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새로운 시대

 

 

 

폭염이 사그러들고 가을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엄마 고양이를 보기가 쉽지가 않아졌다. 봄에서 여름 내내 뒷뜰이나 마당 한 가운데 늘 버티고 있던 엄마 고양이가 보이지 않을 때마다 가슴이 놀라게 된다.

 

마당 고양이들은 이제 아기들과 바보 삼촌만 주로 있다. 밥을 주면서 엄마 고양이가 없는 걸 보면, 마음이 허하다. 어쩌면 새로운 시대가 또 오게 되는가 혹은 떠날 때가 되었는가, 그런 느낌을 받는다.

 

그렇게 아기들 밥 주고 뒤로 물러나서 우연히 담벽을 보니, 엄마 고양이가 담벼락에 앉아 있는 걸 보게 되었다. 가끔 엄마 고양이를 보면,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게 뭔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정말로 이 순간, 빛이 난다는 느낌을 받았다.

 

엄마는 새로운 아기를 가진 걸로 알고 있다. 정상적이라면 벌써 분가를 했을텐데, 이 가족도 요즘 속으로는 고민이 많을 거다.

 

 

오늘 오후에 비가 내렸다. 잠시 일보러 마당으로 나오는데, 엄마 고양이가 현관문 앞에 서 있었다.

 

부리나케 뛰어가서 캔 하나 들고 와서 현관 앞에 놓아주었다. 정말로 맛있게 먹었다.

 

옆에서 보던 아기 고양이 생협이 엄마 먹는 캔에 입을 들이밀었다가,

 

그야말로 제대로 정통 펀치가 들었다.

 

지난 달까지만 해도 젖 먹이면서 정말로 끔찍하게 키우던 자식이기는 했는데, 강펀치가.

 

순간, 삶이란!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게 그냥 동물이라서 그렇다, 그렇게 생각하기가 어렵다. 바보 삼촌한테도 늘 먹는 걸 양보하고, 아기들에게는 당연히 양보하던 엄마 고양이였는데, 지금은 자기도 새로운 새끼를 가지고 있어서 그럴 형편이 아니라는.

 

살면서 요즘처럼 뉴스를 안 본 적이 있나 싶게, 뉴스도 거의 안 보고, 인터넷도 거의 안 하고, 그냥 조용히 지낸다. 원래 생각했던 2012년의 계획과는 많이 다르게 가는 거지만, 이것도 그냥 나의 삶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인다. 어쩌면 이렇게 뉴스 볼 때마다 신경 날카롭게 세우지 않아도 되는 삶, 그런 삶을 나는 오랫동안 원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일상에 아무 일도 안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고양이 몇 마리의 소소한 세상 그것도 하나의 거대한 우주와 같다. 그 속에도 긴장과 갈등이 있고, 평화가 있다. 세상에 큰 게 있고, 작은 게 있고, 중요한 게 있고 덜 중요한 게 있을까 싶다. 생명 앞에 서면 뭐가 더 중요하고, 더 시급하고, 그런 것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큰 일처럼 보이는 것도 복잡하지만, 작은 것으로 치부하는 일들도 복잡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야말로 프랙탈 구조와 같은 것인지 혹은 작을수록 더 복잡한 것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고양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통해서, 내 안에도 20대부터 뿌리깊게, 차곡차곡 채워져 있던 증오들이 빠져나올 수 있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다.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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