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제회의에 참가했다가 아리수라는 물이 있어서 마셨다. 맛은, no comment.

 

고양이 물 먹이는 것도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닌데, 이놈이 처음 우리 집에 온 며칠을 제외하고는 물을 일절 마시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지도 목이 마르긴 하니까 화분에 있는 물, 화분 물받침에 고인 물, 이런 물들을 마신다.

 

길에 살던 고양이를 데리고 온 거라서 자연의 물의 좋은가, 이리저리 추론을 해봤는데...

 

한 달쯤 후에 정수기 물을 주면서 문제의 원인을 알았다.

 

길고양이 주제에, 수돗물은 안 마신다, 허걱.

 

우리 집 고양이가, 이게 입맛이 좀 까다롭기는 하다. 오죽하면 햄버거 고양이라고 별명을 붙여주었겠나.

 

캔도 가끔 따주는데, 딱 자기 선호하는 캔 한 두개 말고는 본 척도 않는다. 그래서 하루쯤 기다려보다가 결국 마당에 사는 원단 길고양이들만 포식하는 일이 종종 벌어졌다.

 

하여간 입이 짧으셔...

 

열 달쯤 지나가니까 요즘은 고양이용 육포나 햄 같은 것도 조금씩은 먹는데, 뭐 그렇게 내켜서 먹는 눈치는 아니고, 주는 성의를 봐서 약간 맛이나... 잘났다, 정말.

 

그러나 굶으면 굶지, 이 고양이는 절대로 수돗물은 안 마신다. 서울시에서 아무리 수돗물 품질이 뛰어나고, 생수 대신 마셔도 된다고 아리수라는 이름을 붙여도...

 

고양이가 본 척도 안 하려고 하는데 어쩔 거냐. 명박식으로 '대한 늬우스' 틀어대나고 해서 고양이가 꿈쩍도 할 것 같지도 않고.

 

썩은 물도 먹고, 툭하면 샤워하고 난 물도 먹는 고양이가 수돗물은 절대로 안 먹는 상황. 잘 났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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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의 후일담을 그렇게 재밌게 읽는 편은 아니다. 너무 자기 중심적으로 갖다붙이려는 경향이 좀 강한 것 같고, 그렇다고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그 중에서 사실만을 찾아내면서 읽기에는 세상살이가 너무 피곤한 것 같고.

 

어쨌든 한겨레 박찬수 기자의 <청와대 vs 백악관>은 그야말로 심심풀이 땅통으로 읽으면 딱 좋은 책인데, 재밌는 에피소드들이 좀 있다.

 

이 책을 집은 것은, 요즘 세상이 하수상해서, 도대체 청와대에 앉아있는 분들은 요즘 무슨 생각하실까, 그래서 그냥 싱숭생숭한 생각을 하다가 마침 책이 손에 잡혀서...

 

클린턴 뒤에 백악관에 들어간 부시 일행이 백악관에서 만난 컴에는 W 키가 빠져 있었다.

 

조지 W. 부시의 W를 치지 못하게 하겠다고 백악관을 떠난 클린턴 보좌관들 작품이다. 푸하하...

 

(노무현도 청와대 떠나면서 명박을 치지 못하도록 ㅁ, ㅂ 자판을 떼는 앙증맞은 심술을 부렸을까?)

 

책에는 명박이 애용한다는 상황실이 청와대에 생겨난 얘기 그리고 그게 어떻게 구사일생으로 이번 정부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았나, 그런 얘기도 상당히 재밌다.

 

무엇보다 '언론 선진화'라는 '대못'이라는 표현을 유행시킨 그 시점의 내부 분위기 같은 게 좀 생생했다.

 

나는 아직도 기자실 폐지가 선진화인지는 여전히 납득을 잘 못하는 편이다. 하여간 명박네 애들이 선진화라는 표현을 엄청 쓰는데, 기원을 따지면 노무현이 먼저 썼었다. 참고로 지금 공기업 선진화라는 표현은 대체로 인원삭감을 의미한다.

 

청와대에 가는 보고서는 국정원 보고서와 경찰 보고서가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경찰 보고서는 사본의 일부를 한 번 본 적이 있기는 한데, 국정원 보고서의 원본은 나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만드는데 관여해 본 적은 있는데, 몇 번 자료를 보내고도 정작 최종 원본은 어떻게 되었는지 보여주지를 않는다.)

 

박찬수 기자의 인터뷰에 의하면, 별 거 없다...

 

미국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대통령 브리핑이라는 게 매일 올라가고, 부시는 이걸 아주 열심히 봤다고 한다. 휴가 가 있을 때에도 배달한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백악관 당직자들은 CNN을 주로 본단다. CIA를 비롯해 미국 정보기관 중 어느 누구도 CNN만큼은 못한단다. 그럴 것 같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거치면서 국정원장의 독대가 없어졌는데, 명박은 국정원 보고서는 꽤 열심히 보는 편이란다.

 

예전에 나는 천호선 대변인을 상당히 싫어했는데, 뭐 어쨌든 박찬수 기자의 전언을 모아보면, 그렇게 아주 황당한 사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대중 말기에 대변인을 했던 박선숙은 상당히 대변인 역할을 부드럽게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딸이 아토피로 아주 고생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환경부 차관 시절에 농성장에서 몇 번 보았는데, 저런 사람이 대변인을 해야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편안한 인상이다.

 

지금의 청와대 대변인은, 음... 노 코멘트.

 

어쨌든 노무현 중반기에 천호선 시절에는 일일 브리핑을 라이브로 한 적이 있는데, 이게 명박 정부 들어오면서 없어졌다. 그래서 혼자서 이런 놈들, 하면서 욕을 하고 있었는데, 사실은 정권 인수하면서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은 초기에는 라이브 브리핑을 하기가 어렵다고 천호선이 물러나면서 조언을 해준 것을 받아들인 것이란다. 아, 그랬구나...

 

처음 책을 집으면서, NSC 얘기가 좀 나올까 싶었는데, 서문에 이 얘기는 다음 기회에 하겠단다, 허걱.

 

한국에서 NSC에 관한 얘기들은 어지간해서 잘 나오지 않는다. 실제로는 굉장히 중요한 회의인데, 꼭 대북 문제나 국방 관련된 의제만 이 회의에 올라가는 게 아니고, 조약이나 무역 관련된 의제들도 가끔 올라간다.

 

예전에 기후변화협약 업무를 NSC에 올리기 위해서 NSC 사무국 사람들을 종종 만난 적이 있기는 한데, 전체적으로 어떻게 움직이는 시스템인지 감을 잡을 기회가 잘 없어서, 그런 내용을 좀 봤으면 했는데, 좀 아쉽다.

 

하여간 경찰 보고와 국정원 보고가 경쟁 중이라는 얘기는 예전에도 몇 번 들은 적이 있는데, 아무래도 이 정부가 경찰국가는 경찰국가인가 보다.

 

노무현 시절에 청와대에 관해서 나온 얘기들이 몇 권 있었던 것 같은데, 우연히 잡아서 잠깐 봤는데, 너무 자화자찬이라서 통시적 비교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박찬수의 <청와대 vs 백악관>은, 이 더운 날, 청와대에 혼자 앉아서 명박이 무슨 생각하며 하루를 보낼까, 그런 게 궁금한 사람에게, 이 독특한 구중궁궐의 이모저모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게 해주기는 할 것 같다.

 

만약 내가 이런 책을 쓴다면, 장치 보다는 예를 들면 노무현 시절의 3명의 정책수석의 차이점 비교, 혹은 그 안에 있는 비사, 그리고 협작과 음모, 이런 쪽에 더 맞추었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기자라서 그런지. 상당히 점잖게 글을 썼다.

 

(기회가 되면 총리실이나 국정원에 대해서 한 번 책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나도 있는데, 기회가 잘 닿지가 않는다. 나는 군사정권 시절의 국정원은 잘 모르고, 김대중, 노무현 시절에는 좀 아는데, 요즘 국정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그야말로 도통... 따로 조사를 하는 수밖에 없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참, 명박이 자기 맘대로 임명할 수 있는 자리가 우리나라에는 3천개 정도 된다고 한다. 명박과 3천 궁녀 정도 될려나?

 

(간접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자리까지 합치면 3만개 정도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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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이 블로그에 책 얘기가 올라오면, 책을 사야한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 그러지 마시라. 만원 넘는 책 사는 거 보통 일 아니다. 도서관에서 읽으시고, 그래도 꼭 더 보고 싶다고 생각하거나 가지고 싶다, 생각하면 그 때 사시라. 책 사라고 여기에 짧은 감상 단문 올리는 거 아니니까, 제발 부탁이니 어지간하면 도서관에서 빌려서라도 읽으면 좋겠다는 말이지, 책 사라고 하는 거라고 그런 택도 아닌 얘기 하지 마시기 바란다.)

 

이사카 코다로의 <마왕>이라는 책은, 내 기준으로 하면 두 시간짜리 책이다. 소설이고, 가벼운 소설이다. 그리고 한참 더 쓸 것 같은데, 얘기가 끝나버리는, 그야말로 경소설이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풀었으면, 그 다음에 최소한 3~4권, 그리고 아마도 7~8권은 더 나가는 진짜 싸움에 관한 얘기가 있을 법한데, 자, 이제 난 싸우기로 마음을 먹었어, 그리고 끝나버린 책이다.

 

그래서 가벼운 책이다.

 

뭐야, 서론부만 쓰고, 이제 정말 싸울까 싶은데, 이게 끝이야?

 

그렇지만 내용은 무거운 책이다. '사소설'은 아니고, 우리들 내면에 있는 무기력을 파고 들어가면서, 너네들 이러다, 당한다, 그런 말을 해주고 싶어하는 책이다. 한국인들이 소비하는 일본 소설은 대부분 사소설이다. 그러나 '마왕'은 사소설은 아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망했다. 사소설말고, 일본 내에서는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은 소설들이 한국에서는 다 망한다. 지독할 정도의 편식이다.

 

자, 틀은 그렇고...

 

복화술과 운, 두 개의 키워드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언어의 세계에 속한 얘기, 하나는 수학의 세계에 속한 얘기이다. 두 얘기를 이어주는 것은, 형제라는, 그것도 어렸을 때 자동차 사고로 부모를 모두 잃어서 겨우겨우 살아남고, 겨우겨우 정규직, 그리고 겨우겨우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일본의 두 형제가 서로 다르게 소화하고 있는 두 세계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을 보게 된 동기는...

 

<88만원 세대> 후반부를 슈베르트의 마왕으로 마감한 적이 있는데, 같은 모티브를 가지고 일본의 파시즘과 헌법 문제를 다룬 책이 있다고 누군가 집으로 보내주어서...

 

그래서 읽어봤는데, 이 책은 아이디어가 주는 번뜩함으로 무엇인가 깨달았다라고 하는 책 보다는, 이런 식이라면 나는 이렇게 얘기를 풀어보고 싶다라고 하는, 창작의 욕구를 주는 책 같았다.

 

물론 일본 사람들에게, 그리고 점점 더 파시즘으로 가고 있는 일본 사회의 구성원들에게는 나와 전혀 다른 의미로 읽혔을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나는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해보고 싶다, 창작욕을 주는 책이다.

 

더블 플롯을 시도해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교과서처럼 사서 두고 보아도 좋을 책이다.

 

두 파트로 나누어져 있는데, 안도를 1인칭 시점으로 하는 1부, 그리고 시오리를 1인칭 시점으로 하는 2부, 왜 준야가 아니라 시오리야? 이거야말로 테크닉이다. 정말로 소설을 쓰고 싶고, 약간은 테크닉을 사용하고 싶은 사람, 어쨌든 일본 30대 소설가 중 최고의 테크니션이라는 평을 듣는 이사카 코타로가 왜 테크니션인가, 하는 느낌을 받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촛불집회가 왜 안되는가 혹은 왜 문제인가, 그런 생각을 해보고 싶은 사람들, 도서관에서 빌려보면 좋을 것 같고, 잘 팔리는 소설가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는, 테크닉의 복기 교과서로 소장해서 틈틈히 참고할 만한 책인 것 같다.

 

테크닉 만으로는 절대로 얘기가 나오지 않지만, 아무리 좋은 얘기라도 테크닉이 없으면 얘기 구성 자체가 어렵다, 그런 생각이 이 <마왕>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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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덜룩하게 못생긴 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 우리 집 마당에 종종 출현한다. 그냥 그런 고양이 한 마리 있나 싶었는데, 관계가 전환되는 계기가 한 번 있었다.

 

장마가 한참일 때, 이 얼룩덜룩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 세 마리를 끌고 우리 집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아, 엄마구나...

 

눈 막 뜬 새끼 고양이는 세상에서 다시 없을 정도로 귀여운 존재이다.

 

그 장마를 잘 버틸까 싶어서, 어느 날부터 처마 밑에 먹이를 주기 시작했는데, 길고 길었던 올해 장마가 끝나고 어느 날부터, 나머지 두 마리 새끼들은 보기가 어려워졌다. 엄마와 새끼, 그렇게 둘이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게 생태계에 좋은지, 아니면 세상에 좋은지, 그런 건 모르겠지만, 두 마리 새끼는 장마를 못이겨서 죽었거나, 아니면 엄마가 버린 것 같다. 내가 마지막 본 장면은 딱 한 마리 새끼가 이 얼룩달룩, 못 생겼다고 내가 구박하던 그 엄마 고양이한테 젖을 먹고 있던 장면이었다.

 

왜 한 마리 뿐일까?

 

나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사라져버린 두 마리는 아마 젖도 못 떼고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어디선가 잘 살고 있고, 다만 힘이 약한 새끼 한 마리를 어미가 끝까지 데리고 있는 거라고, 그렇게 상상하기도 한다. 실제로 그런 적이 있다. 대충 열 마리 넘는 고양이를 키워봤는데, 그 중에 한 번, 제일 예쁘고 튼실해보이는 새끼 고양이 한 마리만 남기고 엄마가 가출한 적이 있다. 나머지 두 마리는 늘 그렇듯이 예전 우리집 현관에서 오랫동안 살았다. 그런 것이면 좋겠다만...

 

하여간 그래서 얼마 전부터 저녁 때마다 고양이 사료를 조금씩 놓아주는데, 한 시간이 지나기 전에 다 사라진다. 다만, 한 마리 남은 새끼를 끌고 다니는 그 얼룩달룩 못생긴 고양이 모녀가 먹었으면, 뭐, 그런 마음이다.

 

오늘 저녁에는 정말 못생긴, 누렁이 고양이를 봤다.

 

나는 이 누렁이로부터 모녀 고양이를 지켜야 하나, 뭐 그런 생각을 했는데...

 

어쨌든 늘 하던 것처럼 사료를 주면서 보니까...

 

엄미와 새끼, 그렇게 한참 사료를 먹는 것을 지키던 그 누렁이가 그들이 사라진 다음에 비로소 사료를 먹는 걸 보았다.

 

아빤갑다.

 

가끔씩 어미와 새끼를 지키는 아빠 고양이들이 있다. 이 누렁이는 아마도 아빠 고양이인 것 같다.

 

배고플텐데, 엄마와 새끼가 먹을 만큼 먹고 자리를 지키고 난 다음에야 약간 남은 사료를 먹는 이 누렁이는, 아마 얼룩달룩이 남편이고, 한 마리 남은 새끼 고양이의 아빠일 것 같다.

 

그리고 다시 돌아보니, 그 새끼 고양이의 검은색 옆의 노란 줄은, 엄마와 아빠를 섞은 그런 모습으로 보인다.

 

그야말로 고양이들의 순애보이다.

 

누렁이, 그 자식이 이 고양이들의 아빠이고, 어미인 셈인데, 정말로 아내와 새끼들이 다 먹고 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그런 길고양이를 보면서, 이 한 가족의 순애보가 가슴을 아프게 한다.

 

저 녀석들이 올 겨울까지 버틸까, 아니면 이번 겨울을 버텨낼 수 있을까?

 

장마가 지나고 잠깐 펼쳐진 밝은 여름 날, 고양이들의 순애보가 나를 울린다.

 

누렁이면 어떻고, 얼룩이면 어떻겠나. 하나 남은 새끼 고양이를 지금 저들의 어미 아비가 죽어라고 살리려고 하는 것이고, 그 때야 최근 펼쳐진 우리 집 마당의 비밀을 풀었다.

 

지난 겨울 내내 쟁탈전이 벌어졌던 이 마당에, 두 마리 고양이면 새끼 고양이 한 마리만큼의 생태 공간을 지킬 수 있다. 지금 저들은 그러고 있는 중이다.

 

이 새끼 고양이가 다 자라서 어른이 되면, 그 때는 이 임시적 가족관계가 해체되고, 그들끼리도 경쟁 관계에 들어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순애보다.

 

해가 진 밤, 그들 세 가족이 펼치는 고양이 순애보가, 문득 내가 왜 살아가려고 하는가,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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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간하면 책은 돈 주고 사서 볼려고 하는 편인데, 송구하게도 최성각의 책은 한 번도 돈 주고 사서 보지 못했다. 매 번 책이 나올 때마다 보내주시는 바람에,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다.

 

언제부터인지, 하여간 매주 미처 읽을 수 없을만큼 몇 박스씩 책이 나에게 배달되어 오고, 또 나도 부지런히 책을 사대고 있는 편이라서, 최근에 우리 집에 온 책이 벌써 마루바닥을 가득 채우고 있다.

 

가급적이면 짧게라도 읽어보고 싶기는 한데, 두꺼운 두 권짜리 케인즈 평전처럼, 아직 펼쳐보지도 못한 책들이 좀 있다.

 

하여간 이번 여름은 앉아서 책을 보는 시간이 좀 늘어나서, 하루에 2~3권 정도는 보는 것 같다. 대부분의 책들이 무거운 책들이고, 일부는 골치아픈 논쟁을 담고 있는 원서들이다.

 

살면서 하루에 두 권의 책을 읽지 않는 날은 없도록 하겠다고 옛날에 결심한 적이 있기는 한데, 늘 그렇게 한 것은 아니지만, 많이 읽는 날은 꽤 많이 읽은 날도 있으니까, 평균을 내보면 지난 20년 동안 하루에 두 권씩은 읽었던 것 같다. 그래도 책으로 치면, 편식하는 편이다.

 

수필이라는 쟝르를 좋아하고, 특히 시인들이 내는 산문집은 꽤 좋아하는 편이다. 기형도의 산문집은 그의 시로 들어가는 입구와 비슷하다.

 

그래도 요즘은 수필집을 자주 읽지는 못했다. 뭔가 트렌드라는 게 있는지, 최근이 수필집은 몇 권 읽을려고 하다가 토 나올 뻔 해서.

 

최성각의 산문집은 '달려라 냇물아'와 '날아라 새들아', 두 권 모두 재미있다. 두 권을 이어서 읽으면, 약간 연작 소설이나 대하 소설 읽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산골에서의 생활 정착기의 흐름이라서, 거위와 뱀 그리고 개구리 같은 것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풍의 단상들이 썩 재미있다.

 

아직 읽지는 못했는데, 바로 이 거위들을 모티브로 하는 소설도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생태라는 이름을 붙이면, 사람들이 잔뜩 움추려들고, 또 엄청나게 뻣뻣해지면서 경건 모드로 들어가는데, 내가 아는 바로는 최성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밝고 명랑한 톤으로 생태에 관한 글을 쓰는 사람이고, 흔히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민간인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나이를 먹어서도 변하지 않는, 고등학교 시절에 만났던 껄렁껄렁한 친구가, 그 모습 그대로 30년이 지나면 어떤 모습이 될까에 관한 질문 정도?

 

내년에 지금 쓰는 책들이 다 끝나면, 무겁지 않은 수필집을 한 번 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수필집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읽어보는 와중에 읽었던 최성각의 산문집은 상당히 재밌으면서 독특한 풍취 같은 것을 느끼게 하여주었다.

 

후반 부에 나와있는 '생태적 위기와 새로운 글쓰기'는 정말 오랫만에 읽은 문학평론이었는데, 통쾌함을 느꼈다.

 

내가 최근의 한국 소설 몇 권을 읽으려다가 토 나와서 포기한 바로 그 심정을 최성각이 대변해주고 있었다. 그래, 바로 이 느낌이야!

 

최성각이 열어가고 있는 '생태적 글쓰기'는 어쩌면 한국에서 글쟁이가 되거나, 자신만의 문체를 가지고 싶어서 고민하는 대학생들이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학생들도 읽을 수 있도록 충분히 쉽고, 충분히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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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고양이는 암컷인데, 이제 한 살이 되었을까? 하여간 길 잃은 고양이를 한 마리 동물병원에서 분양받아서 데리고 왔는데, 이제는 곧 컸다.

 

그리고 이 고양이 주변에서 얼쩡얼쩡거리는 아주 못생긴 고양이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특히 못 생긴 고양이가 한 마리가 있다. 하여간 이 못 생긴 고양이와 우리 집 고양이는 상당히 친한지, 모기장을 사이에 두고 곧잘 심오한 소리들을 낸다.

 

이게 그냥 발정기인줄 알았는데, 최근에야 이게 고양이들의 걸 토크라는 걸 알았다.

 

못생겼다고 나한테 구박받던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 세 마리를 얼마 전에 낳아서 우리 집 마당에서 키우기 시작했다. 새끼를 낳고 나서 이제는 엄마 고양이가 된 이 못생긴 고양이와 우리 집 고양이가, 하루에 한 시간씩 한참을 떠들어댄다.

 

이건 발정기 소리가 아니라, 그야말로 걸 토크인 셈인데, 무슨 얘기들을 저렇게 하는 걸까, 궁금해지기도 하였다.

 

어쨌든 고양이 새끼들은 세상에 이렇게 귀여운 게 또 있을까 싶게 귀엽다.

 

그래도 우리 집 안으로 들어온 것들이라서, 얘들한테도 밥을 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겨우내 우리 집 마당은 동네 고양이들의 각축장이고, 며칠에 한 번씩 우리 집 마당을 차지하기 위해서 동네 길고양이들이 혈투를 벌이던 곳이기는 한데...

 

새끼를 낳은 어미 고양이한테는 영역을 양보하는 모양인지, 한동안 못생겼다고 구박하던 고양이가 이제는 어느덧 엄마가 되어서 세 고양이를 거느리고 먹고 살겠다고 바둥거리는 모습을 보면, 정말 마음이 짠하기도 하다.

 

아직 우리집 고양이는 중성화 수술을 안 시켰는데, 어쨌든 새끼를 한 번쯤 낳을 수 있게 해주고 싶기는 한데, 여전히 집은 어수선하고, 나도 이것저것 쓰느라고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가끔 신화에 보면 동물의 말을 알아듣는 영웅들이 나온다. 대표적인 사람이 새와 노래를 했던 니벨룽겐의 반지의 주인공 지그프리트.

 

고양이들의 걸 토크는, 정말로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다.

 

아직 성묘가 제대로 안된 처녀 고양이와 이제 막 세 아이의 엄마가 된 고양이, 이 둘은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하루에 한 시간씩 나누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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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석의 <100℃>는 일단 재밌는 만화이다.

 

경적을 사측에서 떼어낸 택시의 운전기사가 경적을 누르는 장면에서, 나도 별 수 없이 울었다. 워낙 울음이 헤프기는 하지만...

 

얘기는 일단은 앙상하다. 그러나 만약 87년을 현장에서 경험한 사람이 이 만화를 만들었다면, 얘기가 풍부한 게 아니라 떼부장처럼 살집만 두툼한 것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87년 얘기를 하는데, 누구도 넣어야 하고, 누구도 넣어야 하고, 이렇게 감당할 수 없이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는 그런 두툼함을 포기한 대신, 얘기의 선은 얇아졌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담백한 얘기가 된 것 같다.

 

그리고 치밀하지는 않다.

 

읽으면서 문득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를 연상했는데, 고리끼의 어머니는 맨 마지막 장면에서 일어나는데, 그 앞에 얘기들을 치밀하게 많이 깔아놓는다. 그런 것과 비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막심 고리끼와 비교하면 전개가 치밀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건 막심 고리끼이고, 이건 최규석이다. 최규석을 어머니를 내세울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87년의 주역들을 20년 후 갑자기 우리에게 다시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다.

 

최규석의 그림풍은 스케치를 곁들인 리얼리즘풍이다. 이런 그림을 가지고도 풍성한 상상을 곁들일 수 있는 것은, 아마 최규석의 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인가?

 

그러나 최규석의 <100℃>는 스토리 라인이나 전개과정 혹은 그림풍과는 전혀 상관없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작년부터 한국에도 프로 문학이 다시 복귀할 것이라는 가설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그 첫 테입을 끊은 것이 바로 이 <100℃>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배경은 먼 옛날이 아닌, 바로 20년 전, 명박 2년차, 이제는 너무도 먼 곳의 시간으로 느껴지는, 그 박제화된 얘기들을 감동적으로 꺼집어낸 최규석, 그가 <100℃>와 함께 한국의 프로 문학의 맨 앞에 서게 된 것이,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시대적 의미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명박은, 이제 한국 현대사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린 듯한 프로문학을 다시 호명하고, 그들에게 자리를 만들어준 셈이다.

 

이제 다시 시작된 한국의 프로 문학, 그 상이 얼마나 풍성해질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상에 첫 번째 음식을 차려년 사람은 단연 최규석이다.

 

그야말로, 명박 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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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은 다리가 세 개뿐인 엔젤이라는 이름의 재규어와 사무실을 같이 쓰고 있다. '쾅'하고 방충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면 엔젤은 절뚝거리면서 사무실 구석으로 자리를 피한다. 나무 기둥을 세워놓고 그 위에 지어놓은 엔젤의 우리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샤론이 쳐다볼 때마다 엔젤은 마치 배를 긁어달라고 아양을 떠는 강아지처럼 옆으로 뒹글면서 사지를 쭉 뻗는다. 그럴 때면 샤론은 두 공간을 분리하는 철망 위로 닭고리를 한 조각씩 던져준다. 재규어는 '척'하는 소리를 내며 고기를 받아먹는다. 사무실을 찾아온 사람들이 엔젤을 쓰다듬어 주어도 되냐고 물으면 샤론은 고개를 젓는다.

 

   "절대 재규어를 쓰다듬지 마세요, 손을 먹이로 줄 생각이 아니라면요."

 

언젠가 샤론이 내게 한 말이다. (주홍 마코 앵무새의 마지막 비상, pp.16-17)

______

 

위의 구절은 내가 올 상반기에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상상력 넘치고 위트 넘치는 문장들이다. 다리가 하나 잘려서 세 개의 다리로 살아가는 재규어를 보는 사람마다 머리를 쓰다듬고 싶은 충동이 생기나 보다. 나도 우리 집 고양이를 볼 때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데, 동물원 원장은, 손을 먹이로 줄 생각이 아니라면, 절대로 쓰다듬지 말라고 한다.

 

Oh, shit!  이건 재규어란 말이야.

 

이 구절이 <주홍 마코 앵무새의 마지막 비상>이라는 책의 추천사를 쓰게 만든 결정적인 문장이었다. 마침 그 주에, 내 수업을 듣는 어떤 학생이, 여주에 나타난 늙은 호랑이라는 주제로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다. 호랑이, 고양이, 이런 단어들을 마을 만들기와 연결시키고 있을 때, 어떤 책 하나가 재규어에 대한 얘기를 같은 맥락에서 던지고 있었다.

 

추천사로 치면, 생각나는 책들이 몇 권 있다. <왜 세상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책의 원고와 <주홍 마코 앵무새의 마지막 비상>이라는 책의 원고, 전부 전산 원고로 받았는데, 두 개의 책 모두 엄청 안 팔리게 생겨보였었다.

 

어쨌든 안 팔리게 생긴 원고들의 추천사 같은 것을 부탁받을 때에 상당히 고민을 하게 된다. 물론 잘 팔리게 생긴 책의 추천사를 부탁받을 때에는, 아, 네, 제가 너무 바빠서요... 잘 팔릴 책에는 추천사가 필요없다. 그리고 나도 생각보다 바쁘다.

 

물론 책을 읽는 둥 마는 둥, 앞 대가리만 보고서 추천사를 쓰는 사람들도 종종 있기는 하지만, 난 아직 그럴 공력은 안되어서, 꼼꼼히까지는 아니더라도 전체를 다 읽는 편이다. 게중에는 정말 재미없는 책도 있고, 또 도저히 나는 추천하지 못하겠다는 책도 있다. 다행히 '못 하겠다'라고 말하기 전에 원고를 읽으면 좋은데, 내가 늘 게을러서 마지막 순간에 책을 읽고, 추천사를 쓰는 편이라서, 상대방을 본의가 아니게 불편하게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어쨌든 내가 추천사를 쓸 때, 갖는 느낌은 팔릴 것 같은 책, 아닌 것 같은 책, 이렇게 나눈다. 그리고 안 팔릴 것 같은 책 - 그러나 좋은 책 - 에 더 정성을 들려서 추천사를 쓴다.

 

<주홍 마코 앵무새의 마지막 비상>은, 아마도 안 팔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이런 느낌은 잘 안 맞는다. (아마 나는 마케팅에는 잼뱅인가보다.)

 

주홍 마코 앵무새는 아주 작은 나라에서 벌어진, 일종의 4대강 살리기를 막아나선 사람들의 눈물나는 스토리이고, 실제로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살아왔던 30대의 모습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아서, 몇 번이고 읽다 말고 산책을 하면서 겨우겨우 끝까지 다 읽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존재도 우리는 살릴 수 없을까? 마코 앵무새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데자뷰', 그야말로 팔도강산이라고 불렸던 우리의 국토 생태도 결국 명박 대마왕 앞에서 지킬 수 없을 것이라는, 그런 느낌이 들면서, 몇 번이나 눈물을 흘렸다.

 

예술을 좋아하고, 아름다움을 좋아하고,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지금 이 시대를 읽는 것처럼, <주홍 마코 앵무새의 마지막 비상>을 읽으시면 좋을 것 같다.

 

다음 학기에 생태인류학 수업을 하는데, 보조 교재들을 고민하다가, 이게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우리는 자연을 지키는가, 그리고 그 자연을 지키는 와중에 어떤 일을 만나게 되는가, 여기에 대해서 사실주의적으로 고민하고 싶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영화로 만들어도 재밌을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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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랑스에서 있던 시절에는 영화를 참 많이 보았다. 구로자와의 영화나 베르히만의 영화를 본 것도 파리에서 있던 영화 페스티발에서였다. 원래 공부 좀 합네하는 식자들이 문화적 취향은 높은데, 파리에서 가장 싸게 할 수 있던 문화 향수는 결국 영화 밖에 없었다.

 

가끔 연극 공부하는 사람들 통해서 터무니없이 값싼 연극표를 구하면 토스토프에스키의 연극들을 보기도 했지만, 그건 정말 일년에 몇 번 벌어지지 않는 일이고. 우연히 기회가 되어서 르와르 강변에서 벌어진 무용 페스티발에 참가해서 정말 원없이 무용을 보기도 했지만, 그건 몇 년에 한 번 해볼 수 있는 일이었다.

 

간략하게... 영화 말고는 할 수 있는 문화 행사가 없었다, 가난한 유학생에게는. 그래서 그 몇 년 동안 정말 죽도록 영화를 보았다. 대체적으로 1주일에 두 번 정도 극장에 간 것 같고, 가끔 영화 공부하는 사람들 집에 가서 귀한 영화들을 밤새도록 보기도 하였다.

 

거기에 노스탈지아가 있었다... 한국 영화가 아니더라도, 홍콩 영화가 어쩌다 샹젤리제에서 개봉하는 날에는 도서관에 있던, 그야말로 '학도여, 학도여, 청년 학도여'들이 우르르 몰려나가서 그런 걸 보았다. 첩혈쌍웅을 비롯해서, 천녀유혼 시리즈들, 샹젤리에 어지에선가 봤던 영화들이다.

 

북한 영화 페스티발도 있었다. 홍길동을 거기서 봤는데, 북한 배우가 최재성과 똑 닮았다.

 

그렇게 몇 년간 영화를 보고, 결국... 프랑스 영화에 물리고, 예술 영화에 물렸다.

 

난 이제는 B급 영화들만 보고, 좀비 영화, 흡혈귀 영화, 갱 영화, 이런 B급 영화들을 중심으로 본다.

 

나도 몰랐는데, 내가 B급 감성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시간을 들이고나서야 알게 되었다.

 

<새벽에서 황혼까지> 혹은 시큼털털한 좀비 영화, 이런 게 내 감성에 잘 맞는다.

 

전쟁영화는 좋아하지는 않는데, 시대 읽기에 대한 공부 삼아 본다.

 

2.

그러다 보니 늘 미안한 감정이 있다.

 

수 년째 환경영화제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내 스타일 아닌데, 엄청 재밌다고 얘기해야 하는 그 상황에 몰리고 싶지 않아서 그렇기는 하다. 물론 환경영화제에 나오는 영화들이나 그런 분위기의 영화들 중에서도 재밌는 것들이 있지만, 어째 선뜻 손이 안 간다.

 

난 여전히 <오스틴 파워>의 세계에 살고, <짝패> 아니면 <다찌마와 리>의 과장스러운 세계에 살고, <자토이치>의 코믹 속에 산다.

 

올해 여성영화제에는 어찌어찌해서 폐막식에 초대를 받았는데, 마침 좀 옮기기 어려운 사정이 생겨버렸다.

 

환경영화, 여성영화, 이런 영화들을 잘 안 보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미안한 감정마저 사라지는 건 아니다.

 

황윤 감독의 <어느 날 그 길에서>는 여러 번을 봤었는데, 사정상 한 번도 전편을 제대로 감상할 기회가 없었다. 결국 감독이 절대로 다른 데서 상영하면 안된다고 하면서 DVD를 빌려주었다. 한참 가지고 있다가 노무현 자살한 날, 혼자 앉아서 틀어봤다.

 

혼자 앉아서 신나게 울었다. 황윤 감독이 꼭 좋은 시설에서 음향 좋게 해놓고 집중해서 봐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그 말이 옳기는 하다. 이걸 보고도 눈물이 안 나면... 이게 사람이냐, 그럴 듯 싶다.

 

다큐멘타리는 수많은 우연이 만든 필연이라는 생각을 종종 하는데, 그 영화가 딱 그랬다.

 

어쨌든 연대로 돌아간 다음에 잠시 상영하게 되는 영화들이나, 혹은 실험적으로 만들어지는 작은 콘서트 같은 데 갈 기회가 아주 많아졌다. 그러나 잘 못 간다.

 

그래서 준비한 사람들에게 늘 미안함을 느끼기는 한다.

 

그러나 최소한 영화만큼은 의무감으로 보고 싶지는 않았다.

 

책은, 재미있는데 읽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산다. 읽으면 도움이 되니까, 싫거나 지겨운 데도 참으면서 억지로 읽는 것이 책이다. 재밌어서 책을 읽는다는 사람들이 있다. 여전히 부럽다. 책은 재미없다. 게다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책은 더더욱 재미없다. 그리고 고전들은, 도저히 맥락을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더욱 재미없다. 그래도 참고 읽는다. 그것이 나에게는 책이다.

 

번역되는 순서로 책을 읽지는 못한다. 대개는 번역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번역될 가능성이 없는 책들을 많이 읽는데, 이런 책들은 구하기도 쉽지가 않다. 게다가 재미는 더럽게 없고, 읽은 사람도 없으므로 같이 얘기를 하기도 쉽지 않고, 또... 한국에서 유행할 것 같아보이지도 않는 책들, 이걸 왜 읽나 생각하면서도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책이라고 생각하고 참고 읽는다.

 

그러나 영화를 텍스트로 삼고, 책 읽듯이 하고 싶지는 않다. 최소한 영화만큼은, 나에게 즐거움의 영역으로 남았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

 

정성일은 영화를 더 잘 즐기기 위해서 영화를 만든다고 했다. 대단한 사람이다.

 

나는 영화를 더 잘 즐기기 위해서, 책을 읽거나 음반을 들을 때와 달리, 의무감 없이 영화를 보고 싶다.

 

3.

 

어쨌든 나는 영화를 좋아하기는 하는 것 같다. 벌써 수 년째, 한 달에 몇 장씩은 사던 LP나 CD의 자리를 DVD가 차지하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용돈이 넉넉한 편은 아니다. 책 몇 권, CD 몇 장 사던 자리에서, 이제는 DVD 몇 장 그리고 돈 남으면 책, 이렇게 용돈의 배치 순서가 바뀌었다.

 

(요즘은 DVD가 이제 거의 나오지 않아서, 슬프기는 하다.)

 

얼마 전에 다큐멘타리를 좀 찍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필요한 돈 정도는 대주겠다는 얘기인데... 아, 불행히도 나의 감성은 명랑, 코믹 버전이다.

 

나도 가끔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실제로 지금 문제가 된 한예종 같은 데에 입학해서 진지하게 공부를 해볼까 하는 시도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룹 시절의 현대에 과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월급 받고 회사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닌 것은 모든 것이 다 아름다워보였다.

 

PD 시험을 다시 볼까, 영화를 배울 수 있는 학교에 다시 들어가볼까, 아니면 정말로 한문공부 하면서 한국학 공부를 해볼까, 그런 생각들을 많이 했었다.

 

그러다 다 접고 결국 정부기관에 약간 좋은 조건으로 옮기게 된 건, 그게 현실이다! 이런 걸 결국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선택은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열심히는 했지만, 나는 결국 좌파였고, 차분차분하게 지내면 장관은 몰라도 청장 정도는 되지 않겠느냐는 공무원들의 위로는 전혀 위로가 되지 못했다.

 

몇 년간을 알콜 중독으로 지내고, 고민고민 하다가 결국은 황망해하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사직서를 내고 떠나고 말았다.

 

그 몇 년간 나락 끝으로 향하는 머나먼 여행을 한 기억이다.

 

여행, 어쩌면 삶은 끊임없는 여행인지도 모른다. 머무름도, 다음 번 여행을 위한 기다림의 순간인지도 모른다.

 

나는 맥락없이 던져진 노마드라는 단어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행은 좋아한다. 순례자라는 무거운 단어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삶 자체가 그냥 잠시 머물러있다가 가는,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은 끊임없이 경쟁을 시킨다. 별 것 아닌 것에서도, 하다못해 식사 하면서의 예절과 작은 지식에 대해서도 경쟁을 시킨다.

 

그런 데에서도 매번 이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는, 필연코 불행해진다. 아니면 결국 위에 구멍이 생기던지...

 

4.

영화 <카메모 식당>은, 내게는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였다.

 

보통의 영화는 특정 주제나 특정 소제 혹은 어떤 장소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만든다.

 

그러나 이 영화는, 영화 자체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나에게 영화는 무엇일까?

 

좋은 영화이다. 외로움, 만남, 머무름, 그런 것들과 함께 자기 안의 여행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영화이다.

 

영화를 보면서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생각했고, 서열이라는 단어를 생각했고, 머무름이라는 단어를 생각했다.

 

세상, 잠시 잊고, 지나온 시간에 대해서 회상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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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니체를 불어로 읽었다. 물론... 일부는 불어 공부 삼아서 읽은 것이고, 몇 권은 사 놓고 들쳐보다가 다 못 읽은 것도 많다.

 

아마 내 독서 역사에서 어른이 된 후 가장 재밌게, 그리고 가장 충격적으로 혹은 가장 몰두해서 읽었던 책을 꼽으라면, 니체의 Aurore, 서광이라는 책을 꼽아야 할 것 같다. 프랑스에 가서 불어 공부하다가 아마 처음으로 제대로 읽었던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90년 여름에서 가을 사이, 참 열심히 읽고 충격도 많이 받았다.

 

왜 이 서광이라는 책을 읽었나... 이유는, 니체칸에 꼽혀있던 책 중에서 가장 쌌기 때문에. 그리고 가장 얇았다.

 

그리고 그 시절부터 언젠가 꼭 한 번 봐야지라고 생각하고 아직도 못 읽은 책... gai savoir, 우리 말로는 아마 '즐거운 지식'이라고 번역되었나?

 

gaite라는 단어를 참 좋아했는데, 아마 게떼 정도 발음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이 게이라는 말이 나는 20대 때부터 그렇게 좋았다. 이유는 없다. 게이, 게떼 등으로 활용되는 그 이미지가 그렇게 좋았고, 내가 생각하는 명랑이라는 단어는 한 편으로는 이 게이라는 말과 연동되어 있다. 기계적인 이미지를 조금은 가지고 있는 유머와는 조금 뉘앙스가 다르다.

 

(그러나 Aurore라는 책은, 아주 우울한 책이다. 바울 서신에 대한 체계에 대해서 아주 불만을 가지고 있던 니체 얘기가 계속해서 펼쳐진다. 얼마나 우리가 속고 살아가는가... 맥락만 가지고 오면, 지금 명박 시대의 우리 얘기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신자유주의가 클라이막스를 지나 한풀 꺾이는 듯 싶다. 이 시대가 오기는 올 것 같다고 몇 년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그 시기가 오니까 아직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을 모르던 시절, 그 때 읽은 책들이 다시 기억나기도 하고, 잘 생각하보면 막상 이 시기에 뭘 읽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한 때는 나도, 이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뭔가 읽는 것 자체가 좋아서 손에 잡히는 대로 읽던 시기가 있었다.

 

그 시기의 열망이나 열정 같은 것들을, aurore나 gai savoir 같은 단어를 접하면서 다시 생각해냈다.

 

뜻도 잘 모르면서 aurore를 읽던 시기, 꼭 이런 책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 하나가 간절했다.

 

(그러나 그러지는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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