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이후, 내가 결심한 것

 

문재인의 마지막 유세, 서울역에서 부산역까지, 나는 바람잡이로 따라 나섰다. 먼저 도착해서 떠들다가, 후보 등장하면 ktx 타고 다음 역으로 가는 그런 살벌한 일정이었다. 천안역에 택시로 도착할 때는, 정말 죽도록 뛰어서 출발 5초 전에 기차를 탔다. 어쨌든 그런 우여곡절 끝에 부산역에 도착했다. 정말 추웠다. 후보 연설 바로 뒤에서 짧게 발언할 기회가 생겼고, 이번 대선 캠페인의 마지막 연설을 할 영광을 가지게 되었다. 어떤 의미로든,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 선거법이 허용하는 마지막 유세, 애국가까지 같이 부르고 유세차를 내려왔다.

 

원래의 계획은, 이기든 지든, 일본으로 떠나는 거였다. 일본에 아주 가까운 친척이 산다. 100일 막 넘은 아기를 두고 떠나는 게 눈에 밟히지만, 어쨌든 몸만 가면 몇 달 버틸 수는 있다. 출판사에 여행기 같은 걸 쓰는 걸로 해서 후원을 받는 것에 대한 얘기도 있었는데, 어쩐지 좀 꼬질꼬질해 보여서.

 

졌다는 게 거의 확실해진 밤, 정말로 많은 사람들과 통화를 했다. 거짓말 조금 더 보태면, 100통화 정도는 한 것 같다. 칩거한다는 사람도 있고, 외국에 간다는 사람도 있고, 일단 몸부터 피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다들 충분히 이해가 되는 상황이다. 그럼 난 어떻게 하지?

 

그 밤에 내가 결심한 것은 딱 두 가지이다.

 

1. 일본에 가지 않는다. 아무 데도 가지 않는다.

2. 사람들과 꼬질꼬질함을 나눈다. 방법은 모른다.

 

마흔 여섯살, 나의 50대에 영광은 없고, 즐거움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냥 꼬질꼬질한 이 삶을 사람들과 같이 버티기로 했다. 그게 내가 이 사회에 내놓을 수 있는 거의 전부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때 내 머리를 스치고 간 생각은 간단하다. 지금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라는 것. 그리고 그걸 피하면, 나중에 내가 내 인생을 돌아보면서 괴로워하게 될 것이라는 점.

 

대선 이후의 민주당의 분열과 아주 복잡한 양상, 뭐 그런 거야 눈에 뻔하도록 보이고,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라는 점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살면서, 바보 같은 선택도 내리게 마련이다. 그리고 난 별로, 현명한 방식으로 살아온 사람은 아니다.

 

시민의 정부, 그런 게 한국에 한 번은 있어야 한다는 게 나의 신념이었다. 그리고 문재인은 정말로 그런 시민의 정부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그를 지지한 것이다. 마음 편하게 생각하면, 한없이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

 

이번에 졌다. 뭐라고 말해도 진 거다. 그렇지만 이건 시민의 정부 출범이 5년 늦어진 것에 불과하다. 솔직히, 한국의 시민 사회는 아직 자신들의 정부를 가질만큼, 그렇게 시민이 폭넓게 등장한 상황은 아니다.

 

시민의 정부도 만들고, 언젠가는 민중의 정부도 만들고 싶다. 그러나 아직은 그 때가 아닌갑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생협이 필요하고, 더 많은 협동조합이 필요하고, 온라인을 벗어나 직접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그런 모임과 조직이 필요하다. 그리고 아직 그런 게 취약하다. 그리고 그런 걸 만드는 데, 5년도 사실 짧다.

 

학력이 높을수록 문재인을 지지했다. 가난할수록, 학력이 낮을수록, 박근혜를 지지했다. 이게 현실이다. 나는 그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앞으로 5, 정말로 시민이 등장하기를 기대하고, 그 힘이 스스로 조직화하면서 구체적이 되기를 바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난 부지런한 사람도 아니고, 열심히 사는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서 사는 살고 싶기는 하다.

 

지난 1년간, 늘 마이크를 잡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 마이크를 내려놓으려고 한다. 경제학자가 아니라, 그냥 한 명의 시민으로,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전문가의 권위. 경제학자의 권위, 그런 것도 다 내려놓으려고 한다.

 

그냥 한 명의 시민으로, 묵묵히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면서 살까 한다. 2013, 과연 어떤 방식의 일이 유효한 것이고, 의미 있는 일일까? 그건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한, 5년 후에는 시민의 정부를 가질 수 있게 나도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학자가 아니라 시민으로그렇게 살아가는 게, 더 유효할 것 같다는 정도가 지금 내 생각이다.

 

지금 여기서, 사람들과 같이 고통 받고, 같이 힘들어하고, 같이 괴로워하고, 그래서 결국 우리 모두가 웃을 수 있고, 우리 모두가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시대, 그게 내가 만들고 싶은 세상이다.

 

증오 위에 세울 수 있는 미래는 없다, 그게 내가 살면서 배운 것이다.

 

진짜 승리, 그걸 2014년부터 맛보고 싶다. 이제 곧 지방선거다.

 

나는 30대 기수론을 주장하려고 한다. 다른 생각은 아니다. 기초의회의 출마자들을 30대로 나이를 대폭 낮추고, 그들이 풀뿌리에서 출발할 수 있어야 미래가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새로운 리더가 등장하고, 그렇게 스스로 정치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

 

그렇게 2014년 지방선거를 준비하고, 그들 중의 상당수가 다시 2016년 총선에 나서는 것, 그리고 그들이 자연스럽게 시민들의 지도자가 되는 것, 그게 우리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닌가 싶다.

 

대선 이후, 40대 기수론을 얘기한 사람들이 일부 있었다. 그러나 정말로 의미 있는 변화가 생기기 위해서는, 30대 기수론이 맞다. 그래야 지금의 20대들에게도 스스로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린다. 그러지 않고, 거의 지방토호와 다를 바가 없는 지금의 민주당풍 기초의원들이 다시 2014년 지방선거에 나서면, 정말 해법이 안 생긴다.

 

또 한 가지 시도는 이미 민주당이 집권당이 지역에서 만들어볼 수 있다. 단체장은 물론이고, 지방의회도 여권인 지역들이 있다. 예를 들면, 복지도시 광주, 이런 걸 지금 못 할 이유가 없다. 박원순의 서울시만큼만 하면 된다. 그래서 앞으로 5, 광주와 대구의 삶이 얼마나 다른 것인가, 굳이 공중파에서 보여주지 않더라도 정말로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만들어내면 된다. 행복은 바이러스와 같다. 그런 게 복지의 힘이다. 그건, 민주당이 핑계댈 필요 없이 지금 바로 하면 된다. 지자체에서 할 수 있는 수준의 것들을 하는 것만으로도, 선거 운동 보다 100배는 효율적으로 사람들에게 미래의 실체를 보여줄 수 있다.

 

시민의 경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생협과 협동조합, 이런 걸 작게라도 계속해서 만드는 게, 앞으로 우리가 준비할 5년 동안 갈 길이다. 굳이 하방이라는 표현을 쓴다면, 우리는 오프라인 하방을 해야 한다. 마이크 들고, 누군가를 설득한다고, 그렇게 계몽으로 될 일이 아니다. 그냥 우리가 크고 작은 경제 장치들을 만들어서, 우리끼리 행복하고 즐겁고, 그러면서 경제적으로 개선되는 삶을 만들면 된다. 북구의 복지구가가 그런 과정을 통해서 지금의 정치지형을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이건 지금 하면 된다. 대통령이 해주는 거 아니다. 우리가 시민으로서, 지금부터 자발적으로 하면 된다.

 

나도 마이크를 내려놓고, 더 현실로 가려고 한다. 공중전으로 시민사회가 생겨나지 않고, 시민경제가 커지지 않는다.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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