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에 쓰던 턴테이블이 고장 나서 데논 40만원짜리를 새로 샀다.

 

장정일 선배한테 그 얘기를 했더니, 하이엔드를 부정하는 거냐, 거부하는 거냐?

 

그양반, 고마 화가 단단히 나삐따...

 

물론 나도 좋은 턴테이블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좀 하지만, 턴테이블이 비싸지면 카트리지가 너무 비싸서, 소모품 감당하기가 힘들어서... 나중에 정말 할 일 없으면.

 

그런 이유도 있고, 좋은 턴테이블은 커버가 없는데, 턴테이블 위에 고양이가 올라가서 발 핥고 있는 걸 보고 있으면, 비싼 걸 사겠다는 생각이 싹 사라진다.

 

마루에서 쓰는 스피커는 결혼할 때, 그야말로 결혼을 기념해서 새로 장만한 스피커이지만, 복각이다. 와트퍼피 짝퉁...

 

나중에 여유가 되면 와트퍼프 7 정도 있으면 좋겠다고, 상상이야 내 맘이다.

 

30대 초중반에는 나도 스피커 잠 많이 샀었다. JBL을 거쳐, 모니터 오디오 시절, 그러다가 국산으로 와서 몇 년간 돌다가, 국산 스피커 붐이 끝나면서 이제는 와트퍼피나 다인으로 가야지, 하다가 딱 결혼을 했다.

 

싼 것, 비싼 것, 이렇게 스피커만 다섯 조가 있다.

 

앰프는 한참 많을 때 다섯 조가 있었는데, 진공관은 벌써 나갔고, 지금은 인티 하나, 맛탱이 가서 블록 파워에서 그냥 싱글로 돌아온 거 한 조. 국산 앰프를 썼더니, 몇 년이 지나니 볼륨부터 시작해서 하나씩 맛탱이가 가기 시작하는데, 고치기도 귀찮아서 그냥 계속 하나씩 망가지는 중이다.

 

결혼 하고 나서 새로 산 건 데논 턴테이블이 유일한데, 그렇다고 새로 뭔가 나오면 가끔은 샵으로 뛰어가서 구경하는 짓은, 여전히 한다.

 

물론 마음 속에 그려보는 환강의 마지막 셋트는, 언제나 계속 업글 중이다만.

 

마루의 복각 와트퍼피에 올라간 고양이를 보고 나면, 그런 생각이 싹 사라진다. 스피커 그릴을 지지대로 밝고 올라가는데, 몇 번에 한 번씩은 그릴이 마루에 떨어져있다.

 

와트퍼피 위에 기운차게 올라가서 포효하는 고양이를 보면, 이게 복각이니 참고 넘어가지, 진짜였으면 속 꽤나 썩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앰프, 스피커, TV, 턴테이블, 전부 그냥 고양이 놀이터일 뿐이다. 진공관 앰프가 하나 있었는데, 진공관 틀었다가는 고양이 구워먹을 일 생길 것 같아서, 그냥 놀리고 있다가 결국은 맛탱이가 갔다.

 

B&W signature diamnond 모델로 40년 기념판이 나온 걸 봤다. B&W는, 소리에 비해서 너무 비싸서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조지 루카스가 모니터용으로 사용한다고 해서 조금 관심을 가지고 들어본 적이 있다.

 

이 모델은 B&W 중에서 중간급 정도인데, 얄쌍하고 예쁘기는 정말 예쁘다만...

 

고양이가 위로 올라갔다간, 영 파이다.

 

지금 방에서 쓰는 스피커는 민성 톨보이이다. 참 옛날에 내가 이런 것도 샀었군... 팔려고 해도 살 사람도 없겠지만, 지금은 그냥 몇 년째 계속 쓴다. 내가 생각해도 좀 한심한 소리이기는 하지만, 쿡트비의 영화나 보고 DVD 정도 보는데, 아무 하자 없다.

 

이넘은 그릴이 튼튼해서, 고양이가 위로 올라가도 아무 끄덕없다. 너무 튼튼해서, 잘 빠지지도 않고, 빠지면 도로 끼우기도 어렵다.

 

하이엔드와는 아주 거리가 멀지만, 하이 터프하기는 하다. water proof가 아니라 고양이 pro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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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 2월호에는 프랑스의 Arte에서 만든 마크 제이콥스 공방 다큐가 들어가 있다.

 

(Arte에서 만든 다큐 몇 개를 KBS에 소개한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결국 한 번도 우리나라에서는 방영한 적이 없다. 내 감성이, 딱 Arte가 만든 감성이다.)

 

마크 제이콥스의 아뜰리에에 관한 이야기인데, 지금은 '만악의 근본'처럼 간주되는 루이 뷔똥의 바로 그 수석 디자이너의 이야기이다.

 

(제이콥스면 유태인 아닐까? 야곱의 사다리, 바로 그 야곱 아니야? 확인은 안 해봤다.)

 

이라크전 등 집회가 있을 때면 맨 앞에 나오는 디자이너 이야기로 맨 처음 마크 제이콥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고, 도대체 왜 한국의 디자이너나 패션 작가들은 촛불 집회에 나오지 않는 거야...

 

라는 질문으로 이 이야기를 처음 접하게 되었었다. 촛불 집회 때, 소울 드레서 팀과 얘기를 나누게 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그 자리에서 처음 나오게 되었다.

 

최소한 미국만 같더라도, 반전 집회나 성소수자 집회 같은 데에, 루이 비똥 수석 디자이너들도 줄줄줄 나온다는데, 도대체 한국은 왜 이래.

 

작년에 드디어 영화제에서 남우 주연상을 받은 숀 펜은 몇 년 전부터 그런 집회를 직접 구성하고, 한국식으로 말하면 안성기 정도 되는 사람들을 불러내서 반전 집회를 구성하는 전문 시위꾼인 셈이다.

 

마크 제이콥스는 집회를 구성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페스티발형 집회가 있으면 맨 앞 줄에 서는 사람으로 들었다.

 

그가 어떻게 작업을 하는지, 너무너무 궁금했었는데, 바자에서 끼워준 다큐를 보면서 궁금증의 일부가 풀렸다.

 

파리 패션쇼를 준비하는 과정이 아주 자세히 나와 있는데, 내가 늘 만들어보고 싶었던 공방의 모습과 비슷하기도 했었고.

 

'모델'이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약간은 이해를 하게 되었다. 슈퍼 모델에 대한 찬사들이 줄줄줄 이어지고, '스마트 모델'이라는 말을 듣거나, 샤날이 '100시간을 서 있는 모델이 필요하다'고 할 때, 왜 모델이 그렇게 중요한지 잘 이해하지를 못했었는데...

 

마크 제이콥스의 다큐를 보고 이걸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패션쇼의 맨 앞 줄에 서 있는 모델들은, 디자이너 팀과 같이 밤샘을 하면서 현장에서 바로 옷을 입고 워킹을 한다. 즉... 처음부터 특정 모델을 위해서 옷이 만들어지는데, 그 느낌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마크 제이콥스가 뉴욕에 있던 시절에는 중심이 뉴욕으로 간다고 했다가, 마크 제이콥스가 파리로 가니까, 이제 뉴욕 자본이 파리 시장을 잠식한다는 말이 떠돌았었는데...

 

그 진실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지금 패션 시장의 맨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하고, 소통을 하고, 그 아뜰리에 내에서 믿음을 만드는지, 아주 약간 이해를 하게 되었다.

 

샤넬은 다른 사람들하고 옷을 만드는 방식이 좀 달랐다고 한다. 노년에, 그녀가 옷을 만드는 과정 자체를 쇼로 만들어서 공개를 한 적이 있다는...

 

영화 <여배우>를 비롯해서 생산 과정으로서의 패션에 대한 영화나 다큐가 슬슬 유행할 기미를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그 과정을 진짜 손으로 보게 될 때는, 언제나 뒷북이다. 마크 제이콥스도, 이제는 약간 한 물 간 느낌이 든다. 새로운 유행은,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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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율 선생의 사건을 다룬 다큐멘타리 <경계도시 2>가 드디어 극장에서 상영을 시작하고, 시사회도 갖는가보다.

 

재밌을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송도율 선생 이야기보다는 그 사모님 얘기가 훨씬 더 재미있었다. 그 얘기는 <문화경제학>의 도서관 부분에 사서에 관한 에피소드로 일부 들어가게 될 것이다.

 

가고는 싶은데, 시사회 날 나는 출장 중이라서 못간다. 극장에서 볼 생각이다.

 

하여간 관심있으신 분들은, 이런 영화가 있나보다, 노트를 해두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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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롯 갱스부르의 영화는 하나 밖에 못 봤는데, 몇 가지를 추적하다가 보니 <안티 크라이스트>라는 영화를 만나게 되었다.

 

샤를롯 갱스부르가 이 영화로 2009년 깐느 여우주연상을 타게 되었는데... 볼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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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신년에는, 영화를 아주 많이 봤다.

 

언터처블

 

아르마니가 미국 진출할 때 영화 비지느스와 손을 잡았었는데, <어메리칸 지골로>와 <언터버블>이었다. 이탈리아계 깡패들이 아르마니를 입게 만든 영화. 최근 기성복과 맞춤 양복 시장에 대해서 몇 가지를 알아보고 있는 중인데, 오래 전 영화지만 아르마니 스타일이 어떤 것인지 좀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서 본 영화이다. 같은 캐빈 코스트너가 등장한 <D-13>과 비교하면서 봤는데, 확실히 아르마니 선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 것 같다.

 

팰리컨 브리프.

 

얘기만 듣다가 보기는 처음 봤다. 화학회사와 생태계에 관한 영화라는 관점에서 보니까, 만약 포스코와 광양의 괴질병 사건과 관련된 영화를 만들면, 어떤 일이 생길까, 그런 질문이 들었다. 지난 정권의 일인데, 광양 사건과 관련해서 보도자료를 환경단체와 같이 돌린 적이 있었다. 정말로 신문사 국장들 회의가 있는지 몰랐는데, 그런 게 있다는 걸 진짜로 처음 알게 된 사건이었다. 아무 신문도 다루지 않았는데, 역시 포스코가 쎄긴 쎄구나 싶었다. 내가 그렇게 무서운 회사와 10년 동안 일을 했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전한테는 개겨도 별 일 안 일어나고, 삼성 비판해도 실제 일은 잘 안 벌어지지만, 민영화 이후의 포스코는, 대한민국의 진짜 언터처블의 클라이막스이다. 팰리컨 브리프는, 그런 미국 최고의 부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본, 줄리아 로버츠가 나온 영화이기도 하다. 줄리아 로버츠와 전도현이, 내가 보지 않는 영화 리스트의 1번인데, 그걸 처음 깼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 중에, 전도현이 나온 것은, 류승완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안 봤다. 이유는... 없다. 그냥 싫어서.

 

강철중, 공공의 적 1, 공공의 적 2

 

프랑스 문화원에 놀러갔다가 강철중이 있어서 DVD를 빌려 왔다.

 

또 볼 영화는 아니다.

 

마파도 2

 

마파도 시리즈는, 좀 더 나와도 좋을 것 같다. 이문식이 나오면, 아무리 헐렁한 영화라도 재밌다. 한국 영화에 그런 최강의 조연들이 좀 있다. 이문식, 유해진, 그런 최강의 조연들. 만약 나한테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배우를 꼽으라면, 단연 '오왕재' 안길강을 뽑을 것이고 - 바로 <짝패>의 그 오왕재 - 그 다음으로는 유해진을 꼽을 것이다.

 

연애의 목적

 

별 생각없이 보기 시작했는데, 상당히 재밌었다. 강혜정이 나온 영화는 처음 본 것 같은데, <웰컴투 동막골>은 한 번도 전편을 제대로 앉아서 본 적이 없고, 워스터 영화 리스트에 들어갈 정도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 영화이지만. 그래서 강혜정의 연기를 차분히 본 것은 처음이다. 약간 토 나올 듯한 몇 번의 과장을 제외하면, 악동스러운 어느 한 여성의 삶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현실성은, 아주 높아보였다.

 

알 포인트

 

왜 만든 영화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재미는 있다. 재갈량이 베트남 쳐들어갔을 때 생겨난 전설이 아닐까, 그런 택도 없는 생각을 하면서, 아, 저기에서 중국분들이 그렇게 삽질들을 하셨군, 그 생각이 잠깐 들었다.

 

조용한 가족

 

보다보다 포기했다. 재미없는 영화 참고 보는데에는 나도 어지간히 자신있었지만, 결국 포기했다. 간만에 보다가 만 영화가 되었다.

 

해변의 여인

 

홍상수 영화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보고는 처음 보는 영화이다. 난 원래 예술 영화는 안 본다... 는 생각을 가지게 해준 사람이 두 명이 있는데, 내가 B급 영화를 자처하고, 진짜로 B급 영화만 보게 만든 사람이 봉준호와 박찬욱이다.

 

좀 다른 이유지만, 홍상수, 박찬욱 그리고 봉준호의 영화는 거의 보지 않는다.

 

이 사람들 영화가 너무 싫어서 나는 이 영화를 안 볼 이유를 찾아야 했고, 그러다보니 B급 영화만 본다, 그렇게 된 거고, 그렇게 몇 년을 지내다보니 정말 B급 영화 정서가 생겨나게 되었다.

 

봉준호 영화는, 결혼이 파혼으로 끝날 뻔한 적이 있었다. 아내가 <살인의 추억>의 시나리오와 스크립트를 미리 본 적이 있다고 결혼하기 전 같이 본 적이 있었는데, 그게 아내와 내가 했던 첫 번째 싸움이었다. 영화 중간에 나는 그냥 나가자고 했고, 아내는 그냥 더 보자고 했고... 그 길로 나와서 나는 이 여인과는 결혼 못하겠다고 생각을 했지만... 그냥 토 나올 뻔한 걸 참으면서 끝까지 봤다. 피장파장이 된 것은, <디 아이2>를 극장에서 봤는데, 이번에는 아내가 나가자고 했는데, 내가 끝까지 봤다. 어쨌든 나에게 <살인의 추억>은  올 모스트, <파혼의 추억>이 될 뻔한 영화였다.

 

그 후에 <괴물>은, 녹색평론의 김종철 선생이 꼭 보라고 해서 갔다가, 결국 녹색평론에 기고하지 않기로 한, 결정적으로 녹색평론과 헤어지게 된 계기가 된 영화가 되었다. <괴물>이 재밌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같이 철학과 세상에 대해서 깊게 논하는 것은 곤란하다... 는 생각을 할 정도로, 나는 민감하다. 연세대학교 강사를 그만두게 된 결정적인 계기도 바로 이 영화 <괴물>에서 시작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봉준호와는 아무런 감정이 없지만, 그의 영화관과 세계관과는 한 지붕을 얹고 살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할만큼, 토의 절정이 놓여있는 세계관이다.

 

박찬욱은... 안 본다. 한 편도 본 적이 없어서, 얘기할 것이 없다. 다만, 내가 만들고 싶은 세계와는 그가 살아가는 세계는 좀 다른 것 같다.

 

홍상수는, 봉준호와 박찬욱 사이에 끼어서 괜히 안 보는 감독이 되었다. 사실 별 이유는 없는데, 그냥 그렇게 사람들이 같이 묶는 바람에 어느새 나도 두 사람과 비슷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좀 있었던 것 같다.

 

<해변의 연인>은, 영화 <짝패>를 제외하면 21세기가 들어와서 내가 본 한국 영화 중에서는 두 번째로 재밌는 영화일 것 같다. 현실... 현실적이고 사실적이라는 말을 붙인다면, <해변의 연인>은 그런 느낌을 주는 영화였다. 고현정이라는 배우를 다루는데... 정말 이만큼 잘한다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홍상수의 영화를 조금 더 찾아서 보기로 마음을 먹었고...

 

얼마 전에 본 <여배우>라는 영화에서 보여준 고현정의 모습에 대해서 조금 더 차분하게 찾아볼 생각이다.

 

웩더독

 

책에서는 많이 봤는데, 진짜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 정치를 비판할 때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영화이다.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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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렉 더 비기닝>이 나오면서 옛 극장판 스타트렉 10편짜리 박스본이 나왔다.

 

난, 박스본만 보면 가슴이 설래인다. 보자마자 질렀다.

 

이래저래 4편 정도는 가지고 있고, 그 중에 하나는 미국에 있는 후배가 보내준 거라서, 지역코드에 걸려있는.

 

개인적으로는 7편 <Generation>편을 가장 좋아한다. 샹젤리제에 있던 고몽에서 봤나, 하여간 한참 힘들 때, 이걸 보면서 마냥 신났던 20대 때의 기억이 담겨 있다.

 

린 마굴리스 여사가, 스타트렉, 5분 봤는데, 순 개뻥이라고 말한 걸 얼마 전에 읽은 적이 있다. 저렇게 우주여행을 하려면, 이런 밀실이 아니라 지구 생태계와 비슷한 유형이 되어야 여행이 가능할 것이라는...

 

그런 점에서는 계속 쓰레기를 내다버리는 <월 E>의 우주선은 어떻게 물질 순환계를 형성했을까, 때때로 의문이 드는.

 

아, 한 때 우리 모두는 스팍의 열렬한 팬이 아니었던가?

 

심통맞은 얼굴로 나오는 <스타트렉 더 비기닝>을 보면서, 스팍이 왜 저래! 충격 받았었다.

 

스팍, 참 많이 늙었다. <스타워즈> 4, 5, 6 나온 박스본에 보면, 루크 스카이워커가 중년의 아저씨가 되어서 인터뷰하는 장면이 길게 나온다. 뭐야, 루크 스카이워커가 왜 저렇게 되었어?

 

데이타의 죽음 이후, 이제 스타트렉 시리즈는 안 나오나? 가장 매력적으로 생각한 캐릭터였는데...

 

하여간 스타트렉 박스본, 이번이 아니면 다시 한국에서 발매될 기회는 없을 것 같다. 요즘 DVD 시장이 완전히 죽어서, 뭐든 나오면 보일 때 사지 않으면, 다시 살 길이 없는.

 

박스본만 보면, 나는 가슴이 뛴다.

 

앞으로 한동안, 심심할 일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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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경제학이라는 학문은 워낙 민감해서 나도 어지간해서는 언급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매릴랜드 대학인가, 하여간 행복경제 전공하는 어느 교수가 오바마 당선과 함께 진보센타의 간부로 가게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도 벌써 1년 가깝게 되는데, 그 이후에 새로운 테제가 나왔다는 얘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어쨌든 '행복'을 계량적으로 접근해서 지수를 뽑아내는 것을 주제로 하는 경제학이 최소한 10년 전부터 등장해서 활동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행복경제학 공부한 사람이나 전공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고는 있다. 가끔 코멘트 해달라는 부탁을 받기는 하는데, 나도 행복의 계량기법에 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어서, 잘 모른다고 하고 도망간다.

 

<행복경제 디자인>이라는 책은, 행복 경제학과는 아무런 상관은 없는 책이다.

 

이 책은 얼마 전에 한국사회경제학회가 참여하는 공동학술대회에 구경하러 갔다가 그냥 나오기가 미안해서 사들고 온 책이다. 학회비 안 내기 시작한지도 꽤 되는데, 그 동안에 나도 멜 주소가 여러 번 바뀌어서 학회비 내라는 얘기를 안한다. 어차피 자주 나가지도 않는 학회인데, 그냥 모르겠다... 고 뭉개는 중인데, 그렇다고 마음에 미안함 마저도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서.

 

이 책은 대구에서 석학강연 시리즈로 진행된 여섯 개의 강연을 책으로 모은 것이다.

 

이정우, 김윤상. 김유선, 김수행, 장상환, 이병천, 이렇게 6명의 강연이 모여있다. 이 정도면, 한국 진보의 state of art라고 할만하다 (좌파의 state of art는 아니고.)

 

김윤상 교수를 제외하면 나머지 분들은 평소에 어떤 얘기를 주로 하는지 잘 아는 편이고. 김윤상은 개인적으로는 잘 모르지만, 역시 도시계획학 분야에서 도시공학적 접근을 하지 않는 시각에 대해서는 익숙한 것들이고.

 

김수행 선생과는 지승호의 김수행 인터뷰 작업 중에 대담자로 같이 만난 적이 있어서 최근의 생각에 대해서는 비교적 소상하게 들을 기회가 있었고. 이병천 선생과는 폴라니 학회를 만드는 것과 관련해서 이것저것 건네들을 기회가 있었고.

 

그러다보니 이 책에서 내가 잘 모르던 얘기를 비교적 소상하게 볼 기회가 된 것은 이정우 선생의 경우이다. 이정우... 노무현 초기에 정책에 관한 평가에서 빼놓고 넘어갈 수 없는 인물이다.

 

1년 전인가, 사회평론에서 부탁받은 글에서, 한 절을 노무현 시절의 정책실장들에 대해서 비교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잡지사에서는 비판이 너무 민감한 내용이라고 수위조절을 좀 해주면 좋겠다고 했었고, 나는 기분이 팍 나빠져서, 절 하나를 통으로 빼버리고 엄한 얘기들로 다시 보내준 적이 있었다. 스노비즘에 관한 글이 다소 맥 빠진 글이 되어버린 것은, 하일라이트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정책실장에 대한 비교가 빠져서 그렇다.

 

노무현 초기 시절의 이정우-정태인 라인을 어떻게 평가하느냐, 이게 사실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했는데...

 

정태인 선배와는 몇 번 얘기한 적이 있다. 류종일 선배와는, 당시에 환경운동연합에서 주관을 해서 토론회를 기획하기는 했었는데, 그가 중국에 안식년을 급하게 떠나게 되어서 일정상, 그 기간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할지에 대한 기회가 없어졌다.

 

만약 토론회에서 만났다면 물어보고 싶은 몇 가지 얘기들이 이정우의 강연에 거의 대부분이 들어가 있는 것 같다.

 

아, 그랬구나...

 

나도 궁금하던 것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과연 노무현 정부의 초대 정책실장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기회가 되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오면서 청와대에서 정책실장이라는 자리를 없앴다. 그러다보니 정책의 프레임을 끌고 가는 핵심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게 되었다. 이게 정부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아닌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첫 정부가 출범할 때, 곽승준이 그 비슷한 역할을 했었는데, 자산이 100억원이 넘는다는 사실과 농지투기에 대한 건 등으로 그가 계속 흔들리다가, 결국 촛불집회 때 청와대에서 나오고 이후로는 외곽 단체에서 계속해서 집권세력과 파열음을 내고 있는 것 같다. 아마 참여정부 시절처럼 청와대 정책실장이라는 자리가 계속 있었다면, 지금의 곽승준이 예전의 이정우의 자리에 있었을 것 같은데.

 

김수행이나 장상환이나 평소에 목소리를 일반인들이 잘 접하기 어려운 사람들의 세계관이나 현 시점에서 한국을 보는 눈, 그런 것들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진보의 스타학자라면, 최고의 스타학자들을 모아놓은 책이기는 한데...

 

별로 팔릴 것 같지는 않다. 예를 들면, 내가 출판사를 직접 만든다고 하더라도 이분들의 글을 원고로 받아서 출판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배분으로 치면 맨 상위의 배분들이고, 원고 빨리빨리 안 쓰기로도 또 유명한 분들이기는 한데.

 

이 정도를 모아놓았는데도, 책은 어지간히도 안 팔리는 모양이다.

 

이게 강연이라는 형식 때문에 그런 것인지, 아니면 진보의 정책이라는 게 워낙 안 팔리는 아이템이라서 그런지... 질문 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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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을 다시 보았다.

 

그래, 우리가 이 영화에 열광했던 적이 있었다. 꼴찌 만세, 찌질이 만세, 마이너 만세... 한국에도 그런 것들이 아름다운 것이고, 하고 싶은 일을 최선을 다하면 그것만으로도 멋진 것이라고 박수 치던 시절이 있었다.

 

2004년, 불과 5년 전의 일이지만, 꼴찌에게 기꺼이 박수를 치던 우리의 모습이 너무 멀어보인다.

 

언제부터 우리가 지금과 같이 힘을 숭배하고, 대세론이 거대한 파도를 만드는, 그런 시기가 되었을까?

 

감사용과 박철순, 과연 우리는 누구에게 투사하고, 누구를 응원하면서 살고 있을까?

 

진짜 그랬는지 모르지만, 영화로 본 삼미슈퍼스타즈는, 분위기만큼은 괜찮았다. 비록 꼴찌 팀이지만 팀내 에이스가 패전처리 투수에게, 왜 자꾸 존대말 쓰냐고 얘기하는 것.

 

많은 사람들이 간절히 바라는 그 승리는 오지 않았다.

 

그래도 무슨 상관이랴.

 

우리는 꼴찌, 패배자, 그런 것들에게 너무 아무런 가치를 주지 않는다.

 

꼴찌들이 꼴찌를 응원하지 않고 승자만을 응원하는 이 기이하며 그로테스크한 2009년의 모습, 감사용을 돌아보면서 2009년을 살았던 우리들의 모습을 다시 떠올려본다.

 

처음 영화를 보았을 때, 박철순의 20승 게임이 끝나고 혼자 덕아웃에 앉아서 우는 감사용 아니 김범수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턱없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이기고 싶었어요, 나도 한 번 이기고 싶었어요. 이길 수 있었어요."

 

이 대사가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고, 펑펑 울었던 기억도 꽤 오래 갔다.

 

힘에 대한 열광, 힘에 대한 집착, 이게 좋은 것은 아니다. 어쨌든 세상의 대부분은 패자이고, 이제 패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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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경스럽게도 내가 류승완 감독을 만날 날이 있었다.

 

이게 완전 동생 둔 형들의 얘기와 마찬가지이다.

 

류승완 감독이 해준 가장 재미있는 얘기는, 얼마 전에 그의 자식이 돼지 독감에 걸렸는데, 동생이 용한 의사를 소개시켜주겠다는 것이다.

 

그 의사, 내가 소개시켜준 사람인데...

 

장하준과 몇 달 전에 식사를 같이 한 적이 있는데, 그날도 진짜로 공들여서 애기한 건, 무슨 민주주의니 한국 경제니, 그런 얘기가 아니라 과학사 공부하는 장하준 동생에 관한 얘기였다.

 

이게 무슨 마누라 자랑하는 쪼다들도 아니고, 동생 얘기하는 형들이라니...

 

참 한심한 형들의 이야기인데, 사람 사는 게 결국 만나서 진심에 관한 애기들을 하다보면, 부인 얘기, 자식 애기 아니면 동생 얘기들인게 당연한가 보다.

 

나도 쪼다처럼 할 말 없으면, 동생 얘기나 한다.

 

형보다 잘 난 동생을 둔 사나들이 만나서 할 얘기 없으면 결국 동생 얘기나 한다. 진짜 쪼다 같은 사나들의 얘기이다.

 

장하준도 동생 얘기를 할 때면 눈에 생기가 돌고, 경제학자가 아니라 인간의 모습으로, 그리고 내 삶, 참 이거 아니다라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류승완이 동생 얘기를 할 때의 그 눈빛, 그 때 나는 장하준의 눈빛에서 본 그 눈빛을 연상했다.

 

장하준의 동생은 가난한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장하준이 동생 생각하는 마음만은 그윽했던 것 같다.

 

류승완이 동생 얘기를 할 때, 결국 밥이나 먹고 살게 된 동생에 대한 자신감... 그 자부심은 마음 속에서 깊게 느껴졌다.

 

2.

영화 <라디오 데이즈>, 이것이야말로 류승완의 동생인 류승범을 위한 영화가 아니었던가!

 

참 이런 영화의 주인공으로 나선 류승범을 보면서 류승완이 무슨 마음이 들었을까? 내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보게 되었다.

 

얼마 전에 어떤 행사에 관계된 적이 있었다. 무조건 사람을 모아야 하는 행사인데, 류승범을 불러달라고 누군가 부탁을 했었다.

 

제기랄... 니가 류승완을 아니까, 부탁하면 될 거 아냐...

 

그 말을 뒤로 들었던 날. 그 날이 내가 처음으로 '팬심'이라는 단어를 생각한 날이었다. 난 그냥 류승완의 영화가 좋았을 뿐인데, 이렇게 저렇게 도와달라고 하는 말을 들으면서.

 

낸 못한다.

 

그 날 처음으로 '팬심'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냈다.

 

난 장하준의 팬은 아니고, 그의 동생의 팬이다. 사실 잠깐 장하준을 보면서 그의 동생의 얼굴이나 한 번 좋겠다는 생각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면, 잠깐 한 적이 있다.

 

조선 최고의 천재라는 장하준의 동생, 나라고 왜 안 보고 싶겠는가. 살아있는 조선인 중 최고의 천재라고 내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장하준의 동생, 나라고 왜 안 보고 싶었겠는가.

 

내가 정말 천재라고 생각한 외국에 있는 학자들이 내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한 얘기가 장하준 동생에 관한 얘기였다.

 

한국에 돌아오지 않는 혹은 돌아오지 못하는 학자들의 세계가 또 있기는 하다.

 

장하준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 세계에서 장하준의 동생에 대한 명성이 자자하기는 하다. 나도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싶어졌을 정도이니 말이다.

 

3.

그러나 현실적으로 내가 더 높게 치는 것은 류승완의 동생인 류승범이다.

 

형을 떠난 동생이,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예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고스란한 느낌이 영화 <라디오 데이즈>에 담겨 있었다.

 

그 날, 방송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그 질문, 그 속에 경성이라는 단어의 애환의 거의 대부분이 녹아있다.

 

우와, 영화 엄청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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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안이라는 사람이 <누가 칼레의 시민이 될 것인가?>라는 책을 썼다. 이 책 얘기 전에, 나와 이계안의 관계를 밝히는 게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다.

 

가끔 얘기하는데, 우석훈이라는 인생은 이계안과 오영호 작품이라는 사실. 이계안은 현대자동차 사장이었던 그 이계안을 얘기하고, 오영호는 지금 한국무역협회 부회장인 그 오영호를 말한다. 내가 말하는 법, 생각하는 법, 일하는 법 심지어는 숨쉬는 법까지, 이 두 사람한테 배운 셈이고, 취향과 감성 혹은 지키고자 하는 가치들까지 상당 부분을 이 두 사람에게서 배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쉽게 얘기하면, 우석훈이라는 인생을 키운 것은 좌파는 결코 아니고, 우파 중의 우파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이, 당신은 커서 자랑스러운 우파의 기수가 되라고, 그야말로 공들여서 한국의 우파로 키워놨더니...

 

아, 미안해요, 아시다시피 전 원래 빨갱이쟎아요?

 

이렇게 된 셈이다.

 

오영호와의 관계부터 얘기하자. 오영호는 전형적인 관료이고, 관료 사회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내가 총리실에서 일하게 된 것 그리고 청와대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한국 사회의 이곳저곳에 일종의 기획자로서 관여하게 된 것은 국장 시절의 오영호의 보좌관으로서 일했던 것이다. 정부가 어떻게 작동하고, 관료 조직이 어떤 곳이고, 또 그 안에서 정말 의사결정을 하게 되는 장치가 어떤 것인지, 구석구석 나를 안내하고 살아가는 법을 알려준 것은 오영호 국장이었다. 그는 나를 전문협상가로 키우고 싶어했고, 국내 산업정책과 통상 협상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전문가로 양성하고 싶어했다. 살면서 먹고 사는 데에 대한 생각을 크게 하지는 않았는데, 몇 년 전 정말로 통장에 10만원 밖에 남지 않아서 대략 난감하던 위기에 부딪힌 적이 있었다. 그 때 우리 집에 쌀을 보내준 사람이 오영호였다. <88만원 세대>를 한참 쓰고 있던 시절, 나는 정말로 도니가 매말라붙은 상태였는데, 그 때 딱 한 번 오영호의 후원을 받아서 살림을 꾸려나갔던 시절이 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경제적 도움을 받은 것은 딱 한 번, 오영호로부터였다.

 

그가 마지막으로 그러면 교수라도 하라고 그랬을 때... 남 도움은 안 받는다고 거절했다.

 

나는 자존심이 강해서 남의 도움은 받지 않으려고 하지만, 오영호에게는 한 번 도움을 받았다. 그래서 내가 그를 은인이라고 생각하고, 그 고마움은 잊지 않으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계안은...

 

나를 사회로 끌어낸 사람이다.

 

96년도 가을학기에 연세대학교에서 시간강사로 앞날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시간을 떼우던 시절이 있었다. 전부 얘기하면 긴 스토리이지만, 간략하면, 이계안이 현대환경연구원이라는 조그만 조직을 현대그룹 내에 만들었고, 시간강사에서 공채 박사 1호로 현대그룹에 들어가면서 나의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시작된 것이다. 공무원 사회라면 있기 어려운 일이지만, 이계안 전무시절이었고, 나는 과장시절이었는데, 1년 정도 지난 다음에 나는 이계안에게 직접 지시를 받고 움직이게 되었다.

 

그 당시 나에게 일을 시키던 사람은 공식 조직과는 별도로, 현대경제사회연구원 원장, 상무, 현대엔지니어링 사장, 기타 등등 사장, 그런 몇 사람이 있었다. 왕회장에게 직접 지시를 받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나에게 일을 시킨 사람들은 상당수 왕회장 지시라고 하면서 일을 시켰다.

 

현대 시절은 즐거움과 슬픔이 동시에 있던 시절이었는데, 이계안과 일을 하던 것은 즐거움에 속한 것이었고, 학계의 동료들과의 관계는 슬픔에 속한 것들이었다.

 

아마 IMF 경제위기가 없었다면 훨씬 더 즐거운 시절이었을지도 모르지만, IMF 경제위기 한 가운데에서 나도 종합기획실의 약자였던 종기실의 지시를 받아, 이것저것 구조조정 작업에 같이 참여하면서 정말 못할 일도 많이 했다. 짜르는 게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이 작업에 나도 참여를 했었다.

 

나중에 이계안은 현대자동차 CEO로 갔는데, 그 당시 나에게 그룹이 제시한 것은 3가지 선택이었다.

 

이계안을 따라 현대자동차로 가는 것, 현대건설 기획실로 옮기는 것, 그 두 가지 전부 싫다고 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선택이 지금은 현정은이 끌고가고 있는 대북기획단으로 옮기는 것.

 

그들은 연구원을 계속 둘 생각은 없었던 것 같았다.

 

괴로운 시기였는데, 마침 정부기관에서 특채를 해주는 덕분에, 부장으로 승진하면서 사람들이 '철밥통'이라고 부르는 공기업 팀장으로 옮기게 되었다.

 

이게 대체적으로 내가 "너무 오래 회사에 있었다"는 말을 남기고 사직서를 낼 때까지 살아온 인생의 경로이다.

 

가끔 요즘 대학생들과 격의없는 얘기를 할 때...

 

삼성 과장이 되는 삶이 그렇게 좋으냐고 물어볼 때가 있다. 아마 지금 대학생이 평생을 회사에서 진급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있던 위치까지 진급하기가 쉽지가 않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개별적 조언을 해주기가 어렵지만, 지금이 어렵더라도 삼성 과정말고도 재밌는 삶이 한국에서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 실험은 몇 명이 학생들과 지금도 계속해보고 있는 중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이계안은 여러가지로 재밌는 사람이다. 물론 옛날 사람이라서 좀 답답하기도 하고, 여전히 왕자병 중증이기도 하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왕자병 중증들이기는 한데, 지독할 정도로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던 이계안에게도 그런 왕자병이 있다.

 

게다가 완전 교수님이다... 나한테도 한 시간 동안 강의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옛날부터 그랬다. 계동 현대본사에서 지나가는 길에 마주치면 점심이나 먹자고, 도시락 하나 사주면서 전날 청와대 사람들과 싸우면서 울화통이 터진 얘기 등등, 대단한 강의를 하고 나야 직성이 풀리는.

 

지금도 생각하면 이계안한테 정말 고마웠던 한 가지가 있다.

 

IMF 경제위기 한 가운데에서 나는 현대그룹 과장이라는 신분과는 별도로 참여사회연구소에서 재발개혁을 담당하는 연구위원이기도 했는데, 그 때 나는 현대그룹을 담당하고 있었다. 박변이라고 우리가 불렀던 박원순 변호사가 지금처럼 유명해지기 전이고, 장하성 교수가 막 소액주주 운동을 하면서 유명해지던 시절, 그 때의 연구그룹에 나도 끼어있었다. 환경운동연합과 일을 하기 전에 나는 참여연대와 먼저 일을 하고 있었다. 당시 참여사회연구소도 운영비가 부족했었는데, 조정래 선생이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팔아서 연구비를 대주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런 인연으로 인해서, 어지간해서 조정래 선생에게 비판해야 할 일이 있을 때에도 한 번은 더 생각해보게 되기는 한다.

 

하여간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 누군가 일러주었고, 그게 종합기획실 실장인 이계안에까지 갔다. 그래서 종기실장실로 불려갔다.

 

나는 퇴직을 각오하고 있었다.

 

한 10분 정도 얘기했던 것 같다.

 

누가 하더라도 할텐데, 그래도 니가 담당하는 게 낫겠지.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이계안이 참여연대 후원회원인가 아니면 회원인가, 하여간 자신도 참여하겠다고 그렇게 얘기를 하고 그 상황이 마무리되었다.

 

학회 발표만 하고, 게을러서 등재를 안했던 논문 중의 하나인 YS 시절의 산업정책 비판이라는 논문이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논문이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

 

이제 그 이계안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좌파 쪽으로 훨씬 더 많이 와 있었다. 자연스럽게 토론을 하거나 논의할 기회가 많아졌고, 만날 일도 많아졌다.

 

이계안은 지난 1년 동안 보스톤의 하버드에 연구원으로 가 있었다. 그 동안에 부쩍 생각이 늘어났고, 하고 싶은 얘기도 많아졌다.

 

후일담이지만, 이계안이 있던 연구 프로그램이 나쁘지는 않은 것이라서, 그 후속 자리로 나를 추천해주었었다. 아마 진중권이 별 이유없이 학교에서 밀려나는 일과 같은 일련의 일만 벌어지지 않았으면, 나도 올 가을에는 그냥 보스톤에서 띵가띵가 놀면서 한국의 여러가지 문제들을 좀 멀리서 바라보는 척만 하면서... 아이를 낳기 위해서 아내와 쉬면서 그렇게 지냈을 것 같다.

 

그러나 그 사건이 나에게는 너무 충격적인 것이라서, 보스톤행을 포기하고, 명박 시대, 내가 문제를 풀지는 못하더라도 고통받는 사람들과 한 가운데에서 같이 고통을 받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누가 칼레의 시민이 될 것인가?>라는 책은, 내가 이계안에게 써보라고 한 책이다. 물론 책 구성이나 문장에 대해서 내가 관여한 바는 없고, 제목에 대해서도 '칼레의 시민'은 표절이니까 패로디 형태로 구성해야 한다는 조언을 해준 것이 다이다.

 

보나마나 재미없는 얘기들을 잔뜩 늘어놓았을 것이 뻔해서 중간에 원고를 잘 안 봤는데, 출간되고 보니, 생각보다는 재밌는 얘기들도 많고, 그동안 무슨 고민을 했었는지, 약간 개선되기는 한 것 같다. 천하의 이계안의 글이 도대체 왜 이 모양이야라는 생각만 하지 않고 보면, 전직 CEO치고는 그런대로 읽을 만한 책이다.

 

내가 정말로 이계안을 위해서 준비해 준 프로그램은, 어쩌면 이 책과 쌍둥이 책이 될지도 모르는 인터뷰집이다. 인터뷰집으로 할지, 대담집으로 할지, 아니면 주제를 정하고 찬반 격론의 형태로 할지 고민을 하다가 최종적으로 인터뷰집으로 결정된 책이 있다.

 

(원래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에게 부탁을 했었는데, 돌고 돌아 결국 내 손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칼레의 시민은 이계안이 자신을 드러내서 보인 책이고, 내가 만드는 책은 우석훈이 한국 독자들에게 이계안을 드러내기 위한 책, 그렇게 두 가지 버전으로 같은 사람의 두 면을 보이게 되는 셈이다.

 

지난 2달 동안 매주 두 번씩 한나절 동안이나 이계안을 만나면서 궁금했던 것들을 많이 끌어냈다. 이 책은, 아직 내 손에서 주무르고 있는 중이고, 인터뷰 작업도 아직 한 번이 더 남기는 했는데, 메카톤급 비밀들이 담겨있기도 하다.

 

원래는 이계안의 인생을 사는 팁을 모티브로 해서, 한국 우파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들이라는 방향을 잡고 있었는데, 현대 그룹의 비사에서 최근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정보집으로서도 꽤 재밌는 얘기들이 들어가게 될 것이다.

 

출간 과정에서 어느 정도 수위를 조절할 것인지, 나에게도 어려운 질문이기는 한데, 예를 들면 명박의 도곡동 땅에 대하여 이계안이 이해하고 있는 진실... 이런 것들이 있다.

 

명박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경제라인이 최강라인이라고 불렀는데, 나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하여간 그 뒤의 숨겨진 얘기들... (그러나 보좌진들이, 이 얘기는 인간적으로 너무 잔인한 얘기라서, 조금 수위를 낮추었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나도 그럴 생각이기는 하다. 그러나 진실... 그 진실은 때때로 너무 잔인한 것이다.)

 

<이계안, 돈을 말하다>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인터뷰집은 아마 1월말 정도 시중에서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진기한 경험을 하기는 했는데, 한국의 많은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이 밤에는 그걸 원고로 쓰고, 나는 인터뷰에서 "그딴 두리뭉실한 얘기로는 아무도 알아듣지 못한다"고 저잣거리의 용어로 얘기하라, 그리고 있는 그대로 얘기하라고 욱박지르면서.

 

나중에 인터뷰집이 나오게 되면, CEO의 젊잖은 표현으로 두루뭉실하게 표현된 것들이, 내 책에서는 어떻게 직설법으로 바뀌었는지, 그걸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기는 할 것 같다.

 

그외에 경제정책에 관해서만 그의 경제정책을 자문하는 전문가 그룹과 내는, 약간은 딱딱하고 기술적인 분석이 주로 되는 그런 책이 한 권 더 준비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렇게 해서 3권이 나름대로는 '이계안 3부작'인 셈이다.

 

이계안 주변에서 기술적 자문을 해주는 학자 중에서 아마 일반인이 이름들어도 알만한 사람이 나하고 최재천 선생이 있을 것이다. 최재천 선생하고 내가 이렇게 자주 볼 일이 있을지는 올해가 시작하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었다.

 

연세대학교에서 했던 경제 콜로키움에 최재천 선생을 초청하면서도 그와 이렇게 자주 볼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여기서 보고 저기서 보고, 그야말로 인연이 있는 사람이 또 따로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올해 마흔 한살이 되면서 정말 많은 것들을 정리했다. 내가 후원하는 정치인들의 리스트도 싹 정리를 해서, 정말로 탈토건이라는 정치에 걸맞는 사람들만 도움을 주기로 확 좁혔다.

 

노회찬, 심상정, 이계안, 천정배, 이 네 사람이 그동안 살았던 인생의 도리상 도와주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을이고, 다음 단계의 정치인이 등장하기 전까지, 초록정치연대의 정책실장이었던 내가 녹색정치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노회찬을 위해서는 별도로 두 권의 책을 준비하고 있었다.

 

천정배와는 올해 공저로 만화책 한 권을 같이 쓰자고 했었는데, 미디어법 사태가 터지고 나나 천정배나 몹시 바빠지면서, 당분간은 뭔가 돕기가 쉽지 않다.

 

심상정은 도와주고는 싶은데, 적절하게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아직도 잘 찾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계안은, 책 한권을 내는데 자문을 해주고, 인터뷰집 한 권을 만들어주는 걸로 일단은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마음의 빚을 갚은 셈이다.

 

노회찬도 인터뷰집에 대한 부탁이 있었는데, 이계안 쪽이 먼저였고, 그래서 그의 부탁을 들어주지는 못했다.

 

<칼레의 시민>이라는 책을 내가 진중권의 <교수대 위의 까치>가 끝나고 다시 화장실로 가지고 들어간 것은, 그 원고를 미리 못 읽어서가 아니라 가끔은 아주 시간을 많이 들여서 곰곰히 읽어보고 싶은 책도 있기 때문이다. 이 책과 <이계안, 돈을 말하다>라는 인터뷰집을 두 권의 하이퍼링크된 텍스트로 만들어보는 실험, 이것도 약간은 진기한 실험이기는 하다.

 

칼레의 시민은, 나에게는 지금의 삶과 예전에 현대그룹 과장으로 일하던 시절의 삶이 오버랩되면서 나에게도 "나는 누군인가?"라는 질문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하여간 이계안, 정치는 지독하게도 못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삶이 날탕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왜 내가 그가 지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나도 전혀 몰랐던 젊은 날의 비사들, 그게 요즘 대학생들에게 어떻게 하나의 기준처럼 제시될 수 있는지, 내 머리가 터질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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