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 드디어 새로 태어난 새끼들을 만나게 되었다.

 

난 가장이라는 생각 자체를 별로 해본 적도 없고, 그런 식으로는 생각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밥을 하거나 밥을 주어야 하는 존재들은 계속해서 늘어간다.

 

이미 새끼들이 태어났을 거라고는 생각을 했는데, 굳이 찾아나서지는 않았다. 그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엄마 고양이가 갑자기 바짝 말라서 나타난 걸 본 건 며칠 전이다.

 

그렇다고 찾아 나서지 않은 것은... 내가 본다고 해서, 더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없고, 오히려 불편하게 할 뿐이다.

 

작년에 태어난 녀석들은 장마철 내내 마루 앞의 화단에서 울어댔었다.

 

지금 아들 고양이라고 부르는 녀석이 혼자 가을까지 살아남았다.

 

 

 

 

이 녀석에게는 현충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현중일날 처음 봐서 그렇다. 생일이 현충일인 셈이다.

 

어쨌든 첫 외출이었을 것 같다.

 

부랴부랴 뛰어가서 캔을 뜯어주었는데, 다 큰 녀석들이 먼저 먹어버리고 녀석에게는 찌그러기가 차례가 갔다.

 

우유를 갖다 줘야 하나, 뭘 줘야 하나 잠시 고민하는 사이,

 

캔에 낼름 달려둘어, 캔을 엎어버렸다.

 

그리고는...

 

이제 겨우 눈을 뜨고, 엄마 젖도 아직 다 떼지 않았을텐데.

 

 

누가 따로 가르켜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 먹는다.

 

자세히 확인해보지는 않았는데 - 사실 확인할 길도 별로 없지만 - 수컷이 아닐까 싶다.

 

아마 아빠는, 역시 마당에서 살고 있는, 내가 검둥이라고 부르는 녀석일 거다.

 

얘가 수컷이 아니면, 아주 계산 복잡해진다.

 

 

 

현충, 그 이름은 복합적이고, 중의적이다.

 

막상 그렇게 부르기로 하고 나니, 이미지와도 나름 어울리는 것 같다.

 

 

그리고 두 번째 녀석.

 

얘는 삼색 고양이, 볼 거 없이 암컷이다.

 

사람들이 멘붕을 호소하는 시기에 태어났다는 의미에서, 멘붕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3년 전인가, 이 마당에서 삼색 고양이 모녀가 잠시 살았던 적이 있었다.

 

 

 

 

이것저것 생각할 틈도 없이, 얘는 그냥 성묘용 사료를 먹기 시작한다.

 

아빠가 한 덩치 하는 범상치 않은 녀석이었는데, 역시 강하다...

 

그리고 엄청 귀엽다.

 

 

이 가족의 족보가 좀 복잡하기는 한데...

 

어쨌든 엄마와 삼남매라고 해야 하나?

 

이제는 엄마보다 덩치가 더 커진 아들 고양이. 벌써 분가해서 나가는 게 일반적이기는 한데, 어쨌든 이렇게 한 가족이 되었다.

 

이사가는 날이 정확하게 정해지지는 않았는데, 가을이 끝나갈 때나 겨울이 시작될 때, 이사를 가게 된다.

 

몇 마리가 되든, 그 때까지 같이 사는 녀석들을 데리고 가려고 한다.

 

그 때까지는 지네들 살고 싶은 대로 살게 내버려두고.

 

중성화 수술에 대해서는 좀 복잡한 생각이 있는데, 어쨌든 이 경우에는 별로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중성화수술을 시켜주고, 퇴원하면서 이사갈 집으로 데리고 가기로 했다.

 

이사가는 집은 지금 집에서 2킬로미터 약간 안되는 거리이지만, 고양이들이 알아서 찾아올 수 있는 거리는 아니고.

 

 

 

 

 

멘붕이라고 부르기로 한 새끼 고양이, 진짜 귀엽다.

 

두 마리 다 예방접종도 시켜주면 좋겠는데, 그건 별로 방법이 없다.

 

광견병도 문제겠지만, 철마다 고양이들 사이에서 유행병이 돌기도 한다. 예방주사 외에는 약이 없는 경우도 꽤 있는 걸로 안다.

 

 

엄마에게 달려가는 현충과 멘붕,

 

진짜 눈물 날 듯하게 감동적이었다.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것이고, 다 소중한 것인가, 그런 생각을 어찌 안할 수 있겠는가?

 

 

새끼 고양이들이 마당에서 쉬고 있다.

 

쉽게 보기 어려운 장면이고, 또 쉽게 포착하기도 어려운 장면이다.

 

녀석들이 삶의 주인이 되어서 신나게 뛰어다니는 시간이 오래지 않아 올 것이다.

 

고양이들의 시간은 사람보다 짧다. 압축해서 시간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그래서 또 떠나보낼 때의 아픔도 있다.

 

처음 키웠던 엄마 고양이 생각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두 번의 새끼를 낫고, 겨울이 다 끝나가던 어느 날, 쥐약을 먹고 현관 앞에 쓰러졌다.

 

그 때는 정말 많이 울었었다.

 

내가 집을 나왔던 것이 거의 그즈음이었다.

 

 

 

삼색 고양이는, 엄청 귀엽다. 그리고 놀랍도록 씩씩하다.

 

나에게도 이렇게 어렸던 시절이 있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녀석을 보자마자 멘붕이라는 이름이 떠오른 것은, 도움이 될지 안될지 모르지만, 지금 멘붕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보낼 수 있는 작은 위로라는 생각이 들어서.

 

고양이는 금방 자란다. 가을이면 벌써 새끼 티를 벗고, 겨울이면 적어도 겉모습으로는 성묘와 구분하기가 어려워진다.

 

 

 

어쩌면 아직 만나지 못한 새끼 고양이가 한 마리쯤 더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 걸어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엄마와 두 마리의 아기 고양이,

 

이 사진은 좀 공을 들여서 찍었다. 이런 모습을 살면서 몇 번이나 만나게 되겠는가.

 

막상 '명박 시대'를 제목으로 포토 에세이를 준비한다고 한 다음부터, 모티브를 찾지 못해서 몇 달 동안 좀 애먹고 있었다.

 

아내는 8월이 출산 예정이다.

 

아직까지는 출근을 하는 중이고, 바깥에서 식사를 잘 못해서 매일은 못하지만, 거의 매일 저녁을 준비하는 중이다.

 

원래 계획으로는, 요 맘때쯤 어떻게든 부탁을 해서 원자력 발전소 내부의 사진들도 좀 찍고, 화력 발전소의 발전기들도 좀 찍고, 그럴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꼼짝을 하기가 어렵다.

 

낮에 움직여서 아파트 재건축 현장 같은 데라도 좀 찍을 수는 있는데, fta 책 등, 그야말로 나도 일정에 쫓겨서 그렇게 하기도 어렵다.

 

작년까지는 출장도 많이 다니고, 특히 거의 매주 지방의 현장에 갈 일이 있었는데, 딱 포토 에세이를 준비하려고 하는 올해는...

 

뭐,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삶이 매일매일 이렇게 축하할 일로 가득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너무 오랫동안 우리는 뭔가 증오하거나 저주하거나, 미워하면서 그렇게 시대를 인식했는지도 모른다.

 

지칠 법도 하다.

 

오늘은 하루 종일, 새로운 탄생에 대해서 축하를 하면서, 미래를 기원하면서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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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똥풀이 한참 피어있다. 노란색이 워낙 많아서, 안하던 짓을 해보았다.

 

삶이라는 것은, 그냥 아름답거나, 그냥 추한 것만은 아니다. 모든 것은 복합적이고, 다면적이다.

 

그 속에서 한 가지 속성을 드러내는 일, 그게 학자들이 주로 하는 일이다.

 

요즘 송도 신도시와 새로 분양되는 보금자리 주택에 대한 생각을 좀 많이 하는 편이다.

 

아파트 분양할 때, 이것저것 사기치는 얘기들을 업자들이 많이 한다.

 

그 최고의 결정판, 어떻게 보면 한국판 디버블링의 클라이막스에 송도 신도시가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나는 해운대가 그 클라이막스가 될 거라는 생각을 계속 했었는데, 송도에서 벌어지는 사기극에 비하면 해운대는 아무 것도 아니다.

 

일단 10년만 참고 견디면, 송도가 분당도 되고, 일산도 된다는데...

 

요코하마에 가보지 않았다면,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요코하마의 크고 작은 신도시를 채우기 위해서 요코하마가 했던 눈물나는 노력들.

 

그런 뉴스들을 모아서 계속해서 추이를 보고, 가격 지표 같은 것을 찾아보고, 유사한 다른 나라의 도시들에 대해서 점검을 하고...

 

그리고 내 생각을 정한다. 그리고 다른 뉴스가 있으면 다시 업데이트 하고.

 

송도 얘기하는 사람들에게, 속으로 해주고 싶은 얘기가... 목동을 보라. 목동 아파트 가격 내려가는 것이, 그보다 열등지인 다른 모든 아파트들의 미래가 아니겠나 싶다.

 

동경에서 얼마 전부터 은행에서 그냥 살기면 하면 지원금을 주기 시작한다고 들었다.

 

스톡으로 은행에서 붙잡고 있는 집들은 사람이 안 살면 금방 황폐해진다. 달리 스톡을 처분할 길도 없고, 그렇다고 가까운 시간 내에 대대적인 정책이 나올 가능성도 없고.

 

결국 은행에서, 큰 돈은 아니더라도 그냥 살아주기만 해도 돈을 주는 순간이 오게 되었다. 동경에서 본 게 그런 거다.

 

송도, 정말 택도 없는 얘기이다. 평당 가격으로 비교해보든, 거리로 비교해보든, 성공했다고 치고 단지가 살만한 순간이 되는 시간을 놓고 봐도, 택도 없는 가격이다. 밑바닥을 쳤다고 업자들이 말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택도 없다.

 

그렇지만 다만 가격을 놓고 송도의 업자 마케팅이 한국 버블의 클라이막스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10년을 잊고 지내면..."

 

사람이 살아야 얼마나 살겠는가. 삶에서 10년은 그냥 처박아놓고 버릴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고양이들을 본다.

 

엄마 고양이는 벌써 나와 두 번의 겨울을 같이 났다.

 

평균적 길고양이의 수명으로 치면, 아무리 내가 애지중지 키우더라도, 이번 겨울을 나기가 확률적으로 어렵다.

 

가을이 되면, 아들 고양이와 엄마 고양이, 중성화수술을 해주고, 새로 이사가는 집으로 데리고 갈까, 고민이 많다.

 

엄마 고양이는, 이번 여름과 이번 가을이, 어쩌면 살아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일지도 모른다.

 

아파트 투기를 위해서 인생의 10년을 포기하라...

 

이 정도면 이제 업자들의 투기 충동질이 거의 막장까지 온 거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래서 테제 하나를 바꿨다.

 

한국의 디버블링은 해운대에서 시작한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아마 송도에서 시작하게 될 것 같다...

 

이런 계산을 막 하고 있다가 엄마 고양이를 보았다.

 

생명의 아름다움, 삶의 존귀함,

 

그런 얘기를 혹시라도 송도에 가서 10년을 참고 버티면 뭔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었다.

 

길고양이 한 마리라도 보살피다보면, 투기꾼들이 말하는 시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배울 수 있을 듯 싶다.

 

 

고양이가 웃는다.

 

그 웃음은 나에게 평온을 준다.

 

송도의 10년, 그건 아무에게도 어떤 평온도 주지 못한다.

 

송도의 평당 1,200, 길고양이 한 마리 만큼의 가치도 없는 수치이다. 나는 그렇게 이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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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꽃이 드디어 꽃잎을 말아올렸다.

 

끛으로 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나는 감자꽃을 좋아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괜히 몽환적인 느낌을 받는다.

 

감자에 조금이라도 더 영양분이 가라고, 감자꽃은 많은 경우 떼어낸다. 꽃이 열려야 뭔가 열리는 다른 과일들과는 다른 대접이다.

 

그래도 나는 좋아한다.

 

좋은 데 이유가 있겠나.

 

 

자주 달개비가 꽃잎을 벌리기 시작한다.

 

동글동글 말려 있는 꽃잎을 보며, 긴장감이 팽팽함을 느낀다.

 

사람으로 치면 18세? 19세?

 

마치 온 우주가 이 꽃잎이 펼쳐지기만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팽팽한 순간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을, 요즘 그 어느 때보다 많이 한다.

 

아름다움은 마음 속에 있는 것, 그런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보면, 아무 것도 아닌 멀대에 작은 몽울 하나 맺혀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참 예쁘다.

 

문득, 한국의 19세, 그런 생각이 잠시 들었다.

 

막 펼쳐지려는 꽃망울,

 

그 순간은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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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몽우리가 맺히더니, 오늘 드디어 감자가 꽃을 피웠다. 올해는 봄에 정신이 없어서 감자를 아주 늦게 심었다. 이렇게 늦어도 뭐가 날까 싶었는데, 그래도 꽃이 났다.

 

총선 이후, 괴롭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고, 매일 같이 아무 것도 하기 싫다는 마음을 억지로 누르면서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살면서 별나게 즐거운 일이 뭐가 있을 게 있겠나. 이제는 어지간히 즐거운 일에도 별로 반응하지 않고, 또 왜만큼 실망스러운 일에도 크게 마음이 움직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평상심을 잘 유지하느냐그런 건 아니고, 그냥 사람이 무뎌가는 중인 듯 싶다.

 

요즘은 박근혜 세상이다. Kbs 라디오를 자주 듣는데, 요즘 동구밭 과수원길, 뭐 이런 노래도 나오고, 목화밭도 나온다. 70년대 복고풍이라고 하기에는, 정말 복고스러운. 박근혜와 같이 살아갈 세상이 어떤 것인지 미리 보여주는 듯하기도 하다.

 

지난 6개월간은 정말 fta와 같이 살아왔고, 하루의 대부분을 fta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보냈다.

 

발효는 이미 했고, 한중 fta, 한일 fta, 연일 난리이다.

 

그 와중에 모든 일정을 뒤로 미루어놓고 fta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게, 이게 생각보다 어렵다.

 

그래도 누군가는 얘기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붙잡고는 있는데, 흥이 막 나서 신이 나는 그런 상황이 아닌 건 당연하지 않은가?

 

원래 꽃 사진도 잘 안 찍고, 접사도 별로 즐기는 편은 아니다. 올 봄에는, 꽃 사진을 아주 많이 찍었고, 안 하던 접사도 많이 했다.

 

작은 것에서라도 기쁨을 찾거나, 아름다움을 찾지 않으면, 지금 어떻게 버티면서 계속해서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갈 수 있겠나, 그런 거 아니었나 싶다.

 

마당에 감자꽃이 피는 날, ‘fta 한 스푼본문을 끝냈다. 잠시 머리 좀 돌리고, 에필로그를 마치고 나면 지난 겨울부터 끌어온 fta 책은 내 손을 떠나간다. 물론 뒤쪽에서 생각이 좀 바뀐 것들이 많아서, 앞 쪽 내용들에 튜닝을 좀 해야하기 때문에, 당장 원고 작업이 끝나는 건 아니다.

 

한참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서 책을 쓰는 것은, 변화하는 상황을 계속해서 보고, 출간된 시점에서의 상황 그리고 그 후의 6개월, 1년 후도 조금씩은 생각을 해야 하기 때문에, 특히 머리가 아프다.

 

Fta 같은 경우는, 급격하게 사회적 힘이 빠지고, 패배와 좌절감 그리고 그 후에 몰려오는 아른한 듯한 피곤함, 그런 것들 앞에 서 있어야 하는 것이 특별히 힘든 경우였다.

 

총선은, 졌다. 그리고 총선의 패배 이후로, 소위 해석투쟁이라고들 하는데, 중 정치인들은 한미 fta를 전면에 내걸었던 것을 패배 이유로 찾는 것 같다. 별로 그런 것 같아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 얘기를 한다고 해서, 뭐 특별하게 할 얘기가 있지도 않고, 서로 명예롭게 논쟁을 이끌어나갈 듯 싶지도 않아, 그냥 입 다물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는 통합진보당 사태가 생겼다.

 

정치적으로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어쨌든 fta 싸움의 한 영역을 맡아주던 곳이, 그렇게 그냥 무너져 내려갔다. 그 사람들, 지금 fta 고민할 정신은 없을 거다.

 

가만히는 있지만, 참 힘들다.

 

그렇다고 엄청난 한 방이 있어서사실 그런 것도 아니다. 틀을 바꾸고, 프레임을 바꾸어서 다른 해석을 해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나라고 무슨 땡수가 있어서, 다들 기둘려봐, 그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별 수 없는 건, 나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상황에서, 꾸역꾸역 참으면서, 하여간 일단 본문은 마쳤다. 재밌는 얘기도 꽤 들어갔고, 전혀 다른 시각도 좀 들어가 있지만결정적 한 방은, 없다. 하긴, 그런 게 이런 구조에서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노무현 컨센서스라는 말을 새로 만들었다.

 

마음이 편치는 않지만,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기에는 제일 적절한 용어인 것 같아서, 며칠 고민을 하다가 그냥 썼다.

 

마지막 몇 페이지를 한달음에 썼는데, 감자꽃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본 게 사실이다.

 

보통은 감자 꽃이 피게 두지는 않는다. 감자는 뿌리에서 열리는 거라서, 꽃이 피어간 말거나 상관도 없고, 씨감자도 그냥 감자에서 나온다. 괜히 영양이 꽃으로 가는 건 손해라서, 감자 꽃은 떼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꽃이 피어야 열매를 맺는 다른 작물과는 좀 다르다.

 

내가 감자 키워서 팔 것은 당연히 아니고, 오히려 씨알이 작은 씨감자가 찌개에 넣으면 더 맛있다. 껍질 안 벗기고 넣을 수 있는 작은 감자, 햇감자.

 

감자 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감자에게서

 

존재에 의미 같은 게 있겠나, 그냥 존재는 존재로서의 의미이다. 그리고 그 존재로서 아름다운 것이다.

 

별 의미는 없을지 몰라도, 감자 꽃에 대한 생각은, 문득 이 시기의 내 삶에 대한 생각과 비슷하게 만나는 점이 있는 것 같다.

 

시대, 참 어두운 시대를 살아간다. 한미 fta에 대해서 고민하는 내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이게 무슨 정치 절차를 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엄청난 사회적 절차를 새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난 최선을 다했다, 그런 알리바이를 만들고 싶었던 것도 아니다.

 

왜 난 이 작업을 삭발도 하고, 금주도 하면서, 끝까지 끌고 왔을까? 딱히 대답하기가 어렵다.

 

감자 꽃에게, 넌 누구니, 그렇게 물어보고 싶지는 않다. 나도 나에게, 너무 힘들게 물어보고 싶지는 않았다.

 

본문의 마지막 절은, ‘통상 거버넌스라는 딱딱한 제목으로 끝난다. 외교부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 행정적인 질문인데, 통상교섭본부의 귀속에 관한 내용이다.

 

지난 겨울, 이해영 선생과 이 주제를 가지고 같이 토론회를 한 번 만들어보기로 국회에서 약속을 했었는데, 서로 정신이 없어서 그냥 넘어간 적이 있다. 그 얘기를 마지막 부분에 정리해 넣은 거다.

 

10년 전인가, 외교부에서 파견근무 요청이 온 적이 있었다. 지금 내가 문제삼고 있는, 바로 그 통상교섭본부이다. 당시는 아마 경제국이었나, 그렇게 기억난다.

 

그 때 나는 공직생활 아니 직장생활을 정리하려는 생각을 막 시작한 때라서, 별 이유도 대지 않고 그냥 싫다고 그랬던 적이 있었다.

 

정말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일인데, ‘fta 한 스푼을 마무리지으면서 갑자기 그 생각이 났다. 그 때 외교부로 갔었으면 내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문득 그 생각이 들었다. 잘 모르겠다. 어떻게 되었을지.

 

 

 

 

 

 

(어제 꽃망울은 이렇게 생겼었다. 이게 하루만에 꽃잎을 피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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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작년부터 풀 하나가 슬슬 머리를 밀고 자라기 시작하더니, 올해는 이 멀대 같은 녀석이 나름 군락을 이루었다.

 

그냥 뽑을까 하다가, 뭔지도 잘 모르고, 또 나름 맵시도 있어서 그냥 두었다.

 

달개비의 일종인, 자주 달개비라고 하는 것 같다.

 

어제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했는데, 이게 은근히 장관이다.

 

 

fta는 고민거리이다. 사람들이 잊는 게 워낙 빠르니, 벌써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져가는 듯 싶다. 이렇게 금방 잊을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또 그렇게 잘 잊으니까, 그야말로 '암울한 근현대사'를 지나면서 - 요건 영화 <전우치>에 나온 대사이다 - 우리가 살아남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여간 이 문제를 붙잡고 고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게 지난 연말부터이다. 국회에 통과를 시키겠다고 난리를 치면서 국회 날치기를 통과하면서, 그냥 있을 수는 없고, 나도 뭔가를 하기로 생각하면서...

 

그 이후로 내 삶은 개판이 되었고, 일정도 정신 없게 되었다. 올해는 대선의 해, 이것저것 부산하게 계획을 짜고 있었는데, 전부 엉망이 되었다.

 

물론 내 삶을 엉망으로 만드는, 중간에 끼어드는 일이 한 두개인 건 아니지만, 한미 fta의 경우는 좀 특별하다.

 

 

 

 

특별하게 사마귀를 찍으려고 했던 건 아닌데, 우연찮게 걸려들어서.

 

접사에서 핀트 맞추기가 아주 어렵고, 또 내 눈도 기가 막히게 아무 것도 안 보이는 눈이라서... 뭐, 이렇게 하고 있는 걸 찍으려고 한 건 아닌데, 전부 삥이 나가서.

 

하여간 이렇게 소일하면서, 머리 속은 온통 fta 생각이다.

 

 

 

책 제목을 'fta 한 스푼'으로 정한 건 좀 된다. 의미야 어떻든, 나는 이 제목이 좋다.

 

이 제목이 나에게 특별히 좋았던 것은, 뭔가 엄청난 변화를 만들거나, 아니면 세상을 뒤집을 정도의 큰 얘기 혹은 지금까지 나온 모든 fta 얘기의 종합편, 이런 부담을 덜어준다는 점이다. 나는 그냥 '한 스푼'만 더 할 뿐, 그런 뉘앙스라서 어깨를 가볍게 해주었다.

 

원래의 제목은 '모든 공포의 총합'... 이 제목은 너무 부담스러워서, 사실 3번을 갈아엎고 다시 시작하게 되었던... 그렇게 해서는 책이 되기도 어렵고, 무엇보다 너무 보고서처럼 되어버려서, 읽기가 더 어렵게 된다. 또 그러다보면 쓰는 입장에서는 더 부담스러워지고.

 

지금 와서 돌아보면, 한 스푼으로 책 제목을 바꾸지 않았으면, 이 책은 결국 무게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중간에 엎어버렸을 가능성이 높다.

 

우여곡절 끝에, 이제는 책을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에 왔다. 원래의 계획은, 최대한 빨리, 그러다가 총선 전에 못 냈고, 총선이 끝나자마자... 그런데 총선에서는 완전 박살났고.

 

삭발은 벌써 애저녁에 했고, 대선까지 금주를 하면서, 이런저런 힘을 모아서 겨우겨우 끝내는 책이 되었다.

 

시대와 맞서는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수레바퀴 앞에 서 있는 사마귀, 딱 그 형국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그냥 돌아가는데, 학자 한 명이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지 않고, 그 크기도 생각보다 크지 않다.

 

그렇게 무게감에 눌리고 있었다.

 

 

이번 주말 여기에 부처님 오신 날까지 끼어서, 휴일.

 

하여간 초읽기에 몰려서, 마지막 결론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다.

 

자주 달개비라는 꽃은, 꽃보다도 몽우리가 훨씬 예쁘다.

 

마당에서는 이게 거의 잡초급이라, 이사갈 때에도 얘를 데리고 갈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예쁜 몽우리가 있다는 데에 참 놀랐다.

 

꽃잎이 만개하게 될 보라빛을 미리 보여주는데, 그 은근함과 신비로움이 보통 아니다.

 

물론 그냥 눈으로 보면, 별 거 아니다.

 

흔히 보는 멀대 같은 잡초에 약간의 몽울진 것, 그렇게 밖에는 안 보인다.

 

하여간 이런 생각을 하다가, 뭔가 내 머리를 빡 때리고 지나가는 생각이...

 

노무현 중후반에서 지금까지 한국을 지배하고 있는 일관된 생각.

 

당시의 청와대, 열린우리당 사람들, 고위직 관료들의 보편적 생각, 그게 이명박을 거쳐서 박근혜까지...

 

이 생각을 나중에 책상에 앉아서 차분히 정리를 해보니까,

 

그게 '노무현 컨센서스'이다. 90년대 워싱턴에서 월가까지, 합의된 적은 없지만 그 사람들이 보편적인 정서처럼 가지고 있는 생각을 '워싱턴 컨센서스'라고 부르는 것과... 작동 방식은 사실상 같다.

 

그래서 'fta 한 스푼'의 부제는 '노무현 컨센서스'로 하기로, 일단은 마음을 먹었다.

 

이 사건이 비극적인 것은,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 중에 하나에서,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협상 내용을 재검토해보아야 한다고 썼던 점이다.

 

그게 워싱턴 컨센서스와는 차이점인 것 같다.

 

노무현은 빠진 노무현 컨센서스, 이게 참 비극적이다.

 

어쨌든 이렇게 최종 결론을 내리고, 앞에 써놓은 원고들에 대한 마지막 튜닝을 하기로 했다.

 

길고 길었던 작업이, 이제 마지막 고비를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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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한 쪽에 딸기 한 종류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막상 본 건 오늘이 처음이다.

 

아마 흔히 뱀딸기라고 부르는, 그런 것 같다.

 

별 것도 아닌 일이지만, 사람이 어디 큰 일, 별 일, 그런 걸 보면서 흥분하거나 기뻐하거나 혹은 분노하거나 그러던가? 사람은 원래 작은 것들에 놀라고, 호들갑을 떠는 그런 존재이다.

 

산다는 게 과연 무엇일까?

 

이렇게 질문하면 너무 무지막지하게 큰 질문처럼 느껴진다.

 

이걸 바꾸어서, 아파트에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렇게 물어보면?

 

아파트에서는 도저히 살 수 없다고, 나와 아내가 이사를 나온지도 어느덧 4년이 되어간다.

 

생각보다 나도 아파트 같이 생긴 형식의 집에 오래 살았다.

 

어느덧 정서적으로 도저히 그걸 받아들일 수 없는 순간이 왔다. 그래서 아파트에서 나왔다.

 

그리고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한동안 잘 몰랐는데, 살아가는 방식이 좀 바뀐 것 같다.

 

생각하는 방식도...

 

 

진짜로는 정말 작은 딸기인데, 접사용 매크로 렌즈로 찍었다. 접사를 즐기는 편은 아닌데, 그냥 들이대는 수밖에.

 

요즘 나는 'FTA 한 스푼'이라는 제목으로, FTA에 관한 책, 거의 최종 클라이막스를 정리하는 중이다. 스케일만큼은 정말 크다. 책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나의 의식 속에서는 한국을 들었다 놨다...

 

그러나 그런 게 다가 아니다.

 

소소한 행복, 사소한 즐거움, 그리고 계산되지 않은 우연, 그런 것들로 삶의 빈 구석들을 즐겁게 만들지 않으면, 남들 다 아는 얘기를 혼자만 모르는 그런 이상한 상황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까치 얘기만 하면 적개심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다.

 

이유야 충분히 있는데, 남들이 미워한다고 자기도 미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건 이해가 좀 안 가기는 한다.

 

우리 집에 오는 까치는, 고양이 밥을 뺏어먹는다. 물론 지가 먹어봐야 얼마나 먹겠냐...

 

현관문을 나가는데, 후다닥 까치가 도망가서 옆 집 처마에 앉았다.

 

내가 어디론가 가버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모양새다.

 

하루를 잘게 토막내면,

 

그 토막 중에 얘기치 않은 가벼운 즐거움들이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즐거움은, 사실은 마음 속에 있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가끔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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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즐거운 일을 찾기가 쉽지 않다.

 

명박 시대라는 좀 이상한 시대를 지내고, 게다가 총선 결과가 나온 이후에, 세상은 좀 더 빡빡한 방향으로 정말 빠르게 변하는 중이다.

 

시대와 같이 호흡을 하려고 생각을 한 다음부터, 즐거운 일들보다는 애잔한 일들이 더 많아졌다.

 

민주노동당 당원을 꽤 긴 세월 동안 했었다. 분당 사태로 가기 전에는 당 간부 비슷한 것도 했었다.

 

분당할 때 탈당하고, 그 후에는 입당을 하지 않았다. 지난 총선 때, 녹색당에 당원으로 가입을 했다.

 

여전히 통합진보당의 많은 사람들이 나의 동료들이고, 또한 친구들이다.

 

생각하면 애잔한데,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별 다른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새로 공안정국이 펼쳐지는 걸, 그냥 지켜보는 중이다.

 

그렇다고 그냥 무기력하게 있는 것도 영 아니다 싶어서, 나름대로는 즐거운 생각도 하고, 마음도 편하게 가질려고 하는 중이다.

 

그러나 마음을 먹는 게, 그렇게 '짠', 나는 슬프지 않아, 나는 힘들지 않아, 그렇게 생각만으로 되는 것이던가.

 

하여간 마음이 편치는 않은데, 고양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고양이들은 늘 편하냐, 그러면 그런 건 아니다. 그들에게도 삶은 고통의 바다인 듯, 그 안에도 어려움과 갈등 그리고 분노가 있다.

 

고양이들이 삶은 사람에 비하면 아주 짧다.

 

그래서 고양이들을 보면서, 행복은 불안한 균형, 이런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겨우내 야옹구는 마루 쪽으로는 오려고도 하지 않다가, 벌써 초여름 날씨가 계속되는 이즈음에나 마루 쇼파에 자리를 잡았다.

 

얘는 벌써 4살이다.

 

지난 겨울, 정말 구름 다리 넘어가는 걸, 가까스로 살려서 데려왔다.

 

수술한 자리에 실밥이 몇 가닥, 한참 동안이나 녹지 않고 남아있더니 지난 달에나 겨우 다 녹았다.

 

고양이의 기억력이 6개월 정도라고 하는데, 이제 수술했던 기억은 얼추 잊어버린 것 같다.

 

5달 되었을 때, 길고양이를 입양해서 데리고 온 건데, 그 때는 크면 이렇게 예뻐질지 아무도 몰랐던 것 같다.

 

2년 전까지는 길거리 골목에서, 어쩌면 얘랑 같은 배에서 나온 듯한 고양이 한 마리가 가끔 보이고는 했었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라는 게 늘 같은 생각만 하고, 한결같은 모습을 하면서, 그렇게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삶은 복잡다난한 것이다.

 

늘 한결 같고, 같은 모습을 보이면, 미쳤거나, 미쳐가는 중이거나, 아니면 남을 미치게 하거나. 그러지 않을까?

 

야옹구를 보면서,

 

과연 내가 보여주고 싶거나, 찾고 싶은 게 무엇인가, 그런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길냥이 한 마리를 피사체로, 연출없이 그냥 삶 속에서 본 모습을 이끌어내려고 해보는 중이다.

 

삶의 아름다움, 그건 과연 뭘까, 그런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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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사진이었다.

 

사진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상황이 특별해서.

 

엄마 고양이는 만삭으로 알고 있다. 이미 두 번의 겨울을 났고, 길고양이 평균의 수명이라면, 아마 이번 겨울을 나기가 어렵거나.

 

2012년 5월, 여러가지로 기억에 남을 것 같은 시간이다.

 

총선은 그야말로 사람들이 맨붕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참담했고, 그 여파 역시 참담했다.

 

꽤 오랫동안 민주노동당 당원이었는데, 분당할 때 탈당해서 아직 다시 당원 가입을 안 했다.

 

녹색당에 당원 가입을 했는데, 당원으로서 활동을 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통합진보당 사태는 점점 더 점입가경이다. 검찰 압수수색이 들어가는데, 이거야 영.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하더니, 올해는 5월이 잔인한 달이다.

 

나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다.

 

그래봐야 정말로 개인적인 것들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변화가 있다.

 

지금의 마당은 별로 손을 안댄 것 같지만, 그래도 이만큼이라도 유지할려면, 손톱에 온통 흙이 빠질 새가 없도록 잡초도 뽑아주고, 이것저것 손이 많이 간다.

 

여섯 마리 정도의 고양이가 마당을 근거지로 살아가는데, 어느 정도로 내가 이들의 삶에 개입하는 게 좋을까, 그것도 이것저것 생각할 질문 중의 하나이다.

 

대학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해볼려고 했던 연구가, 고래 연구였다.

 

생태경제학이라고 하지만, 막상 사람들이 상상하는 그런 생태 연구의 필드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울산의 고래 연구를 계기로, 좀 더 고래에 대해서 연구해볼 생각이 있었는데...

 

하여간 그렇게 연구해볼 만한 기회가 생기지는 않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고양이들과 아주 많은 시간을 보낸다.

 

중학교 때 사진반을 했는데, 그 시절에는 사진을 아주 많이 찍었었다.

 

이유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사진을 찍다가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대학 시절에는 단 한 장의 사진도 찍지 않았다. 유학시절에는 찍지도, 찍히지도...

 

고양이들과 지내면서 다시 카메라를 집어들게 되었다.

 

별 이유는 없고.

 

지금 사는 집은 전세다. 결국 다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지금과 같은 상태의 마당 조건이 되려면, 아마 꽤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이렇게 넓게 있기는 어렵고.

 

이렇게 여유롭게 엄마 고양이가 마당에서 두 번째 아이를 갖고, 그리고 산책하는 모습을, 아주 오랫동안 다시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사진 자체는 큰 의미는 없는데,

 

2012년 5월, 그리고 지금부터 생겨날 변화들, 이런 걸 생각해보면 좀 특별하게 느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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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맛골이라는 데가 있다. 서울 생활 했던 중년들에게는, 약간씩의 추억이 있는 거리일 것이다.

 

이명박, 오세훈의 서울시를 거치면서, 뭐... 결국 뤼미에르라는 빌딩 아래 켠의 작은 소품으로 전락한 작은 통로가 되었다.

 

종로로 이사온 다음에, 아내와 가장 자주 오는 건물이기도 하고, 제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기도 하다.

 

아내가 활동가이던 시절, 주로 했던 일 중에 피맛골을 지키는 일도 있었다. 그러니까 아내와 나는 연애 시절에, 피맛골에서 술을 마신 게 아니라, 피맛골을 지키는 일을 같이 했었다.

 

참 지키고 싶었던 골목이고, 많은 사람들이 정성을 모으기도 했었는데...

 

조선 시대부터 내려온 이 골목 하나를 우리는 지킬 수가 없었고, 우리의 시대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던 시대였다.

 

어쩌면, 지난 10년, 지는 데 나는 너무 익숙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뭔가 지키려고 했지만, 정말로 온전히 제 모습을 가지고 버틸 수 있게 하는 게 쉽지가 않았다.

 

지금도 피맛골을 보면, 여전히 가슴 한 구석이 아리다.

 

어떤 기억이 있을까?

 

한 때 금융경제연구소라는 작은 연구소에서 이종태, 홍기빈, 이런 사람들과 같이 복닥거리면서 지냈던 적이 있었다. 이종태, 이 양반과 처음 술을 마셨던 곳이 피맛골이었다. 마지막으로 피맛골에서 술을 마셨던 것은, 이곳이 헐리기로 확정된 후, 아마 공지영 선배와 고갈비를 먹었던 때가 아닌가 싶다.

 

동경에 갔을 때, 그 사람들 표현대로 '오줌 골목'이라는 곳에 가본 적이 있었다. 진짜 조그만 일본식 바에서 아주 색다른 기분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도시가 나이를 먹으면서, 예전 것은 없어지고, 새로운 것이 생겨나기는 한다. 그렇지만 서울 한 가운데 있는 종로의 피맛골을 지키지 못했던 것, 그게 우리가 보냈던 2000년대이다. 이 골목에 들어올 때마다, 조선 시대의 애환이 기억나는 게 아니라, 여기에 요렇게 '피맛골'이라는 간판 하나 덜렁 남겨둔 우리의 개발 시대에 대한 생각이 더 많이 든다.

 

생각해보면, 지난 15년, 생태든 문화든, 나는 무엇인가 지키고 보전하기 위해서 젊은 시절을 불태웠던 것 같다. 현장에서 그 싸움을 접고, 은퇴를 생각하는 순간, 나는 중년이 되어 있었다.

 

그 시간 동안, 한국의 보수는 도대체 무엇을 했나, 그런 생각이 잠시 든다.

 

뭐든 부수고, 뭐든 밀고, 뭐든 엎어버리고, 그 와중에 떡고물 챙기고, 부패하고...

 

보수는 무엇인가 지키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닌가 한다. 도대체 한국의 보수는, 뭘 지키고 보존하겠다는 것인가, 피맛골에 나무로 걸어놓은 명찰을 보면서...

 

저게 한국의 보수가 스스로의 가슴에 달아놓은 명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막 해가 지기 시작한 순간,

 

피맛골에 불이 켜지기 시작한다.

 

조선 시대, 아니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선술을 찾아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을 시간,

 

을씨년스러운 싸구려 보도블록의 차가움이 골목을 스산하게 스쳐간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이 골목은 그런 질문을 계속 던지고 있다.

 

시민운동이 피맛골에 해놓은 것은, 저 '피맛골 명찰 하나였던 것 아닌가?

 

명박이 우리에게 남겨놓은 상처, 그게 바로 이 골목에 서 있다.

 

완전히 망해버린 영화 '공포 택시'에 나오는 유령들이 모여서 술 한잔씩 하는 골목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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