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고양이들의 여름 나기

 

 

 

이번 여름은 참 덥다.

 

이 더위 한 가운데에, 경제학자로 살아오던 삶을 마음 속에서 내려놓는 작은 일을 겪었다. 오랫동안 생각했던 것이지만, 이제는 정말로 마음 속에서 그런 걸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는 걸 느꼈다. 그렇게 느끼게 만든 계기가 몇 가지 있는데, 이제 눈도 잘 보이지 않고,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그걸 맡겨서 분석을 하도록 시킬 수 있는 처지도 아니고.

 

더운 여름에 지쳐서 뒤뜰에 죽은 듯이 누워있는 엄마 고양이와 바보 삼촌을 보면서, 정말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전응길 과장이라는, 오랫동안 파트너로 지냈던 한 공무원이 있었다. 그와 알고 지낸 시간이 10년이 넘는다.

 

"정권은 바뀔지도 모르지만, 세상이 정말로 좋아질지는 모르겠다", 그 질문을 나에게 했던 바로 그 공무원이었다.

 

얼마 전에 그를 만났는데, 그도 많이 바뀌었고, 이제는 변했다.

 

나도 변했을 것이다.

 

그에게 하지 못했던 답변은, 나도 마음 한 구석에 담아두기로 했다.

 

아내에게 이제 경제학자로서는 그만 살아가겠다는 얘기를 했다.

 

아내와 올해 결혼 9년차이다.

 

아직 밀린 일이 조금은 있지만, 아내와 나는 예전에 살던 방식의 삶을 내려놓았다.

 

 

 

 

 

이 녀석은 생협이라고 이름을 붙여준 녀석이다.

 

우연히 뛰어가는 장면을, 그래도 좀 좋은 조건에서 잡을 수 있었다.

 

벌써 아기 티는 많이 벗었다.

 

이 녀석들의 운명에 대해서, 나도 잘 모른다.

 

그러나 기왕 인연이 된 것,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보살필 뿐이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단어가 뭔지, 가끔 생각해본다.

 

positivie thinking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렇게 쓰고, 나는 '나쁜 생각'이라고 읽는다.

 

이런 이상한 생각을 할 바에야, 아예 생각을 하지 말자...

 

그렇게 생각한다.

 

 

간만에 마당 고양이 네 마리가 다 모였다. 얘들도 여름을 나느라고, 이렇게 다 모여있는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다.

 

고양이들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는 다르다. 금방 금방 시간이 지나가고, 헤어질 때가 금방 온다.

 

먼저 고양이별로 떠나기도 하고, 세력 다툼이 생겨서 밀려나기도 하고.

 

사람의 삶도 그와 많이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사람의 시간은 좀 길다.

 

만약 사람보다 오래 살고, 또 사람만큼 혹은 사람 이상의 지능을 갖춘 존재가 우리를 본다면, 매 순간 내가 고양이들을 볼 때 만큼의 애틋함으로 우리를 볼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늘 애틋하다. 삶은 애틋한 것이다.

 

positive thinking이라는 단어는, 그 애틋함을 마음 속에서 지워버린다.

 

그렇게 사람을 단세포로 만들고, 생각없는 존재로 만든다.

 

어떻게 생각해야 한다는, 그 말 자체가 참 부질없는 말이다.

 

 

가끔 느끼는 거지만, 엄마 고양이는 때때로 아주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내 느낌이 그래서 그런지 혹은 또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지, 늘 녀석은 사려깊음이 갖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최근에 제작 중인 몇 가지 영화나 시나리오를 검토하면서, 남자들이 만든 얘기에서 여성들이 갖는 수동성 혹은 피상적인 것에 대해서 종종 지적을 하게 된다.

 

물론 내가 만든다고 해도 크게 별 수는 없겠지만...

 

영화 <평양성>의 갑순이가 대표적이다. 잘 나고 강한 여자를 만든다고 만든 건데, 하나도 강해보이지 않고, 하나도 잘 나 보이지 않는다.

 

원치 않는 사람과 결혼을 하라고 하면 그냥 해야 하고, 게다가 욕 하는 것 외에 작전을 주도해서 짜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중요한 일은 남자들이 다 하고, 그 사이에 일정한 각을 가지고 여자도 나온다, 그게 남자들이 만드는 얘기에서 여자들에게 부여하는 상의 거의 전부이다.

 

그리고 나름 영웅적이라고 그려낸 여자들의 대사는...

 

말이 짧다.

 

일부러 지능이 모자르게 보일려고 작심이라도 한 듯이.

 

엄마 고양이를 볼 때, 그런 영화나 제작 중인 시나리오에 나오는 여성들의 모습과 정 반대인 여성적 존재 같은 걸 느끼게 된다.

 

이건 엄마, 혹은 대모라고 할 때의 느낌과도 좀 다르다.

 

인간의 말로 표현할 방법이 별로 없다.

 

여성이 중요한 사회가 아니라, 여성이 만든 사회라는 느낌일까?

 

살짝 옆모습을 보이고 돌아누운 엄마 고양이 모습을 보면서, 그런 복합적인 느낌을 받았다.

 

 

자기 밥은 다 먹고 나서 돌아섰다가, 아기 고양이 생협이 밥을 먹기 시작하니까, 까먹었다는 듯이 다시 와서 밥을 먹기 시작하는 바보 삼촌.

 

녀석의 본래 모습은 이런 모습이다.

 

아직은 아기 고양이 두 마리의 개성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바보 삼촌만큼만이라도 나와 같이 오래 살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은데, 그건 보장하기가 어렵다. 무사히 이사를 같이 가는 것도 큰 일이고, 그렇게 이사를 간다고 해도 새로 간 집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고. 이사가면서 중성화 수술을 해줄 계획인데,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지금처럼 영원히 가족처럼 살아갈 수 있을 것에 대해서는 보장이 없다.

 

불교와 기독교에서 각기 고양이를 대하는 방식이 조금은 다를 것 같다.

 

사람들을 구원의 대상이라고 보는 것처럼 고양이도 구원의 대상이라고 보는 시선이 하나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조금 더 불교적 생각에서, 인연이라고 생각하는, 약간은 맘 편하지만 가슴 저린 시선이 하나.

 

나는 그냥 인연이라고 생각하고 약간은 무덤덤하게 넘어가려는 편이다.

 

그러나 태어나자마자 내가 준 먹이를 먹고, 매일매일 내가 주는 밥을 먹으면서 어른이 되어가는 이 녀석들을 보면서 그렇게 무덤덤한 시선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고양이들과 지내면서 증오 보다는 사랑을 더 많이 배우게 된다는 것.

 

그리고 언제나 기대하지 않았던 특별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내 속에 잠자고 있던 표현의 욕구 같은 것을 일깨워준다는 것.

 

그래서 고양이를 영적 존재라고,때로는 숭배하거나 때로는 저주했던 것일까?

 

분명히 영적인 뭔가의 작동이 있는 것은 확실해보인다.

 

 

 

마침 아기 고양이 생협이 정면을 보고 있는 장면을 잡을 수 있었다. 이제는 노랑 눈동자가 더 명확해졌다.

 

자꾸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건, 퇴행일까? 아니면 발전일까?

 

나이를 먹으면, 그 나이만큼 섭섭함과 아쉬움이 나이테처럼 남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섭섭함을 정말로 자신의 삶에서 풀려고 하면, 정말 퇴행적 삶을 살게 된다.

 

저 아기 고양이의 눈을 보면서, 좀 어색한 표현이지만, 내 마음이 그 눈동자 안에 빠져드는 것 같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그런 캐캐묵은 질문들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답이 있겠나, 삶이라는 것에.

 

그러나 더 쥐고, 또 더 쥐려고 하는 것, 그건 아닌 것 같다, 그 정도가 내가 배운 거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아기 고양이의 눈망울을 보면서, 노을을 보면서 가끔 느끼는 그런 비어있는 울렁거림, 그런 것들이 느껴졌다.

 

고양이들의 여름 나기를 보면서,

 

문득 삶에도 여름 나기 같은 것들이 있고,

 

가을을 향해 누워 지내는 그런 긴 잠 같은 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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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그리고 학자로서의 내 삶 정리

 

1.

경제학자로서의 삶에 대한 은퇴를 준비한 건 꽤 된다. 마흔 살이 되면 은퇴하려고 굳게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명박이라는, 진짜 이상한 사람의 시대를 만나, 조금 더 연기를 하고 있었다.

 

어제, 이제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겨울, 한미 fta가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하는 걸 보면서, 여기에 조금이라도 뭔가 보태는 게 내가 할 마지막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대선에서 fta 문제가 대선 의제로 올라가는 것, 거기에 학자로서 걸 수 있는 건 다 걸었다.

 

나꼽살에서, 지난 주부터 대선후보 초청 방송을 하는 중이다. 손학규 후보가 지난 주에 나와서, fta 재검토를 하겠다고 받았다.

 

이번 주에는 정세균 후보가, 강령 22조에 있는 그 내용 그대로,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했다.

 

아직 개인적으로 확인한 건 아니지만, 김두관 후보 쪽에서도 그 정도는 하겠다고 하는 것 같다. 문재인 쪽의 대답을 못 들었지만

 

혼자 생각해보면, 참 멀리 왔다는 생각이 든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이미 한계치를 넘었다. 사회적으로도 그렇다.

 

여기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이고, 이미 내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 온 것 아닌가 싶다.

 

이미 무리였고, 이 이상도 무리다. .

 

경제학자로 살면서, 알고 있던 이런저런 네트워크까지, 사실상 총동원했다.

 

이 이상은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2.

녹음 끝내고 나오는데, 김진표 보좌관이 김진표의 책을 나에게 건넸다.

 

그냥, 운명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학규, 정세균, 김두관, 이런 사람들이 앞으로 fta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나도 확신은 없다. 다만 지난 겨울보다는 나은 상황으로 가지고 갈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고그건 이제 시민들의 몫이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

 

스튜디오 녹음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면서, 경제학자로서, 은퇴하는 순간이라면, 바로 이 순간이라고 생각을 했다.

 

바로 그 순간에 김진표 책이 내 눈앞에 왔다이 또 무슨 기묘한 운명이란 말인가.

 

2002, 봄 어떤 날이 그랬다.

 

그 시절에는 공직에 있었고, 총리실에 근무하고 있었다.

 

약간의 하극상, 총리한테 직접 보고를 하고, 별도의 결제라인으로 작업을 하는 그런 승부수를 띄울까 말까, 그런 고민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내 위의 상사가 김진표였다.

 

나는 도저히 이 사람이 상사로 있는 한 더는 일을 못할 것 같아서, 고민을 했는데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총리실 근무를 접기로 마음을 먹은 날이 있었다.

 

실제로 사직서를 낸 건 그 다음 해의 일이다. 마음은, 그 때 바로 내고 싶었는데, 그렇게 나가면 나를 추천해준 사람들이나 전임자들이 곤란해진다고 해서다들 조용해지는 그 순간까지 기다리다가 다음해 사직서를 냈다.

 

나꼽살 녹음을 마치고, 이제 할만큼 했다, 더 이상 이어갈 수가 없다고 마음을 막 먹는 순간에,

 

누군가 눈앞에 김진표의 책을 딱 들이미는데

 

참 운명 같이

 

이 순간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그런 기묘한 인연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3.

정권은 바뀔 것 같다.

 

그러나 정말로 좋은 세상이 올지는 모르겠다.

 

좋은 세상이라는 건, 포괄적 표현이다. 그 중에 fta 문제 하나에만 학자의 생명을 걸기로 했다. 모든 문제를 내가 다 풀 수 있거나, 최소한의 개선이라도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발효에 즈음하여 삭발을 했고, 내 책 중에서 제일 잘 팔리는 책을 절판을 했고, 금주도 했고,

 

이제 내가 내려놓을 수 있는 건 경제학자로서의 삶이다.

 

어차피 내려놓기로 마음 먹은 것, 더 이상 끌고 나갈 수 있는 한계치에 봉착한 지금,

 

내려놓는 것이 한 방법이다.

 

이 이상은 무리다.

 

혼자 힘으로 버틸 수 있는 한계치는 벌써 예전에 넘었는데, 악물고 하는 데에도 물리적 한계가 있다.

 

Fta 문제에 사람들이 환기하기를 바라면서 내 학자로서의 삶을 내려놓는 것, 이것도 보람된 일이다.

 

대선에 대해서, 나보다 잘 말할 수 있고, 더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 땅에 차고 넘친다.

 

신문 칼럼 연재는 벌써 3월달에 내려놓았다. 하나씩 내려놓는 중인데, 가장 핵심에 해당하는 것들 것 이번에 내려놓으려고 한다.

 

강의와 강좌, 강연, 그리고 학자로서의 기고와 블로그 등, 내가 하던 핵심적인 일들을 내려놓을 순간이 지금인 듯싶다.

 

옛날에도 김진표와 같은 그룹에 이름을 올리기가 싫었다. 지금도 그렇다.

 

그냥 운명적인 일들이 그렇게 벌어진 셈.

 

4.

학자로서 내가 마지막으로 지지했던 정치인은 정동영이었다.

 

그가 영광을 보지 못해서 안스럽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사람을 지지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고, 내가 마지막으로 지지했던 사람이 정동영이라서

 

그 영광은 영원할 것 같다.

 

우정이라고 표현한다면, 내 마지막 우정은 정동영과 함께.

 

5.

남은 건 대선까지 하기로 한 방송인 나꼽살과, 출판사에 계약이 남은 몇 권의 책들.

 

하기로 한 약속이기 때문에, 나꼽살에 참여하는 것, 남은 몇 권의 책들의 원고를 마무리하는 일, 그 정도는 마무리하려고 한다.

 

마지막 책을 떨면서, 조촐히 은퇴를 하려고 했는데, 시점상 시간이 늦어지면서 그렇게 딱 마무리를 짓지 못한 건 좀 아쉽다.

 

그렇다고 해서, 더 이상 사회적인 일들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계속 서 있는 건 좀 아닌 듯싶다.

 

새롭게 전개하는 테제는 이제 더 이상은 없고, 정말 기계적인 마무리들.

 

세상이 좋아지면 좋겠다는 소망이 아직도 있지만,

 

학자로서 이래라 저래라 하던 시절은 이제 접으려고 한다.

 

이미, 물리적으로도 너무 무리한 상태에서 오래 버텼다.

 

6.

생각해보면, 그 동안 과도한 영광을 누렸다.

 

이젠 눈도 잘 보이지 않고, 더 이상 예전 같은 집중력을 유지할 수가 없다.

 

그래서 실무 경제학자로서 더 이상 분석작업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말 한 마디 보태면서 참견질하는 건, 내가 살아온 삶과는 다르다.

 

96년에 학위를 받았다. 잠시 뒤돌아보면, 17년 동안, 진짜 머리부터 발끝까지 경제학자로 살았다.

 

충분히 영광스러웠다.

 

이젠 정말로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

 

7.

방송기획자 같은 것에 대한 제안들을 좀 받은 게 있는데

 

해보니까, 난 방송에서 즐거움을 느끼거나 보람을 느끼는 체질은 아니다.

 

힘겨웠던 30대를 지나면서 지병처럼 몸에 남은 대인기피증이, 결국은 극복이 안 된다.

 

강의도

 

누군가를 가르치면서 보람을 느끼는, 그런 체질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방송이나, 강의나, 강연이나, 하면서 즐거운 게 아니라, 싫은 데도 누군가 해야 한다는 생각에, 참고 억지로 한 건데

 

정세균 후보가 fta 재검토를 하겠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정말 참 멀리 왔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젠 정말로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학규와 정세균만 해도, 나보다 세상을 위해서 더 할 일이 많고, 더 많이 기여할 사람들이다.

 

이젠 억지로 잡고 있던 바통을, 넘길 순간이 왔다는 생각이 머리를 빡.

 

이제 나는 엑셀 작업이나 수치 작업을 할 수가 없다. 안 보인다. 한 때는 수차표 잔뜩 쌓아놓고도 숫자의 특징들을 귀신 같이 잡아냈는데

 

이젠 그렇게 숫자가 눈에 보이지가 않는다.

 

이젠 정말 물리적으로도, 내려놓을 때가 온 것이다.

 

8.

살면서 가장 보람된 일이 뭘까,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지금의 아내와 결혼한 일, 그리고 같이 살아갈 수 있던 일.

 

조철현, 이준익, 이런 실없는 소리와 망상을 나누어줄 동료가 있다는 일.

 

화가 김선정씨처럼, 우리의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는 파트너 화가가 옆에 있다는 사실.

 

뒤의 일을 안심하고 맡길 선대인이나 김용민 같은 친구가 있다는 사실.

 

늘 같이 웃고 부비끼며 살아갈 고양이들이 내 주변에 잔뜩 모여 있는 일.

 

지나보니, 그런 게 고마운 일이었다.

 

나는 태생이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혼자 놀기를 좋아한다.

 

사회적 활동을 해야 한다고, 그런 교육을 많이 받고 강요도 많이 받았는데, 사실 나는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족속이다.

 

무리하게 지고 있던 학자로서의 삶을 내려놓는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물리적으로는, 김진표와 나는 운명적으로 상극인지도 모른다, 사회적인 게 아니라.

 

자연인 김진표에게는, 별 감정 없다. 사회적으로 만나고 싶지 않을 뿐이지.

 

앞으로 뭘 하고 살까?

 

깊이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 밥이야 먹고 살겠지.

 

어쨌든 학자로서는 더 이상 살지는 않을 생각이다.

 

머리를 숙여야 하는 순간이 올 때,

 

학자로서 삶을 내려놓겠다고, 아주 어렸을 때 결심한 적이 있다.

 

좀 늦었지만, 이제 그 순간인 것 같다.

 

한국의 20대를 위해서 한 마디를 남긴다면,

 

Fta를 찬미하는 사람은 평균적 20대의 적이라는 말 정도?

 

(이 기회를 빌어, 그 동안 이 블로그를 찾아주셨던 많은 분들에게, 각별한 감사와 고마움을 남기고 싶습니다.

 

모두에게 평온한 삶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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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사진기를 더 이상 집어 들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다시 카메라를 집어들게 만든 계기가 된 사진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이 사진이었다. 사진으로는 큰 의미는 없다. 그러나 학자로서의 나의 삶에는 이 사진 한 장이 엄청난 변화를 미쳤다.

 

히로시마 시민 병원’…

 

어디에나 있을 법한 그런 평범한 병원 건물이었는데, 이게 내 머리를 뻥하고 치고 갔다.

 

왜 이 병원 이름이 시민병원일까, 무슨 연유로 이 병원에는 이런 이름이 붙게 된 것일까, 그런 고민을 하게 되었다.

 

결국 이 고민이 나중에 경향신문에 연재하게 된 시민운동 몇 어찌라는 글의 첫 번째 질문을 던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지역경제에 대해서 조금 다른 방식으로 생각을 해보게 되는 출발점이 되었다.

 

다른 사람에게도 이 사진이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어쩌면 학자로서의 1기와 2기를 분기할 정도로 중요한 사진이 되었다. 더 잘 찍은 사진이나 더 좋은 사진이 있을 수 있겠지만, 중요한 사진으로는, 아직은 이 사진이 나에게 제일 중요하다.

 

그만큼 오랜 시간 동안 이 사진을 뚫어져라고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다.

 

왜 한국의 병원에는 시민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것이고, 일본의 병원에는 이 이름이 붙게 되었나? 이 질문이 나에게는 컸다.

 

어쨌든 이 질문에 대해서 나는 아직도 만족할만한 답을 찾지는 못했는데, 그 대신 다시 카메라를 집어 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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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꼽살에서 대선 후보 초청 방송을 시작했다.

 

우리야 나꼼수 만큼 힘 있는 방송은 아니라서, 대선후보 방송을 기획한다는 것이 우리의 기획력을 좀 넘어서는 것이기는 하지만그래도 뭔가 하는 편이 대선 분위기를 만들고, 뭐래도 박근혜 쪽이 아닌 곳에서 얘기를 만들어낼 것 같아서 시작은 했다.

 

그 첫 방송으로 손학규편을 오늘 녹음했다.

 

그냥 내가 지켜본 것에 의하면, 손학규와 정동영은 지난 대선 때 이후로, 참 티격태격, 사이 안 좋다. 그런데 순망치한이라고 할까, 한 명이 없으면 다른 쪽도 힘이 없는, 그런 기묘한 아저씨들 사이의 관계가 있는 듯싶다.

 

내용은 괜찮았다. 평소의 손학규에 비하면, 좀 더 급진적인 요소들을 많이 얘기한 건데, 팟 캐스트라는 방송의 특징상, 우리끼리 치고 받고 하는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고.

 

Fta에 대해서는 중대한 변화가 한 가지 있었다.

 

‘fta 한 스푼을 내면서 일종의 조정안 같은 것을 냈었는데, 그게 ‘fta 재평가에 관한 것이다. , 일종의 유보안이다.

 

지금 당장 동시다발적 fta에 대한 국가의 입장을 결정하지 말고, 대선 이후 1년 정도 개별 fta에 대한 재평가 작업을 하고, 동시다발적 fta에 대한 입장을 재검토하자는 거다. 그리고 그 평가 결과를 놓고 국민적 논의를 해서, 한미 fta 등을 계속 유지할 것인지, 폐기할 것인지, 그런 재검토를 하는 기회를 갖자는 거다.

 

옹색하기는 한데, 이미 사회적 논의의 틀에서 fta가 죽어버린 이상, 그 정도 얘기가 내가 양심상, 낼 수 있는 최대안이었다.

 

일단 손학규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이 옹색하고 헐벗은 fta 땅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는 잘 모르겠다.

 

오늘 만큼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손학규가 고마웠다.

 

같은 질문을 다른 후보들에게도 할 던질 생각이다. 물론 어떻게 답할지, 나는 아직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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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할 일이 없거나, 너무 집중한 상태의 긴장감을 풀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정혜윤의 책은 딱 안성맞춤이다. 뭐가 쌓아올렸는데, 이게 좀 아니다 싶은 거,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여기까지 했는데, 이미 한 게 아깝지 않아?

 

내가 살아온 경험으로는, 이미 한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거나, 누군가 그런 얘기를 할 때그 길은 아닌 거다. 잘못 온 길이다. 만약 그 길이 맞다면, 이미 한 게 아깝다는 생각 따위는 들지 않을 거고, 그런 얘기를 누군가 하지도 않을 거다.

 

나는 그래서 선녀와 나무꾼얘기를 좋아한다. 아이를 아무리 많이 낳았어도, 싫은 넘과 어떻게 살아. 단 하루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그런 사람과는 헤어져야 한다.

 

그러나 비비적, 비비적, 뭔가 좀 아까운데, 새로운 걸 하기는 무서운데

 

요런 생각이 들 때, 정혜윤의 책이 딱이다. 생각을 이리저리 뒤집어, 휘집어 놓아서, 이미 이만큼 했는데, 그런 생각에 대한 무장해제를 시키는 장점이 있다.

 

특히나 나름대로 책을 좀 봤다고 생각하는 사람 혹은 책은 많이 읽지는 않았어도 나름 장서가라고 생각하는 사람, 요런 사람들에게는 정혜윤이 딱 약이다.

 

물론 내 경우도 그렇다.

 

<삶을 바꾸는 책 읽기>, 읽기에 따라서 독서 혹은 책에 대한 얘기이기도 하지만, 글쓰기에 대한 것이리도 하고, 신념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이건 정말로 맞는 거야

 

요렇게 자신이 신념에 차 있을 때, 정혜윤의 책을 심심풀이로 읽어보면, 뭔가 신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정혜윤을 읽는다. 이미 읽은 책도 있고, 아직 읽지 않은 책도 있지만, 그 책에 대한 책, 그 속에서 자신의 얘기를 조곤조곤하는 것은, 정혜윤이 우리나라에서는 제일 잘 하는 것 같다.

 

가끔 책 읽고 나면 딱 재수없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다.

 

정혜윤은 딱 그 정 반대이다.

 

재수없다고 생각한 나 자신을 스스로 재수없게 느끼는, 기기묘묘하게 투영시키는 거울과 같은 글쓰기 스타일이다.

 

, 그리고 <삶을 바꾸는 책 읽기>에서는, 정헤윤의 감성이 한 차원 업글 되어있다.

 

정혜윤의 책을 읽으면서 울었던 적은 없었는데, 이번 책을 읽으면서 두 번 울었다.

 

중앙극장까지 가는 택시 안에서 벌어진 기가 막힌 사연의 이야기

 

이건 마치 책 안에 단편영화가 하나 들어가 있는 것과 같은데, 정혜윤 책을 읽으면서는 아직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한 품격 높은 감성 터치.

 

울 얘기는 아니지만, 가슴 한 구석에 묻어두고 있던 사랑에 대한 얘기나, 아련한 기억 혹은 앞으로 올 것에 대한 기대, 이런 감정선 한 구석을 제대로 건드린다.

 

마침 오늘 오후, 아내와 산부인과에 갔다 오면서, 혹시 내가 아내보다 먼저 죽으면 내가 남겨진 아내를 위해서 준비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얘기들을 꽤 길게 했었다.

 

그런 짧은 기억이 결합되면서, 나는 아내를 더 많이 사랑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그리고 펑펑 울었다.

 

몇 페이지 더 앞으로 나아가면, 희망버스에서 김진숙 지도의 목소리를 들었던 장면이, 정말로 감성적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목덜미에 소름이 돋는듯한 리얼한 감정을 느끼면서, 또 눈물이 흘러 나왔다.

 

동굴 깊은 곳의 목소리에 대한 묘사와 스머프라는 단어만으로, 그 장면을 그렇게 그려내는 방법이 있구나

 

정혜윤의 <삶을 바꾸는 책 읽기>, 내 경우에도 삶을 조금은 바꿀 것 같다.

 

사랑합시다,

 

요런 류의 글을 보고 눈물을 흘렸던 게, 도대체 얼마만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확실히 정혜윤, 업글.

 

책이라는 게, 꼭 필요해서 읽는 것만도 아니고, 오락을 위해서 읽는 것만도 아니고, 뭔가 더 알기 위해서 읽는 것만도 아니다.

 

그냥 읽는다정혜윤의 경우가 그렇다. 나는 그의 책을 그냥 읽는다.

 

그러나 읽고 나면, 뭔가 나에게도 분명히 변화가 생긴다.

 

그녀와 동시대를 살고, 때가 되면 새로운 정혜윤의 책이 나와있고, 그래서 습관처럼 읽고, 습관처럼 다시 감동하는.

 

사는 것을 맛지게 해주는 이 시대의 동료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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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기자를 정말 오랜만에 만난 건, 노무현 탄핵 집회에 나갔다가 서소문 회관 앞인가, 거기서 피켓 들고 있던 때였다. X 파일은 그 뒤의 시간이었다. 대학교 4학년 때였나, 농성 중에 농성장에서 만나고 정말로 오랜만에 만났던 거였다.

 

상호랑 같은 고등학교를 다닌 건 아니었다. 그냥 같은 동네라서 도서관에서 자주 보던 사이였다. 아주 친했다고 하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꽤 친한 친구였다. 한열이가 최루탄 맞고 쓰러지던 집회에, 상호나 나나 둘 다 같은 스크럼 안에 들어가 있었고, 인생에 잊지 못할 최초의 기억이 생긴 순간들을 공유한다.

 

상호의 책은 정말 예전에 취재후기가 출간된 걸 읽은 적이 있었다. 뭐 친구끼리는그렇게 책을 챙겨서 보기가 쉽지가 않다. 아무래도 저자에 대한 신비감 같은 게 전혀 없으니까, 일부러 챙겨서 보지 않으면 잘 읽게 되지가 않는다.

 

이상호 기자 X파일, 크게 보면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 이상호 선배 기자들에 관한 얘기.

그들이 어떻게 X파일에 대한 보도를 막으려고 했는가.

2. 파일 입수에서 방송 제작까지, 방송 제작에 관한 얘기.

3. MBC 동료 기자들 사이에서 왕따가 되어가던 순간의 심경.

 

어지간히 신경 굵은 사람이 아니라면, 중간에 한 번쯤은 자신의 처지 혹은 과거의 경험을 돌아보면서, 눈시울을 흘리만한 대목들이 몇 번 있다. 그러나 실제 눈물을 터뜨릴만큼 감성 터치를 하지는 않았고, 약간은 드라이한 느낌이다.

 

사건은 비교적 간단한 건데, 결국 X 파일의 원문이 묻히는 과정, 부제에 진실이라고 얘기한 그 혹은 그것이 절대로 스스로는 말할 수 없는 상황.

 

유사한 얘기로, 영화 <인사이더> 생각이 났다.

 

여기에서는 갖은 고초를 겪지만 결국 <식스티미닛>에 사건의 전모를 담은 방송이 결국 방송을 탄다. 이상호 X파일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어떻게 X파일이 감추어지게 되었는지는 알 수 있게 되었는데, 여전히 그 원본 그대로의 파일은 우리 손에 배달되지 못했다.

 

상하로 씌어진 공포 소설의 상편이 이번에 나온 책이라면, 우린 아직도 하편을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상호의 X파일에 왜 X파일이 없어?

 

문득 예전 조선일보에 부록으로 끼어주었던 녹음 테이프, 12.12 그날 사령부의 육성 녹음이 담긴 그 테이프 생각이 났다. 참 재밌게 들었었는데.

 

그렇게 보면 우리의 진실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래도 지금이니까 이나마, 이 파일을 둘러싸고 어떤 사건들이 벌어졌는지 책이라도 나오는 거지, 지금 식으로 더 진행되면 나중에는 이것도 불가능해지는 그런 시대로 가게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 마음은 아주 답답해졌다.

 

스릴러 구조로 보면, 일종의 메타 텍스트 구조를 가지고 있는 셈인데, 정말로 공포스러운 것은

 

이게 소설이 아니라는 거.

 

그리고 여전히 진행 중인 사건이라는 거.

 

중간에 한미 재계위원회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X파일을 처음 이상호에게 얘기해주는 사나이의 대화 속에, 그 때 이 기관에서 한미 fta를 추진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건 보너스.

 

우연히 진실이 자기 주머니에 들어왔을 때, 우리는 어떤 행위를 하게 될까?

 

주머니의 것을 길에다 버릴까, 장롱 속에 깊숙히 숨겨놓을까, 아니면 이상호처럼 그걸 밝히려고 할까?

 

감추려는 사람이야, 늘 같은 일을 할 것이고, 그 위의 사람들도 결국 매수될 것이고.

 

진실을 열 것인가, 감출 것인가, 그 결단만이 실존에 대한 질문처럼 남게 되는 것일까?

 

그런 질문이 마지막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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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가, 진짜 이길까?

 

 

(마음으로 보는 사진. 별 의미는 없지만, 이사갈 생각을 하다보니 묘하게 기분이 뭉클해져서 처음으로 우리 앞집 사진을 찍은 거다, 아내 기다리면서. 내 눈에만 앞집이 보인다.)

 

1.

내가 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특수한 사람들인지 모르겠다. 가능하면 나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을 만나려고 하고, 내 주변이 특정 부류의 인간들로 가득 차게 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게 일부러 조절이 되는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가능하면 다양할 수 있도록 의도적 노력을 한다.

 

지난 대선 때의 분위기는, 말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는데, 좌파든 우파든, 상층부에 있는 사람들은 지금처럼 대선 5~6개월을 앞두고는 명박 시대를 염두에 두고 자신들의 미래를 디자인하거나 사업계획서를 짰다. 물론 마음이 그런 건 아니지만, 큰 돈이 움직이는 일을 결정해야 하는 위치에 있거나, 장기계획을 세워야 하는 자리에 있으면 어쩔 수가 없는 측면이 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시절에도 나도 대선은 물 넘어 갔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가 아니라, 독자후보에게 주는 한 표도 정말로 찍고 싶지 않았었다. 심상정과 노회찬의 맞대결에서 심상정이 이겼다. 잠깐 신났던 것 그때 뿐이었고, 결선투표에서는 권영길이 이겼다. 약속한 대로, 나는 권영길에게 투표하기는 했지만, 정말로 투표장에 가기가 싫었다.

 

그 전날, 인터뷰집을 준비 중이던 지승호와 여행 마지막 날이었다. 투표 아침날 안동과 청송 같은 곳에서 두루마기를 입은 할아버지들이 투표장으로 몰려가는 기이한 풍경을 보았었다. 천천히 쉬면서 올라왔으면 투표장에 가지 않을 충분한 핑계와 이유가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나는 부지런히 올라왔고, 정말 가기 싫지만 예비 선거 때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권영길에게 투표했다.

 

지금의 용어로는 통합민주당의 당권파가 주도하는 선거는 다시 하고 싶지 않다는, 정말로 지긋지긋한 생각을 가졌던 게 그날이었다. 물론 비겁한 변명일지는 모르지만, 나는 당시 정동영에게 투표할 이유도, 권영길에게 투표할 이유도 전혀 찾지 못했고, 어차피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는 일은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 시절에 이명박에게 투표하던 주변 사람들을 알고 있고, 또 그에게 투표해야 한다고, 심지어 나에게도 주장했던 사람들도 알고 있다.

 

노무현이 좌회전 깜빡이 켜고 우회전 했듯이, 이명박은 우회전 깜빡이 켜고 좌회전 할 거다…”

 

물론 택도 없는 얘기였지만, 왜 지지해야 할 이유를 만들지 못한 그 선거에서 이명박의 당선을 예상하지 못한 사람은 아마 없었을 것 같다. 혹시라도 투표하면 자기는 괜찮지 않을까 싶은 약간의 심리적 이유 같은 것들이 기묘하게 결합하며, 그 투표는 뚜껑 열기 전부터 해보나 마나한 투표였다.

 

2.

그때부터 다시 5년이 흘렀다. 아주 솔직히 얘기해보자. 대부분의 상황은 별로 다르지 않다.

 

장기 투자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나 큰 돈이 움직이는 결정들, 이미 현장에서는 대부분 박근혜 시대를 전제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영화, 드라마, 이런 문화 부문에서도 규모가 크면 어느 정도는 이런 걸 염두에 두고 움직인다.

 

배우 감우성이 육영수에 관한 영화에서 박정희 역할을 맡았다고 난리이다.

 

혹시 아나? 내년이면 감우성에게 어떻게라도 줄 대고 싶은 사람이 10리길을 넘을지도? 인생 뭐 있냐, 한 방이지.

 

감우성은 좀 억울할지도 모른다. 그 이상으로 줄 대는 사람들이 줄을 이미 10리가 넘는데, 유독 감우성만 욕을 먹는 것은? 유명해서 그런 것 아닌가?

 

노 리스크 노 리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경제의 법칙 그대로이다.

 

인생 뭐 있냐, 한 방이지

 

그거에 대해서 뭐라고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돈이 그렇게 좋더냐? , 그런 말을 할 수는 있지만, 돈 앞에 절대강자라는 건 없다.

 

그러나, “인간적 매력에 이끌렸다”, 요렇게 말을 하는 건 좀 이상하다고 본다. 돈이 아니라, 연기의 동기가 있다고 하는 말이기는 한데, 그러면 정말로 박정희를 힘과 권력에 이끌려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정말로 인간적으로도 존경한다는 말이다.

 

그래도 감우성에게 엄청난 비판을 하고 싶지는 않다. 은근슬쩍, 그 보다 더한 일을 하는 사람이 박근혜 주변에 사방 십리길은 이미 섰기 때문이다.

 

권력의 전환이라는 건 그런 거다. 푹 고개 숙이고 묵묵히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감우성처럼 잽싸게 기회를 잡거나

 

3.

그 때나 지금이나 민주당 쪽에는 별 감흥 없는 후보들이 서 있는 건, 뭐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거야 개인적 주관이니, 순전히 내 생각이다.

 

그 와중에도 미묘하게 차이가 있다. 내가 대선후보들의 캠프를 속속들이 구성원이니 분위기를 다 뒤져본 건 아니지만, 나도 이 짓을 10년째 하다 보니, 다른 건 몰라도 정책 전문가나 조언 그룹의 배치 구조나 흐름 같은 건 조금은 알게 된다.

 

약간의 차이점을 감안하고 내가 느낀대로 얘기해보자.

 

문재인 주변에, 일단 선수는 없다. , 꽤 줄을 서 있을 것 같은데, 사실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몇 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만 보자면

 

전문가들은 기본적으로, 박쥐이다. 이건 나를 포함해서 하는 얘기이다. 그리고 소위 선거 시장에서 정말로 자신이 무엇인가 내다팔 게 있다면, 그리고 그걸 정말로 자기가 만들었다면, 최소한 5년간 작업한 걸 한 번에 파는 일이다. 문재인에게 줄을 대서라도 자기가 가진 걸 팔고 싶다면, 차라리 박근혜에게 가서 파는 게 낫지 않겠는가?

 

30대 전문가들이 명박에게 줄을 대는 건, 5년 전에는 보기 어렵던 일인데, 요즘 박근혜 주변에서는 쉽게 볼 수 있다. 나도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전문가들의 행동 패턴만 보면, 명박 때보다는 박근혜 쪽을 줄을 서는 빈도가, 훨씬 높다. 명박과 근혜 사이에 무슨 특별한 차이점이 있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벌써 새누리당의 두 번째 집권을 바라보는 시기라서 그런 건지, 그건 판단이 잘 안 선다. 어쨌든 30대 혹은 40대 초반 전문가들이 새누리당에 줄줄이 줄을 서는 것은, 지난 번에는 잘 못 보던 현상이다.

 

약관 과장해서 말하자면, 문재인을 만나고 싶은 전문가가 1명이 있다면, 근혜를 만나고 싶은 전문가는 100명이다. 도저히 그 규모상, 개임이 안 된다.

 

지난 대선 때 전문가 그룹이 가장 많았던 사람은 정동영이었고, 그 이후에 측근에 괜찮은 학자가 많았던 것은 손학규와 정세균이었다. 두 사람 다, 그렇게 이번에는 그렇게 든든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지는 못하는 걸로 알고 있다. 팀이 리그 순위가 내려가면 잘 하던 선수들도 송구 에러 같은 것을 주로 일으키는 현상과 비슷하다고 할까? 돕기는 돕는데, 목숨을 걸거나 신명나게 하지는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쩔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김두관? 여기는 좀 판단이 어렵다. 김두관이 갖는 인간적 장점과, 또 동시에 발생하는 인간적 약점이, 사실 같은 문제의 앞뒷면 같은 건데

 

그냥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서류응시 분위기 생각하면 비슷할 것 같다. 대기업이 뭐 특별한 거 해준다고 하는 것도 아닌데, 하여간 서류가 물밀듯이 밀린다. 반면 지방의 중소기업에서, 사람 뽑기가 정말 어렵지 않은가?

 

캠프 규모만이 아니라 캠프 분위기만으로 본다면, 근혜와의 게임은, 사실 하나마나다.

 

이건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라, 어지간히 사정 좀 볼 수 있는 사람들은 벌써 몇 달 전부터 이구동성으로 하던 얘기이고.

 

그렇다면 안철수는? 줄 대고 싶은 사람은 적지 않은데, 안철수는 줄 대는 걸 그렇게 선호하지는 않는 사람인 듯 싶다. 사람들의 상상과는 달리, 매우 외롭고, 그래서 외로운 결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4.

객관적인 정황이나 상황 아니면 사기 같은 걸로 보더라도, 이 게임은 이미 하나마나한 게임이기는 하다. 이거야말로 하나마나한 말이고.

 

그렇지만 나는 적어도 내가 하는 일의 계획이나 내가 마무리해야 하는 일을 근혜시대라고 전제하고 구상하지는 않는다. , 어차피 별 하는 일이 없어서 그런 이유도 있고. 그러나 진짜로는, 나는 아직도 근혜가 대통령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 그렇다고 지금부터 남은 기간, 야당 쪽의 대선후보가 뭘 엄청나게 잘하거나, 갑자기 대오각성해서 신기를 부르면서 한 손에는 장창을 들고, 또 다른 한 손으로는 하늘의 바람을 부르며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명박 때나, 근혜 때나, 누가 뭘 잘 해서 이기는 게 아니라, 저 쪽이 너무 못해서 이기는, 그런 형상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서, 후보다 너무너무 잘 해서 승리했던 건, 적어도 대선에서는 노무현 때가 마지막이 아니었나 싶다.

 

몇 년 전부터인가, 한국에서는 기분이 너무너무 좋아지면 망한다는, 이상한 징크스 같은 게 있는 듯 싶다. 홍준표가 대표적으로한나라당 대표되고 기분이 너무너무 좋아졌는데, 아드레날린 과다분비로, 망했다.

 

싸움이라는 게, 꼭 많은 군대와 튼튼한 보급 그리고 확실한 작전, 그런 것만으로 이기는 건 아닌 듯 싶다.

 

이유가 몇 가지가 더 있는데, 너무 길어지니 대충 생략하고하여간 난 누가 이길지는 모르지만, 이길 가능성은 높다고 아직도 생각을 한다.

 

요즘 박근혜 쪽 책사들, 기분이 너무 좋아졌다. 특히 경제 전문가들, 얼마나 신이 났던지. 옛말에 호사다마라고 했다.

 

나는 꼽사리다운영할 때, 나는 대선에서 진다는 전제로 그 방송을 기획하거나 준비하지는 않는다. 솔직히, 진다고 생각하면서, 아니 질 것이지만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으로는, 그렇게 매주 내용을 채우고, 몇 주 후 혹은 몇 달 후에 방송할 아이템을 동시에 준비하면서 그렇게 만들지는 못한다.

 

연구소로 치면, 연구원 두 명과 보조 연구원 둘이서 매주 연구 보고서 하나씩을 내놓는 건데, 최선을 다한다는 정도의 마음으로는, 그렇게 못한다.

 

5.

요즘은 참 어려운 시기이다.

 

난 축구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국가대표 축구팀은 싫어하고, 월드컵에서의 스포츠 쇼비니즘 광기는 정말 싫어한다. 그렇다고 기왕 나갔는데, 우리 팀 지라고 하지는 않는다. 나도 게임은 보고, 가능하면 이기면 좋겠다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그게 우리나라의 대표팀이니까 꼭 잘 해야 한다고 하는 건, 요건 아주 싫어한다.

 

하여간 국가대표 축구팀이 게임에 나서면, 아주 지겹도록 경우의 수를 계산하다. 박근혜와 이 쪽의 게임은, 16강 턱걸이에 걸려있는 월드컵 국가대표팀의 경우의 수 따지기보다 더 고약하다. 객관적으로 따져볼 게 없지 않은가?

 

요즘 호사가들이 하는 말을 그냥 옮겨보면

 

민통당 경선은 문재인이 무난하게 이기고, 문재인과 안철수의 경선에서는 안철수가 무난하게 이기고, 안철수와 박근혜의 본선은 박근혜가 무난하게 이긴다

 

누가 만든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렇게들 말한다.

 

이걸 보고 있으면,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든 혹은 어떤 다짐을 하든, 참 어려운 시기 아니겠나?

 

위로라는 말은, 솔직히 오랫동안 재수없다고 생각했었다. 위로의 뜻이 나쁜 게 아니라, 요게 속된 말로 신자유주의의 자본의 음모와 결합된 기묘한 상술 같은 경우가 많아서, 참 재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요즘은, “위로가 필요해”, 이 문장에 대해서 공감을 하게 된다.

 

이 쪽이 뭘 잘 해서 이기기가 아주 어렵게 된, 진짜 더럽게 꼬인 게임, 그런데도 시간은 다섯 달이나 남아있고, 마음 속에서 무너지면 안되는 게임. 게다가 상대방은 언론과 검찰 등 법제도의 철저한 보호 아래, 전문가들 마저도 학자라는 이름은 버리고 그냥 줄줄 서 있는 상황, 여기에서 최소한 지지 않는 접점을 유지하는 것,

 

그게 위로의 힘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좀 한다.

 

물론 그런 마음으로 서로에게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위로가 필요하다면, 그게 바로 이 순간이 아닐까 싶다.

 

이건 아주 요상한 야구 게임을 외야에서 응원하고 있는 것과 같다.

 

실책을 줄이는 팀이 지지 않는 것.

 

그러나 우리가 응원하는 팀은, 급조된 팀이며, 2군에서 엉겁결에 올라와 1군 게임을 치루는 팀과 같아. 실책이 아주 많고, 상상하는 것 보다 더 많은 실책을 할 것이다.

 

그런데 상대방이 더 많은 실책을 하기를 바라면서, 특히 더 결정적 실책을 하기를 바라면서 야구 게임을 보는 것과 같다.

 

오랫동안 꼴찌만 하는 팀들을 계속해서 응원했었다. ‘G’라고 불리던 LG를 오랫동안 응원했고, 붙박이 꼴찌 한화를 응원했다.

 

그래도 나름, 즐겁고, 재미도 있다. 이런 말이 위로가 될까? 하여간 그렇게 아주 가끔씩은 서로 위로를 하면서,

 

기본적으로는 연합군인 데다가, 연패 중이고 리그 꼴찌를 기록하는 팀

 

, 그게 우리 팀이다.

 

그러나 이번 리그에는 프로야구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다. 마지막 한 게임 이기는 팀에게 리그 우승이 주어진다는 거.

 

이런 말이 좀 위로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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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일요일 오후, 행복한 점심

 

새끼 고양이들이 태어난 날짜는 정확히 모른다. 한 달 보름 아니면 두 달 정도 된 것 같은데, 아직도 얘들이 젖을 완전히 떼지는 못했다. 가끔 보면 아기 고양이들이 엄마에게 꼭 붙어서 젖을 먹기도 한다.

 

한 달 조금 넘는 시간이지만, 고양이들의 세계에서는 큰 일들이 있었다. 아기 고양이 두 마리는 먼저 고양이별로 갔다. 아들 고양이라고 부르던 녀석은 바보 삼촌이라는 새로운 별명이 생겼다. 검둥이에게 밀려서 며칠, 집에 들어오지 못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어쨌든 검둥이를 다시 밀어내고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자기들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은,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길이 별로 없다.

 

그리고 엄마 고양이가 한참 아팠다. 바이러스성 질환이라고 하는데, 약 한 달 정도 먹이면 금방 나을 거라고 병원에서는 말했다. 엄청 비싼 약을 사다가 먹였는데, 그야말로 배달이 문제였다. 캔에 조금씩 타서 주는데, 남자 고양이들이 지들이 먼저 싹싹 먹어버리는데, 약을 먹일 방법이 없었다. 하여간 그렇게 한 달 가량 애를 태우기는 했는데, 캔을 따줘도 보는 둥 마는 둥 하던 녀석이 얼마 전부터 식욕을 회복해서, 그야말로 폭풍흡입을 시작했다. 아기 젖 주는 동안은 더 많이 먹고, 어떻게든 먼저 먹으려고 할 것 같은데, 그러지를 않았다.

 

 

정말로 몇 주만에 마당 고양이 일가가 다 모여서 밥을 먹게 되었는데, 늘 보던 풍경 같기는 하지만, 사실 간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바보 삼촌은 어디 안 가고 늘 마당 한 구석에 있고, 뭐 먹을 걸 주면 제일 먼저 와서 먹는다. 정말 눈치 없이 자기 입만 알아서 바보 삼촌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는데, 녀석이 없는 마당은 텅 비어 보였다.

 

아기 고양이들이 태어난 이후, 세상은 그야말로 새누리당 세상처럼 바뀌어버렸고, 박근혜의 힘은 절정을 향해서 치닫고 있다. 줄 설 사람들은 벌써 박근혜 쪽에 어지간히 줄을 서기는 한 것 같고, 자신의 인생을 놓고서 한 번씩들 도박을 하는 듯싶다.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30대 전문가들 중 보수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이번에 바꾸는 사람들의 심경을, 솔직히 잘 이해하기는 어렵다. 엄청나게 자신이 보수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면 이해가 되는데, 꼭 그런 것도 아니고

그럴 때, 인생은 길다, 그런 얘기를 해준다. 삶이라는 것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자신이 믿는 것과 어느 정도 비슷하게 서 있을 때, 긴장이 가장 적고, 후회도 적은 것 아니겠는가?

 

새끼 고양이들이 드디어 밥을 먹게 된 지난 한 달 동안 가장 보람있는 일은, 곽노현 교육감을 나꼽살에 초청해서 방송을 할 수 있던 것 그리고 그의 충판 기념회에 한 구석을 도울 수 있던 일.

 

그 일련의 일들 준비하면서, 세상 인심이라는 생각을 약간 하기는 했다. 나는 원래 누군가가 힘들고 어려울 때에만 그 사람을 만나고 그 주변에 있어주려고 하는 편이라서, 나중에 대법원 판결은 어떻게 나더라도, 지금까지의 상황만으로도, 나는 보람을 느꼈다.

 

보람이라는 게 뭐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싶다.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보람이라는 것은 일상에 늘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 남아있는 고양이들의 이름은, 강북과 생협이다. 두 마리 다, 그 때 내가 가장 많이 사용하던 단어를 그냥 붙여준 거다. 생협 얘기 많이 할 때 생협을, 강북 얘기 막 시작하고 개념 정리할 때 강북을.

 

고양이들의 시간은 사람의 시간과 다르다. 훨씬 빠르고, 훨씬 역동적이다. 길고양이들의 경우는, 훨씬 더 빠르다. 두 번의 겨울을 넘기기가 쉽지 않고, 대부분 세 번째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 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 하루하루를 더욱 즐겁고 재밌게 사는 게 고양이들의 세계일지도 모른다.

 

끝이 좋아야 모든 게 좋다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적쟎이 있을 것 같다. 결과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사유 양식일텐데, 이런 사람들의 눈으로는 모든 고양이들은 다 불행해 보일지도 모른다. 길고양이들은 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죽는다. 단 한 녀석도 결과로 환원한 시각에서는, 행복이라는 게 없다는 게 논리적 결론일지도 모르지만. 어떤 고양이도 명예를 가지거나 명성을 갖지는 않는다.

 

숙종이 키웠던 고양이는 임금님 무릎에 앉아서 고기반찬을 먹고 살았다. 그리고 숙종이 죽자, 식음을 전폐하고 버티다가 같이 죽었다. 그래서 숙종 옆에 묻혔다고 들었다. 그런 눈으로 보면, 모든 길냥이의 삶은 불행하게만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게 아니다. 대학에 갈 때까지 모든 행복을 연기하는 지금 한국의 교육, 그건 모두를 불안하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지독할 정도의 결과주의 시각만을 사람들에게 탑재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 순간의 행복을 찾는 것, 그런 걸 고양이들에게 더 배워야 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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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의 날들

 

바보 삼촌이라고 부르는 아들 고양이는, 좀 덜떨어진, 그래서 약지 못한 고양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작년 장마, 마당에서 태어난 세 마리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았고, 결국 내가 아침, 저녁으로 고양이들 수발을 들게 만든 바로 그 녀석이다. 장마 내내 마루 앞에서 울어대던 세 마리 고양이 중, 가을을 맞은 것은 이 녀석 밖에 없었다.

 

녀석과 추운 겨울을 같이 보내면서, 매일 같이 지난 밤을 무사히 보냈는지, 그야말로 조석으로 문안하듯이 살폈던 녀석이다. 새로운 아기 고양이들이 태어난 다음에, 바보 삼촌이라는 별명을 얻기는 했지만, 그래도 정말로 내 자식만큼 귀여워하면서 지낸다.

 

지난 주부터 녀석에게 시련의 시간이 왔다. 늘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니라서, 우리 집에 와서 밥 먹고 가는 고양이가 몇 마리인지, 나도 정확히는 모른다. 회색 줄 가진 녀석이 얼마 전부터 종종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정말로 가끔이나 보게 되는 아빠 고양이까지 치면 7~8마리는 되는 듯싶다. 그 중에 지금 아기들의 아빠인 검둥이와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물론 당연히 나는 바보 삼촌편을 들지만, 이건 엄연히 자기들 세계의 일이라, 내가 딱히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밤이나 새벽이나, 싸우는 소리가 들리면 나가 보고 가끔 빗자루 같은 걸 들어서 위협도 해보지만, 워낙 빨라서소용 없다.

 

토요일부터 바보 삼촌이 보이지가 않기 시작했는데,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안 가던 광이나 주차장 지하까지 뒤져봤는데, 없다

 

녀석은 우리 집에서 태어나서 평생을 내가 주던 밥을 먹고, 마당 한구석에서 엎어져 자는 것만 해봤기 때문에, 자기 부모들하고는 또 다르게, 집 밖에서는 살 수가 없다. 이사 갈 때에도 데리고 갈 수밖에 없는 게, 녀석에게는 야생의 생활이라는 게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녀석이 있던 자리에는 검둥이가 대신 앉아있고, 아직 바이러스 감염이 다 낫지 않은 엄마 고양이 먹으라고 챙겨주던 특식까지 녀석이 벌렁벌렁 먹고 자빠졌으니, 이거야 원. 워낙 날래서, 하루 종일 붙잡고 있을 것 아니면, 나도 수 없다.

 

그 동안 정동영의 대선 불출마 기자회견이 있었고, 박원순 시장에게 보낸 조그만 보고서를 놓고 회의 일정이 잡혀서 이래저래 회의 조율하고 있었다. 아직 초고는 못잡았지만, 곽노현 교육감을 위한 조그만 보고서 하나를 준비하는 중이고, 새 책도 나왔다. 이래저래 정신 없이 며칠 지나면서, 정말로 마음 한 구석에 무거움이 많았다.

 

녀석에게는 그야말로 삶이 걸린 절체절명의 시간이다. 전에도 녀석이 검둥이의 도전을 받은 적이 몇 번 있었는데, 대개는 아빠 고양이가 끼어들어서 싸움은 싱겁게 끝났다. 정말로 아직 어리던 바보 삼촌이 검둥이에게 쫓겨서 죽기살기로 도망가는 장면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엄마 고양이가 갑자기 담장에서 뛰어내려오면서 검둥이를 크게 한 번 쳤다. 그러나 바보 삼촌도 이제는 다 컸고, 매번 그렇게 엄마가 도와주지는 않는다.

 

팻 로스라는 말이 있었다. 키우던 동물을 떠나 보냈을 때 느끼는 상실감인데, 사람이라는 게, 원래 그런 존재가 아니더냐? 야생 고양이들을 돌보다 보면, 일상적으로 느끼는 것보다 더 자주, 더 많은 고양이를 떠나 보내게 된다.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기는 녀석들이 있다.

 

지난 달에만 아기 고양이 두 마리를 떠나 보냈다. 한 마리는 너무너무 예뻐서, 정말로 녀석이 고양이별로 떠나고 난 다음에 꿈에 나왔다. 또 다른 한 마리는, 그 전날까지도 분명히 잘 뛰어다녔는데, 그 다음 날 마당 한 구석에서 뻣뻣하게 굳어있던 시체로 만나게 되었다. 내 손 안에서 죽어가던 고양이, 죽었던 고양이, 그런 기억들이 많다. 그 때마다 크든 작든, 슬픔을 만나게 된다.

 

시련

 

삶은 시련의 연속이기도 하다. 아무리 아닌 것처럼 생각하려고 해도, 시련이 계속해서 생겨나는 것을 어쩔 수는 없다. 그건 고양이들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눈물 따위는 흘리지 않을 거야!

 

이게 무슨 캔디 주제가냐. 그러나 나는 눈물이 원래 많다. 특히 혼자 있을 때나, 영화를 볼 때나, 눈물을 아주 많이 흘린다.

 

결국 오후에 나가면서 평소에 고양이 밥을 주지 놓지 않던 뒤뜰에도 먹이를 놓았다. 검둥이 힘에 밀려서 앞마당은 못 오더라도, 뒤편 한 구석에서라도 바보 삼촌이 혹시 근처에 오면 밥 먹으라고.

 

꼽사리 녹음 끝내고 밤에 들어오는데, 바보 삼촌이 마당 한 구석에서 아기 고양이들과 놀고 있었다. 어두운 밤에 세어보는데, 네 마리, 다 있다바보 삼촌 등에서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놀고 있다가 나를 보고 후닥닥 도망갔다.

 

느낌 없는 멍한 표정, 분명 바보 삼촌!

 

명박 시대를 지내면서 삶에 기쁨을 느낄 일이 이런 것 밖에 없나, 그런 한심한 생각이 잠깐 들기도 하지만, 정말로 반갑고 고마웠다. 녀석은 이제 겨우 한 살, 삶을 마감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이다. 바보 삼촌이 세상의 즐거움과 환희를 조금은 더 맛보고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싶다.

 

비 오는 새벽, 우산 들고 다시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러 나가는 것은, 먹이가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 녀석들의 영토 싸움이 더 세질 것이기 때문이다.

 

멋지고, 잘 생기고, 똑똑하고, 강한 것만이 숭상 받는 시대, 나는 바보 삼촌에게 밥 주러 나간다. 우리는 너무 오래, 강한 것만을 숭상하면서 살아왔다. 그건 좀 아닌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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