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활동에 대한 지불 비용은?
‘경제 대장정’ 시리즈는 지금 9권까지 나오고 표류 중이다. 인간적으로, 이거 너무 안 팔리는데, 조사비용 등 책당 제작비용은 상상초월로 높다. 딱 본전만 나와도 어떻게 해보겠는데, 내가 연구를 위해서 미리 쓴 돈과 인터뷰 비용을 도저히 뽑을 길이 없다. 물론 잘 쓰면 되는데… 잘 쓸 능력이 나에게 갑자기 생길 리가 없지 않겠는가?
대장정이라고 거창하게 이름을 붙여놓고, 9권까지 하고 자빠졌다, 그게 정확한 표현일 거다. 남은 게, 농업경제학, 과학과 기술의 경제학 그리고 마지막권으로 언론의 경제학이 잡혀 있다… 아 놔, 세 개 다, 돈은 엄청 많이 들어갈 연구들인데, 역시 판매는 전혀 안될 주제들이다. 하여… 나도 모르겠다, 일단 자빠져버렸다.
9권인 ‘문화로 먹고 살기’의 실패가 아주 뼈아팠다. 하여간 내가 가진 돈은 다 갔다가 넣었는데, 책은 나중에 이것저것 상을 좀 받기는 했지만, 내가 넣은 돈을 회수하기에는 태부족. 이런 식으로는 도저히 문제 안 풀린다, 일단 세워놓았다. 뭐, 내가 쓴 책 중에, 가장 큰 적자를 만들어준 책이다. 물론 출판사에 적자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건 출판사 사정이고, 나는 연구와 인터뷰에 일단 넣은 돈이 최소한 본전은 나와야 다음 작업을 할 수 있는.
그래서 일단 여기에서 자빠졌다. 인간적으로, 도저히 더는 못하겠다, 그런 상황이다.
그냥 비용을 갖다 박는 건, 나꼽살도 마찬가지이다. 이건 그냥 보람으로 참았다. 어차피 대선까지니까, 제한된 시기에 그 정도 출혈은 감수할 수 있다.
하여간, 무슨 일이 있어도 ‘농업경제학’까지는 하려고 한다. 그 정도는 보람으로 할 수 있다. 11권인 과학과 12권인 언론, 그건 잘 모르겠다. 들여야 할 시간과 돈, 솔직히 감당할 자신이 없다. 나도 이제 마흔 중반이다. 1권인 ‘88만원 세대’ 준비할 때만 해도, 나는 아직 30대 후반이었고, 청춘의 힘 같은 게 남아있을 때였다. 지금은 그렇게 힘만으로 밀어붙이면서 출혈을 감내하기에, 나는 이제 나이를 먹었다. 안타깝지만, 그럴 힘이 안 나온다.
하여간 그런 상황에서… 12권의 맨 마지막 질문 중의 하나가, 인터넷 신문 기사에 대한 willingness-to-pay, 지불비용에 관한 문제이다. 몇 년 전에 싱가포르에서 했던 연구로는, 0원이다. 사람들은 인터넷 신문기사에 10원도 자발적으로는 지불할 생각이 없다, 최소한 싱가포르에서는… 그게 그 얘기이다.
차이는 있지만, 전세계적으로 조만간 그런 상황을 만나게 될 것이다. 신문기사를 읽는데 돈을 내라, 그러면 미쳤어? 그런 상황에 갈 것이다. 아직은 좋은 기사에는 좀 돈을 내고, 그렇지 않은 기사에는 안 내고, 그 정도이지만, 몇 년 지나면 미쳤어, 인터넷 보는데 돈을 내게… 전세계적으로 그럴 것이다.
불행한 일이지만, 이번 정권에서는 종편이라고 불리는 TV를 아예 시청하지 않는 것이 의로운 일이 되었다. 참, 피차 불행한 일이다.
뭐, 그거야 그렇다치고, 몇 년 지나면, 결국은 한겨레나 경향 아니면 그 뭐라도, 독특한 관계망을 형성하지 않은 언론의 기사 외에는 아무 돈도 내지 않겠다는 상황이 될 것이다. 그 빈 공백을 광고가 매우고, 언론사들의 토건 사업으로 메웠는데…
이제 조만간 토건으로는 돈이 되지 않는 순간이 올 것이다. 광고? 사람들이 돈이 없는데, 광고를 하거나 말거나, 그런 순간이 올 것 같다.
우린 지금까지, 조중동 망하면 좋다, 그렇게 생각을 했지만 이게 끝은 아니다. 기자들의 기사에 대해서 지불비용이 0원인 상황, 그건 잘 생각해보면 근대를 형성한 한 축이 붕괴되는 것과 같다.
프랑스 혁명 이후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역사와 같고, 결국에는 신문이 왕권신수설, 왕은 곧 신이라는 그 독특한 한 시대를 붕괴시킨 힘이다. 편하게 얘기하면, 기자들은 누가 먹여살려주나, 그런 궁극의 질문과 부딪히는 것이다.
아주 오래된 기자 혹은 평생 기자로 살아간 사람들의 노동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것인가 아닌가, 그 질문 앞에 부딪히게 된다.
물론 사회적으로는 필요한데, 개별적으로 그것에 대해서 지불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말 것인가?
시민이 하면 된다… 뭐, 그렇기는 하지만, 그건 보완적 의미이다.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론은, 다른 언론이 있을 때, 대안적인 의미로서 의미가 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다른 게 다 없어지고, 혹시 남은 것은 대기업이 그냥 자기 홍보 창구로서만 남은 언론만 남는다면?
그 문제에 대한 질문이 내가 해보고 싶었던 마지막 질문이었다. 그 얘기를 다룰 수 있을지 없을지는, 나도 잘 모르겠고.
꼭 그 얘기를 해보라고 해준 사람은, 아직까지는 수 년 전의 강준만 선생 한 분 밖에는 없다.
편하게 얘기하면, 기자들은 누가 먹여 살려주나? 이 질문은, 생각보다 깊은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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