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성 목사님은,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딱딱한 글의 틀과 달리, 사례를 일반인들이 알아먹을 수 있게 다루는 신기한 재주를 가지신 분이다. 늘 목사는 쉬운 얘기를 딱딱한 말과 속 보이는 톤으로 한다는 생각을 가졌었는데, 최병서 목사님은 그런 나의 생각을 깨주었다.

 

나도 플로리다의 에버글레이즈 사례를 몇 번 다루었는데, 나보다 훨씬 잘 다루신다.

 

주여, 낮은데로 임하소서!

 

내가 아는 목사 중에서, 4대강 사업과 관련해서 낮은 데로 임하신 분은 최병성 목사님이 맨 처음이시다.

 

이 책 좀 팔렸으면 좋겠다. 4대강으로는 첫 번째 나오는 책이고, 대운하 논쟁과 관련해서, 가장 부드러운 버전이다.

 

사례가 풍부해서, 상식을 늘리기에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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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 앤드루스와 오드리 햅번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경쟁자 관계였다. 당시 몇 개의 뮤지컬 영화에 주연 오디션을 통해서 서로 경쟁을 했었는데, 대체적으로 이 시기에 나온 영화들은 다 재밌다. 둘 다, 한 옥타브 정도의 음역을 가지고 있어서 요즘 같으며 황당하다 싶겠지만. 문 리버는 특히나 음역이 좁은 오디리 햅번을 위해서 특별 작곡한 노래인 것으로 알고 있다.

 

노래야 당연히 줄리 앤드루스가 잘 부른다고 생각을 하지만, 어디 뮤지칼이 노래만 가지고 하는 건가. 오드리 햅번은 발레리나 출신이라서 춤 하나는 정말 끝내준다. <화니 페이스>에서 본 오드리 햅번의 춤은 잘 잊혀지지가 않는다. 아마 영화사가 더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춤 잘추는 여배우가 다시 나올까 싶다.

 

이제 그들이 한참 경쟁하던 시기에서 다시 50년 가까와진다. 배우의 개인적 영광으로 본다면 오드리 햅번의 완승이다. 그는 이디오피아 등 기아 문제의 맨 앞에 서서 암으로 죽을 때까지, 그야말로 배우의 사회적 기여에 대한 새로운 길을 열었다. 수년 전 다보스 포럼에서 마돈나와 안젤리나 졸리가 누가 다음 세대의 햅번 역할을 하느냐를 가지고 신경전을 벌인 적도 있다만... 둘 다 분위기는 아니다.

 

그렇지만 흥행에서는 줄리 앤드루스의 매력이 가장 끝까지 나온 <사운드 어브 뮤직>의 완승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역대 최대였는데, 이걸 넘어섰고, 여전히 잘 팔린다.

 

사운드 어브 뮤직, 예전에 LP만 두 장을 샀었고, 한 장은 지금도 가지고 있다. 디지탈로 전환된 이후 화질을 개선해서 새로 DVD를 냈는데, 이것도 샀다. 그리고 아직 CD라는 양식을 팔고 있을 때, ost도 다시 하나 살까 요즘 고민 중이다.

 

영화를 처음 본 건, 아마 6학년 때였다. 그 때 단짝 친구 중의 한 명과 요즘은 그냥 한국 유네스코  본부로 쓰는 건물에 있던 극장에서 봤었는데, 그 때도 재밌었지만 수 백번 본 요즘 봐도 재밌다.

 

주말에 아내가 출장을 갔었는데, 그 동안에 내내 이 영화만 보고 또 돌려보고.

 

어른이 되면 볼 일이 없을까 싶었는데, 몇 년 전부터 스위스 경제가 내 연구범위로 들어오면서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물론 영화 스토리는 좀 너무 낭만적이기는 하다.

 

그 당시 나온 꽤 많은 2차대전 영화가 오스트리아나 프랑스 같이 알프스를 접한 지역에서 스위스로 도망가면서 끝나는 것들이 좀 있다. 알려진 영화들도 있지만, 그냥 별 볼 일 없는 B급 전쟁 영화 중에서도 그런 스토리인 것들이 꽤 있었다.

 

많은 영화들은 스위스로 넘어가는 알프스의 아름다운 모습 아니면 눈 덮힌 만년설을 죽을 고생을 하면서 넘어가는... 거기에서 대개 끝난다.

 

내가 찾아본 역사책들에서는, 스위스는 당시 농업 생산량의 문제로 헐벗었는데, 워낙에도 가난하던 나라에 전쟁으로 무역이 끝나고, 일년의 6개월 밖에 농사지을 수 없던 이 지역에 유럽 난민들이 몰려드니까 문제가 생겨났다. 엄청나게들 배가 고팠던 것 같고, 밀려든 난민들을 추방한 얘기들도 많이 나온다.

 

스위스는 농업 지키기를 국민투표로 결정했는데, 이 때의 논쟁들을 뒤져보면 2차세계대전 때의 배고픔, 그리고 그 시기가 언제 또 올지도 모른다는. 우리는 그 시기에 그렇게 배고팠다고 하면서도 농업의 중요성은 애시당초 안드로메다로 보낸 것 같기도 하다.

 

스위스가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하게 된 것은 60년대 이후의 일이고, 대체적으로 유럽의 최빈민 국가 중의 하나였다.

 

어쨌든 스위스에 대한 연구를 하다보니, "우리는 스위스로 간다"는 간단한 모티브를 가지고 있는 이 영화가 또 조금은 다른 의미로 다가오게 되었다.

 

영화 내에서 노래는 수녀들의 노래와 폰 트래프 대령일가의 노래, 그렇게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나는 수녀들의 노래 쪽을 훨씬 좋아한다. 도레미송 하나만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다시 본다거나 아니면 ost를 내내 걸어놓고 있으면 좀 지겹겠지만, 수녀들의 노래를 좋아하면 정말 한 곡도 그냥 넘어가기 싫을 정도로...

 

요즘은 <매리 포핀스>를 보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어린이용 뮤지칼이라고 그냥 넘어가기 쉽지만, 생각보다 재밌고, 요즘 명박네 사람들이 보면 "뭐, 이런 좌파 영화가 다 있어" 할 정도로 선동적이고 투쟁적이다. 첫 장면이, 당시 막 시작한 여성주의자들이 집회에 나가기 위해서 결의를 다지는 장면이다. 디즈니가 본격적으로 생난리를 치기 전에는 어린이용 뮤지칼 같은 것들에도 어른들이 열심히 나름대로 자신의 코드들을 숨겨놓았던 적이 있었다. 그게 70~80년대 지나면서 미국의 건국신화들과 엮이면서 '접경' 그리고 '가족', 두 가지 정도의 코드로 진짜 이념 영화들이 되었다.

 

가끔 팀 버튼이 삐딱선을 타기도 하지만, 그도 돈을 벌어야 다음 작품을 하는지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다시 전형적인 디즈니풍의 영화도 만든다.

 

줄리 앤드루스는 보이기는 그렇게 안 보이지만, 단순하게 "미국 만세"를 외치는 그런 바비인형풍 배우는 아니다.

 

아내는 도대체 왜 그걸 보고 있느냐고 했지만, <프린세스 다이어리> 1편, 2편, 전부 다 재밌게 보았다. 여전히 여배우들이 춤과 노래에 달통했던 60년대의 기본 가락꾸를 잘 보여준다. <프린세스 다이어리> 1편은 DVD를 구할 수가 없었고, 2편은 막 살려고 하는데, 아내가 도끼눈을 뜨고 봐서 못 샀다. 상징이라는 눈으로만 본다면, 이 2편은 B급 영화로서는 아주 우수한 비판의 삐딱선을 잘 타고 있다.

 

여기에서 왕비가 줄리 앤드루스였다. 슈렉의 왕비 목소리도 줄리 앤드루스이다.

 

상상을 해보자. 만약 고현정이 노래도 부를 수 있고, 춤도 출 수 있다면...

 

최근에 비타민이라는 가수가 피아노치면서 노래 부르는 걸 바로 옆에서 들을 기회가 있었다. 간만에 보는 미성이고, 드물게 느낌있는 목소리였다. 그가 춤추면서 연기도 할 수 있다면...

 

그런 걸 다 모았던 게 오드리 햅번과 줄리 앤드루스가 활동하던 시기였다.

 

얼마 전에 브로드웨이쇼를 정식으로 본 적이 있었는데, 최근 브로드웨이에서의 활동을 기반으로 헐리우드 진출이 확정되어있다는 어느 여가수의 노래는... 우와, 잘 부르기는 정말 잘 부른다...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똑 소리나게 불렀다.

 

브로드웨이에서 대충 뒤에서 춤추다가 가끔 노래부르는 사람들이 1대 초반부터 활동을 시작해서 10대 후반이 되면 무대의 전면에 나서게 된다. 너무 기능인 위주로 브로드웨이가 가는 것 같다는 느낌을 좀 받앗었다. 그러니 영혼없는 마네킹이니, 바비인형이니, 그런 볼멘 소리들이 비평가들 목소리가 들리는 것일까?

 

사운드 어브 뮤직이 세계적으로 아직도 힘을 쓰는 것은, 이게 65년 영화이지만 당시 그 냉전의 한 가운데에서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혹은 소비에트냐 미국이냐를 선택하라는 그 논쟁에서 오스트리아를 배경으로 나찌와 나찌가 아닌 것, 그 사이의 갈등을 모티브로 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독재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인류 최후의 질문일테니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합창 대회이다. 집단적으로 박수를 치고 즐거워하던 그 사람들도, 어떻게 보면 본 트래프 대령의 탈출을 희망하며 도와주던, 일종의 공범과도 같은 대중이다. 수녀들만이 아니라 같이 대회에 참가했던 다른 합창단도 일종의 공범들이기는 하다. 시간 끌기...

 

요즘의 KBS는, 어떻게 보면 찰츠부르그에 열렸던 합창대회와 같은 구조일지도 모른다.

 

명박을 위한, 명박만을 위한, 그리고 명박만을 위한.

 

그게 요즘 KBS 아닌가? 그 와중에 본 트래프 대령 일가들이 가끔 나와서, So long, fare well, aufwiedersehn, 그런 노래들을 부르면서 다른 메시지를 던지고.

 

혹은 에델바이스 같은 노래들을.

 

시청자들은 알아서 박수치는 것 외에는 할 일이 별로 없지만, 사실은 탈출을 은근히 도와주려고 하는 그런 공범 구도?

 

도레미송과 에델바이스는 사운드 어브 뮤직이 세계에 남긴 두 개의 대표적인 곡이다.

 

우리 시대의 에델바이스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얼마 전에 어느 라디오에 꽤 길게 나간 적이 있었는데, 신청곡을 틀어준다고 해서...

 

보통 라디오에서 신청곡을 받을 때에 내가 늘 쓰던 음악은 이상은의 '슈퍼소닉'이라는 곡이었다. 얼마 전에 마포 FM에서도 그 노래를 들었었다.

 

사장님이, 아주 유명한 명박네 분이라서...

 

고를 곡이 너무 없어서, 결국 임재범 노래를 틀어달라고 했다. <추노> 주제가이다. 진짜 꼬투리 안 잡힐려고 나도 별 걸 다 신경쓰는 경향이 있다. KBS 드라마 아냐? 추노를 비롯한 KBS 몇 개의 드라마가 시청률이 상당히 잘 나오면서 명박네 사장님들의 경영성적표가 꽤 좋게 나와서, 입들이 찢어지실 지경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에델바이스는, 결과적으로 파시즘을 반대하는 대표적인 노래가 되었다. 30년 이상은, 파시즘과 싸웠던 제 3세계에서 이 노래가 울려퍼졌었다. 나는 박정희 시절에 초등학교를, 전또깡 시절에 중고등학교를 다녔었는데, 소풍 같은데 가면 에델바이스를 부르는 선생님들이 꼭 한 분씩은 계셨다.

 

영어 선생님도 부르고, 국어 선생님도 부르고.

 

말하고 싶지만...

 

그 애뜻함의 의미를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다.

 

은유가 가지는 힘... 사운드 어브 뮤직은 그런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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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내가 해제를 쓴 책인데, 해제와 추천사 그리고 내 책을 다 포함해서 가장 잘 팔린 책이 되었다.

 

처음에 이 원고를 받았을 때, 과연 팔릴까, 싶었는데 다행이다.

 

부탁을 처음 받았을 때, 역사책에 대한 해제를 쓰는 날이 나에게 올까 싶었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내가 고등학교 때 가장 못한 과목이 세계사였고, 국사도 완전 잼병이었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나는 역사는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했고, 사회에 대해서도 잘은 몰랐다. 내가 읽었던 책은 소설과 시, 딱 두 가지 밖에 없었다. 물론 소설은 엄청 많이 읽었지만, 흔히 사회과학이라고 부르는 그런 책은 대학 들어가기 전에 읽은 것이 없다.

 

세계사는, 당시 대입 시험에 열 문제가 나왔는데, 모의고사에서 세 개 맞은 적도 있었다.

 

세계사 선생이 나한테 난리를 치고, 엄청 맞기도 했지만.

 

나는 질병이라고 할 정도로 암기력이 나쁘다. 특히 단순암기는, 좀 병적으로 못한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아마 나는 경제학과에 진학하지 않았다면 대학을 졸업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간호학 개론을 조금 공부하면서 간호학과 시험문제를 본 적이 있었는데, 살벌한 암기들, 정말 각주에 나온 코너 솔류션들이 시험 문제로 나왔다. 생물학과에도 질린 게, 엄청나게 외워대야 하는데, 그들은 자신들을 '인간 제록스'라고 불렀다.

 

나는 지금도 집 전화번호와 아버님댁 전화번호 이런 것을 못 외운다. 집 우편번호 외우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럽다. 한 번도 집 우편번호를 외우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사학이 암기과목이 아니라는 것은 대학에 들어가서 알게 되었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에, 당시는 원주 교수였던 홍성찬 선생이라는 분이 계시다. 요즘은 모르겠는데, 그 시절에 사상사가 2학기짜리 과목이 있었고, 경제사가 역시 2학기 과목이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신고전학파 경제학으로 도배를 해놓은 학교에서 그런 과목이 있어서 좀 숨을 쉴 수가 있었다.

 

나중에 김용섭 선생의 조선사 수업들까지 쫓아다니면서 경제사 공부를 했는데, 경제사에는 외우는 게 거의 없다. 그렇게 해서 역사 공부를 시작한 셈이다.

 

물론 나는 경제사라는 창으로 들어간 셈이라서, 일반적인 역사학자들과는 역사를 보는 눈이 조금 다르기는 하다.

 

박사과정에 있을 때에는 경제인류학 공부를 좀 했다. 인류학이라는 게, 세상을 보는 눈을 아주 많이 바꾸게 해주었다.

 

지금도 선생 중에서 가장 반갑게 만나는 분이 홍성찬 선생이다. 유학 가기 전에는, 차세대 경제사 주자로 내가 될 거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가치론 전공한다고 유학을 시작해서, 결국 사상사 분과에서 생태경제학 가지고 박사 논문을 쓰면서, 사상사나 경제사나, 한 때 전공으로 생각했던 과목이 되어버렸다.

 

꼭 그런 인연은 아니지만, 서울대로 간 주경철 선배와 같이 공부를 했었고, 그 양반 논문 한참 쓸 때 나는 코스웍과 논문준비를 했었다.

 

삶도 인연이라는 게 있는지, 처형도 역사 전공이다. 자연스럽게 내 주변에는 역사 전공하는 사람들이 좀 많게 되었다.

 

내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것은, 경제학과에서 더 이상 경제사 전공들이 등장하지 않는 사소한 문제에서, 우리나라 전체로 사학 전공하는 사람들이 더는 등장하지 않게 된 것이다.

 

외사촌 중에 서울대에서 국사를 전공하고 대학원까지 나온 동생이 있다. 집안이 넉넉하지 않았는데, 다시 인천교대에 들어가서 교사가 되었다. 집안이 넉넉하면, 그냥 공부를 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우리 집안은, 그렇게 넉넉한 편은 아니다. 그 안타까움이, 요즘 문사철이라는 단어 속에서 나한테도 느껴진다.

 

역사책은 언제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아주 좁게 학술적인 논의를 할 것인가, 아니면 아주 넓게 통사에 관한 대중적 서술을 할 것인가.

 

어떤 의미에서는 통사는 매 시대에 필요하고, 그 시대에 맞게 통사를 재해석하는 작업이 계속해서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우리 시대의 통사는 과연 누가 쓸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질문들을 가끔 해본다.

 

좁은 분야에서의 기술적 해석에 관한 논의들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대학에 아직은 남아있는 셈이다.

 

그러나 진짜로 통사를 쓸 수 있는 사람은?

 

강준만 선생이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나라에서 통사를 쓰는 마지막 학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역사에 대한 강준만의 서술 방식에 약간 불만이 있기는 하다만... 그래도 그가 마지막 학자일 가능성이 높다.

 

사학과에서도 그리고 사학과가 아닌 곳에서도, 통사를 쓸 수 있는 사람을 우리 시대가 배출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다.

 

90년대 중후반에 통사의 성격을 가진 역사 입문서들이 한참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의 책에서도 아주 불만이 없지는 않지만, 이제는 그 정도의 얕은 지식으로라도 전체를 꿰뚫는 책을 한국에서 다시 보기가 어려울 것 같다.

 

그러던 차에...

 

일본에서 나온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중고등학생들이 세계사 공부를 삼아서 보아도 좋고, 역사라는 것을 진지하게 접해보지 못한 일반 대중들에게도 꽤 도움이 될 책이다.

 

언제 조선 사람이 쓴 책으로 이런 세계사 버전 혹은 특수사 같은 것들을 볼 수 있을까, 그런 회한이 해제를 쓰면서 들었다.

 

기 소르망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우파 학자이다. 프랑스에 신자유주의 붐을 만든 것이 바로 기 소르망이고, 그 때 그가 썼던 구호가 retour de l'individu, 개인의 복귀라는 용어였다. 프랑스에서는 신자유주의를 경제적인 의미로만 해석한 것은 아니고, 국가의 전성 시대를 거쳐 다시 개인이라는 범주가 돌아오는 것으로 이해를 시켰다. 물론 나는 기 소르망을 좋아하지는 않는다만...

 

그는 독서를 엄청 많이 하고, 취재에도 성실한 편이다. 그가 중국에 대해서 쓴 책을 읽었는데, 조선일보가 아주 좋아할 그런 내용들을 가득 담고 있었다.

 

그는 범죄자 수용소 같은 곳에 트럭 뒤에 장막을 덮고, 그렇게 숨어들어가서 현장을 보면서 그 책을 썼다. 정말 할 말 없게 만들었다...

 

그 정도 위치의 세계적 석학, 그런 사람이 중국 공안을 피해서 몰래 트럭을 타고 현장에 잠입하는 그런 노력을 하는데, 그게 "날탕이다" 혹은 "쌩뻥이다" 하기는 어렵다. l'anne de cocq, 닭의 해인가, 아마 그런 제목의 책이었던 것 같다.

 

한기호의 컨셉력에 관한 책에도 해제를 단 적이 있다. 그 책을 읽으면서 과연 21세기의 지식이라는 게 어떤 형태일 것인가, 그런 질문을 좀 가져본 적이 있다. 한기호는 그걸 컨셉력이라고 불렀는데, 그냥 편한 이름으로 하면 기획능력 정도가 될 것 같다.

 

문화기획자라는 이름을 좀 띄워보려고 연대에서 강의하던 시절에 좀 고민을 해본 적이 있다. cultural animator를 조한혜정 선생이 그런 이름으로 번역해서 사용하는데, 좋은 번역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이 책에 대한 해제를 달면서, '백과사전적 지식'이라는 말을 생각했다.

 

창의성이라는 고민과 이 개념을 연결시키는 작업을 요즘 해보는 중이다.

 

독자들에게는 어떻게 이 책이 다가올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해제를 쓰면서도 많이 배웠고, 또 한동안 고민하게 될 질문거리들을 찾아내게 되었다.

 

조선인이라면, 이 정도 책은 한 권씩 갖고 있는 게 좋을 것 같다. 물론 얕다. 그러나 그 정도의 얕음도 우리는 가보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과의 격차는, 더더욱 벌어지는 것 같다. 이걸 어떻게 줄일 수 있나... 그런 고민들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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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스님

독서감상문 2010. 3. 22. 16:32

명진 스님을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책에서는 접한 적이 있다.

 

북하우스라는 곳에서 <인생기출문제짐>이라는 책을 기획으로 낸 적이 있는데, 이 때 명진 스님의 글을 처음 보았다.

 

좀 밋밋해보이는 글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스노보드 타는 얘기에서 빵 터졌었다.

 

수영 얘기와 스노 보드 얘기는 정말 재밌다. 한 번 인용해보자.

 


"내가 낙산사에 있을 때 바닷가에서 수영을 즐겨 하곤 했다. 주로 장거리 수영을 했는데, 너무 멀리 가면 잘 보이지도 않고 하니까 스님들이 아예 양양해수욕장에 나를 내려놓곤 갔다. 다른 스님들은 차를 타고 뭍으로, 나는 수영을 해서 바닷길로 낙산사에 돌아갔다. 한 육 킬로미터쯤 되는 거리였는데, 삼십분에 일 킬로미터 정도를 헤엄쳐갔다. 세 시간 정도 걸렸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 수영할 수 있었던 것은 물에 몸을 맡기고 천천히 힘을 빼고 갔기 때문이다.

 

나는 스노보드도 좋아해 어지간히 타는 편이다. 처음엔 눈발을 미끄러져 내려오는 것이 그렇게 힘들더니, 어느 순간 힘을 빼니까 쉽게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 힘을 빼고 타니 넘어져도 다치지 않게 됐고, 자유자재로 방향을 틀어 움직일 수 있었다. 이처럼 인생에서 어떻게 힘을 뺄 것인가 늘 생각해야 한다. 참선하고 도 닦고 이런 것도 다 힘 빼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목의 힘을 빼듯이 마음의 힘을 빼야 유연해지고 부드러워진다." (명진스님, 217 페이지...)

 

 

스노보드 타는 스님을 좌파 스님이라고 했으니, 뒷 일은 나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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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형숙의 <경계도시2>에서 마련한 조그만 자리를 위해서 압구정 CGV에 다녀왔다.

 

메인 카메라만 3대, 보조 카메라 2대가 동원된, 당분간 한국 다큐에서는 다시 보기 어려운 초대형 스펙타클이며, 7년간 공을 들인 작품이다.

 

그리고 완성도 또한, 매우 높다.

 

22년간 다큐를 했던 감독, 우리 시대에 다시 나오기 어렵다.

 

여러 사람들이, 정성을 모으고, 공을 모아서, 정말 모아모아, 어렵사리 개봉관에 걸었다.

 

침묵의 카르텔,

 

그걸 깨기 위해서 어렵사리 개봉관에 걸었다.

 

 

주연 배우 또한 화려하다.

 

송두율, 검찰, 양대 거물이 주연이다.

 

조연 역시 화려하다.

 

언론, 지식인, 시민사회, 보수단체.

 

 

제발 영화 좀 보아주세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우린 마케팅에 쓸, 도니가 음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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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이 입적을 하셨다.

 

왠지 마음이 허하다. 알게 모르게, 나도 스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한 번 법정스님 책을 모아놓고, 글 쓰는 방식에 대해서 공부도 하고, 분석도 해본다고 얼마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성철 스님 돌아가셨을 때에는 사리가 나오지 않을 거라고 사람들이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사리가 많이 나왔고, 여기에 따른 후문이 수년 동안 끊이지 않았었다.

 

해인사의 청동불, 소위 그 '토깽이 사건'이, 바로 법정 스님이 남기신 말씀의 의미이다.

 

보편타당한 얘기이기는 하지만, 직접적으로는 성철 스님 입적하셨을 때 해인사의 개발파들이 벌렸던 어수선함에 대한 일갈이기도 하다.

 

해인사 옆의 골프장 사건과도 연결되어 있다.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에는, 살아서 동상을 만들지 말라는 말이 나온다.

 

죽어서도 동상을 만들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은데...

 

동상은 이순신 동상과 세종대왕 동상만으로도 이미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큰 스님 한 분이 또 떠나셨다.

 

이러면 안되는데, 법정 스님의 책에서 읽었던, 아침에 토스트 구워먹는 얘기가 자꾸 생각이 난다.

 

책으로나마, 영원히 우리 옆에 계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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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철의 <삼성을 생각한다>가, 얼핏 들은 걸로 이제 막 40만부가 넘었다는 것 같다 **.

 

출판사에 확인해볼까 했는데, 쑥스러워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런 게 민심인가 싶다...

 

내 일처럼 기쁘다.

 

김용철 변호사에게 진 마음의 빚이 많다.

 

작은 소망이 생겼다.

 

김용철은 이제 검사를 떠나서 검찰총장은 하기가 어렵겠지만, 법무부 장관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그가 한국의 법무부 장관이 되어, 그가 그토록 바랐던 좋은 검사, 일하는 검사들이 마음 놓고 외압없이 일할 수 있는, 그런 일이 벌어지면 좋겠다.

 

** (40만부는 아니랍니다... 저도 건너 건너 들은 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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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한두번은 청송에 가보게 된다. 청송에 가면 '진보면'이라는 곳이 있다. 얼마나 진보적인 분들이 사실까 싶다.

 

청송읍내에는 농협이 하나 있는데, 이게 바로 신정아가 농민 자격으로 영농자금 대출받은 곳으로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바로 그 농협이다.

 

지금은 폐지되었지만, 이 청송에 있던 보호감호소가 바로 그 유명한 지강혁의 보호감호소이다. 2005년에나 이 보호감호제가 폐지되었다.

 

정말 산밖에 없고, 이곳에서 서울까지 온 지강혁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런 걸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수려한 산세이다.

 

지강혁 사건을 다룬 영화 <홀리데이>는 10번 정도 본 것 같은데, 한 번도 지강혁의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은 적이 없다. 지금은 좀 괜찮을까, 다시 한 번 봤는데, 역시 눈물이 났다.

 

실제 얘기는 모르겠지만, 영화에서는 88 올림픽으로 철거민을 내쫓던 바로 그 시기와 전또깡의 시대를 다루고 있다.

 

노무현 시절에 이 영화를 보았는데, 상황은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도 바뀐 것 같지가 않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쫓겨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억울해지는 것 같다.

 

명박 시대, 역시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때와 바뀐 것은, 최민수가 그야말로 죄민수 버전으로, 몰락한 상태라는 점 정도.

 

그나마, 명박 시대, 이젠 <홀리데이> 같이 사회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영화도 거의 나오지 않는 것 같다.

 

용산 사건과 관련해서, 경찰 간부의 얘기를 직접 건네들은 것이 약간은 있다만.

 

철거민, 그리고 유전무죄, 무전유죄, 여전한 것 같다.

 

(혼자 영화 보면서 제발 이제는 좀 질질 짜는 짓 좀 안하면 좋겠는데, 이게 고쳐지지가 않는다. 얼마 전에는 <사랑은 아무나 하나>, 드라마 보다가도 울었다. 이게 당췌 울 장면이 나오지 않는 드라마인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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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준과 진짜로 얘기를 해본 것은 딱 한 번이다. 부산항 뒷골목에서 곱창구이를 놓고 부산에 관한 얘기를 해볼 기회가 있었다.

 

김석준 주위에는 재주꾼들이 많이 있었다.

 

지금 레디앙에 만화를 연재하는 이창우 화백이 그렇고, 사진작가 화덕헌이 있다.

 

화덕헌의 사진을 한 번 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때마침 김석준이 글을 쓰고, 화덕헌이 사진을 찍은, 그리고 부산의 구석구석에 관한 책이 나왔다.

 

부산에 관한 사진첩은 몇 번 본 적이 있었고, 지금은 도서관에 기증을 했지만, 부산 피난 시절의 모습을 담은 사진첩도 가지고 잇었던 적이 있었다.

 

책은 얇다만, 사진의 무게감이 가볍지 않게 느껴진다.

 

부산에 가면, 나는 늘 먹을 것이 고민이다.

 

맛있다고들 하는데, 전라도 쪽에 가면 그래도 맛있게 먹는데, 솔직히 부산이나 제주도에 가면, 난 영 입맛이 나지는 않는다.

 

일단 음식이 너무 짜다. 마치 독일에 와 있는 것 같다. 독일 음식들도 엄청 짠데, 부산도 거기 못지 않다.

 

입맛은, 나도 영낙없이 서울것이다.

 

<세 도시 경제 이야기>를 준비하면서, 맨 마지막으로 들어온 것이 부산이다.

 

내가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들을 화덕헌의 사진을 따라서 음미하면서,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이 아직은 낯선 도시의 미래 혹은 가지 않은 길이 보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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