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한 가운데 잠시 비가 그치면, 마당 고양이들 밥 주느라고 바쁘다. 어제는 엄마 고양이가 없는 틈을 타서 강북이 생협에게 밥 먹으면서 펀치 몇 방을 날렸다. 오늘은 엄마 고양이가 나왔다. 생협은 잽싸게 엄마 옆에 자리 잡고 같이 먹는다.

 

이게 질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간 어제의 분풀이인지, 오늘 따라 생협이 맛있게 밥을 먹는다. 생협이 강북을 야리는 눈매가 예사롭지가 않다. 지루하게 지켜보던 강북이 드디어 하품을 터뜨린다.

 

웃지 않을 수 없다.

 

웃을 일이 요즘 있겠나 싶지만, 간만에 크게 한 번 웃었다. 고양이들의 하품은 웃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이 하품 보고도 웃음 나지 않으면, 병원에 가서 감정에 대한 치료를 받는 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어차피 한 번 사는 삶, 그렇게 심각하게 살 필요가 뭐가 있겠나, 그런 생각이 요즘 문득문득 들기 시작한다.

 

요즘 아메리카노에 대한 때 아닌 논쟁을 보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유시민이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다.

 

어차피 한 번 사는 것, 이 정도의 즐거움도 가지지 못하면 되겠느냐, 그런 얘기를 하였다.

 

딴에는 맞는 말이다.

 

움베르트 에코가 아메리카노에 대해서 한 얘기를 잠시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아메리카 커피 중에는 위에서 말한 것말고도 구정물 커피가 있다. 대개 썩은 보리와 시체의 뼈, 매독 환자를 위한 병원의 쓰레기장에서 찾아낸 커피콩 몇 알을 섞어 만든 듯한 이 커피는 개숫물에 담갔다 꺼낸 발 냄새 같은 그 특유의 향으로 금방 식별할 수 있다. 이 구정물 커피는 감옥과 소년원뿐만 아니라, 열차의 침대 차량이나 일급 호텔 등에서도 마실 수 있다."

 

(에코, '세상의 바보 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호텔이나 침대차의 그 고약한 커피포트를 사용하는 방법 중)

 

에코는 아메리카노에게 거침없이 구정물 커피 혹은 시체 썩은 물 같은 표현을 썼다. 에스프레소를 만들어낸 이탈리아에서 아메리카노라는 의미는 맛 없는 커피라는 말과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프랑스에서는 cafe long 혹은 cafe allonge 정도의 표현을 쓰는데,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을 약간 섞어 연하게 했다 혹은 양이 많다, 그런 의미이다. 물론 아메리카노처럼 그렇게 물을 많이 넣지는 않는다.

 

하여간 아메리카노라는 표현과 관련되서 가장 재밌게 본 것은, 이것이야말로 반미의 상징 아니냐는 반어법.

 

아메리카 + No!

 

이보다 더 적극적인 반미 표현이 있을 수 있겠느냐는, 누가 제일 먼저 한 것인지 아직도 기원이 알쏭달쏭한 이 해석은, 너무나 진지하게 흘러서 도저히 폭소를 터뜨리지 않을 수 없는 팽팽한 긴장감이 아예 폭발하기 전에 살짝 먼저 김을 빼는, 그런 기가 막힌 바람 빼기 효과를 준다.

 

멋진 만찬을 먹기 전에 고급 초콜렛을 누군가 주면, 얼마나 억울한다. 안 먹을 수도 없고, 먹고 나면 멋진 만찬의 폭발적 기쁨이 반으로 줄어버리고.

 

웃어야지,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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