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고양이가 가끔 나를 울리는 때가 있다.

 

저녁에 먹다 남은 굴비 같은 걸 가끔 녀석들에게 준다. 굴비 대가리나 생선 몸통 같은 건, 보자마자 엄마 고양이는 자기가 먹지 않고, 바로 물고 달려간다, 새끼 고양이들에게로. 그 모습을 볼 때면, 직접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운, 그런 진한 감동 같은 게 있다.

 

물론 엄마 고양이가 매번 그렇게 아기 고양이들 먼저 챙기는 건 아니지만, 굴비 머리나 몸통 같은 것을 보자마자 물고 뛰어갈 때면, 정말로 산다는 게 뭘까, 그런 생각을 느끼기도 한다. 아니 그보다도 먼저, 생명 자체가 가지고 있는 깊이 같은 게 가슴을 쿵 하고 때리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같은 배에서 나온 4마리의 아기 고양이 중, 두 마리는 먼저 고양이별로 떠나고, 두 마리가 남았다.

 

엄마 고양이는 그렇게 덩치가 큰 족속은 아니다. 우리 집 마당의 누렁이들 자체가 그렇게 덩치 큰 놈들은 아니다. 그렇지만 협동해서 같이 살면서, 영역 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법을 익혔다고나 할까...

 

어쨌든 이제 태어난지 3달 가까이 되어가는데, 아기 고양이들은 제법 아기 티는 벗었다.

 

야옹구가 길가에서 죽어가다가 포획된 게 바로 요 나이 때였다.

 

녀석들은 아직도 엄마 젖을 먹는다. 먹이도 이것저것 다 먹지만, 여전히 젖을 먹는다.

 

 

 

고양이들 사이에서도 개체별 차이가 워낙 커서 일반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울 듯 싶지만, 엄마 고양이는 특별히 아기들을 더 챙기는 편이다. 어떨 때 보면, 정말 그 사랑이 끔찍하다 싶을 정도로, 새끼들을 챙긴다.

 

지난 수 년 동안 한국에서 유행했던 '엄마의 정보력'과 할아버지의 '재력'이라는, 삐뚫어지고 왜곡된 그리고 전도된 모성을 보면서 모성이라는 말만 들어도 학을 떼다시피 했다. 그 클라이막스는, 목동에서 초등학생들에게 만들어주는 축구 클럽이었다. 같은 클럽으로 6년간 지나게 하면서, 그 클럽에 들어오지 못한 학생들 혹은 나중에 전학온 학생들을 괴롭히는 것을 자랑스럽게 교육시키는 목동 초등학교 엄마들의 진짜 이상한 모성이라는 말을 보면서...

 

저게 괴물인가, 사람인가,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다.

 

진짜 무서웠다.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어미가 얼마나 요괴가 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끝은 과연 어디인가, 종잡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대치동에서 그 지랄끝이 나지 않을까 싶었는데, 목동의 초등학교 축구 클럽은 정말로 강남의 생지랄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이런 이상한 모성애는 내가 알고 있는 어떤 OECD 국가에서도 벌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그게 사랑이야...

 

그렇게 말하는 목동 엄마들을 보면서, 저기 사람 살 데 아니다, 그런 생각을 했었다.

 

무엇보다, 대치동 교육이나 목동의 축구 클럽으로 자라나게 될 그 자식들의 미래가 무엇인가, 그게 너무 눈에 선하게 보였다.

 

남자들의 밑도 끝도 없는 모성 타령도 군대 가서 축구한 얘기만큼 지겹지만, 목동 초등학교의 축구 클럽은 상상 초월이었다.

 

요즘 엄마 고양이를 보면서,

 

엄마의 본래 모습과 그 풋풋함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중이다.

 

자식 사랑이 과하면 자식을 망친다, 이건 대치동 교육에 대해서는, 특히 최근에 더더욱 진리처럼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자본주의의 탐욕에 물들어 결국 자기 자식의 삶마저 붕괴시키는 그런 모성애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엄마의 모습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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