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그리고 학자로서의 내 삶 정리

 

1.

경제학자로서의 삶에 대한 은퇴를 준비한 건 꽤 된다. 마흔 살이 되면 은퇴하려고 굳게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명박이라는, 진짜 이상한 사람의 시대를 만나, 조금 더 연기를 하고 있었다.

 

어제, 이제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겨울, 한미 fta가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하는 걸 보면서, 여기에 조금이라도 뭔가 보태는 게 내가 할 마지막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대선에서 fta 문제가 대선 의제로 올라가는 것, 거기에 학자로서 걸 수 있는 건 다 걸었다.

 

나꼽살에서, 지난 주부터 대선후보 초청 방송을 하는 중이다. 손학규 후보가 지난 주에 나와서, fta 재검토를 하겠다고 받았다.

 

이번 주에는 정세균 후보가, 강령 22조에 있는 그 내용 그대로,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했다.

 

아직 개인적으로 확인한 건 아니지만, 김두관 후보 쪽에서도 그 정도는 하겠다고 하는 것 같다. 문재인 쪽의 대답을 못 들었지만

 

혼자 생각해보면, 참 멀리 왔다는 생각이 든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이미 한계치를 넘었다. 사회적으로도 그렇다.

 

여기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이고, 이미 내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 온 것 아닌가 싶다.

 

이미 무리였고, 이 이상도 무리다. .

 

경제학자로 살면서, 알고 있던 이런저런 네트워크까지, 사실상 총동원했다.

 

이 이상은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2.

녹음 끝내고 나오는데, 김진표 보좌관이 김진표의 책을 나에게 건넸다.

 

그냥, 운명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학규, 정세균, 김두관, 이런 사람들이 앞으로 fta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나도 확신은 없다. 다만 지난 겨울보다는 나은 상황으로 가지고 갈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고그건 이제 시민들의 몫이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

 

스튜디오 녹음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면서, 경제학자로서, 은퇴하는 순간이라면, 바로 이 순간이라고 생각을 했다.

 

바로 그 순간에 김진표 책이 내 눈앞에 왔다이 또 무슨 기묘한 운명이란 말인가.

 

2002, 봄 어떤 날이 그랬다.

 

그 시절에는 공직에 있었고, 총리실에 근무하고 있었다.

 

약간의 하극상, 총리한테 직접 보고를 하고, 별도의 결제라인으로 작업을 하는 그런 승부수를 띄울까 말까, 그런 고민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내 위의 상사가 김진표였다.

 

나는 도저히 이 사람이 상사로 있는 한 더는 일을 못할 것 같아서, 고민을 했는데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총리실 근무를 접기로 마음을 먹은 날이 있었다.

 

실제로 사직서를 낸 건 그 다음 해의 일이다. 마음은, 그 때 바로 내고 싶었는데, 그렇게 나가면 나를 추천해준 사람들이나 전임자들이 곤란해진다고 해서다들 조용해지는 그 순간까지 기다리다가 다음해 사직서를 냈다.

 

나꼽살 녹음을 마치고, 이제 할만큼 했다, 더 이상 이어갈 수가 없다고 마음을 막 먹는 순간에,

 

누군가 눈앞에 김진표의 책을 딱 들이미는데

 

참 운명 같이

 

이 순간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그런 기묘한 인연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3.

정권은 바뀔 것 같다.

 

그러나 정말로 좋은 세상이 올지는 모르겠다.

 

좋은 세상이라는 건, 포괄적 표현이다. 그 중에 fta 문제 하나에만 학자의 생명을 걸기로 했다. 모든 문제를 내가 다 풀 수 있거나, 최소한의 개선이라도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발효에 즈음하여 삭발을 했고, 내 책 중에서 제일 잘 팔리는 책을 절판을 했고, 금주도 했고,

 

이제 내가 내려놓을 수 있는 건 경제학자로서의 삶이다.

 

어차피 내려놓기로 마음 먹은 것, 더 이상 끌고 나갈 수 있는 한계치에 봉착한 지금,

 

내려놓는 것이 한 방법이다.

 

이 이상은 무리다.

 

혼자 힘으로 버틸 수 있는 한계치는 벌써 예전에 넘었는데, 악물고 하는 데에도 물리적 한계가 있다.

 

Fta 문제에 사람들이 환기하기를 바라면서 내 학자로서의 삶을 내려놓는 것, 이것도 보람된 일이다.

 

대선에 대해서, 나보다 잘 말할 수 있고, 더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 땅에 차고 넘친다.

 

신문 칼럼 연재는 벌써 3월달에 내려놓았다. 하나씩 내려놓는 중인데, 가장 핵심에 해당하는 것들 것 이번에 내려놓으려고 한다.

 

강의와 강좌, 강연, 그리고 학자로서의 기고와 블로그 등, 내가 하던 핵심적인 일들을 내려놓을 순간이 지금인 듯싶다.

 

옛날에도 김진표와 같은 그룹에 이름을 올리기가 싫었다. 지금도 그렇다.

 

그냥 운명적인 일들이 그렇게 벌어진 셈.

 

4.

학자로서 내가 마지막으로 지지했던 정치인은 정동영이었다.

 

그가 영광을 보지 못해서 안스럽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사람을 지지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고, 내가 마지막으로 지지했던 사람이 정동영이라서

 

그 영광은 영원할 것 같다.

 

우정이라고 표현한다면, 내 마지막 우정은 정동영과 함께.

 

5.

남은 건 대선까지 하기로 한 방송인 나꼽살과, 출판사에 계약이 남은 몇 권의 책들.

 

하기로 한 약속이기 때문에, 나꼽살에 참여하는 것, 남은 몇 권의 책들의 원고를 마무리하는 일, 그 정도는 마무리하려고 한다.

 

마지막 책을 떨면서, 조촐히 은퇴를 하려고 했는데, 시점상 시간이 늦어지면서 그렇게 딱 마무리를 짓지 못한 건 좀 아쉽다.

 

그렇다고 해서, 더 이상 사회적인 일들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계속 서 있는 건 좀 아닌 듯싶다.

 

새롭게 전개하는 테제는 이제 더 이상은 없고, 정말 기계적인 마무리들.

 

세상이 좋아지면 좋겠다는 소망이 아직도 있지만,

 

학자로서 이래라 저래라 하던 시절은 이제 접으려고 한다.

 

이미, 물리적으로도 너무 무리한 상태에서 오래 버텼다.

 

6.

생각해보면, 그 동안 과도한 영광을 누렸다.

 

이젠 눈도 잘 보이지 않고, 더 이상 예전 같은 집중력을 유지할 수가 없다.

 

그래서 실무 경제학자로서 더 이상 분석작업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말 한 마디 보태면서 참견질하는 건, 내가 살아온 삶과는 다르다.

 

96년에 학위를 받았다. 잠시 뒤돌아보면, 17년 동안, 진짜 머리부터 발끝까지 경제학자로 살았다.

 

충분히 영광스러웠다.

 

이젠 정말로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

 

7.

방송기획자 같은 것에 대한 제안들을 좀 받은 게 있는데

 

해보니까, 난 방송에서 즐거움을 느끼거나 보람을 느끼는 체질은 아니다.

 

힘겨웠던 30대를 지나면서 지병처럼 몸에 남은 대인기피증이, 결국은 극복이 안 된다.

 

강의도

 

누군가를 가르치면서 보람을 느끼는, 그런 체질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방송이나, 강의나, 강연이나, 하면서 즐거운 게 아니라, 싫은 데도 누군가 해야 한다는 생각에, 참고 억지로 한 건데

 

정세균 후보가 fta 재검토를 하겠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정말 참 멀리 왔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젠 정말로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학규와 정세균만 해도, 나보다 세상을 위해서 더 할 일이 많고, 더 많이 기여할 사람들이다.

 

이젠 억지로 잡고 있던 바통을, 넘길 순간이 왔다는 생각이 머리를 빡.

 

이제 나는 엑셀 작업이나 수치 작업을 할 수가 없다. 안 보인다. 한 때는 수차표 잔뜩 쌓아놓고도 숫자의 특징들을 귀신 같이 잡아냈는데

 

이젠 그렇게 숫자가 눈에 보이지가 않는다.

 

이젠 정말 물리적으로도, 내려놓을 때가 온 것이다.

 

8.

살면서 가장 보람된 일이 뭘까,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지금의 아내와 결혼한 일, 그리고 같이 살아갈 수 있던 일.

 

조철현, 이준익, 이런 실없는 소리와 망상을 나누어줄 동료가 있다는 일.

 

화가 김선정씨처럼, 우리의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는 파트너 화가가 옆에 있다는 사실.

 

뒤의 일을 안심하고 맡길 선대인이나 김용민 같은 친구가 있다는 사실.

 

늘 같이 웃고 부비끼며 살아갈 고양이들이 내 주변에 잔뜩 모여 있는 일.

 

지나보니, 그런 게 고마운 일이었다.

 

나는 태생이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혼자 놀기를 좋아한다.

 

사회적 활동을 해야 한다고, 그런 교육을 많이 받고 강요도 많이 받았는데, 사실 나는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족속이다.

 

무리하게 지고 있던 학자로서의 삶을 내려놓는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물리적으로는, 김진표와 나는 운명적으로 상극인지도 모른다, 사회적인 게 아니라.

 

자연인 김진표에게는, 별 감정 없다. 사회적으로 만나고 싶지 않을 뿐이지.

 

앞으로 뭘 하고 살까?

 

깊이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 밥이야 먹고 살겠지.

 

어쨌든 학자로서는 더 이상 살지는 않을 생각이다.

 

머리를 숙여야 하는 순간이 올 때,

 

학자로서 삶을 내려놓겠다고, 아주 어렸을 때 결심한 적이 있다.

 

좀 늦었지만, 이제 그 순간인 것 같다.

 

한국의 20대를 위해서 한 마디를 남긴다면,

 

Fta를 찬미하는 사람은 평균적 20대의 적이라는 말 정도?

 

(이 기회를 빌어, 그 동안 이 블로그를 찾아주셨던 많은 분들에게, 각별한 감사와 고마움을 남기고 싶습니다.

 

모두에게 평온한 삶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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