화 중의 하나이다. 아내는 요괴 등 귀신 나오는 영화는 절대 안 본다. 연애할 때, <디 아이 2>를 보러 같이 극장에 갔다가, 와... 맞아 죽는 줄 알았다 (당시에는 아직 아내가 태권도 3단이었고, 사범증도 없던 시절이었다만...)

요런 중국판 요괴 영화 중에서는 <디 아이>가 아직도 기억에 남고, <천녀유혼 3>을 파리에서 봤던 기억이다. 샹젤리제 고몽에서 봤던 것 같은데, 수 년째 한국에 못 가봐서 홈식이라고 불리는 노스탈지아가 생겨나는데 한 몫 단단히 했던 기억이다.

조미는 <소림 축구>에서 처음 봤을 때 기억이 난다. <삼국지> 등 조미 나오는 영화도 꽤 본 것 같은데, 역시 삭발하고 골키퍼로 나와서 상대방 골대에 머리 박을 때가 가장 충격적이었던.


견자단은 <엽문>에서 상당히 차가우면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오래된 중국식 귀족의 느낌이 잘 잊혀지지 않는 것 같다.

영화 <화피>는 진짜 사랑이야기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장미희가 주연을 맡았던 <구미호>를 21세기로 가지고 와 화려하게 채색한 느낌이다. 비장비로는 묘하게 세익스피어의 <햄릿> 느낌도 나고.

중국 요괴 영화에서 세익스피어의 느낌이 들었다면 황당하기는 하다. 대학 시절 <로보캅>을 보고, 저건 햄릿이다, 그랬던 기억이 난다. 마침 영문과 동기들하고 같이 영화를 보러 갔는데, 그걸 이제 알았냐고 좀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실제 <로보캅>의 주인공 등 주요 배우들이 햄릿 주연하던 배우들 출신이고, 전체적으로 햄릿풍으로 미장센을 했다는 얘기를 그 때 들었었다...

아, 꽤 비싼 돈을 주고 대학시절 햄릿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 햄릿이 유인촌이었다. 우리나라 햄릿은 왜 이렇게 망가지나.

서양에서 괴물 특히 좀비 얘기는 언제나 사회적인 얘기이다. 로메로 이후로 그 시대라는 콘텍스트를 담으려고 하는 것들이 <28일 후>에서 <레지던트 이블>까지 이어져오던 좀비 영화의 전통이다만.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고, 요괴 얘기에서, 특히 영화에서는 사회는 빠지고 그 대신 사랑이 맨 앞으로 나온다.

요괴 얘기 중에서 시대를 집어넣으려고 하는 것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한참 시절의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들 정도라고나 할까? <토이 스토리 3>에 토투로가 까메오로 나온다고 한다. 토투루에서 원령공주의 사슴신 아니면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의 너구리들까지, 사회성 잔뜩 머금은 캐릭들이다만... 영화로 넘어오면 사랑만이 모티브로 남고, 시대는 사라진다.

<화피>의 경우도 그런 끔찍한 사랑의 전통에서 한 발도 나가지 않은 영화다만... 나야 워낙 요괴 얘기 좋아하니까.

여섯 명의 물고 물리는 사랑, 그리고 희생에 의한 부활까지. 동양의 요괴 영화에 부활은 잘 나오지 않는데, 여기에는 부활의 모티브와 함께, 서로 사랑하라, 그리면 너희가 부활하리라, 요런 요괴 버전 부활이라고 할까?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다음에, 주성치를 제외하면 이제 예전의 홍콩풍 영화들에서도 시대를 빼는 게 흐름이다. 정치의 과도한 예술에 대한 개입이라고 할까?

물론 중국 공산당의 지도 하에서도 사회는 가끔 들어가는데, 좀 너무 들어가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 진시황의 통일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다룬 <영웅>은 가끔 그래서 격론이 되기도 한다.

북경 올림픽을 즈음하여 나온 대형 중국 사극들은, 그래서 공산당과 영화 제작사라는 눈으로 좀 밖으로 앵글을 빼서 보면 묘한 긴장감이 있기도 하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는 날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 <무간도>는 아예 외국 개봉용 그리고 중국 개봉용으로 전혀 다른 엔딩이 있다. DVD 버전에는 세 가지나 된다. (안성기가 출연했던 <묵공>은 안성기의 중국어를 더빙한 극장 개봉용과 안성기의 중국을 그냥 그대로 둔 한국 개봉용 DVD 버전이 각기 달랐던 적이 있다.)

"이제 다 봤는데, 어쩌겠어..."

요런 요괴의 대사 한 마디가 영화가 끝나고도 잘 잊혀지지 않는다. 컴의 do와 undo, 사랑 얘기가 아니라 요게 모티브라고 생각하고 영화를 다시 보면 또 다른 재미가 있을 것 같다. 어쩌면 undo, 그게 사랑과 같은 성격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미 사랑을 하게 되었는데, 그걸 어떻게 되돌려? 마치 운영체계의 복원 명령과 비슷한 구조인 것 같기도. 복원해도, 사라지지 않는 것.

한 편은, 사랑하기 전으로 undo를 하고 싶고, 또 한 편은 헤어지기를 바라는 그 마음의 전으로 undo를 하고 싶고.

사랑은 어쩌면 수없이 많은 되돌리기의 연속과도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좋았던 시절, 아름답던 시절, 그리고 증오가 생기기 이전의 시절, 그렇게 끊임없이 undo 명령을 내리고자 하지만, 정작 상대방은 자신을 만나기 전의 시절로 undo? 이러면 스토리는 공포 특집으로 변해간다. 로버트 드니로가 광적 팬으로 나왔던 <더 팬>... 내 삶도 뒤로 되돌려줘...

사랑에 빠지는 순간, 한 편으로는 낙원과 같은 몽상의 세계가 열리면서 동시에 지옥문 한 편이 열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화피>의 요괴는, 아마 여우로 설정된 것 같은데, 천 년의 세월을 '사랑'이라는 것에 걸어버린다.

그리고 여우가 강아지로 되돌아가나? 강아지의 눈빛이 그야말로 천 년의 억겁과 같은 것. 눈물이 다 찔끔 날 뻔했다.

아주 간만에, 악인은 한 명도 나오지 않는 영화였다. 물론 무수한 살인이 있고, 많은 사람이 죽어가지만, 영화에서 악인은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 아니 한 마리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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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건호의 책을 처음 받아들었을 때, 내용에는 흠 잡을 데가 없었지만 지나치게 보고서 느낌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아쉬움이 전혀 없는 책은 아니다. 익숙한 정책 보고서 양식을 벗어나서 얘기를 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풍성함을 더 많이 살렸으면 어떨까, 초고를 덮고 나서 머리에 남는 아쉬움은 그런 것이었다. 이 문제는, 아마 저자로서의 오건호가 앞으로 고민할 문제일 것 같다.

누군가 나한테 뭔가 부탁할 때, 특별히 토달지 않고 기꺼이 도와주는 사람이 별로 없다. 생각보다는 나도 까다로운 편인데, 내가 전적으로 신뢰하는 아주 드문 사람 중의 한 명이 오건호이다.

사실 오건호에게는 마음의 빚이 있다. 지난 대선 때, 당시 민주노동당의 공약집을 총괄할 수도 있는 그런 위치에 내가 서 있었는데,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안 되었다. 당내의 아주 오묘한 정파사이의 갈등도 일일이 조정하기에는 좀 복잡했고,

결국 정책을 총괄하는 일은 포기했는데, 다른 사람에게는 미안함이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뭔가 한 번 해보자고 마음을 맞췄던 오건호 박사에게는 아직도 갚지 못한 빚이 남아있는 것처럼, 마음 속으로부터 미안함이 남아있는 게 사실이다.

책의 해제에는 지나치게 선정적인 것 같아 내용을 집어넣지는 않았지만, 지난 정권 후반기에서 진짜 유시민 저격수는 오건호였다.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유시민은, 솔직히 좀 너무하다 싶었다.

크게 보면 두 가지 흐름이 있었는데, 첫째는 송기호와 박상표 그리고 내가 추진하던 식품안전기본법에 대한 기존의 논의 과정이다. 송기호는 <곱창을 위한 변론> 등 광우병 때 맹활약했던 농업 분야의 통상을 전문하던 변호사, 역시 광우병 사태로 아주 유명해졌던 수의사 박상표 역시 식품 위생 문제로 같이 연구를 하던 동료였다. 나는 여기에 생태라는 관점을 집어넣는 일을 했었고, 시민단체에서 그렇게 꽤 오랫동안 식품안전기본법의 기본 방향에 대한 논이를 생각보다는 오래 했다. 유시민이 장관이 되면서 이런 논의가 다 뒤집어지고, 원래의 취지와는 상관없는 삼천포로 갔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유시민을 정책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것은 그 때의 기억 때문이다. 그는 그런 일보다는 '새만금에 골프장 100개', 요런 일들에 더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그리고 또 다른 흐름이, 여전히 폭탄처럼 잠재하고 있는 국민연금 등 연기금에 대한 유시민식 개혁이었다. 와... 이게 계산 과정이나 시뮬레이션이 엄청나게 복잡했는데, 나는 원래 내가 하던 분석이 아니라서 이걸 손을 대야하나 말아야 하나,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 때 혜성처럼 등장한 사람이 바로 오건호 박사였다. 솔직히, 이렇게 성실하고 꼼꼼한 사람이 다 있나, 그런 생각을 했었다.

당시의 유시민 개혁안이 가지고 있던 문제점과 왜 근본적으로 이게 반동에 가까운 개혁안인가, 그리고 그가 열려고 있던 연기금 운용방안, 그 문제점을 실제로 현장에서 분석했던 것은 오건호였다. 외부에는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학자들끼리, 혹은 정책담당자들끼리, 오건호는 유시민 저격수로 불렸다.

그런 오건호가 지난 몇 년 동안 당시의 공공연금 개혁안에서 더 진도를 나갔다. 그의 연구소 활동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그가 새롭게 손을 맞춘 동료들과 꽤 많은 분석을 한 셈이다.

하여간 이게 책으로 나올까 싶었던 게 출간과정을 지켜보던 사람의 첫 번째 질문이었고, 과연 이걸 사람들이 읽을까, 그게 두 번째 질문이었다.

이건 일종의 파일롯 플랜트랑 비슷하다. 오건호 정도 되는 사람의 정책 보고서 정도의 내용을 가진 책이 어느 정도 한국 출판계에서 수용이 된다면, 이런 유사한 급의 연구결과들이 줄줄줄 출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실패하면, 이런 종류의 책들은 정부 출간기금의 지원을 받기 전에는 출간되기 어렵다. 명박 시대, 정부에서 하는 일들에 대해서 "이건 좀 아니다"라는 결론과 의도를 가진 책들이 출판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크게 돈이 되지 않더라도 이건 의미있는 일이라서 내가 좀 돕겠다, 그런 독지가가 한국에는 지독하게 없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하여, 오건호의 새 책은 무조건 팔려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을 가지고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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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시사회에 초대를 받았는데, 내가 은근 가리는 게 많아서, 그냥 극장에서 보겠다고 하고 안 갔었다.

나는 영화 쪽 인물은 아니라서, 극장에서 표 사서 보는 걸 좋아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건 DVD를 사서 보고 또 보고 하는 식으로 보는 걸 좋아한다. 말은 그렇게 했는데, 나도 정신없이 지내다보니, 정말 아주 뒤늦게 DVD를 사서 보게 되었다.

영화는, 복잡 미묘했다. 한 번 봐서는 잘 모르겠다.

영화 처음 봤을 때 느낌과, 나중에 수 십번 보고 나서 느낌이 확 바뀐 대표적인 영화가 <황산벌>이다. 처음 극장에서 봤을 때는... 솔직히 그저 그랬다. 수많은 민족주의 계열 영화 중에 하나가 아닌가 싶었는데, 나중에 찬찬히 여러 번 보고 나니, 요즘은 1주일에 한 번씩 보는 영화가 되었다.

매주 한 번씩은 보는 영화가 요즘은 <황산벌> 그리고 <착하게 살자>, 볼 때마다 느낌이 다르고, 의도해서 연출된 것인지 아니면 우연히 생긴 것인지, 하여간 매번 새롭게 배우는 게 있는 영화들이다.

요즘 기다리는 영화는, 황산벌 2에 해당하는 <평양성>이라는 영화이다. 작년에 한참 찍는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은데, 그 뒤로는 아직 소식을 들은 게 없다.

<즐거운 인생>도 재밌기는 하는데, 열 번쯤 보고 나니까 좀 물렸다.

나는, 영화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까, 백번쯤 영화를 보는 방식을 택했다. 보고 또 보고, 그리고 또 보면 영화에 대해서 조금은 더 알게 된다. 어차피 나는 영화평 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냥 즐기는 사람이니까, 재밌는 영화를 아주 많이 보고 또 그렇게 해서 왜 이 영화가 재밌게 되었나, 그런 것들을 아주 조금씩 분석하는 편이다.

그렇게 보고 또 보는 영화 중에, 대표적인 게 <달마야 놀자> 같은 영화들이다.

원래 한국 영화를 이렇게 많이 보지는 않았다만. 남들 보다 조금 더 많이 보는 정도였는데...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 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스크린 쿼터제를 해체하는 게 어떤 결과를 나을지, 내 나름대로 가설을 좀 세워봤었다.

그게 정말로 맞는지, 아닌지, 오랫동안 지켜보는 수밖에 없는데, 그러다보니 한국 영화를 아주 많이 보게 되었다.

이런 몇 개의 영화들의 공통점은, 타이거 픽처스의 대표인 조철현과 관계가 있다는 점이다.

영화 감독들이 스타가 되고 제작사나 기획사 아니면 배급사가 된 사례는 많은데.

조철현은 시나리오 작가가 직접 기획자가 된 대표적인 경우이다. 그렇게 자주 등장하는 사례는 아니다.

곰곰 생각해보면, 조철현과 나는 싱크로율 100%는 아닌 것 같지만, 90%는 되는 것 같다.

나머지 10%의 차이점은... 몇 가지 가설들이 있는데,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는, 시간 나면 좀 천천히 생각해보려고 하는 중이다.

당장 어떻게 할 것은 아니지만, 나도 현업에서 손을 떼고 좀 한가해지면 조철현이 시나리오를 썼던 영화들이나 아니면 그가 기획했던 영화들을 분석하는 그런 책을 한 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몇 달 전부터 생겼다.

우리가 영화를 볼 때 배우들에 눈을 맞추기도 하고, 감독에 눈을 맞추기도 한다. 전통적인 방식이다.

그러나 시나리오 작가나 아니면 기획자에 눈을 맞추면 또 감독 중심으로 영화를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문이 하나 열릴 것 같기는 하다.

아직은 얼기설키, 몇 가지의 가설들 체계이지만, 내가 아주 재밌게 보고 또 보는 영화 중에서 조철현의 숨결이 묻은 영화들이 적지 않다.

조철현, 이준기 그리고 류승완 영화의 특징이, 여배우들을 아주 못 쓴다는 점이다. 이 사람들 영화에서 여배우가 중요한 모티브가 되면 아주 망하는 것 같다. 여성이란! 꼭 마초가 아니더라도 남성들의 세계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빅 어드벤처인 것 같다.

아마 영화로 본다면, <카모메 식당>과 정반대에 있는 사람들. 아니면 <스윙걸스>와 정반대.

<카모메 식당>에 나오는 여성들은 정말로 살아 숨쉬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준기나 류승완의 영화에 나오는 여성들은, 나무처럼 딱딱해지고 생동감이 사라진, 진짜 박제 같은 존재들로 변해버린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하여간 생동감과는 좀 거리가 먼 존재처럼 나타난다.

많은 남성들에게, 여성은 여전히 빅 어드벤처인 것인가?

아무리 아니라고 하더라도, 80년대는 마초의 시대였던 것 같다. 그런 시대의 흔적 같은 것들을 혹은 그들이 가졌던 로망스와 불만, 그런 것들을 영화 속에서 찾아내는 것은 작지 않은 재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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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정의 새 책을 읽었다. 일단 책은 읽기에 편하다.

노안이 꽤 심해지면서 점점 책을 읽기가 어려워졌고, 그러다보니 책에다 줄을 그어가며서 읽는 습관이 새로 생겼는데... 이 책은 펜을 준비하고 정색을 읽지 않아도 되는, 간만에 편한 책이다.

(그러나 출판사에서 해제를 써 달라고 같이 보내준 원고는, 골 아플 생각을 하니까 차마 손이 가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이 따로 있는데, 같이 온 목수정 책을 먼저 집었다. 집자 마자 읽어내려갔고, 다음 커피가 마시고 싶어지기 전에 책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저자로서의 목수정에 대해서, 나는 문화복지와 문화행정과 같은, 그가 전공이었던 그런 분야에 대해서 분석하는 그런 사회과학풍의 책을 더 많이 써주기를 바랬지만.

일단은 에세이부터 먼저 시작하기로 했나보다. 그런 선택을 한 것 같다.

책은 최근 한국에서 진행된 연애에 대한 담론 실종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학자들이 이런 문제에 들어갈 때 일단 통계부터 현황을 살펴보고, 관련 논문들이나 저작에 나오는 얘기들을 죽 풀어놓고, 그리고 끝날 때쯤 되어서 자신의 생각을 아주 약간 보여주는 것과 달리...

목수정의 책은 솔직하다. 그러니까 한 사람이 지금 한국의 연애 현상에 대해서 총체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런 총체성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작년에 이대 대학원에서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자본주의와 여성, 그런 주제를 가지고 수업을 진행했는데, 공동수업이었던 이유인지, 아니면 뭔가 삼투압 현상을 일으키는데 실패한 것인지, 생각만큼 그렇게 성공한 수업은 아닌 것 같다만. 나는 개인적으로 꽤 많은 것들을 배웠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의 여성들이 삶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 그 속에서 불안감 그런 것들과 함께 그 또래 여성들의 연애와 결혼에 대한 실증적인 자료들을 접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아무래도 남성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그들이 상상하면서 생각해보는 그런 세상, 그런 것은 없다. 그 솔직함을 목수정이라는, 매우 세밀하면서도 민감한 센서를 따라서, 혹은 잔잔하면서도 순간 폭발의 문체를 가지고 있는 가이드를 따라서.

내가 이해하고 있는 1~2년 사이의 한국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에 걸친 여성들의 생각의 한 부분과 목수정이 묘사해준 한국의 모습은, 상당 부분이 일치하는 것 같다.

목수정한테 새롭게 배운 것 중 하나가, '헌팅'이라고 하는, 아마 불어로는 draguer라는 속어로 표현하는 것 같은, 그런 행위가 한국에서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뭐, 아주 없어진 것 같지는 않다. 길거리에서 "아가씨 차나 한 잔 합시다, 장미 빛깔 그 입술", 그런 흔하게 볼 수 있는 일들이, 이제는 웨이터를 매개로 한 나이트 클럽으로 전환되거나. 아니면 홍대 앞에서 예술을 매개로 한 상업 공간으로 숨어들어갔거나.

비슷한 얘기를 나도 몇 번 한 적이 있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연애편지를 가슴 절이며 쓰는 대학생을, 연구를 위해서 수소문을 해봤는데 결국 못 찾은 적이 있었다.

신자유주의의 광풍과 함께 토건이 한국을 휩쓸면서 경제 근본주의가 클라이막스로 갔다.

길거리에서 모르는 여성한테 말을 거는 것, 절절하게 연애편지를 쓰는 것, 이런 것들은 사라졌다. 그 빈 공간을 이벤트가 채웠고, 럭셔리 선물이 채운다. 물론 감성은 상업성으로 치환되었고, 사랑은 경제성이라는 저울에 놓고 잴 수 있는 것과 동치되어 버린 것 같다.

성경에 나왔던가,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아마 예수가 "너희는 서로 거래하라", 그렇게 하지 않은 것 같기는 하다.

목수정의 책을 읽으며, 간만에 나도 연애와 연애 실종, 그런 것들에 대해서 좀 생각을 해볼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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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뱅이의 역습>의 저자인 마스모토 하지메가 입국을 거부당했다.

그 책의 한국어판 해제를 내가 달았다. 작년에 아마미아 카린과 함께 메이데이 행사 때 한국에 왔을 때 그 때 만난 적이 있다.

다큐는 한국에서 본 사람이 꽤 되는 것 같은데, 책은 생각만큼 잘 팔리지는 않았던 걸로 알고 있다.

마스모토 하지메는, 어쨌든 일본에서 정권 바꾸는데 상당한 기여를 해서,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여당 쪽 인사라고 할 수도 있다.

뭐 그렇게 과격한 편은 아니고, 청년들의 천진과 발랄 그리고 분노 같은 것을 잘 대변하는 사람이다만.

블랙 리스트에 올라 있어 입국 거부당한 것 같다만. 이게 무슨 해괴한 일인지 모르겠다.

진짜? 이게 정부야?

그를 초청했던 하자센타의 원래 이름은 남부지역 청소년 교육원인데, 지금은 서울시에서 위탁받은 프로그램들을 주로 운영하고, 대안학교도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명박 정부 들어와서 사회적 기업을 노동부에서 위탁받아 일종의 인큐베이팅을 하는, 반은 정부기관 같은 데다.

얼마 전에 대통령도 여기 가서 "나 잘하고 있어요", 사진 엄청 찍고 온 곳인데.

사실상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정부 기관에서 초청한 것으로 보는 게 맞는데, 블랙 리스트가 있었다니...

일단은 외교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 눈으로 보면 운동권이지만, 일본 민주당으로 보면 집권당 인사라고 볼 수도 있다.

내부적으로는...

해외 인사도 블랙 리스트로 관리를 했으니, 국민들 관리야 얼마나 살뜰하게 잘 하셨겠나, 그런 논리적 귀결이 가능한 해괴한 일이다.

반 정부 해외인사까지 블랙 리스트로 관리하고 있다는 걸 만천하에 보여준 셈이니, 끌끌... 얘들 하는 짓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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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에서 허슈만의 새 책이 나온다. 음, 새 책은 아니고, 1991년 책인데, 출간된지 딱 20년만에 나오는 셈이다.

허슈만의 책 중에서 국내에서 번역된 건 'The Passions and the Interests'라는 책이 있는데, 이건 박사과정 세미나마다 매번 내가 학생들에게 읽히는 책인데. 절판되었다.

유명한 책은, Exit, Voice and Loyalty라는 1970년 책이다.

허슈만은 좌파라고 하기에는 좀 어색하고, 70년대 분류법으로 정치경제학으로 하기에도 좀 아닌데, 하여간 비주류 중의 비주류 같은 사람이고, 그런 관계로 노벨경제학상을 못 탔다.

보통 이런 사람들은 정부 움직이는 데와는 거리가 먼 곳에서 움직이는데, 허슈만은 미국 정부의 경제자문 역할도 오래 했었고, 중남미 국가에서 실제 경제 자문관 역할도 꽤 한 사람이다.

폴 사무엘슨의 신고전학파 경제학에 속하지 않고, 그렇다고 정치경제학의 계보에도 기계적으로 들어가지 않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재건 과정에서 맹활약한 사람이, 프랑스의 Bernard Rosier 그리고 미국에서 활동했던 독일인인 Albert Hirschman, 이 두 사람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Bernard Rosier의 제자 중 철학 쪽을 맞겼던 Andre Nicolai한테 공부를 하고, 생물학 쪽을 맞겼던 Rene Passet의 제자들이 새로 시작한 생태경제학 흐름에서 학위 공부를 했다.

(마지막 지도교수는 Michel Rosier였는데, Bernard Roseir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었다만... 차마 개인 신상에 관한 것이라서 물어보지는 못했다. 나는, 그렇지는 않다고 알고 있다만.)

어쨌든 이 베르나르 로지에 쪽의 학풍에서,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허슈만은 신이었다.

대학원의 꽤 많은 과목에서 허슈만의 책을 읽도록 했는데, 처음 그의 책을 읽었을 때, 나는 정말이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하고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만난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신, 어쩌면 그를 묘사하기에 적합한 단어인지도 모르겠다.

유일신 세계에서는 신이라고 하면 엄청나게 대단한 권능을 상상하지만, 희랍식 다신교의 체계이거나 아니면 켈트족처럼 별의별 정령과 님프가 난무하는 세계에서, 가끔 가다가 그렇게 큰 권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찌부러진 신들도 종종 있다만.

한국에도 허슈만의 생각은 초기 경제개발 시기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걸로 알고 있는데, 그의 이름은 잘 거론하지는 않는다.

'저개발 국가의 불균형 발전 전략', 이게 바로 허슈만이 45년도 이후 여러가지 UN 경제기구에 영향을 주었던 바로 그 개념이다.

91년 허슈만 책의 한국판에 해제를 맡게 되면서, 좀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하면 한 때 세상을 움직였고, 여전히 매력적인 이 경제학자를 한국의 독자들에게 소개할 것인가...

출판사에서는 제목부터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반동의 수사학>이라는, 직역 제목을 일단 달았는데...

Rhetoric of reaction에 어떤 번역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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