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은 고양이들 밥 먹이는 게 큰 일이다.

 

마당의 개 집 안에 밥을 넣어주면 자기들이 알아서 먹는다. 그러나 비가 내릴 때마다 내가 매번 기다리고 있다가 그렇게 해주기는 어렵고, 그냥 비에 젖은 사료를 먹기도 한다. 너무 배고프면, 그거라도 먹는다. 어떨 때는 안 먹고 그냥 버티기도 한다.

 

녹차라떼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4대강 녹조 사건의 한 가운데에서 드디어 비가 왔는데, 이번에는 폭우 경보가 내리고, 강남역이 잠길 정도로 많이 내렸다.

 

낮에 우산들고 나가서 개집 안에 고양이들에게 따로 밥을 주고 왔는데, 엄마 고양이가 머리를 내밀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내가 가까이 가니까 후다닥 도망을 가는데, 이 안에 4마리 가족들이 전부 들어가서 복닥복닥거리고 있었다.

 

참 많이도 들어가 있다 싶었다.

 

얘네들이 언제까지 이렇게 가족을 이루고 살지는 모르지만, 짧은 시간의 강렬한 기억과도 같다. 고양이와의 기억은, 언제나 찰라와 같다.

 

 

잠시 비가 그쳐서 캔을 뜯어주었다.

 

녀석들 요즘 먹는 분량이 엄청 많다. 너무 많이 준다 싶지만, 먹이를 줄이면 이 안에서 너무 금방 분가가 일어나고, 엄마가 나가던지 아니면 누군가를 쫓아내던지, 자기들끼리 조정을 한다.

 

그게 본성이다.

 

그래도 너무 빠른 분가가 슬퍼서, 넉넉하게 주는 편이다.

 

 

바보 삼촌이 먼저 먹이를 먹고, 저만치 떨어져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늘 어정쩡한 표정이지만, 오늘은 비가 와서 그런지 바보 삼촌의 얼굴이 정말로 화사하게 찍혔다.

 

막상 보면 꾀죄죄하고, 밥도 너무 많이 먹어서 살이 디룩디룩하다.

 

그래도 잘 보면, 여리고 순진한 구석이 얼굴에서 묻어 나온다.

 

비가 오는 날, 간만에 목욕을 해서 그런지, 정말로 화사하다.

 

보통 마당 고양이 찍을 때 쓰는 렌즈는 g렌즈에 캐스퍼라고 불리는, 70-300미리 존을 사용하는 줌 렌즈이다.

 

여기에 넥스용 어답타를 달아서 사용하는데, 덕분에 손떨방 기능은 전혀 쓰지 못한다.

 

알파용 렌즈는 바디로 손떨방 기능을 미루고, 넥스는 렌즈로 미루고 있으니, 결국 아무도 손떨방 기능을 하지 않는다.

 

뭐, 지금의 아답터가 자동촛점까지는 지원하지만 손떨방 기능을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기능이 있더라도 사용할 수는 없다.

 

주로 300미리 구간을 많이 사용하는데, 흔히 셔솟이라고 하는, 셔터속도 확보가 아주 큰 일이다.

 

그나마 실외라서 쓰는 거고, 실내에서는 흔들려서 정말로 한 장도 쓸 수 있는 사진이 나오지 않는다.

 

70미리 자체가 평상 생활에서는 거의 안 쓰는 구간이라서, 실내의 스냅샷이나 야외의 풍경 같은 건 이 렌즈로는 전혀 하지 못한다.

 

더 좋은 렌즈들이 있기는 한데, 그냥 이 정도로 버티는 중이다. 물론 아주 싼 렌즈는 아닌데, 그렇다고 겁나게 비싼 렌즈도 아닌, 특정 목적으로는 만족하고 쓸 수 있는.

 

 

 

 

나는 요즘 내가 세상을 보던 시선을 바꾸는 중이다.

 

정말로 오랫동안 돈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살았다. 더 이상 그렇게 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아쉬움도, 미움도 그리고 약간 남아있던 회한 같은 것도 정말로 마음 속 한 구석으로 밀어내려고 한다.

 

200미리에서 300미리 구간이 내가 주로 사용하는 구간이 된지는 좀 오래된다.

 

고양이도 편하고, 나도 편하고, 그렇게 서로가 불편하지 않을 수 있는 거리가 그 정도 된다.

 

일상 생활에서는 거의 사용할 일이 없는 화각인데, 그만큼의 거리가 서로에게 편안함을 준다.

 

아래의 새끼 고양이, 생협의 사진이 300미리 구간에서 마주보며 찍은 사진이다.

 

먼 거리는 아닌데, 그 대신 극단적인 클로즈업이 나타난다. 사진을 크롭해도 되지만, 아무래도 300미리 구간을 직접 쓰는 편을 내가 훨씬 더 편안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나도 녀석을 관찰하지만, 녀석도 나를 관찰한다.

 

긴 시간을 거치면서 서로 보고, 조금씩 서로 편안해진다.

 

그렇게 익숙해지면서, 조금씩 느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너무 가까이 가면, 녀석들도 발톱을 들이대고 으르렁거린다.

 

그렇게 놀라게 하고 싶지는 않다.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돈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내려놓고, 그 대신 300미리 존으로 세상을 보는 편이, 더 편하고 더 느끼는 게 많다.

 

비 오는 날, 간만에 화사한 느낌의 고양이들을 보면서, 흔히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아름다움 같은 것에 대해서 생각을 좀 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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