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일요일 오후, 행복한 점심

 

새끼 고양이들이 태어난 날짜는 정확히 모른다. 한 달 보름 아니면 두 달 정도 된 것 같은데, 아직도 얘들이 젖을 완전히 떼지는 못했다. 가끔 보면 아기 고양이들이 엄마에게 꼭 붙어서 젖을 먹기도 한다.

 

한 달 조금 넘는 시간이지만, 고양이들의 세계에서는 큰 일들이 있었다. 아기 고양이 두 마리는 먼저 고양이별로 갔다. 아들 고양이라고 부르던 녀석은 바보 삼촌이라는 새로운 별명이 생겼다. 검둥이에게 밀려서 며칠, 집에 들어오지 못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어쨌든 검둥이를 다시 밀어내고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자기들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은,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길이 별로 없다.

 

그리고 엄마 고양이가 한참 아팠다. 바이러스성 질환이라고 하는데, 약 한 달 정도 먹이면 금방 나을 거라고 병원에서는 말했다. 엄청 비싼 약을 사다가 먹였는데, 그야말로 배달이 문제였다. 캔에 조금씩 타서 주는데, 남자 고양이들이 지들이 먼저 싹싹 먹어버리는데, 약을 먹일 방법이 없었다. 하여간 그렇게 한 달 가량 애를 태우기는 했는데, 캔을 따줘도 보는 둥 마는 둥 하던 녀석이 얼마 전부터 식욕을 회복해서, 그야말로 폭풍흡입을 시작했다. 아기 젖 주는 동안은 더 많이 먹고, 어떻게든 먼저 먹으려고 할 것 같은데, 그러지를 않았다.

 

 

정말로 몇 주만에 마당 고양이 일가가 다 모여서 밥을 먹게 되었는데, 늘 보던 풍경 같기는 하지만, 사실 간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바보 삼촌은 어디 안 가고 늘 마당 한 구석에 있고, 뭐 먹을 걸 주면 제일 먼저 와서 먹는다. 정말 눈치 없이 자기 입만 알아서 바보 삼촌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는데, 녀석이 없는 마당은 텅 비어 보였다.

 

아기 고양이들이 태어난 이후, 세상은 그야말로 새누리당 세상처럼 바뀌어버렸고, 박근혜의 힘은 절정을 향해서 치닫고 있다. 줄 설 사람들은 벌써 박근혜 쪽에 어지간히 줄을 서기는 한 것 같고, 자신의 인생을 놓고서 한 번씩들 도박을 하는 듯싶다.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30대 전문가들 중 보수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이번에 바꾸는 사람들의 심경을, 솔직히 잘 이해하기는 어렵다. 엄청나게 자신이 보수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면 이해가 되는데, 꼭 그런 것도 아니고

그럴 때, 인생은 길다, 그런 얘기를 해준다. 삶이라는 것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자신이 믿는 것과 어느 정도 비슷하게 서 있을 때, 긴장이 가장 적고, 후회도 적은 것 아니겠는가?

 

새끼 고양이들이 드디어 밥을 먹게 된 지난 한 달 동안 가장 보람있는 일은, 곽노현 교육감을 나꼽살에 초청해서 방송을 할 수 있던 것 그리고 그의 충판 기념회에 한 구석을 도울 수 있던 일.

 

그 일련의 일들 준비하면서, 세상 인심이라는 생각을 약간 하기는 했다. 나는 원래 누군가가 힘들고 어려울 때에만 그 사람을 만나고 그 주변에 있어주려고 하는 편이라서, 나중에 대법원 판결은 어떻게 나더라도, 지금까지의 상황만으로도, 나는 보람을 느꼈다.

 

보람이라는 게 뭐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싶다.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보람이라는 것은 일상에 늘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 남아있는 고양이들의 이름은, 강북과 생협이다. 두 마리 다, 그 때 내가 가장 많이 사용하던 단어를 그냥 붙여준 거다. 생협 얘기 많이 할 때 생협을, 강북 얘기 막 시작하고 개념 정리할 때 강북을.

 

고양이들의 시간은 사람의 시간과 다르다. 훨씬 빠르고, 훨씬 역동적이다. 길고양이들의 경우는, 훨씬 더 빠르다. 두 번의 겨울을 넘기기가 쉽지 않고, 대부분 세 번째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 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 하루하루를 더욱 즐겁고 재밌게 사는 게 고양이들의 세계일지도 모른다.

 

끝이 좋아야 모든 게 좋다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적쟎이 있을 것 같다. 결과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사유 양식일텐데, 이런 사람들의 눈으로는 모든 고양이들은 다 불행해 보일지도 모른다. 길고양이들은 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죽는다. 단 한 녀석도 결과로 환원한 시각에서는, 행복이라는 게 없다는 게 논리적 결론일지도 모르지만. 어떤 고양이도 명예를 가지거나 명성을 갖지는 않는다.

 

숙종이 키웠던 고양이는 임금님 무릎에 앉아서 고기반찬을 먹고 살았다. 그리고 숙종이 죽자, 식음을 전폐하고 버티다가 같이 죽었다. 그래서 숙종 옆에 묻혔다고 들었다. 그런 눈으로 보면, 모든 길냥이의 삶은 불행하게만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게 아니다. 대학에 갈 때까지 모든 행복을 연기하는 지금 한국의 교육, 그건 모두를 불안하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지독할 정도의 결과주의 시각만을 사람들에게 탑재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 순간의 행복을 찾는 것, 그런 걸 고양이들에게 더 배워야 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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