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늘고 길게

 

2012년 크리스마스, 일본 문화원에 갔다. 100일 조금 넘은 아기와의 첫 외출이었다. 아내의 오래된 일본 친구와의 짧은 만남을 가졌다. 수 년 전 동경에서 처음 만났을 때 식사를 얻어먹은 적이 있었다. 몇 년 후, 다시 한국에 왔다. 하다 보니 우리 집에도 초대를 하고, 그렇게 지내다 보니 그의 아내가 아기 크리스마스 선물을 샀단다. 우리도 조그만 초콜렛 하나를 사서, 일본 문화원 주차장에서 선물을 교환하는. 문득 돌아서면서, 그도 이제는 참 나이를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에 처음 봤을 때, , 이런 게 정말 일본의 엘리트구나, 그런 날카로우면서도 예리한, 그런 젊음이 느껴졌었다.

 

그가 문재인의 광화문 유세에 섰다는 얘기를 또 다른 일본인 친구에게 건네 들었다는 얘기를 했다. 내가 아는 한국의 외국인 친구들에게는, 정치는 별로 관심 없어 하던 내가 유세차에 거듭 올라갔다는 것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아사이 신문의 문재인 광화문 유세에 바로 옆에 서 있던 내 얼굴이 같이 잡혀서, 이래저래, 아니라고 발뺌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돌아서면서, 아내도 이젠 그가 나이를 먹었다고 얘기를 하였다. 아내가 자기도 나이를 먹었다는 애기를, 오늘 처음 했다. 이제 결혼 생활 9년째, 올해는 아이가 생겼고, 나도 올해는 부쩍 나이를 먹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선, 잠 짧은 시간이지만, 오랜만에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결과는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지만, 어쨌든 나는 내가 할 수 있던 것보다는 더 했던 것 같다. 몇 십년 만에 목이 완전히 쉬었고, 정말로 목이 쉴 정도로 외쳤다.

 

어떻게 보면, 짧은 몇 주 동안이지만, ‘굵고 짧게’, 정말 내 삶과는 다른 방식으로 뜨거운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20대 때에는 정말로 나는 굵고 짧게를 외치면서 살았다. 뭐가 최선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최선을 다하려고 했고, 굵은 것의 노선을 살았다.

 

30대는 내내 헤매던 시기였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가늘고 길게를 좌우명으로 바꾸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조건 하지 않았다. 하는 만큼 하고, 안되면 거기에서 멈추었다. 조금만 더 하면 더 좋은 결과가 있는 게 눈에 뻔히 보일 때, 나는 거기에서 멈추어 섰다. 복잡한 이유가 있지만, 어쨌든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내 모습, 그리고 나는 지금 최선을 다 하는 중이야”, 그게 너무 싫었다. 살살 살고, 살살 나오는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먹으면서솔직히 내 삶은 좀 더 풍요로워졌다. 더 천천히 살고, 결과 보다는 과정을 조금씩 더 즐기게 되었다.

 

그렇다고 가늘게 산다는 게 막 산다는 건 아니다. 그리고 길게 산다고 해서, 배신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 전향을 하거나 누구에게 의탁하는 것과는 좀 다른 방식의 삶이다. 속도를 조금 늦추고, 성과를 조금 덜 기대하고, 한 방에 뭔가 하는, 그런 일을 절대로 기대하지 않는.

 

가늘고 길게, 이 삶의 핵심은 시니컬해지면서,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 않는 데에 있는 듯 싶다. 난 이미 다 알았어, 그래서 내가 그렇게 살살한 거 아냐, 그건 가는 것도, 긴 것도 아니고, 그냥 비겁한 것이다. 비겁한 것은, 굵은 거나 가는 것과는 달리, 거꾸로 사는 삶이다. 신념을 바꾸면, 그것도 정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신념이 바뀔까? 그건 바뀌지 않을 것 같다.

 

내가 궁극으로 이루고 싶은 삶은, 아무도 원망하지 않는 삶이다. 가늘고 살고, 길게 살기 위해서 산다고 하더라도,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지나간 일이 아픔을 끊임없이 되새김질 하면서, 자신을 어렵게 하거나, 아니면 남을 어렵게 하는 삶.

 

자신에게 있을지도 모르는 귀책 사유를 늘 누구인가 다른 사람에게 돌리면서 사는 삶은, 그건 비겁한 삶이다. 잠시 자신의 마음은 편하겠지만, 자신을 자신이 속일 수 있겠는가?

 

대선이 끝나고 나서, 누군가에게 이정희랑 식사 한 번 같이 하자는 얘기를 들었다. 그도 자신의 속사정이 있을 터, 그거라도 좀 들어보고, 위로해줄 수 있는 건 해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었다. 잠시 생각해보고, 이정희와 식사를 하게 되면, 그 밥값은 내가 내겠다고 했다. 이정희도 사람이다. 그도 박근혜 앞에서 그렇게 버티기 위해서, 자신을 얼마나 다그쳤겠는가? 그 아픔 정도는 같이 나눌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누구나 아프고, 누구나 무섭다. 삶이란 것은 원래 그렇다. 전쟁은 끝나고, 전투도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싸움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아픔, 누구의 아픔이든, 깃발 아래에서 인간으로 만나면 나눌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정희의 아픔도, 인간으로서는 그가 느꼈을 공포와 슬픔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굵고 짧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뒤를 돌아볼 필요 없이 앞으로 나가면 된다. 그러나 가늘고 길게’, 그 삶에는 돌아봄과 연민 그리고 공감 같은 게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그냥 비겁한 것이거나 지저분한 삶이 되고 만다.

 

경제학자로서, 지금까지 사람들의 경제적 삶과 주머니 사정만을 돌아보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좀 돌아보면서 살려고 한다.

 

정권 교체가 다가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다. 정권 교체가 다다. 그 방법 외에는 한국을 더 좋은 사회로 만들 방법은 없다. 그러나 세상에는 사회적 삶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아픈 사람들을 서로 돌아보면서 위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법률 스님이 정권교체 안되었다고 나라 망하는 거 아니라고 하였다. 좋아하는 분이기는 하지만, 그건 좀 아닌 듯 싶다. 나라 망하는 거 맞다. 다만 민주당 때문에 정권 교체에 실패한 것이냐, 그건 좀 아니라고 생각한다. 법륜 스님의 얘기는, 결국 민주당 작게는 민주당 지도부가 잘못한 것이니까, 그들이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 뭐 그런 얘기로 이해된다.

 

우리는 망한다, 지금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그러나 그걸 급히 서두른다고 될 것은 아닐 듯싶다. 민주당이 바뀌어야 한다는 말은 맞지만, 사실 그건 아무 것도 안 한 얘기와 같다. 바꿀 수가 없다!

 

이 딜레마 위에 우리는 서 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을 생각해보자. 결국 시민이 이기지 않았는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가늘고 길게, 그렇게 생각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런 걸 천천히 생각해보는 크리스마스였다.

 

예산을 줄이지 않고 국채로 공약, 그것도 아주 일부분을 집행하겠다는 정권, 그건 망하는 길이다. 그러나 그 말을 외연화하기가 참 어렵다. 지금 우리에게 정말로 절실한 것은, 믿고 의지할 지도부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민주당이 그 지도부가 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가늘고 길게, 버티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머리는 없고, 몸만 있는 이 슬픈 상황, 그게 대선 직후의 우리의 지형도이다. , 어렵다.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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