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동생이 태어나던 날은 잘 기억이 안난다. 언제부터 있었던 건지, 그냥 어린 동생하고 같이 놀아주던 것만 기억에 난다.

 

보행기에 탄 동생을 너무 쎄게 밀어서 보행기가 마루 끝으로 떨어져서 다쳤던 순간이 황망한 기억, 그런 것들이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있다.

 

막내동생이 태어나던 날과 병원에 가서 처음 본 날은, 버스 번호까지 기억을 하고 있다. 둘째랑 막내랑 한 살 터울인데도, 그 사이에 기억에 많은 차이가 있나보다.

 

나흘을 내리 밤을 새다가 낮에 잠깐 와서 눈만 붙이고 갔더니, 야옹구가 오늘은 단단히 심통이 났다.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는데, 알아듣는 듯하기도 하고, 잘 못 알아듣는 듯하기도 하고.

 

마당에 있는 고양이들은, 며칠치 밥을 미리 주고 갔는데, 동네 고양이들까지 다 불러들여서 자기들끼리 잔치를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검둥이까지 와서, 마당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바보 삼촌이랑 하도 싸워서, 보는 대로 쫓아내고는 했는데, 자기들끼리도 어정쩡한 질서가 좀 생겼나보다.

 

까치들까지 잔뜩 몰려와서.

 

뭐, 나 혼자서, 얘네들이 아기 태어난 것을 자기들끼리 축하해주고 있다고, 그렇게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아기는 오늘 처음으로 젖을 먹었다.

 

예전 같았으면 굉장히 위험할 상황이었다고는 하는데, 그나마 수술이 잘 끝나서.

 

세 시간마다 한 번 터울로 먹는다는데, 두 번째 젖은 시간보다 일찍 보채는 바람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두 번째 젖 먹는 것까지 지켜보다가 새벽에 들어왔다.

 

아기가 태어나는 걸 계기로, 다시 술을 마시기로 마음을 먹었다.

 

남들은 아기 태어나면 금주를 한다는데, 난 술 마시기로 마음을 먹다니...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그냥 맘 편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며칠 전에 고은 선생 팔순 잔치에 다녀온 적이 있다.

 

진짜 그 양반 20년만에 본 건데, 느낌이 참 남달랐다.

 

20대에 난 고은이 참 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고, 뭐 저런 사람이 다 있나 싶었다.

 

시간이 지나니, 그만한 삶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바뀐 건지, 그 양반이 바뀐 건지... 어쩌면 다 바뀐 건지도 모르고, 아니면 세상이 바뀐 건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시간을 훌쩍 넘어, 반갑기도 했고,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나도 나이를 먹으니까, 사랑방 같은 데 편하게 앉아서 객젖은 농담이나 하면서, 그렇게 지내는 게 더 편하지기 시작했다.

 

아주 오래 전에 들은 얘기인데,

 

이 이상한 별에 잘 못 추락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다른 행성에 태어나서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그게 마이너들이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라고 들었던 적이 있다.

 

새로운 변화를 직감하고, 외로운 모습을 보이는 야옹구를 보면서, 삶이 가지고 있는 영속성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이 세 사진의 공통점은, 우연하게도 50미리 렌즈로 찍은 사진이라는 것, 300미리와 16미리를 주로 쓰고, 그냥 스냅샷 찍을 때는 30미리를 쓰는데, 공교롭게 전부 50미리로 찍은 사진들이 이렇게 모였다. 아주 나이가 어리거나, 아주 나이가 많거나, 아예 사람이 아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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