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을, 벽 앞에 선 느낌

 

은마, 미도, 이런 곳이 내 삶과 멀지는 않다.

보수신문 기자들이 하도 나보러 강남좌파라고 그래서, 종로로 이사온 게 3년 전이다.

경향신문 연재 중에, 강남을에 대권 주자 중의 한 명이 나가면 그래도 해볼만할 거라고 쓴 적이 있다.

고심 중이던 정동영이 그 글을 보고, 결국 강남을로 출마했다.

 

이래저래, 강남을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결국 나는 정동영을 사지로 몰아넣은 사람이 되었다.

지지율 차이가 10% 너머로 벌어지게 되면서, 좀 도와달라는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다시 대치동으로 갔다.  

 

신호를 기다리면서 잠시, 은마 아파트.

작년에 은마 아파트를 소제로 한 <모래>라는 다큐를 추천한 적이 있다. DMZ 영화제에서 수상을 했다, 지긋지긋한 은마의 얘기.

나꼽살 초반기, 거의 유일한 유행어가 선대인이 얘기한 '언마' 아파트, 그게 바로 이 은마이다.

 

처음부터 부실 아파트였던 은마, 여기에 강남의 욕망이 녹아있다.

지금 한참 논쟁 중인 개포 재개발단지도 보통 아니지만, 상징성만으로는 한국의 아파트 중에 은마만한 곳이 없다.

사진에 보이는 은마 종합상가, 강남 살던 시절, 가끔 밑반찬 사러 아내와 오던 곳이기도 하다.

여기 떡집이 아주 유명하다.

재건축되면 사라질 곳.

은마아파트 바로 길 건너 편에 정동영 선거 사무실이 있다.

강남에서 가치 논쟁을 한다...

어쩌면 우리는 불가능한 꿈을 꾸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정동영이 나보러 강남을에 출마하면 어떠냐고 했다.

이 아저씨가,

농담 하시나.

나도 입생 로랑 양복을 입고 다니던 시절이 있기는 했다.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는 싶지 않다.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을 달고 다니던 시절.

강남은 나에게 그런 기억이다.

사람들 눈을 의식해야 하고,

내가 빨갱이라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숨겨야 하고.

 

회의를 끝내고 선거사무실에서 나오자,

바로 눈앞에 띄는 미도.

아름다운 도시,

강남개발의 신화를 달고 있는 아파트 이름.

너무나도 익숙했던 그 욕망의 한 가운데, 다시 서게 되었다.

수서에서 다리 하나 건너면, 그곳이 내가 오랬동안 살던 곳이었다.

그 시절, 참 자주 지나다니던 곳.

교보문고에 가기 위해서 늘 이 길을 지나다니고는 했다.

 

 

정동영 선거 사무실에서 문을 나서자마자,

오른 쪽으로 눈을 돌리면...

요즘은 타팰이라고 부르는, 타워 팰리스가 서 있다.

이곳 팬트하우스에 분양을 받은 사람을 알고 있다.

지금도 사는 지는 모르겠지만, 한 때는 나와 동료였다.

지난 가을에 낸 책에, 인터뷰를 했던 어떤 사나이가 아직도 이곳에 살고 있다.

문득, 벽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제 본 정동영...

일주일이면, 이 사나이의 정치적 운명이 갈린다.

강남을,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축으로 하는 강남갑과는 또 다른 기기묘묘한 욕망의 사거리.

대한민국 2000년대 욕망의 축이라면,

단연 이곳이다.

대치동을 축으로 하는 학원의 거리,

은마아파트로 대변되는 재건축의 거리,

이게 지금 이 사나이를 가운데 놓고 한바탕,

가치의 용광로 속으로.

 

나는 거대한 벽 하나를 보고 온 듯한 느낌.

불과 몇 년 전까지, 내가 살던 곳이다.

그 한 가운데에서 절대로 나오지 않는 사람들과,

이게 세상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고 말하려고 하는 사람들,

대치동 사거리에서

벽과 벽이 맞부딪히는 중이다.

처음으로 진지하게,

하버마스가 말했던,

소통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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