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언어

 

신경민이 민통당 대변인이 되었고, 지역에 출마도 하였다. 신경민, 좋아하느냐고 하면, 당연한 거고. 얼마 전, 어느 패션지에서 같이 대담도 하였다.

 

YTN 라디오를 듣다가, 누가 이렇게 말을 못하나 그리고 이렇게 심할 정도로 운동권 사투리를 쓰나, 싶어서 집중해서 들어보니, 오매나야, 신경민이다.

 

운동권 사투리 중에 대표적인 게, ‘부분’, 심지어는 부분체라고도 불리는. 이 부분, 저 부분, 그런 부분, 엄청 찾는 말이 운동권 사투리 중의 하나이다.

 

한명숙 부분, 세종시 부분, 그런 부분, 강정 마을 부분,” 푸하하, 듣다가 엄청 웃었다.

 

대담할 때에는, 운동권 사투리가 있다는 생각은 못 했고, 좀 말하는 투가 격식을 차리려다 보니, 약간 딱딱하다는 정도의 느낌을 받았었다.

 

평생 말로 먹고 산 신경민이 엄청 부분 찾으면서 버벅거리고 있었더니, ytn의 앵커도 같이 부분 찾고, 그야말로 부분의 대향연이었다. 상대방이 헤매면, 자신도 같이 헤매게 되는 경우가 많다.

 

선대인이, 엄청 말 길다. 선대인 앞에 있다 보면, 나도 덩달아 말이 길어져서, 전국민 재울까봐, 좀 신경을 쓰는 편이다.

 

글도 어렵지만, 말도 참 어렵다. 언어학을 부전공처럼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있던 시절도 있었는데, 먹고 사는 걱정하다 보니, 세상살이가 팍팍해서. 한국에서 언어 현상에 대해서 가장 관심 있고 주의 깊게 보는 사람은, 고종석이 아닐까 싶다. ‘말들의 풍경’,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책이었다.  

말이라는 게 참 묘하다.

 

프랑스어도 직설법을 잘 안 쓰고, 은유와 풍자 이런 걸 많이 쓴다. 일본 사람 말하는 거, 특히 대학에서 토론하는 거 보다 보면 숨 넘어간다.

 

선생님 말씀이 전적으로 옳고, 정말 감동했습니다, , 이런 썰레발을 몇 분이나 푼 다음에,

 

저는, 아주 약간, 조금은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 학생이 스승에게 이렇게 얘기했다면, 정말 아주 강력한 반대의 표시일 것이다. 아주 조금 다른 느낌이라면, 아예 얘기를 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언어와 위계, 이런 것도 분석해보면 정말 재미있는 언어 현상일 듯 싶다.

 

한국에서의 좌파와 우파의 언어습관, 이런 것도 언어학적으로 분석해보면 정말 재밌을 듯 싶다. 50대의 성공한 부장 혹은 이사 정도 되는 사람들에게 흔히 관찰되는, 남을 싹 무시하고 자기 얘기만 하면서 문득 기분 좋아지는.

 

다들 흉보지만, 누군가 흉본다는 걸 자신만 모른다. 언어 습관이라기 보다는, 그 자신의 삶의 습관이 고스란히 말에 묻어나는

 

위계가 아주 강력했던 시절, 몸에 밴 습관인데, 위계가 약해지는 시대가 왔다는 걸 자신만 모르는강용석한테 이런 언어 습관이 종종 보였다. 한나라당, 민주통합당, 사실 좀 쎄다는 국회의원들은 여야 가리지 않고 요런 식의 언어 패턴이 많이 보인다.

 

좌파들의 언어는, 이와는 조금 다른 패턴. 아주 날이 서 있어서, 일반인들은 단 5분도 그 앞에 마주 서 있기가 피곤한.

 

공격이 최선의 방어다, 먼저 선빵부터 날리고 기선제압하지 않으면, 애당초 쪽수로는 버틸 수가 없던 곳에서 오래 살면, 자연스럽게 이런 언어가 몸에 익게 된다. 한 때 당직자들이 우황청심환 먹지 않으면 도저히 열어볼 수가 없다고 했던 진보신당의 당게시판, 뭐 나름 재미는 있지만, 일반인들은 경기 일으키기 딱 좋다.

 

아마 나도 가만히 돌아다보면, 엄청 엘리트들이 쓰는 언어습관을 가지고 있었을 법하고, 왕재수 시절이 아주 길게 있었을 것 같다.

 

몇 년 전부터, 의도적으로 입을 잘 안 열고, 주로 듣는다. 들으면서 상대방의 삶이나 걸어온 인생 혹은 이 사람이 하고 싶어하는 것, 이런 걸 찾아내는 게 더 재미있다. 내가 말을 하는 건, 얘기하고 싶은 사람이 더 쉽게 자기 얘기를 할 수 있게 추임새를 넣어주는 정도?

 

그러니까 나는 애당초 방송에는 맞지 않는 언어습관을 가지게 되었고, 그래서 방송 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정권만 바뀌면, 다시는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들고 서지는 않으리, 그런 심경으로 요즘도 그냥그냥 버틴다.

 

성경은 태초에 말씀이 있었으니…”로 시작한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 태초에 행동이 있었으니…”, 요렇게 맑시스트들이 공격하던 시절도 있었다.

 

말이라는 게, 이게 아주 희한한 것이다. 개념도 복잡한 것이지만, 언어 패턴 그 자체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보여준다.

 

명박의 언어, 요건 어떨까? 불어를 써서 미안하지만, 데구떵토 나온다, 요런 뜻이다.

 

어쩌면 그렇게 말 한 마디 한 마디, 복장을 뒤집어놓는지, 그것도 참 신기할 정도로 말초신경을 꼭꼭 골라가며

 

해봐서 안다, 우리가 무심결에 자주 쓰는 이 말이, 아마도 정상적인 한국인의 언어 습관에서는 완전히 사라질 것 같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라는 말을 정상적인 집단에서 해보라.

 

금방, 사방에서 미사일 날라오고, 다연장포 발사되고, 난리 날 것이다. 만약에 이 말을 했는데도 아무 반응이 없다면?

 

자신이 그 집단에서 심하게 왕따이거나 혹은 그 집단이 아주 이상하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런 이상한 말을 쓰는 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어?

 

명박이 자주 쓰는 언어들은, 아마 현대 한국어에서 영원히 봉인된 금기어처럼 되지 않을까 싶다. 그는 우리들의 무의식을 이미 형성하는 것 같다. 정말로 혐오스러운 것으로서 무의식 안에 들어가 버린 최초의 정치 지도자

 

강도는 약간 약하지만, 국회의원이나 장관 중에 본인은…” 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은 멸종했다. 그건 전또깡의 언어라서 그렇다.

 

아마 조금 지나면, “본 의원은…”, 그런 말도 사라질 것 같다.

 

저는…”, 그러면 될 것을, 본 의원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 궁극적으로 내가 가지고 싶은 언어는?

 

당연한 얘기겠지만,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는 언어를 가지고 싶다.

 

내가 무슨 영광을 더 보고, 무슨 출세를 더 하겠다고,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고, 다치게 하는 언어를 가지고 싶겠나?

 

나를 더 낮추고, 누구든지 내 등 위에 올라타고 편안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쉬고 앉을 수 있는 바위 같은 삶이 내가 영감이 되었을 때 구현하고 싶은 삶이다.

 

, 연구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닐 듯 싶다.

 

그냥 결을 따지자면, 언제나 날이 서 있고, 긴장감을 100%로 높이는 손석희의 언어와는 정 반대의 방향? 손석희 앞에서는 누구나 긴장하게 된다. 그러나 내 앞에서는 누구도 긴장할 필요가 없는, 그런 삶을 살고 싶고, 그런 언어를 가지고 싶다.

 

평생 말로 먹고 살았던 신경민 앵커가 당 대변인이 되자마자, 엄청나게 부분을 찾으면서 헤매는 걸 보면서말이라는 게 뭔가, 잠시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다.

 

부디 그가, 자신에게 필요한 언어를 빠른 시일 내에 찾아낼 수 있기를 빈다.

 

(이렇게 글을 써놓고 나니,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 언어습관, 이런 걸 형상화시킬 수 있는 사진은 도대체 뭘까? 무슨 형태의 사진을 찍으면, 언어라는 게 사진으로 표현이 될까? , 첫 질문부터 너무 어려운 걸 나한테 던졌다. 입 모습? 낙서? 포스터? 사진이라는 게 전달력이 참 우수한 장치이기는 한데, 언어 습관을 형상화시켯 보여주기에는와 놔, 죽겠네.)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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