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정부, 시민의 경제, 초고 끝내다

 

아이가 태어나는 날, 새벽까지 붙잡고 있던 원고가 시민의 경제였다. 뒷부분을 마무리하지 못해서 고생고생 했었는데, 오늘에야 마무리를 지었다.

 

책을 쓰다 보면, 논리만 가지고 쓰기는 어렵고, 감정을 사용하게 된다. 인간이라는 게 원래 감정의 존재 아닌가? 내 경우는 감정을 잘 타는 편은 아니다. 그게 생각대로 감정이 잡히는 것도 아니고, 늘상 반복되는 작업 속에서 그렇게 감정을 만들어낼 수도 없고.

 

이게 좀 웃기는 얘기이기는 한데, 가끔 나는 글을 쓰다가 운다. 칼럼 쓸 때 울었던 것은, 한겨레에 헌법의 눈물이라는 거 쓸 때 가장 많이 울었고. 책 쓰다가도 가끔 운다. , 매번 우는 것은 아니고. 팔리는 것과 내가 우는 것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관계도 없다.

 

시민의 정부, 시민의 경제라는 제목은 비교적 작업 초기에 정했던 제목 중의 하나였는데, 마지막 순간에 이 제목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에필로그에서 제목이 이렇게 된 사연에 대해서 설명하다가 파티 초대장에 관한 얘기를 하다가, 괜히 눈물이 나서 엄청 울었다.

 

그냥 좀 운 게 아니라 정말 꺼이꺼이 울었다. 그렇게 소리내면서 운 건 정말 오랜만인 듯 싶다. 시민들이 파티에서 스스로 빛나는 별 같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가 그렇게 울만한 얘기도 아닌데, 어쨌든 나는 엄청 울었다.

 

그냥 울고 싶었나 보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지난 몇 달 동안 너무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힘들 때 누구한테 힘들다고 말하기도 힘든 게 요즘의 내 사정이다. 고양이 붙잡고 힘들다고 말할 순 없쟎아.

 

1, 2부로 나누어서 1부는 경향신문에 연재했던 것, 2부는 총선 끝나고 나서 새로 내 생각 정리한 것, 그렇게 했는데, 새로 쓴 원고는 A4 50장 약간 넘는다.

 

글쎄책을 쓸 때 그 때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시기상 안 맞기도 하고, 전체 구조상 뒤로 미루어야 하기도 하고, 그래서 모든 얘기를 다 했다는 느낌이 드는 경우는 별로 없다. 연작물을 할 때에는 요런 애로사항이 좀 있다.

 

이번에는, 정말로 하고 싶은 얘기는 다 한 것 같다. 분량이 문제가 아니라, 정말 결론이 무엇이었느냐, 그 얘기를 끝까지 가느냐 마느냐, 그런 차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얘기는 다 털어놓았고, 내가 더 알고 있는 얘기는 이제 없다 싶었다. 처음 출판사랑 얘기를 시작한지 4년만에 나오는 거고, 중간에 경향신문 연재도 1년이나 했고, 그리고도 또 최근의 내 심경에 관한 얘기까지 다 털어놓았으니, 이제 더 할 얘기도 없다.

 

책 마지막 열 줄 남겨놓고 그야말로 대성통곡이 터져나오는데, 정말 신나게 울었다. 고양이가 뭔 일이래, 그렇게 지켜보고 있고.

 

이 책에서는 쓰거나 읽으면서 울 대목이 있을 게 없고, 그런 마음으로 쓴 것도 아니었는데, 마지막 한 대목 쓰면서 눈물이 펑펑나서. 진짜 뭔 일인가 싶었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울었던 대목을 부제로 옮겨놓았다.

 

증오로 시작해서 증오로 책을 끝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했는데, 결국 눈물을 질질 짜면서 마무리하게 되었다. 기쁨이나 경쾌함, 그런 마음을 내심 기대했던 건데, 그냥 서럽다요렇게 된 꼴이다.

 

연초에 시나리오로 시작했던 작업이 결국 소설로 넘어가게 되어서 소설 작업 진행하는 게 하나 있다. 처음 생각은 조금만 손을 볼 생각이었는데, 결국 클라이맥스 한 장면만 남기고, 주인공들 마저도 다 바뀌어버렸다. 에라 모르겠다, 난 그냥 오락 소설로 간다내 주제에 경제 소설은 무슨

 

하여간 그렇게 바뀐 얘기를 가지고 앞부분을 좀 썼는데, 그래서 계약까지는 하기로 했고. 그냥 김영사에서 내기로 했다.

 

기획은 요것도 엄청 멋지다. 관료들 문제를 순서대로 모피아, 교육 마피아, 토건족, 이렇게 다루어볼 생각인데,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어렵다.

 

꿈은 같은 얘기를 만들어보는 건데, 그야말로 내 주제에 무슨.

 

지금 작업은 돈을 어떻게 형상화할 것인가, 그런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돈을 어떻게 보여주지? 그런 고민이 스토리 전개보다 더 큰 고민이다.

 

연초에 처음 작업 시작할 때에는 소설까지 염두에 둔 건 아니고, 시나리오 트리트먼트 수준 정도는 해본다는 그런 소박한 출발이었다. 근데 이게 일이 커지면서 드라마로 만들겠다는 얘기가 먼저 나오고, 오매 나는 책임 못지겠네. 고런 황당무게 에피소드의 연속이었다.

 

여름이 되면서 좀 차분하게 앉아서 얘기를 재구성하고, 떼어낼 건 떼어낸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이게 항공모함이 두 척이 뜨고, 뭐 그런 얘기가 되어버렸다.

 

나는 늘 항공모함을 띄우는 그런 판타지를 가지고 있기는 했다.

 

돈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그런 얘기를 정말로 좀 형상화해서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오랫동안 있었다.

 

하여간 실컷 울고 났더니,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 그것도 까먹었다. 마흔 넘어서는 오늘 제일 크게 운 것 같다.

 

해야 되서 하는 일이 있고,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이 있다. 사회과학 책에는 일종의 의무감 같은 게 있었다. 물론 쓰고 싶었던 주제들이기는 하지만, 이게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거냐고 하면, 그걸 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나?

 

소설도 정말로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이런 얘기를 해야만 할 것 같은, 그런 의무감도 조금은 있다.

 

소설 마지막 습작 했던 게, 96년으로 기억난다. 처음 강사 시절, 그러니까 YS 시절이었는데, 그 때는 재밌어서 소설을 썼었다. 정말 재밌어서 하는 건 줄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취직을 하게 되니까 내가 쓰던 얘기들은 갑자기 까먹어버렸다. , 자신을 잠시 속일 수는 있어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는 거라는 걸 그 때 알았다.

 

지금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작업은 동화책을 쓰는 거다. 이건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거.

 

정말로 아이들이 읽어서 재미도 있고 도움도 될만한 그런 동화책을 쓰고 싶다.

 

어린이용 경제책, 경제동화, 경제만화 심지어는 아동용 경제 다큐까지, 제안이 엄청나게 많이 오기는 했는데미쳤나, 내가 어린이용 경제 책을 쓰게.

 

어린이들이 경제에 대해서 알 필요가 뭐가 있나, 그게 내 기본적인 생각이다. 그 시기에 경제를 채워 넣으면 커서 악인이 되거나, 지독할 정도로 메마른 사람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돈에 대해서 어려서부터 알면 좋을 것이라는 건 부모의 욕심이고, 자기 투영과 같은 것이다. 그 마음은 알겠지만, 정말로 자녀를 위해서라면 돈이 아니라 다른 것에 대한 꿈이나 즐거움을 채우는 것이 나을 것이다.

 

돈 밖에 모르는 인간이 성공하면 어떻게 되는지, 이명박 보면서 충분히 느끼지 않았나?

 

어쨌든 이런 저런 생각들이 모여서 동화책을 써보고 싶다는 동기가 되었다.

 

영화는아직 잘 모르겠다.

 

워낙 실험해볼 여지가 적은 분야라서, 내가 잘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정말로 기획자로서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는지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어쨌든 경제학자로서의 삶이나 생각이 한 번에 털어지는 게 아니라서, 결국은 이렇게 조금씩 털어내는 중이고, 빈 공간에 그 전에 해보지 않던 일들이 들어와서 차는 중이다.

 

사실 난 살면서 뭐가 되고 싶다거나 뭐가 하고 싶다는 그런 강렬한 종류의 욕망은 가져본 적이 없다. 어렸을 때도 그랬는데, 커서도 별로 그런 게 생겨나지는 않았다.

 

한참 기후변화협약 협상 다닐 때에는 서브스타 의장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은 있었다. 평생을 쫓아다니면 결국 나이 먹어서 한 번쯤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자리이기는 했다. EGTT 멤버가 되면서, 사무국에서는 정말로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더 높은 자리에는 더 많은 대가가 따르는 법.

 

만약 그 자리 유지한다고 계속 버티고 있고, 그냥 눌러앉자, 이렇게 했다면 나라고 별 수 있겠나, 이명박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 뭐라도 바둥거리면서 했었겠지.

 

이명박 외국 순방길에 모 박사께서 옆에 서 있는 걸 보고, , 그냥 있었으면 내가 저 자리에 서 있겠겠구나, 그런 생각에 식은 땀이 잠시 흐른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깨끗하게 잘 털고 나왔다는 생각이 강하다.

 

사람의 행동을 구성하는 것은, 욕망만은 아니다. 자기한테 그 행위가 설명이 되어야 하는데, 그 설명이 잘 안되면 이제 욕망과 보람이 그 안에서 충돌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충돌은, 결국은 암이 된다. 장수무강에 지장 있다.

 

나는 얘기 만드는 일이 재미있다.

 

경제학이 재미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뭔가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더 강했고, 그 의무감이 무게가 점점 더 버티기가 싫어졌다. 의무감으로 평생 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 의무감을 명박에 대한 증오로 대체하면서 지난 몇 년간 살아온 것 같다. 짧은 시간 동안 증오를 극대화하면서 살 수는 있지만, 평생 증오하면서 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 마지막 증오가 빠져나가는 순간이, 시민의 경제 탈고하면서 터졌던 것 같다. 증오가 큰 에너지일 것 같지만, 그 상태를 버티는 게 제 정신은 아니다.

 

앞으로의 일은 나도 모른다. 어쨌든 내가 생각했던 즐거운 미래에 대한 얘기는 이 책에 탈탈 털어 넣었다. 정말 서럽게 울었다.

 

왜 눈물이 났는지, 왜 그렇게 서러웠던 건지,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예기치 않게, 나도 신나게 울었다.

 

가끔 이런 순간을 좀 멋있게 표현하면 매듭을 짓는 순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 뭘 하고 싶은지, 뭘 그만두고 뭘 더해야 하는지, 그런 생각을 해보는 순간이 가끔은 온다. 마음 먹고 생각하자고 그렇게 생각이 나는 건 아니고.

 

증오 위에 세울 수 있는 성은 없다

 

정말로 그런 것 같다.

 

Posted by retir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