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CD는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다. 유학 시절, 도니가 너무 음서서, 중간에 모아두었던 CD와 비디오들 전부 팔고 위기를 넘긴 적이 있었다. (카를로스 산타나 라이브 비디오를, 그 때 팔았다... 어차피 PAL이라서 한국에서는 못 볼 것이었다만.)

 

LP는 중학교 때부터 모으기 시작했는데, 그냥 가지고 있어서 이제는 꽤 된다. 그래봐야 오리지날이라고 부르는 원판은 몇 장 안되고, 그나마도 결혼 하고나서 중고로 산 것들이다.

 

청계천에서 샀던 빽판도 좀 있는데, 라이브 인 재팬이라고 부르던 딥 퍼플, 에릭 클랩턴 실황공연, 월, 뭐 그런 것들이다. 지금 들어보면, 소리는 괜찮은데, 영 문제 많아서 바늘 상할까 봐 잘 못 올린다.

 

그래도 소주 한 잔 마시고 얼떨떨해지면, 꼭 그런 게 듣고 싶어지기는 한다. 고등학교 때, 짜장면 집에서 단무지 놓고 소주 참 많이도 마셨다. 고등학교 때 담배는 안 피웠는데, 술은 엄청 처먹었다. 2학년 후반부터 술 마시는데 재미붙여서, 고3 내내 틈만 나면 술 마시고, 마루에 있던 장롱에 진열되어 있던 아버지가 평생 모은 양주들, 틈틈히 꺼내마셨다. 그 때부터 시작해서 대학교 2학년 중순이 될 때까지, 그러니까 딱 3년만에 아버지의 평생 애장품이라고 하는 양주를, 결국 다 마셔버리고 말았다. (3년이나 간 건, 정말 티 안나게 살짝살짝 꺼내마셨던 것인데, 결국은 다 마셔버리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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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얼마 전에 LP 가계가 엄청 많이 생겼다. 이게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3,000원, 4,000원 주고 중고 LP 사는 재미가, 아, 쏠쏠하다. 김건모 1집, 2집, 강수지, 이런 거 집어들면서, 이게 과연 3,000원의 가치 밖에 없을까?

 

내 LP 중에는 아마 200장 정도 될까, 안 뜯은 게 것들이 있다. 산울림 초기 앨범 거의 대부분, 안 뜯은 LP로 가지고 있다. 아까워서 못 뜯는다. 원래는 아이가 크면, 13살 생일 선물로 주겠다고 모으기 시작한 미봉인 버전인데, 아직 아이도 못 낳았다. 내년에는 기필코...

 

그러나 아마 박물관으로 가게 될 것 같다. 오리지날이라는 원판에 비해서 국내 가수들 판은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헐값 대우를 받지만, 그런 건 구경도 하기 어려운 시기가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오기는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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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요번에 산 LP 몇 장 소개해보자.

 

 

 

김국환 앨범을 산 건 처음이다. <타타타>라는 노래 때문에 나도 산건데, 다른 사람도 그렇게 사는지, 이건 조금 비싸서 4,000원이었다. 타타타, 가사는 정말 명곡이다.

 

그래도 김국환의 최고 히트작은, 은하철도 999이다. 기차가 어둠을...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만화에 대해서는 평이 분분하다. 프랑스에서 이 만화를 열심히 봤는데, 은하철도 999, 노래 부르면서 주제가 부르는 가수가 죽어난다. galaxie express neuf cents quatre-vingt dix-neuf, 프랑스의 80진법 때문에 999할려면 아주 바쁘다.)

 

김국환의 <타타타>는 지금 들어도 몽롱해지기는 하지만, 앨범 전체로는, 음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트로트를 아주 안 듣지는 않는데, 아마 열 곡 정도? 변형된 트로트 필, 정말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그곳에서부터 나왔다. 지금도 농촌에 가면, 생전 듣지도 못하던 트로트들을 아주 신나게 들을 수 있고, 그거 느낌 안난다고 인상쓰고 있다가는 할아버지들하고 척지기 딱 좋다.

 

하지만 여전히 적응 잘 안되기는 한다.

 

김국환, 요즘은 밥은 먹고 사나? TV의 체험 프로그램 같은 데에서 열심히 일하던 거 몇 년 전에 본 것 같은데.

 

 

김수철 앨범이 여러 장 있는데, 나는 유독 이 3집을 좋아했다. 대학교 때 한 장 샀고, 몇 년 전에 또 한 장을 샀는데, 이건 안 뜯은 LP이다. 아마 뜯을 것 같지 않아서, 뜯은 게 걸려서 또 샀다. 3천발, 정말 해도 너무너무한 헐값이다.

 

그 때가 내 삶에서 가장 혼동스럽던 대학교 2학년 때 나와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내 취향이 당시의 김수철 음악과 잘 맞아서 그런 건지. 하여간 이 판에 나온 소리들이 내 소리의 기준이 되었고, 그리고 20년이 되어서 다시 들어봤는데, 음... 여전히 그러한가보다.

 

가사는, 지금 들으면 유치뽕이기는 한데, 어쩌면 나의 유치뽕 감성은 김수철에서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문득.

 

가만히 놓고 가사들을 분석해보면, 스토커 버전들이거나, 꿈에 나올까 무섭게 "사랑해요!". 아, 정말 무서운 가사들인데.

 

누군가 날 가슴 속에 묻어놓고, 그건 사랑이예요!

 

우와, 호러 버전이다.

 

그 시절 가사가, 다 남자들의 스토커 버전이기는 하지만, 김수철도 3집 때에는 그런 게 아주 심했다.

 

오랜 고생을 끝내고, 몇 년 전에 다시 복귀한 걸 보기는 했지만, 밥이나 먹고 살까? 영 걱정스러운 아저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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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에서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가 이렇게 안 팔리고, 사람들이 잘 안 읽는지, 영원한 미스테리 같다.

 

언제 같이 이 책을 읽고, 왜 한국 사람들은 기번을 읽지 않는가, 머리 맞대고 그 설명을 좀 찾아보면 좋겠다.

 

이 책은 무수히 많은 얘기들의 원형 중의 원형이고,수많은 원형을 만들고, 그 원형은 다시 또 파생되어 또 다른 세계의 원형이 되었다.

 

왜 이 책이 이렇게 주목을 받지 못할까? 미스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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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형의 <뉴 라이트 사용후기>는, 책을 2/3 정도 읽었다가 들고 다니느라고 책을 잃어버렸다. 재밌게 읽은 책인데, 다 읽으면 쓴다고 하는 게 책을 다시 사지 못해서 어영부영 시간만 지나가 버렸다. 마침 <히로히토와 맥아더 정권>이라는 책을 아주 재밌게 읽어서, 두 가지 얘기를 엮어서 현대사에 대한 글을 한 번 쓰려고 생각하다가, 그냥 시간만 하릴없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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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사 마코토의 <반빈곤>이라는 책의 해제를 다는 중이다.

 

해제에는 일본과 미국을 비교하는 작업을 해보는 중인데, 그 중 이미 번역된 레베카 솔닛과 유아사 마코토를 비교하는 일이 중심 선을 형성하고 있다.

 

최근에 일본과 관련해서 하고 싶던 얘기는 대부분 유아사의 해제에 넣었다. 나는 일본 전문가가 아니라서, 아마 별도로 일본에 관한 책을 쓰게 될 것 같지는 않고, 내가 아는 내용도 책 한 권 분량이 되지는 않는다.

 

일본 정책과 관련해서 몇 개는 한겨레 칼럼에 시리즈로 정리해볼 생각이기는 하다. 하여간 정말로 중요한, 그리고 경천동질할 내용들은...

 

어쩌면 한국 언론에 스트레이트 기사로 한 줄짜리도 안 나오냐. 일본에서는 완전 난리인지, 연일 지인들한테 이거 말 되냐, 안 되냐, 얘기 좀 해달라고 멜이 날라드는데. 지독한 인간들이다. 지독하게 못되었든지, 지독하게 게으르던지, 아니면 정말로 언론통제가 있던지.

 

한겨레, 경향, 니들도 다 나빠!

 

어째 이럴 수가 있냐.

 

아마 오늘 내가 해제를 출판사에 건네면, 빠르면 요번 달 내에 유아사 마코토의 책이 나올 것 같다.

 

한국인이 보기에 편한 방식은 아니고, 마이크로 영역의 내용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고, 무엇보다 유아사가 누군지 모르면 읽기가 쉬운 책은 아니다. 한국 책들은 어쩔 수 없이 너무 흥미위주로 흐르고 있어서 별로 그렇지 않은 일본 책들은 너무 무겁다고 한 번에 던져버릴 것 같다.

 

어쨌든 유아사 마코토의 책과 레베카 솔닛의 <어둠 속의 희망>을 동시에 가져다 놓고 읽으면, 아... 하는 깨달음이 있고, 내가 혹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에 대한 느낌이 좀 올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도 그럴까? 어지간하면 그럴 것 같은데, 요즘 같아서는 좀 자신은 없다만... 어차피 큰 돈 드는 것도 아니니, 이 두 권의 책을  동시에 놓고, 책 표지에 두 손을 올려놓고, 가만히 마음의 소리를 들으면. 뭔가 올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나에게는 뭔가 왔다. 아, 그렇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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쿡 티브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볼 것 같지 않은 지난 10년 동안의 한국 영화들을 섭렵하는 중이다. 어쨌거나... 참 좋은 시절이었다.

 

영화의 성공과는 상관없이, 소재도 다양하고, 주제도 생각보다는 다양해보였다.

 

이제 그 시절도 끝나간다고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좀 아련하기는 하다.

 

그야말로 있을 때 잘해...

 

DVD 시장은 완전히 죽은 듯. 나오는 게 없다. 미국의 주요 메이저사가 한국에서 대부분 철수했다고 하더니, 정말로 그런가보다. 해리포터는 극장에서 아차 하다 놓쳤는데, DVD 출시가 안된다. 이미 샀던 옛날 거만 계속 묶어서 패키지로 팔고, 정작 혼혈왕자는 출시될 시간을 훨 넘겨서 안 나온다.

 

야, 이제 정말 한국은 망했구나!

 

이제 간단한 영화도 DVD로 구하려면 일본 가서 사야하는, 그 암흑 시대가 다시 오겠구나, 싶다.

 

하여간 극장에서 상여할 때에는 정말 볼 것 같지 않은 영화들도 10년 지나서 다시 보니, 소록소록 하고, 맛도 새롭다.

 

예전에 아내가 질색해서 별로 말도 못했던 <친구>도 새로 봤다. 뭐, 이걸 볼 수 있다는 게 그냥 고마울 뿐이고, 그냥 재밌을 뿐이다.

 

팬덤이라고 하면, 좀 쑥스러울 나이이지만, 그래도 팬질만큼 재밌는 것도 없다. 류승완의 영화 짝패는 DVD, ost 다 샀고, 이건 100번도 넘게 봐서 그야말로 본전 완전 뽑은 드물게 성공한 DVD였다.

 

팬은 원래 뒤에서 눈치 보지 않게 응원하면서, 하여간 나오는 족족 사주는 게 진정한 팬이다... 라는 작은 믿음이 있다.

 

이상은 CD는 이래저래 선물용으로 50개 정도는 사주지 않았나 싶고, 장기하는 팬은 아니더라도 외국에서 손님들 올 때마다, 요즘 한국에서는 이게 유행이야... 하면서 하나씩 사서 주었다.

 

그래도 직접 만나지는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팬으로서의 에티켓이다. 그저 열심히 사주고, 열심히 선물로 돌리는 게, 진정한 팬의 완성!

 

별로 성실하게 사는 편은 아니지만, 팬질만큼은 성실하게 하려는 편이다.

 

그리하여...

 

이상은이나 류승완이나,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얼굴을 알고, 직접 인사하면, 팬으로서의 격이 떨어진다는, 그런 이상한 믿음을.

 

얼마 전에 정태춘 근처에 있다가 누가 인사시켜준다고 해서, 허겁지겁 도망갔다. 한 달에 한 두번은 정태춘 CD를 걸어놓고, 새로 살았던 80년대, 내가 살았던 90년대, 그런 센티멘탈 블루스 놀이 같은 것도 한다.

 

한 때... 희한하게 연애인들 많이 만날 기회가 생겨서, 멋도 모르고 인사시켜주는 대로 다 인사하고 살았던 적이 있었다. 된장... 돌아보니 그 시절이 화려해 보이기는 했어도, 내 인생에서 가장 어렵던 시기였다.

 

팬은 팬답게, 열심히 사주고, 먼 발치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콩당콩당.

 

그래야 팬이라는 믿음을.

 

(아, 그래도 류현진 왼손, 그 손이라도 한 번 잡아보면 소원이 없겠다! 카스트로도 극찬한 류현진!)

 

하여간 이런 이유로 류승완을 만날 자리 같은 게 있으면 일부러 피하기도 하고 그랬다.

 

(나는 아직도 선덕여왕의 칠숙을 오왕재로만 알고 있다. 내가 왕재여, 왕재!, 바로 그 오왕재 말이다.)

 

 

하여간 그랬던 류승완인데.

 

이번 학기의 생태인류학 수업에서 류승완, 장정일, 이런 사람들을 텍스트로 좀 다루는 일이 생긴 관계로, 학생들의 희망을 받아 생태인류학 공개특강 같은 것을 한 번 하기로 했다. 물론 류승완은 자기 영화가 이런 수업에서 이런 희한한 맥락의 텍스트로 사용되는 줄 알면 기겁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내 맘이다.

 

9월 29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연세대학교에서 할 예정인데, 이 시간에 대형강의실을 구하기가 어려워서 장소는 아직 미정이다. 오실 분은 오셔도 된다.

 

아마 입구 쪽에 플랭카드도 하나 걸어놓을 생각이니.

 

혹시 올 분은 <아라한 장풍대작전>과 <짝패>를 보고 오시면 고맙겠다. <다찌마와 리>도 생태적 맥락에서 해석을 해볼까 시도를 했는데, 내 능력으로는 불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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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시즌 3가 지난 주에 끝났다. 그리고 이번 주에 딴 거 한다.

 

아, 슬프다. 저녁 때마다 뭘 하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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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수 경제연구소라는 곳이 있다. 대체적으로 중도 우파에서 중도 좌파 정도의 시각을 가진 글들이 많이 모이는 곳인데, 아마 한국에서 일반인이 접할 수 있는 경제 기사로는 디테일이 가장 좋은 곳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증권회사나 보험회사에도 경제학자들이 많다. 이런 데 수석 이코노미스트 같은 거 하거나 아니면 상무나 전무 정도 되면, 연봉이 좀 괜찮다. 전부 물어본 거는 아니라서 샘플에 좀 문제가 있을 수는 있는데, 하여간 내가 아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6억원 내외를 연봉으로 받는 거 같다. 평균 내면 시니어급이면 연봉 3억부터 시작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사람들이 써놓은 글이나 아니면 방송에서 경제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들은 황당하기 짝이 없는데, 또 막상 만나서 얘기할 기회가 생기면 그렇게 황당한 사람들은 아니다. 이게 참...

 

아주 극우파에 자리한 경제학자나 아주 극좌파에 자리한 경제학자들을 제외하면, 술 마시면서 이것저것 얘기할 때, 생각보다 그렇게 견해의 차이가 많지는 않다. 물론 글이나 방송에서는, 완벽하게 입장이 갈리지만, 경제가 그렇게 극단적인 것이 아니라서 중국 경제, 일본 경제, 심지어 부동산에 대해서 얘기할 때에도 몇 가지 중요한 차이점을 제외하면 대체적으로 견해가 비슷하다.

 

차이라면, 명박을 위해서 조언할 것인가, 민주당을 위해서 조언할 것인가, 아니면 정말로 일반인들을 위해서 조언할 것인가?

 

한국 증시에 대한 해석에서 정말로 일반인들에게 조언하는 사람은 '시골의사 박경철' 정도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가 정치권에 아부하거나, 증권회사에게 잘 보여야 할 이유는 없을테니 말이다. 실제로도 그는 '개미' 혹은 평범한 개인들을 자신의 고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쨌든, 경제는 언제나 정치경제학이라고 하는 것처럼, 증권사나 부동산 회사의 크고 작은 정보들 속에도 정치적 견해와 의도가 빼곡하게 들어가 있다. 꼭 작전이 아니더라도 회사의 희망과 개인의 소망, 이런 게 켜켜히 얽힌다.

 

물론... 우리끼리 만나는 술자리에서는 그런 작전을 펼치는 사람은 없다. 그래봐야 경제학자들은 별 큰 돈도 없고, 게다가 선수들이니까 여기서 정말 특종급의 정보를 가지고 말 하지 않는 한, 어설픈 썰레발은 잘 통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참 신기하다. 별도의 자리에서는 그렇게 솔직한 사람들이 어째 신문이나 방송에 나올 때에는 또 그렇게 살짝 몇 글자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신념을 바꾸지 않으면서도, 정치적인 뉘앙스를 보이는지.

 

가만히 돌아보면, 내가 현대의 연구소에 있던 시절, 나도 그런 짓을 하기는 했던 것 같다. 기자들을 만나거나 공무원을 만날 때, 몇 개의 단어 혹은 약간의 뉘앙스 차이로 오해를 유도하는 그런 짓을 하기는 했던 것 같다. 총리실에 있던 시절에도, 그런 일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가슴에 손을 얹기는... 못하겠다.

 

그런 점에서 다른 글이나 책들도 그렇겠지만, 전문가의 세계에서도 그리고 학자의 세계에서도 자유인은 잘 없다.

 

회사나 기관에 소속된 분석가가 자기 맘대로 얘기했다가는 바로 위의 상관에게 심하게 터지게 된다.

 

교수들도 마찬가지이다. 정부 연구용역을 시작하게 되면, 할 수 있는 얘기의 범위와 방향에 제약이 걸린다. 물론 그런 제약이 없더라도 기꺼이 그럴 사람도 많지만, 그러지 않을만한 사람도 용역 발주자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영향을 받게 되는 것 같다.

 

명박 시대에는 그런 영향의 정도가 조금 더 커진 것 같다.

 

얼마 전에 아주 친한 지인이 청와대에 초청을 받아서 갔다 왔다. 원래도 우파이기는 했는데, 그 이후로 말의 뉘앙스가 조금 더 변했다. 학자라면 그래서는 안된다... 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그는 학자이기 이전에 생활인이기도 하다. 그래, 당신도 먹고 살아야겠지.

 

이런 이유로 경제에 대한 얘기들은, 그 얘기가 맞고 틀리는가 보다는 그게 누가 한 얘기인가가 더 중요해진다.

 

장관 시절에는 너무 바빠서 못 보다가 퇴임한 이후에나 만나게 되는 양반들이 있다. 물론 대개는 장관이 끝나고 나면 산하기관 기관장으로 한두턴 더 돌기는 하지만, 이미 장관 자리에서 물러나오면 총리나 부총리로 갈 거 아니라면, 사실상 퇴물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삶의 회한을 담아서 지난 날을 회고하며, 자신의 영광을 곱씹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이런 양반들에게, 그 때는 왜 그러셨어요라고 물어보면, 십중팔구. 너라고 별 수 있었겠냐?

 

한나라당이나 장관이나, 우리는 쉽게 확신범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진짜 확신범은 세상에 그렇게 많지 않다. 이상한 일을 하면서도, 표 때문에, 여론 때문에, 청와대의 눈치 때문에, 적극 그것을 옹호하는 경우가 많다.

 

본인도 괴롭지만, 하여간 그걸 세상 사람들은 "총대 맨다"라고 부르고. 명박이 가장 좋아하는 측근 인사 스타일은 바로 이 총대 매는 스타일이라고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총대 매는 것을, 명박은 "일을 한다"라고 이해한다.

 

현대 시절, 건설 용역이나 기타 등등, 수없는 문제가 생기고 사장 대신 감옥 가는 부하직원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워보였겠는가?

 

용산 현장에서 그리고 비슷한 사건에서 명박은 "일하다 문제 생기는 것은 문제 삼지 않겠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총대 맨 사람과 총대 매게 시킨 사람들 사이의 눈물 나는 우정이다.

 

뭐, 부작용은, 그러다보니 시키지도 않았는데, 적극적으로 삽질 하는 고위직들이 종종 등장하고, 과잉 충성이 등장하는 것이기도 하겠다.

 

말이 좀 길어졌다.

 

선대인의 <위험한 경제학 1, 2>는, 경제학자 내에서 비교적 합리적이라고 자칭타칭 불리는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지금 동의하고 있는 내용에, 선대인 특유의 종합적 분석과 언론 등의 사회적 맥락에 대한 해석이 결합된 책이다. 어느 정도는 암묵적으로 합의된 내용이 70% 그리고 선대인의 연구와 해석이 30% 정도 결합되어 있는 그런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자, 돌아서서 선대인만한 책을 쓸 사람이 한국에 몇 명이나 있을지 생각해보자.

 

얼핏 꼽아도 20~30명 정도 되는 것 같은데, 그 중에 절반은 너무 바빠서 도저히 책을 쓸 형편이 안된다. 그리고 그 중에 20~30%는, 국록을 먹고 있는데, 연봉은 작아도 국록을 먹고 있는 처지에서, 명박에게 대놓고 경제 기조를 바꾸라고 했다가는 자신만이 아니라 연구원 원장과 자기 팀까지 한 방에 날아가는 참상이 벌어지게 된다. 돌리고 돌려서, 예를 들면, 책 한 권에 비유적 문장 2~3개 삽입할 수 있는 게 전부일 것이다. 경제학자도 '학자'라서, 자신의 양심상 도저히 그 얘기를 안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일반인은 도저히 알아먹지 못할 문장 한 두개를 집어넣는다.

 

정말로 선대인만한 책을 쓸 사람을 딱 한 명만 꼽아보자면...

 

이한구다. 이한구가 다 옳은 것은 아니다. 몇 개는 나와는 견해가 분명히 그리고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명박의 경제가, 이거 아니다라고 생각하면서 선대인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한국 경제의 모습과 90% 가까이 비슷한 얘기를 쓸만한 사람은 이한구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이한구는 바쁘다. 직책도 높고, 한나라당 윤리위원회에 회부되거나 고진화처럼 강제탈당 당할 각오를 하지 않은 이상, 이한구는 점잖게, "좀 이상하쟎아요"라고 한 마디 하는 것 외에 선대인처럼 친절하게 책을 쓰지는 못할 것 같다.

 

그래서 2009년 한국 경제에 대한 종합적 조감도와 일반인들이 알고 싶어하는 증권과 부동산, 그리고 2010년 경제의 흐름에 대해서 써놓은 책 중, 자유인이 쓴 책은 선대인이 유일한 셈이다.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어쨌든 김광수 경제연구소에서 선대인을 영입할 때, 상당한 자유와 자율권 같은 것들을 어느 정도는 보장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김광수 경제연구소 자체가 디테일을 강조하는 실용주의라서, 정치적 고려가 그렇게 많은 곳은 아니다.

 

2010년 경제 상황에 관해서는 선대인과 다른 견해가 나에게도 좀 있지만, 그것은 시간의 차이와 양상의 데테일의 차이이다.

 

하여간 선대인은.

 

신문과 방송, 즉 공적인 곳에는 나오지 않는, 많은 한국 경제학자들의 상식적이며 암묵적인 합의를 온전히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나는 한국에 선대인이라는 경제학자가 있는 것이 너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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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연세대학교에서 <개청춘> 상영이 있었다.

 

이제 막 졸업해서 20대 당사자 운동을 시작하려다가 독한 좌절감을 맛본 정배, 생태선본으로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출마해서 악전고투 중인 명선, 앨범 낼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볼 때마다 안스러운 사회학과 밴드 '킬링 너즈' 그리고 사학 대신 만화로 먹고 살 공부를 하는 한솔 등이 꽤 고생을 했다. 그러나 뒤에서 해결하기 정말 어려운 일을 뒤에서 부드럽게 해결한 진짜 해결사는, 이번에도 영화다.

 

당분간 개청춘은 공동체 상영으로 서울의 몇 개 대학과 단체들 그리고 지방에서는 영대까지는 가는 걸로 알고 있다. 연대 상영본은 내가 본 것보다 8분 정도 줄인 거라는데, 여기에서 또 8분 줄인 날씬한 버전으로 편집을 끝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 시점에서...

 

노조에서 이 영화를 상영하면 어떨까, 그런 고민이 있다. 뭐, 고민할 것까지는 없다. 반이다 본인들은, 그렇게 하면 좋겠다니.

 

 

20대의 자기인식이 시작되다

[뷰포인트] 연세대학교 개청춘 상영회 후기

기사입력 2009-10-05 오전 11:55:56

88만원 세대, 청년실업, 20대 개새끼론... 20대를 둘러싼 담론으로 사회가 뜨겁다. 신자유주의 승자독식 시대로의 변환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집단으로 명명되거나 꿈도 희망도 책임감도 지니지 못한 낙오자 집단으로 묘사되거나. 그러나 이 모든 담론은 모두 20대를 '대상'으로 호출할 뿐, 20대의 직접적인 목소리는 들어있지 않다. 우리 시대의 20대들을 온전히 표현해주지도 못한다.

여기 20대들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자신의 삶을 그려낸 다큐멘터리가 있다. 아직은 영화제에 정식으로 초청받아 상영되지도, 개봉날짜를 받지도 못했다. 그러나 이런저런 소규모 상영회들을 통해 관객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개같은 청춘일지 몰라도 그 청춘을 열자고 제안하는 다큐멘터리 <개청춘>은 우리 시대 20대들의 삶의 표준을 그려내는 다큐멘터리는 아니다. 하지만 다양하게, 그리고 각자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20대 '개인'들의 삶을 들여다 봄으로써 한 가지 표현 혹은 규격화된 틀로 지금을 살아가는 20대를 규정할 수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개청춘>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이다.

얼마 전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개청춘> 특별상영회에 최근 『키보드워리어 전투일지 2000 - 2009』『뉴라이트 사용후기』 등의 책을 출간한 20대 필자 한윤형 씨가 다녀온 후 글을 보내왔다. 일하는 20대의 삶을 20대 다큐멘터리 감독이 카메라에 담아 20대인 대학생들의 호응으로 조직된 상영회에서 20대 필자가 보고 해석한 매우 소중한 결과물이 바로 이 글이다. - <편집자 주>


2009년 9월 29일 화요일 저녁 7시, 연세대학교 백주년 기념관에서 다큐멘터리 <개청춘>의 상영회가 열렸다. 다큐멘터리를 만든 이들은 여성영상집단 반이다, 배급을 맡은 이들은 시네마달, 영화가 끝난 후 반이다 멤버 셋과 함께 토크쇼를 같이 한 사람은 『88만원 세대』의 공저자 중 1인인 경제학자 우석훈이었다. 이렇게만 얘기해도 이 행사의 분위기가 어땠는지를 짐작할 수 있겠다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나는 <개청춘>을 두 번째로 보는 자리였다. 일전에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시사회에 참석했던 거다. 이제 개봉을 목표로 한 <개청춘>은 조금 더 편집된 형태로 관객들 앞에 선보였는데, 딱 8분 가량 줄었다는 그 러닝타임만큼 더 깔끔해진 듯 했다.

이 행사의 의의를 무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 '20대' 여성들인 반이다가, '20대'들의 삶을 추적한 다큐멘터리를 찍었고, 그것에 대해 '20대' 대학생들이 후원하여 상영회를 연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지금 나는 '20대' 논객이라는 허울 밖에 없는 타이틀을 가지고 이 후기를 쓴다. 20대 문제라는 것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이 반복되는 단어가 지겨울 거다. 방금 내가 쓴 문장의 정확한 의미를 무어라고 봐야 할 것인가?

2007년에 우석훈과 박권일의 『88만원 세대』라는 것이 세상에 나왔다. 부모님 자산이나 축내며 무기력하게 대한민국의 미래를 갉아먹고 있다고 모두가 생각했던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당면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책이었다. 사실 당신들은 이렇게 부당한 대우를 당하고 있었다. 윗세대, 특히 386세대는 경제적 자원과 정치적 올바름을 독점하면서 당신들에게 부당한 비난을 한다. 힘을 합쳐야 이 세태를 바꿀 수 있다. 토익책을 덮고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 고 그 책은 주장했다. 그리고 저자들의 주장에 일말의 기대를 건 일군의 20대들이 무언가를 해보려고 이합집산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석훈과 박권일의 메시지는 이 시대의 보편적인 젊은이들에게 설득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상업적 성공을 거둔 88만원 세대의 메시지는 왜곡된 형태로 젊은이들에게 당도했다. 이 어려운 시대에 취직하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는 취업 컨설턴트의 조언 속에서, 당신들의 어려움은 좌파 정권과 386들이 반기업/반시장 정서를 가지고 나라를 운영했기 때문이라는 수구세력의 야바위 속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겠지만 도저히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는 젊은이들의 냉소주의 속에서 말이다.

그 사이에 88만원 세대 담론의 함의는 엉뚱한 사람들이 가져가는 듯 했다. 386세대에 대한 비생산적인 미움을 증폭시키면서 자신의 잇속을 채우려 한 변희재나, 10대를 20대와 구별지으면서 정치적 대안의 부재라는 문제를 20대의 품성론으로 바꾸는 데 성공한 김용민과 같은 이들 말이다. 386세대와 88만원 세대 사이의 '낀 세대'에 해당할 이들 보수-개혁 평론가들의 질타 속에서도 20대들은 말이 없었다. 여전히 20대에 관한 기획은 20대를 조명하지 않았다. 모든 종류의 20대 특집은 그들에 대한 어른들의 고상한 훈계와, 어른들이 보기에 예뻐 보이는 좀 다르게 사는 20대들의 모습을 조명하는데 급급했다. 부끄럽긴 하지만 '20대 논객론'이란 것의 수혜를 입은 내 처지도 그것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우리는 걷지도 않은 아이에게 달리기를 요구하거나, 혹은 익지도 않은 과일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88만원 세대 담론을 이어가는 논의를 기획하거나, 당사자운동의 가능성을 모색해 볼 때, 번번이 벽에 부딪히던 내가 떠올렸던 생각이 그것이었다. 20대는 자신들의 삶을 서사화해서 이해해 본 경험도 없고, 그 경험들을 서로 나누어본 적은 더더구나 없었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던 간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도 20대를 잘 모른다는 사실과, 행동을 고민하는 몇몇 이들이 20대들을 대변할 수가 없다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다.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라는 요구는 『88만원 세대』의 저자들의 입에서 나올 때뿐만이 아니라 20대들 자신의 입에서 나올 때도 매우 공허했던 거다.

젊은이들이 처한 이런 곤궁함은 우석훈 박사가 해제를 쓴 만화가 김태권의 『어린 왕자의 귀환』에서도 보인다. 신자유주의의 우주를 떠도는 이 시대의 어린왕자는 이 체제가 우리를 어떻게 짓누르는지는 밝혀내지만, 어떤 행동을 요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답을 주지 못한다. "함께 고민하는 건 잘할 수 있단다!"라는 이 만화의 마지막 말은 그야말로 우리 시대의 숙제를 드러낸다. 그것은 이 시대의 정치적 고민의 시작이며 끝이다.

▲ 20대가 찍은 20대 다큐멘터리 <개청춘>
<개청춘> 역시 이 고민의 문맥에 서 있다. 그러나 반이다는 김태권과 다르다. 김태권은 책의 서문에서 IMF 이전의 대학생활을 경험해 보았다고 고백한다. "플라톤과 『자본론』을 한 팔에 안고 다니던 낭만적인 청년시절은 사라졌다."(서문 중에서) 김태권은 주변의 젊은이들과 공유했던 어떤 세계를 상실해본 경험을 가진 세대다. 하지만 반이다의 출발은 애초에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았던 그 상황 그 자체다.

반이다 역시 이 시대의 문제를 드러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반이다는 그 문제를 바로 해결하겠다는 욕심을 부리지는 않는다. 반이다의 한 멤버는 토크쇼 시간에 처음에는 사회문제를 명료하게 드러내고 싶었지만 후반 작업으로 가면 갈수록 등장 인물들의 사연에 집중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도대체 '20대들은 어디에 숨어 있는가?'라는 궁금증이 들었고, 이 영상물을 계기로 친구들과 함께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개청춘>은 이 영화를 보는 '대학생' 관객들에겐 다소 생경한 인물들을 제시한다.

고졸로 알바를 통해 살아가는 군입대를 앞둔 인식, 고졸 후 곧바로 취업하여 직장에 7년 동안 다닌 민희, 그리고 대졸 후 방송국 막내작가로 살아가는 승희가 그들이다. 인디스페이스에서도 연세대에서도 나온 질문은 어째서 그런 표본(?)을 선택했는지 거기엔 무슨 의도가 있었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반이다는 답한다. '일하는 20대'라는 기준을 통해 선정했노라고. 어른들의 시선 속에서 20대는 언제나 일을 하지 않는 이들이다. 반이다는 그런 시선에 반대하면서, 매력적인 인물들을 그리고, 그런 인물들조차 힘들어 한다면 무언가 문제가 있는게 아니겠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한다. <개청춘>이 20대 전반을 대변하지 못해도 반이다는 상관없다고 말한다. 문제는 20대 전체가 아니라 20대 개개인이고, 그들 각각을 보여주는 것이 의미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텍스트와 다른 영상매체의 힘이 드러난다.

그런데 저 '일하는 20대'를 쫓는 반이다의 시선과 감각이 뚜렷이 드러나는 것이 이 영상물의 가장 큰 특징이면서 매력이기도 하다. 반이다는 작품 밖에서 인물들을 찍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활을 보여주면서 그들을 따라간다. 형편이 안 되면 더싼 작업실을 찾아 이사를 가고, 인식과 앞으로의 작업에 대해 의논하며, 민희에게 갑작스럽게 터진 사건 때문에 몰래 눈물 흘린다. 전반적으로 여성 등장인물인 민희와 승희에 비해 인식과는 소통이 잘 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런 시행착오의 울퉁불퉁함조차 그대로 담아낸다.

우석훈 박사는 토크쇼에서 그런 반이다의 모습이 "한국 사회에서 독립된 문화생산자로서 사는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즉 반이다는 대상을 드러내면서 자신도 드러낸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일종의 메타 텍스트와 같다고 우석훈은 설명한다. 하지만 어려운 단어가 동원되었다고 해서 이 영상물이 어떤 심오한 지점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진실은 정반대다. 우석훈은 일본의 프리타족을 다룬 영상물 <조난 프리타>의 예술성과는 달리 <개청춘>은 매우 쉽고 재미있다고 코멘트했다. 사실 <개청춘>은 별다른 생각없이 보면 되는 영화다. 서너 장면을 제외하면 특별히 연출의 기술이 발휘된 듯한 부분도 없다.

상영회에 온 20대들은 <개청춘>을 보니 무언가 자신들도 비슷한 것을 찍을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반응했다. 반이다는 일부러 그런 느낌을 주려고 쉽게 찍은 것은 아니라며 웃었지만, 만일 그런 느낌을 줬다면 매우 좋다고 응답했다. 이를테면 각자의 셀프카메라를 통해 각자의 삶을 찍어보면 어떨까라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영상물에서 민희는 셀프카메라를 통해 자신을 찍으면서 자신의 삶을 재점검한다!) 만약 백만 개의 셀프카메라가 있다면 우리는 백만 개의 삶을 찍게 될 것이고, 누가 20대를 대표하는가 따위의 객쩍은 질문도 사라질 것이다. 이 대답은 인디스페이스의 시사회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것으로, 반이다가 <개청춘>의 상영을 통해 20대의 삶을 담아낸다는 문제에 대해 좀 더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로 여겨졌다.

<개청춘>은 상업영화도 예술영화도 아니다. 이 영상물은 만든 이들의 능력(?)을 우리에게 증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 반이다의 첫 영상물은 반이다가 의도한 바를 더 잘 드러내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상영회의 관객들은 매우 열정적으로 토크쇼에 임했다. 영상물 자체의 값어치를 매겼을 인디스페이스 시사회장의 관객들과는 달리, 연세대학교의 관객들은 촬영기법, 반이다의 결성, 영화의 특정 부분의 의미, 등장인물과 반이다의 근황과 장래계획 등에 대해서 꼬치꼬치 물어보았다. 스무 명 가까운 이들의 질문을 받고 나자 토크쇼에 할당된 1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반이다가 이런 종류의 젊은이들과의 잦은 만남을 통해 어느 정도 생계의 곤궁을 해결하고, 다음 작업을 위한 에너지를 얻게 되며, 또한 많은 젊은이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소망이 생겼다.

반이다가 설명해줘서 좋아하게 된 장면으로 이런 것이 있었다. 용산 참사 이후 시위 현장에서(그곳이 용산이라는 사실은 아쉽게도 영상에서 부각되지 않는다.) 반이다는 스타벅스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며 로또를 긁는다. 그리고 전경들이 로또를 긁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88만원 세대』를 보면 스타벅스 커피 같은 거 마시지 말고 20대들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것을 제안하는 부분이 있다. 반이다는 20대 문제에 대한 고민도 스타벅스에서 로또를 긁으면서 하는 것이 우리 세대의 모습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88만원 세대』를 향한 자조적이고 애교섞인 항변(?)인 셈이다.

민희는 회사를 그만두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야간대학에서 공부를 하게 된다. 그녀는 인디스페이스에서도 연세대에서도 볼 수 있었다. 인식은 금년 8월 11일에 입대했다. 승희는 흑자경영을 위해 다큐 작가들을 잘라버린 모 방송국 사장님 때문에 외주 프로덕션에서 야근을 하느라 상영회에 나올 수 없었다. 그렇게 각자의 삶은 흘러간다. 반이다는 차기작에 대한 욕심과 하고 싶은 일을 해도 행복해질 수 있을까라는 고민 속에서 갈등한다. 우석훈은 하고 싶은 일을 해도 지옥이며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아도 행복하지 않다고 너스레를 떤다. 삶은 지지리 궁상이며 행복은 술 먹은 직후에나 온다는 거다. 전적으로 동감이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삶을 버텨간다. 반이다는 영상물을 찍으며 우리 모두 '어떻게든 버티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그 버티는 삶 속에 '너희들은 희망이 없다'는 김용민의 충격요법과 '너희들은 실은 출중한 능력을 지니고 있으니 나와 함께 진중권을 쳐부수자.'는 변희재의 달콤한 독약은 개입할 수 있는 맥락이 없다. <개청춘>은 그렇게 무책임한 타자의 시선과 구별되는 20대 자신들의 삶에 대한 자기인식을 호출한다.

물론 나는 <개청춘>만이 시작점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20대들이 자신의 삶을 담아냈으나 어떤 지식인이나 글쟁이들도 비평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던 창작물들이 있다. 가령 웹툰과 같은 것이 그런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개청춘>을 통해 이전에 있었던 것과 이후에 있었던 것을 조망할 수 있는 하나의 씨앗이 뿌려진 것은 분명하다. 그렇게 20대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발화하는 과정은 20대의 삶과 한국 사회의 정치적 미래를 위해 너무나도 소중한 것이다. <개청춘>이 더 많은 이들을 만나야 하며, <개청춘>에서만 끝나서도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윤형 『뉴라이트 사용후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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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OCN 시리즈 채널에서는 하우스 시즌 3을 해주는 중이다. 미국에서는 시즌 6하는 중이라고 하던데.

 

시즌 1, 2는 뜨문뜨문 봤고, 시즌 5는 몇 번 봤는데, 사람들이 하도 바뀌어서 적응이 잘 안되고.

 

미국 드라마는 그렇게 즐겨보는 편은 아니다. CSI는 라스베가스는 아주 재밌게 봤는데, 뉴욕이나 마이애미, 재밌게 보기가 어려웠고.

 

아내가 자료로 '섹스 앤 더 시티' DVD 전편을 샀는데, 영 적응하기가 어려워서 한 편도 제대로 앉아서 보질 못했고. 하여간 거의 안 보는데, 하우스, 재방송까지 꼬박꼬박  챙겨가면서 본다.

 

물론 의학용어 엄 나오고, 나도 자막 뜨문뜨문 읽어가면서 보는 중인데, diagnostics라는 주제가 정말 재밌다.

 

진단.

 

선무당이 사람 잡고, 사람들은 늘 거짓말을 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병균들마저 속이고, 거짓말하는 존재.

 

2년 전에 코난 도일 한참 공부할 때, 셜록 홈즈 메디칼 버전이 있다고 그렇게 소개를 받아서 보기 시작했는데. 오락성으로는 19세기 셜록 홈즈 뺨친다만.

 

하여간 우리 집의 대박이다.

 

<선덕여왕>이 도대체 요즘 뭐하는지 모르겠다는 개뻥 시리즈로 바뀌는 요즘, 하우스와 강희대제로 넘어가서, 중국 드라마와 미국 드라마를 열심히 보는 중이다.

 

그런 드라마는 뭐하러 보냐고 하지만. 난 원래 아내가 질릴 정도로 아침 드라마까지 꼬박꼬박 챙겨보는, 드라마 맨이다.

 

(그 대신 골프도 안 치고, 내 또래 남자들이 대부분 즐기는 것들은 거의 안 한다. 와인 바도 안 가고, 칵테일 바도 안 가고. 노래방도 안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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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레슬러

영화 이야기 2009. 10. 2. 18:21

 

쿡 티비에서 추석 특집으로 영화 몇 개를 올려주었는데, 그 중에 손에 잡히는 대로 본 게 미키 루크의 <레슬러>.

 

아마 잘 생긴 걸로는 윤발이 오빠 다음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그의 늙은 모습을 보는 것은, 내가 살아온 삶을 다시 되돌아보는 것과 비슷했다.

 

얘기는 싸구려 질질, 놀랄 것도 없고, 새로울 것도 없다 싶지만. 그 안에 짙은 삶의 페이소스가 있다면, 아주 오래된 80년대 감성? 아니면 더 올라가서 70년대 감성?

 

죽을 줄 알면서도 램잼을 작렬시키는 미키 루크, 마약과 세월의 무게를 그도 감당하지 못했던 것처럼, 단 한 번이라도 무대 위로 올라가고 싶어하는 늙은 퇴역들, 그 삶의 무게 같은 게 느껴졌다.

 

아, 인제 미키 루크도 저렇게 되었구나.

 

한 때는 클락 케이블과 같은 전형적인 미남 배우들의 뒤를 이을 것이라고들 했던 것 같은데, 배우로서의 미키 루크에게 인생은 그렇지는 못했던 것 같다. 마약, 스캔들, 그런 것들에 시달리면서 퇴물이 된 동네 레슬러의 모습이나 미키 루크의 모습이 크게 달라보이지는 않는다.

 

몇 년 전만 해도 저런 모습을 보면,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 이런 감성으로 느꼈을 것 같은데, 문득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옛날 친구들 모이는 자리에 가면, 이젠 친구들쯤 절반은 앞이마가 훤하게 벗겨졌고, 배가 남산만해지기로 했다.

 

물론 더벅머리 그대로 하나도 안 변한 친구들도 있지만, 남산만한 배를 끌고 있는 친구들 보면, 세월의 무게가 중압감처럼 느껴진다.

 

레슬링과 관련된 영화로 제일 재밌게 봤던 것은, 레옹, 바로 그 레옹의 장 르노가 고아원의 아이들을 위해서 레슬러로 돈 몇 푼 버는 신부로 나왔던 영화가 있었다. 한국에는 개봉이 되었었나?

 

사람의 감성도 바뀐다는 생각을 최근에 부쩍 많이 하게 되는데, 미키 루크를 보면서, 나 감성 자체를 돌아보게 된다.

 

가족과 지인들 모두가 등 돌리는 삶 그러나 또한 화려하게 펼쳐져 있는 무대. 그 기묘한 이중성, 어쩌면 우리는 연극에서 끝끝내 내려오지 못한 퇴물 배우 아니면 레슬러와 마찬가지로, 삶을 하나하나 접어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작년 촛불집회 때 전대협 깃발 들고 모였던 아저씨 부대, 문득 그 장면이 겹쳐져 보였다. 그들 모두 생활인이 되었을까, 간만에 무대에 다시 올랐을 때, 기분이 어땠을까?

 

어쩌면 80년대, 우리 모두는 무대에 다 같이 한 번 올라가보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무대에 올라간 기억을 가지고 사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여전히 지우고 싶은 부담스러움일까?

 

램잼...

 

얼마 전부터 친구들이었을 것이 뻔한 넥타이 매고 회사다니고 있는, 이제는 부장에서 이사 사이 어디에선가 아웅거리며 살고 있을 그 동년배들에게 말을 걸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마흔, 남성, 한국에서 그들은 과연 어떤 존재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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