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보수 얘기, 뒤로 미루다

 

이상돈이라는 양반이 있다. , 그렇게 썩 좋아하는 양반까지는 아니지만, 잘 생각해보면 존경할 구석이 아주 없지는 않다. 그런 양반이 새누리당에 있다는 게 좀 놀라운 일이다. 나름 권력욕이 있는 사람이라, 어떻게든 헤쳐나갈 거라고 생각한다.

 

원희룡 의원은 fta 문제가 아니었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좋아했을 가능성이 많은 사람이다. 꼭 운동권 출신이라서 그런 건 아니다. 운동권 출신으로 새누리당 간 사람은 아주 많다. 합리적이라고 얘기하면, 원희룡에 대해서는 그 정도 평가를 하고 싶다.

 

내가 가지고 있는 보수에 대한 이미지는 아마 드골을 연상하면 편할 것이다. 알제리 사태 때 샤르트르가 당연히 알제리를 지지했고, 프랑스 보수들이 생난리를 쳤었다. 그 때 드골이 그도 애국자다라는 말로 사태를 진정시켰던 얘기를 전설적인 일화로 들었다. 앞에서는 방방거리고 있어도 상식적인 수준에서 대화가 가능한 사람 그게 내가 가지고 있는 드골 이미지의 일편이다. 샤르트르, 드골, 다 좋아한다. 시락이 대통령 되는 것에 대해서 나는 현실적인 두려움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명박이나 박근혜에게 느꼈던 그런 강렬한 공포와 너저분함과는 좀 다른 감정이었다.

 

어쨌든 이런 것들을 생각해보면, 내가 본 대다수의 한국의 50대 보수는, 이건 보수도 아니고 쌩 양아치들이다. 여기에 한국 압축성장의 특수한 문제점이 집단적이고 구조적으로 결합한다.

 

이런 얘기들을 대선 전에 한 번 정리해보고 싶었는데, 기본적으로는 절대 시간이 부족했다.

 

그리고 보통은 내가 책을 쓴다고 하면 아내가 팔리든 말든, 거의 절대적으로 지지해주던 편이었는데, 이유는 모르겠는데, 이 책은 아내가 강력하게 반대했다.

 

겉으로 내세운 것은, 안 팔릴 거라는 거였다. , 늘 팔기 위해서 책을 쓰는 것만은 아니니까… fta 경우는 안 팔릴 것을 충분히 감안하고도 그냥 내 양심에 의해서 쓴 경우고.

 

어쨌든 이런 쓸 데 없는 책 쓰면서 바쁘다고 할 거면 애기나 한 번 더 앉아줘, 그런 분위기였고, 진짜로 내가 50대 보수에 관한 책 쓴다고 정신 없다고 하면

 

육아휴직 일찍 끝내고 복직할 기세다.

 

어떻게든 시간을 내겠다는 생각을 안 한 이유 중에, 아내의 반대도 컸다.

 

시민의 정부에 대한 책은 어제 나왔다. 그것과 어느 정도 쌍을 이루면서 경제정책에서의 세대 문제를 조금 더 깊숙하게 들어가볼 구상이 있었는데, 어쨌든 대선 전에는 하기가 어려워졌다.

 

대선이 지나고 나서도 여기에 대한 책을 계속해서 쓰고 싶을지, 아니면 좀 다른 식으로 문제의식이 바뀔지, 그거야 정말 대선 결과 봐야 알 것 같다.

 

하여간 지금 상황에서는 물리적으로 뭘 해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니고. 그래서 시민의 정부가 결국 이번 대선에 관한 마지막 책이 되었다. 약간 아쉬운 생각도 있기는 한데, 그렇다고 50대 보수 나빠요, 그렇게 증오만 가득 찬 책을 쓰고 싶었던 것은 아니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치학에서 얘기하는 보수와는 좀 전혀 결이 다른 얘기들이 경제에서는 풀려나오기는 한다. 지금 생각한 내용만 가지고도 책 한 권 채우는 데는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 좀 더 시간을 가지면 지난 10년간의 사회문화적 흐름에 대한 해체의 단초 같은 것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대선 때까지, 시간이 많이 남게 되었다.

 

시민의 정부는 벌써 끝났고, 소설책도 약간 튜닝 어색한 데들 잡아내고, 제목 정하고그 정도 일만 남았고.

 

캠프에는 안 들어가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어차피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하여 시간이 남았다. 아기 100일 기다리는 시간과 같기도 한데, 어차피 그 동안에 여행을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해보니, 당장 뭔가 해야 할 게 없는 게, 도대체 이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해야 할 일은 늘 밀려 있는데, 다만 못 할 뿐인 그런 시간을 보낸 게, 짧게 보면 10, 학위 받은 뒤부터 생각하면 17년만인가?

 

그래서 맨날 본다고만 하고서 뒤로 미루어두었던 연암 박지원에 대한 공부를 하기로 했다. 열하일기부터 다시 시작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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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비루함의 연속

 

삶이라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계속되는 비루함의 연속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비루한 것들을 참고 지내고, 잠시 그것을 잊는 순간이 있다. 무엇이라도 좋다, 잠시 마음을 얹을 수 있는 것, 그 때 잠시 비루함을 잊는다. 그리고 다시 더 큰 비루함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런 비루함을 느끼지 않고, 늘 신나고 기분 좋게만 사는 존재, 그건 미친 놈 아닐까 싶다. 그런 면에서 내가 본 최대의 미친 넘은 바로 명박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는 자신은 전혀 비루해지지 않지만, 우리 모두를 비루하게 만들어버렸다. 명박의 시대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악몽이다. 그는 짧은 5년 동안, 지워지지 않을 상채기들을 너무 깊게 만들어버린 것 같다. 대통령이 바뀌면 끝날 것 같지만, 어떤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다. 다만 통증이 줄어들 뿐이다. 명박이 한국의 생태와 한국의 경제에 남기고 가는 것은 그런 깊은 상처일 것 같다. 그 시대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악몽과 같다. 깨어났다고 생각하지만, 언제나 다시 돌아가 있는 듯한 깊은 상처, 그런 존재가 되어버렸다.

 

몇 달간 소설 작업을 하면서 그야말로 일탈과 같이, 먼 여행을 하고 온 것 같다. 몇 달간 거의 매일을 밤을 새다시피 했는데, 이제 떠나 보내고 나니, 그걸 쓰고 있던 순간이 비루했던 것인지, 아니면 그 위에서 내리려고 하는 게 비루한 것인지, 하여간 일상의 비루함들이 다시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내 삶에 단절은 한 번 있었다. 정말 10년 전, 공직을 그만두면서 한동안 뭘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 한 번 있었다. 그 때는 정말 본능으로 살았다.

 

내 삶을 대체적으로 몇 년 동안의 이정표를 빠듯하게 세워놓고 사는 그런 삶이었다. 경제 대장정 시리즈를 시작하고 나서는 더더욱 그랬다. 아직 몇 권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그건 좀 더 천천히 마무리 지을 생각이다. 시작한 거니까 끝을 내기는 하겠지만, 처음에 생각한 그런 방식으로 마무리 짓지는 않을 생각이다. 뭔가 결정적인 테마가 떠오를 때까지, 좀 더 차분하게 기다려보려고 한다.

 

지난 수 년 동안 대선 이후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정말로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런 생각은 별로 안 했는데, 막상 내년에는 뭘 하고 지내지? 그런 생각이 오늘 문득 들었다. 대선 이후에는 작은 약속도 하나 잡아놓은 게 없다. 뭐가 어떻게 될지 잘 모르기 때문에 잡아놓을 수가 없었고, 또 그냥 그렇게 비워놓고 싶기도 했고.

 

일정이 꽉 잡혀 있는 삶이 더 좋은 건지, 지금처럼 뭘 할지 아무 것도 없는 상황이 더 좋은 건지는 잘 몰겠다. 그러나 그 어느 편이라도, 삶은 비루하다. 뭔가 준비된 대로 움직인다고 해서 덜 비루한 것이 아니고, 또 할 것이 결정되어 있다고 해서 더 비루한 것은 아니다. 삶이라는 것은, 그냥 사는 거다. 준비되어 있다고 해서 더 의미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되는대로 지낸다고 해서 덜 의미 있는 것도 아니다. 무언가를 만든다고 더 높은 성취감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길이라는 것은 그냥 걸어가는 동안에만 의미가 있는 것처럼.

 

살면서 내가 배운 게 있다면, 집착이라는 게 무의미하다는 것. 사람들이 성과라고 부르는 것들이 그게 진짜 마음을 편하게 해주거나, 자신에게 언제나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도 아니라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큰 집착을 만들어서, 그걸로 무언가 하고 있다고 스스로 믿게 만드는 것, 그것이 정말로 사람을 비루하게 만든다. 그런 것도 다 내려놓고 편안하게 삶을 살아가는 것, 삶에서 진짜로 성취해야 하는 것은 그런 거 아닌가 싶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렇게 생각하는 그 자신도 지워낼 수 있는 것, 그런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내년에 뭘 할까, 그런 생각을 잠시 해보다가 아무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아무 것도 하기로 결정된 것이 없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삶이라는 것은 언제나 비루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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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올림에서는
삼성반도체 기흥사업장에서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 사이에

 

피엠, (즉) 유지보수업무를 하셨던

 

설비엔지니어를 찾습니다.

 


특히 1997년부터 2002년 사이에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5라인 씨엠피 공정에서
황민웅님과 함께 피엠 업무를 담당했던 분의 연락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황민웅님은 2005년,
서른 한 살의 나이에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황민웅님 외에도 그곳에서 일하다 백혈병, 루게릭병 등에 걸린
설비엔지니어들이
정부로부터 산업재해를 인정받기 위해
기나긴 행정소송을 거치고 있습니다.
씨엠피 공정이 아니더라도
설비엔지니어의 피엠업무에 대해 진술해주실 수 있는
용기있는 분들의 제보를 기다리겠습니다.
반올림은 당사자의 동의가 없는 한
제보해주신 분들의 신상을 절대로 공개하지 않습니다.

제보 연락은
휴대전화 010-8799-1302 혹은 010-9140-6249
이메일 sharps@hanmail.net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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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지나가는 날

 

 

 

세상에는 큰 일이라고 생각되는 게 있고, 작은 일이라고 생각되는 게 있다. 돈의 크기나 권력의 크기 같은 것으로 재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집안 일, 바깥 일, 이렇게 구분을 하고 남자의 일, 여자의 일을 나누기도 한다. 그러나 가끔 생명 앞에 서면 더 큰 일, 더 작은 일이 과연 있겠나, 그런 생각이 들 때도 많다.

 

 

태풍이 지나가는 날, 결국 오후에 우산을 쓰고 나가서 마당 고양이들 밥을 주고 왔다. 어제 밤에 주었으니까 하루쯤은 그냥 넘어가도 별 일 없을 것 같기는 한데, 그게 또 생각이 나면 그냥 모른 척하기가 그렇다.

 

아기 고양이들이 비 맞으면서도 쪼르르 뛰어온다. 개집 안에 어젯밤에 넣어준 사료는, 옴팡 많이 넣은 것 같은데, 벌써 비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의미인가, 그런 생각이 한 번도 안 드는 건 아니다. 큰 의미 같은 건 별로 부여하고 싶지만, 그래도 뭔가를 돌볼 수 있고, 내 주변의 것들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고 싶은, 그런 작은 마음 같은 거다.

 

며칠만에 집에 온 아내한테 화초에 물 안줬다고, 또 옴팡 혼났다. 그냥 살아간다는 게 이렇게 수많은 것들이 엉켜져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간만에 하루 종일 집에 있는데, 야옹구는 밖에 태풍이 오는지, 뭐가 오는지 그냥 신나기만 하다.

 

이 근심걱정 없는 해맑은 표정을 보라.

 

왜 나는 이렇게 웃을 수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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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새로운 시대

 

 

 

폭염이 사그러들고 가을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엄마 고양이를 보기가 쉽지가 않아졌다. 봄에서 여름 내내 뒷뜰이나 마당 한 가운데 늘 버티고 있던 엄마 고양이가 보이지 않을 때마다 가슴이 놀라게 된다.

 

마당 고양이들은 이제 아기들과 바보 삼촌만 주로 있다. 밥을 주면서 엄마 고양이가 없는 걸 보면, 마음이 허하다. 어쩌면 새로운 시대가 또 오게 되는가 혹은 떠날 때가 되었는가, 그런 느낌을 받는다.

 

그렇게 아기들 밥 주고 뒤로 물러나서 우연히 담벽을 보니, 엄마 고양이가 담벼락에 앉아 있는 걸 보게 되었다. 가끔 엄마 고양이를 보면,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게 뭔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정말로 이 순간, 빛이 난다는 느낌을 받았다.

 

엄마는 새로운 아기를 가진 걸로 알고 있다. 정상적이라면 벌써 분가를 했을텐데, 이 가족도 요즘 속으로는 고민이 많을 거다.

 

 

오늘 오후에 비가 내렸다. 잠시 일보러 마당으로 나오는데, 엄마 고양이가 현관문 앞에 서 있었다.

 

부리나케 뛰어가서 캔 하나 들고 와서 현관 앞에 놓아주었다. 정말로 맛있게 먹었다.

 

옆에서 보던 아기 고양이 생협이 엄마 먹는 캔에 입을 들이밀었다가,

 

그야말로 제대로 정통 펀치가 들었다.

 

지난 달까지만 해도 젖 먹이면서 정말로 끔찍하게 키우던 자식이기는 했는데, 강펀치가.

 

순간, 삶이란!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게 그냥 동물이라서 그렇다, 그렇게 생각하기가 어렵다. 바보 삼촌한테도 늘 먹는 걸 양보하고, 아기들에게는 당연히 양보하던 엄마 고양이였는데, 지금은 자기도 새로운 새끼를 가지고 있어서 그럴 형편이 아니라는.

 

살면서 요즘처럼 뉴스를 안 본 적이 있나 싶게, 뉴스도 거의 안 보고, 인터넷도 거의 안 하고, 그냥 조용히 지낸다. 원래 생각했던 2012년의 계획과는 많이 다르게 가는 거지만, 이것도 그냥 나의 삶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인다. 어쩌면 이렇게 뉴스 볼 때마다 신경 날카롭게 세우지 않아도 되는 삶, 그런 삶을 나는 오랫동안 원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일상에 아무 일도 안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고양이 몇 마리의 소소한 세상 그것도 하나의 거대한 우주와 같다. 그 속에도 긴장과 갈등이 있고, 평화가 있다. 세상에 큰 게 있고, 작은 게 있고, 중요한 게 있고 덜 중요한 게 있을까 싶다. 생명 앞에 서면 뭐가 더 중요하고, 더 시급하고, 그런 것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큰 일처럼 보이는 것도 복잡하지만, 작은 것으로 치부하는 일들도 복잡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야말로 프랙탈 구조와 같은 것인지 혹은 작을수록 더 복잡한 것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고양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통해서, 내 안에도 20대부터 뿌리깊게, 차곡차곡 채워져 있던 증오들이 빠져나올 수 있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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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 만들기

 

김영현이라는 양반이 계시다. 아마 나한테 영향을 많이 준 사람 중에 몇 손가락에 꼽힐 것 같다. 대학교 입학식도 안 했을 때, 당연히 나는 학교에서 하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같은 건 안 갔고, 그냥 학생회 가서 놀았다. 일부러 그렇게 할려고 마음을 먹은 건 아니었는데, 너무너무 재밌어서 막걸리 마시면서 밤을 새웠다. 그 날 있었던 나머지 사람들은 잘 기억이 안 나고, 누님 두 분과 형님 한 분이 오랫동안 기억에 난다. 그 때의 그 형님이 민주노총에 오랫동안 계시던, 지금도 가끔 소주 한 잔이나 하시는 분이다. 나머지 한 양반은, 참 이것저것 그 후에도 많은 인연을 가지고 살았는데, 지금은 아마 김문수 쪽에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누님 한 분이, 바로 김영현이었다. 그 날이 내가 공식적으로 운동권의 삶을 살게 된 첫 날의 경험이었다. 그 후에는 물론 그 전에도 밤새워 술 마신 적이 여러 번 있지만, 정말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날이었다.

 

어린 시절에 알았고 나중에 글로 유명해진 사람들이 공교롭게도 내 주변에는 좀 있다. 그렇지만 영향으로는 그 양반 영향을 내가 제일 많이 받은 것 같다. 우선은 내가 좋아했고. 누님들 중에서도 특히 편하게 생각하고, 마음에 오래 남았던 분이다.

 

대장금에서 선덕여왕 그리고 뿌리 깊은 나무와 같은 드라마의 작가가 김영현이기도 했다. 요즘도 그런 책 읽는지 모르겠지만 옛날에는 경제학과에서는 성경책처럼 다 읽던 한국 경제의 전개과정같은 책들을 그 양반과 같이 읽었다. 사람한테 찐한 게 어린 시절의 기억이니, 어쩌면 평생 잊혀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많은 기억들을 가슴 속에 묻어두고 살아가지만, 그렇게 묻히지 않는 것들 것 있다.

 

경제학자로서의 삶을 내려놓기로 마음을 먹은 다음에, 더 이상 숫자들이나 정부 보고서를 읽지는 않게 되었다. 원래 재미없는데 억지로 참고 읽은 것이다. 그 대신에 얘기 만들기를 다시 해보는 중이다. 물론 나는 원래 얘기 만들기를 좋아한다. 갖다 붙이는 걸 좋아하고, 음모론 만들기는 원래 딱 내가 좋아하던 일이다.

 

경제학자로서의 삶을 그만두고 제일 처음 잡은 것은 <>이었다. 이제는 <>의 세계에서 좀 나오지 않았나 싶었는데, 역시 나는 <>에 속한 사람이다. <>을 처음 읽은 것은 박사 과정 초입이었던 것 같은데, 하여간 정말 재밌게 읽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 <>을 읽고 있는 사람을 보면 얼마나 반가운지. <>의 세계에서 나오는 법은 없다더니, 정말로 그렇다.

 

영화는 두 번이 나왔는데, 좀 많이 아쉽다. 데이빗 린치의 영화는 아주 좋아하는데, 별로였다.

 

얘기를 하는 건, 경제학이나 사회과학이나 영화나, 기본적으로는 다 마찬가지이다. 공식으로만 차 있는 듯한 논문도 사실은 얘기이다. 얘기를 재밌게 하는 사람이 있고 재미없게 하는 사람이 있지만, 어쨌든 다 얘기는 얘기이다.

 

그러나 얘기 만들기는 좀 다르다. 듣기 싫어하는 얘기를 편하게 하는 것과 없는 얘기를 그럴 듯하게 하는 것, 이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좀 있다. 사실이나 진실과는 또 좀 다른, 얘기 자체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속성이 있다. <> 같은 게 대표적이다. 보는 눈에 따라서는 아주 재미없을 수도 있고, 그 지독한 서양 중심적 사고가 불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얘기 자체가 워낙 재밌고, 생각할 거리를 많이 만들어준다. 그래서 듄에서 나온 것들이 참 많다.

 

많은 사람들이 알만한 <>의 한 장면이라면, 열폭탄이 터져서 장님이 된 폴이 비전을 통해서 앞을 보는 장면. 이 장면은 <매트릭스> 3편의 마지막에서, 네오가 눈을 다쳐도 앞을 보는 장면으로 다시 사용된 적이 있다.

 

<>을 보고 나서, 나는 듄 같은 얘기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 그렇다고 정말로 강렬해서 모든 걸 그만두고 꼭 그걸 해야겠다는 건 아니었고,

 

요즘 놀면서 <>을 다시 챙겨보다 보니, 그 시절 생각이 다시 났다. 불어로는 멜랑쥬라고 되어있는데, 영어로는 스파이스라고 부른다. 그런 물질의 세계, 멘타트, 프레멘, 어보미네이션, 그런 한동안 잊고 있던 듄의 용어들이 다시.

 

물론 지금 당장 듄 같은 얘기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니고. 어쨌든 그런 얘기 만들기의 재미로 살던 어린 시절이 다시 생각났다.

 

진짜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동화책이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음울하고 음침하지 않은, 그러나 약간은 깊은 속내를 가진 아이들을 위한 얘기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몇 년 전부터 들었다. 세상이 좋아질 수 있다는 꿈을 버리고 싶지 않으니까, 결국은 아이들과 얘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었던 것 같다.

 

물론 아기가 태어나면, 아기가 조금씩 커가면서 볼 수 있는 책을 써주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

 

잠시 쉬면서, 앞에 써놓은 얘기들을 영현 누님에게 보내고 나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잠시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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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정부, 시민의 경제, 초고 끝내다

 

아이가 태어나는 날, 새벽까지 붙잡고 있던 원고가 시민의 경제였다. 뒷부분을 마무리하지 못해서 고생고생 했었는데, 오늘에야 마무리를 지었다.

 

책을 쓰다 보면, 논리만 가지고 쓰기는 어렵고, 감정을 사용하게 된다. 인간이라는 게 원래 감정의 존재 아닌가? 내 경우는 감정을 잘 타는 편은 아니다. 그게 생각대로 감정이 잡히는 것도 아니고, 늘상 반복되는 작업 속에서 그렇게 감정을 만들어낼 수도 없고.

 

이게 좀 웃기는 얘기이기는 한데, 가끔 나는 글을 쓰다가 운다. 칼럼 쓸 때 울었던 것은, 한겨레에 헌법의 눈물이라는 거 쓸 때 가장 많이 울었고. 책 쓰다가도 가끔 운다. , 매번 우는 것은 아니고. 팔리는 것과 내가 우는 것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관계도 없다.

 

시민의 정부, 시민의 경제라는 제목은 비교적 작업 초기에 정했던 제목 중의 하나였는데, 마지막 순간에 이 제목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에필로그에서 제목이 이렇게 된 사연에 대해서 설명하다가 파티 초대장에 관한 얘기를 하다가, 괜히 눈물이 나서 엄청 울었다.

 

그냥 좀 운 게 아니라 정말 꺼이꺼이 울었다. 그렇게 소리내면서 운 건 정말 오랜만인 듯 싶다. 시민들이 파티에서 스스로 빛나는 별 같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가 그렇게 울만한 얘기도 아닌데, 어쨌든 나는 엄청 울었다.

 

그냥 울고 싶었나 보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지난 몇 달 동안 너무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힘들 때 누구한테 힘들다고 말하기도 힘든 게 요즘의 내 사정이다. 고양이 붙잡고 힘들다고 말할 순 없쟎아.

 

1, 2부로 나누어서 1부는 경향신문에 연재했던 것, 2부는 총선 끝나고 나서 새로 내 생각 정리한 것, 그렇게 했는데, 새로 쓴 원고는 A4 50장 약간 넘는다.

 

글쎄책을 쓸 때 그 때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시기상 안 맞기도 하고, 전체 구조상 뒤로 미루어야 하기도 하고, 그래서 모든 얘기를 다 했다는 느낌이 드는 경우는 별로 없다. 연작물을 할 때에는 요런 애로사항이 좀 있다.

 

이번에는, 정말로 하고 싶은 얘기는 다 한 것 같다. 분량이 문제가 아니라, 정말 결론이 무엇이었느냐, 그 얘기를 끝까지 가느냐 마느냐, 그런 차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얘기는 다 털어놓았고, 내가 더 알고 있는 얘기는 이제 없다 싶었다. 처음 출판사랑 얘기를 시작한지 4년만에 나오는 거고, 중간에 경향신문 연재도 1년이나 했고, 그리고도 또 최근의 내 심경에 관한 얘기까지 다 털어놓았으니, 이제 더 할 얘기도 없다.

 

책 마지막 열 줄 남겨놓고 그야말로 대성통곡이 터져나오는데, 정말 신나게 울었다. 고양이가 뭔 일이래, 그렇게 지켜보고 있고.

 

이 책에서는 쓰거나 읽으면서 울 대목이 있을 게 없고, 그런 마음으로 쓴 것도 아니었는데, 마지막 한 대목 쓰면서 눈물이 펑펑나서. 진짜 뭔 일인가 싶었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울었던 대목을 부제로 옮겨놓았다.

 

증오로 시작해서 증오로 책을 끝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했는데, 결국 눈물을 질질 짜면서 마무리하게 되었다. 기쁨이나 경쾌함, 그런 마음을 내심 기대했던 건데, 그냥 서럽다요렇게 된 꼴이다.

 

연초에 시나리오로 시작했던 작업이 결국 소설로 넘어가게 되어서 소설 작업 진행하는 게 하나 있다. 처음 생각은 조금만 손을 볼 생각이었는데, 결국 클라이맥스 한 장면만 남기고, 주인공들 마저도 다 바뀌어버렸다. 에라 모르겠다, 난 그냥 오락 소설로 간다내 주제에 경제 소설은 무슨

 

하여간 그렇게 바뀐 얘기를 가지고 앞부분을 좀 썼는데, 그래서 계약까지는 하기로 했고. 그냥 김영사에서 내기로 했다.

 

기획은 요것도 엄청 멋지다. 관료들 문제를 순서대로 모피아, 교육 마피아, 토건족, 이렇게 다루어볼 생각인데,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어렵다.

 

꿈은 같은 얘기를 만들어보는 건데, 그야말로 내 주제에 무슨.

 

지금 작업은 돈을 어떻게 형상화할 것인가, 그런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돈을 어떻게 보여주지? 그런 고민이 스토리 전개보다 더 큰 고민이다.

 

연초에 처음 작업 시작할 때에는 소설까지 염두에 둔 건 아니고, 시나리오 트리트먼트 수준 정도는 해본다는 그런 소박한 출발이었다. 근데 이게 일이 커지면서 드라마로 만들겠다는 얘기가 먼저 나오고, 오매 나는 책임 못지겠네. 고런 황당무게 에피소드의 연속이었다.

 

여름이 되면서 좀 차분하게 앉아서 얘기를 재구성하고, 떼어낼 건 떼어낸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이게 항공모함이 두 척이 뜨고, 뭐 그런 얘기가 되어버렸다.

 

나는 늘 항공모함을 띄우는 그런 판타지를 가지고 있기는 했다.

 

돈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그런 얘기를 정말로 좀 형상화해서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오랫동안 있었다.

 

하여간 실컷 울고 났더니,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 그것도 까먹었다. 마흔 넘어서는 오늘 제일 크게 운 것 같다.

 

해야 되서 하는 일이 있고,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이 있다. 사회과학 책에는 일종의 의무감 같은 게 있었다. 물론 쓰고 싶었던 주제들이기는 하지만, 이게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거냐고 하면, 그걸 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나?

 

소설도 정말로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이런 얘기를 해야만 할 것 같은, 그런 의무감도 조금은 있다.

 

소설 마지막 습작 했던 게, 96년으로 기억난다. 처음 강사 시절, 그러니까 YS 시절이었는데, 그 때는 재밌어서 소설을 썼었다. 정말 재밌어서 하는 건 줄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취직을 하게 되니까 내가 쓰던 얘기들은 갑자기 까먹어버렸다. , 자신을 잠시 속일 수는 있어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는 거라는 걸 그 때 알았다.

 

지금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작업은 동화책을 쓰는 거다. 이건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거.

 

정말로 아이들이 읽어서 재미도 있고 도움도 될만한 그런 동화책을 쓰고 싶다.

 

어린이용 경제책, 경제동화, 경제만화 심지어는 아동용 경제 다큐까지, 제안이 엄청나게 많이 오기는 했는데미쳤나, 내가 어린이용 경제 책을 쓰게.

 

어린이들이 경제에 대해서 알 필요가 뭐가 있나, 그게 내 기본적인 생각이다. 그 시기에 경제를 채워 넣으면 커서 악인이 되거나, 지독할 정도로 메마른 사람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돈에 대해서 어려서부터 알면 좋을 것이라는 건 부모의 욕심이고, 자기 투영과 같은 것이다. 그 마음은 알겠지만, 정말로 자녀를 위해서라면 돈이 아니라 다른 것에 대한 꿈이나 즐거움을 채우는 것이 나을 것이다.

 

돈 밖에 모르는 인간이 성공하면 어떻게 되는지, 이명박 보면서 충분히 느끼지 않았나?

 

어쨌든 이런 저런 생각들이 모여서 동화책을 써보고 싶다는 동기가 되었다.

 

영화는아직 잘 모르겠다.

 

워낙 실험해볼 여지가 적은 분야라서, 내가 잘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정말로 기획자로서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는지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어쨌든 경제학자로서의 삶이나 생각이 한 번에 털어지는 게 아니라서, 결국은 이렇게 조금씩 털어내는 중이고, 빈 공간에 그 전에 해보지 않던 일들이 들어와서 차는 중이다.

 

사실 난 살면서 뭐가 되고 싶다거나 뭐가 하고 싶다는 그런 강렬한 종류의 욕망은 가져본 적이 없다. 어렸을 때도 그랬는데, 커서도 별로 그런 게 생겨나지는 않았다.

 

한참 기후변화협약 협상 다닐 때에는 서브스타 의장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은 있었다. 평생을 쫓아다니면 결국 나이 먹어서 한 번쯤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자리이기는 했다. EGTT 멤버가 되면서, 사무국에서는 정말로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더 높은 자리에는 더 많은 대가가 따르는 법.

 

만약 그 자리 유지한다고 계속 버티고 있고, 그냥 눌러앉자, 이렇게 했다면 나라고 별 수 있겠나, 이명박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 뭐라도 바둥거리면서 했었겠지.

 

이명박 외국 순방길에 모 박사께서 옆에 서 있는 걸 보고, , 그냥 있었으면 내가 저 자리에 서 있겠겠구나, 그런 생각에 식은 땀이 잠시 흐른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깨끗하게 잘 털고 나왔다는 생각이 강하다.

 

사람의 행동을 구성하는 것은, 욕망만은 아니다. 자기한테 그 행위가 설명이 되어야 하는데, 그 설명이 잘 안되면 이제 욕망과 보람이 그 안에서 충돌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충돌은, 결국은 암이 된다. 장수무강에 지장 있다.

 

나는 얘기 만드는 일이 재미있다.

 

경제학이 재미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뭔가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더 강했고, 그 의무감이 무게가 점점 더 버티기가 싫어졌다. 의무감으로 평생 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 의무감을 명박에 대한 증오로 대체하면서 지난 몇 년간 살아온 것 같다. 짧은 시간 동안 증오를 극대화하면서 살 수는 있지만, 평생 증오하면서 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 마지막 증오가 빠져나가는 순간이, 시민의 경제 탈고하면서 터졌던 것 같다. 증오가 큰 에너지일 것 같지만, 그 상태를 버티는 게 제 정신은 아니다.

 

앞으로의 일은 나도 모른다. 어쨌든 내가 생각했던 즐거운 미래에 대한 얘기는 이 책에 탈탈 털어 넣었다. 정말 서럽게 울었다.

 

왜 눈물이 났는지, 왜 그렇게 서러웠던 건지,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예기치 않게, 나도 신나게 울었다.

 

가끔 이런 순간을 좀 멋있게 표현하면 매듭을 짓는 순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 뭘 하고 싶은지, 뭘 그만두고 뭘 더해야 하는지, 그런 생각을 해보는 순간이 가끔은 온다. 마음 먹고 생각하자고 그렇게 생각이 나는 건 아니고.

 

증오 위에 세울 수 있는 성은 없다

 

정말로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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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지나가는 날

 

1. 

태풍이 지나가는 날, 온 국민은 잠시 하나가 된다. 이 거대한 바람 앞에서, 인간은 잠시지만 대체적으로 평등해진다.

 

그리고 높은 건물에 살든, 낮은 건물에 살든, 대체적으로 약간씩 거대한 바람이 주는 공포 앞에 서게 된다.

 

지진도 가난을 차별한다는 연구들은 이제 유명해졌고, 사실 데이터 작업을 해보면 태풍도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는 않을 것이다. 중남미에 지진이 생기면, 더 가난한 사람들의 집들이 무너지고, 빈민가가 치명적 타격을 입는다.

 

오래된 주택의 창문은 문을 열면, 창틀째로 날아갈 듯이 흔들린다. 창문을 못 열고 있다. 덥다고 불평할까 하다가도 더운 게 문제가 아닌 사람이 많을 듯하여.

 

한국이 과장되었든, 아니든, 태풍의 영향권을 통과하는 동안에도 야옹구는 아무 생각 없이 디비지게 잠만 자고 있다. 참 얼마나 평온한 존재인가.

 

 

 

(얘는 가끔 잘 때 보면 얼굴이 웃는 얼굴이다.)

 

 2.

 

민주당 경선이 지나가는 중이다.

 

누굴 찍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머리 수라도 하나 보태줄까 싶어서 선거인단에 신청을 했는데, 그냥 투표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투표는 꼬박꼬박 한 편이고, 피곤하게 신청한 다음에 안 한 적은 없었는데, 이번 경선에는 그냥 투표하지 말까 한다.

 

식자우환이라고 했나? 그래, 환이 많다.

 

나중에 통합후보 결정되면, 대선 때에 투표는 할 생각이다. 뭐, 싫든 좋든, 그 때는 찍을 거지만, 찍는다고 꼭 지지하는 것도 아니쟎아?

 

자기 편 지지 안할 거면 닥치고 투표나 하라는 얘기에 꼬박꼬박 대꾸하기도 피곤한 일이고, 왜 너는 얘 안 좋아해, 왜 너는 얘 지지 안해, 그런 말을 듣고 있는 것도 피곤한 일이다.

 

좋으면 니가 충분히 좋아해주면 되쟎아.

 

마음이 안 가는데, 어떻게 해.

 

논리적으로도 이해 못하겠고, 감성도 안 가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 쪽에 줄을 댄다. 기절초풍, 많은 사람들이 줄을 댄다.

 

사실 이 와중에 줄을 댔다고 해서, 마치 친일파를 우리가 한 번도 정리한 적이 없는 역사를 가진 것처럼, 어용교수들을 정리한 적이 없는 이 나라에서 손해볼 건 아무 것도 없다. 그러니 너도나도 앞 다투어서 줄 대는.

 

태풍 지나가는 한 가운데, 고양이들 개집 안으로 먹을 거 밀어넣어 주고, 그래도 좀 잘 버텨보라고 육포도 꺼내놓아주면서, 이 얼마나 한가하고 평온한 태풍 보내기인가, 잠시 생각을 했다.

 

이 또한, 결국은 모두 지나가리라.

 

 

 

(이 태풍 와중에 NHK 인터뷰 시간이 정확하게 서울에 태풍이 통과한다는 3시에 잡혔다. 9월 8일 방송이래나, 더는 미루기가 어려워서 꾸역꾸역 영화사에 기어나갔다. 카메라 끈 붙잡고 놀아달라는 녀석을 보면서 나도 대략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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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만 의미 있는 사진 

 

 

 

 

며칠 동안 엄마 고양이가 보이지 않았다. 고양이가 보이지 않기 시작하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게 된다. 마당에 그냥 사는 것 같지만, 녀석들이 집을 떠나야 할 이유나 사고가 날 가능성은 많다. 집에 사는 고양이들이 요즘은 10년 넘게 살지만, 길고양이들의 수명은 보통 2.5년에서 3년 정도 된다. 두 번의 겨울을 넘기면, 나름 길게 산 것이고, 세 번의 겨울을 넘기기는 쉽지가 않다는 게 통계다.

 

고양이들이 사라질 때에는 사람들이 구질구질하게 헤어짐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과는 달리, 어느 날 갑자기 보이지 않는다. 올 봄에 아빠 고양이가 한참 멋진 폼을 가지고 있었는데, 녀석이 그렇게 어느 날 떠났다. 많은 고양이들이 그렇게 마음에 묻히고 떠나간다. 그게 싫으면 아예 돌보지 않으면 되지만, 그래도 기왕의 인연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주고, 또 그렇게 서로 관계를 가지게 된다.

 

엄마 고양이는 아기 낳은지 얼마 되지 않지만, 벌써 또 새끼를 가지고 있다. 고양이들이 너무 많으면, 엄마들이 자기가 살던 데를 아기들에게 두고 떠나기도 한다. 새끼도 낳기 전에 떠나는 것은 아직 못봤지만, 어쨌든 좁은 지역에 너무 많은 고양이가 있으면 종종 떠난다. 그러지 말라고 밥을 많이 주기는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일 뿐이고.

 

하여간 며칠 엄마 고양이가 보이지 않는 동안에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엄마 없이 바보 삼촌과 두 아기들만 밥을 먹는 게 며칠 째 되면서, 엄마 없는 삶에 대한 생각을 생각해보고. 길에서의 삶이라는 것은 그렇게 만나고, 또 그렇게 헤어지는 것과 같다.

 

그렇게 생각하고 영화사에 갔다가 집에 들어오는데, 역시 엄마 고양이가 없었다. 뒷뜰과 여기저기를 살펴보고 오늘도 없군, 그렇게 생각하면서 마당에 길게 난 잡초들을 자르는 일을 한참을 했다. 올 여름까지는 그래도 이렇게 덤불이 되도록 방치하지는 않았는데, 아기가 태어나고 정신 없는 한참이 지나가면서, 풀까지 뽑아줄 여유는 없었다. 마침 검둥이가 나무 밑에 있어서 빗자루로 한 번 쫓아내고녀석, 내가 쫓아내도 전혀 겁 먹지는 않는다. 두 팔이 다 떨릴 때까지 한참 풀을 자르고 그냥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담벼락 밑에 엄마 고양이가 편하게 쉬고 있었다. 몇 번이고 다시 보는데, 엄마 고양이 맞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가슴을 누르고 있던 게 다 내려가는 듯 싶었다.

 

그 순간에 찍은 게 이 사진이다. 보통 쓰는 캐스퍼 보다는 한급 떨어지는 슈퍼줌을 가지고 있었는데, 슈퍼줌 200미리로.

 

무심한 듯 바라보는 엄마 고양이에게 애틋함을 느끼는 것은 나밖에 없는데, 사실 그런 내 감정은 잘 표현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겠고, 나에게만 의미가 있는 사진이 되어버렸다.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애틋함들이 생긴다. 그게 반드시 사람에게만 느껴지는 감정은 아니다. 그런 감정을 가슴에 많이 담으면 더 행복해질까? 애틋함, 간절함 같은 것들이 인간적인 감정이고,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 것은 분명하겠지만, 그게 더 행복하게 해주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이 모든 것들이 통제 가능한 영역에 있을 때에만 편하다고 느낀다면, 그건 너무 삭막하다. 그렇게 모든 것을 통제 가능한 상황에 놓는다고 하더라도, 컴의 하드디스크 같은 게 한번에 날라가거나, 그렇게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발생하고야 만다.

 

익숙한 것들과 때때로 이별하고, 원치 않는 일들이 매 순간 생겨나는 것, 그게 삶이다.

 

삶은 배반과 통제불가능 그리고 가끔 만나게 되는 안도 그런 것들로 채워지는 것 아닌가?

 

그 속에서 무언가 기다리고 조그맣게라도 뭔가가 만들어보는 게 재밌지, 거대한 성을 세워놓고 그 안에서 군림하고 있을 때에만 평온을 느끼는 것, 그런 건 좀 아닌 듯 싶다. 손에나 가득 쥔 것, 그런 건 언젠가 결국 사라지게 된다.

 

나한테만 의미 있는 것, 그게 큰 돈이 들거나 크게 정성이 많이 드는 것은 아니다. 꿈을 크게 가지라고 하는 말,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영 이상하다. 마음을 주는 것들이 커지는 것, 그게 삶을 풍성하게 해주고 감성 넘치게 해주는 것 같다. 물론 감성으로 찬다고 해서, 매 순간 웃음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애절함이 그 한 가운데를 흐르고 있다.

 

 

(내가 지네 엄마를 못 찾아서 애타고 있는 사이, 바보 삼촌은 태연덕스럽게 아기들 데리고 밥 먹거나, 이렇게 풀 뜯어먹고 있다. 하긴, 지 입장에서는 엄마 멀쩡이 잘 있는데, 내가 왜 애태우고 있는지, 의아하기도 하겠다. 녀석의 천진하면서도 너털스러운 삶은, 나도 참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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